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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가찬 하나님의 경륜 ♣
엡1:8-12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 말씀은 3-14절에 이르는 찬송시의 후반부입니다. 후반부를 이끄는 중심 단어는 9절의 ‘알리셨으니’ 입니다. 에베소서에서 안다는 단어는 중요합니다. 1장 19절의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3장 18절의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중요하듯 신약시대에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중요합니다. 알아야 믿고, 알아야 제대로 살 수 있고, 능력 있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는 것도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8절이 필요합니다.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하나님께서 지혜와 총명을 주셔야 합니다. 사람이 욕심에 사로잡혀 있고 자기 생각으로 가득할 때는 진리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마음이 스스로 부요할 때는 진리의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우리를 낮추시거나, 빨리만 달리던 길에 브레이크가 걸릴 때 그때서야 우리는 비로소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그러면 무엇을 알리셨는가? 9절입니다. “그 뜻의 비밀”입니다. 이 비밀의 내용이 무어냐 하면 10절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경륜’이라고도 표현하는데 경륜은 ‘계획’입니다. 이 경륜이 때가 차서, 곧 예수님의 때를 가르칩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실현됩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경륜, 곧 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 계획은 밝혀지기까지는 비밀스러운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때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때가 찼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밝혀진 이 비밀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 그리스도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것을 왜 ‘비밀’이라 부를까요? 비밀은 헬라어로 ‘미쉬테리온’입니다. 여기서 나온 단어가 ‘미스터리’입니다. 당시 로마사회에서는 신비종교들이 많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영지주의’입니다. ‘영지(靈知)’는 신령한 지식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집단이 구원에 이르는 신비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이 지식을 자기 단체의 입문자들에게만 공개했습니다. 기록도 남기지 않고 비밀리에 전수되었기에 이 지식의 내용은 오랜 동안 비밀에 쌓여 있었습니다. 이들의 지식은 그야말로 자기들만 알고 있는 ‘미스터리’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 곧 그리스도의 미스터리는 남김없이 다 드러났습니다. 복음은 공개된 미스터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밀’이라고 사용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너무 신기하고 귀하기 때문에 ‘비밀’입니다. 여러분에게 갑자기 즐거운 일이 생겼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로또 대박을 맞았다든지, 정말 사랑하는 기막힌 사람을 만났을 때를 상상해 보십시오. 자다가도 웃음이 나올 것입니다. 너무 신기해 깨물어도 보고 다시 확인도 해볼 것입니다. 자기 인생의 의미가 바뀌는 이 순간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얘가 어디서 왔나?”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요즘 월드컵 축구가 한참인데 감독들의 용병술로 승리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후반전에 교체 출전한 선수가 역전골을 집어넣었을 때 우리는 그를 감독이 준비해둔 ‘비밀병기’였다고 평가를 합니다.
예수님이 그렇습니다. 예수를 만나고 그 은혜를 받아 자기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인생에 등장한 예수라는 사람이 내 인생을 송두리 채 바꿔놓습니다. 저는 청년 시절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전혀 예수를 모르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를 만나자 내 인생의 가치관이 바뀌었습니다. 내 삶의 진로가 바뀌었습니다. 내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었습니다. 하루 종일 예수 생각합니다. 어렵고 결정적인 결단의 순간에는 어김없이 예수님을 찾습니다. 예수라는 사람은 누구인가? 곰곰이 생각하면 미스터리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내 인생을 뒤집어 놓았으니까요. 그래서 비밀입니다. 하나님의 히든카드입니다.
둘째는 예수는 파면 팔수록 그 귀함의 끝을 알 수 없는 보물이기 때문에 ‘비밀’입니다. 저는 그래서 예수님을 감춘 보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우리 인생이라는 밭에 예수라는 보물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를 발견한 사람이 진정한 부자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발견하는 예수는 채 1%도 되지 않습니다. 예수 안에 무한한 보물이 있는데 우리는 구원과 관련된 몇 가지 지식의 겉 표면만 긁다가 맙니다. 골로새서 2장 2-3절의 말씀입니다. “이는 그들로...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무한한 보물입니다. 이 분을 묵상하면 우리 심령에서 생수가 터집니다. 생수의 강처럼 끊임없이 흘러나옵니다. 지금도 예루살렘 근처에 가면 수도사들이 있습니다. 이 중 동굴 수도사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절벽 높은 곳에 위치한 동굴 위에 터를 잡고 평생 동안 말씀과 기도로 예수님만 묵상합니다. 먹을 것은 밧줄로 밑에 있는 제자들이 올려줍니다. 밤낮, 그리고 평생 묵상해도 좋을 만큼 예수는 풍성한가? 네, 그래요. 결코 다함이 없습니다. 예수라는 보물의 표피만 긁지 마십시오.
뇌성마미 시인인 송명희는 ‘그 이름’이라는 시에서 예수님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예수 오 그 이름 / 나는 말할 수 없네 / 그 이름 속에 있는 비밀을 / 그 이름 속에 있는 사랑을
그 사랑을 말 할 수 없어서 / 그 풍부함 표현 못해서 / 비밀이 되었네 / 그 이름 비밀이 되었네
사람들 그 이름 건축자의 / 버린 돌처럼 버렸지만 / 내 마음에 새겨진 그 이름은 / 아름다운 보석
내게 있는 귀한 비밀이라 / 내 마음에 숨겨진 기쁨 / 예수 오 그 이름 / 나는 말할 수 없네 / 예수 예수”
여러분도 이런 그리스도를 맛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예수님께 시간을 내어드리세요. 말씀도 읽고 기도도 하고 그분 생각도 하고 가끔은 기도원에도 가세요.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서 봉사도 하세요. 사랑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합니다. 같이 살고 시간 내고 신경 쓰고 대화하다 보면 정이 드는 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끔 우리를 인생의 코너로 몰아가실 때가 있습니다. 세상일에만 바쁘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방이 막힌 곳으로 끌고 가시는 것입니다. 그때서야 우리는 하늘을 봅니다. 예수님을 보게 되는 것이지요.
세 번째 이유는 이런 존귀한 그리스도를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에 ‘비밀’입니다. 아무리 귀에 못이 박히도록 전해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렇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감격하며 눈물 흘리며 사는 사람도 있지만, 예수라는 존재를 눈에 거들떠도 안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예수는 비밀스런 감추어진 존재입니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예수님의 음성은 우리를 향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예수를 깊이 파세요, 깊이 묵상하세요. 감추어 두지 마세요. 그러면 그 속에서 생명의 샘물이 터져 나올 것입니다.
중심이신 그리스도
이 비밀의 내용을 좀 더 풀어보겠습니다. 10절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통일’이라는 단어를 살펴봐야 합니다. ‘통일’은 헬라 어로 ‘아나케팔라이오’입니다. ‘아나’는 위라는 뜻이고, ‘케팔레’는 머리라는 뜻입니다. 즉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든 것이 집약되고 정리된다는 의미입니다. 1장 22절이 이 의미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타락 이후 만물은 통일성이 깨지고 파괴된 상태에 있습니다. 이처럼 엉클어진 피조계에 그리스도가 임하심으로 질서와 평화가 수립됩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혼돈을 방치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주와 역사라는 드라마는 하나님의 경륜, 곧 계획 가운데 있습니다.
먼저 우주의 무질서가 통일됩니다. ‘하늘에 있는 것’은 하늘에 있는 천사나 또 어둠의 주관자나 권세들을 가리킵니다. 초대 교회 당시의 세계상이 이렇습니다. 예전에는 하늘은 신의 영역, 땅은 인간의 세계, 지하는 죽음의 세계라는 세 영역 개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문학이나 신비종교들이 발달하면서 세계상이 좀 더 복잡해졌습니다. 지하에 있던 어둠의 세력들이 하늘 위로 올라오게 됩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서는 “우리의 씨름은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땅은 인간이 살고, 하늘에는 어둠의 영들이 있고, 그 위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천상의 세계가 있습니다.
이 땅에는 하늘의 악한 영이나, 정사나 권세 이 어두움의 주관자들이 지배하고 영향을 미칩니다. 이것을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사탄이든, 우상이든, 미신이든, 운명론이든 이런 것들이 주관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둠의 세력이 판을 치니까 영계도 혼란하고, 그것에 현혹된 우리 삶도 어렵고 고달픕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이 하늘에 있는 것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지배권 아래 두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제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우리 예수님께서 장악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왕이십니다. 그러니 운명에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사주팔자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온갖 귀신이나 고사에 미혹되지 마십시오. 모든 영권과 영계를 주장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이것이 하늘에 있는 것들의 통일입니다.
둘째는 역사의 무질서가 통일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의 무의미나 부정의가 사라집니다. 우리 역사나 현실을 보면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악인이 잘 사는 것 같습니다. 불의한 일도 말고 전쟁이 끊일 날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는 새롭게 됩니다. 역사는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심판을 받았습니다.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1:21)이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역사는 새롭게 쓰이고 있으며 그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라고 부릅니다. 세상 역사는 힘과 폭력과 무질서와 부정의가 아니라 정의와 평화와 생명과 사랑의 나라를 향하여 나아갑니다. 혼란스러운 세계에 진정한 주권자요 유일하신 왕이신 그리스도가 오셨기에 이 땅에 평화가 주어집니다. 교회는 그 평화의 왕국이요, 세상이 교회가 되는 날이 종말이요 최종적인 통일이 이루어집니다.
이 평화는 자연계에까지 확대됩니다. 이사야가 보았던 현실이 이것입니다. 사막에 샘이 넘쳐흐르는 나라, 어린 양과 사자들이 뛰노는 나라, 어린이가 독사 굴에 손 넣어도 물지 않는 나라. 그리스도의 나라 앞에서 모든 폭력과 불의는 힘을 잃습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11:9)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일이 이루어지며 이것이 땅에 있는 것들의 통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것은 우리 인생의 통일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나지 않은 인생은 혼란스럽습니다. 인생의 방황은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끝이 납니다. 우리 인생이 혼란스러운 이유는 중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치 집 떠난 탕자 같습니다. 재산은 가지고 나왔는데 관리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허랑방탕하게 쓰다가 돼지보다 못한 존재가 됩니다. 인간에게는 주인이 필요합니다. 자기를 제어할 명령자가 필요합니다. 인간의 무기력성을 깨칠 능력자가 필요합니다.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만 행복을 누릴 수 있으며 그리스도가 우리 중심에 거할 때 질서를 찾습니다.
대 신학자요 성인인 어거스틴이 그렇습니다. 어거스틴은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까지는 방황 하며 지냈습니다. 어거스틴은 10대를 불량배들과 어울려 쾌락을 좇고, 도둑질도 하며 보냈습니다. 20대에는 결혼 하지 않고 여자와 동거하여 사생아를 낳기도 하였습니다. 또 당시 이단이던 마니교에 심취하여 지적인 방황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32세가 되던 해에 어거스틴은 소나기와 같은 눈물을 흘리며 회심을 합니다. 『참회록』에서는 그 경험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내 영혼 깊숙이 숨겨져 있는 내 인생의 비참함이 그대로 내 눈앞에 드러났고, 강한 폭풍이 내 영혼을 흔들더니 내 눈에서는 눈물이 폭우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이웃집에서 한 음성이 내 귀에 들려 왔다... ‘집어 들고 읽어라, 집어 들고 읽어라’... 나는 급히 성경을 펴들고 읽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로마서13:13,14)... 광명한 확신의 빛이 내 마음을 비추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어거스틴의 인생은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그 중심에 그리스도께서 임하시자 그 인생이 질서를 잡았습니다. 분명한 목표와 가치관이 생겼습니다. 놀라운 지혜와 통찰력이 주어졌습니다. 무지나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통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경륜
우리는 이 하나님의 경륜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주는 계획과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실 때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경륜입니다. 현대 과학은 우주가 137억 년 전에 탄생했다고 합니다. 그 후 백억 년 정도가 지나 생명체가 탄생을 했습니다. 의식을 가진 인간은 수십만 년 전에 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천 년 전에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수많은 세월을 인내하며 그 때를 기다렸습니다. 여기 ‘때가 찼다’는 의미가 바로 그것입니다. 얼마나 감격스런 순간인지 모릅니다. 이때가 차기를 수백억 년의 시간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을 저는 마치 사막 밑을 흐르고 있는 지하수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사막은 생명체도 없고 황량합니다. 그러나 죽지 않았습니다. 그 밑에 생명수가 흐르고 있습니다. 이 지하수가 지상으로 노출된 것이 오아시스입니다. 그곳에는 온갖 생명으로 풍성합니다. 그것이 바로 때가 찬 경륜이며 비밀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그리스도를 목표로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그 완성은 아직 이르지 아니 하였습니다. 우주는 여전히 그리스도를 목표로 달려가야 합니다. 이것이 인류의 진보와 진화의 방향입니다.
이는 단순히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만을 의미하는가? 저는 이것보다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가톨릭 신학자 떼이야르 드 샤르뎅의 신학은 우리가 한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샤르뎅은 ‘오메가 포인트’ 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세상은 진화의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 인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진화의 순간순간은 우연이었을는지 모르지만 결국적으로 일정한 방향을 가지고 진행해 왔습니다. 빅뱅을 통해 자연질서와 법칙이 생겼습니다. 물질에서 생명체가 생겼습니다. 생명체에서 의식을 가진 인간이 태어났습니다. 여기서 진화는 끝입니까?
진화는 계속될 것입니다. 샤르댕은 그동안의 진화는 물질적 진화였고, 이제는 영성적 진화가 일어나게 될 것이라 주장합니다. 영성적 진화의 목표는 그리스도입니다. 온 인류는 이제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결국 모두가 그리스도를 닮아 완성에 이른 때가 오메가 포인트 곧 종말입니다. 진화론의 대가 리처드 도킨스도 그의 책 『이기적 유전자』에서 ‘밈’이라고 하여 ‘문화적 유전자’를 언급합니다. 인간에게는 의식이란 것이 있어 그 진화의 양태가 기존의 물질적인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입니다. 과학이나 세상은 물질로 설명하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신앙으로 해석합니다. 신앙으로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인류의 미래의 목표는 그리스도입니다. 우주는 그리스도를 향하여 움직여 갑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이런 신학이 정말 타당한지는 문제제기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고 그리스도로 통일된다고 한다면 여기까지 추론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시작은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중심은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끝, 곧 우리의 목표도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통일되기까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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