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히 영생을 누리라 (요 17:3)
이 시간에 “풍성히 영생을 누리라”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무엇일까요?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요10:10에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가 영생을 얻되 더욱 풍성히 얻고 지금 삶속에서 풍성히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그 중에는 약 3종류의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첫째는 불행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나면서 죽을 때까지 내가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며 살다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종착역은 어디겠습니까? 다음은 안타까운 인생이 있습니다. 첫 번째 사람과 같이 살다가 죽을 때가 임박해서야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깨닫고 몸부림치며 안타까워하다가 떠나는 인생입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실 때 한 강도와 같이 실패의 인생을 살다가 회개하고 낙원에 간 사람이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가 하면 행복한 인생이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삶의 가치와 목적을 발견하고 하루하루를 보람 있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여러분은 현재 어떤 인생을 살고 계십니까? 불행한 인생입니까? 안타까운 인생입니까? 행복한 인생입니까? 이 시간 여러분의 인생이 가장 행복하고 아름답고 멋진 축복의 길이 펼쳐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대학 정문에 이런 글이 쓰여진 돌비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이런 글이 쓰여진 이면이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법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야심에 찬 청년이 노 교수를 찾아와 자신은 앞으로 법학을 공부하겠노라고 자신에 찬 말로 의기양양하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노인교수가 점잖게 말했습니다. “그래 그렇게 공부를 한 후 무엇을 하겠는가?” “전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아주 학식이 풍부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훌륭한 변호사가 되어 명성을 얻겠지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리고 그 다음에는 예쁜 규수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행복하게 살아야지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계속되는 같은 질문 앞에 청년은 또 대답합니다. “노년을 맞이하겠지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러자 청년은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잠시 생각한 끝에 입을 열어 말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저도 죽겠지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청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인생은 몇 백 년 아니 몇 천 년이라도 살 것처럼 의기양양해도 백년도 채 살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이 말만 깊이 묵상해도 허무한 인생에 목표 삼지 않고 더 영원한 것을 찾는 지혜자가 될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영생을 풍성히 누릴 수 있을까요?
1. 예수를 깊이 체험해야 합니다.
영생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요17:3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안다는 것은 체험하고 동참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 것이 영생입니다. 영원히 사는 것도 영생이지만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 것이 영생입니다. 영생은 단순한 영원불멸을 가리킨 것이 아닙니다. 지옥에서도 영원히 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영생이란 천국은 물론 하나님의 생명, 그리고 하나님의 시간 속에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하나님께로부터 나야 영생입니다.
하루는 바리새인이며 유대의 관원이었던 니고데모가 밤에 몰래 예수님 앞에 나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의 몸이 어떻게 다시 난다는 말인가?
그래서 반문합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습니까?” 그러자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게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그러니까 니고데모는 육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영을 말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 영혼이 예수 믿어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하히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하셨습니다. 영생 얻음에 그리스도에 관한 믿음이 가장 기본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평양감옥에 갇혀 있을 때의 일입니다. 같은 방에 주영하라는 모스크바 대학을 나온 열성공산주의자가 있었습니다. 같은 주씨라 통성명을 하니 주영하가 연하라 주기철 목사님을 형님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같은 방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제 주기철 목사님과 헤어지게 되었을 때 주영하란 공산주의자가 말합니다. "내가 공산주의자 되기 전에 형님을 만났다면 내가 골통 예수쟁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형님 한가지 부러운 것이 있습니다. 나는 평등과 자유와 모두 같이 잘사는 나라를 위해서 이렇게 목숨을 걸고 투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죽으면 그만입니다. 거기서 끝입니다. 그런데 예수쟁이들은 이 땅에서 삶은초개와 같이 여기고 천국에서 영생하는 삶을 위해 기꺼이 웃으며 죽는 모습 한가지는 정말 부럽습니다." 라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주영하란 골통 공산주의자도 부러워하는 영생의 생명이 우리 성도들에게 있기에 세상이 줄 수 없는 풍성한 복을 주시기에 우리는 항상 웃으며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지극히 높여야 합니다.
잠4:8-10에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였느니라 내 아들아 들으라 내 말을 받으라 그리하면 네 생명의 해가 길리라" 했습니다. 여기 지혜는 그냥 지혜도 되지만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암시합니다. 하나님을 높이세요. 그러면 위로부터 생명의 성령이 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에덴의 축복은 생명과실만 열심히 따먹으면 됩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생명과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14:6에 “나는 곧 생명이니라”하셨습니다. 요6:47에도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영생이 떡이요 음료라면 열심히 먹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것이 먹는 것이고 또 늘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며 겸손히 순종하고 사랑하는 것도 먹는 것입니다. 예배생활의 분량이 생명의 분량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부족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높이면 높힐수록 풍성한 생명을 경험합니다. 행2:33에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하셨습니다. 본래 성령은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으로 온 것입니다. 성 삼위 하나님을 예배로서 높여 드리시기 바랍니다.
3. 복음에 끝까지 서는 것입니다.
잠4:23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했습니다. 무엇보다 복음에 서야 합니다. 고전15:1-2에 바울은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복음에 끝까지 서라는 말씀입니다. 먹지 말라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으면 안 됩니다. 사탄이 불어넣어주는 악한 생각들, 미혹된 생각들, 비진리 몰아내고 성경에만 서야 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눈은 율법의 눈이요, 합리적인 눈입니다. 이 눈을 가지고 율법적인 신앙을 가지면 죄책으로 심령은 죽습니다.
그러므로 복음 안에서 나를 봐야 합니다. 끝까지 나는 예수 안에서 의롭다. 예수 안에서 복된 자다. 예수 안에서 영화로운 자다. 승리자다. 나에게 하나님의 인도와 복이 있을 것이다. 그걸 못 믿고 합리적인 눈으로 현실을 보면 실망합니다. 율법은 아름답지만 율법적인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나도 괴롭고 남도 괴롭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갈2:16에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했습니다.
4. 주를 위해 희생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4:14) 했습니다. 마5:10-12에도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예수를 전하던 스데반의 얼굴에 나타난 그 충만한 영생이 그 증거입니다. 그 후 많은 순교자들의 얼굴에도 충만한 영생이 보였습니다. 목숨 바쳐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목숨 바쳐 사명감당해야 합니다. 매일 매일 자기를 십자가에 넘기며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16:26) 우리의 하나뿐인 목숨,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으며 사십시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 믿어 구원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 경외하여 은혜 받아 생명으로 풍성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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