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여 도
李蓍珩
<1>
재능 있는 미모의 처녀가 나쁜 환경 밑에 태어나면 비뚤어져 마침내 나쁜 길로 빠지기 쉬운 것이 세간의 상식이다.”
죽미(竹美)도 그런 한 사람으로 스스로 몸을 내던지고 있는 듯했다. 남에게 더욱 뒤지지 않으려는 성질과 수재들이 갖는 우월감이 더욱 더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것 같았다.
그녀가 돌연 몸을 감춘 것은 중일전쟁 발발 일주년을 맞은 칠월 말경 열여섯 살의 나이 때였다. 늘 그리워해 온 아버지를 찾아 광주(光州)에 갔다는 소문이 있는가 하면 어머니가 불륜녀였으니까 화류계로 흘러들어간 것이 틀림없다고 악평하는 자도 있었다. 또 어떤 자는 어머니와 사별했기에 몸 붙일 곳이 없어 어머니 친가를 찾아갔을 것이라는 말도 했다. 그런가 하면 이를 반박하여 어머니의 친가는 빈곤하니까 배다른 오빠를 찾아 만주(滿洲)로 갔다고 그럴듯하게 말하기도 했다.
경성(京城)으로 공부하러 갔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광기 들어 자살했을 것이라고 빈정대는 사람도 있었다. 바다를 건너간 것만은 확실하였다. 구월 이십 구일 밤배를 탄 것만은 사실이어서 제목(濟木)항로의 선박회사 사무원이 트렁크 하나를 들고 그녀가 배를 탄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삼년 가까이 그녀를 보살펴 온 ‘남(南)’이 그녀의 아버지인 임도율(林道律)을 방문하여 광주에 들른 것은 유월 중순경이었다. 그럴싸한 양옥 건물의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은행가(銀行家)다운 불룩배의 임씨가 왼손에 명함을 들고 오른손으로 부채를 파닥거리며 들어서면서,
“당신이 남씨인가요? 용건은?”
하고 묻는 것이다.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저번에 편지로 실례했습니다. 실은 죽미양이 이곳에 와 있지 않나 해서.”
거만해 보이는 그를 쳐다보며 ‘남’은 말했다.
“죽미 말이오? 그 애가 오긴 왔었는데 삼일 간 있다가 돌아갔어요. 며칠 전이오. “
“행방은 모르시겠습니까?”
“나하고는 관계없는 여자애요.”
퉁명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당신의 따님 아닙니까?”
“아니 단지 불쌍해서 호적에 올렸을 뿐 인연은 끊었소. 당신은 뭣 때문에 그렇게 죽미의 일을 걱정하시오. 그 용건이라면 나는, 바쁜 몸이어서, 실례하겠소.”
하고 일어서서 나가는 것이다. ‘남’은 쫓아가며 말했다.
“죽미양은 나의 제자입니다. 불운한 아입니다. 내버려 두기는 아까운 아입니다. 당신은 아버지로서 책임을 느끼지 않습니까?”
“시끄럽소. 젊은것이 건방지군. 당신에게 용무가 없으니 썩 나가시오.”
임씨가 호통을 쳤다. ‘남’은 그 비인간성을 한탄하며 그 집을 나왔다. 그리고 버스를 타 죽미의 어머니 친가로 향했다. 광주의 교외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여러 번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 겨우 찾아냈다. 허리가 구부러진 늙은이가 나와서 면(面)의 지도원으로 잘못 알아본 양,
“오늘은 몸이 불편해서 길 닦는 일은 쉬었습니다.”
신음하듯 말했다. ‘남’은 웃음기를 참고 찾아온 의도를 말했다. 그러자,
“죽미는 태어났다는 말은 들었어도 얼굴을 본 적은 없어요. 내 딸년하고 제주(濟州)에 가서 살고 있지요.”
전연 말 상대가 안 되었다. 죽미의 어머니가 죽은 것도 이 늙은이는 모르고 있구나 생각하니 측은스러워 그 일은 말하지 않았다.
“죽미의 오빠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자동차 조수인가 뭔가를 광주에서 하고 있었는데, 만주로 간 후로는 소식이 없어요.”
죽미가 와 있지 않은 것만 확인된 셈. 지폐를 두 장 종이에 싸서 손에 쥐어 주고 집을 나섰다.
경성에선 강습을 받는 여가를 이용하여 거리를 돌아다녀 보았으나, 그녀와 닮은 여자와는 만나지 못했다. 뒷골목 같은 곳을 다녀 보았어도 허탕이었다. 어딘가 침침한 선술집 같은 데서 익숙지 못한 손놀림으로 거친 남자들에게 무리한 웃음을 띠며 술시중을 들고 있을 죽미의 모습을 상상하며 돌아다녔다. 경성은 넓다. 그는 허탕만 칠 뿐이었다. 모습을 감춘 그 이삼일 전의 그녀의 심리는 복잡했었다. 자포자기한 듯했다. 그러나 자력으로 살아나가야 한다는 굳고 억척스러운 성질을 상실하지는 않았었다. ‘남’은 아무런 단서도 얻지 못한 채 강습이 끝난 후 이틀 동안 더 경성에 머물렀다가 단념하고 섬에 돌아와 귀교했다. 읍내에서의 그녀에 대한 수군거림은 다소 누그러져 있었다. 다만, 그녀의 동창생들이 학교에 와서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2>
중학교를 나왔을 뿐인 남무송(南茂松)이 남해의 고도 S읍의 보통학교로 부임한 것은 소화(昭和) 십일년 사월 말이었다. 열여덟 학급이나 있는 도내에서 제일 큰 학교였다. 그는 오학년의 여자 학급을 담임했다. 여성과는 교섭이 없었던 스무살 전의 그가 육십여 명의 여자 아이들 앞에 하고 처음엔 당혹했다. 그러나 교사와 아동이라는 관념이 생기면서, 차차 그 사이에 뚜렷한 벽이 형성되어서 편한 수업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와 비례해서 날이 갈수록 아동들은 그와 멀어져 갔다. 천진난만해야 할 그녀들이 수줍어하며 어른을 축소시킨 듯한 태도를 보여 그는 짓눌린 것 같이 괴로웠다. 이상한 분위기가 교실 안을 감싸 활기 없는 기계적인 수업이 되곤 했다.
교실에 들어서면 그마저 우울해지는 것이었다. 움찔움찔 풀죽은 듯한 그녀들이 교실에서 벗어나면 교정에서는 회희낙락하며 노는 모습들이 직원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것이었다.
그녀들과 매일 얼굴을 마주 대한 지도 한달이 되었기에 친숙해지리라고 생각됐지만, 웬걸 벽은 점점 높아지기만 했다. 그래서 의붓자식이 모여든 것 같은 애정 없는 냉랭한 세계가 되고 말았다. 교육에 경험이 없는 그는 정신적으로 피로를 느낄 뿐이었다. 중학 시절 수학을 좋아해서 문검(文檢)을 목표 삼아 교원을 지망했던 그였는데, 하숙집에 돌아오면 자와 컴퍼스를 만지는 것조차 싫증이 났다. 그래서 이러다가는 안 되겠다고 자성하고는, 나에겐 교원이 될 자질이 없는 것일까 하고 반성하곤 했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어 육개월이나 지났다. 수학 공부도 해야만 하고 그녀들과의 거리도 좁혀야 되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영 무언가 손에 잡히지가 않아 마음만 초조해질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문검 준비를 일시 중단하고 그녀들에게 정력을 다할 것을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은 한 사람의 정력일 뿐 그녀들에게는 전달되지 않았다. 그는 생각 끝에 교장의 사택을 방문하여 사정을 말했다. 그랬더니 교장은 말했다.
“남군, 그들은 어린애들이여요. 성인 취급을 하려니까 그리 되는 거지. 자네도 동심으로 돌아가게. 자네에게 동심이 없는 증거일세. 누이동생을 어루만지는 심정으로 그들의 생활 속에 푹 들어가 보오. 먼 곳에서 그들의 생활을 엿보는 것만으로는 안 되오. 맨몸이 되어 동심으로 돌아가 그들의 생활 속으로 뛰어들어가야 해요. 어린이들은 감수성이 강해요. 특히 여자애들은요. 자, 심기일전해서 좀더 노력해 보세요.”
그는 여성의 세계는 별난 세계라고 생각했었다. 자기와는 거리가 먼 존재라고 늘 느껴왔던 것이 이런 결과가 된 근본적 원인이었다. 막내로 태어나 누나와 형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자라온 그는 누이동생을 사랑해 본 경험이 없다. 오년 동안 기숙사에서 살아온 그였다. 특히 음악이나 유희 등에는 적성이 맞지 않았던 그로서는 교장으로부터 이렇게 충고를 받고는 심기일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뒷날부터 공을 들고 휴식 시간에는 교정으로 나갔다. 축구에는 선수였으므로 자신이 있었으나, 여자의 구기에는 미숙해, 약간 쉬운 농구를 택했다. 그러나 짧은 십오분 간의 휴식시간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나마 그것도 한정된 소수의 아동뿐이어서 둥글게 둘러서서 발레와 비슷한 몸동작을 하는 정도로 했다. 그녀들에게 흥미를 갖고 했다. 그러자 그녀들과 그의 거리가 점차 가까워지는 것이었다. 일요일 같은 날에는 얼굴에 불그스레 홍조를 띄고 주자(周子)란 애가 친구를 데리고 소풍을 가자고 불러내기도 했다.
소녀들은 순진 그대로여서 교사와 아동 사이에 놓인 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생활마저 유쾌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 중 한 아이만은 영 어울리려 들지 않았다. 부급장을 맡고 있는 아이였다. 눈동자가 검고 서늘하며 날씬한 키의 아이였다. 어딘가 외로워서, 보기만 해도 쓸쓸해 보였다. 급우들 놀이패거리와 떨어져 혼자서 나무 밑에 멍하니 앉아 있거나 혼자 무언가 읽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급우의 그 어느 누구와도 사이가 나쁘거나 따돌림을 받거나 하지 않는 것이었다. 오히려 급우들의 인기를 받고 있으면서도 홀로 놀고 있었다. 어느 날, 점심 시간에 아동들과 공놀이를 하던 그가 팽나무 밑에서 무언가 열심히 읽고 있는 그녀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그때는 다가오는 그를 보자 자리에서 일어나 읽고 있던 책을 치마 뒤쪽으로 감추었다.
“넌 왜 친구들과 놀지 않니?”
“놀고 싶지 않아서요.”
태연히 말했다.
“애들은 너와 함께 놀고 싶어하는데.”
“저 애들은 모두 나에게 동정하기만 해요. 동정받는 건 싫어요.”
하고는 자리를 떠나 달아나 버리는 것이었다.
그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고 직원실로 돌아와 학적부를 꺼내었다. 보호자는 신숙랑(申淑娘), 그녀의 어머니였다. 임도율의 서녀(庶女)로 돼 있었다. ‘남’이 광주중학에 있을 때 자주 듣던 이름이었다. 고집이 셈, 두뇌 명석, 학급을 위해서는 일을 잘하나 성격이 비뚤기도 하다라고 쓰여 있었다.
성적은 일학년에서 사학년까지 수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것을 보고 그는 짐작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산수 시간의 일이었다. 분수를 설명하면서 그는 슬며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교사의 설명을 듣지 않는 양 엎드려서 연필을 돌리고 있었다. 부급장이나 된 녀석이 이럴 수가 있나? 그는 다가갔다. 그리자 그녀는 양손으로 노트를 감추었다. 교과서는 그때 설명하고 있던 페이지보다 훨씬 앞선 페이지를 열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불러내어 흑판에 문제를 내걸었다. 그녀는 거리낌없이 슬슬 식을 풀고 계산한 답을 써 놓고는 경멸스런 눈빛을 하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는 중위권의 아동을 표준삼아 수업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때로는 같은 것을 두세번씩 되풀이하기도 했다. 그녀는 그런 것이 자기에게는 못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가 임죽미에게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학적부를 보고나서부터다. 그는 이 학교에 십년 근무하고 있는 손(孫)선생으로부터 그녀의 가정 환경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알아냈다
<3>
죽미의 어머니를 읍사람들은 광주댁이라고 불렀다 마흔이 넘었으나 예쁘장한 끼가 있는 미인이었다. 남성적인 면도 있었다. 재봉과 요리에 대해서는 그녀의 솜씨가 제일이라고 했다. 어딘가에 결혼 잔치가 있기나 하면 우선 그녀가 불려가 의장과 요리의 상담 상대가 되었다. 그런 반면 그녀에 대한 평판은 그리 좋지 않았다.
생계를 꾸려나가는 일정한 직업이 없는 탓도 있을지 모른다. 부탁을 받고 재봉일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 가지고는 생활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내세워 이렇다 할 직업이 없으면서도 그래도 생활에 큰 불편없이 생계를 꾸려 나갔다. 다만 가다가 남자가 드나든다는 소문이 좋지 않은 평판을 자아낸 원인이 된 것 같았다. 그 일로 주자의 어머니와 말싸움을 한 적이 있었다. 주자의 아버지는 면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 일로 대단한 부부싸움이 벌어졌었다. 그것이 읍내의 화젯거리가 됨으로써, 그녀에 대한 뜬소문이 많아진 실마리가 된 것이다.
그녀는 광주 교외에서 소작농을 하는 빈곤한 농가의 딸로, 단 하나의 오빠는 품팔이 신세로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남자 아이를 낳고 삼년째 되던 해 남편과 사별하였다. 그 후 약 이년 동안 힘겨운 생활을 하다가 아이들을 친가에 맡겨두고 광주의 어느 은행의 은행인 임도율의 집에 침모로 들어갔다. 처음엔 하녀 취급으로 부엌일과 청소를 도맡아 하다가 바느질 솜씨가 인정되어 일년도 되기 전에 침모로 앉게 되었다. 임가의 의복(한복) 만들기와 세탁물 손보기 등 일체를 도맡아 하다가 임씨 부인의 노여움을 사 그 집을 나가게 되었다. 이미 무거운 몸이 되었다. 임씨는 천원의 위자료를 주고는 광주를 떠나라고 했다. 그녀는 오빠가 와 있는 제주읍(濟州邑)으로 들어왔다. 그즈음 S읍에서는 대대적인 방파제 공사 중이어서 그녀의 오빠가 부감독을 하고 있었다. 오빠와 의논해서 여관업을 시작했다. 여관이라고 해도 인부 상대인 여관이었지만, 가끔 술자리도 맡고 인부들 옷을 세탁하고 수선하는 일 등을 하다 보니, 간혹 음식값과 술값을 때이기도 했지만, 수입은 괜찮았다. 육개월이 지나 여자애가 태어났다.
죽미였다. 곧장 광주의 임씨에게 알렸으나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죽미가 태어난 후로부터 불행이 잇달았다. 오빠가 차량 사고로 현장에서 참사했다. 얼마 없어 이번엔 여관이 불타 없어졌다. 젖먹이를 안은 그녀는 무일푼이 되고 말았다. 그로부터 셋방살이를 하게 되었다. 방파제 공사 중에는 인부들의 작업복 수선삯으로 그럭저럭 모녀의 입에 풀칠을 하였지만, 삼년째가 되자 공사마저 끝나버렸다. 그간에 또 아비 없는 애를 하나 낳았는데 죽고 말았다. 이래저래 이제는 바느질 품삯질 하는 것이 유일한 생계의 방도가 되고 말았다.
이러한 생활을 하다보니 어느새 죽미가 오학년 학생이 되었고 그녀는 몸을 혹사한 탓에 쇠약해지고 걸핏하면 자리에 눕게 되는 신세가 되었다. ‘남’이 가정방문을 했을 때도 자리에 누워 있었다.
<4>
칠월에 접들고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었다. 저녁이 되면 모기떼에 시달리게 되어 이를 피해 사람들은 거의가 바닷가로 나가는 것이었다. 십년 전에 시작돼 많은 희생자를 내어 축성된 방파제는 이제 공원 역할을 맡아 봄부터 가을까지 밤마다 인파로 출렁대었다.
학기말의 성적 정리에 시달린 ‘남’은 저녁 바람을 쐬려고 방파제로 나갔다. 그는 행인들의 몸 사이를 누벼 밀리 떨어져 있는 등대 쪽으로 갔다. 그곳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별로 없었다. 모기가 많이 모여드는 곳이기에 사람들이 별로 가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그는 무엇에 이끌리듯 걸어갔다. 달이 물에 비치고 기름에 흐르는 듯한 해면은 은반과 같이 고요하다. 원시적인 손낚기 어선이 점점이 물에 떠 있었다. 흘린 듯 해면을 바라보며 걷던 그는 피부에 달라붙는 모기떼가 미워 되돌아갈까 하고 망설이던 순간 영롱하게 흘러오는 노래 소리를 듣고 멈칫 걸음을 멈추었다. 어디서 귀 익게 듣던 소리였다. 노래 가사도 귀에 익은 것이었다.
그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용궁 궁녀의 소린가 하고 착각할 뻔했다. 발소리를 죽이며 소리 나는 곳으로 나아갔다.
갈매기 나는 머나먼 저 세상
님 있으리 복 많은 나라여
해녀 실은 하얀 돛배
마파람(南風) 뒷 바람 받아
오늘도 간다. 님 사는 이여도에
아- 가고 싶구나. 나두야 가고 싶구나
이여도 사나 이여도 사나
그것은 이 섬의 민요였다. 해녀들은 해변에서 피로를 잊기 위해 부르고 첫 사공들은 노를 저으며 장단 맞춰 부르는 남해 특유의 서정미 가득 찬 민요였다. 옛날부터 이 섬과 멀리 떨어진 동방에 이여도가 있다고 전해져 오고 있었다. 어선들이 폭풍우를 만나면 이 이여도에 피난한다. 이여도는 극락의 나라로 한번 가면 돌아갈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 용궁을 방불케 하는 전설적인 곳이다. 고기 잡으러 출항했다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고대하던 해녀가 등뒤에서 우는 어린것을 달래며 자기도 낭군이 있을 이여도에 가고 싶다고 애수를 담고 불렀다는 것이 이 민요의 시작이라고 했다.
하얀 등대 기둥에 기대어 바다를 바라보며 노래 부르고 있는 흰옷의 처녀는 죽미였다. 들을 때마다 향수를 자아내는 이 민요를 이런 곳에서, 더구나 예기치 않던 죽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듣고 그의 향수는 샘물과 같이 솟았다.
그래서 죽미가 가엾기도 하고 용궁의 궁녀 같기도 했다. 언제까지고 그대로 가만히 놔두고 싶기도 했다. 사람의 기척을 뒤돌아본 그녀는 당황한 듯 “앗, 선생님”하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괜히 흥을 깨뜨려 미안한 마음을 가지면서 역시 그도 발을 멈춘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늘은 맑아지고 달빛이 훤히 밝아졌다. 먼 데서 개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얼굴을 떨군 채 여느 때의 그녀답지 않게 도망치려 하진 않았다. 그는 가까이 다가섰다. “어머니의 병세는 어때, 요즘.” 그녀는 그 말에는 대답지 않고 얼굴을 들면서 “선생님 전부 들었어요?” 퉁명스레 말했다.
“응, 들었다. “
“선생님은 아버님이 계십니까?”
“그야 당연히 계시지. 헌데 넌 어째서 혼자만 노니?”
“모두들 나에겐 없다고 하니까요.”
공간을 응시하면서 말했다.
“그래서 놀림을 받는다는 거니?”
“아뇨, 가엾다고 동정해요. 전 동정받는 게 싫어요.”
“우정이니까, 놀림당하는 것보다 좋은 거 아냐?”
“놀림당하는 건 더욱 싫어요. 선생님은 어느 쪽이세요?”
어린애답지 않게 질문해 왔다. 때문에 그도 곧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그보다도 너 어머니 간병이나 해 드리지 그래.”
“오래 걸린다던데요. 선생님은 주자가 예쁘세요?”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이다.
“응, 천진난만하잖아. 너도 주자처럼 명랑하게 놀아보렴.”
“싫어요. 선생님은 제가 싫지요?”
“죽미양, 확실히 말하는데 싫지도 않고 동정하지도 않아요. 다만 내가 학교를 나와 최초의 제자로서 주자보다 죽미가 더 귀엽다고 생각할 뿐이지.”
“정말-아, 기뻐.”
그녀는 어린애답게 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는 것이었다. ‘남’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하였다. 아버지가 없다는 것이 마음의 외로움이 되어 비뚤어진 그녀를 사랑의 교육열로 가르쳐 주어야 하겠다고.
<5>
그 다음 해 사월에 교육령이 개정되어 보통학교가 소학교로 되면서 죽미는 육학년생이 되고 급장을 맡게 되었다. 방파제에서의 일이 있은 후 죽미는 어린애다움을 되찾고 학급 안에서 명랑성을 발휘하여 왔다. 그런데, 이학기에 접어들면서 또다시 안절부절 불안정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었다. 상급학교로 진학하기 위해 방과 후 교실에 남아 보충수업을 하는 급우들을 보며 우울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진학할 수 있는 학생들의 진학을 바라고 도와주는 것이 담임인 그로서는 당연한 사명이었으나, 현재의 죽미의 가정 형편은 그렇지가 못했다. 거기다가 죽미의 어머니는 가슴않이 병으로 일년이면 반년 이상을 자리에 누워있어야만 했다. ‘남’은 죽미의 학비를 부담해 볼까 하고 생각하여 봤지만 월급 삼십오원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었다. 생각 끝에 그녀의 생부(生父)인 임도율에게 사정을 담아 편지를 보냈다. 그런데, “십수년 전 그들과는 인연을 끊었다. 그때 생활비도 넉넉히 주었다. 지금 와서 그런 말 들을 이유가 없다.”고 딱 자른 회답이 왔다.
아무리 인연을 끊었다고 하지만 호적에 입적해 있는 이상 딸자식이 아닌가. 양육과 교육의 책임이 있지 않은가. 적어도 은행의 행장이라는 자가 무책임한 그런 행위를 할 수 있는가. 혈기에 찬 ‘남’은 추신을 띄웠다.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회신이 없었다. ‘남’은 그녀의 진학을 단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를 불러 졸업 후에 적당한 직장을 구해줄 테니 어머니를 간병하면서 독학으로 공부할 것을 설득시켰다. 그래서 그녀는 명랑성을 졸업식 때까지 유지했다. 졸업한 것은 열여섯 살의 봄이었다. 열여섯 살이라지만 조숙한 편이어서 남달리 숙성해 보였다. 졸업과 동시에 금융조합에 사환으로 들어갔다. 장차는 사무견습을 한 후에 서기로 채용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녀는 여가가 나는 대로 강의록에 달라붙었다. 성실하게 노력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돌봐준 보람이 있구나 만족하였다. 이년 동안 자기의 공부를 잊고 그녀들에게 온 정성을 다하여 온 그는, 어떤 애는 여학교에, 어떤 애는 직업 전선으로 보내게 되어 무거운 짐을 벗은 듯 안도감에 만족하였다.
그 삼월부터는 삼학년생을 담임하게 되어 시간과 정신의 여유를 얻게 되자 자신을 반성하고 자신을 생각하기에 이르러, 문검 준비를 그만두고 교원양성소에 들어가기 위해 묵은 참고서와 씨름하는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후로부터는 서로의 일과 공부에 쪼들려 만나는 기회가 소원해졌다. 간혹 죽미가 ‘남’의 하숙집에 찾아오면 붉은 줄을 친 강의록의 의문나는 부분에 대해 가르침을 받고나서는 어머니의 병세를 말하고 점점 어려워간다고 걱정을 늘어놓았다. 그가 아는 의사를 데리고 병문안을 간 것은 초여름경이였다. 죽미의 어머니는 심한 기침을 하면서 “저애 애비는 비정한 사람입니다. 저 애가 커서 제 애비에게 본때를 보여줄 때까지 살아야 하겠는데······. 의사의 진단하고는 거리가 먼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남’의 양친은 목포에서 십리쯤 떨어진 시골에서 농업을 하고 있었다. 소농으로 유복한 생활은 아닐망정 어릴 때부터 열성이 있고 막내이기도 하여 무송은 중학에 다니게 되었다. 그러나 중학 이상은 바랄 수 없는 형편이어서 중학을 나온 후 문검에 뜻을 두었다.
육월 하순경 ‘남’이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죽미에게서 기별이 와 있었다. ‘남’은 그 발로 급히 달려가 보았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죽미는 서늘해진 어머니 시체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 그날로부터 죽미는 자신의 운명에 넋을 잃은 것 같았다. 장례를 치른 후로는 방심한 듯 이전의 그녀보다 더 고독에 빠져 나날이 달라져갔다. ‘남’이 귀엽게 가르쳐 키워온 명랑성은 온데간데 없이 날로 변해가고 있었다. 밤잠도 설치는 것 같았다. 혼자 자리에 들면 잠은 오지 않고 공상과 망상에 사로잡혔다. 아버지에 대한 반감은 변하여 남성에 대한 증오가 되어 ‘남’에게 자신의 심경이나 신상을 말하는 횟수도 적어졌다. ‘남’이 걱정하는 방향으로 그녀의 성격이 줄달음치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남’이 그녀를 찾아 혼자 적적하면 자기 있는 곳에 와 있으라고 권해 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아닌 걱정 말아주세요. 나 혼자 잘 살아가겠어요. 돌아가 주세요.” 두말도 못하게 쫓아내는 것이었다.
‘남’은 여러 번 찾아 갔다. 그러나 그녀의 태도는 계속적으로 냉정해갔다. ‘남’은 그녀의 장래가 두려워져 힘이 닿는 데까지 도와주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에겐 마이동풍인 양 받아들이기는커녕 얼굴을 찡그리고 코웃음을 치는 것이었다. 근무처인 금융조합에서도 그런 태도였다. 정신에 이상이 생긴 것 같다고 조합이사가 말했다.
얼마 없어 여름 방학이 되었다. 여학교에 다니는 주자를 비롯한 ‘남’의 제자들이 최초의 귀성을 했다. 죽미의 일을 듣고는 그녀들은 순진한 처녀 마음으로 얼마만큼의 뜻을 모아 죽미에게 위문을 갔다. 그러자 그녀는 형상사납게 호통치는 것이었다.
“너희들 같은 아가씨들에게 동정을 받을 만큼 나 몰락하지 않았어. 비웃으러 왔지. 흥, 집에 가서 공부들이나 해, 아가씨들아.”하며 봉투를 내던지는 것이었다. 당혹한 주자 일행은 분함과 죽미의 너무나 변해버린 모습에 울면서 ‘남’에게 사연을 일러바쳤다.
“너무도 분해요. 우정이란 손롭만큼도 없이.” 그녀들은 분개했다.
‘남’은 당장 달려가 꾸짖고 싶었으나 죽미의 정신 상태들 냉정히 생각하고는 참았다.
이런 일이 있은 삼일째 그녀는 행방불명이 되었다. 여전히 아무런 단서도 잡히지 않고 그 후 그녀의 소식을 아는 자는 없었다.
<6>
인간의 운명은 불가사의 한 것이다. 불가사의함으로써 변화가 있어 사는 보람이 있는지도 모른다.
‘남’이 죽미와 헤어져 사년째 되는 해 구월 교원양성소를 나왔다. 졸업하자마자 귀향할 시간도 없이 곧바로 경성의 여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되었다. 그 해도 저물어 정월을 맞자 대동아전쟁도 결전의 단계에 돌입하여 총후(銃後)란 말도 어색해져 제이전선(第二戰線)이란 말이 상계전장(常在戰場)이란 신어로 등장했다.
‘남’도 마음이 굳어지는 것을 감지하며 이수과(理數科)틀 통한 과학교육에 힘을 경주했다. 이월도 중순으로 들어선 어느 날 돌연히 ‘남’은 죽미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오랫동안 소식을 끊은 것을 사죄한 후 작년 여름 경성의 연초공장에서 선생님의 논문을 읽고 근무처를 알게 되었다는 둥의 내용이 쓰여 있었다. 주소는 S읍으로 돼 있었다. 작년 여름이라면 ‘남’이 졸업하기 직전이었다. 졸업시험이 끝나고 교육자로서 견학해 둘 곳을 단체로 돌아다녀볼 때 형무소를 보고난 다음 겸사겸사 연초공장도 견학했다. 하지만 ‘남’은 죽미를 보지 못했었다.
죽미와 헤어진 후 죽미를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고 생각하며 지나간 때를 추억하기도 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연초공장에서 그녀에게 보였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은 S읍에서 자활하고 있다니 더욱 궁금한 일이었다. 부랴부랴 회신을 보냈다. 자세한 사실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얼마 없어 답신이 왔다.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은 학교에 봉직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돌아다 보니 처음으로 선생님께서 이곳에 계실 때 고생하신 일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가가 있으시면 한번 들렀다 가세요.”
지극히 간단한 사연만 적혀 있었다. ‘남’은 무언가 욕구 불만인 것 같은 기분이 되어 입학고사 시기를 앞두고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삼월에는 맑아야 할 어린애들의 마음을 어둡게 누르는 시험지옥이라는 게 있다. 아이들을 가진 어버이들의 마음으로서는 성적의 여하는 고사하고 또는 본인의 지망 여하도 고려치 않고 자기 만족이나 대외적 체면유지를 위해 뭐가 어떻든 자기애를 상급학교에 진학시키려고 한다. 거기에 교원의 입장에서 본다면 실로 귀찮은 가택방문이라는 것이 있게 마련이지만, ‘남’의 학교에서는 고사가 시작하기 반달 전부터 가택방문을 금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말 뿐,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남’도 일일이 응대하다 보면 한계가 없으므로 밤에는 하숙집에 눌러 있기가 답답해서 친구의 집이나 도서관 나들이를 일삼았다.
그럭저럭 날을 보내다 보니 십구일의 합격자 발표도 끝났다.
그날 밤 그는 목포행 기차를 탔다. 목포 교외의 본가에서 이틀간 보낸 후 죽미에게 편지를 띄우고 섬으로 향하였다.
도착한 것은 이십 삼일의 아침이었다. 부두에 내려 군중 사이에서 그녀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있노라니 수상 파출소의 순사가 그를 데리고 갔다. 신분증을 내보이자 그제야 “아 그러세요. 실례했습니다.”며 놓아 주는 것이다.
그는 이전에 하숙했던 여관에 우선 행장을 풀기로 했다. 여관은 경영자도 바뀌었고 건물도 변모해 있었다. 전임지에 대한 뿌듯한 기대를 안고 온 그에게 모든 것이 변해 보이기만 했다. 어쩐지 서운한 기분이었다. 오년간이었지만 그것이 과거의 혹은 미래의 십년 또는 이십년에 버금가는 과도기였던 탓이라고도 느끼었다.
다시 태어난 죽미의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앞서 급히 학교로 찾아갔다. 운동장에는 한 명의 아이들도 없었다. 강당에서 아동들이 부르는 ‘형설의 공(졸업식 노래)’이 흘러 나왔다. 직원실에는 여교원 두명이서 무언가 분주히 포장하고 있었다.
복도의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서니 돌아다 본 한 사람이 의아스럽게 바라보다가 놀란 들이 달려와서 “선생님 어쩐일이세요? 갑자기” 말도 끝맺기 전에 울상을 지었다. 놀란 것은 그녀뿐만 아니어서 ‘남’도 당황해졌다. 그녀는 주자였다. 감색 상의에 검은 ‘몸빼’(전시 여성복장)를 입고 있었다. 그전보다 약간 키가 커 보였다. 기둥시계가 지겹다는 듯이 느릿느릿 열한시를 치고 있었다.
“졸업은 한 줄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곳에 근무하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작년 오월부터여요. 시국이 시국인지라 놀고 있을 수도 없고 해서 모교인 이 곳에 ······”
“그거 참 잘 됐군. 어때 재미있어?”
“예, 아이들과 놀고 있다 보면 시간가는 것을 잊어요. 매일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저 자신마저 커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
“그래서 전보다 키가 컸군, 하하하.”
주자가 입을 가리고 웃자, 다른 한 교원도 덩달아 웃었다.
“오늘은 졸업식인가? ‘형설의 공’ 노래가 들리던데.”
“아니어요. 오늘은 연습이지요. 지금 상품을 만들고 있던 중이어요.”
“그렇군.”
이 때 복도에서 슬리퍼 소리가 나더니 죽미가 나타났다. ‘남’을 힐끔 쳐다보고는 고개를 똑바로 세우고 조용히 다가왔다. 주자는 어색해진 듯 어리둥절해 하는 것이었다.
“긴 여행하시느라 피곤하시겠죠. 어제 전보는 받았습니다마는, 보시다시피 졸업식 준비로 그만 실례하고 말았습니다.”
“죽미하고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어, 주자랑 같은 곳에서.”
“나중에 모든 것을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자, 앉으세요.”
차분히 말하고는 주자를 옆눈으로 쏘아보듯 하며 제자리로 가서 앉았다. 성적을 꺼내어 정리하기 시작했다. 변함없이 냉정한 죽미를 그는 보았다. 그녀의 어머니를 연상케 하는 성숙미는 더한 것 같았으나 상냥스런 면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랜만에 만난 누구라도 웃는 얼굴로 맞는 것이 상정인데 그녀는 그렇지가 않았다. 길가의 풀이 차마(車馬)에 밟히며 강하게 사는 것처럼 그녀의 얼굴에는 경쟁에 져서야 되겠느냐고 타인을 경멸하려는 태도가 나타나고 있다고 ‘남’은 생각했다.
“임 선생, 상장 좀 손보아 주시겠습니까?” 누군가 부탁하자, “손 놀고 있는 선생에게 부탁하세요.”하며 거절하는 것이었다.
<7>
한라산 정상에는 아직 잔설이 남아있었으나 키 자란 보리밭 위를 스쳐오는 따스한 바람은 사람들의 마음을 풀리게 하였다. 그날 밤 죽미는 ‘남’을 찾아와 모든 것을 말했다.
그녀는 당시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소문났을 때 그리워하던 광주의 아버지를 찾아갔다. 그러나 아버지는 왜 왔느냐고 야단치고 계모는 불륜의 여자 몸에서 난 아이라고 욕설을 했다. 그보다 더 참지 못하게 한 것은 이복형제들이 하녀 취급을 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여학교에 다니고 싶던 꿈은 깨지고 만 것이다. 앞길이 캄캄한 그녀는, 그렇다고 섬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또 그녀의 마음을 따뜻이 감싸줄 고향도 없고 보니, 있는 돈을 톡톡 털어 기차표를 사고 경성으로 상경했다. 그리고 여공을 모집하는 연초공장 앞을 지나게 되어 여공이 되고 만 것이다. 여공 생활을 하면서도 그녀의 우월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공휴일 같은 날 동료들이 외출에서 돌아와, 영화 이야기나 어디서 무슨 음식을 먹고 왔다든가 어떤 곳을 지나칠 때 어떤 남자로부터 요런 말을 들었다는 등 알쏭달쏭 허드레한 입방아를 늘어놓아도, 들은 체 만 체 그저 자기 공부에만 열중하였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별난 애라고 놀림을 받아도 상대를 않고 자기 일만 하고는 곧장 잠자리에 들곤 했다. 기숙사 사감만이 그녀를 이해해 주었다. 그런 생활 끝에 작년 시월에 받은 제2종 교원시험 합격증을 첨부, 도에 이력서를 내었더니 운 좋게 연고지인 S읍 학교에 근무 발령을 얻게 된 것이다.
“죽미다운 데가 있군.” ‘남’은 듣고 나서 말했다.
“선생님에겐 무어라고 용서를 빌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부임할 때 광주에 들러 아버지를 만났더니 아버지도 후회하시데요. 선생님께 면목없다고. “
“그럼 아버지하고도 화해가 된 셈이군?”
“별 화해랄 것까진 없고, 태도가 달라지더군요. 아버지도 그 후 저의 행방을 찾았나 봐요,”
“그렇지. 그렇지 않았다면 잘못된 거지. 죽미도 고생한 보람이 결실을 본 거야.”
“어머니가 항상 불쌍하다던 오빠가 만주로 간 후로 아직도 소식이 없어요. 오빠의 소식을 알 수 있다면 저도 안정될 수 있는데.”
보통학교 때의 그 쓸쓸한 모습으로 오빠의 신상을 염려하는 듯 조용히 말하는 것이었다. 미닫이문이 열리며 하녀가 “주자 선생님이 친구들과 같이 와 있습니다.”라고 알리었다. 그러자 죽미가 달갑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오늘밤엔 신통치 않은 말만 지껄였습니다. 이로써 실례하겠습니다.”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은 어차피 동창생들이니까 괜찮지 않느냐고 만류했지만 듣지 않았다.
“도도하군. 난 싫어.” 복도에서 말소리가 들리더니 주자를 선두로 예측한 대로 주자와 동창생 세명이 들어왔다.
잠시 동안 상냥하고 얌전한 인사가 끝나자 누구는 결혼해서 어딘가에 있고 누구는 남자애를 낳아서 애기 엄마가 됐다는 등 급우들의 행방소식을 늘어놓았다. 그런 다음 급우들에게 냉정한 죽미의 태도를 비꼬았다.
“선생님 훈도(訓道)는 뽐내는 건가요?”
한 급우가 말했다.
“어째서 ?”
웃으며 ‘남’이 대꾸했다.
“죽미는 여학교를 안 나왔어도 훈도가 되고 주자는 확실한 여학교를 나왔어도 촉탁이니까요. 그래서 그 앤 뽐내 다니구, 주자는 안 그러구.”
“얘 싫다. 그 애 성격이 그래. 남자 선생에게도 그런데 뭘. 까딱 잘못했다간 큰 코 다치는데.”
“하하하. 여장부란 말이군.”
이로써 모두가 한바탕 웃었다. ‘남’은 그녀들이 언제나 명랑한 것이 즐거웠다.
“선생님은 언제까지 혼자서 살 작정이세요?” 용감하게 질문하는 이도 있었다.
“난 벌써 결혼했어.”라고 하자 또 한바탕 웃음이 터져나왔다. ‘남’은 그녀들과 말하고 있으면 젊어지는 기분이었다. S읍에 와서 좋았다고 생각하였다.
<8>
다음날 오후에 이년간 ‘남’의 가르침을 받은 주자네는 주자의 집에서 단촐한 은사환영회를 가졌다. 열명 정도의 모임이었으나 벌써 시집간 자, 엄마가 된 자, 시집갈 준비를 한다는 자 등 가지각색이었다. ‘남’은 중학을 갓 나온 때처럼 그리움을 느꼈다. 그러나 당연히 얼굴을 내밀어야 할 죽미는 기념촬영을 할 때까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거기서 저녁 식사까지 마치고 그녀들과 어울려 부두 방파제로 나갔다. 주자의 아버지를 비롯해 낯익은 지방 유지들도 배웅해 주었다. 그보다 ‘남’이 쓸쓸히 생각한 것은 죽미의 일이었다. 배가 흰 연기를 뿜으며 암벽을 떠날 때까지 그녀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멀리 사라지는 등대를 바라보며 갑판에 홀로 선 ‘남’은 죽미를 얄밉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면 자신도 이상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죽미를 만나고 싶은 감정이 되었다. 가능하다면 되돌아가 만나고 싶다. 만난다면 긴 말 하지 않고 곧장 헤어지는 그런 만남을 하고 싶다. 그녀의 격한 성격에 휘말려 가는 자신을 의식하고 이를 부정하려는 마음에서 잠시의 순간이나마 이런 생각을 했다. 죽미의 성격을 누그러뜨리고 참된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은 자기뿐이라고 생각하니 얼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짧아진 담배꽁초를 바다에 던지고 선실로 들어갔다.
‘남’이 상경한 것은 사월 상순이었다. 나뭇가지에 새싹이 움트기 시작하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펴졌다. 입학식 준비로 학교에 나간 그는 서랍 속에 보관되어 있는 편지들을 살펴보다가 무언가 손대서는 안 될 것에 손댄 것처럼 흠칫하였다. 죽미로부터의 편지였다.
“모처럼 와 주신 선생님께 아무런 대접도 못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환영회날 저도 참가하고 싶었으나 주자네 집이었기에 사양했습니다. 이 심정 선생님은 알아주실지요? 저의 좁다란 감정만을 말하는 건 아니어요. 그날 밤 언젠가와 같이 등대의 기둥에 기대어 이여도를 부르면서 멀어져가는 연락선을 바라보며 마음 속으로 배웅을 하였답니다. 요즘 갑자기 오빠가 보고 싶군요. 하다못해 오빠가 사는 곳만이라도 알았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오빠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이 쓰여 있었다. 읽고 나니 등대가 눈 앞에 선하였다. 그리고 죽미의 어릴 때 얼굴, 성인이 된 얼굴, 그것이 사라지자 갑판 위에서 공상했던 일이 회상되었다.
그는 굳게 결심하고 결혼을 신청했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그의 의무이며 그녀를 구하는 길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러한 말을 하여왔다.
“저는 선생님의 부인이 될 수 있는 여자가 못 됩니다. 주자 같은 아가씨를 얻어 주세 요.”
이 말에는 그도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개를 벗어나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맛본 셈이다.
다가서려 하면 콧대 높게 거만해 하는 죽미를 생각하는 자기 자신이 비참해 보였다. 그는 단념하였다. 분산했던 정열을 교육의 일념으로만 정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숙명의 바람은 이상한 것이어서 아주 잊어버렸던 그녀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 한 학기의 시험도 끝나 인천의 바닷가로 임해훈련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던 날 아침이었다. 돌연 죽미가 바람과 같이 나타난 것이다.
더욱이 하숙집에 찾아온 것이다. 일종 교원시험을 보고 싶으니 지도해 달라고 할 뿐, 일전의 편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자도 약혼하여 가을에 식을 올릴 것 같다고 그녀답지 않게 의외의 장광한 말을 늘어놓기도 했다. ‘남’이 놀란 것은 그녀가 전과 달리 명랑해진 점이었다. 윤기 도는 얼굴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나중엔 오빠의 소식을 겨우 알아내게 되었다고 아주 기쁜 듯이 말했다. 죽미가 출발하기 삼주일 전에 오빠로부터 편지가 왔었다고 자세하게 말하였다. 그런 말을 듣고 있으려니 어제까지만 해도 잊었던 죽미를 눈앞에 대하고 호감도 아니고 악감도 아닌 기분으로 말하게 되었다. 그녀의 오빠는 만주에서 자동차 운전수룰 하고 있으며 증일전쟁 후로는 군속으로 화물차(군용)운전을 하다가 지금은 영업회사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이제 저는 가슴을 펴게 되었습니다.”며 말 끝을 맺었다.
‘남’이 하숙하는 집에 마침 빈 방이 있어서 그 방에 있게 하였다. 그날로부터 삼일간 인천에서의 임해훈련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죽미는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방안에 들어서서 깜짝 놀란 것은 책상과 책장의 위치가 달라진 것이었다. 그는 상쾌한 기분을 맛보았다. 그뿐만 아니라 내의들을 깨끗이 세탁하여 정돈해 놓았다. 그는 새삼스럽게 죽미에게서 여자다움을 발견했다.
그 뒷날 ‘남’은 죽미로부터 영화구경 가자는 제의를 받고 저녁 무렵에 종로로 나갔다. 무더운 날이었다. 삼일 동안 인천 바다에서 몸을 태웠던 까닭에 땀이 심하게 흘렀다. 죽미는 선선한 표정으로 앞장서 갔다. 그는 참지 못해 빙수 집으로 들어갔다. 그녀도 따라 들어왔다. 빙수를 한잔 마시니 갈증이 좀 풀리었다. 그런데 죽미는 한잔 더 불러 마셨다. 두잔씩 먹고 일어서려니까 그녀가 한잔 더 주문하는 것이었다. 탁자 위에 빈 빙수잔 여섯 개가 놓이게 되었다. 먹고 나서 그녀는 아주 시원하다는 표정을 하고 카운터에서 계산하는 ‘남’의 등뒤에서 쌩긋 눈짓까지 해 보였다.
영화관을 나온 것은 여덟시경이었다. 아직은 캄캄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은 거의 침묵 속이었지만 죽미는 의식적으로 ‘남’과 어깨를 부딪치며 걸었다. 그리고 때로는 손등을 스치기도 했다. 그녀는 말하고 싶은 무엇을 자존심 때문에 먼저 꺼내지 못해 하는 그런 심사인 것 같았다. 파출소 앞의 분수대가 있는 곳까지 왔을 때,
“당신, 좀 쉬었다 가요.”
라고 말했다.
죽미로부터 “당신”이란 말을 들은 것은 처음이기도 하지만 이건 예삿말이 아니다. 분수대 주위에는 저녁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남녀 한 쌍은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 제삼자들이 자기들을 보고는 부부 한 쌍이라고 생각할 것이 틀림없다고 느껴지니 기분이 이상하였다. 전차 타고 돌아갈까 하다가 담배를 피워 물고 빈자리에 앉았다. 죽미는 급한 숨소리가 뚜렷이 들릴 정도로 가까이 딱 붙어 앉았다.
<9>
하숙집에 돌아와서 ‘남’은 입을 열지 않았다. 죽미는 맞대 앉고 그를 살펴보듯 하였다. 그는 못 본체 담배를 피며 신문을 보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그가 한 마디라도 입을 열면 곧장 모든 말을 할 것만 같이 그의 입가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약 한 시간 동안 이런 상태가 계속되었다. 그가 줄곧 신문만 보고 있으니까 참지 못한 듯 벌떡 일어서는 죽미의 커다란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당신은 아직 결혼을 안 하셨군요.” 말하고는 나가려고 했다. 그 말을 듣자 ‘남’은 아무 것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후닥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손바닥으로 세 차례 강하게 때려 주었다. 졸지에 뺨을 맞은 그녀는 잠시 비틀거리다가 방바닥에 주저앉고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망연실색 엉거주춤한 그는 죽미의 흐느껴 우는 모습에서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어깨 곡선과 하얀 뒷덜미에 나타난 혈관의 맥박을 보았다.
그녀의 성격으로 봐서 반항하여 오리라고 예상하였는데 그녀는 양과 같이 무기력했다. 숨막힌 침묵이 흘렀다. 차라리 반항하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잠시 후 죽미는 가까스로 일어나 눈물 젖은 눈으로 ‘남’을 쳐다보더니 “때리는 건 너무 해요. 야만인이여요.” 내뱉듯 말하고는 그의 방을 나갔다. 그는 죽미가 나가자 어깨가 가벼워진 것 같아 긴 숨을 몰아쉬었다.
열시가 지나고 있었다. 마음 탓인지 무척 덥게 느껴졌다. 수도가 있는 곳에 가서 머리를 식히고 돌아왔다. 냉정해지자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는 여유가 생기었다. 너무 했구나 후회되기도 했다. 죽미가 마음에 걸려 그녀의 방에 다가가 봤다. 안에서 숨죽인 울음소리가 가냘프게 들려왔다. 이불을 펴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아직도 울고 있을까 생각하니 가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그만 두었다. 눈은 점점 밝아져 갔다. 그때 죽미의 방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귀를 기울이니 수돗물 튕기는 소리가 들렸다. 잠들 수 없는 그는 세 번이나 몸을 바꿔 누우며 뒤척거렸다. 기둥시계가 열한시를 쳤다. 지금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호기심이 나서 슬그머니 나가 보았다. 문틈 사이로 책상에 엎드려 있는 죽미의 모습이 보였다. 가엾어 보인다. 들어가서 힘차게 껴안아 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나 야만인이라고 한 신경질적인 얼굴이 생각나서 그대로 되돌아와 버렸다.
뒷날 아침 ‘남’이 잠에서 깬 것은 여덟시였다. 간밤의 일도 잊고 그는 상쾌한 기분이 되었다. ‘남’이 자리에서 일어난 낌새를 차린 하숙집 아주머니가 걱정스런 얼굴을 하고 다가왔다.
“그 아가씨가 아침 일찍 트렁크를 갖고 가 버렸어요.”
아차 하고 그는 그녀의 방에 가보았다. 역시 트렁크가 없었다. 불안해졌다. 설마했다. 책상 위의 종이쪽지에,
“당신의 성난 얼굴을 처음 보았습니다. 교원시험도 그만두고 돌아가겠습니다. 여러모로 신세졌습니다. 호의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고집이 센 저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좋은 부인을 맞아 행복하게 살아주십시오. 죽미.”
라고 쓰여 있는 글을 읽고 그는 그 발로 경성역으로 달려갔다. 목포행 기차는 제일 이른 것이 아홉시 반이었으므로 시간은 충분하였다. 삼등 대합실에는 없었다. 줄 선 곳도 찾았으나 죽미의 모습을 불 수 없었다. 두세 번 왔다 갔다 하며 찾았으나 보지 못하였다.
혹시나 하고 이등대합실을 찾았다.
한 구석에 쪼그리고 앉은 죽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은 애처로웠다. 어제까지의 그 도도하던 자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남’의 얼굴을 보고는 놀란 기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얼굴을 떨구었다.
“죽미, 너 어딜 가냐? 돌아가라.”
그는 남편이 아내에게 하듯 말했다. 그가 먼저 걸어 나갔다. 그녀는 얌전히 뒤 따라 갔다. 무언 중에 모든 것을 사과하는 듯한 자태였다.
트렁크를 들고 그들은 남산의 조선신궁을 향하였다. 신궁 앞에서 서로의 용서를 받자는 마음에서였다. 그녀로부터 트렁크를 건네받을 때 자연스럽게 유순한 얼굴에 띈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그 순간 민요 이여도가 머리를 스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