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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후의 기원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담고 있는 복음서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다.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가 없다. 그런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탄생 기사를 당시의 역사적 정황에 따라 구축해 보면 마치 두 복음서의 기록에 차이(...충돌)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많은 비평학자들은 복음서의 역사적 신빙성(historical reliability)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필자는 이 글에서 두 복음서의 기록이 역사적으로 일치하며 따라서 성경의 무오성이 잘 유지되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B.C A.D
B.C. 주전(主前) 기원(紀元)전; 예수님 오시기 전의 역사
A.D. 주후(主後) 기원(紀元)후; 예수님 오신 이후의 역사
BC. AD는 원래 역사 시점 분류기호로서 세계 공통의 역사 기호입니다. 역사학적 시대분류 기호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유래에 신앙적인 고백이 담겨 있는 기호입니다.
즉 B.C. 는 주전(主前) 기원(紀元)전이라고 부르는 예수님 오시기 전의 역사를 말합니다.
B.C.는 영어로서 비포 Before Christ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을 의미합니다.
A.D.는 라틴어로서 Anno(year) Domini (Lord) 아노 도미니 라고 부르는데 주님 오신 이후; 주후(主後) 서기(西紀)로 부르는 역사 분류 기호입니다.
이 용어를 처음 쓴 것은 A.D. 500년 무렵 로마의 수도원장이었던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이후 11세기 무렵부터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해 지금에 이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BC, AD는 세계 역사의 구분 기호임에도 이렇게 신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은 지금 비기독교인들은 이 단어 쓰기를 거부하고 CE(Common Era), 또는 BCE(Before common era)라고 씁니다. 이 단어에 들어가있는 기독교적 신앙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역사는 영원히 주전(主前), 주후(主後)입니다!
καιρός (카이로스 kairos )와 χρόνος (크로노스kronos )
기독교에서도 역사 관념, 시간의식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을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시간을 표현하는 헬라어의 대표적인 두가지 단어가 바로 카이로스 καιρός kairos 와 크로노스 χρόνος kronos입니다.
카이로스는 흘러가는 연대기적 시간을 말하는 것이고 크로노스는 의미가 부여되는 시간, 역사적 사건이 있는 시간, 그 뜻이 소중한 특정한 시간을 말합니다.
크로노스적인 시간이 다 채워지면 카이로스적 시간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사건은 바로 이 카이로스적 사건이었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을 크로노스의 시간이 다 채워지자 카이로스의 사건으로 주님께서 이땅에 오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때가 차매
[갈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갈4: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것이 바로 BCAD의 역사구분이 되는 사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지상의 모든 역사 히스토리 History는 곧 구세주 예수님의 구원 스토리,그분의 이야기 His Story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은혜의 시간을 선물하신다!
[누가복음 4:18] 은혜의 해가 시작되다!
[눅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눅4: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이 땅에 오심으로서 예언되었던 은혜의 세월, 은혜의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다고 선언하십니다. 여기에서 은혜의 해 ( year of the Lord) 는 구약의 50년만에 한번 오는 구원과 해방과 은혜의 희년禧年(쥬빌리 Jubilee)를 말합니다.
즉 주님을 만나면 은혜의 해,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과연 BC, AD가 확실히 구분되어 새로운 시간을 살아가느냐에 있습니다.
베드로전서는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라고 말하며 그 때의 모든 일들은 지나간 때로 족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세상사람들처럼, 그렇게 할만큼 살았지 않느냐, 묻습니다. 그만 해라, 많이 했다!입니다. 이제는 AD로! 주님과 함께 살아야한다고 강조합니다!
[벧전4: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사도바울은 보라! 잘 보라! 자세히 보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 것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정말 그렇습니까?
에베소서는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결단, 하나님의 이를 따라가는 결단, 그리고 새사람을 입는 결단이 있어야한다고 강조합니다.
BC를 떠나 AD로 살고자하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AD-주님과 함께 살아야한다고 가르칩니다.
[엡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엡4: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엡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히브리서는 뒤로 물러가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다시는 BC로 돌아가지 말고 AD로 살라고 말합니다.
[히10: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개역성경은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를 침륜沈淪에 빠질 자라고 번역했습니다. 의미깊은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침륜, 영적 침체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잘해보려고 하는데 내 속에 우울증이 있고 해결되지 않는 분노가 있고 마음이 있고 감정이 있고 기억이 있어 잘 안될 때가 있습니다. 침륜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이기고 극복해야할 것입니다.
[히10: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沈淪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종종 경험합니다.
영적 침체기, 우울증, 자기혐오와 무기력을 경험합니다.
AD로 살아야하는데... ㅠ
그러나 너무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아직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AD로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지나친 죄의식은 오히려 우리를 무너뜨리는 바이러스가 됩니다.
방향과 중심만 분명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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