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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흰돌교회는 대로변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어렵게 찾아갔을 때 바로 앞의 은밀하게 치장한 모텔 건물이 더 눈에 띄었다. 흰돌교회는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2동에 있는 상가건물의 2, 3, 4층을 이용하고 있다. 2층은 예배당이고 3층과 4층에 있는 90여 개의 방에서 장애인, 가출청소년, 가정폭력 피해자, 부도난 사업가 등이 공동체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고시텔이었던 공간을 매입해 교회로 꾸민 것이다.
매주 1200여 명이 2층의 200평 공간에서 예배를 본다. 장판을 깔아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예배당에서 2부까지는 의자를 놓고 예배를 진행한다. 의자를 치운 바닥에서 점심을 먹은 후 3부 예배는 앉아서 진행한다. 공간이 부족해서 운용의 묘를 살린 것이다.
10월 30일, 이재희(李在熙) 목사가 중저음의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로 인도하는 예배에 참석했다. 여성 목사가 이끄는 교회지만 남성 교인이 40%에 이른다. 여자 목회자의 특성을 묻자 이재희 목사는 이렇게 자평했다.
“인간적인 계산을 하지 않고, 영혼을 사랑하는 열정이 뜨겁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처럼 헌신적이고 생각이 없다고 할 정도로 몸을 사리지 않아요.”
중간 체형에 단아한 모습인 이재희 목사는 간단히 딱딱 끊어서 답하는 스타일이다.
흰돌교회 예배는 광주광역시와 전남 순천, 경북 영양, 경남 김해와 통영시 사량도에 있는 지교회(支敎會)로 생중계된다. 캄보디아 프놈펜과 중국 창춘에도 교회를 개척했고, 미국 캘리포니아에도 부지를 매입, 곧 교회를 설립할 예정이다. 지교회 설립은 우연한 기회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교회를 처음 시작했을 때 교인이 별로 없어 시간이 많았어요. 그래서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의 산골짜기로 다니며 전도를 했지요. 연세 많은 분들이 농사일 하는 걸 도와드리고 다리도 주물러드리면서 교회 나가시라고 권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였어요. 동네 교회에 가서 ‘산골짝에 누가 계시니 차를 운행해서 교회 다닐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면 거기까지 차가 못 간다는 겁니다. 그때 마을에 집이 몇 채만 있어도 교회를 세워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무속신앙이 강한 집안에서 자라
성남 흰돌교회는 노숙자, 가출청소년 등을 수용하기 위해 고시텔이었던 공간에 교회를 꾸몄다. |
무속신앙을 강하게 믿는 집안에서 자란 이재희 목사는 21세 때부터 교회에 출석했다.
“제가 6남3녀의 막내예요. 엄마가 45세에 저를 낳았어요. 자녀에게 사랑을 베풀 줄 모르는 어머니와 정신질환을 앓는 오빠, 이단에 빠진 오빠가 있는 힘든 집안이었지요. 우상을 숭배하는 분위기 속에서 우울하게 자라 자살하고 싶을 때가 많았어요.”
성남에 살던 큰언니가 맨 먼저 교회에 발을 들여놓았다.
“큰언니가 우울증에다 무기력증이었어요. 병원에서도 원인을 모른다고 하여 그냥 누워 있었어요. 기가 거의 빠져나가 숨이 넘어가려고 할 때 혼자 교회 다니던 초등학생 딸이 목사님을 모셔왔어요. 목사님이 위로하고 교제하는 가운데 언니가 기적적으로 기운을 차렸어요. 언니의 권유로 저뿐만 아니라 우리 형제가 모두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교회에 나가면서 아예 언니가 있는 성남으로 이사왔다. 29세 때 기도원에서 기도하는데 ‘목회를 하라’는 강한 감동이 왔다고 한다. 그 순간 ‘나 같은 사람이 무슨 목회냐’며 그냥 무시했다.
“갑자기 세 살 난 어린 딸이 소화가 안되더니 혈액순환까지 안되면서 복수도 차 올랐어요. 병원에 가도 안되고 한의원에서 대침까지 맞아도 점점 더 악화됐어요. 할 수 없이 신학교에 가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그러면서 애가 차도를 보였고 그 후에 잘 자라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저 ‘목사를 돕는 심방전도사가 되면 족하겠다’는 생각에서 신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그러던 중 어떤 집회에서 부흥 강사가 그녀를 딱 지목하더니 “목사가 되어야 한다. 각오 단단히 하라”고 말했다.
“우리 형제들이 도덕적·윤리적으로 어긋남이 없이 살려고 노력하는, 굉장히 고지식한 스타일이에요. 저도 언니 오빠들의 영향을 받아 곧이곧대로 행동하며 살았어요. 대쪽 같은 성격이었어요. 당시 제가 존경하고 신뢰했던 목사님께 굉장히 실망하여 상심하고 있던 중이라 ‘목사가 돼라’는 말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그렇게 훌륭한 목사님도 변질되는데 나도 나중에 변질될 게 뻔하다’는 생각에 몹시 괴로운 거예요.”
하지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21일간 음식을 금하고 물만 먹는 금식기도를 했다.
“참목자로 끝까지 책임져 준다면 목회를 하겠다, 그런 기도를 하는데 금식기도가 다 끝나갈 무렵 ‘내가 너에게 많은 양떼를 맡기는데 너에게 오는 양떼는 온전한 자만 오는 게 아니라 육체적인 장애, 정신적인 장애, 오갈 데 없는 사람을 보낼 테니 사랑을 전하라’ 그런 마음이 드는 거예요. 내가 그런 일을 어떻게 감당하나 해서 통곡하며 울었지요.”
남한산성 꼭대기에서 1년 반 기도
신학교 다닐 때인 30세 때 교회를 개척했다. 남편이 성남 상대원에 지은 지하 1층 지상 5층짜리 건물의 40평짜리 지하층 반을 잘라 교회로 꾸민 것이다. 1개 층은 가족들이 살고 4개 층은 전세를 주었다.
“건축업을 하는 남편이 최대한 돈을 들이지 않고 지었지만 전세금을 다 받고도 빚이 7000만원 남더군요. 그때 교인이 딱 2명 있었어요. 그중의 한 분이 제가 빚이 있다는 걸 알고 7000만원을 헌금이라며 갖고 왔어요. 그런데 ‘물욕을 가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고민하다가 받지 않았어요. 곧바로 IMF가 와서 남편 사업이 힘들게 되었고 은행 이자를 못 내자 건물이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처했습니다. 세입자들이 매일 발로 문을 차면서 욕을 하고 난리가 났죠.”
자녀 둘을 어머니에게 맡기고 남편과 따로따로 피신을 했다. 그가 간 곳은 남한산성 엄미리(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계곡 꼭대기였다.
“귀신이 나온다는 무서운 곳에다 텐트를 쳤어요. 남편 사업이 잘 안되고, 이런저런 우환도 있어 성남 근처 산에 자주 가서 기도했기 때문에 무섭지는 않았어요. 낮에 성경 보고 밤에 기도하면서 지냈지요.”
산꼭대기에서 텐트 치고 1년 반을 지내는 동안 그에게 매일 밥을 갖다준 사람이 있었다.
“엄미리 계곡에 음식점들이 많아요. 어느 날 거기 내려갔다가 쌈밥집에서 일하는 50대 장애인 아저씨를 알게 되었어요. 약간 틀어진 불편한 몸으로 마당 쓸고 허드렛일 하면서 한 달에 20만원씩 받는다고 하더군요. 제가 말을 건네면서 따뜻하게 대했더니 그분이 매일 밤 된장국에다 남은 쌈을 싸 갖고 오셨어요. 덕분에 1년 반을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건물 하나 지키려고 사명을 버리고 산속에 숨어 있는 게 웬일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때까지 8번이나 유찰되어 집이 경매에 넘어가지 않았어요. 집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세입자들에게 권리를 다 주었어요. 10원 한 장 안 갖고 빈손으로 나오는데 갈 데가 없는 겁니다.”
주변에서 융통을 하여 100만원을 어렵게 만들었다. 2000년 12월 성남 하대원에 50평 지하상가를 보증금 1000만원, 월세 50만원에 얻어 100만원 선금을 걸었다.
“그때 산에서 장애인 아저씨를 모시고 왔어요. 그분하고 모란시장에서 모셔온 여자 노숙자들까지 12명으로 교회를 시작했어요.”
모란 전철역에 갔다가 임신한 모녀의 사정을 듣고 너무 기가 막혀 여성 노숙자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21세 된 딸하고 40대 엄마가 둘 다 임신을 했는데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거예요. 남자들이 5000원, 1만원씩 쥐여주는 돈 받으려다 그렇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런 분들을 모시고 오면 또 도망가고 그랬어요. 남자와 이불 속에 누워 있는 분을 모시고 온 적도 있어요.”
노숙자들은 잠시 있다가 다시 나갔지만 올 때마다 밥을 해 먹이고 용돈을 달라고 하면 군말 없이 주면서 사랑을 베풀었다. 매일 예배를 하자 찬송 소리를 듣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지하교회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노숙자, 정신지체장애인 그런 분들뿐이었죠. 장애인들은 사람들을 좋아해서 누가 오면 다가가서 만지고 웃고 그럽니다. 반가워서 그러는 건데 다들 질색하며 가버렸어요. 냄새 나서 싫다는 분들도 많았지요.”
그런 가운데서도 3년 만에 교인이 300명으로 늘었다. 100평짜리 공간으로 옮기고 100평 공간을 하나 더 마련하여 장애인들과 노숙자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했다. 일반 교인들이 흰돌교회 분위기에 익숙해지는데 5년 정도 걸렸다고 한다.
“장애인 사역 안 하면 안 되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어요. 장애인을 다 내보내면 교회를 지어 주겠다고 제안한 분도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 교인들은 저의 목회 철학을 인정하고 신뢰하는 분들입니다. 이제는 장애인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다 어울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장애인과 노숙자와 동고동락한 5년 동안 빚을 1억원이나 졌다고 한다.
중국 창춘과 캄보디아 프놈펜에도 지교회를 설립, 해외 선교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
가정 같은 교회
교인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2005년에 현재의 태평동으로 이전했다. 장애인들과 불우한 사람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을 찾다가 모텔 앞에 있는 고시텔을 선택한 것이다. 그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장애인들을 선동해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이 있었어요. 갑자기 교회에 등록해서는 말도 안되는 문제를 제기해 장애인들을 선동하고, 장애인들에게 손가락 지장을 받아서 고발한다면서 협박하고, 그렇게 해서 돈을 뜯어간 사람들이 있었어요.”
형편이 어렵다고 하소연을 하여 도와주었는데 알고 보니 사기꾼이었던 일도 여러 차례 있었다. 목회 시작한 지 6년 쯤 지나서야 겨우 속이는 사람을 분별하게 되었지만 요즘도 감쪽같이 속이는 사람들이 있다. 아내가 피신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폭력남편이 “남의 가정을 왜 파괴시키냐”면서 칼을 휘두르고, 불 지른다며 석유통을 흔드는 일도 다반사였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 조부모와 살던 아이들, 부모가 감당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흰돌교회가 맡고 있다.
“학교에 며칠 나가다가 도망가면 찾아서 다시 데리고 오길 반복했더니 학교에서 흰돌교회를 다 알아요.”
청소년들은 이재희 목사가 개인적으로 돕고 있는지라 숫자를 밝히려고 하지 않았다. 늘 5, 6명을 데리고 있는데 지금까지 도운 아이가 수십 명에 이른다. 함께 살다가 결혼한 사람도 많다고 한다.
일요일은 물론 평일에도 교회에 와서 밥을 먹는 교인이 많다고 한다.
“여전도회에서 늘 식사를 준비해요. 부도난 사람들, 갑자기 생활이 어려워진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생활합니다. 우리 교인들은 실패를 부끄러워하지 않아요. 그렇게 살다가 재기해서 나간 사람이 많아요.”
일절 외부의 지원 없이 복지사업을 하지만 예산이 넉넉한 건 아니라고 한다.
“매달 들어오는 것에 맞춰서 살아요. 예산 따지면 아무 것도 못합니다. 처음에는 예산을 짜고 그에 맞춰 집행을 했는데 그렇게 하니 머리가 아파요.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모자란 적이 없어요. 저는 재정에 관해서는 일절 모릅니다. 재정위원들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구제사업을 많이 하면서도 매 주일 헌금의 10분의 1은 선교하는 데 사용한다.
최근 5년 새 교세 4배 이상 신장
이재희 목사는 정말 힘들었던 일은 음해성 시기와 질투라고 했다. 교세가 커지자 여기저기서 요구하는 게 많았다. 그걸 거절하자 누군가 제보를 하여 ‘이단이다, 은사 중심이다’라면서 시비를 거는 기사가 나오곤 했다.
“특별집회를 할 때 정신지체장애인이 괴성을 지르거나 쓰러지는 일이 있었는데, 그걸 이상하다고 쓴 겁니다.”
신학교 분교를 운영하라고 권유한 인사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잡지에 제보하여 좋지 않은 기사가 난 적도 있다. 성남지역에 여성 목회자의 숫자가 많지만 대개 교인이 100명을 넘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흰돌교회가 성장하자 주목 아닌 주목을 받았던 것이다.
“이쪽으로 교회를 옮기고 얼마 되지 않아 이런저런 문제로 참 힘들었습니다. 제가 여자 목사여서 더 힘든 점이 있었습니다. 그때 이후 교단에서 탈퇴하고 일절 교류를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저런 구설수가 흰돌교회와 이재희 목사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2006년 이후 5년 사이에 흰돌교회의 교세(敎勢)가 4배 이상 커졌다.
이재희 목사는 흰돌교회 성장비결로 뜨거운 예배와 철저한 성경교육을 꼽았다. 일요일 3부 열린예배와 수요일·금요일 예배는 마치는 시간이 따로 없다.
“열린예배 때 누구나 나와서 찬양을 부르는 시간이 있는데 2시간 동안 계속하기도 합니다. 수요일과 금요일에 3시간씩 예배드리는 경우도 있어요. 그 시간에 성경을 충분히 가르칩니다. 다들 바쁘시니 기도원에 가기 힘들잖아요. 기도원처럼 뜨거운 분위기의 은혜집회가 교인들의 갈증을 풀어 주었고, 그래서 교인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배석한 강미애 기획행정국장이 흰돌교회의 성장비결을 부연 설명했다.
“이재희 목사님이 사는 모습이 성장비결이라고 봅니다. 목사님은 강단에서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후 스스로가 삶 속에서 그 말씀을 실천하시거든요. 교인들이 눈으로 확인하기 때문에 교회가 부흥하는 겁니다.”
강미애 국장은 교인 개개인이 이재희 목사의 사랑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목사님이 부교역자 30여 명에게 일대일 수준별 학습을 시켜 주시고 나이 드신 남자 성도들까지 일일이 챙기십니다. 전 교인의 사정을 다 파악하여 엄마처럼 다 품어 주십니다. 9남매의 막내면서 부모님을 모시고, 형제들을 보살피면서 섬김이 몸에 밴 것 같습니다.”
인터넷 방송사 설립
지난 3월 이재희 목사는 여성 최초로 국민생활체육전국태권도연합회 회장에 취임했다. |
이재희 목사가 가장 주목하는 세대는 청소년과 청년이다. 2001년에 설립한 리폼드신학연구원의 학부 과정과 신학대학원 과정에 현재 90여 명이 다니고 있다. 그동안 이 학교에서 공부한 학생이 1000여 명에 이른다. 장차 신학대학교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흰돌교회는 흰돌워십댄싱선교단, 흰돌병원선교단, 흰돌태권도선교단을 설립해 청년들이 다양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흰돌워십댄싱선교단은 현대무용과 고전무용, 힙합재즈를 연마하여 국내외 집회 때 공연을 한다. 흰돌병원선교단은 국내외에서 의료선교를 펼쳐 이웃사랑을 교회 밖까지 확장하고 있다.
흰돌태권도선교단은 쌍절곤, 호신술, 격파, 태권재즈, 태권무 등 화려한 기술로 10여 년 동안 국내외에서 많은 시범을 보였다. 특히 해외에서 인기가 높다. 태권도선교단의 유명세 덕분인지 올 3월 국민생활체육전국태권도연합회에서 이재희 목사를 회장으로 위촉했다.
“그동안 정·재계 인사들이 회장을 맡았다는데, 여자가 맡은 것도 처음이고 목사가 맡은 것도 처음이라고 합니다. 다들 제가 태권도를 하는 줄 아는데 해 본 적이 없어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대회에 참석하면 되니 목회에 지장은 없습니다. 기독교와 목회자들에 대한 불신이 많은 때라 섬기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흰돌교회는 올해 초 인터넷방송인 CLTV를 설립했다. 이재희 목사와 오현준 목사(기독교복음방송 방송설교팀장)가 공동대표를 맡았다. 기존의 기독교 TV가 유명 목사들의 설교만 방영하는 것과 달리 CLTV는 미자립교회의 설교 방송을 송출해 환영받고 있다. 2013년에 케이블TV로도 방송할 예정이다.
흰돌교회는 1년에 두 차례 청소년과 청년들을 위한 대형 집회를 개최한다. 이때 혼전순결 서약식에 동참하는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은반지 끼워 주기’ 특별의식을 진행한다.
“많은 청소년과 청년들이 혼전순결서약을 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청소년 문제가 심각합니다. 대개 청소년은 부교역자들이 담당하지만 저는 직접 청년과 청소년들을 맡고 있습니다. 다음 시대의 주역들이기 때문이죠. 대안학교를 세워 청소년 교육에 더욱 박차를 가하려고 합니다.”
이재희 목사는 소외된 이웃을 돕는 사역도 체계적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했다.
“요양원 건립 방침도 세워 놓았습니다. 요양원에 갔다가 그 안에서 외면당하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이 아팠어요. 우리 교회에 오신 분들이 흰돌교회 장애인들은 장애인 같아 보이지 않는다고 해요. 같이 어울려 지내기 때문이죠. 한가족처럼 지내는 그런 요양원을 마련하고 싶습니다.”
내년 말 새 성전 완공
내년 12월 분당구 백현동에 완공될 흰돌교회 새 성전 조감도. |
흰돌교회의 다양한 활동 내역이 알려지면서 2007년에 《경향신문》이 제정하는 ‘대한민국 미래경영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재희 목사는 현재 성남시기독교연합회 부회장이다. 회원교회들과 ‘사랑마루’라는 단체를 도우며 연합구제사역을 펼치고 있다. 초교파 선교단체인 HMIM(국제회복선교협회) 대표도 맡아 목회자와 평신도지도자, 실업인들이 복음 전파에 나설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흰돌교회 목회와 지교회, 신학원 운영으로 늘 바쁜 이재희 목사를 부르는 곳이 많다. 자체 대형집회가 많아 다 응하지 못하지만 작은 교회와 어려운 교회의 요청은 어떻게든 수용하려고 애쓴다.
지난 10월 31일 흰돌교회는 새 성전 착공 감사예배를 드렸다. 현재 예배 장소가 너무 좁아 새로 교회 건축을 하고자 물색하는 과정에서 65% 정도 짓다가 중단된 교회 건물을 매입했다. 분당구 백현동에 위치한 새 성전은 건평이 6270㎡(1900평)로 1200명이 동시에 예배를 볼 수 있는 규모이다. 2012년 12월 말에 완공할 예정이다.
이재희 목사는 무속신앙이 강한 집안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예수 믿고부터 하루도 편할 날이 없을 만큼 영적으로 힘들었어요. 역경을 이기기 위해 산에 다니면서 기도했고 사람들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았지만, 그런 훈련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더 보람 있고 더 열심히 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장애인들과 노숙자들과 함께 생활하느라 교회에서 잠깐씩 눈을 붙이며 쪽잠을 잤다. 집에 들어가서 잠자게 된 게 이제 4년밖에 안된다. 부교역자들이 늘어 일을 분담하게 된 덕분이다. 아직도 힘든 일이 많지만 청년들과 함께할 미래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출처: 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_contentA.asp?nNewsNumb=201112100052&ctcd=E&c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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