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나무"의 밀본이란?
혹시 이정명 님의 '뿌리깊은 나무'라는 원작 소설을 보셨나요? 그 원작 소설을 보시면 속이 후련해지실겁니다. 제가 2007년에 봤었는데, 원래 원작소설 내용가운데에는 밀본이란 건 애초에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물론 주인공인 겸사복 강채윤이 세종대왕님에게 복수심을 가지고 대적하려 하는 것 또한 전혀 원작과는 무관한 각색된 내용이라고 할 수 있지요. 아마도 원작과의 차이를 좀 두기 위해서 일부러 각색을 시도한 듯 합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것이 결국 '한글' 즉 훈민정음의 위력입니다. 문자&언어의 힘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위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모든 문명/문화의 발전은 언어&문자로부터 시작이 되며, 그 언어의 질에 따라서 사회/경제의 발전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니까요.
일단 조선이라는 사회는 '양반제도'라는 신분제도가 존재하는 계급신분사회였습니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엄청난 파급효과를 지닌 문자, 그 중에서도 백성들이 익히기 쉬운 문자를 창제하고 반포하여 일반 백성들이 익히고 글을 볼 수 있게 되면, 그들은 곧 지식을 쌓아 농업생산량 및 상업의 촉진을 이룩하게 될 것이고, 이로 말마암아 막대한 부를 쌓음으로써, 훗날 양반들이 일반 백성들을 지배하는 기본 체계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결론에 부딪히게 된 것 입니다.
유학에는 기본적으로 공자의 '정명(定名)'이라는 사상이 있습니다. 그 사상은 군주부터 일반백성들에게 이르기까지 마땅히 자신의 위치에 따른 직분에 충실하여 가지런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인데요, 쉽게말해 왕은 왕노릇을 잘 하고, 신하는 신하노릇을 잘하여 왕을 보필할 것이며, 백성은 그걸 잘 따르는 것이 순리라는 것입니다. 이를 좀 바꿔서 얘기해보자면, 왕과 신하들 아래에서 백성은 마땅히 지배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있는 양반들이 반기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이러한 유교 및 성리학를 조선의 근간으로 삼고 철저하게 세뇌되다시피 한 유림들 역시 마땅히 지배를 받아야 할 뭇 백성들이 지배층인 양반들을 치고 올라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는 한글의 창제와 반포를 그냥 앉아서 좌시할 리 만무하겠지요.
그에 반해, 밀본이 한글창제를 방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조선왕조 500년의 기틀을 정립시켰던 정도전과 그 친족들을 말살시키다시피 한 이씨왕조 조정에 대한 복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한글의 파급효과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아 있었겠지요?)
거기에, 한글창제를 반대하는 양반들과 결탁하여 함께 저항하는 듯한 모습도 더러 보입니다.
다시 간단하게 정리해서 말하자면,
** 한글창제 반대 원인 **
1. 조정대신들(양반) => 수탈대상이었던 백성들의 부(富)축적&신분상승&지배체계의 붕괴 우려
2. 밀본 => 정도전과 그 친족들의 말살에 대한 복수, 유교식 지배체계의 붕괴 우려
이 드라마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포인트는 바로 훈민정음(한글)의 탄생과정과 그것을 창제하려는 세종대왕과 집현전 천재학자들의 의지&의도입니다. 문자라는 것은 사실 옛날 배경으로 말할 것 같으면, 소수특정계급층의 전유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익히기 어렵고 복잡한 '한자'와 같은 문자를 고집함으로써 자신들의 우월함을 과시하였고, 그 점을 이용하여 글을 모르고 지식을 쌓지못한 무지한 백성들을 지배하는 수단으로 이용하였던 것입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한글을 창제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이전에, 제1화 때부터 세종대왕의 아버지인 '태종 이방원'의 마치 공포정치를 방불케하는 듯한 정적(政敵)숙청 모습들을 보여주었는데, 그 숙청과정에서 어린 세종대왕 '이도'가 자신이 조선의 왕임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엄청난 무게의 죄책감에 시달려 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일평생 자신을 괴롭히는 트라우마를 형성하게 되어, 훗날 끝없는 수탈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가엾은 백성들에게 자신에게 남은 온 열정을 쏟아부어'훈민정음(한글)'을 선사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서 원작과는 다르게 앞 부분을 각색하여 보여준 듯 합니다.
백성들이 부유해지고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바랐던... 우리 민족 역사상 최고의 성군으로 추대받는 세종대왕 이도. 세종대왕(世宗大王)의 '세종'(세상 세, 마루 종 : 세상에서 가장 높다 즉, 그 업적이 지극히 높아 지존 이라는 뜻.)이라는 그 시호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한글창제를 비롯하여 군사력증강, 영토확장, 농업&과학기술연구, 백성들을 위한 각종 제도 정비 등등.. 세종대왕의 업적은 어마어마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엾은 백성들을 위하여 온 열정을 바쳐 문자를 만들어 주는 경우는 인류역사상이래 그 유래를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이 드라마를 보다보면.. 세종대왕 이도 역을 맡은 '한석규'씨의 개성있는 연기로 인해 다소 거칠어 보일 수도 있는데, 원작 소설에서는 암살자를 찾는 과정에서 느끼는 긴장감과, 세종대왕의 온화한 카리스마와 아우라가 스토리를 휘감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좀 더 흥미진진하고 진한 감동을 느끼고 싶으시다면, 이정명님의 원작'뿌리깊은 나무'를 직접 읽어보시기를 적극 추천합니다. 세종대왕의 백성들을 향한 끝없는 열정과 애민정신을 느껴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