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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공동번역성서는 무엇인가 -위키백과
1.개요
공동번역성서(共同飜譯聖書)는 대한민국의 가톨릭과 개신교가 교회 일치 운동의 일환으로 1977년 부활절에 편찬한 성경의 한국어 역본으로, 한국 최초로 가톨릭과 개신교가 공동으로 작업한 성경 번역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톨릭용과 개신교용으로 분리해서 간행하면서 의미가 축소되기 시작했으며, 개신교계에서의 사용률이 매우 적었다.
본래 가톨릭과 개신교에서 쓰던 2개의 성경이 수록된 내용이 조금씩 다르고 번역의 차이도 크기 때문에 가톨릭과 개신교가 서로의 성경을 통합, 공통으로 사용하는 데 합의하고 성경의 새번역 작업에 들어가 통합판 성경, 즉 공동번역성서가 1977년 부활절을 기해 출간되었다. 공동번역은 축자적(逐字的) 번역이나 형식적인 일치를 피하고 내용의 동등성을 취함으로써 독자들이 원문으로 읽을 때와 마찬가지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의역된 것이 특징으로, 특히 난해한 한자어와 권위적인 문어체 표현을 지양하고 성경 말씀을 우리말로 이해하기 쉽게 살려서 표현한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윤문 작업에 가톨릭, 개신교 문인들도 여럿 참여하여 번역문을 돌려 읽고 문장을 다듬는 등 적지 않게 기여했다.
가톨릭에서는 새번역 성경이 나왔음에도 공동번역성서가 더 잘 읽힌다고 평하는 일부 신자들이 있을 정도. 어쨌거나 한국어 공인 역본 중에 가장 쉽게 읽히는 역본인 셈. 다만 '~하는 것이다'는 문체가 좀 남발된 것이 옥에 티이다. 수려한 문체에 신경쓰다 보니 너무 의역이 되어 있다는 비판도 있다. 현대어로 번역된 대표적인 공인역본 중 하나이지만 문체가 1970년대 문체라는 아주 사소한 문제점은 있다.
공동번역성서가 출간될 당시 가톨릭은 물론 개신교 측에서도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였고, 초판 4만 부가 1달 만에 매진되는 등 신자들의 반응 역시 좋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개신교 교단들은 공동번역이 자유주의 신학의 관점을 반영했다고 주장하면서 채택을 거부하였고, 이에 따라 공동번역은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에서만 사용되었다.
2.역사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 쇄신과 교회 일치의 정신을 바탕으로 세계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에 교회일치운동이 일어나고, 교황청 성서위원회와 개신교 측의 세계 성서공회연합회 사이에 성서 공동 번역에 대한 합의(Guiding Principles)가 이루어져 성서를 원전(原典)으로부터 새롭게 공역(共譯)할 것을 결의하였다.
1968년 1월 한국 가톨릭과 개신교의 대표로 구성된 ‘성서 번역 공동위원회’가 만들어졌다.
1971년 부활절에 처음으로 공동번역성서 신약성서가 나왔다.
1977년 부활절에 구약성서 본문이 번역된 것을 간행하였다.
1999년 달라진 한글 맞춤법을 반영하고 일부 오역을 수정하는 개정이 이루어졌다. 야훼 용례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3.특징
1)번역상의 특징
구약은 Masoretic Text in Biblia Hebraica(3rd edition 1937) - edited by Rudolph Kittel, 신약은, The Greek New Testament (1st edition 1966) - United Bible Societies을 번역 원전으로 사용하였다. 다만 일부 구절의 경우 70인역본을 기준으로 번역했다는 주석이 종종 보인다.
읽기 편해진 문체
아동문학가인 이현주 목사와 시인인 문익환 목사가 참여했으므로 시를 읽는 듯한 뛰어난 문체와 정승, 거뭇, 잠뱅이 등 한국어 어휘들이 사용됨으로써 한국어의 아름다움이 묘사되었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다. 반면, 읽기는 편해졌으나 말씀의 권위가 가벼워진 느낌이 든다는 보수적인 비평도 존재한다.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13장의 개역개정과 공동번역을 비교해보자.
개역개정은 90년대 후반에 개역한글을 수정한 역본임에도 불구하고 옛스러운 문체와 단어, 축약이 남아있다. 이후의 개역개정판은 개역 한글의 저작권 만료 문제 + 표준새번역의 실패로 인해 대한성서공회가 일종의 임시방편으로 개역한글을 최소한으로 수정해 만든 것이기 때문. 그러나 공동번역은 어렵거나 난해한 단어를 풀어 써 서민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문체에 녹여내었고, 이 책이 서간, 즉 코린토스 지방 교회의 자매와 형제들에게 보내는 편지임을 반영하여 '하십시오체'로 번역하였다. 공동번역의 다른 서간들도 '하십시오체'로 번역하였다. 비록 일각에서는 문체상의 문제점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표준새번역에 비해서 번역의 질과 어휘의 선정은 보수적인 목사들도 공동번역이 훨씬 좋다는 평이 많다.
적절한 의역
그들은 지혜롭다고 자처하였지만 바보가 되었습니다. (가톨릭 새번역 성겅)
인간은 스스로 똑똑한 체 하지만 실상은 어리석습니다. (공동번역성서)
공동번역의 또다른 특징으로는 적절한 의역을 들 수 있다. 직역 위주인 가톨릭 새번역 성경과 비교하면 이러한 의역이 눈에 띄는데, 위의 로마서 1장 22절을 보면 그것을 확연히 알 수 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겨 본 적이 없다. (공동번역)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 (개신교 새번역)
위의 예처럼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로 유명한 요한복음서 1장 5절의 경우, 다수의 성경이 한국 공동번역처럼 번역하지는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문법적으로나 의미적으로, 새번역보다는 공동번역이 자연스러운 면이 있기 때문이다.
사라가 두려운 나머지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 하면서 부인하자, 그분께서 “아니다. 너는 웃었다.” 하고 말씀하셨다. (가톨릭 새성경)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개역개정)
그러자 사라는 겁이 나서 웃지 않았다고 잡아뗐으나, 야훼께서는 "아니다. 너는 분명히 웃었다." 하시며 꾸짖으셨다. (공동번역)
위의 예처럼 번역들이 다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유심히 보면 미묘한 차이를 알 수 있다. 앞 단락을 간접화법으로 번역한 것은 공동번역 뿐이고, 뒷 단락에서 '꾸짖으셨다'고 한 것 역시 공동번역 뿐이다. 그런데, 앞 단락을 간접화법으로 바꾼 것은 과잉친절이고(오히려 뒷 단락과 호응이 줄어들고, 하느님,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라는 뉘앙스가 훼손되었다), 뒷 단락의 경우, 이를테면 번역자가 독자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겨 두는 대신 자신의 해석을 강요하는 셈이다. '아니다. 너는 웃었다.'가 꾸짖음이라는 해석이 정말 맞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런 식의 번역은 '중립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일부러 의역을 한 역본들을 논외로 하면, 이런 예를 무수히 많이 찾아볼 수 있다.
2)간행상의 특징
대한성서공회에서 이 성서를 간행할 적에 개신교용, 가톨릭용으로 분리해서 간행하였고, 개신교에서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은 제2경전을 수록한 '외경 포함본'을 별도로 발매하기도 했다. 그리고 1971년에 먼저 발행된 신약성경에 관련 그림, 사진 등을 추가하여 "현대인을 위한 하느님의 말씀"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간행되었던 공동번역 판본은 다음과 같다.
무인 - 개신교용.
가톨릭용 - 개신교에서 인정하지 않는 구약 부분을 '제2경전'으로 수록했다.
가톨릭용 개정판 - 1999년에 나온 개정판으로, 초판에 제2경전으로 별도 수록된 부분을 불가타역 순서에 따라 재배치하고 1989년에 개정된 한글 맞춤법 및 표준어 규정을 반영하여 최소한으로 수정. 현재까지 발간 중인 공동번역성서책은 이쪽이다.
외경 포함 - 가톨릭에서는 정경으로 인정되나 개신교에서는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는 책들을 신구약 사이에 '외경'으로 수록한 판본. 개신교인들 중 제2경전에 관심이 있거나 성서학, 신구약 중간사를 연구하는 신학, 기독교학 연구자들이 주로 찾았다.
성공회 성당 성물방에서 판매되고 있는 공동번역성서는 내용은 기본적으론 인터넷 서점 등에서 파는 그 가톨릭용 공동번역성서와 동일하지만 목차에서 외경부분에 따로 표시가 되어 있다. 또한, 성공회 색인이 파여 있고, 커버가 비닐이 아닌 인조가죽이라는 점도 다르다. 성공회 서울대성당 내 대성당 의자에 비치된 성경은 가톨릭용 1999년 개정판이 아닌 가톨릭용 혹은 외경 포함본 초판(1986년에 조판된 버전)이다.
제2경전(외경)이 포함되지 않고 편집된 개신교용 공동번역성서는 대한성공회 등에서 사용했었지만, 현재는 개신교용이 사실상 절판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성공회 서울대성당에 비치된 공동번역성서책들은 죄다 가톨릭 버전 혹은 외경 포함본이다. 제2경전이 포함되어 편집된 가톨릭용 공동번역성서 구판은 절판되었으나, 1999년에 출간된 가톨릭용 개정판은 아직도 대한성서공회에서 소량으로 출판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출판되고 있는 것은 중형 판본 뿐이다. 물론 2005년 천주교 새번역 성경 발간 및 공식 채택 이후로 가톨릭 계열 출판사들의 공동번역성서는 이미 모두 절판되었다. 현재 공동번역성서를 구할 수 있는 곳은 Yes24, 인터넷교보문고, 알라딘과 같은 주요 인터넷 서점과 대한성서공회 직영점, 성공회 성당 내 성물방 정도 뿐이다. 2018년 12월 기준으로는 인터넷 서점 물량이 매진되었지만 대한성서공회 측에서 또 찍어내어 2018년 2월말부터 다시 구입 가능. 다만 기존의 대형 판본은 절판되었고, 현재 판매 중인 것은 2018년에 다시 디자인한 중형 판본.교보문고
1977년 초판본의 경우 글자의 가로 폭이 크고 무단으로 편집되어 있어 책의 부피가 크고 페이지 수가 많았는데, 1977년판 가톨릭용 공동번역은 2,400 페이지가 넘었고 개신교용 역시 2,100 페이지에 달해 개역한글판 1,700여 페이지보다 많았다. 이후 1999년에 나온 가톨릭용 개정판은 글자의 가로 폭이 줄고 2단으로 편집되면서 다이어트어느 정도 얇아졌다.
공동번역의 구약성서 제2경전/외경 부분은 1977년 초판에서 구약과 신약 사이에 제2경전(혹은 외경) 파트로 별도 수록되었으나, 1999년 가톨릭용 개정판에서는 노바 불가타의 구약 목록에 따라 구약으로 통합 재편성되었고, 현대의 표준어 맞춤법에 따라 일부가 수정되었다(예: ~읍니다 → ~습니다).
4.어디에서 사용되고 있나
처음 나올 때부터 대부분의 개신교 교단은 이 성서를 표준 성경으로 채택하는데 소극적이었다. 당시에 개신교와 가톨릭이 관습적으로 써오던 단어가 달랐기 때문이다. 심지어 당시에 모 목사는 번역에 참여한 목사들을 비판하는 글을 쓰기도 하였다.
물론 가톨릭에서도 불만이 있었다. 가톨릭용에 있는 구약 중 제2경전은 라틴어 노바 불가타(Nova Vulgata) 순서대로 배열된 게 아니라 따로 빠져 카테고리가 뒤죽박죽이었던 것이다. 특히 이는 가톨릭 버전의 구성이 복잡한 에스테르서의 독서에 문제가 되었다. 또한, 시편의 번역을 만족스럽지 않게 생각해서, 공동번역성서의 출판 후에도 시편만은 기존의 최민순 사도 요한 신부 역본을 썼다. 후에 개정판(개정된 표준어 맞춤법이 적용되었다)이 나오면서 순서를 라틴어 불가타순으로 맞추었지만, 결국 2005년부터 한국 가톨릭에서 자체적으로 새로 번역한 '성경'을 표준 성경으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한국 기독교에서 공식적으로 공동번역성서를 표준 성서로 채택하는 교단은 성공회와 정교회뿐이다. 또한 개신교 중 교회 일치 운동에 참여하는 개교회들이 공동번역성서를 예배용 성경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대한성공회와 한국정교회의 신학자/성직자 이외에도 일부 진보적 성향의 개신교 신학자/목회자들 가운데에서 성경 구절을 인용할 때 공동번역을 인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교회 일치를 강조해야 하는 문서에서 의도적으로 공동번역성서를 선택하여 인용하는 경우가 흔하다.
가톨릭과 개신교가 함께 만들었고, 성공회와 정교회도 쓰고 있는 성경이다 보니, 문서 인용에 중립적인 스탠스를 취해야 되는 곳에서도 성경 구절을 들어야 할 때 공동번역성서가 좋은 선택지가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나무위키에도 상당수 있다. 공동번역이 이런저런 문제점이 있지만, 가톨릭 새번역과 개신교 개역개정 간의 격차가 크고 공동번역이 한국어로서 거의 유일한 초교파적 번역이기 때문에 특정 교파가 아닌 기독교 공통적인 맥락에서 성서를 인용할 때 아직 이만한 번역이 없기 때문이다. 단, 여기에는 번역이 중립적이어서라기보다는 화법이 현대 한국어에 가깝고 문체가 미려해서 애용된다고 보는 의견이 있다.
5.여담
개신교 내 보수 교단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받은 역본이지만, 개신교 내 일부 교단(에큐메니컬 계열)은 공동번역 사업을 교회일치 운동의 결정체로 긍정적으로 보기도 한다. 특히 에큐메니컬 정신을 중시하는 대한성공회는 공동번역성서의 가치를 매우 높이 평가한다.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에큐메니컬 계열 한정)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회에서 쓰이는 역본이기도 하다. 이 공동번역성서가 교회일치운동의 상징이기 때문.
문체의 수려함 때문에 개인적으로 사서 참고용으로 보는 일부 개신교 신자도 있다. 물론 의역이 많이 된 역본이다 보니 진지한 성서 연구용으로 쓰이는 경우는 별로 없고, 주로 통독용으로 쓰인다. 그리고 가톨릭 신자들 중 천주교 새번역 성경에 만족하지 못하는 신자들도 공동번역성서를 참고용으로 보기도 하며, 신앙생활을 오래한 가톨릭 신자들은 집에 공동번역성경을 하나 정도 소장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천주교 새번역 성경을 아직 사지 않은 사람 중에선 신부님이 미사 때 성경책을 지참하라고 하자 집에 있던 오래된 공동번역성서를 가지고 온 경우도 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2005년에 자체 새번역 성경을 발간하면서, 신자들에게 기존에 보유하던 공동번역성서는 폐기하지 말고 되도록이면 참고용으로 소장하라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2005년에 한국 천주교 자체 번역본이 나오면서 한국 천주교의 공식 성경의 지위를 잃었고 에큐메니컬 기도회를 제외하고는 전례용으로 쓰이지 않지만 교회 인가 자체가 철회된 것은 아니어서 가톨릭 신자가 이 번역을 개인통독용으로 활용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교리교육용, 일반적인(에큐메니컬적인 연구목적이 아닌 가톨릭 신앙 묵상글 등) 성구 인용 목적으로는 되도록 2005년 천주교 성경을 쓰는 것이 권장된다.
교회 일치 운동이 활발한 서구권 기독교와 달리 천주교-개신교 간 반목이 심한 한국 기독교의 현실을 고려하자면, 제2의 공동번역성서가 나오는 것은 현재로서는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진정으로 초교파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면 번역을 좀 더 보수적으로 했어야 하는데, 번역이 너무 진보적으로 나간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개신교 주류에서 공용 성경으로 사용하기를 거부한 것도 이런 측면이 일부 있었다.
구약성서의 경우 1930년대의 키텔 비평본문을 번역대본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1940년대 이후에 발견된 사해문서 연구 결과가 반영되어 있지 않다.
5-1)공동번역성서 평양교정본
북한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중앙위원회에서는 공동번역성서를 문화어로 교저한 번역본을 내놓았는데 편의상 공동번역성서 평양교정본이라고 한다.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은 공동번역성서를 북한 문화어 철자법과 표현법으로 교정하면서 일부 어휘는 개역성경이나 개역개정성경의 어휘를 차용했다. 구약성서를 1983년, 구약성서를 1984년에 출판했으며 1990년과 2010년에는 신·구약 합본 성경전서를 출판했다.
조선그리스도교연맹에서 한국의 많은 성경 역본들 가운데 왜 공동번역성서를 기반으로 성경을 만들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당시 다른 개신교판 번역이었던 개역한글판 성경과 개역개정판 성경의 문체와 단어가 고풍스럽고 어려웠다는 점, 공동번역이 문자가 아닌 의미 위주의 번역을 함으로서 북한에서도 받아들이기 편했다는 점, 당시 북한의 정치인들과 종교인들에게 익숙한 문익환 목사가 번역에 참여했던 점 등이 그 이유로 추정되고 있다.
공동번역성서를 북한 문화어 철자법과 표현법으로 교정한 사람은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소속 이영태 목사라고 한다. 그는 일제시대 미국인 선교사 이눌서 선교사의 조수였다. 분단과 한국전쟁 후에도 북한에 남아 조선그리스도교연맹 간부로 활동했다고 한다. 그는 공동번역성서 평양교정본 편집 이외에도 평양신학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조선교회사》, 《세계교회사》, 《조직신학》, 《조선기독교도연맹 약사》 등 몇 권의 신학 서적도 썼다고 한다.
북한에는 공식적으로 3만 5천 부의 공동번역 평양교정본 성경이 배포되어 있다. 1983년과 1984년에 조선기독교도연맹에서 신,구약 별권으로 각각 1만 부를 발행했고, 1990년 조선기독교도연맹에서 신,구약 합본을 1만 부 발행했다. 2010년에 조선그리스도교연맹에서 추가로 신,구약 합본을 발행했다. 현재는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소속 봉수교회·칠골교회·가정예배처소들과 조선카톨릭교협회 소속 장충성당 및 가정 공소들과 조선정교회연맹 운영 정백사원에 배포되어 있다.
공동번역성서 평양교정본은 공동번역과 본문 번역의 어순과 의미에서 거의 대부분 일치하지만 표현 방식에 있어 북한 사회에서 사용하는 문화어로 다듬어져있다. 구체적인 예는 다음과 같다.
두음법칙을 사용하지 않음(양식 -> 량식)
사이시옷을 사용하지 않음(호숫가 -> 호수가)
숫자 표기 시 아라비아 숫자로 표기
북한식 관용어사용(아내 -> 안해, 채소 -> 남새)
북한의 정치 사회적 상황에 따른 북한식 어휘 사용(방백 -> 영도자 -> 지도자)
5-2)영미권의 공동번역본들
영미권에도 가톨릭과 개신교가 공동으로 편찬한 일종의 공동번역 영역본이 존재한다. 원래 개신교 번역으로 발간되었으나 추후에 가톨릭교회의 승인을 받은 NLT, ESV와 같은 성경은 여기서는 제외한다.
Revised Standard Version - 최초의 영어 공동번역본. NRSV가 나오기 전에는 영미권 개신교에서 널리 쓰였으며, 가톨릭에서는 아직도 사실상 표준에 가까운 영어 성경(가톨릭 교리서 영문판 등)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 RSV를 개정한 것으로, 현재는 영미권의 에큐메니컬/자유주의 개신교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가톨릭에서는 통독용으로 승인되었으나, NRSV를 전례용 표준성경으로 쓰는 캐나다를 제외하고는 전례용으로서는 찬밥 신세다. 가톨릭 내에서는 각종 문서, 논문 인용 용도로는 RSV에 비해 밀려있지만 이쪽도 만만치 않다. 에큐메니컬/자유주의 진영의 개신교에서는 영어 표준 성경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New English Bible : 영국의 주요 개신교 교파와 가톨릭 교회가 공동으로 작업한 성경.
Revised English Bible : NEB의 개정판.
Good News Bible : 쉬운 현대 구어체 영어로 편찬된 성경으로 미국성서공회 주도로 편찬되었다.
Common English Bible : 미국 연합감리교회의 주도로 미국의 메인라인(Mainline) 개신교 교단들과 소수의 가톨릭 학자들이 편찬한 성경. 가톨릭 측 인원도 참여했다고 하지만 imprimatur를 받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별개로 번역 자체가 다소 급진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공동번역 성서의 아쉬움, 일과놀이 김수복 대표
▲ <공동번역성서>는 선종완 신부와 문익환 목사가 중심이 되어 구약편을 번역했다. 가톨릭에서는 선종완 신부가, 개신교에서는 한국기독교장로회의 문익환 목사가 번역 원고를 마무리하고, 기독교대한감리회의 이현주 목사가 맞춤법을 교정하였다.
내가 참말로 애석하게 생각하는 일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이 뭣인가 하니, 한국 기독교와 천주교가 공동번역성서를 폐기처분하다시피 한 일이다. 성공회에서는 공동번역성서를 사용한다.
내가 6년 동안 서울 가톨릭대 신학교에 다닐 적에 성서, 히브리어, 그리스어를 가르치던 꼬마 교수 선종완 신부가 있었는데, 천재요 성인이라고 불리던 그분이 성서를 각권으로 다 번역해 놓고도 개신교 성서학 박사 민영진 목사, 문익환 목사, 작가 이현주 목사 등과 함께 성경을 히브리어, 그리스어 원문에서 다시 번역하면서 강의 시간마다 우리더러 정말 우리말다운 성서가, 읽어가노라면 막힘없이 술술 알아들을 수 있는 그런 세계에 없는 성서가 나오니 기대하라고 역설하곤 했다.
그렇게 하여 공동번역성서가 만들어졌다. 내가 보기에 공동번역성서는 독자들이 읽어가는 대로 술술 막힘없이 알아들을 수 있게 번역한 대단한 문학작품이었다.
그런 공동번역성서를 개신교에서는 하나님을 하느님으로 표기했다는 등 트집을 잡아서 내팽개치고서 알아듣기가 영판 어려운 오역 투성이 개역성경으로 돌아가 버렸고(공동번역성서가 영 싫을 양이면, 거의 오역 없이 번역한 새번역성경이라도 사용하든지), 천주교에서도 공동번역성서를 오래 사용하다가 성서를 다시 번역해서 사용함으로써 공동번역성서가 없어졌다고 봐야 한다.
내 판단으로는, 개신교에서도 공동번역성서를 사용하고, 천주교에서도 공동번역성서를 전례용으로 사용하고, 새번역성경은 학문용으로 사용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민영진 박사와 이현주 목사가 한없이 애석해 할 일이고, 돌아가신 선종완 신부와 문익환 목사가 눈물 흘릴 일이다. 그리고 선종완 신부가 그렇게 열렬히 바라던 대로 한국 기독교와 천주교에서 공히 공동번역성서를 사용했더라면 교회일치운동에 커다란 기여를 했을 것이다.
성서를 번역할 때, 하나님, 하느님 대신 '천지신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하곤 한다. 천지를 지어내고 모든 존재를 지어내고 만물 안에 아니 계신 데 없이 계시다는 존재의 근원, 존재 자체라는 존재를 가리키는 데 '천지신명'이라는 우리 낱말보다 더 딱 들어맞게 표현하는 낱말이 달리 어디 또 있을까 싶다. 우주만물을 아끼고 존중하고 신령하게 여겨 찬탄하고, 내심 영계(靈界)를 인정하는 그런 인간 본래 심성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지 싶다.
천지신명이라는 표현 하나면, 천주교신자, 개신교신자, 마호메트교신자, 불교신자, 비신자 모두 한 마음, 한 뜻, 한 몸이 될 수 있지 않나 싶다. 모든 사람이 천지신명이 낳은 똑같이 귀중한 자녀라니까, 모든 사람이 한 마음, 한 뜻, 한 몸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참고, 공동번역성서는 무엇인가
신구약 합본 공동번역성서는 천주교와 개신교 성서학자들이 힘을 합쳐 1969년 1월 6일에 번역에 들어간 지 8년 만인 1977년 4월 10일 대한성서를 통해 번역출간되었다. 이를 두고 당시 “한국 성경 번역사에 길이 남을 쾌거”라는 말이 나왔다.
공동번역성서는 한국교회사에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계승한 일대 사건이었다. 공의회는 성서가 “각국어로 적합하고 정확하게, 특별히 성경 원문에서 번역 출간되기를” 권하고 있으며, 나아가 “갈라진 형제들과 공동 협력으로” 이뤄지기를 희망했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교회는 1965년 2월 성서위원회를 설립하고, 1968년 2월 교황청 성서위원회와 세계성서공회연합회가 공동 작성한 성경 번역 원칙을 기본으로 대한성서공회와 ‘신ㆍ구약 성서번역 공동위원회’를 구성했다. 그 결과 1971년에 신약성서, 1977년에 구약성서를 번역해 합본 발간할 수 있었다.
공동번역성서는 신약공동번역위원회에 천주교에서 백민관 신부와 허창덕 신부, 김창렬 주교가 번역작업에 참여하고, 개신교에서는 박창환 목사, 정용섭 목사, 김진만 고려대 교수, 이근섭 이화여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구약공동번역위원회에는 천주교에서 선종완 신부, 개신교에서는 문익환와 김정준 목사 등이 참여했다. 번역 후 윤문은 이현주 목사와 문학평론가 김우규, 시인 양성우 등이 참여했다.
당시 선종완 신부는 성서를 공동번역하면서 <제1편 창세기> 머리말에서 “번역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그 참뜻에 충실할 뿐 아니라 우리말 어법이 허락하는 한 글자에까지도 충실하려고 힘쓰는 한편 모든 이들이 성경을 읽고 영적 이익을 얻도록 하기 위해 되도록 쉬운 말로 옮기려고 애썼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동번역성서는 천주교회와 성공회, 일부 감리교 및 기독교장로회, 정교회 등에서 사용해 왔는데, 대한성서공회에서 1993년에 새번역성경을 내고, 천주교에서 독자적으로 새로 번역한 성경을 전례용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사장되었다. 현재 공동번역성서는 성공회와 정교회, 일부 개신교에서 부분적으로 사용될 뿐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교회일치를 위한 가장 중요한 시도’가 무산되었다고 아쉬워하고 있으며, 천주교의 경우에 성경이 직역이라서 ‘성경 읽기’가 어려워졌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반대로 공동번역성서가 의역이 심해 성서 원문을 온전히 드러내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어 왔다. 그러나 공동번역성서가 성서읽기의 대중화를 가져온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