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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필연 죽음, 관 뚜껑을 닫고 화장하겠습니다. 죽음이 물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내일 죽는다면 오늘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암스테르담 경마대회 네덜란드), 어린 시절 말과 함께 자랐던 고향 마을을 찾은 말기암 환자, 그녀는 임종을 앞두고 말 경주축제를 보고 싶어 했습니다.
말기암 환자: 다시 여기에 오게될 줄은 몰랐어요. 말 경주를 못볼거라고 생각했어요. 세상과의 작별 준비를 끝낸 그녀에게 오늘은 선물 같은 하루입니다. 안녕하세요 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름다운 일이죠. 못일어난다면 곧 죽음에 이른다는 것이니까요. 죽음이 삶에 눈뜨게 했죠. 죽음의 문턱에서 소중한 존재들을 깨닫게도 합니다.
(어느 해변가에서), 모두 사랑해요!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대부분의 사람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삶을 되돌아보죠. 엄마가 죽으면 어떨 것 같아? 죽는다는 게 뭘까? 물어보면 애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죽음이란 무엇일까요? 죽음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죽음의 답을 들어 보려합니다.
-----------------------------죽음이 삶에 답하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니츠케 부부는 얼마전 고향 호주에서 이곳 네덜란드로 이주했습니다. 네덜란드가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한 나라이기 때문이죠. 안락사란 죽음에 임박한 중환자에게 고통을 덜어주기 귀해 죽음을 앞당겨 주는 것을 말합니다. 의사이자 인문학자인 니츠케 박사는 안락사 분야에 최고의 권위자입니다. 그는 1996년 세계 최초로 합법적인 안락사를 실시한 의사이다. 안락사 조력단체의 설립자입니다.
필립 니츠케/엑시트 인터내셔널 설립자: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안락사 컨퍼런스에 전세계의 많은 단체와 사람들이 모였어요. 이것은 중요한 변화입니다. 안락사는 아픈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한테 적용되는 권리라고 생각해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야 말로 존엄한 죽음의 기본조건이라고 주장하는 니츠케 박사, 그는 요즘 스스로 안락사를 실행할 수 있는 새로운 기계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사르코라는 이름의 이 기계는 고통없이 생을 마감할 수 있게 설계되었습니다. 12년전 세계 최초의 안락사 기계를 만든이도 니츠케였습니다.
필립 니츠케: 네덜란드에서는 오래전부터 아픈 사람들이 의사의 도움을 받아 안락사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환자가 극심한 고통으로 안락사를 요청하면 의사는 주사를 놔서 시행할 수 있죠. 사람은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이런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습니다.
니츠케 박사가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만든 안락사 조력단체의 회원은 현재 2만여명, 그리고 지난 5월, 단체를 통해 죽음을 선택한 한 인물이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습니다. (구달 박사, 104세에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선택하다). 그는 올해 104세가 된 호주의 저명한 생태학자 데이빗 구달 박사입니다. 그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길 원했습니다.
데이빗 구달/前호주 에디스코완대학교 명예교수, 행복하세요? 아니오, 나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죽고 싶습니다. 1914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구달박사는 식물 생태통계분석의 세계적인 권위자였죠. 그는 102세의 나이로 퇴임할 때까지 열정적으로 연구했습니다. 하지만 퇴임 이후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면서 더 이상 연구를 할 수도 없고 또 혼자 산책할 수도 없게 되자 스스로 이 세상에서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데이비드 구달: 저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되어 기쁩니다. 여러분에게는 아름다운 세상이지만, 구달 박사는 자신이 원하는 죽음이 가능한 스위스로 향했습니다. 마지막 길에는 그의 손자들이 동행했죠 그리고 죽음을 실행하기 전에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데이빗 구달 박사 기자회견 스위스 바젤, 2018년 5월9일), 특별한 병이 없이 죽음을 선택한 구달 박사의 결정에 세계의 언론은 주목했습니다. 하고 싶은 말씀 있으세요? 안락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행복합니다. 어느 누구의 의견도 고려하지 않고 제 스스로 결정한 겁니다. 이 결정을 철회할 생각은 없습니까? 전혀요. 그럴 일 없습니다. 제 이야기를 통해 많은 사람이 죽음에 대해 자유로운 시각을 갖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에게 죽기 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습니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베토벤 9번 교향곡을 듣고 싶습니다. 구달 박사는 죽음을 앞두고 삶의 환희를 노래했습니다.-----제가 박사님께 “지금이 정말 떠나야 할 때라고 생각하세요?” 라고 물었더니 박사님은 “그렇다”고 하셨죠.
필립 리츠케: 104년간 머문 이 세상을 떠나게 돼서 정말 기쁘게 생각한다고요. 실행을 앞두고 가족들은 다시 한번 그의 의사를 확인했습니다. 구달 박사가 선택한 조력 자살은 의사가 합법적으로 약물을 처방하지만 약물투여는 스스로 해야 합니다. 그는 덤덤하게 마지막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을 마감했죠 (데이빗 구달 박사 사망 2018년 5월 10일).
던칸 구달/데이빗 구달의 손자: 돌아가시기 직전에 할아버지가 눈을 뜨시더니 한 동안 주변을 둘러 보셨어요. 그리고는 다시 눈을 감으셨어요. 15초 정도 지나자 영원한 잠에 드셨어요. 구달 박사의 죽음은 선택의 문제였어요. 그의 죽음은 사람들에게 죽음의 자기 결정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리츠케: 구달 박사의 선택은 전세계 사람들한데 죽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어요. 사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죽음에 대해 생각해 왔어요. 죽을 때 어떤 도움을 받는지에 대해서도요.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네덜란드는 2002년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안락사를 합법화했습니다. 그후 지금은 세계 8개 나라에서 安樂死를 허용하고 있지요-네덜란드, 벨기에, 캐나다, 프랑스, 룩셈부르크 등 하지만 논란은 여전합니다 (영국 2015년 ‘안락사법’ 부결), 영국에서는 2015년 안락사법이 부결된 뒤에도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포르투갈 2018년 6월 ‘안락사법’ 부결), 포르투갈 역시 같은 상황입니다. 캐나다에서는 진통 끝에 2년전 안락사법이 통과됐죠. (캐나다 2016년 6월 ‘안락사법’ 최종가결)
저스틴 트뤼도/캐나다 총리: 캐나다는 安樂死에 대해서 오랫동안 논의해 왔습니다. 이 법안은 우리가 죽음을 맞이할 때 개인이나 가족에게 많은 영향을 줄 것입니다.
수많은 나라에서 논란이 진행되고 있는 安樂死, 그 중심에는 尊嚴한 죽음이란 무엇인가 라는 화두가 있습니다. (서울특별시), 우리나라에서 尊嚴한 죽음에 대한 논쟁이 촉발된 것은 10년 전이었습니다.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있는 환자에 연명치료를 중단해 달라는 (2009년 6월 세브란스병원) 소송이 제기된 것입니다. 일명 김 할머니 사건입니다.
박창일/前세브란스병원 병원장: 소위 말하는 尊嚴死 소송이 진행됐고 인공호흡기만 제거하라는 대법원이 판결이 나왔기 때문에---,
김 할머니는2008년 폐암 조직검사를 받다 과다출혈로 식물인간이 된 뒤 1년 넘게 인공호흡기와 영양공급에 의지해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가족들은 의미없는 연명치료에 중단을 요청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우리나라 최초의 尊嚴死 判決을 내렸죠. (2009년 5월 대법원 ‘존엄사’판결), 대법관: 정당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로부터 10년 올해(2018년) 2월 우리나라에서도 延命醫療決定法이 시행되었습니다. 웰 다잉 강사가 법안을 설명합니다. 이 법으로 환자는 延命治療를 거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암인데 어떻게 항암제투여를 안하나요? 이렇게 저한테 물어보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반드시 임종과정에만 해당하는 게 연명의료결정법입니다. 본인이 작성해야 하고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지 8개월 지금까지 약 5만9천명이 넘게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서명했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서명하면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이 네가지를 선택적으로 거부할 수 있죠. (서울대학교병원 중환자실), 전문가들은 특히 인공호흡기 사용여부에 주목합니다. 존엄한 죽음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
허대석/서울대학교병원 내과교수: 인공호흡기를 달게되면 기도에다가 아주 굵은 관을 삽입해서 고정합니다. 진통제나 진정제 없이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술을 하는 거예요. 그 때 부터는 가족하고 대화를 할 수 없고 일종의 수면상태를 만드는 거예요.
우리나라에 한 해 사망자수는 28만명 그 중 20만명 이상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중환자실에서 인공 호흡기를 꽂은채 생애 마지막을 보내죠.
허대석: 우리나라 평균 수명은 미국이나 영국보다 더 올라갔어요. 그러면 의미 있는 삶이 연장된 걸까. 우리나라의 의료상황을 요약해서 ‘의료집착증’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삶의 마무리에 대한 가치를 부여해야 하는데 폐렴으로 죽는다 췌장암으로 죽는다 거기에 집착돼 있지 죽음이 그것만은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이 한 인생을 마감하는 거잖아요? 그런 모습이 어느새 우리 사회에서 없어졌어요.
-일흔 중반의 나이에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배우 손숙씨, 최근에는 치매 노인의 애환을 다룬 연극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외면할 수 없는 삶의 숙제가 되는 죽음, 잘 사는 것만큼이나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고민이 깊어집니다.
신구/배우: 지금 이제 우리 나이 되니까 죽음을 생각안해 볼 수가 없죠. 점점 가까이 오는 일이니까. 저도 그래요. 어지간히 살았으니까 이제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름답고 품위있게 마무리하고 싶죠. 이제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름답고 품위있게 마무리 하고 싶죠.
손숙씨는 얼마전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했습니다. 주변 지인들의 죽음을 보면서 깨달은 바가 있어서 였습니다.
손숙/배우: 우리 나이쯤 되어서는 친구도 한두명씩 떠나고 특별히 작년에 같이 연극했던 친구이자 동료인 배우 윤소정이 죽고 나서는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손숙: 대부분 사람들은 갈 때 고통스럽게 가시는 것 같더라고요. 병원에 가는 순간 코에 꼽고, 입에 꼽고, 가슴에 꼽고, 자식들도 나중에 부모를 추억할 때 자꾸 그 장면만 기억하지 않을까. 그런 것도 별로 바람직하지 않고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성은 갖고 가는게 맞지 않은가.
(경기도 파주시), 尊嚴한 죽음을 위해 손숙씨가 준비한 또 한가지가 있습니다. 파주의 한 성당, 가톨릭 신자인 손숙씨가 자주 찾는 곳입니다. (평화의 문 봉안당), 손숙씨는 얼마전 이곳 성당 안에 지어진 봉안당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여기 ‘F1-118’이 제가 다음에 돌아갈 방이에요. 한번씩 와서 잘 있나 보러와요.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을 준비하면서 자식들에게도 자신이 원하는 마지막을 이야기했답니다. 우리 아이들은 처음에 당황한 것 같아요. ‘왜 당황하냐?’ 그럼 내가 영원히 살 것도 아닌데. 제가 주변을 봐도 준비없이 갑자기 가게되면 허둥지둥 하는 것을 많이 봤거든요. 그래서 이런 거를 미리 준비했습니다. 아이들도 굉장히 편하겠다. 그러고 나니까 너무 좋아요. 엄청 자랑해요. 왜 좋으신가요? 돌아갈 집이 생겼잖아요. 집을 장만 했는데!
누구나 원하는 尊嚴한 죽음,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요? 서울 근교의 한 호스피스 병원(샘물 호스피스병원 경기도 용인시), 우리나라 최초의 호스피스병원입니다. 이곳에서는 연명치료 대신 통증을 완화하고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문제는 이런 호스피스 병동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호스피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전체 사망자의 5%에 불과합니다.
원주희/샘물 호스피스병원 이사장: 24시간 환자를 지켜 볼 수 있는 ‘입원형 호스피스’ 시설이 있어야 하는 거죠. 우리나라는 2500개의 병상이 필요합니다. 호스피스 병동을 제대로 운영하려면요. 그런데 지금 1600개 병상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대기하는 환자의 가족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저희한테 전화합니다. 들어갈 수 없냐고요.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노인자살율과 노인빈곤율이 OECD 국가중 2위입니다. 尊嚴한 죽음을 맞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현실이죠. 우리나라의 완료의료서비스이용율은 세계1위인 오스트리아(63.6%)에 10분의 1도 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5.6% 33위(아시아 7위)). 세계의 33위죠.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죽음의 질’ 역시 낮아서 세계의 18위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1위 영국 93.9%, 대한민국 73.7% 18위).
이성규/서울시립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불행한 죽음이 우리의 문제일 수도 있다. 내가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내가 빈곤할 수 있고 또 내가 고독사할 수도 있고 내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이걸 알아야죠. 그럼 이 문제를 풀려면 그 문제 속으로 사회가 변해서 파고들어가야죠. 사회가 다가가야 되는 거죠. 그 문제 쪽으로 다가가지 않으면 죽음의 질이 상당히 안좋고 불행한 죽음은 계속될 것이다.
(티이완 화롄시), 아시아에서 죽음의 질 1위는 대만입니다. 대만은 어떻게 해서 죽음의 질이 높아졌을까요? (불교 츠지종합병원), 한 종합병원을 찾았습니다. 65세 이상인구 13%, 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둔 대만 역시 尊嚴한 죽음이 사회적인 관심사입니다. 이 병원에는 대만 대부분의 종합병원들이 그렇듯 호스피스 병동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대만은 사망자 5명중 2명이 호스피스 병원에서 완화치료를 받을 만큼 충분한 병상을 갖추고 있습니다. 병원비 부담도 없죠.
씨에즈강/츠지종합병원 호스피스병동 주임의사: 호스피스 완화치료는 국민들의 편안한 임종을 위한 중요한 의료서비스입니다.. 죽음의 질을 높일 수 있어 타이완 정부가 호스피스 병동을 최우선적으로 지원합니다. 병원비를 부담할 수 없는 환자의 경우는 정부지원이 있어서 경제적인 면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곳 호스피스 병동에는 특별한 사람이 있습니다. 쿠우빠 카페-마음을 소통하는 공간, 벌써 18년째 1주일에 두번 호스피스 병동에서 환자와 직원들에게 각종 커피와 차를 무료로 서비스하죠. 쿠우빠씨입니다. 할아버지는 최고예요. 몸이 아파도 언제나 커피를 만들어 줘요.
쿠우빠씨가 이곳 호스피스 병동과 인연을 맺은 것은 아내가 말기암 판정을 받으면서 였죠. 18년전만 해도 대만에서 호스피스 병동은 생소한 곳이었습니다.
진빙훼이/호스피스 병동 커피 자원봉사자: 18년 전 아내는 호스피스 병동이 죽기를 기다리는 곳이라 입원하기 싫어했어요. 하지만 이곳 의사들의 치료 방식을 보고 입원을 결정했고 집에 안가겠다고 하더군요.
진빙훼이 부부, 아내는 이곳에 입원한 80일 동안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의 헌신과 다양한 프로그램 그리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 덕분이었죠. 쿠우빠 씨는 아내의 마지막을 지켜보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사느냐 만큼 어떻게 죽느냐가 중요했던 것이죠.
진빙훼이: 저는 호스피스 병동 말기 암환자들한테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얘기해줘요. 저는 이제 죽음에 대해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어요.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요.
토요일 오후 병원 로비가 북적입니다. 환자와 가족들 자원 봉사자들까지 모였습니다. 매주 토요일 마다 열리는 자원봉사 학생들의 공연입니다. 대만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생명교육 시간에 삶과 죽음을 가르칩니다. 죽음에 대해 교육받아온 대만사람들은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호스피스 병원에서의 봉사도 거의 연장선상입니다. 덕분에 지방에서 사는 딸도 어머니를 마음 편히 호스피스 병동에 모셨답니다.
진야펀/딸: 어머니는 2~3일 동안 거의 식물인간 같았어요. 오늘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좋아진 거예요. 보세요! 고개도 들잖아요. 고개를 숙였는데 고개를 들고 보고 있잖아요. 감동적이에요.
오아번롱/츠지대학교 총장: 최근 10년 사이 타이완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타이완에서는 5년 전부터 법적으로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호스피스 병동으로 갈 수 있게됐습니다. 타이완 사람 대부분은 이 법에 대해 다 알고 있으며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음을 맞이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츠지 대학교), 츠지대학교 의과대학에 귀한 손님들이 방문했습니다. 손님들을 맞는 것은 의과대학생들입니다. 손님들은 이 의과대학에 시신을 기증한 망자들의 유가족입니다. 학생들은 그동안 시신기증자가 살아온 삶의 과정을 조사하여 발표합니다. 의과대학 해부수업을 위해 시신을 기증한 이들을 학생들은 말없는 선생님 (무언의 멘토 (말없는 선생님)-츠지의과대학 해부학 실습 프로그램의 시신 기증자), 즉 무언의 멘토라고 부릅니다. 무언의 멘토(말없는 선생님)들과 그 가족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총 여덟분들의 시신 기증자들의 유가족들은 이번 해부실습을 위해 장례식까지 미루고 기다려 왔습니다. 무언의 멘토(말없는 선생님)께서는 생전 유언대로 시신 기증을 실현하고 싶었고 가족들은 안타까워 했으나 선생님의 굳은 결심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위대한 결정을 하셨습니다.
홍상웨이/무언의 멘토의 유가족: 엄마 얘기가 나오니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엄마가 내린 결정을 존중하고 응원했어요. 엄마가 자신의 몸을 기증한 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 생각해요.
(츠지 의과대학), 다음날 이른 아침 해부수업을 앞두고 유족들이 다시 학교를 찾았습니다.
熱血丹心 育桃李 師者仁心 美善傳
Teaching his students tirelessly and teaching us selflessly
끊임없이 가르치며 선한 마음으로 가르친다
유족들이 찾은 곳은 해부수업이 이루어질 수술실입니다. 이번 수업에는 여덟구의 시신이 수술대에 오릅니다. (무언의 멘토(말없는 선생님) 해부학 실습실 츠지의과대학), 유가족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은 해부수업에 참여할 학생들입니다. 이렇게 이루어지는 해부실습은 일년에 네번 시신기증자의 신상과 수술과정까지 공개하는 것은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례적인 일입니다. 무언의 멘토 프로그램을 마련한 이유는 하납니다. 학생들에게 삶과 죽음을 성찰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기 위해섭니다.
예지아원/타이완 장경대학교 의과대학 교환학생: 저희에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내줘 의술을 공부할 기회를 주신 거잖아요. 사실 제 아버지도 작년에 돌아 가셨어요. 무언의 멘토와 비슷한 나이 였고요. 선생님을 보니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요.
왕번롱/츠지대학교 총장: 많은 시신 기증자는 죽음에 이르게 되었을 때 어떤 치료도 받지 않습니다. 자신의 몸을 완전한 상태로 보존해 학생들에게 전해주기를 원해서죠. 이 사실을 아는 학생들은 깊이 감동받고 삶의 의미를 더욱 깨닫게 됩니다.
해부학 수업은 사흘 동안 계속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됩니다. He said: “I am not a teacher, but I would like to be a Silent Mentor.” His spirit of selfless giving has inspired us greatly. 이 시간 동안 무언의 멘토는 학생들과 함께 합니다. 우리는 선생님의 위대한 사랑을 이어받아 세상에 전하겠습니다. We will pass on her spirit of Great Love and spread it around.
천멍쉔/츠지대학교 의과대학 학생: 저희는 해부하기 전에 선생님께 먼저 여쭤봅니다. 손을 해부한다면 ‘선생님, 손 좀 빌리겠습니다.’ 라고요. 이것은 선생님을 대하는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저희는 선생님을 시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명의 사람으로 대합니다.
1996년 무언의 멘토(말없는 선생님) 프로그램이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시신을 기증한 사람은 941명, 또한 시신 기증에 서명한 사람은 무려 4만명에 이릅니다. 이들은 죽음에 대한 사회의 의식을 바꾸는 견인차가 되었습니다. 사흘간의 해부학 실습이 끝나고 여덟 기증자의 합동장례식이 시작됐습니다. 학생은 물론 대학총장까지 참석하는 대대적인 장례식입니다. 이 모든 과정은 학교와 학생들이 준비한 것 입니다. 장례는 최고의 예우로 장엄하게 치루어집니다. 무언의 멘토는 죽음을 통해 삶을 가르치는 진정한 스승입니다.
증궈팡/무언의 멘토 프로그램 담당교수: 과거 타이완에서는 ‘시신기증 이라는 말조차 없었지만 이제 시신기증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 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언의 멘토 프로그램은 죽음이란 결코 절망적인 것이 아니며 영원히 슬픈 일도 아니라는 것을 가르칩니다. 사람의 生과 死는 自然의 循環 이니까요.
시신들이 화장터로 향하는 사이, 학생들이 추도식을 마련했습니다. 유족들은 학교와 학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유가족 대표: 우리는 한 생명을 잃었을 때 슬픔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도요. 여기 계시는 모든 학생이 훌륭한 의사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학생: 얼마나 많은 희생이 우리를 뒷받침해주고 있는지 반드시 기억하겠습니다. 말없는 선생님, 저희와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화장이 끝난 유골은 학교 안에 마련되어 있는 납골당에 안치되지요. 無言의 멘토를 극진하게 예우하는 것은 이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남은 유족들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서 입니다. 대만 사회에서의 죽음은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서 입니다. 누구나 존엄하게 맞을 수 있고 남은 자들의 삶을 이끌어 주는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되고 있습니다.
(제주특별자치도), 그렇다면은 우리 사회에서 죽음은 어떤 모습, 어떤 의미일까요. 금요일 오후 어진씨는 오늘도 아이들과 소풍을 나왔습니다. 세 아들과 아이들의 동네 친구들이 함께 하는 시간입니다. 어진씨가 매주 금요일 이 모임을 시작한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정어진/주부: 저도 암투병생활을 했고 아직도 암세포가 자리를 잡고 있어요. 내가 만약에 죽게되면 늘 엄마하고만 있다가 우리 아이들이 같이 엄마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어진씨에게는 초등학교 6학년, 4학년, 2학년에 다니는 세 아이가 있죠. 유치원 교사였던 그녀에게 6년전의 암선고는 일상에서 죽음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삶을 다시 보기 시작했죠.
정어진: 삶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고 가족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고 시각도 많이 바뀌는 것 같아요. 죽음이 절대 우리 삶에 들어와서는 안되는 부분이 아니라 우리 삶과 동일하게 가지고 가야 하는 부분이 죽음의 한 면이 아닌가. 아이들도 죽음이라는 거는 지금부터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죽음이 있다 라고 생각하면 정말 그 하루 하루가 소중한 것 같거든요.
투병이 가장 큰 고민은 아이들입니다. 혹시 생길지도 모를 엄마의 부재를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그녀는 고민스럽지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정어진: 엄마가 죽으면 어떨 것 같애? 죽는다는 게 뭘까? 물어보면 애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거? 그럼 엄마가 존재하지 않으면 엄마는 지민이 엄마가 아닌 걸까? 그건 또 아닌데 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렴풋이 내가 이해하는 죽음을 아이도 조금이나마 알아가고 있기를 바라는 거죠. 죽음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습니다.
유은실/서울아산병원 병리과 교수: 죽음을 왜 준비해야 되느냐? 우리가 인간으로서 살아갈 때 꼭 필요한 하나의 관문, 그런게 죽음이어서 죽음에 대해서 더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별한 사람들의 고통이나 아픔도 사실은 죽음문제를 자꾸 얘기하면서 치유되거든요. 그 점에서도 죽음문제는 공개적으로 다뤄줘야겠고요.
(북성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서울 종로 서촌 한옥 마을에 위치한 북성재, 북성재 죽음학 강좌 2018 www.herwonbooks.co.kr 문의:02-766-9273 서울 종로구 옥인동 71번, 얼마전 이곳에서 죽음학 강좌가 열렸습니다.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모두 죽음을 배우기 위해 시간과 돈을 들여 강좌를 신청한 사람들이죠. 연령대도 직업도 다양한 수십명이 모였습니다. 오늘 강사는 초등학교 교사인 임경희씨입니다. (서울 상지초등학교), 임 선생님의 교재는 그림책, 그림책과 죽음이라니 낯설기만 합니다.
김선아/웰다잉 강사: 죽음이라는 주제가 굉장히 무거워요. 다 회피하고 싶어요. 가까이 하기가 싫어요.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싫어요. 내 옆에 오지마 이러고 싶은 게 죽음이에요.
정승아/공무원: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올해로 5년째인데 사실 1년 동안은 거의 지방에 계신 어머니하고 퇴근해서 12시까지 울면서 전화로 보냈던 것 같아요.
정은주/주부: 얼마 전에 자녀와 사별하신 분을 만났어요. 근데 이분들이 도움을 청하고 싶어서 여기저기 연락을 했으나 구체적인 도움을 받을 만한 곳이 없는 거예요. 절박한 상황에서 사회적인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다는 거죠.
사회는 무심했고 사람들이 외면했던 죽음과 마주하는 시간, 그림책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죽음이란 무엇일까요? 죽움이 하는 말이에요. 내가 사라지면 누가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생명에 자리를 마련해 줄까. 죽음이 가지고 있는 본래성 절대 되돌아오지 않는 다는 것, 그런 이야기를 우리는 해줘야 될 때가 많아요. 그렇지만 어떻게 해줘야 도리지 모르잖아요.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 죽음을 보고 들으며 살지만 제대로 된 위로와 치유를 받아본 적은 없습니다. 그 방법이 뭘까요? (보고 싶은 엄마), 절대 보내고 싶지않은 우리의 엄마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첫 장에 이렇게 시작해요. 우리는 얼마 전에 엄마한테 작별인사를 했어요. 나는 엄마가 어디로 갔는지 잘 몰라요. 그런데 아빠가 애기를 꼭 껴안아 주면서 뭐라고 말했어요. 엄마가 죽었다고요. 엄마가 죽었다고 말하고 나면 무슨 말을 해야할까요. 누구든지 한번 죽으면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고, 그래서 엄마도 돌아올 수 없는 거라고 아빠가 말했어요.
그리고 우리는 서로 도와가며 이전에 엄마가 했던 일들을 잘 해 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나는 엄마가 보고 싶어요. 한번 읽어 볼까요. 난 언제까지나 엄마를 잊지 않을거예요. 난 엄마한테 아주 특별한 아이였고, 엄마도 언제까지나 나한테 특별한 사람이니까요.
누구나 겪지만 드러내지 못했던 상처에 따뜻한 온기가 전해집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금기가 아니라 이해와 포용이었다는 것을 알게 한 시간이었습니다.
유은실: 이제 이런 식의 죽음과 관련된 논의가 공식적으로 사회적으로 되지 못하고 있어서 그냥 삼삼오오 자기들끼리 얘기하는 것이지 방안을 마련하는 실천적인 행위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채 사회가 빨리 고령화 되고 있는게 제일 큰 문제인 것 같아요. 집집마다 곧 죽음을 바라보는 어른들을 다 모시고있다 보니까 아주 절실한 문제가 돼버린 거예요. 그래서 이건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곧 중요한 문제로 대두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림책으로 20년 넘게 죽음을 가르치는 임경희씨, 그녀의 책장은 죽음을 주제로 한 책들로 빼곡합니다. 그림 책만도 수백권이 넘는데요. 그녀는 왜 이토록 죽음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요?
임경희: 제자들이 생각이 나요. 군대가서 자살했던 제자, 4학년 때 난소암으로 죽었던 제자, 제자들의 죽음을 많이 지켜봤고 또 제자들이 부모를 잃는 거를 많이 지켜 봤어요. 그랬는데 어떻게 해야될 지를 몰라서 뭔가 해줘야 할 일을 안해준 것 같은 자책감, 임경희씨는 남은 제자들을 위해 죽음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막상 공부를 하려니 국내서적이 거의 없어 원서와 번역된 책들에 의존해야 했죠. 그리고 죽음학 강의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죽음을 일상의 공간에로 불려 냈습니다.
임경희: 만약에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안아주고 나서 책을 읽어 주겠죠. 그리고 이렇게 말할 것 같아요. 엄마를 잃은 아이한테 엄마는 여기 계신다 떠나지 않고 여기 계신다고 다시 만난다면 그렇게 해주고 싶어요.
(서울 상지초등학교 서울특별시 마포구), 임경희씨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 오늘 수업의 주제는 죽음입니다. 슬픔이 무슨 말인지 알텐데 상실하면 뭐가 떠올라요? 많은 것을 잃는 것, 추억을 잃게 되기도 하고 사람을 잃게 되기도 해요.
초등학교 5학년, 12살 짜리 아이들이 죽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엄마가 오늘 아침에 죽었다. 사실은 어젯 밤이다. 아빠가 그렇게 말했다. 아빠는 아주 희미하게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이제 다 끝났단다.” 엄마가 죽는 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할머니가 나한테 오는 거야 다가와서 가만히 내 손을 잡아 가슴 위에 올려주며 말을 해요. “여기 쏙 들어간 데 있지? 엄마는 바로 여기 있어.”아이들은 진지했습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난 뒤 아이들이 내놓은 대답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소윤서/서울 상지초등학교 5학년: 죽음은 한 마디로 감사함이라고 생각해요. 하루 하루를 감사하게 보낸다는 것이 죽음이란 가장 어울리는 거 같아요.
임기진/서울 상지초등학교 5학년: 내가 영원히 산다면 이 하루를 어떻게 살지 모르잖아요. 어차피 내일 또 살건데, 1년 후에도 살건데, 평생 살 건데 그러면 이 하루가 허무하게 느껴질 거 같아요.
임경희: 이 책은 ‘커다란 질문’ 이라는 책인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내가 이 세상에 왜 있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새가 ‘나 세상에 왜 태어났어?’ 라고 물으면 ‘너는 지저귀기 위해서 태어났지’ 라고 답하고 마지막에 놀라운 질문을 던져요. ‘죽음은 왜 태어난 거야?’ 이렇게요. 작가는, “넌 삶을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거란다.” 아이들이 2학년인데도 이 책에서 이 문장이 가장 멋있대요.
(덴헬데르 네덜란드), 삶을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죽음을 확인 할 수 있는 곳, 네덜란드에 앰뷸런스 소원재단 Ambulance Wish Foundation입니다. 앰뷸런스 소원재단은 임종을 앞둔 사람들에게 소원을 들어주는 단체입니다. 오늘은 한 말기암 환자의 집을 찾았습니다. 앰뷸런스 소원재단은 두명이 함께 움직입니다. 한명은 간호사, 한명은 운전사입니다. 얀 할머니의 병명은 혈액병, 암이 전신에 퍼져 거동조차 할 수 없는 할머니를 위해 딸이 엄마의 소원을 신청했습니다. 오랜만에 외출, 마지막이 될 줄 모르는 나들이 입니다. 임종을 앞둔 중증 환자들을 태우기 위해 앰뷸런스는 특별하게 개조된 것입니다. 도착한 곳은 한 캠핑장, 얀 할머니의 여름 별장이 있는 곳입니다. 할머니는 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 이곳에서 지냈습니다.
얀 벨드캠프/소원 신청자: 여기 오는게 내가 이루고 싶었던 마지막 소원이에요. 그리웠나요? 그럼요. 간절했죠. 30년 됐죠. 할머니가 온다는 소식에 이웃 주민들마저 모두 기다렸습니다.
이웃주민: 할머니는 지난 30년간 좋은 이웃이었어요. 그녀의 남편도 정말 좋은 사람이었고요.
마지막 인사를 나눌 시간, 이별은 아무리 준비해도 익숙하지 않습니다.
카더린 더부르/딸: 이웃 사람들 모두가 사랑스러운 엄마를 오래도록 기억할 거예요. 엄마는 이번 주면 세상을 떠날 것 같아요. 의사가 며칠 안남았다고 얘기했거든요. 마음이 아프네요---,
딸 셋까지 모두 모였으니 완벽한 所願成就입니다. 여기와서 기분이 어때요? 정말 좋아요! 완벽하대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마지막 소원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사람들의 마지막 소원은 이렇습니다. (생의 마지막 소원-미술관 관람하기), 미술관을 관람하고, (식물원 산책하기), 식물원을 산책하고 (딸의 결혼식 참석하기),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 (남편과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 먹기), 혹은 길거리에서 아이스트림을 먹는 것처럼 특별한게 않은 것들이었습니다. (동물원 가기), 그들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위로 받으며 평온한 죽음을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삶을 가슴에 새긴 뒤 평화스런 얼굴로 세상과 작별했습니다.
키스 벨드보어/앰뷸런스 소원재단 설립자: 사진 속 사람들은 모두 웃고 있어요. 이들은 소원을 이룬 후 곧 세상을 떠났죠. 저희가 웃음을 선물로 드린 거예요. 소원을 이루는 중에 그 현장에서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죽음을 맞이하는 분도 많았어요. Ambulance Wish Foundation 앰뷸런스 소원재단 본부(네덜란드 로테르담), 로테르담에 위치한 앰뷸런스 소원재단입니다. 재단의 활동은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이들은 하루에 대여섯건 일년에 2천건이 넘는 소원을 이루어줍니다. 그동안 이루어준 소원만 해도 7천건이 넘습니다.
키스 밸드보어: 우리 재단은 네덜란드 전역에 총270명의 자원 봉사자가 활동하고 있어요. 지도에 깃발이 꽂힌 곳이 봉사자들이 사는 곳이에요. 환자들의 소원을 위해 앰뷸런스로 프랑스 파리에도 갑니다. 무료예요.
이 재단은 병원 앰뷸런스 운전기사였던 키스씨가 만들었죠. 그는 우연한 기회에 한 환자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준뒤 본격적으로 소원성취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자비로 중고 구급차를 구입했고 직접 개조까지 했죠. 12년전의 일입니다. 재단은 모두 기부금으로 운영합니다. 앰뷸런스 소원재단 1년 기부금 80만 유로(약 10억원), 사람들이 기부하는 돈은 일면에 10억원이 넘습니다. 마지막 소원을 신청한 또 한 사람의 집에 가족들이 모였습니다. 말기암 환자인 부키씨는 집에서 큰 아들의 돌봄을 받고 있습니다. 그녀는 얼마전 병원에서 퇴원했습니다. 집에서 마지막을 맞고 싶다는 바람때문이었죠.
부키 알미지/소원 신청자: 주치의가 제게 어디서 임종을 맞고 싶은지 물어봤어요. 집이나 병원, 그리고 호스피스 병동이요. 저는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임종을 맞기로 결심했어요. 아이들도 모두 동의 해주었죠.
생의 마지막을 집에서 가족과 함께 하기로 결정한 부키씨, 준비는 끝났고, 시간은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녀가 차마 내려놓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남겨질 아이들입니다. 부키씨는 이 아이들에게 마지막 추억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부키: 저의 마지막 소원은 바다를 보는 거예요. 바다를 보면 삶의 모든 근심 걱정을 한 번에 떨쳐버릴 수 있을 거 같아요.
아들이 엄마의 마지막 소원을 신청하자 앰뷸런스가 곧 바로 출동했습니다. 부키의 생애 마지막 소풍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설레는 모습입니다. 앰뷸런스가 출발하자 그녀를 위해 모인 가족과 지인들이 긴 행렬로 뒤따랐습니다. 바람은 쌀쌀했지만 햇살이 좋은 가을날이었습니다. 부키씨는 불편한 몸을 일으켜 바다를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그녀를 뒤따라갔습니다. 누군가는 그녀를 위해 음악을 준비했습니다. 마지막 도전을 응원하는 노래였습니다. 그녀는 생애의 마지막이 될 바다를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도전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평온해 보였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의 마지막 소원을 함께 해줘 너무도 기뻐요. 정말 행복해요. 제가 그토록 원하던 거였어요. 이제는 헤어져야할 시간, 한사람 한사람 빠짐없이 인사를 나눕니다. 진심을전하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너는 나의 여왕이야. 안녕히 가세요.
엄마 아빠 할머니 말 잘 들어야 해. 앞으로도 우리 세 아이들 잘 부탁해 삶이 아무리 간절해도 죽음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죽음이 있어 삶이 더욱 소중합니다. 우리가 잊고 있을 뿐 애초에 삶은 죽음과 함께 였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죽음을 이야기하고 배우고 마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부키: 모두 사랑해요! 와 줘서 정말 고마워요! 곧 한국 방송에 나올 거야! 다들 알지! 부키는 2018년 10월 22일 가족의 품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삶을 되돌아 봅니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지금 하시길 바랍니다. 나중으로 미루지 마시고,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끝. (KBS 스페셜 48화, “당신은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에서 정리).
①창세기 2:7에,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사람은 누구나 죽으면 한줌의 흙으로 돌아간다. 시편 90:10절에,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라고 했는데 지금은 의학의 발달로 백세 시대, 죽을 때까지 가치 있게 살다가 죽어야 한다. 우리나라 한 해 사망자수는 28만명, 그 중 20만명 이상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중환자실에서 인공 호흡기를 코에 꽂은 채 아무 의미없이 생애 마지막을 보내고 있다. 이런 죽음은 남은 가족에게 고통스럽고 미련하고 어리석은 죽음이다.
② 2008년 김 할머니는 폐암조직검사를 받다 과다출혈로 1년간 식물인간이 된 상태에서 가족이 병원을 상대로 연명치료중단 소송을 제기, 2009년 5월 대법원은 인공호흡기만 제거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로부터 2018년 2월 우리나라도 의료연명결정법이 시행되었는데 이는 환자가 사전에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척, 항암제 투여 이중 네가지를 선택적으로 거부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는 생의 마지막에 존엄한 죽음을 위한 것이다.
③ 인간의 生老病死, 이건 自然의 循環이다. 自然死와 安樂死, 늙어서 죽게 되면 몸에 고통이 온다. 누구나 고통없이 죽기를 원한다. 그러나 安樂死는 한국에서 불법이다. 安樂死를 합법화한 나라는 8개국-네덜란드, 벨기에, 캐나다, 프랑스, 룩셈부르크 등 영국 2015년 안락사법 부결, 포르투갈 2018년 6월 부결, 캐나다 2016년 6월 안락사법 최종가결, 이제껏 잘 사는 것 만큼이나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고민, 살만큼 살았으면 이제 미래의 죽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어지간히 살았으니까 이제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아름답고 품위있게 마무리를 해야하지않을까.
④ 아시아에서 죽음의 質 1위는 대만이다. 대만은 어떻게 해서 죽음의 질이 높아졌을까? 대만 65세 이상인구 13%, 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두고 尊嚴한 죽음이 사회적인 관심사였다. 대만 대부분 종합병원들은 호스피스 병동이 잘 갖춰져 있다, 사망자 5명중 2명이 호스피스 병원에서 완화치료를 받는다, 병원비 부담도 없다. 호스피스 완화치료는 편안한 임종을 위한 의료서비스다. 타이완 정부는 호스피스 병동을 최우선적 지원하고, 타이완에서는 5년 전부터 법적으로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호스피스 병동으로 갈 수 있다. 타이완 사람 대부분은 이 법에 대해 다 알고 있다.
⑤ 죽음이란 무엇일까요? 죽움이 사라지면 누가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생명에 자리를 마련해 줄까. 죽음은 절대 되돌아오지 않는 다는 것,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해줘야 될 때가 많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모른다.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 죽음을 보고 들으며 살지만 제대로 된 위로와 치유를 받아본 적은 없다. 그 방법이 뭘까? 얼마 전에 엄마한테 작별인사를 했다. 나는 엄마가 어디로 갔는지 잘 모른다. 그런데 아빠가 애기를 꼭 껴안아 주면서 말했다. 엄마가 죽었다고. 누구든지 한번 죽으면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돌아올 수 없는 거라고 아빠가 말했다.
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금기가 아니라 이해와 포용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내가 이 세상에 왜 있냐고 물어본다. 새가 ‘나 세상에 왜 태어났어?’ 라고 물으면 ‘너는 지저귀기 위해서 태어났지’ 라고 답하고 마지막에 놀라운 질문을 던진다. ‘죽음은 왜 태어난 거야?’, “넌 삶을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거란다.” 아이들이 2학년인데도 이 책에서 이 문장이 가장 멋있단다.
⑦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마지막 소원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사람들의 마지막 소원은 이렇습니다. 미술관을 관람하고, 식물원을 산책하고,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 혹은 남편과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 먹기, 동물원 가기, 특별한 것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위로 받으며 평온한 죽음을 준비했다. 그렇게 삶을 가슴에 새긴 뒤 평화스런 얼굴로 세상과 작별했다.
⑧ 삶이 아무리 간절해도 죽음을 거스를 수는 없다. 하지만 죽음이 있어 삶이 더욱 소중하다. 우리가 잊고 있을 뿐 애초에 삶은 죽음과 함께였다. 그것이 우리가 죽음을 이야기하고 배우고 마주해야 하는 이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본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지금 하라.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지금이 바로 그때다.
⑨. 故김수환 추기경은 죽기전에 안구(각막)을 기증했고 故구본무 LG회장은 죽기전에 주위에 폐끼치지 마라 가족장으로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르라 수목장을 했다고 한다. 前주월한국군사령관 채명신 장군은 유언으로 죽으면 장군묘지에 묻지 말고 월남전에서 전사한 사병들이 묻힌 곳에 똑 같은 평수 크기로 묻어달라는 유언을 해 그의 유언대로 됐다고 한다.
⑩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의 가장 높고 전망 좋은 곳에는 무명용사의 묘지가 자리잡고 있고 한국 서울 동작동 국립 현충원의 제일 전망이 좋은 곳에는 박정희 前대통령의 묘지가 있다. 무명용사, 비록 전장에서는 이름 없이 죽었지만 국가가 그들의 영면을 지키고 있다.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 유일하게 일년 365일, 24시간 동안 경비병이 엄숙한 표정으로 보초를 서고 있다고 한다. 우리도 무명용사에 대해 미국처럼 죽어서도 대통령과 평등하게 대우하지 못한단 말인가? 국민의식의 문제다,
⑪ 銅雀洞 국립현충원을 가보라. 前職 대통령 묘지와, 장군 묘역과 장교묘역, 사병묘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장군 묘지는 높은 4단 비석을 설치하고, 장교 묘지와 사병묘지는 초라한 비석만 다닥다닥 세워놓았다. 이런 屍身班常제도는 유교적 반상제도에 기인한 것으로 죽은 뒤에도 끼리끼리 모여 귀족행세를 하겠다는 시대 역행적 특권의식이다. 살아서도 특권 죽어서도 특권, 국민의식의 문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죽음 앞에서 만민은 평등하다. 흙에서 흙으로다. (내블로그 blog.daum.net/namk46-개혁신학교회 카테고리, 2018.3.23. “목사도 은퇴 후 평신도로 돌아갑시다”를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