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56년(1971) 개교반백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소태산대종사가 대각을 이룬 영산 노루목 대각터에 세워졌다.
백제불교 도래지이자 원불교 탄생지인 전남 영광은 불연이 깊고 신령한 빛이 어려 있는 땅이다. 전남 영광군 백수읍 길룡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신종교인 원불교 영산성지가 자리잡은 곳으로, 앞으로는 갯벌을 간척한 정관평야가 펼쳐저 있으며, 구인봉으로 사방이 둘러싸여 아늑한 느낌을 준다. 영산성지는 원불교의 교조인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의 탄생지이자 그가 깨달음을 이루고 처음으로 교화를 행한 곳이다. 영광은 또한 백제에 불교가 전래될 때 동진의 마라난타가 해로를 타고 법성에 입항하여 불갑사를 세웠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영산이란 이름은 불교의 교조인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중요한 설법을 폈던 인도의 영축산에서 따온 것. 1974년(원기 59년) 3월 30일 중앙교의회 의결에 의해 영산성지사업회가 발족돼 영산성지의 장엄 및 각종 사업을 펼쳐 지금 영산성지의 기반을 닦았다. 영산성지에 산재돼 있는 사적으로는 소태산 대종사의 생가, 대종사가 대각이전 가장 오래 살았던 구호동 집터, 산신령을 만나려고 기도드렸던 삼밭재 마당바위, 한 나절이나 서서 입정에 들었다는 선진포 입정포, 대각을 이룬 노루목 대각지, 처음으로 법어를 설한 이씨제각, 첫 교당인 구간도실터, 9인 제자들의 정성이 깃든 구인 기도봉 등이 있으며, 현재 원불교 중앙총부 영산사무소와 원불교영산대학, 영산성지고등학교 등이 들어 서 있다. 영산성지를 순례하면 한눈에 박중빈 대종사의 발자취와 생애를 더듬어 볼 수 있어 원불교 교도 및 일반인들의 순례, 참배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평범한 성자'로 불려지고 있는 박중빈(朴重彬, 1891∼1943년 6월) 대종사는 1891년 5월 5일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 영촌마을에서 아버지 성삼(成三)과 어머니 유정천(劉定天) 사이의 평범한 시골 가정에서 3남으로 태어났다. 자는 처화(處化), 호는 소태산(少太山). 어릴 때부터 영민하고 신의가 있는 탐구적인 소년이었다고 한다. 소태산 대종사의 생가는 네칸 초가집으로, 그는 이곳에서 13세까지 산 뒤 인근 구호동으로 이사했다. 생가는 1981년(원기 66년) 영산 성지사업회가 대종사가 이 땅에 오신지 90년이 되던 해를 기념해 고증을 거쳐 복원했다. 대종사는 11세때 시향제(時享祭)에 참여했다가 산신의 권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의문을 풀어줄 대상인 산신을 만나기 위해 '삼밭재 마당바위'에서 4년동안 기도를 올렸다. 기도를 올렸다는 삼밭재 마당바위는 생가터에서 4km 떨어진 구수산 중턱에 있으며, 가는 길은 생가터에서 독다리를 지나 구호동 뒤 골짜기를 타고 개암골로 들어가면 큰 정자나무 샘터에 다다른다. 마당바위는 정자나무 옆 샘터 근처의 비교적 양지 바르고 아늑한 곳을 가르킨다. 그때 그곳에서 올린 염원이 이후 대종사의 종교적 체험의 근간이 되었다. 삼밭재에는 현재 원불교 기념건물이 세워져 있어 많은 교도들이 소태산 대종사의 수행체험을 본받기 위해 찾고 있다. 15세 때 인근 영광군 군서면 마읍리의 양하운(梁夏雲)과 혼인하고, 이듬해 정원에 신년 인사차 처가에 갔다가 고대소설 '조웅전(趙雄傳)' 등에 나오는 도사 이야기를 듣고는, 그를 만나기 위해 20세까지 다시 정성을 쌓는다. 20세 되던 해에는 부친상을 당하고 구도의 노력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장차 이 일을 어찌할꼬?'라는 화두로 골몰한다. 그러면서 그는 더욱 수행에만 정진해 하루 종일 선정에 잠기는 일이 많았다. 하루는 법성장에 간다고 나룻배를 타기위해 선진포에 나갔다가 길거리에서 그대로 선정에 들어버렸다. 한나절이 지나 장에서 돌아오는 마을 사람들이 그를 발견하고는 정신을 차리게 한 후 집으로 데리고 왔다고 한다. 이같은 일화가 전해오는 선진포 입정터는 영산 출장소에서 산길로 와탄천을 따라 1km쯤 가면 바위에 선진포 입정터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 그 자리를 표시하고 있다. 소태산 대종사는 25세 때인 1916년 4월 28일 그때 살고있던 길룡리 초입의 노루목에 자리잡은 초가에서 마침내 깨달음을 이루었다. 이곳이 바로 영산성지의 입구에 해당하는 노루목의 대각터로 지금은 '만고일월'이라고 새겨진 커다란 대각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앞으로는 잔디광장이 조성돼 있다. 노루목은 영산출장소에서 남서쪽으로 약 5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으로 중앙봉 아래에 있는 조그마한 고개를 말한다. 마치 노루가 엎드려 있는 형상의 목부분에 해당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노루목이라 불린다. 만고일월비는 다섯단의 기단 위에 2.1m 높이의 화강암 비신(碑身)을 세우고, 앞면에는 '대종사님의 대도정법이 태양과 달처럼 무궁한 세월에 다함이 없이 비춰 모든 중생을 고해에서 낙원으로 구원하고 교단의 무한한 발전을 기원'하는 뜻의 강암 송성용 선생의 글씨로 '만고일월(萬古日月)'이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는 이 터를 기리는 내력이 적혀있다. 원불교는 이 날을 교단의 기원으로 삼아 '대각개교절'로 기리고 있다. 대각개교절은 원불교의 최대 기념일로 해마다 이 때가 되면 전국적으로 각종 기념행사가 열린다. 대종사는 당시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표어와 함께, 물질문명에 끌려가는 인류의 정신구원을 위한 기치를 내걸고 종교운동을 시작했다. 대종사는 깨달음을 얻은 후 마을의 이씨 제각에서 첫 설법을 하고 교화를 시작했다. 대종사는 불과 몇 달만에 그를 따르는 40여명의 신자들을 얻었다. 그는 이중에서 특히 신심이 굳고 성실한 9명을 제자로 삼아 함께 교화를 시작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소태산 대종사를 보좌해서 원불교가 토대를 다지고 발전해 가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이어 교단 창립과 사회개혁의 첫 사업으로 그를 따르는 9인 제자와 함께 1917년 저축조합을 세우고 허례폐지-미신타파-금주단연-근검저축 운동을 펼쳤으며, 거기서 저축된 자금으로 1918년 간척사업을 착수했다. 1918년 3월부터 1년간에 걸친 공사 끝에 마침내 2만 6천평의 농토를 간척했다. 원불교는 이를 물질-정신 양 측면에서 원불교의 가능성을 보여준 커다른 사업으로 꼽고 있다. 영산출장소 앞으로 펼쳐져 있는 '정관평'이라 불리는 이 간척지는 1957년과 1975년 두 차례에 걸쳐 확장돼 현재는 8만여 평에 이른다. 원불교의 교리인 정신과 육신을 아울러 건전하고 튼튼하게 한다는 영육쌍전(靈肉雙全), 종교수양과 일상생활의 조화 발전을 의미하는 이사병행(理事竝行)의 실천을 말해준다. 구산도실은 영산출장소에서 서쪽으로 400m 거리에 있는 원불교 교단 최초의 집으로 간석지 개척공사가 한참 진행되던중 대종사가 제자들과 함께 수련과 집회를 하기 위해 마련한 집이다. 교당의 효시가 되는 구간도실은 1923년(원기 8년) 영산출장소로 원형을 뜯어 옮겨 '영산원'이란 이름으로 보존돼 있으며, 옥녀봉 밑에는 그 자리에 터만 기념 조성물로 남아있다. 방언공사가 끝나갈 무렵 전국은 3.1독립만세 운동의 함성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소태산 대종사는 제자들에게 '이는 개벽을 재촉하는 소리이니 어서 방언을 마치고 기도하자'고 말했다. 소태산 대종사는 제자들에게 각각 인근 봉우리를 하나씩 정해주고 그곳에서 기도하도록 한 곳이 영산성지를 둘러싸고 있는 구인봉이다. 구인봉에서 약 4월간 기도를 한 다음 구간도실에 모인 제자들은 소태산 대종사의 지시에 따라 '사무여한(死無餘恨)'이라는 문서에 맨손으로 도장을 찍었다. 그런데 문서에는 각자의 이름밑에 손도작이 핏빛으로 선연히 나타났다. 원불교에서는 이를 '백지혈인(白指血印)'이라 하여 이를 구인제자의 정성이 지극하여 천지신명이 감응해 새회상창립의 법계 인증을 얻은 것이라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영산성지에는 1927년 원불교의 교역자 양성기관인 영산학원이 설립됨으로써 더욱 의미를 더했다. 영산학원은 영산선원(1964년), 영산원불교학교(1985년), 영산원불교대학교(1997년)로 발전하면서 익산의 원광대학교와 함께 원불교의 양대 교육기관으로 발전해 수많은 원불교 교역자들을 배출했다. 영산원불교대학교는 1995년 5월 4만평 부지에 연건평 2천평에 이르는 현대식 캠퍼스로 재조성되었으며, 1997년 4년제 대학으로 승격되면서 종립대학으로 위상을 굳혔다. 이곳에서는 교수와 학생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예비교역자로서의 전문교육을 받고 있다.
만 고 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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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靈光 원문보기 글쓴이: 연흥사불갑사
첫댓글 어찌 그것을 영원이라 하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