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분공원길
경주 힐링로드의 1번지는 단연코 고분공원이다. 고분공원은 대릉원과 쪽샘, 노동노서리고분군이 밀집되어 있어 근처에만 가도 신라 천년의 향기가 물씬물씬 풍긴다. 천년의 시간이 봉분에 고스란히 묻혀 어느 곳에서도 맛보기 어려운 이색적인 멋이 넘쳐난다.
검은 포장도로를 사이에 두고 쪽샘과 대릉원이 이웃하고 있다면 우뚝 솟은 봉황대와 노동노서리고분군은 서로 마주하고 있다. 노동노서리고분군에는 발굴 이후 봉분을 복원하지 않아 납작 엎드린 식리총, 금관총, 서봉총, 호우총을 비롯 우뚝 솟은 봉황대와 이름 없는 고분이 즐비하다. 고분공원을 가로지르는 아스팔트도로변에는 최근 지어진 종각이 있다. 종각 안에는 성덕대왕신종을 복제한 신라대종이 자리하고 그 위용을 알리는 울음을 준비하고 있다.
쪽샘과 대릉원 사이길
일제강점기에 고분공원 무덤에서 신라시대의 황금문화가 하나씩 드러나면서 세계인들의 이목이 경주로 집중되고, 고분들이 파헤쳐지기 시작했다. 일본인들과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이들의 손으로 훼손되었던 문화유산들이 해방 이후부터 조금씩 정비되면서 새로운 역사문화유적으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꾸준한 역사문화유적의 문화관광자원화사업이 추진되면서 고분공원은 점차 시민들의 쉼터로 변신하고 있다. 현대인의 문화감성을 자극하면서 점점 다양해지고 있는 정신적 문화욕구를 충족시켜주는 힐링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고분공원의 힐링로드를 가본다.
고분공원
▒ 쪽샘고분공원
동산만한 고분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경주시가지 중심부에 위치한 높은 봉분들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누구나 가져보는 의문일 것이다. 천마총과 황남대총, 금관총, 마총, 검총, 호우총 등등의 고분을 파헤쳐 어느 정도 궁금증은 해소됐다. 금관이 나왔고 말안장과 칼, 그릇, 토기, 귀걸이 등의 장신구들이 출토됐다.
그러나 고분마다 조금씩 다른 구조를 보이면서 발굴된 유물도 각양각색이어서 아직 발굴되지 않은 고분에 대한 궁금증은 오히려 높아지고 신비감 또한 더해지고 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다. 쪽샘 44호 고분 발굴현장을 누구나 볼 수 있게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다. 쪽샘고분군의 걸작이다. 돔형으로 만들어진 전시관은 2층으로 고분의 모형을 본떠 고분 위에 덧씌워서 지었다. 내부에는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고분의 구조와 부장품 등을 설명하는 도표가 정리되어 관람하는 이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쪽샘 발굴 복원현장
쪽샘 고분 체험관
무엇보다 고분을 하나씩 분해하듯 발굴하는 현장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전시관이라 체험학습장으로 더없이 좋다. 휴일이면 신라시대 왕들의 비사는 물론 그들의 사랑 이야기까지 재미난 역사스토리를 엮어 소개하는 문화해설사를 만나는 행운도 준비돼 있다.
실내가 답답하다면 쪽샘 산책길에 나서서 신비한 역사 속으로 빠져보기도 하고, 계절별로 가꾸어진 꽃밭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보는 것 또한 경주를 찾는 재미다. 쪽샘은 4계절 다른 얼굴로 방문객을 반긴다. 봄이면 노란 유채꽃이 피고 보리가 푸르게 자라나 이곳을 찾는 이들을 꿈과 동심의 세계로 이끈다.
쪽샘은 한 때 밤이 낮보다 더 밝았다. 처마 낮은 집들이 이마를 맞대고 골목골목 호마이판을 두들기는 젓가락 장단에 밤을 꼬박 밝히던 시절이 있었다. 길게 이어진 상가에서 분칠한 여인들의 목소리가 밤새워 웃음꽃을 피우며 경주의 경제를 살찌웠다. 사라진 노랫가락과 분주하던 밤 시간들은 그곳의 고분들이 하나 둘 사라졌듯 또 천년신라가 역사의 뒤안길로 넘어갔듯 지금은 세월 속에 묻혔다. 그러나 고분을 복원하고 꽃 단지를 조성해 화려한 시간을 부활시키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역사문화를 되새김질하며 다시 살아나는 문화부흥의 길에서 오늘의 삶을 힐링하며 살찌우게 될 것을 기대한다.
▒ 노동노서리고분군
노동노서리고분군은 시민들의 휴식터전으로 공원이 된지 오래다. 1970년대 까지만 해도 고분 옆으로 민가가 밀집되어 있었다. 무덤이 삶의 터전이었다가 공원으로 조성된 것이다. 아직 완벽하게 쉼터로 변신하지는 않았다. 경주시에서 역사문화관광을 위한 공원으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계획을 마련하고 하나씩 추진하고 있다.
금관총
고분공원은 큰 무덤들이 집중돼 있다. 그것도 100여기 이상의 무덤이 밀집되어 있는 공동묘지인 셈이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무덤이라는 인식은 하지 않고 고향친구랑 놀던 뒷동산쯤으로 생각한다. 정부에서 관광자원화 하려는 목적이 제대로 맞아떨어진 것이다.
봄부터 매 주말마다 봉황대뮤직스퀘어라는 이름으로 공연이 열린다. 시민과 관광객 수 천 명이 고분공원에서 공연을 보고 즐긴다. 지난해부터 종각이 세워지고 국보 성덕대왕신종을 복제한 신라대종이 타종체험에 활용되면서 훌륭한 문화자원이 되고 있다.
고분공원을 찾는 이들은 누구나 납작하게 변해버린 봉분들을 보면서 의문을 가질 것이다. 또 그 이유를 알고 나면 누구나 분노할 것이다. 호우총, 금관총, 서봉총, 식리총 등등의 고분들을 일본인들이 제대로 된 보고서도 남기지 않고 마구잡이로 파헤쳤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조상의 분묘를 중요시해왔다. 그런데 남의 나라 왕족의 무덤을 발굴이라는 미명하에 일본인들은 무작위로 훼손했던 것이다.
최근 소녀상으로 인해 내국인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심화되고 일본과도 국제적인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먼저 선조들의 분묘를 훼손한 사실에 분노해야 하지 않을까? 가끔 납작해진 고분의 흔적들을 보면서 분노게이지가 끝없이 치솟는 건 필자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 신라대종과 문화의 향기
고분공원을 걷는 일은 오래된 역사문화의 향기는 물론 현대적 문화의 향기를 한꺼번에 즐기며 취하게 한다. 계절 따라 옷을 갈아입는 도심 속의 숲에서 뮤직스퀘어와 같은 다양한 문화공연이 전개된다. 운이 맞아떨어진다면 쉽게 만나보기 어려운 신명나는 프로가수들의 열창을 만나볼 수도 있는 곳이 경주의 고분공원이다. 이색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고분에서의 무대는 화려한 조명을 만나 환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또 국제펜대회 이후 이를 기념해 지어진 ‘문정헌’은 책의 향기를 물씬 풍긴다. 카페와 도서관의 기능을 함께 가지고 있어 국민들의 정서를 녹진하게 풀어주는 문화공간이다. 문정헌과 이웃해 고색창연한 기와집으로 지어진 ‘법장사’라는 간판의 건물은 보기에도 심상치 않다. 도심 한가운데 사찰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모습은 일반적인 상식으로 쉽게 적응이 안된다. 이 절의 대웅전으로 쓰이고 있는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헐리기 직전에 뜻있는 경주지역인사가 매입 이전 건축해 명맥을 잇고 있는 유서깊은 건축물이다. 조선시대 경주의 관아로 쓰였던 ‘동헌’ 건물이다. 문화재로 지정 관리되어야 마땅한 문화유산이다.
경주시가 지난해 연말 노동동고분군 봉황대 동남쪽 마주보이는 곳에 성덕대왕신종을 그대로 복제한 ‘신라대종’을 주조해 설치했다. 신라대종은 성덕대왕신종의 크기와 문양, 종명도 똑같게 만들었다. 단지 당시보다 발전한 주조기술로 신라대종이 좀 더 무겁다. 기포없이 촘촘하게 쇳물을 녹여 종의 무게가 더 무거워진 것이다.
신라대종 체험
경주시는 올해 3.1절 기념행사를 신라대종 앞의 고분군에서 개최하고 3천여 명의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최초로 신라대종 타종식을 가졌다. 8~10명씩 짝을 지어 33번의 타종을 울렸다.
성덕대왕신종은 경덕왕이 아버지 성덕대왕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주조했다. 에밀레종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성덕대왕신종이 현대적 기술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은은한 조명과 함께 에밀레종의 전설이 소리없이 녹아나는 고분의 봄밤을 걸어보는 것은 색다른 고도의 분위기를 만끽하게 해준다.
고분공원은 극장과 쇼핑거리가 바로 옆에 조성돼 젊은이들이 밤거리를 활보하는 경주의 문화중심거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고분공원을 둘러보는 길은 거리로 샘해도 만만치 않다. 공원 내부를 둘러보려면 한 두시간만에 간단히 산책할 수도 있지만 찬찬히 즐기면서 모두 돌아보려면 반나절에도 다 보기는 어려울 만큼 범위가 넓다. 그만큼 볼거리, 즐길거리도 충분해 누구에게든 자신있게 힐링로드로 추천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