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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1장
=====11:1
암몬 사람 나하스 - '암몬 족속'(the Ammonite)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의 딸
사이의 부정한 관계를 통해 태어난 자식의 후예들이었다(창 19:30-38). 이 족속은 그
후 요단 강 동쪽, 곧 사해 북동쪽을 차지하고, 얍복강 언덕의 랍바를 자신들의 수도로
삼았다(신 3:11). 그리고 암몬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
에 이미 잘 조직된 왕국의 형태를 소유하고 있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이들 암몬 족
속의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업으로 주지 않으셨다. 그 이유는 그들이 롯의 후손
들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신 2:19). 그러나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계속적으로 이스라엘을 괴롭혀 오다가(삿 10:9), 결국 다윗에 의해 정복되
고 말았다(삼하 12:30). 한편 '나하스'(* , Nahash)는 어원학적으로 본다면 '뱀'
이란 뜻이다. 그리고 그에 해당하는 아카디아어의 의미로는 '웅장'이란 뜻이다
(Klein). 그런데 이 사람은 나중에 다윗에게는 호의적이었다(삼하 10:2;대상 19:2).
그 까닭은, 사울에게 그 두 사람 모두 원수 관계였기 때문일 것이고, 또한 형제국인
모압 족속도 다윗을 호의적으로 대우하였기 때문일 것이다(삼하 8:2).
길르앗 야베스를 대하여 진 치매 - '길르앗 야베스'(Gilead-Jabesh)는 '길르앗의
메마른 땅'이란 의미이다. 이곳은 갈릴리 호수의 남쪽으로 약 30km 떨어진 요단 강의
동쪽 지점으로, 가나안 땅 분배시 므낫세 반 지파에게 분배되었던 영토였다(수
21:6-15). 그런데 사사 시대에 이곳의 주민들은, 지극히 패역한 행동을 했던 베냐민
지파의 징벌에 참여치 않은 대가로 베냐민의 남은 장정들을 위해 처녀들을 제공해야만
했다(삿 21:6-15). 한편 당시 암몬 족속들은 자신들의 수도 '랍바'(삼하 12:26;암
1:14)에서 북쪽으로 약 50km 진군하여 '길르앗 야베스'의 맞은 편에 진을 친 듯하다.
이들이 이같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이유는, 그 지역의 영토를 차지하려는 욕심 때문이
었다. 이같은 욕심 때문에 암몬 족속은 사사 시대 이래 그 지역을 자신들의 합법적 영
토로 계속 주장해 왔었다(삿 11:13). 이에 따라 전에도 이스라엘을 공격하기는 했으나
사사 입다의 활약으로 완전히 패퇴당하고 말았었다(삿 11:32,33). 그런데 이제 그로부
터 약 1세기 가량이 지난 후에 암몬 족속은 다시 세력을 회복하여 재침공을 시도한 것
이다(R.Payne Smith). 한편, 일부 역본(LXX)과 학자들(Ewald, Thenius)은 암몬 족속의
침공 시기를 '사울이 왕이 된 후 1개월이 지난 때'로 보고, 그 사실을 10:27 후반절에
부기(附記)했으나, 그 타당성은 없다.
우리와 언약하자 - 이 번역 보다는 '우리를 위하여 언약하자'가 원문에 보다 가까
운 번역이다. 따라서 이것은 야베스 주민들이 싸움도 하기 전에 항복하려는 마음이 간
절했음을 잘 보여 준다. 한편 성경에는 '언약'(言約, covenant)이라는 말이 '화평을
위한 조약'의 의미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창 21:32;신 7:2;삼하 3:21).
우리가 너를 섬기리라 - 이말은 결국 종이 되겠다는 뜻이다. 이처럼 암몬 족속의
종이 될 경우 야베스의 주민들은 때에 따라 그들에게 많은 조공을 바쳐야 할 뿐만 아
니라, 그들을 위한 노역 봉사도 해야만 했었다. 한편, 당시 므낫세 지파의 야베스의
거민들이 암몬 족속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이같이 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무엘에게 강력한 왕을 요구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을 강력
히 시사해 준다(8:20).
=====11:2
너희 오른눈을 다 빼어야...모욕하리라 - 유대 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오른눈
을 빼려고 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즉 당시 용사들의 왼쪽 눈은 자신의 방
패에 의해 시야가 가려졌기 때문에, 실제로 오른쪽 눈으로만 전방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오른눈을 실명하게 되면 전투 기능을 상실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J.P. Lange, Commentary on the Holy Scripture). 물론 이것도 일리는 있겠으나, 뒤
에 '모욕하리라'라는 말이 있다는 점에서 야베스 주민으로 하여금 극도의 수치심을 일
으키기 위한 목적에 따른 것으로 봄이 타당한 듯하다(삿 16:21;왕하 25:7). 아무튼 암
몬 왕 나하스는 이같이 함으로써 자신의 조상이 입다에게 당한 모욕(삿 11:32,33)을
복수하려고 했음이 분명하다(Fay, Keil).
=====11:3
야베스 장로들 - 이스라엘 사회에서의 장로의 역할에 대해서는 신 21:1-9 강해,
'성경에 나타난 장로직'을 참조하라.
우리로...온 지경에 사자를 보내게 하라 - 야베스 장로들이 암몬 왕 나하스에게 간
청한 이 말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1)당시 요단 동편 북부
지역 거민인 야베스 주민들은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진 사실(10:24)을 몰랐거
나(Keil, Smith), (2)설혹 알았다고 할지라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도처에 구원을 하소연한 것 같다. 아무튼 이것은 당시까지만 해도 왕은 있었으나, 중
앙 정부는 없는 과도기적 왕정(王政) 형태를 띠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사울에
게는 이 기회가 자신의 왕권(王權)을 확립할 수 있는 기회요, 시험대였다.
우리를 구원할 자 - '구원자'(* , 야솨)라는 말은 사사기에서 두 번 언급되며
(삿 3:9,15), 성경 전반에 걸쳐 하나님, 혹은 하나님에 의해 지명되어 영웅적으로 이
스라엘을 구출하는 행위를 하는 자라는 의미를 갖는다(Klein).
네게 나아가리라 - 이 말은, '나하스'(Nahash)의 어떤 처분도 달게 받겠다는 야베
스 주민들의 자포 자기적인 심리 상태를 잘 보여 준다. 왜냐하면 여기서 '나아가리라'
(* , 야차)는 원래 '항복하다', '포기하다'란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왕하 24:12;
사 36:16;렘 38:18).
=====11:4
이에 사자가...고하매 - 3절에 언급된 야베스 장로들의 간청이 암몬 왕 '나하스'에
의해 수락되었음을 보여 준다. 이처럼 '나하스'가 야베스 장로들의 요청(3절)을 수락
한 까닭은 다음과 같다. 즉 (1)당시 이스라엘은 남서쪽의 블레셋과 대치하고 있었으므
로, 길르앗 야베스를 지원할 만한 여유가 없다고 보았으며, (2)비록 이스라엘이 단결
하여 대항한다고 해도, 그들을 능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3)또한 보복의 여지
를 남기는 국지적인 승리보다 완전한 승리를 통해 전체 이스라엘을 영속적으로 식민화
(植民化)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울의 기브아 - 즉 사울의 고향 '기브아'를 가리킨다(10:26). 이곳은 길르앗 야베
스에서 약 74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한편 본절에서 언급된 지역이 '사울의 기브아'
(Gibeah of Saul) 뿐이라는 사실 때문에, 사자가 이곳으로만 보내졌다고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즉 길르앗 야베스의 여러 사자들(messengers) 중 한 사자(使者)가 이곳 기
브아에 당도한 것이다(3절).
모든 백성이...울더니 - 기브아 주민들은 길르앗 야베스의 사자의 말을 듣고 모두
탄식하며 슬피 울었다. 그 이유는 (1)자신들의 동족을 도울 힘이 없으므로 안타까웠기
때문이며, (2)암몬 족속들은 길르앗 야베스를 유린한 후 자신들의 땅에까지 쳐들어 올
것이 뻔하였기 때문이다.
=====11:5
자유주의 고등 비평 학자들은 사울이 왕으로 선출된 이후에도(10:24) 농사를 진 이
부분에 회의를 품으면서, 이것은 아마도 다른 단편 문서의 혼합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Stoebe).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것은 비록 당시 사울이 왕으로 선출되기는 했지만,
아직껏 중앙 정부를 구성할 여건을 마련치 못해 당분간 예전의 모습대로 생활하고 있
음을 보여줄 뿐이다. 즉 사울은 사무엘의 충고를 따라(10:7) 자신이 이스라엘의 지도
자로 본격적으로 활동할 때가 오기를 차분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소를 몰고 오다가 - 문자적으로 '소를 따라 오다가'란 뜻이다. 따라서 이것은, 그
때 사울이 밭에서 일을하고 있었음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밭일을 마치고 집으
로 돌아오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 말이다.
=====11:6
하나님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매 - 문자적으로는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 강력하게
임하셨다'란 의미이다. 이는 곧 사울이 하나님의 장중(掌中)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일
을 감당할 만한 능력의 사람이 되었다는 뜻으로서, 곧 성령의 도구가 되었음을 의미한
다. 한편 이같은 현상은 특히 사사(士師) 시대에 성전(聖戰)이 시작되기 바로 앞서,
그 전쟁을 치를 지도자들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났었다(삿 3:10;6:34;11:29;13:25;14:6;
15:14).
노가 크게 일어나서 - 여기서 '노'(* , 아프)는 인간적이거나 사사로운 분노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합치되는 거룩한 '의분'(義憤)을 가리킨다(출 4:14;민 11:1;신
6:15;수 7:1;삼하 6:7;사 5:25). 따라서 '노가 크게 일어나서'란 말은 하나님의 신에
크게 감동된 사울이 하나님의 소명을 본격적으로 인식하였음을 시사해 주는 말이다.
=====11:7
한 겨리 소를 취하여 - '한 겨리 소'(a yoke of oxen, KJV, RSV;a pair of oxen,
NIV)는 사울이 밭 일을 마친 후 자신의 집으로 몰고 가던 소들임이 분명하다.
각을 뜨고...두루 보내어 - 이와 유사한 장면이 사사기 19:29,30에도 나타난다(삿
19:29 주석 참조). 또한 중근동의 고대 문헌인 '마리 문서'에서도 이것과 유사한 장면
이 보여지고 있다. 즉 거기서는 한 귀족이 외적의 침입으로 곤경에 처한 나머지 군대
의 소집을 승인받을 목적으로 포로의 목을 베어 왕에게 보냈다는 내용이 언급되고 있
다. 결국 이같은 행동들은 군대의 소집에 응하지 않는다면, 죽임을 당한 소나 사람처
럼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을 암시하는 위협적인 경고임이 분명하다. 한편 자신
의 첩을 열 두 덩이로 조각낸 레위인이나(삿 19:29), 자신의 소를 각뜬 사울 모두 '기
브아'에서 이같은 행동을 했다는 점에서 그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여기서 '각을 뜨
다'란 말은 '조각내다', '절단하다'란 뜻의 동사 '나타흐'(* )에서 파생된 말로,
곧 '여러 조각으로 자르다'(cut-in pieces)란 의미이다. 따라서 이는 짐승을 잡은 후
뼈 마디를 따라 그 고기를 여러 조각으로 잘라 나누는 것을 가리킨다(레 1:6).
사울과 사무엘을 좇지 아니하면 - 사울이 이처럼 선지자 사무엘의 권위를 빌린 이
유는 (1)자신이 여호와의 선지자에 의하여 기름 부음을 받은 합법적인 왕이라는 사실
과, (2)암몬의 나하스 군대와 전투키 위한 군대의 소집이 신적 권위에 의하여 이루어
진다는 사실, (3)그리고 사무엘도 자신과 함께 전투에 참여한다는 사실 등을 보여 주
기 위함인 듯하다(Pulpit Commentary).
여호와의 두려움 - 이것은 '여호와께로부터 온 두려움'이란 뜻이다. 종종 '여호와
의 두려움'은 성전(聖戰)과 관련하여 적들에게 임하기도 하지만(14:15;창 35:5), 여기
서는 사울로 하여금 이스라엘 전체 백성들에게서 통일된 응답을 얻도록, 여호와께서
친히 백성들의 마음을 주관하신 사실을 가리킨다(겔 11:19,20).
=====11:8
베섹에서...계수하니 - 여기서 '베섹'(Bezek)은 세겜 북동쪽 약 20km 지점에 위치
한 곳으로서, 길르앗 야베스로부터는 약 22.5km정도 떨어져 있었다. 또한 이곳은 잇사
갈 지파에 속한 땅이었다. 그러므로 이곳은 유다 지파에 속한 베섹과는 분명히 구별된
다(삿 1:3,4). 한편 '계수하니'(* , 파카드)란 말은 곧 '소집하다'란 의미이다
(Davidson).
이스라엘 자손...유다 사람 - 이처럼 분열 왕국 이전 시대에도 지역적. 혈통적 구
분이 있었는데, 이런 구분이 후에 분열 왕국을 이루는 요인이 되었다. 한편 이스라엘
이 남.북으로 분열되기 약 80년 전인 다윗 초기에도 이같은 정치적 갈등은 이미 나타
나고 있었다. 즉 사울이 죽은 후 이스라엘의 대다수 지파들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인정한 반면, 다윗은 겨우 유다 지파에 의해 왕으로 인정될 수 있었던 것이다
(삼하 2:1-4,8-10). 그리고 그당시 다윗이 유다의 왕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이스라엘의
분열을 조장키 위한 블레셋의 정책적 묵인에 의해서 겨우 가능할 정도였다.
삼십 만...삼 만 - 이 숫자는 광야에서 최종적으로 조사된 전투 능력을 지닌 20세
이상의 이스라엘 남자 601,730명의 약 반에 해당되는 많은 숫자이다(민 26:51). 이처
럼 사울의 징병 요구에 전 이스라엘이 거국적으로 응한 것은 (1)여호와의 두려움이 백
성들에게 임했기 때문이요(7절), (2)왕을 중심으로 구국(救國)의 열정이 불붙었기 때
문이다. 한편, 레온 우드(Leon Wood) 박사는 이들 33만 명을 모두 전투 능력이 있는
군인들로 보지 않고, 단지 사울의 행동과 뜻에 호응하여 모인 무리들로 본다. 따라서
실제 싸움에 임할 군인들은 이중에서 다시 선별, 군대로 조직했다고 한다(L. Wool, A
Survey of Israel's History).
=====11:9
길르앗 야베스 - 1절 주석 참조.
내일 해가 더울 때에 - '해가 더울 때에'는 '해가 뜨거워지기 시작할 때에'란 의미
이다(Klein). 따라서 아마 그 때는 정오(正午) 무렵이었을 것이다.
구원을 얻으리라 - 이 말은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이 간절히 찾아 헤맸던 '구원할
자'(3절)와 동일한 어근을 갖는 단어이다. 결국 이것은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의 간절
한 소원이 성취되었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또한 이것은 사울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인해 반드시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을 구원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말이기도 하다(10:7).
=====11:10
본절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암몬 족속에 대하여 계략을 꾸미고 있음을 보여 준
다. 즉 그때 야베스 주민들은 암몬 왕 나하스에게 그 다음날 항복할 듯이 말함으로써
그들의 경계심을 풀게 하고, 따라서 이스라엘 군대의 공격이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도
록 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Smith, Fay).
=====11:11
사울이...삼 대에 나누고 - 군대를 삼대(三隊)로 나눈 경우는 사사 시대 기드온(삿
7:16,20)과 아비멜렉(삿 9:43)에게서도 발견될 수 있으며, 또한 블레셋 족속들에게서
도 매우 쉽게 관찰된다. 이같은 전법은 상대방을 여러 방향에서 일시에 협공하기 위한
병법이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이같은 전법(戰法)을 구사할 줄 아는 강력
하고 유능한 무사적(武士的) 왕을 간절히 바랬던 것이다(8:20).
새벽에 적진 중에 들어가서 - 여기서 '새벽'은 오전 3시에서 6시까지의 사이를 가
리킨다(Keil, Fay). 따라서 본 구절은 이스라엘 군대가 암몬 족속들을 기습적으로 공
격했음을 보여 준다. 즉 사울은 방심과 자만심에 빠져 깊이 잠들고 있는 암몬 군대의
허(虛)를 찔러 3면 협공 기습 작전을 구사하여 대승을 거두었던 것이다.
=====11:12
본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울을 자신들이 바라던 스타일의 왕(8:20)으로서 완전
히 인정하였음을 보여 준다. 즉 사울은 암몬과의 전투를 통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자
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암몬과의 전투를 대승으로 이끈 이
후, 사울의 왕권은 급속히 강화되었을 것이다.
사울이 어찌...다스리겠느냐 한 자 - 즉 미약한 베냐민 지파의 일개 농사꾼이 자신
들의 왕으로 제비뽑힌 일에 대해 불만을 품고, 노골적으로 사울에 대해 불복종과 거역
의 뜻을 나타내었던 비류들을 가리킨다(10:27).
=====11:13
본절은 사울이 그날의 승리(11절)를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능
력으로 말미암아 얻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겸손히 인정했음을 보여 준다. 사울의 이같
은 자세는 그의 초기 겸손과 관용의 성품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한 사울이 이같이 인
정한 이유 중의 하나는, 전투의 장소에 여호와의 선지자 사무엘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 날에는...죽이지 못하리니 - 여기서처럼 기쁜날에 형 집행을 보류 또는 사면하
는 경우가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즉 다윗은 자신이 왕위를 회복한 날
에, 자신에게 온갖 모욕을 준 시므이를 용서하였었다(삼하 19:23). 아무튼 여기 사울
의 이같은 관용의 태도는 왕국 출발 초기에 사울의 도덕적.정치적 입지를 강화시켜 주
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와 같은 사울의 겸손과 관용은 이때를
정점(climax)으로, 그의 왕국이 공고화되고 그의 왕권이 강화되자 점차 퇴색되고 사라
져 결국 영적.도덕적.정치적인 면에서 실패한 왕으로 전락되고 만다. 이러한 사실을
도표화 하면 아래와 같다.
=====11:14
우리가 길갈로 가서 - 여기의 '길갈'(Gilgal)은 암몬과의 전투가 벌어졌던 길르앗
야베스에서 직선 거리로 약 60km 정도 떨어진 곳으로서(수 4:19 주석 참조), 사무엘이
순회하며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성지(聖地) 중의 하나였다<7:16>. 따라서 온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모일 장소로 이곳이 선택된 이유는 바로 이같은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라를 새롭게 하자 - 실상 이스라엘은 왕정(王政)으로의 변화가 이미 이루어졌었
다. 즉 이미 사울은 (1)하나님의 선지자 사무엘에 의해 왕으로서 기름 부음을 받았으
며(10:1), (2)사무엘에 의해 기름 부음 받은 일의 정당성을 신적으로 확증받는 징표로
서 하나님의 신의 임재를 체험했으며(10:10), (3)백성들의 대표자들에 의해 공개 석상
에서 왕으로 인정되었으며(10:19-24), (4)사울 스스로는 백성들이 바라던 모양대로
(8:20) 자신의 왕직(王職)을 이미 군사적 차원에서 행사하였기(11:6-11) 때문이다. 따
라서 이제 길갈에서 사무엘이 해야 할 일은 첫째, 화목제(和睦祭, 레 3:1-17;7:11-21)
를 드림으로써 사울과 하나님 사이에 언약적 관계를 형성시키며(Klein) 둘째, 이스라
엘 온 백성들에게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졌음을 신적인 권위에 의해 선포하
고, 이어 축제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대한 대관식(戴冠式)을 치름으로써 이스라엘 초대
왕의 공식 등극을 추인하고 확증하는 일이었다(Keil).
=====11:15
사울로 왕을 삼고 -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서 사울의 왕위(王位) 등극은 그의 나
이 40세 때인(13:1) B.C. 1050년의 일이었다(L.Wood). 이후 사울은 다윗이 차기 왕으
로 등극할 때까지 40년간(B.C.1050-1010년)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다(행 13:21). 한편
70인역(LXX)은 이때 사울이 10:1에 이어 또다시 기름 부음 받은 것으로 해석했으나,
타당성이 없다(Keil). 만일 기름 부음 받았다면, 그 일의 중요도상 다윗의 경우처럼
(삼하 2:4;5:3) 또 기록했을 것이다(Lange). 한편, 자유주의 고등 비평가들은 사울의
왕위 옹립 사건과 관련하여, 그 사건이 10:1;10:24;11:15 등에서 세번 중복된다는 사
실을 근거로 세 가지 자료설(資料說)을 주장한다(Eissfeldt). 그러나 그것은 중복(du-
plication)이 아니라 별개의 다른 사건이다. 즉 10:1은 사울이 사무엘에 의해 개인적
으로 은밀히 기름 부음 받는 사건이고, 10:24은 사울이 이스라엘 모든 장로들 앞에서
제비뽑혀 왕으로 선출되는 사건이며, 11:15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사울이 이스라엘 모
든 백성들 앞에서 초대 왕으로 공식 대관식을 거행하는 장면인 것이다(E.J.Young).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 '화목제'는 제물의 한 부분은 제단에 올려져 하나
님께 바쳐지며, 그 나머지는 그 제물을 바친 백성들이 공동으로 먹을 수 있는 감사와
기쁨, 그리고 화목과 친교의 제사였다<레 3:1-5 강해, 화목제에 대하여>. 따라서 여기
'화목제'는 승전(勝戰)과 왕의 등극을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또한 백성들 간에는 상호
기쁨을 나눈 축제의 제사였다.
길르앗 야베스 전투 - 암몬 왕 나하스는 이스라엘의 길르앗 야베스를 공격하고자
했다. 그러자 야베스 장로들은 사신을 이스라엘 전국에 보내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기브아에 있던 사울은 베섹에서 병력을 소집한 뒤 암몬 족속을 기습 협공했다. 암몬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지(聖地) 길갈로 내려가 사울을 초대 왕으
로 삼아 대관식을 거행했다.
사무엘상 제 12장
=====12:1
본절은 우리말 성경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지만, '그리고'(* , 와)로 시작한다는점
에서 11장 끝부분(14,15절)의 직접적인 연속이다.
너희가...한 말을 내가 다 듣고 - 여기서 '너희가...한 말'은 이스라엘 장로들이
열방과 같은 왕을 요구했던 사실을 가리킨다(8:5,20).
너희 위에 왕을 세웠더니 - 사무엘이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
구대로 사울을 왕으로 세운 일은 결코 하나님께서 그 일을 기뻐하셨기 때문이 아니었
다(8:6-8). 다만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요청을 허락하심으로써, 오히려 그 왕을 인하
여 고통을 당하고(8:11-18), 따라서 진정 이스라엘의 왕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라
는 사실을 깨닫도록 만들려는 의도를 갖고 계셨다(8:9,22;9:16,17).
=====12:2
이제(* , 웨아타) - 이 단어는 자주 장(章)의 시작을 이끌거나, 앞선 행동
의 논리적 결과를 소개할 때 사용된다(7,10,13,16). 따라서 여기의 '이제'(And now)는
'왕이 세워졌으므로'란 의미로 이해하면 적당할 것이다.
왕이...출입하느니라 - '출입하다'(* , 할라크)는 원래 '걸어다니다'란 뜻이
지만, 성경의 여러 문맥상 그 의미는 자신의 고유한 직무, 특히 백성을 여러모로 돌보
고 다스리는 공적(公的)직무의 수행을 표현하는 말로서 사용되어진다(9:6;민 27:17;삼
하 2:29;왕상 3:6;대하 6:16). 한편 스미드(R.Payne Smith) 박사에 의하면, 이 말은
목자가 양떼를 인도하고 감독하면서 앞서 '가는'(walking) 목자적(牧者的) 생활 풍습
에서 비롯된 은유적 표현이라 한다(Pulpit Commentary).
나는 늙어 머리가 희었고 - 여기서 '희었고'는 '석회를 뿌리다' 라는 뜻의 '시브'
(* )에서 파생된 단어로서(Keil),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사실의 비유적 표현 방식
이다(창 15:15;25:8;레 19:32;왕상 2:6).
내 아들들도...함께 있느니라 - 사무엘의 아들들의 부패는 사무엘의 노령(老齡)과
함께 이스라엘 장로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왕을 요구하게 만든 구실이 되었었다(8:1).
그러나 사실에 있어 이같은 것들은 이스라엘 장로들이 왕을 요구하게 된 진정한 원인
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여기서 사무엘이 자신이 늙었음과 자신의 아들들이 함께 있다
는 두 가지 사실을 특별히 언급한 까닭은, 왕을 요구한 이유를 사무엘 가문(家門)의
문제 때문으로 제시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직치 못함을 암시적으로 꾸짖기 위함임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사무엘의 이같은 언급은, 그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린 사사(士
師)로서 자신의 모든 행실이 백성들에게 낱낱이 알려져서 더이상 드러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이와 반대로, 백성들이 그토록 원했던 이스라엘
의 왕들은 장차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그 행위가 사무엘과 비견되어 시험되어져야 할
것이었다(Klein).
=====12:3
여호와 앞...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 - 자신의 양심 선언을 하는 자리에서 사무엘
이 '여호와'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나란히 언급한 까닭은 둘 사이에 존재하는 특
수한 관계 때문이다. 즉,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공의(公義)를 백성들에게
가시적(可視的)으로 실천하는 자라는 점에서, 공의로우신 여호와 하나님과 특수한 관
계하에 있기 때문이다(Keil). 한편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왕의 명예를 특별히 높이
며, 또한 왕과 하나님 사이의 친밀한 언약적 관계를 강조하는 말이다(Klein, 24:6).
내게 대하여 증거하라 - 여기서 '증거하다'(* , 아나)는 법정적(法庭的) 용어
로서 증인이 재판장의 질문에 대해 증언 혹은 답변하는 것을 가리킨다(Davidson). 따
라서 '내게 대하여 증거하라'는 말은 백성들이 기소자의 입장에서 피고인의 위치에 있
는 사무엘 자신의 죄를 듣고 아는대로 말해보라는 뜻이다(출 20:16;신 31:21). 사무엘
은 여기서 이같은 말을 함으로써 사사로서의 자신의 청렴 결백함을 담대히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사무엘은 연속된 질문을 통해 자신의 이스라엘 통치가 공명 정대했음을
입증시키고 있다. 한편, 사무엘의 이같은 자기 변호의 궁극적인 목적은 여호와의 신정
(神政) 통치를 거부하고 열방과 같은 왕을 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동기가 잘못된 것
임을 지적하고 경고하기 위함이었다.
소...나귀를 취하였느냐 - 여기의 '소', '나귀', '취하다'라는 단어는 모두 열방과
같은 왕의 횡포를 경고적으로 예시했던 8:11-17에 나오는 말들이다. 이같은 단어들을
사용함으로써, 사무엘은 사사로서의 자신이 새로 세워질 열방과 같은 왕과는 전혀 다
름을 강력히 암시하고 있다. 한편 모세도 다단과 아비람에게 자신의 결백을 호소하면
서, 자신이 그들에게서 나귀를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했었다(민 16:15). 사실
'소'나 '나귀'는 농경(農耕) 사회에서 기본적인 재산으로 간주되었던 것들이라는 점에
서, 이같은 것들을 빼앗는 행위는 율법에 의해 철저히 금지되었다(출 20:17).
누구를 속였느냐 - 여기서 '속이다'(* , 아솨크)는 원래 '내리누르다', '사기
를 치다'란 의미로서, 곧 물건을 빼앗기 위해 타인을 현혹.협박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레 6:2;겔 18:18;호 12:7).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 '압제하다'(* , 라차츠)란 말은 '깨뜨리다', '낙심시
키다', '학대하다'란 의미이다(전 12:6;암 4:1).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 - 문자적으로는 '눈을 멀게 하는 뇌물'이란 뜻이다. 결국
이것은, 뇌물(賂物, bribe)은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사안이나 사물을 올바르게 보지
못하게 하고, 또한 그에 따라 올바르게 행동하지 못하게 하는 지극히 부정적인 기능이
있음을 가리킨다(출 23:8;신 16:19). 한편 여기서 '뇌물'(* , 코페르)은 '덮다'
(cover)란 뜻의 동사 '카파르'(* )에서 파생된 말로, 곧 어떤 사람이 자신이 범
죄를 덮어버림으로써 그로 인한 형벌을 모면키 위하여 권력자에게 부정하게 지불하는
재물을 가리킨다(출 21:30;30:12;민 35:31,32).
갚으리라 - 기본 동사 '슈브'(* )는 '돌아가다', '회복하다'란 뜻으로서, 곧
타인의 재물을 부당하게 취했다가 손해 배상금과 함께 되돌려 주는 행위를 뜻한다
(6:3;눅 19:8).
=====12:4,5
백성들은 기소자(起訴者)의 입장에서, 그리고 '여호와'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
는 엄숙한 증인 앞에서 사무엘이 사사(士師)로서 그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전혀 책할
것이 없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이로써 백성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을 구한 자신들
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 되고 말았다(Calvin).
=====12:6
여호와께서 과거에 베푸셨던 특별한 은총을 언급하고 있는 본절과 같은 내용(출
20:2;신 5:6)은 고대 중근동 지역의 종주권(宗主權) 조약 문서에 흔히 나타난다. 즉
이와 같은 사실들을 언급함으로써, 왕은 봉신에 대하여 계속적인 충성심을 요구하였던
것이다(출 20:3-17;신 5:7-21). 여기서도 사무엘은 출애굽 구속 사건에 근거하여, 과
거 미천했던 이스라엘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셨던 크신 은총을 언급함으로
써, 백성들이 자신들의 참된 왕을 버리고 또다른 왕을 요구한 사실(8:5,20)이 얼마나
배은 망덕한 행위인가를 깨우쳐 주고 있다.
=====12:7
그런즉(* , 웨아타) - 앞서 언급된 행위의 논리적 결과를 소개할 때 사용되
는 접속사이다. 사무엘은 이제 6절의 내용을 법적 근거로 삼아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
못을 책망하려고 한다.
가만히 섰으라(* , 야차브) - 여기 이 단어는 중요하고도 특별한 토론에 임하
기 앞서, 먼저 필요한 마음 자세를 갖춰야 함을 시사하는 말이다(출 8:20;9:13;신
31:14;욥 33:5).
모든 의로운 일 - 여기서 '의로운 일'(* , 치드코트)은 문자적으로 '거룩
한 일'이란 의미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에 대해 하나님께서 베푸신 모든 일이 '의로운
일'인 까닭은, 그 모든 일이 하나님 당신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의로운 언약에 근거해
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삿 5:11;미 6:5).
여호와 앞에서...담론하리라 - 3,5절에 이어 여기서도 여호와 하나님이 '증인'(證
人)으로 언급되어진다. 한편 '담론하리라'(* , 이솨페타)는 '재판하리라',
'판단하리라', '국문하리라'의 의미이다(신 17:9;시 67:4;겔 11:10,11). 그러므로 사
무엘은 3,5절에서는 피고(被告)의 위치에 섰었으나, 이제는 백성들을 피고의 위치에
올려놓고, 자신은 재판관의 위치에 서서 그들을 심문하려 하고 있다. 이같은 행위를
통해 사무엘은 그릇된 동기(8:7)에서 왕을 요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을 정죄하
려는 것이었다.
=====12:8
야곱이 애굽에 들어간 후 - '야곱'은 아브라함의 손자요 이삭의 아들이었다(창
25:26). 그는 말년에 애굽 땅에서 총리가 된 아들 요셉을 보기 위하여 애굽으로 들어
가 거기서 정착하게 되었다(창 45:28). 그러나 사실상 야곱이 애굽으로 들어간 것은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예언했던 바를 성취시키려는 하나님의 오묘한 경륜과 섭리에 따
른 것이었다(창 15:13-16).
모세와 아론을 보내사 -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출키 위해 하나님에
의해 준비된 그릇이었다(출 2:1-22;히 12:23-25). 그리고 '아론'은 모세 보다 세 살
많은 형으로서(출 7:7), 모세의 어눌(語訥)함을 돕기 위해 하나님에 의해 모세와 함께
보내진 자였다(출 4:10,14-16).
애굽에서 인도하여...이곳에 거하게 - 이같은 사실, 즉 출애굽 사건과 가나안 정복
사건은 오직 하나님의 기적적 능력과 간섭에 의해 성취되었다는 점에서, 전적으로 하
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하신 일이었다. 따라서 그때 모세와 아론은 다만 하
나님의 도구로 쓰여졌을 뿐이었다.
=====12:9
그들이...여호와를 잊은지라 - 적어도 여호수아의 생전과, 가나안 족속들과의 전쟁
을 겪었던 세대가 살아 있었던 동안에는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경외하였을 것이다(수
24:31). 그러나 세대가 바뀌고 가나안 땅의 물질적 풍요에 점차 빠지게 되면서, 이스
라엘은 과거 여호와께서 자신들을 위해 베푸셨던 놀라운 역사를 잊어버리게 되었고,
따라서 필연적으로 이스라엘의 이러한 배은 망덕함은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게 되었
으며, 그 결과 그들은 이방의 압제하에 시달려야 했다.
하솔 군장 시스라 - '하솔'은 납달리 지경에 속하는 북부 팔레스틴의 주요 성읍으
로서, 갈릴리 호수 서북쪽 약 16km 지점에 위치하였다(수 11:1 주석 참조). 사사 시대
초기에 그 지역을 다스렸던 가나안 왕 '야빈'은 철병거 구백승을 보유한 강력한 군대
의 소유자였다(삿 4:3). 한편 '시스라'는 하솔 왕 야빈의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을 20
년 동안이나 괴롭혔던 당사자였다(삿 4:2). 이들은 결국 여사사 드보라와 사사 바락의
활약에 의해 패퇴되고 말았다(삿 4:4-24).
블레셋 사람 - 역사상 블레셋 족속은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족속들이었다.
이들의 이스라엘에 대한 최초의 공격은 사사기 3:31에 언급되는데, 이때 이들은 사사
(士師) 삼갈의 활약에 의해 격퇴되었다. 또한 이들의 두번째 공격은 사사기 13-16장에
나타난다. 이때는 사사 삼손의 활약이 있었다. 그러나 삼손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그
때로부터 이스라엘은 다윗 즉위 초기까지 블레셋의 지배를 완전 벗어날 수 없었다(삿
13:1).
모압 왕 - '모압 왕'은 '에글론'을 가리킨다. 사사 시대 초기에 그는 암몬 족속 및
아말렉 족속과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약 18년간 지배하였다(삿 3:12-14). 그
러나 이들은 결국 '에훗'이라는 사사에 의해 격퇴되었다(삿 3:15-30).
=====12:10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는 사무엘의 메시지 속에는 특히 이스라엘의 구약 역사에
서 적나라하게 반복되어 나타는 바, 독특한 역사 철학(歷史哲學)이 깃들어 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바로 섬길 때에는 평안과 번영을 구가한 반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길 때에는 반드시 이방의 압제와 핍박으로 시달림을 받았다는 사실이
다. 그런 맥락에서 여기 본절도 이스라엘이 환난을 당한 까닭은 하나님을 망각한 그들
의 영적.도덕적 범죄 때문이었으며, 그들이 환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요인은 하나님
께 대한 온전한 회개였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7:3-6). 결국 사무엘은 여기서 이같은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이방에 대한 자신들의 패전(敗戰) 원인을 열방과 같은 왕과 조
직된 군대의 부재(不在)에서 찾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리석음을 질책하고 있는 것
이다.
바알들과 아스다롯 - 이 우상들은 가나안 족속들이 섬기던 대표적인 우상들이었다.
삿 2:13;10:6;삼상 7:3,4 주석 참조.
=====12:11
사무엘은 9절에서 패역한 이스라엘을 실제로 징치했던 도구 중 일부만을 언급했듯
이, 본절도 이스라엘을 환난에서 구원했던 여러 사사 중 일부만을 언급하고 있다.
여룹바알 - 이 사사는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압제에서 구원한 사사였다(삿 6,7장;히
11:32). 이 사사의 본래 이름은 '기드온'(Gideon)이었으나, 그가 바알 신상을 훼파한
연고로 '바알에게 대항하다'라는 의미의 '여룹바알'(Jerubbaal)이라는 이름이 붙여졌
다(삿 6:32).
베단(* ) -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을 이방의 압제로부터 구원한 이 사사(士師)
가 과연 누구를 가리키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여러 이견이 있다. 왜냐하면 '베단'(Be
-dan)이라는 이름은 사사기에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1)사사로서
이스라엘을 위해 활약하기는 했지만, 단지 그 이름이 생략된 유명한 사람일 것이라는
견해, (2)대상 7:17에 이 이름이 마길의 후손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길르앗의 '야
일'(삿 10:3)을 가리킨다는 견해, (3)베단(Bedan)이란 이름을 압돈(Abdon)의 압축형으
로 보고, 곧 사사 '압돈'(삿 12:13)을 가리킨다는 견해(Gesenius, Ewald), (4)'베단'
을 '벤-단'(단 자파의 아들)에 대한 표기로 보고, 곧 단 지파의 '삼손'(삿 13:2,24)을
가리킨다는 견해(Kimchi), (5)'베단'(* )을 '바락'(* )에 대한 필사자의 오
기(誤記)로 보고, 곧 이스라엘을 하솔의 군대 장관 시스라의 손으로부터 구원한 사사
'바락'(Barak, 삿 4:6)으로 보는 견해(LXX, the Syriac, the Arabic) 등이 있다. 그런
데 이들 사사들의 업적이나 전체 문맥, 그리고 문법적인 상황등을 고찰해 보면, 이들
견해 중 다섯번째의 견해대로 '베단'(Bedan)은 곧 사사 '바락'(Barak)을 가리키는 것
같다(히 11:32). 즉 대부분의 학자들(Keil, Fay, Smith)은 사본 전승 과정상 필사자들
이 그 단어의 유사성 때문에 '바락'(* )을 '베단'(* )으로 잘못 베꼈을 가능
성이 가장 높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Keil & Delitzsch, Vol. II-ii.p.117-118;Lange,
Commentary on the Holy Scripture). 한편 이 사사(士師)는 여사사 드보라와 함께 가
나안 왕 야빈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사였다(9절;4:4-24;히 11:32).
사무엘 - 사사로서 '사무엘'은 미스바 전투(7:7-11)의 승리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을 블레셋의 압제에서 구출하였으며(7:13), 또한 아모리 족속의 외침(外侵)으로
부터도 이스라엘을 보호하였다(7:14). 한편 어떤 역본들(the Syriac, the Arabic)은
사무엘이 이처럼 자신을 스스로 이스라엘을 이방의 압제로부터 구원시킨 영웅들의 반
열에 넣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하에서, 여기 '사무엘'의 이름 대신에 '삼손'이란
이름으로 대치하였다. 그러나 그처럼 바꿀만한 타당성은 전혀 없다(Keil, Fay). 따라
서 대부분의 권위있는 역본들(LXX, Vulgate, the Chaldee)은 맛소라 본문(MT) 그대로
'사무엘'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12:12
본절은 이스라엘에 대한 암몬 족속의 침략 위협이,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사무엘에
게 왕을 요구하기 이전에도 이미 존재하였음을 시사해 준다. 결국 이 사실이 이스라엘
로 하여금 열방과 같은 왕을 요구하게끔 만든 가장 직접적인 요인이었음이 분명하다.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 - 11:1 주석 참조.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 - 이 말은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
로 모시고 의지할 경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친히 싸워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적으로 보여 준다(8:7). 사무엘은 여기서 이같은 말을 함으로써, 이스라엘이 열방
과 같은 왕을 세워 외적과 싸우도록 한 것은 곧 여호와를 자신들의 왕으로 더이상 인
정치 않는(8:7,8) 영적 배신 행위였음을 강조한 것이다.
=====12:13
본절은 자신들의 세속적 이익을 보장해 주는 열방과 같은 왕이 되기를 바라는 백성
들의 인본주의적 기대와, 율법의 말씀에 근거한 당신의 대리자적 왕이 되기를 바라시
는 하나님의 신적 기대가 엇갈린 가운데 마침내 이스라엘의 왕이 등장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너희의 구한 왕...택한 왕 - 이 말은 이스라엘의 왕이 결코 하나님의 뜻에 의해 배
출되거나, 사무엘 자신의 개입에 의해 등장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강력한 요구(8:19,20)에 의해 세워진 것임을 시사해 주는 말이다(Keil).
여호와께서...왕을 세우셨느니라 - 이것은 이스라엘의 왕정(王政) 제도가 처음부터
하나님의 기쁘신 섭리와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임을 가리키는 말이 결코 아니다(17
절). 이것은 단지 하나님께서, 충분한 만류와 경고(8:11-18)를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백성들의 강력한 왕 요구를 결국 추인(追認)하셨음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의 모든 왕들은 결국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인 만큼, 하나님의 뜻과 명
령을 충실히 좇아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들이 하나님의 뜻
과 명령을 좇을 때, 하나님께서도 그 왕들을 통해 역사하실 것이었다.
=====12:14,15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왕이 '열방과 같은' 왕이 되기를 바라는(8:5,20)
세속적이고 인본주의적 동기에서 왕을 구하고 세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왕이 당신의
뜻을 구현시키고 펼치는 신적 대리자(神的代理者)가 되기를 바라고 계셨다. 이에 따라
선지자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과 왕에게 축복과 징계의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이스라
엘의 왕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왕이 될 수 있는 길을 보여 준다. 그 축복과 징계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즉 (1)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헌신했는가의 여부, (2)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는가의 여부, (3)하나님의 인도대로 행할 만반의 준비를 갖췄는가의 여
부 등이다.
여호와의 명령 - 문자적으로는 '여호와의 말씀'이란 뜻으로, 결국 이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가리킨다.
여호와를 좇으면 - 성경에서 어느 특정인을 좇는 행위는 종종 그 특정인의 참된 백
성됨을 증명하는 행동으로 나타난다(삼하 2:10;왕상 12:20;16:21). 따라서 여호와를
좇는 것은 스스로가 여호와의 백성, 즉 여호와를 자신의 왕으로 인정하는 백성임을 증
명하는 행위와 같은 것이었다(Klein).
너희의 열조를 치신 것같이(* , 우바아보테켐) - 70인역은 이 말
을 의역하여, 여기 '열조'를 '왕'으로 바꾸어 곧 '너희 왕을 치신 것 같이'(*
, 에피-톤 바실레아 휘몬)로 번역했으나, 그 타당성은
희박하다(Keil). 왜냐하면 실로 이스라엘은 '열조 때로부터'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할
때는 형통과 번영을 구가했지만, 거역하고 불순종할 때는 반드시 징계와 심판을 면치
못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2:16
이제(* , 감 아타) - 이 말은 2절의 '이제'처럼, 앞선 행동의 논리적
결과를 서술하기 앞서 사용되는 접속사이다. 따라서 이것은, 본절의 내용이 15절의 내
용과 논리적 연관성을 지님을 보여 준다.
가만히 서서 - 특별한 사항을 언급하기에 앞서 먼저 주의를 환기시킬 필요성이 있
을 때 흔히 사용되는 말이다(출 8:20;9:13;신 31:14;욥 33:5). 7절 주석 참조.
=====12:17
오늘은 밀 베는 때 - 팔레스틴의 경우 '밀 베는 때'는 대개 4월 세째 주일부터 6월
둘째 주일까지로서(6:13),이때는 비가 전연 내리지 않는 건조기이다(Graff,Robinson).
따라서 사무엘의 이같은 언급은 다음에 나오는 기상 이변이 오직 여호와의 초자연적인
형상임을 입증코자 함이었다.
우뢰와 비 - 이것은 분명 뇌성을 동반한 폭풍우임이 확실하다. 여기서 '우뢰'(*
, 콜)는 고대인들에게 여호와의 진노의 목소리로 여겨져, 큰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
다(출 9:23;시 18:14;29:3). 아무튼 여기 우뢰와 비는 하나님의 이적 현상으로, 이는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고 청종치 아니하면(15절),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언제 어느 때라도 그 백성들 위에 내릴 것이란 사실을 현시하는 전조적
(前兆的) 현상이었다.
=====12:18
여호와와 사무엘을...두려워하니라 - 밀 베는 때에 내린 큰 우뢰와 비의 현상은 백
성들을 두렵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즉 그때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이러한 초자연적인
기적을 베푸신 당사자였으며, 또한 사무엘은 여호와로 하여금 그같은 기적을 일으키시
도록 간구한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여호와'와 '사무엘'을 함께 큰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두려움'(경외)은 백성들이 여호와는 물론, 여호와의 선지자들
에 대해서도 반드시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였다. 사실 모든 백성들에 의해 두려움의
대상으로 간주되었던(수 4:14) 모세도 자신과 같은 선지자의 출현을 예언함으로써(신
18:15), 모든 여호와의 선지자들이 백성들에 의해 두려움과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을 암시하였다.
=====12:19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기도하여 - 백성들을 위한 중보(中保) 기도는 하나님의 선
지자가 담당했던 중요한 사역이었다. 선지자의 모범으로 봐야 할 모세는 백성들의 죄
를 위하여, 심지어는 대제사장 아론이 범한 죄의 용서를 위하여서도 하나님께 종종 중
보 기도를 했었다(민 11:1,2;12:13;14:19,20;신 9:20). 한편 선지자로서의 사무엘도
이미 백성들을 위해 중보 기도를 한 일이 있었다(7:5,8).
우리가...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 - 사무엘의 감화력 있는 메시지와 여호와
의 초자연적인 이적 현상을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침내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동
기에서 집요하게 왕을 구한 (8:5,19,20;12:12)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였다. 그
러므로 향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록 왕정 체제하에서 왕을 두고 있다고 할지라도, 진
정 자신들의 참된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늘 잊지 말아야 했다.
=====12:20
그릇된 동기에서 왕을 구한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
해 사무엘은 위로와 권면, 그리고 경고의 말을 함으로써 왕을 세우는 문제에 대한 자
신의 메시지를 최종 마무리 짓는다.
=====12:21
돌이켜(* , 수르) - 이는 '떠나다', '제거하다', '옮기다'란 의미로서, 의지
적(意志的) 행위가 수반된 적극적.전인격적 회개를 뜻한다(왕하 10:29;대하 15:17;느
9:19). 그런데 히브리 원문에는 본 단어 뒤에 '왜냐하면'(* , 키)이라는 의미의 접
속사에 이끌리는 내용들이 언급되어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이켜'야만 하는 분
명한 이유를 제시해 주고 있다.
유익하게도...구원하지도 못하는 - '유익하다'(* , 야알)는 '경제적인 이득을
가져다 주다'의 의미이며(잠 10:2;렘 12:13), '구원하다'(* , 나찰)는 '정치적.
영적 환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의 의미를 갖는다(삼하 12:7;사 37:12). 그러나,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경제적.정치적 목적에 따라 계속적으로 우상을 섬겼으나(왕상
11:5;호 2:5), 그 우상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오히려 망하고 말았다(대하
33:11;36:11-17).
그들은 헛되니라 - 여기서 '헛되니라'(* , 토후)라는 단어는 '텅비다', '가치
없다', '공허하다'란 의미로서 우상의 속성을 가리키는데, 이는 또한 이 세상의 창조
과정 초기에, 창조될 것이 아직 창조되지 않아 공허하며 혼돈스러웠던 지구의 상태를
가리킬 때에도 사용되었다(창 1:2). 한편 선지자 이사야와 사도 바울도 이 단어를 '우
상'에 적용시켰다(사 44:9,10;57:12;고전 8:4).
=====12:22
앞서 사무엘은 백성들이 축복을 받는 길은 백성들의 순종적인 행위 여부에 따라 좌
우된다고 말한 반면(14절), 여기서는 이스라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보다 신적(神
的)인 두 가지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 신적인 근거는 곧 '하나님의 선택'과 '하
나님의 그 크신 이름'이다. 한편 후일 다윗은 '하나님의 선택'과 '크신 이름'으로 인
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였다(삼하 7:23,24).
자기 백성 삼으신 것을 - 이것은 하나님께서 많은 민족들 중에서 특별히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신 사실을 가리킨다(신 7:6;14:2;27:9;왕하 11:17). 한편, 이같은 이스
라엘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의 언약(창
12:1-3;15:3-6;17:4-8)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선택은 오직 이스라엘 백성들
만의 유익을 위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다만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이스라엘을 제사장적 나라로 삼아(출 19:6), 열방의 구원을 위한 도구로 선택하셨을
뿐이다(창 12:1-3).
그 크신 이름 - 구약 성경에서의 '이름'(* , 쉠)은 특정한 인물이 지닌 인격의
총체를 가리킨다(히 1:4). 따라서 여기의 '그 크신 이름'은 하나님의 절대적 속성 및
인격을 뜻함이 분명하다(민 23:19). 그런데 특별히 여기의 '이름'은 선택(election)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당신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불변성 및 신실성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수 7:9;사 48:9;렘44:26;겔 20:9,14,22;36:23).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이 결코 취
소되지 않을 것임을 뜻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구원될 것을 가리키
지는 않는다(롬 9:13,27).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집단적으로
선택하셨지, 그 민족에 속한 한 개인 개인을 개별적으로 모두 선택하시지는 않았기 때
문이다. 따라서 각자의 신앙과 불신앙 여부에 따라 개인은 구원 혹은 멸망을 당하되,
민족은 비록 징계는 당하나 결코 완전 멸망당함 없이 계속 남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갈 것이었다(Pulpit Commentary).
=====12:23
본절에서 선지자 사무엘은 지금까지도 그래 왔거니와 앞으로도 이스라엘 백성을 위
하여 끊임없이 하기로 작정한 바를 두 가지 언급하고 있다.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범치 아니하고 - 중보(中保)의 임무를 띤 선지자로서 사무
엘은, 중보의 기도를 게을리하는 것은 분명 죄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그
때 사무엘은 왕을 요구한 이스라엘의 범죄가 자신이 그들을 위해 좀더 열심히 중보 기
도하지 않음으로 야기된 것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선하고 의로운 도로...가르칠 것인즉 - 여기서 '선하고'(* , 토브)와 '의로
운'(* , 야솨르)은 거의 동일한 의미의 단어들로서, 하나님의 율법의 성격을 보
여 주는 말이다. 특히 여기서 사무엘은 이같이 비슷한 단어를 중복 사용함으로써 그
의미를 강화하고 있다(렘 40:4). 한편 '도'(* , 데레크)는 '행실', '도리'란 의
미이다. 결국 이것은, 사무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영적. 윤
리적으로 올바른 삶 가운데로 인도하겠다는 신앙 교육의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수
1:8;시 25:4;딤후 3:16,17).
=====12:24
여기서도 사무엘은 먼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덕을 말한 후, 이어 백성들이
그러한 크신 은혜에 대하여 '경외'와 '섬김'으로써 여호와께 응답해야 할 것임을 말한
다.
여호와께서...행하신 그 큰 일 - 이것은 18절에 언급된 초자연적 기상(氣象) 이변
현상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리고 카일(Keil)이 생각하는 것처럼, 여호와께서 이스라
엘 백성들에게 왕을 주신 일을 가리키는 것 같지도 않다. 여기서는 '큰 일'이 복수라
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해 베푸신 모든 은총으로 봄이 타당
한 듯하다(R.Payne Smith).
오직 그를 경외하며...진실히 섬기라 - '경외'와 '섬김'은 종이 주인에 대해 반드
시 갖추어야 할 태도이다. 그런데 사무엘은 여기서 이같은 자세를 오직 이스라엘을 위
해 온갖 큰 은혜를 베푸신 여호와 하나님께만 가질 것을 권고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
들이 하나님 대신 세상 왕이나 우상을 섬기는 패역한 자리에 떨어지지 않기를 훈계하
고 있다.
=====12:25
여전히 악을 행하면 -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미 하나님 앞에 결정적인 범죄
를 했음을 암시해 주는 말이다. 아마도 여기서 사무엘이 염두에 두고 있는 백성들의
범죄 내용는, 그들이 열방과 같은 세상 왕을 요구함으로써(8:5,19,20) 그동안 이스라
엘을 인도하시고 통치하신 하나님의 왕권(王權)을 무시했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19
절). 나아가 그 악(惡)은 20-24절을 고려할 때, 왕을 구하는 것과 같은 그러한 패역한
마음 자세로서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고 헛된 우상들을 좇는 그러한 악을 가리킬
것이다.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 - 사무엘의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처럼
왕(王)이 그들을 이방의 모든 압제와 공격으로부터 구원해 주는 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비록 이스라엘이 왕정 제도하에서 강력한 왕과 중앙 정부를 갖추고 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는 것이고, 따라서 그들의 흥망 성쇠 여
부는 오직 여호와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 여부에 달린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스
라엘 백성들은 왕을 의지할 것이 아니라, 그 왕을 중심으로 여호와를 신실히 경외하고
섬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분명 깨달아야만 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 왕의
운명은 진정 이스라엘의 참 왕이 되시고, 또한 만왕의 왕 되시는 여호와께 전적으로
달려 있는 것이다.
사무엘상 제 13장
=====13:1
구약 성경 중 특히 사무엘서는 본문 전승 과정상의 문제로 인하여 숫자상의난제가
많이 발견된다. 본절도 그러한 경우에 속하는데, 비록 본서 저자가 일반적인 열왕기의
기술법에 따라(삼하2:10; 5:4; 왕상14:21; 22:42) 왕의 즉위 년도 및 통치 기간 등을
밝히고자 의도적으로 시도했을지라도, 여러 사본상의 차이로 인하여 그 해석에 있어
많은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세라(* , 벤 솨나
솨울 베말르크) - 이 말을 직역하면 '사울이 왕이 될 때에 한 살(일년)이었다'(It was
one year since Saul became king)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
인다면 많은 문제점이 따르게 되므로, 여기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제기되었다. (1) 이
말을 의역하여, '사울이왕이 될 때에 한 살 난 어린이와 같았다'라는 해석이 있다
(Targum, the Chaldee). 이것은 사울이 그만큼 순진했거나 또는 유치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 해석은 너무 지나친 의역(意譯)으로서 그 타당성은 없다. (2) 원문의 '살'
(year)앞에 나이를 표시하는 알파벱 또는 단어가 필사자의 실수로 탈락되었다고 보고,
추측하여 '사울이 왕이 될 때에 30세이었더라'라고 해석하기도 한다(Origen의
hexapla). 그러나 당시 사울에게는 병력을 통솔하고(3절) 적군을 무찌를 만큼(14:4)
성숙한 아들 요나단이 있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이 해석 역시 적당치 않다. (3) 70인역
(LXX)은 이것을 원문에 없는 말로 보고, 아예 여기서 이 문구를 빼어버렸다. 그러나
이것은 히브리 본문을 너무 가볍게 취급한 것이다. (4) 이 말을 약간 의역하여, '사울
이 일년을 다스렸다'(saul regned one year)라는 해석이 있다.(KJV). 그러나 이것은
이어 나오는 '다스린 지'(* , 말라크)라는 말과 중복된다는 점에서 타당치 않은
듯하다. (5) 이 말을 본문 그대로 충실히 번역하여 '사울이 왕이 된 지 일년이었더라'
라고 보는 해석이 있다(the Vulgate, Grotius). 그런데 우리는 이 다섯번째의 해석이
가장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그같이 볼 수 있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즉 다섯
번째의 해석은 첫재, 성경은 우선 문자적 해석을 해야 한다는 해석 원리에 부합되며
둘째, 본절의 다음 문구인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 년에'라는 말의 의미는 무
엇인가? 그것은 사울이 실제적으로만 일 년 간 이스라엘의 왕 노릇을 했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 년 - 이 말은 이스라엘의 독특한 왕의 통치 기간 계산 방
법을 통해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즉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그해 니산(Nisan, 혹은
아빕)월에서 다음 해 니산 월까지를 통치기간 1년으로 보지만, 실제 통치 1년 간의 중
간에 니산 월이 걸리면 비록 만 1년이 되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통치 긴간을 2년으로
보았다. 따라서 여기의 '이 년'은 실제적으로는 1년이되, 그 중간에 니산 월이 끔으로
인하여 이같이 계산되었던 것 같다(Grotius, Clericus).
=====13:2
이스라엘 사람 삼천을 택하여 - 히브리 원문에는 '택하여' 앞에 '자신을 위하여'(*
, 로)라는 말이 있다. 그러므로 여기의 이같은 행위는 암몬과의 싸움을 위하여 사
울이 온 백성을 군대로 소집한 것과는 성격상전혀 다르다(11:7,8). 즉 사울이 택한 삼
천 명은, 열방과 같은 왕르로서의 자신의 직임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잘
훈련된 정예군이었을 것이다(Fay, Smith). 따라서 이것은 성전(聖戰)을 위해 자발적으
로 모인 병력이라기 보다는 사울이 자신으 가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 중
차출한 근위병적 성격이 강한 군대임이 분명하다(Klein; 14:52).
이천은...믹마스와 벧엘 산에 - 여기서 '믹마스'(Michmash)는 예루살렘 북쪽 약
15km, 기브아에서 북동쪽으로 약 7km 떨어졌으며, 해발 약 660m 정도의 고지에 위치하
였다(Driver). 그러나 이같은 정도의 높이는 그 지역에서는 저지(低地)에 속한 편이었
다(사10:28,29). 그런데 이곳 믹마스의 남족은 '와디수웨이닛'(Wadi Suweinit)이라는
협곡과 연결되어 있으며, 또한 남동쪽으로는 가파른 고개들이 있어 군사적 요충지가
될 수 있었다. 특히 이곳은 보리의 산출이 많은 곳인데, 오늘날의 위치는 '묵마스'
(Mukhmas)이다(Robinson). 한편 '벧엘 산'(Mt.Bethel)은 본서의 다른 곳에서는 그냥
'벧엘'로 나온다. 이곳은 믹마스 북서쪽 약 7km 지점의 해발 약 960m의 고지에 위치했
었다. 바로 이같은 이 지역의 표고(標高)때문에, 여기서는 '벧엘 산'으로 지칭된 것이
다. 한편, 여기서 사울의 이같은 군사 행동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오잴 블레셋의 압
제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보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Leon Wood).
일천은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 사울의 장자 '요나단'(Jonathan)은 여기
서 처음 등장한다.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주셨다'이다. 한편 '베냐민 기브아'
(Gibeah of Benjamin)는 사울의 고향 기브아를 가리키며, 또한 이곳은 이스라엘에 대
한 사울의 통치 거점이였다<10:26>.
남은 백성은...장막으로 보내니라 - 이것은 사울이 그당시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소집했다가 다시 돌려보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들이 그때 소집되지 않았
음을 강조할 뿐이다. 사울이 이같이 한 이유는, 그는 (1) 훈련 안된 일반 백성들은 블
레셋의 강한 군대를 이길 수 없다고 보았으며, (2) 또한 은밀한 가운데 블레셋 군대를
기습 공격하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편 이와 관련하여 카일(Keil)은, 당시 사울은
길갈에서 왕의 대관식을 마친 뒤(11:15) 이스라엘 백성 중 3,000명을 뽑고 나머지는
각자의 집으로 돌려보냈던 것이라고 추측하나(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Vo1.2-ii, p.125), 13:1의 진술과 비교해 볼 때 시간상으로 의문이 많다.
=====13:3
게바에 있는 블레셋...수비대 - 여기서 '게바'(Geba)는 '기브아'와는 분명히 구별
되는 곳으로, 기브아 북동쪽 약 5km 지점에 위치한 지역이다. 오늘날의 우치는 '예바'
(Jeba)로 판명된다. 그리고 '수비대'는 '기지' 혹은 '요새'란 뜻으로서, 아미도 이스
라엘에 대한 블레셋의 통치 기간 중(삿13:1) 이스라엘의 주요 거점에 설치한 불레셋의
'군사 초소' 또는 '파견 진지'를 가리키는 것 같다. 10:5 주석 참조. 한편 이처럼 이
스라엘 영토 깊숙한 곳에 블레셋의 수비대가 잇었다는 사실은그당시 이스라엘이 불레
셋에 의해 많은 압제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9:16>.
치매(* , 나카) - 원래 '상하게 하다', '때리다', '죽이다'란 의미로서, 상
대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군사적인 공격 행위를 가리킨다(삼하13:28; 왕하
10:25; 13:19; 대상18:9). 따라서 여기에 이단어가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요나단의
군대에 의해 블레셋의 수비대가 거의 전멸되었음을 시사해 준다. 한편 사울 휘하의 이
천 군사가 포진한 믹마스와 벧엘 산은 블레셋 수비대가 있던 게바 북쪽에, 그리고 요
나단이 이끈 이천 군사가 포진한 베냐민 기브아는 게바 남쪽에 가각 위치하고 있었다
(2절). 따라서 그 포진 상태로 보아 사울과 요나단은 협공 기습 작전으로 게바의 블레
셋 수비대를 공격하려했던 것 같다. 즉, 요나단의 군대가 정면 공격을 감행한 것 같
고, 사울은 후방에서 공격을시도한 것 같다(R.Payne Smith).
블레셋 사람이 이를 들은지라 - 여기서 '블레셋 사람'(the Philistines)은 블레셋
의 본토 주민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때 요나단에 의해 패배를 당한 '수비대'의 패잔
병은 약 40km 정도 떨어진 자신들의 블레셋 영토까지 패주하여 자신들이 당했던 사실
은 보고했던 것이다.
사울이 온 땅에 나팔을 불어 - 여기의 '나팔'(* , 쇼파르)은 '양의 뿔'
(the ram's horn)을 가리킨다. 한편 성경에서 '나팔'을 부는 행위는 '위험'을경고하
며, '성전'(聖戰, the Holy War)을 선포할 때 주로 언급된다(수6:4; 삿6:34; 렘4:19;
겔33:3). 따라서 사울의 이같은 행동은 블레셋 수비대를 격파한 승리의 소식을 알림과
동시에, 블레셋과의 대규모 전쟁을 준비키 위해 백성들을 소집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
이었다.
히브리 사람들은 들으라 - '히브리 사람'(the Hebrews)이라는 명칭은이스라엘 사람
들 스스로에 의해서 자신들 상호간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명칭은 타민족이
이스라엘 민족의 저항과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려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70인역(LXX)
은 '종들은 항거할지어다'(* , 에쎄테카신
호이 둘로이)라고 번역했으나, 그것은너무 지나친 의역이다. 그리고 '들으라'(*
, 솨마)는 명령법으로 사용될 경우 상대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사용되는 단어이다(신6:3,4; 삼하20:16; 대하13:4). 따라서 여기서 그 구체적인 내용
은 4절을 참조할 때, 아마도 사울과 요나단이 불레셋 수비대를 격파함으로 인해 격분
한 블레셋이 대규모 반격을 시도하려고 한다는 내용일 것이다(F.R.Fay).
=====13:4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 - 10:5에는 '블레셋 사람의 영문'으로 나타나 있다. 10:5 주
석 참조.
가증히 여김이 되었다 - 이 단어(* , 니브아쉬)는 원래 '악취가 나다'란
의미이지만, 여기서처럼 수동형으로 사용될겨우 '증오(혐오)의대상이 되다'란 뜻이 된
다(27:12; 출8:14; 삼하10:6). 한편, 블레셋이 이토록 격분한 이유는 물론 직접적으로
는 사울과 요나단이자신들의 수비대를 공격 격파한 사실이지만, 그 전에 먼저 이스라
엘이 그들의 왕을 세우고, 그 왕을 중심으로 군사력을 확보하여 암몬 군대를 물리치는
등 전면적으로 블레셋에 항거하는 일련의 행동을 취하였기 때문이다(R. Payne smith).
길갈 - '길갈'(Gilgal)은 요단 서편 약 6km 지점에 위치한 지역이다<7:16; 11:14>.
한편 사울이 이 지역을 백성들의 집결 장소로 선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요단
강 평야에 속한 들판이어서 병력집결이 요이하였고, (2) 자신이 백성들에 의해 왕으로
세워진 곳이었으므로,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으
며, (3) 당시 정치적 수도라 할 수 잇는 사울의 고향기브아는그 지리적 위치상 블레셋
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여...좇으니라(* , 차아크) -이 단어는 원래 '소리치다', '부르짓다'란 의
미이나, 여기서처럼 수동형으로 사용될 경우 '군사적 목저의 대규모 집결 행위'를 가
리킨다(삿7:23,24; 10:17; 12:1; 왕하3:21).
=====13:5
저자는 본절에서 블레셋 수비대에 대한 이스라엘의 습격에 대해 블레셋의 분노가
얼마나 컸고, 따라서 그 박격이 얼마나 거세었는지를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병거가 삼만...마병이 육천 - 여기의 이 숙자들은 서로 잘 조화되지 않는다. 왜냐
하면 증근동 지방에 있었던 고대의 전쟁에서 '병거'(chariot)의 숫자가 '마병'
(horseman)의 숫자보다 많은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삼하10:18; 왕상10:26; 대하
12:3). 이에 대해 혹자(Wordsworth)은 블레셋이 다른 동맥국들로부터 병거를 삯내어
빌려온 것이라고 주장하나, 당시 블레셋이 군사력이나 군사 장비에 있어 전혀 이스라
엘에 뒤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추측은 무리이다. 따라서 여기에 나타난 '병거'의
숫자 '삼만'은 필사자의 실수에 따라 과대하게 표기됐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러한
실수가 야기된 동기는 아마도 다음과 같을 것이다. 즉 (1) 원본은 1,000이었을 것이
나, 필사자가 필사 중 1,000앞에 나오는 * (이스라엘)의 끝자 * ('라멧'-
히브리 알파벱 수치상 '30'을 나타내는 단어)을 중복 기록함으로써 30,000이란 숫자로
잘못 전달되었을 가능성(Thenius, De Rossi, Bunsen), (2) 원본은 3,000이었을 것이
나, 필사자가 필사(筆寫)중 3,000을 나타내는 숫자 '쉘로쉐느 엘레프'(*
)중 '쉰'(* -히브리 알파벱 수치상 '300을 나타내는 단어)에 점을 두개 찍음으
로써 30,000이란 숫자로 잘못 전달되었을 가능성(the Syriac, the arabic, Bo9chart,
Houbigant, Schulz)등이다(Pulpit Commentary, Keil & Delitzsch, Lange). 한편, 여기
의 '병거'(* , 레케브)는 보통 6개의 살이 달린 바퀴 두개가 달려으며, 두 필의
말이 끄는 전투용 수레였다. 이 수레의 대부분은 나무 및 가죽으로 이루어졌으나, 중
요 부분은 청동이나 처로 장갑(裝甲)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병거의 뒷편은 열려있
으나 앞면은 전사(戰士)의 보호를 위하여 어느 정도 높이까지 가리워져 있었다. 대개
의 경우 이병거에는 두 사람 정도가 탔다. 그리고 '마병'(** , 파라쉼)은
B.C.1200년 경에 처음 조직된 듯하며, 그 목적은 적군에게 내달리어 좌충 우돌하며 그
들의 대오를 흐트리고, 그리하여 적군에게 공포심을 조장하기 위함이었다.
백성은..모래 같이 많더라 - 블레셋 군대의 일반 '보명'(步兵)을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서 '모래 같이'란 표현은 숫자의 많음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는 독특한 성경적
표현이다(창13:16; 수11:4; 삿7:12; 삼하17:11).
벧아웬 동편 믹마스에 진 치매 - '벧아웬'(Bethaven)은 '사악한 집'이란 의미이다.
이곳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믹마스 동쪽 약 1.2km 지점으로 추정된다
(Aharoni). 한편 호세아에서는 '하나님의 집'으로 알려진 '벧엘'(Bethel)이 우상 숭배
의 장소로 타락하게 되자 경멸하는 뜻으로 '벧아웬'이라고 불려지게 됐음을 언급하고
있다(호10:5). 수7:2 주석 참조. 그기고 '믹마스'(Michmash, 2절 참조)는 후대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할 때, 앗수르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치러가면서 많은 병참 마차를 남겨
두었던 곳이었다(사10:28,29). 이같은 사실로 볼 때, 믹마스는 블레셋의 많은 군사들
을 포용할 만한 넓은 곳이었음이 분명하다. 또한 여기서 '진치매'는 문자적으로 '장막
을 세우다'란 뜻이다.
=====13:6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 여기서 '위급함'(* , 차르)은 '포위공격하다', '고
통당하다'에서 온 말로서, 물리적인 압박에 의하여 극도의심적(心的) 고통을 느끼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28:15; 민 33:55; 삿11:7; 시31:9; 애1:20). 그리고 '절
박하다'(* , 나가스)란 말 역시 '몰다', '내리누르다', '괴롭게 하다'란 의미로
서, 곧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상태를 가리킨다. 결국 이 말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울
의 뜻에 응하여 모였으나, 블레셋의 막강한 군사력의 위용에 기가 질려 전의(戰意)를
상실한 상태를 묘사하는 말이다.
굴과 수풀과 바위틈 - '굴'(cave)은 팔레스틴 지방에서 흔히 발견되는석회암으로이
루어진 천연 동굴을 가리킨다. 후일 다윗도 사울으로부터 추격을 받을 때, 이러한 국
속에 피신한 적이 종종 있었다(24:3). 그리고 '수풀'(* , 호아흐)은 가시나무가
울창한 곳을 가리킨다(왕하14:9; 대하25:18; 아2:2). 또한 '바위틈'(crags)은 커다란
바위들 사이를 뜻한다(민24:21; 삿15:8; 사2:21).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 - 여기서 '은밀한 곳'(* , 체리아흐)은 (1)
아랍어에서 온 단어로 보고,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무덤 속의 한 공간을 가
리킨다는 해석(Klein), (2) 팔레스틴의 지형적 조건을 염두에 두고, 지하에 형성된 자
연적인 공동(空洞)을 가리킨다는 해석(Driver), (3) 성경에 나타나는 이 단어의 다른
용례를 중시하여, 건물의 한 방을 가리킨다는 해석(삿9:46,49)등이 있다. 그런데 이러
한 견해들 중, 여기의 전투 장소가 사람들이 살지 않는 산악(山岳)지역이라는점을감안
한다면 두번째의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한편 '웅덩이'(cistern, NIV; pit, KJV)
는 말라버린 우물의 구덩이, 또는 물을 저장할 목적으로 파놓은 구덩이 등 모두를 뜻
한다(R.Payne smith).
=====13:7
어떤 히브리 사람들 - 원문은 '그리고 히브리 사람들'이란 뜻이며, '어떤(some)이
란 말은 없다. 아마도 번역자가 문맥상 삽입한 것 같다. 한편 '히브리 사람'(*
, 이브림-the Hebrews)은 이스라엘 민족에 대하여 이방 민족들이 경멸조로 사
용한 말인데<3절>, 여기서는 이스라엘 사람인 저자에의해서 그 말이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저자가 여기서 일부 이스라엘 사람을 이같이 표현한 이유는 (1) 이들이 민족의
긴박한 상황을 무시한 채 요단 너머로 도피했다는 사실(Smith), (2) 또는, 추측컨데
이들이 전에 블레셋 족속의 용병으로 봉사했었다는 사실(gottwald) 중 하나 때문이었
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문맥상 첫번째의 견해가 타당한 것 같다.
요단 - 수4:19-24 강해, '요단강'을 참조하라.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가되 - '갓'(god)은 갓 지파가 여호수아로부터 기업으로 분배
받았던 땅을 가리킨다. 당시 갓 지파의 기업은 요단 동편, 므낫세 반 지파와 르우벤
지파의 기업 가운데 위치했었다(민32:1-7, 34-36; 수13:24-28). 그리고 '길르앗 땅'은
(1) 넓게는 요단 동편 지역 전체를(수22:9; 삿5:17). (2) 일반적으로는 요단 강 동쪽
의 땅 중 갈릴리 호수 남단에서 아르논 강까지를 가리킨다. 한편 이 지역은 서쪽으로
는, 해면보다 약 230m나 낮은 요단 계곡에서 갑자기 솟아오른 해발 약 1,100m 이상의
산등성이와 연결되어 있다. 또한 이 지역은 물이 많아 수목이 울창하며 목초지로도 훌
륭하였다.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 당시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투를 위하여 백성들을 소집
하면서 틀림업이 사무엘의 후원을 받았을 것이며, 따라서 이제 그는 블레섯과의 전투
에 소집된 백성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사무엘의 특별한 도움이 필요하였
다. 이에 다라 그는 사무엘을 기다리기 위하여 백성들이 소집될 장소로 지정된 길갈
(Gilgal)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분명 사울은 그때 블레셋을 격파한 미스바전
투(7:7-11)를 생각하면서, 이번 전쟁에서도 사무엘의 도움이 자신에게는 절대적으로필
요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13:8
eil, Fay, Smith). 즉 사울은 10:8의 사무엘의 명령에 따라 길갈에서 사무엘을 '이
레'동안 기다렸어야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10:8과 본절 사이에 전개된 많은
사건들, 즉 사울이 왕으로 공식 소개된 사건(10:27-24), 암몬 군대를 결파한 사건
(11:1-11), 사무엘의 길갈 메시지(12:1-25), 사울과요나단의 블레셋 수비대 공격
(13:1-4) 등의 사건들을 매우 신속히 진행된 일련의 사건들로 이해하여 시간상의 난제
를 해결하려 한다. 그러나 10:8에서의 사무엘의 명령은 오히려 11:14-12:25의기사와밀
접한 연관을 맺는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본서 11:14-12:25에는, 사무엘이 10:8에
서 언급한 주요 사항인 화목제와 사무엘의 훈계등이 확실히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11:15에는 10:8에서 언급된 제사 중 번제에 대한 언급은 없고 오직 화목제만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번제는 화목제가 드려질 때 필연적으로 함께 드려진다는 점에
서(1:24), 11:15에서 언급이 생략된 듯하다. 더구나 2년이나 지나서<1절> 시행될 일을
10:8에서 미리 지시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타당치 못하다. 따라서 여기의 '사무엘
의 정한 기간'은 본서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사울이 군사행동을 개시하기 전이나
혹은 군사 행동을 개시한 후 백성들을 소집하면서 사무엘과 사울 간에 약속된 또다른
기간으로 봄이 매우 자연스러울 것이다. 서무엘은 그대 일주일 후 길갈로 내려갈 것을
사울에게 약속했음에 틀림없다. 한편 여기서 '정한'이라는 말은 히브리 본문에는 없
고, 다만 칠십인역(LXX)과 갈대아역(The Chaldee)의 영항을 받은 번역자의 삽입일 뿐
이다. 아무튼 여기서의 핵심은 이러한 연대순의 문제가 아니라, 사울이 사무엘을 끝까
지 기다리지 아니했다는 것과, 따라서 사무엘의 제사장적 권위가 무시되어 결국 사울
이 하나님께 망령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기다리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 혹자(Edelkoort)는 여기서 사울이 사무
엘과 약속한 이레(7일)는 기다렸기 때문에, 기다리지 못한 잘못은 없고 다만 사무엘의
제사장적 기능을 침범한 잘못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사무엘이 약속된 이레
의 마지막 날이 완전히 지나도록 길갈에 오지 않았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사울이 사무엘과의 약속을 어긴 채 자신의 손으로 제사를 드린 그 시점을 기준으로 할
때 사무엘이 오지 않았음을 가리킨다(10절).
백성이...흩어지는지라 -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스바 전투(7:7-11)에서 사무엘의 집
전으로 번제를 드릴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블레셋 족속들에게 나타나 크게 승리할 수
있었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7:10,11>. 이러한 그들에게, 사무엘이 약속한
날이 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막강한 군사력을 소유한 블
레셋(5절)으로 인한 두려움을 가증시키는 결정적 요인이 됐음이 분명하다.
=====13:9
사울이...번제를 드렸더니 - 이것은 사울이 자신이 직접 제사장의 역할을 했다는
뜻은 아니다(smith). 그때 이 제사는 엘리으 증손자 아히멜렉에 의해서 시행되었을 것
이다(21:1' 22:9,16). 따라서 사울이 제사를 드렸다는 사실 그 자체로는 아무런 하자
가 없다. 다만 그때의 제사 성격상 반드시 사무엘에 의해 드려져야만했었을 제사를
(7:9) 사무엘 외에 다른 사람이 대충 드렸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었던 것이다. 이
것은 걸국 여호와의 선지자의 권위를 경솔히취급했다는 뜻이요, 그것은 곧 하나님으
뜻을 저버린 망령된 일(13절)과 다름 없었던 것이다. 한편, 본절에서 '번제'(*
, 올라)와 '화목제'(* , 쉘라밈) 앞에 각각 정관사 '하'(* , the)가 붙어
있는데, 이것은 사무엘이 드리도록 되어있는 '그'제사를 가리킨다(R.Payne Smith).
=====13:10
필하자...온지라 - 이 말은 그때 사울의 제사드린 행동이 지극히 성급한 것이었음
을 잘 보여 준다. 즉 이 말은 사울이 제사를 드린 때가 사무엘이오기로 약정된 그 날
이 저물기 훨씬 전이었음을 강력히 사시한다(Goslinga). 그러므로 그때 사울은 사무엘
의 약속을 굳게 믿고 그 날이 저물 때까지 온전히 사무엘을 기다렸어야만 옳았다.
사울이...문안하매 - 여기서 '문안하다'(* , 바라크)란 말은 하나님께 적용
될 때는 '찬송하다'(시34:1; 106:48), 그리고 사람에게 적용될 때는 '축복하다'(2:20;
시129:8)의 뜻으로 사용되는, 엄숙한 의식적(儀式的) 단어이다. 따라서 사울의 이같은
인사는 당시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사울이 하나님의 선지자 사무엘을 두렵게 생각하고
있었음을 잘 보여 준다.
=====13:11,12
본문은 사무엘의 도착 전에 제사를 드렸던 사울이 '왕의 행한 것이 무엇이뇨'라는
사무엘의 질책 섞인 질문에 국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 부분이다. 그 변명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즉 (1) 이스라엘 군사들의 흩어짐, (2) 사무엘의 도착 지연,
(3) 블레셋 군대의 공격 가능성 등이다. 결국 사울은 상황이 상황인 만큼 부득이 자신
이 제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는 변명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울의 변명은
결국 자신의 믿음이 부족한 것과 사무엘과 하나님을 끝까지 의뢰하지 못한불순종의 결
과에 다름아니었다. 진정 사울은 여호와께 기름 부음 받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그
누구 보다도 큰 전쟁에 임하기 전 여호와의 선지자 사무엘을 끝까지 기다려야만 했고,
그로 인해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해야만 옳았다. 그러나 사울은 그러한 순종과
믿음의 시험에 실패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부적격자라는 사실
을 입증시키고 말았다.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다 - 이것은 '여호와의 얼굴을 뵙지 못하였다'라는
문자적 의미를 의역한 것이다(출32:11; 렘26:19). 결국 사울은 그때 자신의 주도 하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써, 블레셋과의 전투에서의 승리를 기원하려 하였던 것이다.
사실 희생 제사는 성전(聖戰)에 앞서 항상 드려졌으며(7:9), 이 같이 한 증용한 이유
중의 하나는 그 성전의 신적 합법성을 하나님께로부터 승인받기위함이었다(7:9;
14:8-10,37; 23:2,9-12; 28:6; 30:7,8; 삿20:23,27; 삼하5:19,23).
=====13:13
괴악한 자 - 문자적으로 '어리석은 자'(the wanton fools, RSV)란 뜻이다. 그러나
이는 단지 지혜가 부족한 자가 아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므로 결국 멸망에 이를
수 밖에 없는 자를 가리킨다(시 14:1).
왕께 말하라...거절치 아니하시리라 - 다말의 이러한 말은 표면적으로만 이해할 때
틀린 것이다. 왜냐하면 다말은 왕께 말씀만 드리면 근친간(近親間)이라도 결혼이 가
능한 것처럼 말하고 있으나 율법에는 엄연히 근친 상간과 근친혼을 금지하고 있기 때
문이다(레 18:6-18). 그런데 이에 대해 혹자는 근친 상간에 대한 율법의 조항이 남매
간의 결혼을 완전히 금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Thenius).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율법에 명시된 분명한 사실을 아무 근거없이 부정하는 결과가 된다. 그뿐 아
니라 유대인들의 탈무드(Talmud)는 다말이 다윗의 친딸이 아닌 누군가의 사생아였기
때문에 암논과의 혼인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Wycliffe). 그러나 성경
은 다말이 다윗의 친딸임을 분명히 증거하고 있으니(1절 ; 대상 3:9)이 역시 그릇된
주장이다. 따라서 우리는 남매간의 결혼이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다말이 당시의 위급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임시 방편으로 이같이 둘러댄 것이라고 이
해해야 할 것이다(Keil, Lange, Payne, Josephus, Clericus).
', '악하다'란 의미로서, 곧 매우 어리석고도 사악한 범죄 행위를 가리킨다. 특히
성경적 의미로는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침범한 범죄 행위를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되
는 말이다.
왕이...여호와...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 여기서 '명령'은 성경에 구체적으
로 명시되어 있는 어떤 율법 규저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구원
을 위해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진 왕 사울 자신이 지켜야 했던 직무의 한계를 가리킨
다. 따라서 그때 사울은 성전(聖戰)의 문제에 관한 한 하나님의 선지자 사무엘의 절대
적 지도를 받아야 했다. 이것이 성전(Holy Wor)의 원리였다. 그러나 사울은 급박한 상
황을 이유로 들어(11,12절) 이같은 원리를 지키지 않았고, 바로 그것이 여호와의 명령
을 어기고 무시한 사울의 망령된 범죄 행위였던 것이다.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 이것은 사울 왕조가 조건적이었던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12:25). 즉 사울은 여호와를 향한 자신의 행동 여하에 따라 자신의 왕
권을 자신의 후손들에게 계속 이양할 수 있었던 것이다.
=====13:14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 여기의 이 말은 사울의 왕권이 그의 생전에 취소
될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Keil). 이것은다만 사울의 왕권이 그의 당대에서 끝날 것
이라는 뜻이다(13절). 한편 사울의 왕권이 그가 죽기 전에 취소될 것이라는 선언은 그
의 결정적인 두번째 실수(15:9,15) 뒤에 나타난다(15:17-23). 혹자는 여기서 사울의
첫 범죄에 대하여 하나님의 징벌이너누 가혹한 것이 아니냐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무엘을 통한 하나님의 생생한 경고(8:10-18)에도 불구하고 끝내 왕을
요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정 제도를 허락하신하나님의 뜻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그 누구보다도 철저히 깨닫고 실천해야만 했다. 즉 사울은 백성들의 요구대로
열방과 같은 왕(8:5,20)이되어서는 결코 안되며, 오직 하나님의 요구대로 그 뜻을 구
현하는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사울은 블레셋과의 대전투라는 중요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백성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열방과 같은 왕으로
전락되고 말았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왕권'을 성결케 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울의 거역 행위를 엄히 문책하신 것이다. 그러나 한편, 사울에 대한 하나님의징계는
결코 불변적이고 결정정인 것이 아니었다. 즉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후
에라도 사울이 자신의 잘못을 진정 뉘우치고 회개했더라면, 그는 자신의 왕권을 훨씬
오래 연장할 수 잇었을 것이다(왕하20:1,6). 그러나 징벌을 받은 후 사울은 더욱 강팍
케 되어, 결국 스스로 자신의 왕권을 단축시키고 만 셈이 되었던 것이다(15:26). 그러
기에 미리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대신할, 마음에 맞는 한 인물을 준비하셨는데, 이같은
모든 신적 섭리의 배후에는 다만 역사를 통찰하시는 하나님의 예지(豫知)와 豫定), 그
리고 전지성(全知性)이 깃들어 있을 뿐이다.
그 마음에 맞는 사람 - 이것은 백성들의 요구에 따라 세워진 '열방과 같은 왕'
(8:5)과는 날카롭게 대조되는 말이다. 또한 이것은 사울의경우와는 달리, 그의 왕권이
신적(神的) 기원을가지고 있음을 암시하는 말이기도 하다. 한편 여기의 '그 마음에 맞
는 사람'은 구체적으로 다윗을 가리킨다(16:12,13' 행13:22).
구하여(* , 바카쉬) - 이 단어는 '살피다', '찾다'의 뜻으로서, 자신에게 꼭
필요란 것을 간절한 마음으로 찾아 헤매는 것을 가리킨다(대하15:15; 시54:3; 전
12:10; 렘5:1; 호2:7,9).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으니라 - 여기의 '지도자'(* , 나기드)는 '족
장', '두령'의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로서 직접적으로 와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울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졌다는 점에서 그를 대신하는 다윗에게도 이 단어
가 역시 적용되었을 것이다. 한편, '삼으셨느니라'(* , 차와)는 '임명하다',
'명령하다', '위탁하다'란 의미이다(Davidson). 그런데 여기서 이 단어가 과거 완료형
의 의미로 기록된 것은, 하나님의 의중에는 이미 다윗을 왕으로 세우기로 작정되어 잇
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사실 다윗은 사울이 죽을 때 23세였으므로, 그는 이 당시에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혹은 갓 태어난 어린 아이였을 것이다.
=====13:15
사무엘이...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가니라 - '베냐민 기브아'는 사울의 고향 '기브
아'로서(10:26), '사울의 기브아'(11:4)라고도 하는데 당시 이스라엘의 정치적 수도였
다. 사무엘은 그때 (1) 백성들을 격려하고, (2) 블레셋과의 전투에 대한 조언을 하며,
(3) 자신의 신변에 안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그곳으로 갔을 것이다. 특히 위의 세번째
목적은, 블레셋의 군대 중 벧호론 길로 향한 한 대(隊)가그 지경에 있는 사무엘의 고
향 라마를 위협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통하여 확인될 수 있다(18절).
함께 한 백성...육백 명 - 여기의 '육백 명'은 원래 사울과 함께 했던 '이천 명'(2
절)에 비하여 훨씬 적은 숫자이다. 이것은 결국 인본주의적 생각에 근거한 사울의 성
급한 제사가 전혀 실효를 나타내지 못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8,9절).
=====13:16
사울...요나단...백성은 베냐민 게바에 있고 - 여기서 '베냐민 게바'는 원래 블레
셋의 수비대가 주둔하던 곳이었으나, 요나단의 군대에 의해 정복되었다(3절 주석 참
조). 그런데 여기서 사울이 언급된 것을 볼 때, 사울은 자신의 부대를 '길갈'(Gilgal)
로부터 이동시켜 '게바'(Geba)에 주둔하고 있던 요나단의 부대와 합쳤음이 분명하다<2
절>. 한편, 이곳 게바는 블레셋의 진(陳)이 있는 믹마스와는 그곳으로 통해 있는 협곡
(峽谷) 길로 약 2km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바로 이같은 지리적 특성을이용하여 사울
과 요나단의 소부대는 블레셋의 대군과 대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13:17
노략군들(* , 마쉐히트) - 이 단어는 '망쳐놓다', '파괴하다'란 뜻을 갖
는 동사(* , 솨하트)에서 왔으며, 원래 상대 국가의 농작물. 과수(果樹)등을 파
헤쳐 버리거나 재물을 약탈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선봉대를 가리킨다(신20:19; 삿6:4).
그러나 여기서는 상대의 진(陳)을 돌파. 파괴하여 상대의 사기를 꺽는 역할을 담당하
는 막강한 기병(騎兵) 편대로 이해함이 타당한 듯하다(Lange).
삼 대로...진에서 나와서 - 블레셋 사람들의 이같은 전법(戰法)은 자신들의막강한
군사력(5절)으로 이스라엘 전국토를 단시일 내에 유린하여 정복하고 말겠다는 그들의
강력한 의지를 반영한다.
오브라 길로 말미암아 수알 땅에 - '오브라'(Ophrah)는 벧엘 북동쪽 약 7km 지점에
위치했으며, 그 지명의 의미는 '엶은 황갈색'이란 뜻이다(수18:23). 그리고 그곳은원
추모양의 산지(山地)로 형성되었다. 한편 '수알 땅'의 '수알'(Shual)은 '여우'라는 뜻
이며, 그 땅은 오브리 약간 못미쳐에 있는 넒은 지경을 가리키느 듯하다(Aharoni). 그
런데 보통 그곳은 사울이 부친의 암나귀를 찾기 위해 헤매던 지역 중의 하나인 '사알
림'과 동일 지역으로 여겨진다(9:4). 결국 그때 블레셋의 제 1부대는 자신들의 진영이
있는 믹마스에서 북쪽으로 향해 진격햇음이 분명하다.
=====13:18
한 대는 벧호론 길로 향하였고 - '벧호론'(Bethhoron)은 '동굴의 집'이란 뜻이다
(수10:10 주석 참조). 이곳은 믹마스 서쪽 약 16km 지점에 위치했으며, 성경의 다른
곳에 나타나는 '윗 벧호론'과 동일 지역이다(수16:5). 그리고 이곳은 해발 약 600m의
고지이다(수10:11). 한편 이때 이 길로 향한 블레셋의 제 2부대에 의하여 사무엘의 고
향 '라마'는 많은 피해를 입엇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 대는 광야를 향한 - 블레셋의 제3부대는 믹마스에서 남쪽으로 향했는데, 이때
이들이 향한 여기는 '광야'는 예루살렘 동쪽에 위치한 유대 광야의 북부인 듯하다.
스보임 골짜기가 내려다 보이는 지경길 - '스보임 골짜기'(the Valley of Zeboim)
는 베냐민 땅으로서, 예루살렘 북동쪽을 가리킨다(느11:34).
=====13:19
때에...철공이 없어졌으니 - 이스라엘 민족은 이미 애굽에 거주할 때부터 쇠를 다
루는 기술을 갖고 있었다(신4:20). 또한 이스라엘 땅에는 많은 철광석이묻혀 있었다
(신8:9). 따라서 그들에게는 발달된 수준은 아니었겐지만, 어느 정도의 철기(鐵器) 문
화가 정착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블레셋의 압제하에 있던 기간 동안(13:1). 이스
라엘은 블레셋의 철독점 정책에 의하여 농기구 이외에는 철 제품을 소유할 수 없었고,
아울러 무기를 만들 만한 철공(鐵工)도 없었다. 틀림없이 이스라엘의 '철공'은 블레셋
인들이 침공했을 때 그들에 의해 납치되어 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이같은 일들은
고대 국가에서 승전국이 패전국에 대하여 취하는 일련의 정략적 조치로서, 역사적으로
매우 흔했었다(왕하24:14-16).
히브리 사람 - 여기서도 '히브리 사람'(the Hebrews)이란 이 명칭은 블레셋 사람들
에 의하여 경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3절 주석 참조).
=====13:20,21
본문은 당시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자신들에게 예속시키기 위한 정책을실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한편 연
장을 벼리려 블레셋 사람들에게 가는 것도 그들과 평화할 때나 가능하였지, 전시에는
그나마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보습(* , 마하레쉐트) - 날이 있는 절단용 도구를 가리킨다.
벼리려면 - '날카롭게 하다'란 의미이다(창4:22; 욥16:9; 시7:12; 52:2). 한편 고
고학적 발견에 따르면, 그당시 농기구 하나를 날카롭게 벼리는 삯이 약 2/3세겔
(Shekel)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Lane). 한편, 한 세겔은 약 은 11.4g이다(Vo.1. 성경
의 도량형과 화폐 및 월력, p.39).
=====13:22
여기에는 20,21절 내용에 따른 결과가 언급되고 있다.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 이것은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농기로 무장했다는
암시를 준다. 이같은 까닭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철갑으로 자신을 두르고 또한 중무
장을 한 블레셋 사람 골리앗을 더욱 크게 두려워했을 것이다(17:4-11). 뿐만 아니라
바로 이같은 이유로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군대를 우습게 여겼을 것이다.
오직 사울과...요나단에게만 있으니라 - 이같은 언급은 다음 장(14장)에서의 요나
단의 기적적인 승리를 강조하기 위한 본서 저자의 신학적 의도가 많이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이스라엘의 군대는 암몬과의 전투에서나, 블레셋 수비대와의 전투를 통
해서 결코 적지 않은 무기를 노획했을 것이다(Keil).
=====13:23
블레셋 사람의 부대 - 이 부대는 이미 세 방향으로 진격해 간 병력들이 아니라 본
대(本隊)의 병력이었다. 이처럼 블레셋은 이스라엘 전역으로 병력을 3대로 나누어 보
내고도(17.18절) 나머지 병력으로 이스라엘 군대를 쳐부술 자신을 가질 만큼, 다시 그
들은 이스라엘의 군대를 숫적으로나, 무기면으로나, 조직면으로 얕보고 우습게 여겼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방심이 요나단에게 허(虛)를 찔리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14:6-15).
믹마스 어귀에 이르렀더라 - '어귀(* , 마이바르)는 특정한 지역으로 통하
는 길목을 뜻한다.당시 블레셋 군대는 자기들의 본진이 있던 믹마스에서 요단 계곡으
로 통하는 현재의 와디 에스 수웨이니트(wadi es Suweinit)의 골짜기를 따라 약 1km정
도 내려와 보세스 강 근처에서 멈춘 후, 그들이 따라내려온 골짜기의 왼편에 있는 '보
세스'(Bozez)라는 산등성이로 올라간 듯하다(14:4). 블레셋 군대는 그같이 함으로써
사울의 군대와 접전할 경우 유리한 전략적 위치를 선점(先占)하려고 하였을 것이다.
사무엘상 제 14장
=====14:1
하루는 - 여기서 '하루(* , 하욤)는 문자적으로는 '그 날'(the day)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은 블레셋 사람들이 믹마스 어귀에 자신들의 파수대를 세운 바로
그 날을 뜻하지 않는다(13:23). 다만 블레섯 군대가 게바로 통하는 믹마스 어귀 절벽
에 파수대를 세운 뒤 불과 얼마나 지난 어떤 하루를 가리킨다.
병기를 든 소년 - 본장의 전체 내용을 볼 때 여기서 '병기든 소년'은 단순히비서직
그 이상의 역할을 담당한 신분이었던 것 같다(Klein). 한편 '병기를 든 자'(the young
man that bare one's armour)는 아비멜렉(삿9:54), 기드온(삿7:10), 심지어는 요압(삼
하18:15; 23:37)에서도 있었다. 그리고 소년 시절 다윗도 사울의 '병기를 든 자'로 선
택되었었다(16:21). 이처럼 다윗 같은 유능한 인물이 그와 같은 신분에 뽑혔다는 사실
을 볼 때, '병기를 든 자'는 왕이나 군대 장관의 수하에서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담
당한 자였음이 분명하다.
건너편 블레셋 사람의 부대 - 이때 사울과 요나단의 부대는 믹마스에서부터 뼘어
내려오는 협곡에서 약 1.5km 떨어진 게바에 위치해 있었다. 따라서 여기의 '건너편'은
블레셋의 수비대가 자리잡고 있는 믹마스 어귀의 보세스 고지를 뜻한다(4절; 13:23).
건너가자 - 이는 협곡(峽谷-현재의 Wady es Suweinit)의 게바쪽 고지 즉 '세네'에
서, 협곡을 가운데 둔 반대쪽 고지 즉 '보세스'로 넘어가는 것을 뜻한다<4절>. 그러므
로 이같은 행동을 하기앞서요나단과 그의 병기를 든 자는 게바에서 세네까지 약 1.5km
를 걸어 왔어야 했다.
아비에게는 고하지 아니하였더라 - 요나단이 이같이 한 까닭은 다음과 같다. (1)
사울의 소심한 성격상 블레셋에 대한 요나단의 공격을 용인치 않을것이분명하였으며
(F.R.Fay), (2) 기습 작전의 성공을 위한 비밀 유지가 반드시 필요하였기 때문이었다
(R. Payne Smith).
=====14:2
사울이...머물렀고 - 여기서 '머물렀고'(* , 야솨브)라는 단어는 '거하다',
앉다'의 뜻으로서, 성경에서는 주로 직분의 수행을 위해서 앉아있는 행동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1:9; 신17:18; 왕상1:35,46; 2:12; 왕하2:15).
기브아 변경 미그론 - 여기 '변경'(* , 비크체)은 특정 지역의 끝부분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욥28:24; 시19:6; 사40:28). 또한 '미그론'(*
)은 '절벽'이란 뜻으로(Thenius). 산악 지대의 지형상 흔히 발견되는 이름이다
(smith). 그런데 여기서의 '미그론'(Migron)은 기아브 북쪽 변경, 믹마스 남쪽에 위치
한 곳으로, 믹마스 북쪽에 위치한 '미그론'과는 구별된다(사10:28).
석류나무 - 히브리어로 '림몬'(* )이다. 따라서 혹자들은 이 말을 믹마스
북동쪽에 있는 '림몬 바위'(the rock Rimmon)를 기리키는 고유 명사로 해석한다(삿
20:45,47). 그러나 그 위치상 이곳은 기브아 최북단, 믹마스의 남쪽 미그론에 있는 유
명한 '석류나무'(the pomegranate tree)를 가리키는 일반 명사로 봄이 타당하다
(Keil).
함께 한 백성은 육백 명 - 이것은 사울의 군사적 형편이 블레셋의 대군에 비해
(13:5) 어림도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려는 저자의 의도에 따른 언급인 듯하다<13:15>.
또한 저자가 여기서 이같은 언급을 한 중요한 이유는, 뒤이어 나올 블레셋과의 전투에
서 이스라엘의 승리(31절)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에 따른 것임을 보여 주려고 하였
기 때문이다.
=====14:3
아히야 - 여기서 '아히야'(* , Ahijah)는 '여호와의 형제'라는 뜻이다. 이
사람은 보통 아히둡의아들 '아히멜렉'(ahimelech, 22:9)과 동일시 된다(Keil). 즉 이
같이 보는 사람들은, 아히야의본명은 아히멜렉(* , '왕의 형제')이었으나,
이 이름이 가나안 사람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으므로 바꿨다는 것이다. 한편 또 다른
사람들은 아히야와 아히멜렉을 형제 관계로 보기도 한다(klein).
에봇을 입고 - '에봇'(* , Ephod)은 대제사장들이 대속죄일에 지성소에 들
어갈 때(레16:4)와 하나님께 특별한 뜻을 물을 때 착용했던 특수한 제의적(祭儀的) 의
복이었다(출28:6-14). 따라서 '에봇을 입고 있었으니'라는 말은 아히야가 대제사장으
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이처럼 대제사장이 에봇을입고 왕의 옆
에 함께 있는 것은사울이 대제사장의 '우림과 둠밈'<출28:30>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물으려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레8:8). 이같이 왕들이 신의 뜻을 묻기 위해 제사장을
옆에 두는 일은 성경 외적 문헌에도 많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자신의 왕권(王權) 과시
를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Klein).
거기 있었으니 - 이 말은 히브리 본문에는 없는 것으로서 변역자가 뜻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삽입한 것임이 분명하다.
이가봇의 형제 아히둡 - 여기서 '이가봇'(Ichabod)은 대제사장 엘리(Eli, 1:3)의
아들 비느하스의 소생이었다(4:19-22). 그런데 성경은 그의 어머니가 그를 낳으면서
죽었다고 했으므로, 여기의 '형제'는 혀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한편 '아히둡'(*
)은 '형제는 선하다'란 의미이다.
=====14:4
어귀 사이 - '어귀 사이'는 블레셋 군대의 주둔지인 믹마스로 통하는 협곡의 양편
을 가리킨다. 그같이 볼 수 있는 근거가는 여기의 '사이'(* , 벤)는 '-과 -의
사이'를 뜻하지만, 때때로 '-의 양편'이란 의미를 갖기도 하기 때문이다(Davidson).
보세스 - '빛나다', 또는 '미끄럽다'란 의미이다.
세네 - '아카시아', 또는 '가시'란 뜻이다. 이러한 이름의 뜻은 다시 블레셋의 주
둔지인 믹마스로 뻗어있는 주변 지형이 가파르고 뾰족한 바위와 절벽으로형성된 험준
한 산악 지대임을 보여 준다(Conder, Robinson).
=====14:5
북에 믹마스 앞에 일어섰고 - 이것은 '보세스'(Bozez)에 대한 지형적 설명이다(4
절).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그 의미를 잘 드러내기 위해서는 '북에서부터 뻗어서 믹마
스 맞은 편에 있다'로 번역함이 좋을 것이다.
남에서 게바 앞에 일어섰더라 - 이것은 '남에서부터 뻗어서 게바 맞은 편에 있다'
로 번역함이 좋다. 결국 위의 두 큰 바위 절벽은 협곡을 가운데 두고 마주 서있었다.
=====14:6
헤례 없는 자들 - 이 말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속한다는 선민 신앙(選民信仰)으로
부터 나온 말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할례'(割禮), circumcision)는 하나
님과의 언약의 징표였기 때문에(창17:10), 할례가 없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보호를 기
대할 수 없음을 나타낸다. 결국 요나단의 이같은 말은 블레셋 사람들에 대한 승리를
확신하는 말인 것이다(17:26,36). 그리고 이같은 사상에 근거하여 삼손과 사울은 하례
받지 못한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의해 죽게 됨을 매우 불명예스럽게 여겼던 것이다(삿
15:18; 삼상31:4). 한편,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포경(包莖) 수술으 마하
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성서 고고학자들이 므깃도에게 발견한 바 블레섯 족속의 전사
(戰士)들이 그려진 그림에는, 그들에게 표피가 없었다(Strobel). 또한 고대 블레셋 땅
게셀에서 발견된 실물 크기의 남근상(男根像)도 포경 수술을 받은 모양이었다
(Derver). 따라서 '할레 없는 자들' 이라는 요나단의 말은 외형적 수술 여부와 별 상
관없이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지 않은 이방 민족임을 강조하려는 것었이
다. 창17:1-14 강해, '할례 언약과 세례'를 참조하라.
여호와께서...일하실까 하노라 - 원문에는 '혹시'(* , 울라이)라는 단어가
있어서 요나단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은 양 보인다(창32:20). 그
러나 이 말은 또한 '정녕', '필시'라는 뜻의 소망과 확신의 의미도 있는 말로서, 역서
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었음이 분명하다(수14:12). 진정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이스라
엘을 대신하여 싸우시는 용사되심을 믿었던 것이다.
여호와의 구원은...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 승리의 관건은 수효의 다
소(多少)나군사력의 우열(優劣)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 여하에 있음을 믿
는 요나단의 신앙 고백이다. 이러한 신앙은 기드온(삿7:4,15), 다윗(17:47), 솔로몬
(전9:11), 이사(대하14:11), 히스기야(대하32:7,8)의 신앙과도 상통한다.
=====14:7
병기 든 자 - 1절 주석 참조.
앞서 가소서 - 정확한 번역은 아니지만 그 의미는 충분히 살리고 있다. 한편, 원어
'네테 라크'(* )에 대한 문자적인 번역은 '기우는대로 행하소서'이다.
=====14:8
여기서는 요나단이 블레셋의 진영으로 가려는 일차적 목적이 언급되고 있다.
보이리니 - 이는 자신의 몸을 완전히 노출시킴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것은 요나단
이 블레셋에 대하여 기습 작전을 펼치려는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 준다.
=====14:9,10
만일...하면...표징이 되리라 - 본문에는 두 가지 경우에 따른 블레셋 사람의 반응
으로 표징(表徵, sign)을 삼고자 한 요나단의 작전이설명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요
나단이, 이같은 생각을 한 것은 절대로 하나님을 시험키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 다만
요나단은 이와 같이 함으로써 블레셋과의 전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물으려 했던 것
이다. 즉 그때 요나단은 첫째,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에게로 내려오겠다고 하는 경우
(9절) 둘째,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으로 하여금 자신들에게 올라오도록 하는 경우(10
절)의 두 가지 중 둘째 경우를 하나님께서 그 전투를 기뻐하신다는 징조로 삼으려고
하였다. 여기서 요나단이 둘째 경우를 긍정적인 표징으로 본 까닭은,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을 자신들에게올라오도록 용인한다는 것은 곧 블레셋 사람들이 전투에서 승리하
려는 적극적인 의욕의 결여를 뜻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Keil, Fay). 그러므로 요나단
은 블레셋 족속들이 자신을 보고 둘째의 경우와 같은 반응을 보일 때, 그들을 공격함
으로써 큰 전과를 올릴 것으로 기대하였던 것이다. 한편 이전에 사사 기드온도 이와
비슷한 표징을 통하여 승리의 확신을 얻은 바가 있다(삿7:9-15).
여호와께서...우리 손에 붙이셨음이니 -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사
우시는 '성전(聖戰, the Holy War)의 특색을 잘 나타내 주는 전형적 술어이다.(Von
Rad, 수6:2; 8:1,7; 10:8,12,19; 삿11:30,32; 12:3). 한편 여기서 '붙이다'(* ,
나탄)는 '주다', '두다'의 뜻으로서, 어떤 사물을 특정인에게 완전히 위임하는 것을
가리킨다(창39:4,8; 삼하14:7; 20:21).
=====14:11
둘이 다...보이매 - 그때 요나단과 그의 병기 든 자는 세네 바위를 넘고 협곡을 건
너 이미 보세스 바위 아래에 도착해 있었을 것이다. 그런 다음 그들은 보세스 바위 밑
어느 곳에 자신들을 은폐시키고 있다가 표징을 구하고자(10절) 자신들을 노출시킴으로
써, 보세스 바위 위의 블레셋 사람들에게 목격된 듯하다.
히브리 사람 - 13:3 주석 참조.
숨었던 구멍에서 나온다 하고 - 원문에는 여기의 '구멍'(* , 호르)에 정관사
'하'(* )가 붙어있다는 점에서, 이 '구멍'은 요나단 일행이 잠시 은신하기 위해 작
전상 파놓은 구멍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요나단 일행은 이 은신처에서 과감히 나옴으
로써, 자신들의 일차적 목적대로(8절) 적에게 목격될 수 있었다.
=====14:12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 이 말은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 일행의 용기를 모욕하고
그들을 지극히 우습게 보았음을 시사해 준다. 아울러 이같은 블레셋 군인들의 반응은
그들이 정신적으로 나태해있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였다. 따라서 요나단은 이 응답을
접하면서 블레셋에 대한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하였을 것이다(9,10절).
한 일을 보이리라 - 문자적으로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해주겠다'란 뜻이다. 한
편, 여기서 '한 일'(* , 다바르)은 블레셋 군대의 무력적인 힘을 뜻한다.
=====14:13
요나단이 손발로 붙잡고 올라갔고 - 보세스의 고지는 거의 절벽에 가깝다고 한다
(Lange). 따라서 요나단은 이같은 방식으로 가파른 그곳을 오를 수 밖에 없었을 것이
다.
블레셋 사람들이...엎드러지매 - 이같은 결과는 말할 나위없이 요나단의 민첩한 공
격에 따른 것이었다(LXX).
병기 든 자가 따라가며 죽였으니 - 여기서 '죽였으니'(* , 메모테트)는
다시 살지 못하도록 완전히 죽이는 것을 가리킨다(Lange, 창7:22; 신22:24; 왕하
8:10). 따라서 병기 든 자는 요나단에 의해부상당한 자를 뒤따르면서 즉이는 역할을
했던 것 같다.
=====14:14
반일경 지단 안에서 - 고대 중근동에서는 황소 두 마리가 하루에 보통 밭을 갈 수
있는 분량인 약 1에이커(1에이커=약 4km )를 밭의 면적을 계산하는 단위로 삼았었다
(Driver). 따라서 '반일경 지단'은 대략 1/2에이커의 땅(an half acre of land, KJV)
을 뜻한다. 여기서 '지단'(地段)은 단지 '땅'이란 의미이다. 한편, 여기서 우리가 알
아야 할 것은, 위의 언급이 블레셋에 대한 요나단의 공격이 반나절 걸렸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때 요나단은 단시간 내에 블레셋 수비대에 대한 공격을 완
료했을 것이다.
처음으로 도륙한 자 - 여기서 '처음으로'는 본서 저자가 20절 이하에 언급된 블레
셋의 수비대는 요나단 일행이 그 가파른 절벽을 타고 올가와 졸지에 습격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마냥 방심하고 있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요나단 일행의 공격에
당황하여 전의를 상실하고 도주하기 바빴던 것이다(Keil, Smith).
=====14:15
들에 있는 진 - 여기서 '들'(* , 사데)은 넓은 벌판을 가리킨다. 따라서 '들
에 있는 진'은 블레셋 본국의 사령부를 가리킴이 분명하다. 사실 '사데'라는 단어는
블레셋 지역을 가리킬 때 사용된 단어였다(6:1).
모든 백성 - 군인과 대조되는 일반 블레셋 백성들을 가리킨다.
떨림이 일어났고 - 여기서 '떨림'(* , 하드라)은 심리적인 현사으로서 극도
의 공포심(panic)을 뜻한다(NIV, RSV).
부대와 노략군들 - '부대'(* , 하마차브)는 당시 믹마스에 주둔하고 있던
블레셋의 본대를 가리킨다<13:16>. 한편, '노략군들'은 삼 대(三隊)로 나뉘어 이스레
엘의 여러곳을 유린키 위해 떠났던 블레셋의 부대들이다<13:17,18>.
땅도 진동하였으니 - 이것은 '지진'(earthquake, Living Bible)을 가리킨다. 비록
'진동하였으니'(* , 티르가즈)란 말이 때로 심리적인 격동을 뜻하기도 하지
만, 많은 경우 지진을 가리킨기 때문이다(삼하22:8; 시18:7; 77:18; 사5:25). 또한 지
진은 공포와 함께 성전(聖戰)이 있을 때에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이는 큰 떨림이었더라 - 원문에는 '하나님의 큰 떨림이었더라'로 되어 있는데, 이
는 블레셋에 임한 공포와 지진의 재앙이 하나님에 의해 니려진 것임을 강조한다.
=====14:16
베냐민 기브아 - 즉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란 뜻으로, 이곳은 사울의 고향 기
브아를 가리키며 당시 이스라엘에 대한 사울의 통치 거점이었다(10:26; 13:2).
파숫군이 바라본즉 - 이때 '파숫군'은 약 1.5km 떨어져 있는 믹마스의 블레셋 본진
(本)陳)을 관찰한 듯하다. 물론 이때 파숫군은 블레셋 진(陳)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
았을 뿐만 아니라 아우성 소리도 들었을 것이다.
블레셋 사람이 무너져 - 여기서 '무너져(* , 나모그)는 문자적으로는'녹아
내리다'란 뜻이다. 곧 이는 극도의 공포로 인해 용기를 잃고 마음이 녹아내리는 상태
를 나타낸다.
이리 저리 흩어지더라 - 이것은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 일행의 예상치 못한 공격
과 수비대의 패주 소식을 듣고 극도의 혼란 상태에 빠져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표
현이다.
=====14:17
이때 사울은 블레셋 진(陳)의 혼란이 누군지 모르지만 일단의 이스라엘 병사들에
의해 일어나게 된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래서 사울은 블레셋의 진을 공격한 병사들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 점호(點呼)를 실시하게 하였다.
점고하여 보라 - 여기에서 '점고(點考)하다'(* , 파카드)란 말은 '계수하다
(number, KJV; 11:8; 13:15; 민1:20,22; 대상23:24), '점호하다'(공동번역), '소집하
다'(muster, NIV)등의 의미로 볼 수 있다.
=====14:18
하나님의 궤를...가져오라 - 맛소라 본문(Masoretic Text)은 이처럼 '하나님의 궤'
(* , the ark of God)로 되어 있으나, 칠십인역(LXX)은 '에봇
(* , ephod)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칠십인역의 표기를 정확
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Keil, Smith).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가져오라'(*
, 하기솨)라는 말은 성경 용례상 언약궤와 관련하여 사용된 적이 전혀 없
으나, '에봇'과 관련해서는 몇 회 사용된 단어이다(23:9; 30:7). (2) 사울은 그때 자
신의 아들 요나단의 안전 여부를 대제사장의 에봇에 들어있는 우림과 둠밈을 통해 하
나님께 물으려 했던 것이 분명하다(22:10). (3) 그당시 언약궤를 전장(戰場)에 가져갔
다가 패배했던 아벡 전투(4:5-11)에 대해서능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궤가...함께 있음이라 - 이것은 '하나님의 궤를...가져오라'는 앞의 문구
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필사자의 가필(加筆)로 봄이 타당할 것이다(R.Payne Smith). 따
라서 물론 칠십인역에는 본 문구가 없다.
=====14:19
소동이 점점 더한지라 - 사울은 블레셋 진에서 벌어진 이같은 상황을 긍정적인 것
으로 보았을 것이다. 물론 사울은 이때 자신의 아들 요나단에대한 염려를 모두 떨쳐버
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네 손을 거두라 - 이것은 사울이, 요나단의 안전 여부 및 블레셋의진으로 공겨해
들어가야 할 당위성이 있는지의 여부를 하나님께 묻기를 포기했음을 시사해 준다. 여
기에서 우리는 사울의 변덕스런 신앙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즉 사울은 전쟁의 작전 수
행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을 받으려 하다가(18절), 전세(戰勢)가 유리하게돌아가자 돌
연 하나님을 향한 질문을 취소하였던 것이다.
=====14:20
사울과...모든 백성이 모여 - 여기서 '모여'(* , 자아크)는 원래 '고함을 치
다', '소리를 지르다'란 의미이나, 여기서처럼 수동형으로 사용될 때는 '소집하다'란
뜻으로 봄이 타당하다(수8:16; 삿6:34,35). 한편 '함께한...백성'은 사울과 길갈에서
부터 동행했던 육백 명(13:15)과 요나단의 수하에 있던 병력 일천 명(13:2)을 합한 숫
자를 가리킨다.
블레셋 사람이...칼로 그 동무를 치므로 - 이같은 기묘한 상황은 기드온의 소수 병
력이 미디안을 대항해 싸울 때에도 벌어졌었다(삿7:22). 여기서도 하나님께서는 블레
셋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드심으로써, 자기들끼리 피차 싸우다 자멸
(自滅)하도록 하셨던 것이다. 결국 이같은 상황은, 모든 전쟁을 홀로 주관하시는 하나
님께서 친히 간섭하신 결과였으며, 요나단의 신앙적 용기와 도전에 대한 하나님의 도
우심의 결과였다.
크게 혼란하였더라 - 이같은 적군의 자중지란(自中之亂)의 모습은 대적에 대한 이
스라엘의 승리가 결정적임을 보여줄 때 종종 성경에서 언급되고 있다(5:9,11; 7:10;
출14:24; 신7:23; 겔38:21).
=====14:21
블레셋 사람과 함께 하던 히브리 사람 - 이들은 블레셋 사람의 부대에 편성되어
블레셋을 위하여 싸우던 용병(傭兵) 내지는 징용군(徵用軍)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한때 분명히 이스라엘을 대항해서 싸우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이
스라엘 백성이 블레셋의 군대로 편성된 데에는, 이스라엘 영토의 많은 부분이 블레셋
의 지배를 오래도록 받았다는 사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 여기의 '히브
리 사람'(* , 이브림)은 타민족에 의하여이스라엘 백성에게 붙여지던 모멸
적 의미의 명칭이었다<13:3>. 따라서 그당시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 출신의 군민들
을 바로 이 '히브리 사람'(the Hebrews)이라는 명칭으로 불렀을 것이다(Keil).
사방에서...진에 들어왔더니 - 이것은 이스라엘 출신의 용병(혹은 징용군)들이 이
번 전투를 맞이하여 자신들의 동족 이스라엘과 싸우도록 강제로 동원되었음을 강력히
시사해 준다.
그들이 돌이켜...합하였고 - 엄밀히 말하여 히브리 원문에는 '돌이켜'라는 말이 없
다. 다만 이는 의미를 두드러지게 하기 위한 번역자의 삽입이다(the Chaldee, LXX,
the Vulgate, the Syriac).
이스라엘 사람 - 이는 본절 앞부분의 '히브리 사람'과 대조된다. 즉 여기서 저자가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그 백성의 거룩성을 강조하기 위함인 듯하
다. 이 사실로 볼 때 위의 '히브리 사람'은, 그들이 이스라엘의 원수 블레셋을 위해
봉사했다는 전력(前歷) 때문에 본서 저자에 의해서도 경멸적으로 사용되었음이 분명하
다(R.Payne Smith).
=====14:22
에브라임 산지에 숨었던...사람 - '에브라임 산지'(hill country of Ephraim)는 팔
레스틴 중부의 구릉 지대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곳에는 베냐민 지파 사람을도 거주했
으나(수18:11), 여기서는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 살고 있던 지역만을 가리킨다. 그같
이 볼 수 있는 까닭은, 에브라임 산지의 베냐민 지파 거주 지역은 사울의 군대로 인하
여 그리 불리한 전황(戰況)만은 아니었고, 따라서 베냐민 사람들의 대부분은 숨을 필
요가 없었기 때문이다(13:6).
=====14:23
본절은 그날 블레셋과의 믹마스 전투에서의 이스라엘의 승리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에 기인하였으며, 또한 완전하였음을 강조한다.
전쟁이 벧아웬을 지나니라 - '벧아웬'(bethaven)은 믹마스 서쪽 약 1.2km 지점에
위치해 있다(13:5 주석 참조). 본서 저자가 여기서 '벧아웬'을 언급한 이유는, 13:5에
서 블레셋 족속의 군대가 주둔했던 믹마스를 '벧아웬 동편'이라고 소개했던 사실과밀
접한 관계가 있다. 즉 여기서는 '벧아웬을 지나니라'라고 언급함으로써 믹마스에 주둔
했던 블레셋 족속들이 이제자신들의 본국 방향인 서쪽으로 패주했음을 밝히려는 것이
다(Bunsen; 31절). 한편, 여기서 '지나니라'(* , 오브라)라는 말은 '넘어가
다'(passed over, KJV), '계속되다'(continued out, Living Bible)란 뜻으로서, 곧 전
쟁이 벧아웬 너머까지 계속 진행된 상태를 보여 주는 말이다(the battle moved on
beyond Beth Aven, NIV).
=====14:24
이 날에...백성이 피곤하였으니 - 여기서 '피곤하였으니'(* , 니가스)는 원
래 '독촉하다', '압제하다'란 뜻이다. 여기서는 수동형으로 사용되어 '곤욕을 당하
다', '괴로움을 받다'란 의미이다(13:6; 사53:7).
이는 사울이...맹세시켜 경계하여 - '이는'은 본절 첫 부분의 내용, 즉 이스라엘
백성이 피곤하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는 구절을 이끄는 상관 접속사이다.
한편, '맹세시켜 경계하여'(* , 요엘)는 (1) '-라고 맹세하기를 강요하여', (2)
'어리석게 행동하여'등 두가지 의미로 이해될 수 잇다. 그리고 본 문구 이하는 사울이
백성들에게 맹세하기를 강요한 내용이다.
저녁 곧 내가 내 원수에게 보수하는 때까지 - 사울의 이같은 말은, 태양이 질 때까
지 원수를 무찌르겠다고 했던 여호수아의 결심을 염두에 두고 한 것 같다(수10:13).
따라서 이 말은 블레셋을 완전 섬멸시키겠다는 사울의 결심을 잘 보여 주는 말이다.
그러나 사울의 이 맹세는 여호수아의 경우와는 달리 여호와를 위한 진정한 충정과 신
앙에서 비롯된 열성은 아니였다. 다만 사울이 자신의 공명심과 명예욕을 드높이기 위
해 상황을 잘못 판단하고, 그대로밀어부친 독선적 횡포에 불과했다(Kiel, Fay). 따라
서, 결국 사울의 이같은 행동은 여러가지 부정적인 결과를 낳고 말았으며, 전재에 이
기고도 백성들의 신임을 잃는 비극을 초래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사울의 이러한 맹세
는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열정이 가져다 주는 폐단을 잘 보여 주는 예이다.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 구약 성경에서 성행위를 절제하는 것(21:5), 잠
을 줄이는 것(시132:3,4), 그리고 희생 제사를 드리기로 서원하는 것(삿11:30,31) 등
은 용사들이 전쟁에서 필승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취했던 행동으로 언급되고 있다
(Klein). 따라서 그때 사울은 이겻들과 유사한 형식으로, 자신의 헌신적 자세를 표명
키 위하여 자신을 포함한 전군(全軍)에게 금식령을 내린 것 같다.그런데 여기서 사울
이 군사들로 하여금 금식하도록 한 또다른 중요한 이유는 그 전투를 속전 속결로 끝내
기 위함이였을 것이다.그러나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과 격전을 치뤘으며, 블
레셋을 쫓아 먼 거리를 행군했기 때문에 매우 허기진 상태였을 것이다. 따라서 당시사
울은이러한 군사들의 상황을 헤아리기보다는 자신의 공명심을 채우기위해 경솔한 맹세
를 발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백성이 식물을 맛보지 못하고 - 이것은 사울의 명령이 어리석었음에도 불
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명령에 충실히 복종했다는 사실을 시사해 준다.
=====14:25
그들이 다 수풀에 들어간즉 - 여기서 '그들이'(* , 콜 하아레츠)는
문자적으로는 '온 땅이'란 의미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 말은 '온 땅의 백성이'란 의미
로 이해함이 타당하다(렘22:29). 한편 '수풀'(* , 야아르)은 레바논의 백향목
숲 보다는 그 규모나 나무의 크기 등에 있어 훨씬 볼품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광양
의 이 수풀 지대 역시 어느 정도 우거졌었다. 그리고 이것은 농지나 목초지로 개간 가
능한 숲을 말한다(Keil).
땅에 꿀이있더라 - 파레스틴 지방에서는 벌들이 나뭇가지나 바위틈 사이에 집을 짓
고 거기에 꿀을 만들어 놓느다고 한다(Schultz). 심지어는 꿀이 벌집에서 넘쳐 땅으로
흘러내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신32:13; 삿14:8; 시81:16; 마3:4). 따라서 이스라
엘 사람들은 이러한 나뭇가지나 바위틈 사이에서 꿀을 취해 먹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성경은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신11:9 주석 참조)으로 묘사하기도 했던
것이다(출3:8; 민13:27; 신8:8).
=====14:26
맹세를 두려워하여 - 이스라엘 군사들의 이 두려움은 결국 자신들이 한 맹세를 지
키지 못할 경우 사울에 의해 시행될 엄중한 징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14:27
지팡이 끝을 내밀어 꿀을 찍고 - 이처럼 요나단이 손이아닌 지파이로 꿀을 찍어 먹
은이유는 시간의 낭비없이 신속히 적을 추적하기위해서였다(Stoebe).
눈이 밝아졌더라 - 기록된 본문(케티브)을 따라 직역하면 '그의 눈이 보였더라',
'시력을 회복했더라'란 뜻이다. 그러나 맛소라 학자들은 29절에 근거해 이말을 '케리'
로 처리하여 곧 '그의 눈이밝아졌더라'란 의미로 해석하였다. 여하튼 이 말은 블레셋
군대를 추격하던 중, 피로하고 허기에 지친 요나단이수풀 나뭇가지에 뭉쳐있는 꿀을취
해먹고 기력을 다시 회복하였음을 가리킨다(스9:8; 시13:3).
=====14:28
맹세로...엄히 명하여 - 이는 금식(禁食)이백성들 스스로 자원해서가 아니라, 사울
의 강제적인 명령에 의해되어진 일임을 시사한다. 즉 사울은 자신의 독단적인 판단하
에서 금식령을 내려백성들로 맹세케 했고, 이에 백성들은 그 위세에 눌려 할 수 없이
금식 맹세를 했던 것이다.
백성이 피곤하였나이다 - 여기서 '피곤하였나이다'(* , 야아프)는 '탈진하
다', '지치다'란 뜻의 '우프'(* )에서 파생된 말로, 곧 사울의 금식령으로 인해
백성들이 심히 곤비하게 된 상태를 가리킨다. 삿4:21에는 같은 단어가 '기절하다'란
말로 나타나 있다.
=====14:29
이 땅으로 곤란케 하셨도다 - 여기서 '이 땅으로'(* , 에트 하아레
츠)는 '이 땅을'이란 뜻인데, 곧 25절의 경우처럼 '이 땅의 백성들'이란 의미이다
(Keil). 그리고 '곤란케 하다'(* , 아카르)는 '해롭게 하다', '고통을 주다'란
의미이다(창34:30; 수6:18). 또한 이 단어는 문맥에 따라 '성전(聖戰)을 망치다'란 의
미로 확대 해석될 수도 있다(Keil). 왜냐하면 사울의 잘못된 금식령으로 인해 이스라
엘 군사들이 탈진 상태에 놓였고, 결국 그로 인해 블레셋을 철저히 추격.섬멸하지 못
함으로써, 믹마스 전투의 승리가 불완전한 상태에 머물고 말았기 때문이다.한편여호수
아는, 전리품의 일부를 사취(詐取)함으로써 '아이 성' 전투에서 이스라엘을 패배케
한 아간에 대해서 이 단어를 사용했었다(수7:25). 그리고 사사 입다는, 자신의 맹세로
인해 결국 자신을 괴롭게 했던 자신의 딸에게 이 단어를 적용하였다(삿11:35).
=====14:30
본절에 나타난 요나단의 말은 사울의 어리석은 맹세가 왜 믹마스 전투를 망치는 행
위였는지를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14:31
아얄론에 이르기까지...쳤으므로 - '아얄론'(Aijalon)은 '사슴의 자리'란 뜻으로,
이곳은 믹마스로부터 서쪽으로 약 20km 지점에 위치했으며 블레셋과의 국경에 인접한
성읍이다. 또한 이곳은 역사상 여호수아가아모리 족속을 패배시켰던 전적지이기도 하
였다(수10:12). 결국 이스라엘이 금식을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얄론까지 블레셋을
추격했다는 사실은 (1) 요나단의 말처럼(29,30절), 만일 금식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
승리가 얼마나 더 켰을것인가를 짐작케 해주는 반면 (2) 또한 그당시 이스라엘 군사들
이얼마나 허기지고 피곤했을것인가를 가히 짐작케 해준다.
=====14:32
본절은 사울의 어리석은 금식 명령이 야기시킬 수 밖에 없었던 부정적 결과에 대한
언급이다. 즉 맹세의 유효 만료 기간인 저녁이 되자마자(24절), 이스라엘 군사들은너
무나 허기에 지친 나머지 자신들의 굶주린 배를 채우느라 율법의 주요한 두 가지 계명
을 범하고 말았다. 곧 이때 이스라엘 군사들이 범한 죄는 (1) 소와 송아지를 같은 날
에 잡아먹은 것(레22:28), (2) 고기를 피채 먹은 것(창9:4; 레17:10-14; 신12:23)등이
다(Pulpit Commentary). 이 중 특히 '고기를 피채 먹은 것'은, 거듭 반복 금지된 율법
의 핵심 명령을 어겼다는 점에서 더욱 큰 잘못이었다. 레19:26 주석 참조.
땅에서 잡아 -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배고팠던 나머지 허기(虛飢)를 채우는 일
에 급급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돌 위에서 가축을
잡아야만 고기로부터 피를 뺄 수 있었던 것이다.
=====14:33
무신하게 행하였도다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기본 동사 '바가드'(* )는
'은밀히 행하다', '속여 다루다', '배은 망덕하게 행하다','신실치 못하다'란 뜻이다.
결국 이 말은 고기를 피채 먹지 말라는 모세의 율법(레19:26)을 지키지 않았던 이스라
엘 백성들에 대한 사울의 엄중한 책망이다. 그러나 사실 백성들의 이러한 범죄는 결국
사울의 경망스런 금식령(24절) 때문에 초래된 것이었다. 따라서 사울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먼저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이어 범죄한 백성 전체의 회개를 주도했어야만 옳
았다. 그러나 사울은 당장 범죄한 눈 앞의 백성들만 책망하였고, 더 나아가 꿀을 먹은
요나단(27절)을 죽이려고까지 하였다(44절).
=====14:34
거기서 잡으니라 - 즉 사울의 명령으로(33절) 마련된 큰 바위 위에서 짐승을 잡았
다는 뜻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군사들은 짐승으로부터 피를 뺀 후 살코기만
구별하여 먹을 수 있었다(Keil, smith, Fay).
=====14:35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으니 - 여기서 '단'(壇)은, 그곳을 희생 제사가 계속적
으로 드려지는장소로 삼으려는 목적에 따라 세워지지는 않았다. 다만 사울은 그때 본
(本) 믹마스 전투를 승리로 이끄신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해(7:12) 단회적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그 단을 쌓은 듯하다(Keil).
처음 쌓은단이었더라 - 문자적으로는 '단을 쌓기 시작하였다'란 의미이다. 즉 이것
은 특별한 목적에 따라 왕이 단을 쌓는 일에있어서, 사울이 선구자가 되었음을 뜻한다
(R.Payne Smith). 한편 후일 다윗도 여호와를 위해 단을 쌓았다(삼하24:25).
=====14:36
사울이 가뢰되...한 사람도 남기지말자 - 블레셋을섬멸시키고자 했던 사울의 열심
을 엿볼 수 있다. 그때 사울은 자신의 어리석은 명령(24절) 때문에 블레셋 군대를 섬
멸할 결정적인 기회를 놓쳤다고 판단함으로써, 그석을 만회키 위해 이와 같은 제안을
한 듯하다.
제사장이 가로되...하나님께로 나아가사이다 - 여기의 '제사장'은 말할 나위없이
대제사장 아히야(Ahijah)임이 분명하다(3,18절).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가사이다'란
말은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기위해 취하는 행동이다. 따라서 그때 제사장 아히야는 밤
중인데도 불구하고 블레셋 군대를 계속 추결하자는 사울의 결정이, 전투중인데도 백성
들을 금식시켰던 전번의 결정만큼이나 경솔하지나 않은 것인지를 염려했던 것이다.
이리로 - 방금 전 사울이 쌓았던 제단을 가리킨다(Keil).
=====14:37
사울이하나님께 문자오되 - 사울은 이때 대제사장의 에봇에 들어있는 '우림과 둠
밈'(출28:30 주석 참조)을 통하여 블레셋을 추격해야 할지의 여부를 질문하였을 것이
다(Fay).
대답지 아니하시는지라 - 대제사장의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합법적으로 문의하였
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전혀 응답지 않으셨다는 사실은, 분명 이스라엘 중에 어
떤 하자(瑕疵)가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Fay, Keil).
=====14:38
사울이 가로되...이 죄가 뉘게 있나 알아보자 - 사울은 자신의 질문에 하나님께서
응답지 않으신 것은 분명 이스라엘 백성 중에 숨은 죄가 있다고 판단하고, 그 사실을
규명코자 적극 나섰다.
백성의 어른들 - 여기서 '어른들'(* , 핀노트)은 '모퉁이의 돌', '우두머
리', '망대'란 뜻이다(출27:2; 삿20:2; 습1:16). 따라서 '백성의 어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표자 격인 각 지파 장로들을 가리킴이 분명하다(8:4; 민11:30).
=====14:39
반드시 죽으리라 - 전투 중에 군사들을 금식케 한 사건(24절) 이후, 사울의 경솔한
맹세가 여기서 또다시 나타난다(수9:15-21).
한 사람도 대답지 아니하매 - 요나단이 사울의 명령을 범했다는 사실을 알고 잇는
군사들까지도 이같이 한 것은, 이처럼 침묵함으로써 사울의 경솔함을 책망키 위함이었
을 것이다(Pulit Commentary).
=====14:40-42
우림과 둠밈을 통한 문의에 하나님께서 대답이 없자(37절), 사울은 여기에서 제비
를 뽑는 방식에 의하여 범인을 가려내고 있다. 즉 그때 사울은 제비 뽑기를 통하여
(1) 백성과 자기 가족 두편 중에서 먼저 범인이 속한 한 편을 가려내고 (2) 이어 범인
이 속한 한 편으로 밝혀진 자신의 가족 중 최종적으로 범인 요나단을 가려냈던 것이
다.
실상을 보이소서(* , 하바 타밈) - 직역하면 '완전을 주소서'
(Give a perfect)인데, 곧 '완벽한 제비(lot)를 보여 주소서'란 의미이다(KJV). 그런
데 70인역(LXX)과 일부 학자들(Ewald, Thenius)은 여기서 '타밈'을 '툼밈'(thummim)으
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 부분을 길게 의역(意譯)하기를, "만일 나 또는 요나
단에게 죄가 있으면 '우림'(Urim)으로 응답하시고,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죄가 있
으면 '둠밈'(Thummim)으로 응답하소서"라고 하였다.그러나 본문에 언급된 동사 '뽑히
고'(* , 일라케드)와 '뽑으라'(* , 히필)는 제비뽑기의 추첨과 관련
되어 사용되는 동사이며, 우림과 둠밈과 관련해서는 성경 용레상 한번도 사용된 적이
없다. 그러므로 본문을 확대 의역한 70인역의 번역은 그 타당성이 없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on the O.T., vo1.2-ii. pp. 145-146). 한편 '제비뽑기'(lot)
에 대해서는 수14:2; 18:10 주석을 참조하라.
=====14:43
본절에서는 요나단은 자신의 행위(27절)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도, 겸손히 부친 사
울의 뜻을 좇기로 작정한다.
=====14:44
사울은 여기서 자신이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했던 바(39절)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서 지켜저야 한다고 생각한 듯하다<민30:1-8 강해, 서원과 맹세에 대하여>. 물론 그때
사울은 자신의 맹세가 경솔한 것이었다는 사실로 인하여 내심 후회하였을 것임에 틀림
없다. 한편, 그런데 여기서 요나단이금식령 기간 중 꿀을 먹은 사실은 결코 사울의 맹
세에 대한 거역이나 불복종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때 요나단은 그러한 사울의 명령
을 전혀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27절). 즉 요나단은 전혀 고의성(故意性) 없이 '부지중
에' 잘못을 범한 것이다. 이런 경우 율법에 의하면(레4:3,13,14,22-24,27,28), 합당한
제물을 가지고 대속을 위한 속죄제를 드림으로써 죄 용서함 받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요나단에게속죄제를 드릴 기회조차 주지 않고, 자신의 맹세를 따라
요나단을 죽이려 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사울이 자신의 권위에 스스로 빠져버린
어리석은 행위였다(R.Payne Smith).
=====14:45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 백성들은 제비를 뽑기 전에는 소극적으로 침묵으로
일관했으나, 제비에 의해 요나단이 맹세를 범한 장본인으로 판명되고, 이에 따라 그가
죽임을 당할 위기에 놓이자 이제 적극적으로 요나단의 구명(救命)을 위해 사울에게 항
의한다.
그가 오늘 하나님과 동사하였음이니이다 - 이것은 백성들이 사울에게 제시한 바 요
나단이 죽임을 당하지 않아야 할 이유이다. 즉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요나단을 도구로
하여 블레셋과 전투를 치르셨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같은 사실을 하나님께서 요나단과
함께 하셨기 때문에, 금번 믹마스 전투를 이스라엘이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이므
로, 승리를 위해서 발한 사울의 맹세는 마땅히 철회되어야 하고, 따라서 요나단에 대
한 처형 역시 마땅히 중지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즉 당시 백성들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을 해(害)하는 일은 그 자체가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구원하여 - 기본 동사 '파다'(* )란 단어는 원래 돈, 짐승, 심지어 사람 등
을 대신 주고 특정인을 되찾거나 목숨을 구하는 경우에 사용된다(출13:13,15; 21:30;
34:20; 민3:46-51). 결국 본서 저자는 여기서 이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요나단을 구출
하려는 백성들의 의지가 실로 대단했음을 강력히 암시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백성들의
강력한 의지는, 결국 애초에 사울이 발한 맹세(24절)가 잘못된 것이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14:46
불레셋...따르기를 그치고 올라가매 - 이것은 사울이 블레셋과의 전투를 완전히 중
지한 채, 자신의 고향이자 당시 정치적 통치 중심지인 기브아(10:26)로 돌아갔음을 뜻
한다. 한편 이것은 사울이라는 인물이 경박한인격의 소유자임을 보여 준다. 사실 하나
님께서 사울의 질문에 대하여 대답지 아니하신 것은(37절), 블레셋을 추격치말라는 의
미에서 그리하신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볼 수 있는 까닭은, 대답지 아니하셧다는 것
은 이스라엘 중에 어떤 하자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는 바(37절), 이제 그 하자가 발
견되어 완전히 해소되었기 때문에 다시금 일치 단결하여 추격의 고삐를 당길 수 있었
던 것이다. 그러나 사울은 그 하자(瑕疵)가결국 자신의 경솔한 맹세(24절)로 귀착되자
그만 블레섯에 대한 추격까지 포기하고 만 것이다.
블레셋 사람이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 즉 믹마스 땅에 진쳤던(13:16) 블레셋 군
대가 이스라엘에 패하여, 결국 자기 본토로 돌아갔다는 뜻이다. 따라서 결국 이번 믹
마스 전투에서 살아남은 블레셋 군대는 이후 다시 세력을 키워 이스라엘을 재차 침공
하였고(29:1), 그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대패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울과 요나단이 전
사하기까지 하는 비극을 당하고 만다(31:1-6).
=====14:47
사울이...왕위에 나아간 후에 - 사울이 처음 길르앗 야베스 전투(11:11)를 통해 암
몬 족속을 꺾음으로써 공식적으로 이스라엘의 왕위(王位)에 추대되었듯이(11:15), 이
제 사울이 믹마스 전투(14:23,31)를 통해 난적 블레셋의 세력을 꺾음으로써 왕으로서
의 통치권을 완전히 확립했음을 보여 준다(Keil). 한편여기서 '나아간'(* , 라
카드)은 '획득하다', '점령하다'란 의미로서(신2:35; 수8:21; 삿1:12), 이는 곧 사울
이 왕으로서의 통치권을 확고히 굳혔다는 의미이다(Jerusalem Bible, 공동번역).
사방에 있는 모든 대적 - 이 표현 그대로, 당시이스라엘을 중심으로 모압과 암몬은
동편에, 에돔은 남방에, 소바는 북방에, 그리고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서편에 각각 위
치하고 있었다.
모압 - 여기서 모압 족속은 요단의 동쪽, 갓과 르우벤 지파의 영토 남쪽에 거주했
던 민족으로서, 사사 시대 이래 이스러엘 백성들을 괴롭혀왔다(삿3:12-14). 한편 이곳
이외에는 사울 시대에 이 모압 족속이 이스라엘을 침입해왔다는 언급도, 또한 사울이
이들을 물리쳤다는 언급도 없다.
암몬 자손 - 암몬 족속 또한 사사 새디 이래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족속이다(삿
10:7-17). 이들은 사울의 즉위 직후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폈으나, 사울에 의해 격
파당했었다(11:1-11).
에돔 - 에돔 족속은 사해의 남부에 자리잡고 잇던 족속으로서, 사사기에서는 이스
라엘에 대한 이들의 침입 사실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사 시대에는 모압 족속의
고격이 없었을지라도, 사울 시대에는 이스라엘에 대한 이들의 공격이 있었음이 분명하
다.
소바의 왕들 - '소바'(Zobah)는 유프라테스 강 상류에서 야르묵 강 사이에 자리잡
았던 아람족의 일파이며(삼하8:3), 여러 부족으로 이루어진 부족 연합 성격의 국가였
다(Beitzel). 한편 '왕들'은 이들이 부족 연합의 성격을 띠고 있던 도시 국가였음을
잘 보여 준다.
=====14:48
아말렉 사람을 치고 - 사울이 '아말렉'(Amalek)을 친 사실은 15:1-9에 언급되고 있
으나, 여기서는 별도의 사건을 다루고 있는 듯하다. 그같이 보아야 할 까닭은, 15:1-9
의 언급은 출애굽시 아말렉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 여정(旅程)을 방해햇던 역사
적 사실에 따라 그 족속에 대하여 행해진 징벌과 관계되지만, 본절의 언급은 아말렉
족속의 이스라엘 영토 침입에 따른 징벌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약탈하는 자의 손에서 건졌더라 - 이러한 문구는 사사의 활약상을 묘사한 전형적
문구이다(삿2:16). 그러므로 본절의 이같은 표현은 결국 본서의저자가 사울을 사사(士
師)의 연장선상에서 보고 잇음을 암시해 준다.
=====14:49
리스위 - 이 사람은 '아비나답'과 동일한 인물임이 분명하다(31:2; 대상8:33;
9:39).
말기수아 - 이 이름은 '나의 왕은 구원이다'란 의미이다. 한편, 사울과 그의 세 아
들 요나단과 리스위(아비나답)와 말기수아는후일 블레셋과의 길보아 전투에서 함께 전
사(戰死)한다. 그리고 이 외에도 사울에게는 '에스바알'이라고도 불리우는(대상8:33)
그의 네째 아들 '이스보셋'이 있었다(삼하2:8).
메랍 - '증가하다'란 의미의 이름인 메랍은 원래 골리앗을 죽인 사람에게 시집보내
지기로 약속이 되었었다(17:25). 그러나 그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고, 골리앗을 죽인
다윗대신 므흘랏 사람 아드리엘에게 시집보내졌다(18:19).
미갈 - '누가 하나님 같으냐?'란 뜻이다. 사울의차녀인 미갈은 다위과결혼했으나,
언약궤로 인하여 기뻐서 춤추던 다윗을 비웃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아이를 낳지
못했다(삼하6:23). 한편 사울의 두 딸 메랍과 미갈은 18:17-21의 사건에 대한 배경으
로 여기 기록되었다.
=====14:50,51
아하노암 - '나의 형제는 유쾌하다'란 의미이다. 부친은 '아히마아스'인데, 그 이
름에 '아히'(* , '형제'란 뜻)란 접두어가 붙은 것으로 보아(3절) 제사장 가문
일 가능성이 있다(Smith, Fay).
아브넬 - '나의 아버지는 넬'이란 뜻이다. 사울과는 사촌 관계로서(Keil, Fay), 사
울 왕국의 군대 장관을 맡았던 아브넬은 요압이 다윗을 군사적으로 도왔듯이 사울과
그의 아들 이스보셋을 군사적으로 보좌했던 인물이다(삼하2:8,9).
사울의 숙부 넬 - '넬'은 '등불'이란 뜻이다. 이 사람은 사무엘이 사울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표명했던 인물이다(10:15,16).
기스 - 9:1 주석 참조.
아비엘의 아들 - 카일(Keil)과 스미드(Smith) 박사는 여기서 '아들'(* , 벤)을
'자손들' 혹은 '아들들'(* , 베네)로 보아양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14:52
본절은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왕국을 통치하는 기간 동안에 있었던 가장 특
징적인 사실들을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즉 (1) 숙적(宿敵) 불레셋과 간단없는 전쟁을
치루었다는 사실이며(17:1-3; 23:27; 29:1; 31:1,2), (2) 따라서 그러한 블레셋과의
전쟁에 대비키 위하여 정예 상비군을 조직함으로써, 국방력을 키워나갔다는 사실이다
(Pulpit Commentary). 이처럼 사울은 이스라엘의 사사(士師)시대를 마감하고, 왕정(王
政) 시대를 문을 열고 그 기반을 닦은 무사적(武士的) 왕으로서, 실로 백성들의 요구
대로 '열방과 같은'(8:5,20) 왕처럼 활약한 인물이었다.
사울이...불러 모았더라 - 이 말은 사울이 열방과 같은 왕처럼 조직적인 군대를 소
유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즉 사울은 힘있고 용맹한 백성들을 병사로 징집함으로써
상비군(常備軍)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13:2).
사무엘상 제 15장
=====15:1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 선지자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을 사울 왕에게 전달하
기 위해 그에게 다시 온 때는 두 사람이 헤어진 이후(13:15) 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인 듯하다. 대략 당시의 시점을 추정해 보면 다음과 같다. 즉 다윗은 그의 나이 30세
때인 B.C. 1010년 경에 왕위에 올랐는데, 만일 다윗이 최초 기름 부음 받은 때를 대략
15세 때로 본다면(16:11, 12) 그때는 아말렉 전투 직후였으므로(16:1), 아말렉 전투는
B.C. 1025년 경에 벌어졌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결국 사무엘이 사울에게 다시 온 이때
는 믹마스 전투 때(B.C. 1048년)이므로 사울과 헤어진 지(13:15) 약 23년 후라는 계산
이 나온다(Leon Wood, A Survey of Israel's History).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기름을 부어 - 사무엘의 이 말은 사울이 열방의 왕과는
다른 특성을 지닌 왕임을 보여 준다. 즉 선민 이스라엘의 왕 사울은 열방의 왕과는 달
리 신적(神的)인 기원을 가지며, 따라서 하나님의 대리자인 선지자의 지도를 받아야만
하는 왕이었다. 한편, 여기서 '기름을 부었다'는 선지자 사무엘의 말은 10:1의 사건과
연관되는 말이다(Keil, Fay).
이제 왕은...말씀을 들으소서 - 이말은 사울이 전에 여호와의 선지자 사무엘의 직
무를 침범했던 제사 사건(13:8-14)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사울은 그 사건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하나님의 일차 시험을 통과치 못했었다. 그러므로 여기 사무엘의
이 언급은 사울이 반드시 통과해야만 할 새로운 시험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질 것을
예시한다. 이로 볼 때 믹마스 전투 개시 직전, 사무엘이 사울의 불순종에 대해 심판적
경고(13:13, 14)를 내린 것은 최종적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즉 그 선언 이후 사
무엘이 다시금 사울을 찾아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킬 것을 당부한 것은 여호와께서 아
직 사울을 버리지 아니하사, 그로 하여금 새롭게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계
심을 의미한다(13:14 주석 참조). 이것은 마치 니느웨 성에 대한 요나의 심판 선언도
최종적인 선언인 것 같았으나, 니느웨 성이 회개하자 하나님께서 그 뜻을 돌이키신 것
과 같은 이치이다(욘 3:4-10).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길이 참으사 죄인이 회개하고 살
기를 바라시는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이시다(겔 18:23 ; 33:11 ; 롬 2:4). 그러나 사울
은 금번 아말렉 전투에서도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거역과 반역의 죄를 범함으로써(9
절), 마침내 하나님께 버림받고 만다(26절 ; 16:14).
=====15:2
만군의 여호와 - 이 표현은 특별히 성전(聖戰)과 관련하여 주로 언급된다(1:3, 11
; 4:4 ; 17:45 ; 삼하 5:10). 따라서 사무엘은 여기서 이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본절
이하에서 언급되는 아말렉과의 전투 명령의 엄숙성을 더욱 강조한다.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 아말렉 족속(the Amalekites)은 에서의 손자 아
말렉의 후손들로서(창 36:12, 16 ; 대상 1:36), 유다 남부 광야 지역을 거점으로 유목
과 약탈로 살아간 호전적인 족속이다. 이 족속은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직후 르비딤
광야에 이르렀을 때, 교활하게 이스라엘 후미(後尾)를 기습 공격했었다(출 7:8-13).
그런데 그때는 이스라엘이 오랜 노예 생활 끝에 해방된 직후였으므로 아무런 전투 능
력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신 25:17-19). 따라서 그때 이 일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입
은 타격은 실로 막대하였다. 그러므로 여기서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
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은 바로 이러한 아말렉의 기습 공격 사건을 뜻한
다. 아말렉의 이 공격 사건이 특히 용서받지 못할 사건이 된 것은 이것이 (1) 여호와
께서 이스라엘 위에 베푸신 크신 출애굽의 은총을 무시한 채 가나안 여정을 방해했던
사건이고, (2) 피곤하고 지친 이스라엘의 후미를 공격하는 비겁한 전술을 구사했던 사
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아말렉 족속을 선민(選民)이스라엘의 제 1의
대적국으로 간주하시고, 그 족속을 천하에서 도말하고 진멸할 것을 선언하시고 명령하
셨는 바(출 17:14 ; 신 25:19), 이러한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는 이방의 술사(術士) 발
람의 예언 속에서도 여실히 나타났다(민 24:20). 한편 이러한 하나님의 형벌 하에 놓
여진 아말렉 족속은 비단 이 사건 뿐만 아니라, 그 후에도 이스라엘이 요단을 통하지
않고 네게브(Negeb, 유다 남부 사막 지대) 지역을 통과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는
것도 방해하였다(민 14:43-45). 그리고 사사 시대에 들어와서도 이스라엘에 대한 그들
의 잔인하고 난폭한 침입은 결코 중지되지 않았었다(삿 3:13 ; 5:14 ; 6:3, 33 ; 7:12
; 10:12 ; 12:15). 이에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사울을 통해 아말렉 족속을 진멸코자 하
셨던 것이다. 출 17:14 ; 민 24:20 ; 신 25:19 주석 참조.
내가 추억하노니 - '추억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파카드'(* )는 '방
문하다', '생각하다'란 뜻으로서, 곧 어떤 일에 대해 잊지 않고 내내 기억하고 있다가
때가 되어 찾아가는 행위를 뜻한다. 물론 여기에서는 이스라엘에게 행한 아말렉 족속
의 적대 행위를 지적하고 있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한
아말렉의 적대 행위 자체만을 기억하고 있음을 뜻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이때 (1)
아말렉 족속에게 복수하라고 당신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셨던 사실(출 17:14 ; 신
25:19), (2) 그리고 아말렉에 대한 복수를 위한 성전(聖戰) 때에 하나님께서 친히 이
스라엘을 대신하여 싸우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던 사실(출 17:16) 등을 염두에 두고 이
말씀을 하셨을 것이다.
=====15:3
지금 - 출애굽 직후 가나안 행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한 아말렉 족속의 적대행
위에 대해 이스라엘이 복수해야 할 때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여러 측면에서 안
정을 이룩했을 시기로 지정하셨었다(신 25:19).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은 사울 치하에
서 정치적인 안정을 이미 구축하고 있었다(14:47, 48). 즉 아말렉을 칠 시기가 도래했
던 것이다.
가서(* , 얄라크) - '진군하다', '쫓아가다'란 뜻이다(출 13:21 ; 24:5,
8). 곧 총공격을 하라는 의미이다.
아말렉을 쳐서 - 여기서 '치다'(* , 나카)란 말은 '때리다', '쳐죽이다'
란 의미로서, 상대에게 치명적인 상해(傷害)를 입히는 것을 가리킨다(13:4 ; 14:14 ;
17:35 ; 수 10:20).
그들의 모든 소유를...진멸하되 - '그들의 모든 소유'는 문자적으로는 '그에게 속
한 모든 것'이란 뜻으로, 곧이어 언급되는 '남녀...나귀' 등 모두를 가리킨다. 한편
'진멸하되'(* , 하람)는 원래 '금지하다' 혹은 '바치다'란 의미이나, 여기서
처럼 사역형으로 사용될 경우 '분리시키다', '금지시키다'란 의미가 된다.특히 이 단
어는 성경에서 사역형으로 사용되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그리고 하나
님께 영광을 돌릴 목적으로 부정한 것을 제거하거나 저주받은 물건을 제사장에게 바치
는 행동을 나타낸다(Lange). 즉 하나님의 뜻에 의해 '헤렘'(바쳐진 것, 금지된 것)으
로 지정된 것은 결코 다른 용도로는 쓰여질 수 없었고, 오직 하나님의 공의(公義)의
만족을 위해 반드시 '헤렘의 법칙'대로 시행되어야만 했다. 따라서 만일 이 '헤렘'이
산 것이면 죽여야 했고, 그 밖의 물건들은 불로 다 태워버려야 했으며, 불로 태워지지
않는 금.은 등은 성소에 귀속시켜 하나님께 봉헌되어야만 했다(레 27:28 ; 신 13:16 ;
수 6:17). 한편, 이와 비슷한 법칙은 성경 외적 문헌들에도 나타난다. 곧 어떤 고대
문헌에는 모압 왕 메사가 이스라엘의 장년, 소년과 소녀, 하인 등을 잡아간 후 그들을
모두 죽여서 자신의 신 그모스에게 바쳤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Pritchard). 따라서 여
기의 '진멸하되'는 단순히 정치.군사적 행동이 아닌 영적.종교적 행위라는 점에서, 사
울로서는 반드시 그대로 이행해야 될 사항이었다. 레 27:28 ; 신 13:17 ; 수 6:17 주
석 참조.
남기지 말고 - 여기서 '남기다'(* , 하말)는 '긍휼히 여기다', '동정하
다', '아까워하다'란 뜻이다(23:21 ; 삼하 12:6 ; 대하 36:15, 17). 그러므로 이 말은
'일말의 동정도 하지 말고' 또는 '조금도 아까워 말고'란 뜻이다. 곧 이는 거룩한 하
나님의 의롭고 공의로운 심판대로 철저히 시행하라는 엄숙한 명령이다.
=====15:4
사울이 백성을 소집하고 - 여기서 '소집하다'(* , 솨마)는 원래 '듣다'란
의미이나, 여기서처럼 강조형으로 쓰일 경우 '불러 모으다', '듣게 하다'란 뜻이 된다
(시 66:8 ; 렘 51:27). 결국 이것은 전투의 필요성을 알리며, 그렇게 함으로써 백성들
이 전투하기 위하여 모여 들도록 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들라임에서 계수하니 - '들라임'(Telaim)은 유다의 한 성읍으로서 '델렘'(수
15:24)과 동일 지역인 듯하다(Kimchi, Keil). 그런데 '델렘'(Telem)은 여호수아서에서
유다의 또 다른 성읍 '십'과 같이 언급된다는 점에서 그곳에 인근한 지역일 것이다.
한편 '십'(Ziph)은 헤브론 남쪽 약 51km지점에 위치해 있다. 결국 '들라임'은 유다 남
방의 국경 지대에 있는 장소로서, 곧 아말렉과의 경계 지점에 위치했음이 분명하다.
이처럼 아말렉 경계 지점에 위치해 있다는 지리적 여건상, 아말렉 전투를 수행키 위한
군사들의 집결 장소로 이곳이 채택된 것 같다(Fay). 한편 '계수하니'는 오히려 '소집
하다'란 의미로 봄이 좋다(11:8).
보병이 이십만...유다 사람이 일만 - 여기서 '유다 사람'만 유독 구별되어 있는 것
은, 여기에는 본서 기록 당시의 정치적 상황이 의도적으로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11:8). 즉 이 아말렉 전투가 벌어졌을 당시 유다 지파는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와 완
전히 동화되지 못했음이 분명하다(Klein). 한편 '이십만...일만'은 야베스 길르앗 전
투때 소집된 병력 '삼십만...삼만' 보다는 적은 숫자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유다 지파는 병력 소집 장소인 '들라임'에 가까이 거주했으면서
도 참여율이 다른 지파에 비하여 훨씬 적었다는 사실이다(11:8). 이것은 결국 유다 지
파가 사울의 왕국에 대하여 특별히 도전적 자세를 취하고 있었음을 암시해 준다. 아마
유다 사람들은 그때 자신의 지파에서 왕이 나와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창
49:10).
=====15:5
아말렉 성에 이르러 - '아말렉 성'은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 곳
으로서, 지금도 정확한 위치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아무튼 이때 사울의 군대는 국경
을 넘어 아말렉의 영토 안으로 진격해 들어갔음이 분명하다.
골짜기에 복병하니라 - 여기서 '골짜기'는 건기(乾期)에는 물이 흐르지 않는 '와
디'(Wady)를 가리킨다. 그리고 '복병'(伏兵)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들과 정복전을
치를 때 이미 전술의 한 형태로서 사용되었다(수 8:2 ; 삿 20:29). 그러나 여기의 '복
병'은 아말렉을 기습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말렉 사람들과 함께
거주했던 겐 사람들(the Kenites)을 대피시킬 시간적 여유를 갖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15:6
사울이 후대의 다윗처럼(27:10 ; 30:26-30), 이스라엘에 대하여 우호적이었던 겐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장면이 언급되고 있다.
겐 사람 - '겐'(* , 케니)은 '금속 세공업자' 혹은 '대장장이'란 의미
이다. 이와 같은 명칭은 그들이 살던 아라비아 지역에 질이 좋은 동광석(銅鑛石)이 풍
부했었다는 역사적 사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 당시 유목민
으로서 가나안 땅에 거주한(창 15:19) 겐 족속의 일파는, 모세 당시에는 미디안 지역
에 거주했었으며(출 2:16-21 ; 18:1 ; 민 10:29),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때에는
그 족속의 한 사람이었던 모세의 처남 호밥이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길 안내자가 되면
서(민 10:29-32) 이스라엘과 우호적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후 그 민족은 이스라
엘의 남부 브엘세바 근처에서 살게 되었다(삿 1:16). 그리고 이때로부터 점점 남부로
내려가, 사울 시대에는 아말렉 족속들의 지역에 함께 거주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겐 사람들 모두가 이스라엘에 대해 호의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여기서 언급된 '겐 사
람' 이외의 또 다른 '겐 사람'의 일파는 아라비아의 페트레아(Petrea) 지역에 살면서
에돔과 동맹을 맺고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등, 이스라엘에 대하여 적의를 갖고 있었다
(Lange). 그러나 여기 언급된 겐 사람은 이후 다윗 시대까지 이스라엘과 우호적인 관
계를 형성하였다(30:29).
선대하였느니라 - '선대'(* , 헤세드)는 '인자', '긍휼' 등의 의미로서,
이 단어는 성경에서 주로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가리킬때 사용되었다(창 19:19 ; 시
23:6 ; 106:45). 그러나 여기 언급된 겐 사람들의 '선대'는 구체적으로 그들이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여행 길 안내자가 되어주었다는 사실이다(민 10:29-32).
출애굽 당시 모든 민족들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적대(敵對) 행위를 한것에 비하면, 겐
사람들의 이같은 태도는 '선대'(善待)라고 하기에 가히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삿
4:11-22 ; 5:24-27). 한편 혹자(Hengstenberg)는 이처럼 아말렉 족속으로부터 겐 족속
이 구별되어 보호 받을 것이란 사실은 이방의 술사 발람의 예언(민 24:20, 21) 속에서
이미 나타난다고 한다. 민 24:21 주석 참조.
떠나니라 - 이것은 겐 사람들이 그 지역에서 영원히 떠났음을 말하지 않는다. 단지
아말렉과 이스라엘의 전투를 피해 잠시 다른 곳으로 이동 대피했음을 의미한다. 이는
이후 사울 왕 말기에도 겐 사람들이 네게브(Negeb) 지역에 계속 살고 있었다는 사실로
써 확증될 수 있다(27:10 ; 30:26-30).
=====15:7
하윌라에서부터 애굽 앞 술 - '하윌라에서부터~술에 이르기까지'라는 말은 당시 아
말렉 족속들이 흩어져 살던 거의 모든 영역을 가리킨다(창 25:18). 한편 '하윌라'
(Havilah)는 '광황한 모래 사장'이란 의미로서, 아라비아 반도 북서부 쯤에 위치한 한
지역 정도로만 추측된다(S.Cohen). 카일(Keil)과 스트라보(Strabo)는 현재 이곳을 아
라비아의 페트레아 경계 지점에 위치한 '하우로테안'(Chaulotoeans) 지역으로 본다.
그리고 '술'(Shur)은 딤사 호수 동쪽에 위치한 시나이 광야를 뜻하는 일반적 명칭인
듯하다(창 16:7). 즉 이곳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최초로 도달한 지역으로
(출 15:22), 애굽과 팔레스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아라비아 사막의 일부이다(Keil).
그리고 현재의 지명은 '이팔'(Jifar) 광야이다(Fay). 한편, 위의 언급을 통해 우리는
사울이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유다 국경 지대로부터 애굽의
경계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족속의 거의 전지역을 초토화(焦土化) 시켰음을 알 수 있다
(Smith).
=====15:8,9
본문은 사울이 하나님의 진멸 명령을 부분적으로만 이행하였음을 보여 준다. 즉 사
울은 일반 백성들과 짐승의 열등한 것들은 명령대로 모두 진멸했지만, 자신에게 실리
적으로 유용한 짐승 또는 우수하고 질 좋은 것들은 진멸치 아니했다.
아각을 사로잡고 - 사울이 하나님의 지엄한 명령을 따르지 아니하고, 이처럼 아말
렉 족속의 왕 '아각'(Agag)을 살려둔 이유는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즉 (1) '아각'
을 통하여 큰 실리(實利)를 얻기 위한 목적(왕상 20:31-42), (2) 혹은 '아각'을 통하
여 자신의 이름을 내기 위한 목적(12절) 등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한편 '아각'(*
)은 애굽 왕을 '바로'라고 하듯이, 아말렉 왕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불려지던 명
칭이다(민 24:7 주석 참조). 그리고 '아각'의 의미는 '맹화'(猛火)란 뜻이다(Lange).
그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 이 말은 아각을 제외한 모든 아말렉 사람들을 하나
도 남김없이 모두 진멸했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거의 모든 아말렉 족속을 쳐죽였다는
뜻이다(Fay). 사실 아말렉 족속이 거주하던 유다 남부 광야 지대는 광활했을 뿐만 아
니라, 아말렉 족속은 유랑 생활을 하던 족속이었으므로 이들을 완전 진멸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Smith). 따라서 당시 일부는 피해 달아났거나 또는 발각되지
않았던 관계로 살아 존속했을 터인데(27:8 ; 30:1 ; 삼하 8:12). 결국 이들은 히스기
야 시대에 시므온 사람들에 의해 전멸되었다(Keil, 대상 4:43). 한편, 여기서 진멸하
였으되(* , 헤헤림)란 말의 개념에 대해서는 3절 주석을 참조하라.
기름진 것(* , 미쉐님) - 직역하면 '두번째로 태어난 것'이란 뜻이
다(D. Kimchi, R. Tanchum). 그러나 이는 다른 것보다 열등하다는 뜻이 아니라, 다른
것보다 좋다는 의미이다(Keil, Fay). 사실 고대인들은 동물의 태(胎)에 있어, 첫번째
태보다 두번째 태를 더 좋은 것으로 간주하였다(Smith).
=====15:10,11
사무엘의 제사권 침해 사건(13:9)에 이어 여기서는 사울이 하나님에 의해 제시된
두번째 시험, 곧 아말렉 진멸 사건에서도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
주고 있다(1절 ; 13:8-14).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 여기 하나님의 '후회'는 인간의 후회와는 전혀 그 성격
이 다른 것이다. 즉 하나님의 후회는 당신의 어떤 특별한 행위가 잘못되었음을 인정하
여, 거기서 돌이키는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29절). 이것은 다만 죄인의 거역에 대한
신적(神的)인 슬픔을 의인법적(擬人法的)으로 묘사한 표현일 뿐이다(창 6:6, 7).
돌이켜서(* , 슈브) - 성경 용례상 이 말은 종종 여호와께 대한 반역 및
배교를 나타낼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민 14:43 ; 32:15 ; 수 22:16, 18 ; 렘 3:19).
사무엘이 근심하여 - 여기서 '근심하다'(* , 하라)란 말은 '(분노로) 타
오르다'란 의미이다. 따라서 여기 이 말은 오히려 '진노하여'로 번역함이 타당하다(창
4:6 ; 민 11:33 ; 신 7:4 ; 삼하 24:1). 아마도 이때 사무엘은 자신의 간곡한 권면(1
절)에도 불구하고 사울이 자신의 이기적 충동을 따라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써, 결국
왕을 세운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이 손상되고 파괴되었다는 그 사실로 인하여 거룩한
의분(義憤)을 느꼈을 것이다(Keil, Fay).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 사무엘의 이같은 태도는 왕과 백성들을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겠다고 했던 자신의 각오(12:23)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자신의
각오처럼 이때 사무엘은 (1) 하나님께로부터 사울의 불순종의 죄를 사죄받기 위하여,
(2) 그리고 무엇보다 사울이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뉘우치고 회개하기를 바라고 기도
하였을 것이다. 이처럼 사무엘이 여호와께 부르짖는 모습은 이전에도 수차 나타나는데
(7:8, 9 ; 12:18), 이로 보아 진정 사무엘은 기도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죄인
이 죄 용서함 받기 위해서는 가장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전제 조건이 있으니, 곧 당사
자인 그 죄인의 회개이다. 그러나 사울은 끝내 회개치 않음으로써 스스로 멸망을 자초
하고 만다. 한편, 유대 학자 아바르바넬(Abarbanel)은 여기서 사무엘이 사울을 위하여
그처럼 간절히 중보 기도한 것은, 사무엘이 개인적으로 사울을 그 용모와 용감성 때문
에 진정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Lange, Commentary on the Holy Scripture).
=====15:12
사울이...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 여기서 '자기를 위하여'란 말은 사울의
이기적 행동 원리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말이다. 한편 '기념비'(* , 야드)는
원래 '손'(hand)이란 뜻이나, 손으로 어떤 모양을 만들어 자신의 이름을 낼 수 있다는
효과 때문에 '기념비'란 의미로 전의(轉義)된 듯하다(삼하 18:18 ; 사 56:5). 한편 여
기서는 아말렉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승전비(勝戰碑)를 가리킨다.
갈멜에 이르러 - 여기의 '갈멜'(Carmel)은 헤브론 남동쪽 약 15km 지점에 위치한
유다 지파의 성읍으로서, 원래 갈렙에게 주어졌었다(수 15:55). 이곳은 또한 나발과
아비가일의 고향이기도 하였다(25:2-40). 현재의 '쿨물'(Kurmul) 지역으로 추정된다
(Fay, Keil).
돌이켜...길갈로 내려갔다 - 사울이 자신의 고향이자 당시 이스라엘의 정치적 수도
인 기브아(10:26)로 가지 아니하고 '길갈'로 간 까닭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릴 수 있
는 제단이 있는 여러 곳(7:16) 중 가장 가기에 용이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21절). 한
편 '내려갔다'(* , 야라드)라는 말은 길갈(Gilgal)이 요단 골짜기 저지대에
위치했었다는 지리적 특성을 잘 반영해 준다(10:8 ; 창 43:20 ; 수 16:7 ; 18:16). 즉
사울은 갈멜에서 승전비를 세운 뒤 유다 산맥을 가로질러 요단 계곡의 길갈로 향했던
것 같다(13:4). 한편 '길갈'(Gilgal)에 대해서는 수 4:19 주석을 참조하라.
=====15:13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 '여호와의 명령'은 분명 아말렉에게 속한 모
든 것을 남김없이 진멸하라는 것이었다(3절). 그러나 사울이 이같은 여호와의 명령을
제대로 이행치 않았으면서(8, 9절), 명령을 온전히 이행한 듯 묻기도 전에 말한 것은
죄의식(罪意識)의 소산이요, 외식(外飾)의 결과였다.
=====15:15
그것은 무리가...끌어 온 것인데 - 여기서 '무리가'란 말은 13절의 '내가'란 말과
너무나도 대조된다. 즉 13절에서는 자신을 내세워 자신의 공로를 주장하다가, 이제 상
황이 불리해지자 재빨리 '무리가'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그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한 것
이다. 이렇듯 진정한 회개 및 죄의 고백으로부터 점점 멀리 떠나가는 사울의 위선이
애처롭다. 이는 마치 선악과를 먹은 아담이 그 죄를 하와에게 떠넘기려는 책임 전가와
다를 바 없다(창 3:12). 그러나 당시 백성들은 사울의 허락이나 묵인 없이는 결코 짐
승들을 끌고 올 수 없었다(14:24-26).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남김이요 - 사울의 이 말은 거룩한 제사 의식을 빌미로
하여 자신의 범죄와 이기심을 합리화 하려고 애쓰고 있음을 잘 보여 주는 말이다. 그
러나 비록 사울이나 백성들이 짐승들을 실제로 하나님께 제사드리기 위하여 진멸치 아
니했다고 할지라도, 그들에게 잘못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짐승들을 하나님께 제사드린후 그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결국 그들은 바로
이같은 이기적인 계산에 따라 '제사'를 빙자하여 짐승들을 진멸치 아니한 것이었다
(Keil).
=====15:16
가만히 계시옵소서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레프'(* )는 문자적으로
'중지하라!'(Stop!)란 뜻이다. 결국 이 말은 핑계와 변명, 책임 전가 등을 이제 그만
두라는 의미로서, 사울의 구차한 변명을 더이상 듣지 않겠다는 사무엘의 확고한 의지
를 반영하는 말이다.
간밤에...이르신 것 - 이 계시는 사무엘이 철야하며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로부터
임하신 사울에 대한 말씀인 듯하다(11절).
=====15:17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 이것은 말할 나위없이, 처음 사무엘이 사울을 왕
으로 세우려는 의사를 보였을 때에 사울이 취했던 겸손한 행동을 가리킨다(9:21). 그
러나 왕위에 오르고 권력이 생기자 사울은 점차 교만한 자가 되어, 결국은 비천한 자
신을 들어 왕으로 세우신 여호와의 명령까지 무시하는 패역한 자가 되고 말았던 것이
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
라"(마 23:12).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벧전 5:6).
여호와께서...기름을 부어...왕을 삼으시고 - 이것은 (1)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위
에 오른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2) 따라서 사울의 왕권은 이방의 그것과
는 달리 하나님의 명령과 뜻을 온전히 실행할 의무가 뒤따른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15:18,19
여기서 사무엘은 사울에게 하달된 여호와의 신성한 명령을 사울이 전적으로 이행치
아니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사울의 주장(13, 15절)이 자기 변명과 외식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다.
길로 보내시며 - 여기서 '길'(* , 데레크)은 여호와께서 사울에게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라는 신성한 명령을 주어 내보낸 원정의 길을 뜻한다(Fay).
죄인 아말렉 - 여기서 '죄인'이란 말은 '아말렉' 족속들이 마땅히 진멸됐어야 할
합당한 이유이다. 그런데 여기 아말렉 족속의 용서받지 못할 죄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백성을 멸절시키려 했던 죄이다(2절 ; 출 17:8-13).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 이것은 문자적으로 '탈취물에게로 날아갔다'(flew on the
spoil, KJV)란 뜻이다. 이 말은 아말렉과의 전투시 사울이 아말렉의 좋은 것들을 보고
그 마음에 탐심이 생겨, 그것을 간절하고도 열정적으로 원했다는 뜻이다. 결국 사무엘
의 이 말은 사울이 여호와께 제사드리기 위해 아말렉의 좋은 것들을 남긴 것이 아니
라,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것이었음을 지적하는 말이다.
=====15:20
아각을 끌어왔고 - 사울은 여기서 여호와의 진멸 명령을 거역하고 '아각'을 살린
자신의 사악한 행위(8, 9절)를 전혀 죄로 인정치 않고 있다. 오히려 여호와의 명령을
좇아 아말렉과 전투를 수행했다는 그 실제적인 증거로서 아각을 사로잡아 왔다는 식으
로 자신의 정당성을 강변하고 있다.
=====15:21
사울은 15절에 이어 여기서도 아말렉의 짐승을 진멸치 않은 자신의 범죄를, (1) 하
나님의 제사를 빙자하고 (2) 또한 백성들에게 떠넘김으로써 정당화시키려 한다(15절).
=====15:22
번제와 다른 제사 - '번제'는 헌신을 상징하는 제사이다(레 1:3-17). 그리고 '다른
제사'(* , 제바힘)는 문자적으로 '희생'(sacrifices)이다. 그런데 이것
은 복수로 언급되어 있다는 점에서, 번제 이외의 다른 희생 제사 모두를 가리킴이 분
명하다<레위기 서론, 7.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 아말렉 족속에 대한 여
호와의 진멸 명령(3절)을 무시한 채, '여호와께 제사드릴 목적으로'(15, 21절) 그 족
속의 가장 좋고 기름진 짐승들을 끌고 왔노라고 극구 주장하는 사울에게 사무엘이 명
쾌히 선포한 이 말은, 오고오는 세대들에게 외적 의식(儀式) 행위 보다는 내적 마음의
순종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금언적(金言的) 말씀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사무엘 이후 많은 선지자들에 의해, 여호와께 대한 합당한 예배의 기본 자
세로 거듭 강조되었다. 즉 시편 기자(시 50:8-15 ; 51:16, 17), 이사야(사 1:11-17),
예레미야(렘 6:20), 호세아(호 6:6), 미가(6:6-8), 그리고 마침내 참 선지자요 대제사
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이 사실이 다시금 확증되고 강조되었다(마 9:13 ;
12:7). 따라서 이 말씀의 핵심을 다시 요약하면, (1) 예배의 형식 보다는 예배자의 마
음 자세가 더욱 중요하며(전 5:1 ; 미 6:6-8), (2) 영(靈)이신 하나님께서는 수양의
피나 기름보다 인간의 전인격적 마음을 원하시며(시 51:17 ; 요 4:24), (3)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모든 신앙 생활의 척도가 된다(딤후 3:16, 17)는사 실이다. 이런 의미에
서, 사실 구약 시대의 모든 희생 제사 행위는 짐승을 잡아 피를 뿌리고 그 고기를 제
단 위에서 태우는 일,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만 그러한 행위를
통하여 인간이 그 행위 속에 담긴 참뜻을 깨달아, 하나님께 헌신하고 순종하는 일이
더욱 중요한 것이었다. 즉 '제사'는 그림자요, '순종'은 실체인 것이다. 벧렌베르겔
성경(Berlenberger Bible)은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제사(sacrifices)로는
인간이 단지 비이성적인 짐승의 고기만을 드릴 뿐이지만, 순종(obedience)으로는 인간
이 자신의 뜻을 바친다. 그러므로 순종이야말로 이성적이고 영적인 제사인것이다"
(Keil & Delitzsch, Vol. II-ii. p. 156). 한편, 그러나 사무엘의 이 말은 '제사'를
부정하는 말은 아니다. 다만 사무엘이 여기서 강조한 근본 사상은 제사 행위 속에는
반드시 순종의 자세가 깃들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요, 제사로 말미암아 순종이 거부되
거나 무시될 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말은, 후대의 예언자들이 합당한 예
배에 앞서 성도가 갖추어야 할 기본 자세를 언급하면서 많이 사용하였다(사 1:10, 11,
13 ; 렘 7:21-26 ; 호 6:6 ; 암 5:21-24 ; 미 6:6-8 ; 막 12:28-34).
수양의 기름 - 여기서 '기름'(* , 헬레브 ; fat)은 희생 제사에서 하나님
께 태워지던 부분으로서, 주로 가축의 내장 및 꼬리 주위의 '기름진 부분'을 가리킨다
(레 3:16, 17 ; 7:23-25).
=====15:23
사술의 죄 - 여기서 '사술'(* , 케셈)은 점(占)을 치는 행위를 뜻하며,
이같은 행위는 당시 이방 세계에서 보편화 되었었다(6:2 ; 민 22:7 ; 신 18:14 ; 수
13:22). 그리고 이스라엘 사회에서도 거짓 선지자들에 의해 행해졌었다(렘 14:14 ;
27:9 ; 29:8 ; 겔 13:6, 23 ; 미 3:7). 따라서 이러한 행위는 우상 숭배죄로 규정되어
성경에서 절대 금지되었다(신 18:10 ; 왕하 17:17).
사신(邪神) 우상 - '사신'(* , 아웬)은 '악함', '무가치함', '허탄한 것'
등의 의미로서, 성경 다른 곳에서는 '우상'으로 번역되었다(사 66:3). 그리고 '우상'
(* , 테라핌)은 중근동 사람들이 가신(家神)으로 섬기던 우상의 한 종
류인데(창 31:34, 35 ; 삿 17:5 ; 18:14),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점(占)을 치는 수단
으로써 언급되기도 한다(겔 21:21 ; 호 3:4). 창 31:19 주석 참조.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 여기서 '버려'(* , 이므아스카)는 미완료
형이므로 미래형의 의미로 번역해야 된다는 점에서, 사울의 왕권이 머지않아 끊어질
것을 시사해 주는 단어이다. 그러나 만일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지 않고, 그 말
씀을 제대로 좇았다면, 그의 왕권은 그의 후손들에게까지 세습될 수 있었을 것이다
(13:13). 한편 여기의 '버려'라는 단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방과 같은 왕을 요구함
으로써 하나님을 배척했던 그 행위를 나타낼 때, 하나님께서 친히 사용하셨던 단어이
다<8:7>.
=====15:24
사울은 사무엘의 날카로은 심문과 경고에 의하여, 변명으로 일관하던 태도를 바꿔
이제 자신의 죄를 시인했지만, 그 시인한 죄조차도 불가피한 상황하에서 백성들 때문
에 어쩔 수 없이 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 사울의 이 고백은 진정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범죄
하였는지를 깨닫고 뉘우치는 참된 회개라고 볼 수 없다(Keil, Fay, Smith). 그 이유는
(1) 계속 자신의 죄를 시인치 않고 변명과 책임 전가로만 일관하다가, 사무엘의 무서
운 심판적 선언(22, 23절)을 듣고 난 후에야 비로소 어쩔 수 없이 시인했기 때문이며,
(2) 또한 죄의 고백 후에, 다시금 백성들의 탓으로 그 죄의 원인을 책임 전가하는 말
(24b)을 덧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3) 나아가 고백 후에도 계속 왕위 보존과 왕권의
명예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30절). 결국 라피데(C.V. Lapide)가 정의한 것처럼,
"사울의 이 고백은 순수한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온 통회의 회개가 아니라, 단지 왕국의
상실과 명예의 실추를 두려워한데서 비롯된 '입술의 회개'(repentance of the lips)였
다"(Keil & Delitzsch, op. cit. p. 157).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 사울의 이 변명은 어느정도 진실임에 틀림없다. 그당시
사울의 왕권은 웬만큼 백성들로부터 인정은 되고 있었으나, 근본적으로 사울은 백성들
의 요구에 따라 세워진 왕이었기 때문에 백성들의 눈치를 실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다(30절). 바로 이 사실이 사울 왕권(王權)의 한계요, 비극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서는 사울을 폐하고, 당신께로부터 비롯된 마음에 합당한 한 인물(다윗)을 따로 세울
필요가 있었다(13:14 ; 행 13:22).
=====15:25
지금 내 죄를 사하고 - 사실 사울의 죄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이라는 점에서,
하나님께 자신의 죄 용서를 구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여기서 사무엘에
게 자신의 죄 용서를 간절히 요청하고 있다. 이 사실은 사울이 아직까지도 그가 지은
죄의 근본 성격을 제대로 이해치 못했음을 시사해 준다. 즉 사울은 하나님께 대한 범
죄를 인간에 대한 범죄 정도로 가볍게 인식했던 것이다.
나와 함께 돌아가서 - 이때 사울이 사무엘과 함께 가려고 했던 목적지는 길갈 제단
이었을 것이다(21절).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 여기 사울의 이 '경배' 허락 요구는, 사울이 하나님께
회개할 기회를 갖고자하는 의도에 따른 것이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사울은 그때 사무
엘이 집전하는 제사의 현장에 사무엘과 함께 있음으로써, 자신이 왕으로서 건재함을
만백성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의도에따라 사무엘에게 함께 제사를 드리러 가자고 요청
했던 것이다<30절>.
=====15:26
사울의 심중(心中)을 간파한 사무엘은 여기서 사울의 폐위된 왕권은 어떤 방법으로
도 회복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단호히 선포한다. 여기에 왕권에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않는 참 선지자로서의 절개가 돋보인다. 한편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점은 사울에
대한 하나님의 왕직 박탈은 단순히 사무엘의 제사직 침해 사건(13:9)과 아말렉 왕과
짐승을 살려둔 사건(15:9)의 두 가지 사건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즉 이 두 가
지 불복종 사건은 사울이 저지른 유일한 불복종 사건이 아니라, 많은 반역적이고 불순
종적인 사건들 중 대표적인 경우라는 점이다(Leon Wood).
=====15:27
사무엘이 가려고 돌이킬 때에 - 사무엘의 이같은 행동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 사울에게 그의 폐위가 확정적임을 행동으로 선언한 것이다.
(2) 사울의 반복되는 간청 때문에 인정에 얽매여 혹시 범할지 모르는 인간적 실수를
피하기 위함이었다.
겉옷 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 여기의 '겉옷'(* , 메일)은 몸에
꽉붙는 옷을 가리킨다(R. Payne Smith). 따라서 사울이 붙잡았다는 것은 그가 사무엘
에게 극렬히 매달렸음을 뜻한다. 한편 사무엘의 옷이 찢어진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
리에 따라 이뤄진 일임이 분명하다. 즉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의 옷이 찢어지게 하심으
로써, 그 일을 사울의 왕권이 취소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하나의 징조(sign)로 삼
으셨던 것이다. 그같이 볼 수 있는 근거는 여기 '찢어진지라'는 말이 28절의 '떼어서'
(* , 카라)란 말과 동일한 단어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15:28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 - 여기서 '이웃'(* , 레아)은 비한정적인 용법으로
사용된 말로, 곧 '누구든 간에 어떤 다른 사람'(an other)이란 의미이다. 그런데 이후
전개되는 역사에 견주어 볼 때, 여기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곧 다윗을 가리킨다(13:14 ; 행 13:22).
주셨나이다(* , 네타나흐) - 여기서 이 단어는 13:14에서처럼, 다윗이
이미 왕으로 선택되었다는 사실을 시사해 주는 과거 완료형의 의미로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이때 사무엘은 사울을 이어 이스라엘의 차기(次期) 왕 될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지 못했었다(16:3, 6-13).
=====15:29
사무엘은 인간의 가변적(可變的) 속성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하나님의 불변적(不變
的) 속성을 소개함으로써, 사울의 왕권이 다시 회복되기 불가능함을 명확히 선언하고
있다.
지존자(* , 네차흐) - 하나님의 신적(神的) 속성을 시사하는 명칭 중의
하나로서, '영광스러우신 분', '영원히 계시는 분', '승리하시는 분', 그리고 '변함이
없으신 분' 등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Klein).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 - 여기서 '변개(變改)하다'(* , 나함)란 말
은 11, 35절의 '후회하다'란 말과 같은 어근(語根)의 말이다. 그렇지만 본절의 '변개
함이 없다'란 말과 11, 35절의 '후회하셨다'라는 말은 상호 모순되지 않는다. 왜냐하
면 11, 35절에 묘사된 하나님의 후회(변개)는 사람의 후회나 변개처럼 그 마음의 변덕
이나 어떤 계획의 차질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고, 다만 인간의 타락에 대해 가지는
신적 긍휼과 슬픔을 신인동형 동성론적(神人同形同性論的, *
, 안드로포파도스)으로 묘사한 것 뿐이고(창 6:6, 7), 본절에 묘사된 바 '변
개(후회)함이 없다'란 표현은 신적 섭리와 경륜에 대한 하나님의 속성을 순수하게 신
성론적(神性論的, * , 데오프레포스)으로 기술한 것이기 때
문이다(Keil, Fay). 실로 스스로 계시는 영원자 하나님께서는 과거.헌재.미래가 동일
하신 분이시다(출 3:14). 다만 하나님의 영원하신 경륜과 섭리가 인간의 자유 의지와
맞물려 역사가 진행될 때, 인간 편에서 일어나는 영고 성쇠(榮枯盛衰)가 마치 하나님
에게 어떤 변화가 있는 것으로 보여질 뿐이고, 또한 11, 35절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의
인화시켜 묘사했을 뿐이다(R. Payne Smith). 민 23:19 주석 참조.
=====15:30
범죄하였을지라도...나를 높이사...경배하게 하소서 - 여기서 사울은, 하나님의 작
정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왕권이 건재함을 만인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줄
것을 사무엘에게 다시금 요청한다<25절>. 이로써 사울은 죄의 고백(24절)이 정치적 목
적 때문이었음을 보여 주었으며, 또한 여호와께 대한 경배 역시 자신의 명예 때문이었
음을 드러내고 말았다. 실로 사울은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딤전 6:5)로
서, 선민 이스라엘을 여호와의 말씀으로 이끌 왕의 직무를 감당하기에는 부적격자라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하고 말았던 것이다.
내 백성미 장로들 - 여기서 '내 백성'이라는 말은 사울이 그때, 이스라엘 민족이
여호와 앞에서 갖는 언약적이고 영적인 특성을 완전히 망각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15:31
하나님의 최종적인 폐위(廢位) 선언으로 말미암아(23, 26절), 사울은 이후 왕위에
는 있으나 실상은 왕이 아닌 자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사
무엘은 함께 제단으로 가서 여호와께 제사드리자는 사울의 간절한 요청(25, 30절)을
들어주었다. 이처럼 사무엘이 사울의 요청을 허락한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1) 비록 형식적이긴 하지만 차기 이스라엘 왕이 등극할때까지 그래도 사울을 통하여
외적인 정치 질서를 유지시켜 나갈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O.V. Gerlach). (2) 사
울과 함께 가서 아말렉왕 아각을 죽임으로써, 사울이 완수하지 못한 일을 자신이 마저
처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C.F. Keil).
=====15:32
아각이 즐거이 오며 - 여기서 '즐거이'(* , 마아단노트)는 '부드럽
다', '느슨하다'의 의미를 갖는 아랍어 어근 '아단'(* )에서 파생된 단어로
서 '기쁘게', '기꺼이' 등의 뜻이다. 아마도 아각은 자신이 왕의 손에서 제사장의 손
으로 넘어가게 됨을 알고, 이제는 자신의 목숨이 부지될 줄로 확신했던 것 같다
(Clericus). 한편 '아단'이라는 동사에서 '복락', '기쁨', '환히' 등의 의미가 있는
'에덴'이란 단어가 파생되었다(창 2:8 ; 시 36:8).
진실로 사망의 괴로움이 지났도다 - 벌겟역(the Vulgate)과 수리아역(the Syriac)
은 아각의 이 말을, 그가 자신의 죽을 운명을 예견하고 불안과 체념으로 한 말이라고
보고 "실로 죽음은 괴롭도다"란 의미로 번역했다(R. Payne Smith). 그리고 혹자는 아
각의 이 말을, 죽음을 앞둔 전사로서의 영웅적 용기로 치켜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문
맥을 통해 볼 때, 여기 아각의 이같은 언급은 자신이 사무엘에게 넘겨짐을 알고, 여호
와의 선지자 특히 노년의 선지자는 적어도 왕이나 군대 보다는 긍휼이 풍성할 것이라
는 그 자신의 판단에 따라 '마침내 죽을 고비를 넘겼나 보다'(공동번역)라는 의미로
한 말이었다(Lange).
=====15:33
여인들로 무자케 한 것 같이...무자하리라 - 사무엘은 '동해 복수법'(Lex Talionis
, 출 21:24, 25 ; 신 19:21)에 근거하여 아각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한편 사무엘의 말
을 통해 우리는 아말렉 왕 아각(Agag)이 수많은 전쟁과 약탈을 통해 매우 잔인하고 포
악하게 행동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여기서 '여인들로 무자케 한 것 같
이'란 말은 아각이 여인들을 애기 못낳는 불임 여성으로 만들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만 여인들의 자식을 죽여 없앴다는 뜻이다.
여호와 앞에서 아각을...쪼개니라 - '여호와 앞에서'는 곧 여호와의 제단 앞을 가
리킨다. 본서 저자가 여기서 특별히 이같은 언급을 한 까닭은, 사무엘의 아각 처형이
단순히 정치 보복적 차원이 아닌, 철저히 하나님의 아말렉 족속 진멸 명령(3절)에 근
거하여 영적.공의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일임을 강조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한편 선
지자의 이같은 직접적인 형 집행은, 왕이 합당한 형 집행을 게을리하는 경우에 대신
이뤄졌었다(왕상 18:40).
찍어 쪼개니라 - 기본 동사 '솨사프'(* )는 '여러 조각내다'(cut in
pieces) 또는 '토막토막 끊다'(hew in pieces)란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아각의 비참
한 죽음을 연상시켜 주는데, 우리는 이를 단순히 잔인하다고 비난해서는 안된다. 오히
려 우리는 포악한 아말렉 족속의 아각 왕에 의해 더욱 비참하게 살해당했을 수많은 자
들을 생각해야 하며, 또한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와 그 백성을 파멸시키고자 끝없이 이
스라엘을 괴롭힌 아말렉 족속의 극한 죄악을 기억해야 한다. 즉 이는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사단 왕국의 우두머리에 대한 신적(神的) 공의의 정당한 수행이라는 차원에
서 이해해야 한다.
=====15:34
사무엘은 라마로...사울은 기브아 본집으로 - 길갈에서 여호와께 대한 제사와 아각
의 처형을 마친 후, 사무엘과 사울은 각자의 거처로 각각 돌아갔다. 이 사실은 단순히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의미 외에, 이후 두 사람의 교제가 단절되었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한편 사무엘의 고향 '라마'(Ramah)에 대해서는 1:1주석을, 그리고 사울
의 고향 '기브아'(Gibeah)에 대해서는 10:26 주석을 각각 참조하라.
=====15:35
사무엘이...사울을 다시...보지 아니하였으니 - 이 말은 사무엘과 사울이 죽기까지
서로 상면조차 아니했다는 의미라기 보다는(19:24), 사무엘이 사울에 대해 선지자로서
의 권고를 더이상 하지 않았음을 가리킨다. 결국 이것은 사무엘이 사울을 신정(神政)
왕국의 왕으로 더이상 인정치 아니했음을 뜻한다. 즉 신정 왕국의 특성은 왕에 대한
선지자의 신의(神意)의 전달 및 권고로 요약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볼 때, 선지자가
왕을 만나지 아니했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왕의 폐위'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 - 처음 사무엘이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었을 때는 그를 진정 위하는 마음으로, 사울의 왕직(王職) 수행을 기꺼이 도와주었
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이 계속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열방과 같은 왕으로
전락하자, 그는 마침내 하나님께로부터 왕직을 박탈당하는 비운을 맞이하게 된다(23,
26절). 따라서 이제 사무엘은 여호와께서 폐위시켜버린 왕을 위해 더이상 어찌할 도리
가 없었다. 다만 사울을 위해 슬퍼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 말속에는 사무엘이 사울의
회개를 위해 개인적으로는 계속 기도했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 11절 및 29절 주석 참조.
사무엘상 제 16장
=====16:1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 하나님께서 사울의 왕위를 배척하셨다는 언급은, (1) 사
울이 선지자 사무엘의 제사 행위를 침해했을 때(13:8, 9, 13, 14), (2) 그리고 사울이
이기적 욕심에 따라 아말렉에 속한 것을 잔멸치 아니했을 때(15:23, 28) 나타났었다.
그러나 첫번째의 경우때에만 해도, 사울은 자신의 이후 행위 여하에 따라 자신의 왕위
를 계속 유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두번째의 거역 행위로 인하여 사울에게 선언되
었던 '폐위(廢位) 선고'는 완전히 확정되고 말았던 것이다.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 사무엘의 이같은 깊고 오랜 슬픔은 단순히 개인 사울의
비극에 대한 사적(私的) 심정 때문만이 아니라, 사울의 폐위로 인하여 이스라엘 사회
전반에 나타날 부작용을 염려한 때문이었다(Keil, Smith). 사실 그때 사무엘은 이스
라엘의 지도자로서 사울의 군사적 능력만은 분명히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은 후일 사울의 전사(戰死)를 슬퍼한 다윗의 애가(삼하 1:19-27) 속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한편 여기의 '슬퍼하겠느냐'(* , 미트아벧)는 특별한 원인에
따라 심히 애통하는 행동을 가리킨다(사 3:26; 암 1:2; 8:8). 그런데 여기서는 특히
강조적 재귀형으로 사용되어, 그 슬픔을 밖으로 강력하게 표출시킴을 가리킨다(15:35;
삼하 14:2; 대하 35:24; 스 10:6).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신령한 책망과 더불어 사무
엘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심으로써 그의 슬픔을 소망으로 승화시켜 주셨다.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 여기서 '뿔'(* , 케렌)은 양의 뿔을 가리킨다.
그런데 왕의 기름 부음을 위해서는 '병'(* , 파크)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10:1). 그러나 '뿔'이 사용되는 경우와 '병'이 사용되는 경우는 분명 어떤 대조점이
암시되고 있는 듯하다. 즉 '뿔'이 사용될 경우에는 주로 그 왕의 정통성 및 긍정적
성격이 암시되며(왕상 1:39). 반면 '병'이 사용될 경우에는 그 왕의 비정통성및 부정
적 성격이 암시되는 듯하다(10:1; 왕하 9:1-13). 성경이 이처럼 의도적으로 '뿔'의
사용을 보다 긍정적 차원에서 보는 것은, 성경의 여러 문맥상 '뿔'이 왕권(王權)을 상
징하고 있다는 사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2:10; 겔 29:21; 단 8:3, 21).
내가 너를...보내리니 - 여기서 '보내다'(* , 솰라흐)란 말은 '가기를 강
요하거나 허락하다'라는 의미 보다는, 오히려 '사명을 주다'란 의미로 봄이 더 타당하
다(민 14:36; 신 19:12; 삿 6:14).
베들레헴 사람 이새 - '베들레헴'(Bethlehem)은 '떡집'이란 뜻으로, 이곳은 사무엘
의 고향인 라마 남서쪽 약 16km, 그리고 예루살렘 남서쪽 약 10km지점의 해발 690m에
위치한 유다의 작은 성읍이다(룻 1:1). 한편 '이새'(Jesse)는 부호(富豪) 보아스와
모압 여인 룻 사이에서 태어났던 오벱의 아들로서(룻 4:17, 22; 대상 2:12; 마 1:5,
6; 눅 3:32).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의 사람'이다(Klein). 이새는 그의 할아버지가
부자였으므로, 그 당시 그 역시 부유했었음이 분명하다(룻 2:1). 그러므로 사무엘은
인근 마을의 유력한 가문인 이새의 집에 대해 개략적으로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Fay,
Smith). 그러나 그가 당시 이새의 막내 아들 다윗에 대해서는 몰랐음이 분명하다.
그 아들 중에서 - 당시 이새에게는 여덟 명의 아들이 있었다(6-11절).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니라 - 여기서 '예선하였다'(* , 라아)는 문자적으로
'보다'란 의미이다. 그런데 성경 전반에서 이 단어는 '선택하다'란 뜻으로 사용되기
도 한다(17절; 창 22:8; 41:33; 왕하 10:3). 그리고 여기의 '왕'(* , 멜렉)
은 사울에게 적용되었던 단어 '지도자'(* , 나기드)와는 그 의미에 있어 다
르다<9:16>. 즉 '방백'(方伯)의 의미인 '지도자'와는 달리, '왕'은 명실공히 한 나라
의 군주(君主)를 뜻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여기 여호와에 의해 왕으로 예선된 자는,
이미 '여호와의 마음에 맞는 사람'(13:14), '사울보다 나은 사울의 이웃'(15:28) 등의
표현으로 암시되어 왔던 다윗을 가리킨다. 즉 사울은 인간적인 기준에서 백성들에 의
해 선발된 왕이었으나(8:5, 20; 11:15), 다윗은 오래전부터 신적인 기준에서 하나님에
이해 선택되고 예비된 왕이었다(7절; 행 13:22). 이런 점에서 진정한 이스라엘의 신
정적(神政的) 왕정 체제는 사울의 때가 아니라, 다윗의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룩
되었다고 봄이 옳을 것이다(신 17:15).
=====16:2
사울이 들으며 나를 죽이리이다 - 비록 사울은 하나님께로부터 최종 폐위 선언을
당함으로써(15:23, 26) 영적 왕권은 이미 상실된 처지였지만, 그래도 당시 사울은 정
치.군사적으로는 여전히 이스라엘의 공식적인 왕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만
일 사무엘이 다른 사람을 왕으로 기름 부을 경우, 그 일은 당연히 역모(逆謀) 행위로
몰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사무엘은 일이 그런 식으로 전개된다면 자신의 죽음
이나 추방이 문제가 아니라, 이새가문까지 화를 면키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
을 수 없었다. 따라서 사무엘은 그러한 현실적인 문제를 솔직히 하나님께 아뢰었던
것이다(Smith, Fay). 따라서 사무엘의 이같은 반응은 불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오히려 우려되는 불행한 상황을 방지하고, 보다 나은 방법을 하나님께
아뢴 선지자의 사려깊은 기도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의 그러한
반응을 전혀 책망하지 않으시고, 즉시 지혜로운 방법을 그에게 알려 주셨다는 사실에
서 충분히 입증된다(Keil).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 사무엘에게 지시한
여호와의 이 명령은, 여호와께서 당신께 드려지는 거룩한 제사를 사울을 속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라는 명령이 결코 아니다. 실로(Shiloh)의 중앙 성소가 훼파된 당시
상황에서, 백성들을 영적으로 지도할 자격과 책임이 있는 선지자 사무엘이 어디에서든
지 하나님께 대한 제사를 백성들과 함께 드리는 일은 지극히 정당하며, 또한 자연스러
운 일이었다. 그러므로 그때 사무엘은 여호와의 명령대로 실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
면서, 아울러 그곳에서 기름 붓는 일도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Calvin, Keil, Fay).
다만 사무엘은 자신이 기름 부으러 간다는 사실을 공개할 필요나 책임은 없었던것이
다. 한편 여기의 '제사'(* , 자바흐)는 (1) 화목제를 가리킬 때 종종 사용된
단어라는점(1:3) (2) 제물이 암컷이라는 점(레 3:1-5)등으로 미루어 볼 때 화목제를
가리킴이 분명하다.
=====16:3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 여기에 언급된 '제사'는 제사 후 함께 나누어 먹는 잔치가
동반되는 화목제였기 때문에, 사무엘이 제사에 그 지방의 사람을 칭하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9:22). 그러므로 사무엘에게 있어서 사실상 이새를 청하는 것은
그의 아들에게 기름을 붓는 일이 주된 목적이었지만, 그러나 그 소식을 듣게 될 사울
에게는 전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 -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기름붓는 것은 사울에게
기름 부은 것과는 그 성격.목적에 있어서 전혀 다름을 암시하고 있다. 즉 사울에게
기름을 부었던 목적은 백성들의 요청에 따라(8:5, 20) 다만 이스라엘의 군사.정치적
독립을 위한 것이었지만(9:16, 17), 다윗에게 기름을 붓는 일은 '하나님의 일'로서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임을 보여 주고 있다.
=====16:4
성읍 장로들이 떨며...영접하여 - 베들레헴 성읍 장로들의 이같은 태도는 (1) 당시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서 가장 권위있고 존경받는 인물이었으며, (2) 또한 사무
엘은 사사로서 그 직무상 종종 죄 범한 성읍을 방문하여 책망하고 징벌하는 일을 하는
자였기 때문에, 성읍 장로들은 갑자기 방문한 사무엘을 불안한 마음으로 맞이할 수 밖
에 없었을 것이다(Klein, Keil, Fay, Smith).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 "언짢은 일로 오신 것은 아니겠지요"(공동번역), "어
쩐 일로 오셨는지요? 혹 무슨 잘못한 일이라도 있습니까"(what is wrong? why have
you come? - Living Bible). 베들레헴 장로들의 이같은 질문은 사무엘이 자신들의 잘
못을 징치하기 위하여 오지는 않았나 하고 걱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Mauchline; 왕상 2:13; 왕하 9:17, 19)
=====16:5
스스로 성결케 하고 - 부정한 상태에서 벗어나 몸과 의복을 깨끗케 함으로써, 하나
님과의 영적 교제에 합당하도록 준비하는 것을 뜻한다(출 19:10; 수 3:5; 7:13; 욥
1:5; 요일 1:7-10).
=====16:6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 여기서 '보고'(* , 야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울을 선택할 때 그의 탁월한 신체를 중시했던 것처럼(9:2; 10:23, 24), 여기서 지금
사무엘도 그같이 외모를 중시했음을 암시해 준다. 한편 '앨리압'(Eliab)은 '하나님은
아버지이시다'란 뜻이며, 그는 블레셋의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침공했을 때 사울을 따
라 종군하였다(17:13, 28).
=====16:7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처음 외모를 중시하여 왕을 선택했던 일이 결국
실패로 돌아갔던 사실을 사무엘로 하여금 회고케 함으로써 그같은 실수의 재발을 방지
하려고 한신다.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 여기서 '용모'(* , 마르에)는 '보다'란 의
미를 갖는 동사 '라아'(* )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곧 얼굴 생김새나 풍채 등
내면은 관계없이 겉으로 보이는 모습(appearance) 자체를 가리킨다(창 2:9; 12:11; 민
8:4). 따라서 본 문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 머리에 기름부을 자를 택할 때
결코 외적인 모습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이 용모나 신장은 무조
건 배격하고 무시하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러한 것이 결코 하나님의 일꾼이 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사람은 외모를...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 여기서 '외모'(* , 아인)는
직역하면 '눈'(eye)이란 뜻으로서, 곧 '육신의 눈'(肉眼)을 가리킨다. 그리고 '중심'
(* , 레브)은 직역하면 '마음'(heart)이란 뜻으로서, 곧 '마음의 눈'(靈眼)을 가
리킨다. 따라서 이러한 원문의 뜻에 맞추어 본절을 해석하면, "사람은 (육신의) 눈으
로 보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의 눈)으로 보느니라"란 뜻이 된다(Klein). 즉 이것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에 있어서 인간의 척도와 하나님의 척도가 전혀 다름을 가리킨
다. 그러므로 이는 비록 인간은 육신의 눈을 가지고 사람의 외적 용모, 신장, 배경
등을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눈을 가지고 사람의 내적 겸손, 신앙, 인격, 진실성
등을 감찰하신다는 의미이다(대상 28:9; 시 7:9; 눅 16:15)
=====16:8,9,10
사무엘은 이새의 여러 아들들 중 누가 하나님에 의해 왕으로 선택됐는지를 몰랐기
때문에 이새의 아들들을 차례로 자기 앞으로 지나게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물었으나,
그러나 이새의 일곱 아들들 중에는 왕으로 선택된 자가 끼어있지 않았다. 아마도 사
무엘은 그러한 사실을 하나님께서 주신 내적 음성 또는 내적 확신을 통해 알았을 것이
다(Fay).
아비나답...삼마 - 이 두 사람은 모두 형 엘리압과 함께 블레셋의 골리앗이 침범했
을 때 사울을 따라 종군했었다(17:13, 28). 한편 여기서 '아비나답'(Abinadab)은 '아
버지는 훌륭하시다'란 뜻으로서, 이새의 둘째 아들이다. 그런데 사울 왕의 둘째 아들
이름도 '아비나답'이었다(31:2). 그리고 '삼마'(Shammah)는 '황무지'란 뜻으로서, 삼
하 13:3; 대상 2:13에서는 '시므이'로 표기되어 있다.
이새가 그 아들 일곱으로...지나게 하나 - 대상 2:13-15에 기록된 다윗의 가계에
따르면, 이새의 아들은 다윗까지 포함하여 도합 7명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여기에서
는 다윗까지 포함하면 이새의 아들은 도합 8명이 된다. 이러한 차이는 분명 이새의 8
아들들 중 한 사람이 어려서 일찍 죽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Smith, Fay).
=====16:11
말째가 남았는데 - 여기서 '말째'(* , 하카탄)는 '가장 어린'이란 의미
외에 '가장 작은'이란 의미도 있다는 점에서, 당시 다윗의 모습은 사울의 '큰 키'와는
너무나도 대조족이었다(9:2; 10:23).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 이것은 그당시 이새의 가족들이 다윗을 아직 어른으로 생
각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왜냐하면 당시의 풍속으로 볼 때, 어른만이 제사의 초청
에 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왕은 고대 중근동에서 종종 '목자'로 인식된다는
점에서(De Vaux), 여기서 다윗이 양무리 가운데 있는 것으로 언급된 것은 다윗의 미래
를 상징적으로 에시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깃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Klein).
앉지 아니하겠노라 - 이 말은 그때까지 사무엘이 앉아 있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말
이 아니다. 여기의 '앉지'(* , 사바브)는 '둘러싸다', '에워싸다'란 의미로서
(삼하 22:6; 대하 33:14; 시 17:11; 전 9:14), 곧 식사하기 위하여 식탁에 둘러앉는
것을 가리킨다(Keil, Smith, Fay). 따라서 그때 사무엘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은 후
식사를 하겠다고 한 것이다.
=====16:12
그의 빛이 붉고 '빛이 붉고'는 머리털 색깔이 붉음을 뜻한다(Klein, Keil, Lange).
대부분 검은 머리털 색깔을 지닌 중근동에서 이붉은 색 머리칼은 귀한 것으로서, 그
지역에서는 아름다움의 한 조건이었다(Keil).
눈이 빼어나고 - 여기서 '빼어나고'에 해당하는 원어 '야페'(* )는 '아름답
고', 또는 '반짝이고'란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총기어린 아름다운 눈을 가리킨다.
이것도 뛰어난 얼굴 모습의 소유자가 갖추어야 했던 한 조건이었다(창 29:17).
얼굴이 아름답더라 - 이것은 단지 외적 아름다움만을 의미치 않고, 내면에서 풍겨
나오는 아름다움을 뜻한다. (25:3; 창 41:5; 신 1:25; 9:6; 삼하 18:27; 행 7:20).
그러나 여기 '얼굴'(* , 로이)은 분명 '겉모양' 혹은 '외모'란 의미도 있는
바, 이는 또한 그 외적 얼굴도 아름답게 잘 생겼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Klein).
=====16:13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부었더니 - 다윗은 모두 3차에 걸쳐 기름 부음을 받
았다. 즉 여기 첫번 기름 부음은 비공식적으로 이새의 가족만 참석한 가운데 은밀히
부어졌고, 두번째의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으로 올랐을 때(삼하 2:3, 4) 기름 부
음 받았다. 그리고 세번째는 마침내 다윗이 전체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했을 때(삼
하 5:3)받았다.
그 형제 중에서 - 이것은 형제들이 목격하는 가운데서 다윗이 기름 부음 받았음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때 이새의 가족 이외의 사람들은 그 장소에 아무도 없었음이 분
명하다. 그리고 다윗의 형제들은 사무엘의 엄중한 부탁과, 그리고 사울의 보복등을
우려해 그 사실을 비밀로 유지한 듯하다(Leon Wood).
이 날 이후로 - 이것은 여호와의 신이 다윗에게 즉각적으로 임했고, 또한 영속적으
로 임재하고 계셨음을 시사하는 문구이다(Fay).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신정 국가의
왕으로서 이스라엘의 정치적.도덕적.영적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역량과 은사를 허락하
셨음을 뜻한다. 그 결과 다윗의 행동과 말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다
윗과 함께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18절). 한편, 이처럼 기름을
붓는 객관적 의식(儀式)의 결과로 여호와의 신이 주관적으로 임했다는 이 사실은 사울
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났었다(10:1, 10). 그러나 사울의 경우와는 달리, 다윗의 경
우는 이같은 일이 (1) 기름 부음의 의식 직후에 있었으며 (2) 임재하신 여호와의 신이
끝까지 떠나지 않으셨으며 (3) 여호와의 신이 임할 때 발작적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10:9-12; 11:6, 7) 사울의 경우와는 구별된다(Klein). 따라서 본서 저자는 위의 두
경우를 암시적으로 비교함으로써, 사울에 대한 다윗의 우월성을 강조하려고 한 듯하
다. 한편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여호와의 신(神)을 부어주신 까닭은 (1) 다윗이 왕의
신분에 합당한 도덕성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며, (2) 왕의 고유한 직무를 감당할 능력
을 소유토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삼하 5:4에 이하며, 다윗은 그의 나이 30세에
전체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된다. 그러나 여기서 처음 다윗이 사무엘에게 기름부음
받을 때, 그의 나이를 레온 우드(Leon Wood)는 15세 가량으로, 그리고 카일(Keil)은
20세 가량으로 추정한다. 아무튼 당시 다윗이 제사 의식에 공식 참여치 못했다는 사
실은 그가 만 20세 이상의 성년 남자가 되지 않았음을 시사하므로(11절), 따라서 다윗
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마침내 등극될 때까지 약 10-15년 가량을 예비 왕으로서 연단받
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혹자는 사무엘의 생전에 다윗이 라마의 선지 학
교에서 일정 기간 동안 훈련받았다고 추정하기도 한다(R. Payne Smith, f.r. Fay).
=====16:14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 사울에게 임했던 '여호와의 신'은 그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왕직을 제대로 수행토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11:6>. 따라서 이제 사울의
왕위가 폐위된 이상,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더 머물 이유가 없었다.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 원문은 '여호와께로부터 온 악신'
(an evil spirit from Jehovah)이란 뜻이다. 여기서 이 '악신'(* - ,
루아흐 라아)은 인간의 도덕적.영적 생활을 고양시키는 하나님의 거룩한 영과는 본질
상 뚜렷이 대조되는 사단의 영으로서, 곧 인간의 정신과 마음을 억누르고 파괴하는 사
단의 사악한 영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사단의 영은 하나님과 허락과 지배하에서만
활동할 수 있다(욥 1:12). 따라서 이것은 선악(善惡) 간의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주재권 아래 있다는 구약의 전반적 사상과 잘 조화된다(신 13:2-4; 삿 9:23; 삼하
24:1; 왕상 22:19-22; 대상 21:1; 욥 1:6-12).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이같은
악신이 활동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그것은 (1) 사울의 왕위
가 폐위되었다는 사실을 가시화(可視化)하여, (2) 새로이 영호와의 신을 받은 다윗과
대조시키며, (3) 또한 악신에 시달리는 사울로 인해 다윗이 수금 연주자로 성경이 무
대에 공식 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 듯하다. 한편 여기서 '번뇌케 한지라
(* 바아트)는 '두렵게 하다', '놀라게 하다'란 의미이다(삼하 22:5; 욥 18:11;
사 21:4). 즉 이것은 극심한 정신적 고통 혹은 정신병적 우울증이나 착란증 현상을
가리킨다(Pulpit Commentary).
=====16:15
본절은 사울 주변의 신하들에게도 사울의 폐위가 가시화되고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
다.
=====16:16
수금(* , 킨노르) - 이 악기는 음량을 크게 하기 위한 소리통 곧 본체에
서 뻗은 두 개의 가지가 달린 현악기로서<10:5>, 이 두개의 가지 사이를 가로지른 막
대기와 본체의 끝에 동일한 길이의 현(絃)들이 여러개 연결되어 있었다. 한편 약
B.C. 1400년 경의 겻으로 추정되는 바로 이와 같은 모양의 악기가, 최근에 일단의 성
서 고고학자들에 의하여 므깃도에서 발굴되었다(Klein).
악신이 왕에게 이를 때에 - 이것은 사울에 대한 악령의 활동이 간헐적(間歇的)이었
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가...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 당시 사울이 당하던 고통은 원인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정신 심리적 현상의 하나였다는 점에서, 고대 사회에서 흔히 사용되
던 음악을 통한 심리적 치료요법이 어느 정도 통할 수 있었을 것이다<10:5; 왕하
3:15>. 그러나 사울에게 나타난 현상은 근본적으로 영적(靈的)인 원인에 따른 것이었
다는 점에서, 음악을 통한 심리적(心理的) 요법은 임시 방편에 불과할 수 밖에 없었
다.
=====16:17,18
여기서는 장차 왕위에 오를 자로서, 다윗의 여러 뛰어난 자질이 주위 사람들에게서
이미 어느 정도 널리 인정되기 시작하였음을 시사해 준다.
소년 중 한 사람 - 이 소년(* , 네아림)도 사울의 신하 중에 있었다는
점에서, 사울의 신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의 연소함은, 또한 연소했던 다윗에
대하여 잘 알 수 있었던 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 - 다윗에 대한 이같은 호칭은 하나님께서 1절에서 직접
사용하셨던 것으로서, 다윗을 소개하려고 한 그 소년 신하가 다윗에 대하여 매우 긍정
적 시각을 갖고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호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 - 다윗에 대한 저자의 이같은 언급은 사울에
대한 다윗의 탁월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었다. 여기서 '호기'(豪氣)는 문
자적으로 '능력있는 용사'(a mighty valiant man, KJV)란 뜻이다. 이것은 말할 나위
없이 다윗이 자신의 가축을 해치려던 사자나 곰 등을 쳐죽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말
이다(17:33-37). 그리고 '무용'(武勇)은 '전사'(戰士, a man of war; KJV, RSV)란 뜻
이다. 이것도 위의 '호기'와 같은 배경에서 이해되어야 할 듯하다. 또한 '구변'(口
辯)은 '매사에 분별력 있는'(prudent in matters, KJV), '말을 신중하고 현명하게 하
는'(prudent in speech, RSV)이란 뜻이다. 특히 이러한 자질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매
우 귀중히 평가되던 덕목(잠 23:9; 25:9, 11, 15; 29:20)인데, 이것은 시편 기자로서
의 다윗의 작시(作詩) 능력을 염두에 둔 말일 것이다. 그리고 '준수한'(* ,
토아르)은 '잘 생긴 미남자'(a finelooking man, NIV; a man of good presence, RSV)
를 가리키는 말로서, 특히 이 점에 대한 묘사는 이미 12절에 언급되었었다(25:3; 창
29:17; 39:6; 신 21:11; 에 2:7).
여호와께서...함께 계시더이다 - 기름부음 받은 결과 하나님의 신에게 크게 감동된
(13절) 다윗은, 이후 그의 행적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증거가 되었다. 즉 내적
으로는 겸손, 성실, 진실함으로, 그리고 외적으로는 사자나 곰을 맨손으로 물리치는
호기와 무용으로 그 증거를 나타내었던 것이다. 아무튼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게신
다는 이 사실은 이후 모든 면에서 다윗에게 승리가 보장되어 있음을 가리키는 어구이
다(3:19; 10:7; 18:12, 14)
=====16:19
사울이...다윗을...보내라 하매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경고하셨던 바대로
(8:11-18), 사울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백성들을 징집하는 일을 거침없이 시행하고 있
었다.
=====16:20
이새가...보내니 - 당시 이새는 왕의 권위를 존중하였으며 - 또한 자신의 아들이
왕실의 일에 종사케 되었음을 명예롭게 여겼기 때문에(Klein), 자신의 아들을 기꺼이
사울에게 보냈을 것이다. 특히 이때 이새는 자신의 아들이 미래의 왕으로서 기름 부
음을 받았던 사실(13절)을 상기하고, 자신의 아들이 왕실에서 일하게 됐다는 사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을 것이다.
떡과 한 가죽부대의 포도주와 염소 새끼 - 이와같은 예물은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
서 (1) 상대방에 대한 존경심을 표명하거나(9:7, 8), (2) 또한 상대방에게 감사를 나
타낼 때(창 14:18). (3) 그리고 상대방을 진정시킬 목적(25:18) 등으로 사용되었다.
여기서는 왕에 대한 예의라는 점에서 첫번째의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16:21
그 앞에 모셔 서매 - 이것은 (1) 분부를 받기 위하여 가까이서 기다린다(왕상
3:16), (2) 또는 본격적으로 신하의 한 사람이 되어 일을 하다(창 41:46) 등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분명 다윗은 사울이 악신으로 고통당할때 수금을 타 그의 마음을 위
로함으로써 봉사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이 사울의 마음을 매우 흡족하게 하였
고, 또한 사울에게 크게 사랑받는 요인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23절).
자기의 병기 든 자를 삼고 - 처음 수금 연주자로 사울에게 봉사한 다윗은 얼마후
사울의 병기 든자(armor - bearer, RSV)로 승격되었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시
사한다. 즉 (1) 다윗에 대한 사울의 사랑과 신임이 더욱 두터워졌으며, (2) 또한 사
울이 다윗의 무예를 어느 정도 인정하였음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병기 든 자'는 주
인의 창칼이나 방패 등을 가지고 다니는 일종의 부관으로서(Smith, Keil), 주인으로부
터 가장 신임받는 정예군 중에서 임명되었기 때문이다(14:1; 17:41; 31:4-6; 삼하
18:15). 이처럼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로 말미암아, 마치 모세처럼 다윗도 사울이 전
혀 눈치 채지 못한 상황 가운데서 왕실의 보다 고상한 직책을 감당하게 되었던 것이
다. 이로써 하나님께서는 다윗으로 하여금 왕궁의 여러 법도와 국사를 익히게 하셨는
바,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장차 이스라엘의 왕으로 착실히 준비시켜 나가셨다
(Keil & Delitzsch, Vol. II-ii. p. 172).
=====16:22
본절에서 사울은 다윗을 계속적으로 자신의 곁에 두겠다고 이새에게 고지(告知)함
으로써, 다윗에 대한 자신의 사랑과 신임을 강력히 표명하고 있다.
그가 내게 은총을 얻었느니라 - 문자적으로는 '그가 나의 눈에서 은총을 발견하였
느니라'란 뜻이다. 이것은 결국 다윗이 사울 자신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
을 가리킨다(21절). 이처럼 사울은, 다윗에 대한 시기와 질투심이 생기기 전에는 그
를 진정 사랑했다. 그러나 다윗에 대한 백성들의 칭송이 자신을 앞지르자(18:7), 이
후로 사울은 이전에 다윗을 사랑한 것 이상으로 그를 적대하게 되었다.
=====16:23
본절은 다윗이 사울에게서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21, 22절) 중요한 이유를 보여
준다.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 - 이는 하나님의 허락과 지배하에서 주로 악인들에게 활동하
는 사단의 영을 가리킨다. 14절 주석 참조.
다윗이 수금을...탄즉 사울이...낫고 - 굳이 현대 의학적으로 사울의 병명을 분류
하자면, '심한 우울증으로 인한 정신 착란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심리
학상 좋은 음악을 통한 치료법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근본적으
로 사울을 번뇌케 한 원인은 사단의 활동이므로 일반 음악 요법으로는 결코 그를 치료
할 수 없었다. 다만 여기서 다윗의 수금연주가 효과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의
신에 감동된(13절) 다윗이 수금을 통한 음악으로 그것을 표현했기 때문에, '악신'(惡
神) 곧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사단의 영이 사울에게서 일시적으로 떠나간 결과로 말미
암은 것이었다. 16절 주석 참조.
사무엘상 제 17장
=====17:1
블레셋 사람들이...싸우고자 하여 - 블레셋 사람들의 이같은 전의(戰意)는 당시 악
신으로 고통받던(16:14) 사울의 통치력 약화를 기화로, 믹마스 전투에세의 패전
(14:31)을 설욕키 위한 것이었다.
유다에 속한 소고 - '소고'(Shochoh)는 '가시가 많은 곳'이란 의미이다. 이곳은 유
다 산지와 블레셋 평원, 곧 세펠라 지역에 위치한 요새 도시 중 하나로서(수 15:35),
오늘날 와디숨트(Wady Sumt)지역에 위치한 '슈웨이케'(Shuweikeh)로 추정된다(Keil,
Smith). 베들레헴 서쪽 약 22.5km, 아세가 남동쪽 약 4.8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한편
블레셋 군이 유다에 속한 이곳에 진을 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이스라엘에 대해 기
선을 장악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아세가 - '파헤친 땅'이라는 의미이다. 이곳은 아얄론 골짜기(수 10:12) 남부의 견
고한 도시로서, 해발 약 120m 가량이다. 수 10:10 주석 참조.
에베스담밈에 진치매 - '에베스담밈'(Ephes-dammim)은 '피의 경계선'이란 의미이
다. 이같은 지명은 그곳에서의 잦은 전투로 많은 피가 흘려졌기 때문에 붙여졌을 것이
다. 이곳은 소고(슈웨이케) 북동쪽 약 2.5km 지점으로 현재의 '다뭄'(Damum)으로 추정
된다(Keil, Fay). 한편 대상 11:13에는 '바스담밈'으로 표기되어 있다.
=====17:2
엘라 골짜기에 진 치고 - '엘라 골짜기'(the vally of Elah)는 '상수리 나무의 골
짜기'란 의미이다. 이곳은 예루살렘 서남쪽 약 22.5km에 위치한 오늘날의 '와디 에스
상트'(Wadies Sant)로 추정된다. 당시 그 지역 내에는 나무가 무성하였고, 그 골짜기
밑바닥에는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을 때 사용했을 듯싶은 조그만 돌들이 지금도 깔려있
다고 한다. 또한 이 골짜기는 '소고'의 북쪽에서 동서로 가로질러 있다. 한편 이곳은
여름철만 빼고는 항상 골짜기에 물이 흘렀으므로,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이 전투는 물
이 말랐을 여름철에 벌어졌음이 분명하다(Hertzberg).
항오를 벌였으니 - '항오(行伍를 벌이다'(* , 아라크)는 '상대를 엄습하다',
'일렬로 정렬하다'란 의미이다(4:2;욥 6:4). 여기서는 블레셋에 대한 이스라엘의 방어
적 자세를 가리킨다.
=====17:3
본절은 블레셋 족속이 자신들의 본진이 있는 '에베스담밈'<2절>을 떠나 이스라엘이
진을 치고 있던 '엘라 골짜기'로 진격했다는 사실을 암시해 주고 있다. 이때 양군은
골짜기를 경계로 낮에는 양편 언덕에 대열을 이뤄 길게 늘어서서 전투 내세를 취하다
가, 밤에는 자신들의 장막으로 돌아가기를 계속하고 있었을 것이다(Hertzberg).
사이에는 골짜기가 있었더라 - 여기의 '골짜기'(* , 가이)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일반적 의미의 골짜기(* , 에멕)와는 전혀 다른, 좁고 급격한 경사
를 이루고 있는 협곡(峽谷)을 뜻한다(Conder). 바로 이같은 지형적 요인 때문에, 이스
라엘과 블레셋은 마주보면서도 쉽사리 전면전을 벌이지 못했을 것이다(Pulpit
Commentary).
=====17:4
싸움을 돋우는 자(* , 아쉬 하베나임) - 문자적으로는 '둘 사이에
있는 사람'(a man between the two)이란 뜻이다. 이것은 결국 단신으로 싸워 단번에
전쟁의 승패를 판가름하기 위해 두 군대 사이에 개입하는 중간사람(middle-man)이란
뜻으로, 곧 선봉장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같이 전군(全軍)을 대표하여 선봉장이 상대
방의 선봉장과 전투를 하는 방식은 성경 다른 곳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이
같은 전투 방식은 헬라 민족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바로 이 블레
셋 족속들이 헬라권에서 이민 온 민족이라는 사실은 골리앗의 이같은 전투 형태를 넉
넉히 이해케 해준다.
그 이름은 골리앗 - '골리앗'(Goliath)이란 이름이 갖는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까닭은 이 사람이 비셈계 인종에 속하기 때문이다.
가드 사람 - '가드'(Gath)는 아세가 서쪽 약 8.9km 지점으로, 블레셋 5대 도시 중
하나이다(5;80. 그런데 이 지역에는 거인족인 아낙 족속(Anakim)이 섞여 살고 있었다
(수 11:22). 그러므로 분명 골리앗도 이 거인족의 후예일 것이다.
그 신장은 여섯 규빗 한 뼘이요 - 고대의 측략법에 근거하여 한 규빗(Cubit)을 약
45cm 정도로, 한뼘(Span)을 약 13cm 정도로 본다면, 골리앗의 키는 약 283cm 정도로
추정될 수 있다. 한편 NEB는 274cm로 환산하였고, NIV와 Living bible은 '9피트 남짓'
(over nine feet, 약 270cm 남짓)으로 보았다. 아무튼 골리앗은 270cm 이상으로, 보통
사람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장대한 거구였음이 분명하다.
=====17:5
머리에는 놋투구 - 여기서 '놋투구'(* , 코바)는 이 단어의 첫 철자가 본절
에서는 '카프'(* )로, 반면 38절에서는 '코프'(* )로 각기 다르다는 점에서, 헷 족
속이나 아랍 민족으로부터 수입한 것이 듯하다(Krinetzki).
몸에는 어린갑을 입었으니 - '어린갑'(* , 카스케세트)은 천 위에 비늘
모양의 놋이나, 철판 조각을 다닥 다닥 붙여서 만든 갑옷(coat of mail, KJV; coat of
scale armor of bronze, NIV)으로(Aquila), 고대의 전투 때에 왕이나 군장에 의해 주
로 착용되곤 하였다(Layard).
그 갑옷의 중수가 놋 오천 세겔 - 한 세겔(Shekel)은 약 11.5g이므로, '오천 세겔'
은 약 57.5kg이다.
=====17:6
그 다리에는 놋경갑을 쳤고 - 어린갑에 의해서는 허리나 허벅다리 부분까지도 보호
되었다. 그러므로 이 놋경갑은 다리 부분을 보호하는 장비임이 분명하다.
어깨 사이에는 놋단창을 메었으니 - '놋단창'(* . 키돈)은 어깨의 뒷 부
분에 차는 창을 가리킨다. 혹자는 이것을 방패라고 주장하나(LXX, Vulgate, the
Syriac) (1) 고대에 방패는 대개 병기 드는 자가 별도로 갖고 다녔으며(7절) (2) 견고
한 갑옷에 의해서 등 부분도 충분히 보호될 수 있다는 점(Josephus) 등에서, 여기 '놋
단창'은 방어용 무기인 방패라기 보다는 오히려 창과 같은 공격용 무기로 봄이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본 단어가 단수라는 점에서, 이것은 손으로 던져 적을 살상케 하는 단
검류는 아닌 듯하다.
=====17:7
창자루는 베틀채 같고 - 이것은 멀리 던지기 위해 창자루에 고리가 달린 가죽끈을
감아 놓은 창의 모양에 대한 표현이다(Yadin). 즉 창자루에 긴 끈이 달려있었기 때문
에 '베틀채'(weaver's beam, KJV; weaver's rod, NIV) 같고'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다.
한편 여기서 '자루'(staff, KJV; shaft, NIV)에 해당하는 '헤츠'(* )는 케리(Keri)
에 따라 '에츠'(* )로 고여 읽어야 한다(삼하 21:19;대상 20:5).
창 날은 철 육백 세겔 - 600 세겔은 약 7kg이다. 따라서 이것은 골리앗의 창이 엄
청나게 컸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4-7절에 묘사된 바 블레셋 군대의 선봉장 골리앗
(Goliath)은 그 거대한 신장이나 육중한 무기등이 보통 사람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조
차 없을 만큼 크고 강했다. 마치 우뚝 솟은 난공 불락의 요새와 전혀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17:8
본절에는 골리앗이 자신을 블레셋의 대표로 자처하면서, 이스라엘 군대에게 자신과
싸울 대표를 뽑아 보내라고 호통치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 골리앗이 이처럼 일대일
결투를 신청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1) 협곡을 경계로 서로 대치했던 지형 형편상
전면 선제 공격이 곤란했으며 (2) 골리앗이 자신의 힘을 과신하여 이스라엘의 그 누구
라도 쉽사리 이길 수 있으리라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사실 이같은 일대일 결투는
고대 이방의 전투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이 경우 선봉장의 승리는 곧 전체의 승
리로 간주되어, 패배한 측은 상대국에게 패전국으로서의 모든 의무를 다해야 했다
(Klein, 9절).
그가 서서 - 골리앗은 그때 언덕위에 있던 자신의 진을 나와 골짜기의 중간쯤에 우
뚝 버티고 서있었을 것이다.
어찌하여...항오를 벌였느냐 -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의 공격을 방어하
기 위하여 군대를 이끌고 나와 진을 치고, 골짜기 언덕에 대열을 이루고 있는 사실을
가리킨다.
나는 블레셋 사람...너희는 사울의 신복 - 여기서 '나는 블레셋 사람'이란 말은 골
리앗 자신이 블레셋 군대의 힘을 대표하는 자란 뜻이다(Keil). 그리고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란 말은 이스라엘 민족이 중앙 집권적 군주 사울에 의해 철저히 예속되어 있다
는 사실을 조롱하는 말이다. 이것은 여기의 '신복'(* , 아바림)이란 단어가
'종들' 혹은 '노예들'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는 사실로써도 잘 알 수 있다. 아무튼 골
리앗은 이같은 언급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에 대한 블레셋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사울과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흥분케 함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 한것이다.
=====17:9
종이 되어...섬길 것이니라 - 본절에 언급된 골리앗의 이 제안은, 결국 그가 패배
했음에도 불구하고 블레셋이 이스라엘의 속국이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볼 때(52-54
절), 다만 이스라엘을 공포 분위기 속으로 빠뜨리기 위한 공갈 협박용이었음이 확실하
다(10, 11절).
=====17:10
내가...모욕하였으니 - 이것은 골리앗이 (1) 이스라엘 사람들을 사울의 노예 혹은
종이라고 깔보았고(8절), (2) 또한 이스라엘은 겁장이들이므로 블레셋의 종노릇이나
해야 할 무력한 민족이라고 조롱했던 사실(9절)을 가리킨다.
나로 더불어 싸우게 하라 - 골리앗이 이스라엘에게 자신과 맞서 싸울 용사를 요구
만 하고 이스라엘 진으로 접근해 갈 수 없었던 이유는 (1)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의 진
이 가파른 산 위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2) 또한 그는 중무장을 하여 몸이 무거웠기
때문일 것이다.
=====17:11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 여기서 '놀라'(* , 하타트)는 원래 '파괴되다', '
부서지다'란 의미로서, 극단의 공포심을 표현할때 사용되는 단어이다(왕하 19:26;사
30:31;렘 8:9). 그리고 '두려워하니라'(* , 야레)는 '경외하다', '엄위하다'란
의미로서, 어떠한 유.무형의 강력한 힘에 대하여 정신적으로 완전히 압도당하는 것을
가리킨다(창 18:15;19:30;신 5:5;수 4:4;시 119:120). 이처럼 이스라엘은 사울 왕으로
부터 전체 병사에 이르기까지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의 기세등등한 모습에 겁을 집어먹
고 기가 질려 두려움으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이는 무엇보다 이스라엘의 총지휘자
사울에게서 여호와의 신이 떠나 버린 필연적 결과였다(F. W. Krummacher).
=====17:12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 - '에브랏'(Ephrath)은 베들레헴의 고대 명칭으로서(창
48:7), 족장 야곱의 아내 라헬이 산고로 죽은 곳이며(창 35:16-19), 무엇보다도 후일
선지자 미가의 입을 통해 메시야가 태어날 장소로 예언된 곳이다(미 5:2). 한편 본서
저자는 여기서 '유다 베들레헴'이라고 분명히 밝힘으로써 스불론 지파의 베들레헴과
구별했고(수 19:15;삿 12:8), 또한 '에브랏 사람'(Ephrathite)이라고 밝혀줌으로써 이
새의 집안이 베들레헴 본토인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결국 유다 베들레헴은 이스
라엘의 성군 다윗의 고향으로서, 그리고 장차 메시야 그리스도가 태어날 곳으로서 구
속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임을 알 수 있다.
이새는...나이 많아 늙은 자 - '늙은 자'(* , 자켄)는 성경에서 보통 '장로',
'노인'으로 번역되는 단어이다. 한편 '나이 많아'는 '나이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앞섰다'란 의미이다. 결국 이같은 언급은 이스라엘 사람들 대부분이 참전하고 있던 블
레셋과의 전쟁에 이새가 참전치 아니했던 이유를 제시해 준다(Fay). 한편 스미드(R.
Payne Smith) 박사는 당시 이새에게는 장성한 세 아들이 있었고, 도합 8명의 자녀가
있었던 사실에 근거하여 이새의 나이를 최소한 60세 이상으로 보았다.
여덟 아들이 있는 중 - 16:10, 11에서도 이새의 아들은 여기서처럼 여덟 명으로 언
급되고 있으나, 역대상 2:13-15에서는 일곱 명으로 나와 있다. 이같은 차이를 규명해
보려는 시도로서는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 즉 (1) 이새의 아들은 원래여덟 명이었
으나 한 명은 죽었다고 보는 견해(Keil, Smith), (2) 이새의 아들은 원래 일곱 명이었
으나 16:10에서 다윗을 제외하고도 일곱 명이라고 한 까닭은 많은 다른 아들들은 하나
님에 의해 선택되지 못했음을 강조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고 보는 견해(Klein) 등이
다.
=====17:13
장성한 세 아들은...싸움에 나갔으니 -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군대에 나갈 자격
과 의무가 있는 자는 이십 세 이상의 남자였다(민 1:3).
엘리압...아비나답...삼마 - 16:6-9 주석부분 참조.
=====17:14
다윗은 말째라 - 이것은 다윗이 자신의 형들과는 달리 사울을 따라 싸움에 나가지
않았던 이유를 제시해 준다. 즉 이는 당시 다윗의 나이가 20세 미만이었음을 시사해
준다.
=====17:15
다윗은 사울에게로 왕래하며 - 여기서 '왕래하며'(* , 훌레크 와사브)
는 다윗이 사울의 궁전과 베들레헴 집을 반복적으로 계속 오갔음을 뜻하지 않는다. 왜
냐하면 히브리 원문은 다만 '갔다가~그리고 (사울에게로부터) 왔다'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다윗은 수금을 타기 위해사울에게 갔다가(16:19, 22), 그의 병이 호전되
자 양을 치는 자신의 일을 위하여 다시 베들레헴의 자기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베들레헴에서...양을 칠 때에 - 이것은 오히려 '베들레헴에서 양을 치기 위하여'
(to feed...sheep at Bethlehem, KJV)로 번역함이 타당하다. 즉 이것은 다윗이 수금을
타던일을 그만 두고, 사울의 곁을 떠났던 한 가지 목적을 언급하는 어구인 것이다.
=====17:16
그 블레셋 사람 - 이것은 단수로 표기되었다는 점에서, 블레셋 군대가 아닌 '골리
앗'(Goliath) 개인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사십일을...몸을 나타내었더라 - 이것은 블레셋과의 전투가 계속적으로 소강(小康)
상태에 머물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같은 상태가 계속된 까닭은 (1) 이스라엘
측에서 골리앗을 상대할 용사를 아직껏 내보내지 못했으며(11절) (2) 블레셋은 이스라
엘의 진(陳)이 자리잡고 있던 지형적 조건상 전면공격을 감행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고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3절 주석). 그러나 불레셋의 선봉장 골리앗의 계속 되는
위협으로 말미암아 전황(戰況)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이스라엘에게 불리하게 돌아가
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여기 '사십 일'은 이스라엘이 위기에 처해 있었음을 예시해
주는 어구로 보아야 할 것이다(창 8:6;삿 13:1; Krinetzki). 즉 본서 저자는 여기서구
체적으로 이스라엘이 위급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는 언급은 하지 않았으나, 이같이
시련과 위기의 수인 '사십 일'이라는 말을 특별히 언급함으로써, 다윗이 매우 필요 적
절한 시기에 이새에의해블레셋과의 전투 장소에 보내졌음을 강력히 암시하려고 한 듯
하다.
=====17:17,18
이새가 여기서 이같은 조치를 위한 이유는, 블레셋과의 사십 일 이상의 대치로 인
하여(16절) 이스라엘 군대의 식량이 고갈되었을 것을 염려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각 가정은 싸움에 징집된 자식들에게 일종의 병참 지원을 했던 것
같다.
볶은 곡식...떡...치스 - 성경에서 이것들은 제대로 먹지 못해 곤고한 자들에게 적
절한 음식으로 주로 언급되고 있다(25:18;삼하 17:28;룻 2:14). 특히 '볶은 곡식'과
'떡'은 서민들에의해 애호되던 음식이었다(Krinetzki).그리고'치스'(* , 할라브)
는 문자적으로는 '우유'를 뜻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건조한 우유덩어리'를 가리킨다.
한편 '한 에바'는 약 23l에 해당하는 구약 시대 고체량의 부피 단위이다(출 16:36).
안부를 살피고 - 이것은 건강 및 생존의 여부에 관한 '솰룸'(* , '평안')의
상태를 알아보라는 당부이다.
증표를 가져오라 - 이것은 (1) 다윗이 제대로 형들을 만나 형들의 안부를 살폈는지
의 여부, (2) 예물이 전달됐는지의 여부, (3) 다윗에의해 이새에게 전따마될 형들에
관한 소식의 진위(眞僞) 여부를 증명할 어떤 '증거물'(token, RSV)을 뜻한다. 틀림없
이 이것은 서신(書信)의 형태였을 것이다(F. R. Fay).
=====17:19
본절도 18절에 이어, 이새에 의해 다윗에게 전달됐던 내용이다.
엘라 골짜기 - 2절 주석 참조.
=====17:20,21
일찌기 일어나서 양을...맡기고 - 다윗의 순종과 부지런함, 그리고 책임감이 잘 나
타난 구절이다. 아마도 저자는 여기서 사울의 왕권을 계승할 자로서의 다윗의 인품을
강조하려는 의도를 가졌던 것 같다.
진영 - (* , 마갈라). 이것은 '둥글게 하다'라는 의미를 갖는 동사 '아갈
'(* )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고대 수비 진지의 일반적 형태인 둥근 모양을 한 바
리케이드를 가리킨다(Lange). 한편 칼빈(Calvin)은 이 바리케이드가 병거로 이루어졌
다고 보고 '병거의 장소'로 이해하였다(26:5, 7).
항오를 벌이고 - '항오(行伍)를 벌이다(* , 아라크)란 말은 '정렬하다', '배
열하다'란 의미로서, 곧 전투 대형으로 군사를 적절히 배치하는 것을 가리킨다.
=====17:22
짐을...맡기고 - 다윗은 이같이 함으로써 형들이 있는 전투 대열로 신속히 가려고
했던 것 같다. 물론 여기서 '짐'은 형들에게 주기 위해 아버지에게서 가져온 음식 보
따리를 가리킨다(17절).
짐 지키는 자 - NEB(the New English Bible, 새 영어 성경)는 이 말을 '병참 장교
'(quartermaster)로 번역하였다. 이 번역을 따른다면, 다윗은 그때 집에서 가져온 음
식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전하지 않고, 여기의 이 병참 장교의 손을 통해 형들에게 전
달하려고 했던 것 같다.
=====17:23
골리앗...항오에서 나와서 - 여기서 '항오'(* , 마아로트)는 골짜기를 경
계로 양쪽 언덕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는 군사 대열을 가리킨다<3절>. 그리고 '나와
서'(* , 올레)는 '올라가다'란 의미인데, 이것은 골리앗이 자신의 진에서 내려
와 이스라엘 진쪽의 언덕으로 어느 정도 올라왔음을 가리킨다(F. R. Fay).
전과 같은 말 - 곧 8-10절의 내용과 같은 모욕과 조롱의 말.
=====17:24
심히 두려워하여...도망하며 - 즉 골리앗이 더이상 따라 올라올 수 없는 안전 지대
로 피신했다는 말이다. 이로 볼 때 당시 사울과 이스라엘 군대는 블레셋의 거인 골리
앗 한 사람으로 인하여 얼마나 사기가 저하되고 두려움과 떨림에 사로잡혔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17:25
여기서는 사울 왕에 의해 약속된 바(27절) 골리앗을 죽이는 자에게 주어질 세 가지
상급이 언급되고 있다.
(1) 많은 재물로 부하게 하고 - 이와 같이 큰 재물을 약속함으로써 군대의 사기를 북돋
우는 경우는 성경에 많이 언급된다(수 15:16;삿 1:12;삼하 18:11;대상 11:6). 한편 당
시의 왕정(王政)이 실시된 지 20여년<15:1> 이란 세월이 흐른 뒤였으므로, 아마도 사
울 왕가(王家)는 어느 정도의 행정 조직을 갖추고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임으로
써 많은 재정을 보유하고 있었을 것이다(8:15, 17). 사실 고대 군주국에서는 군주(君
主)가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신하의 충성에 대한 보상이 뒤따랐고, 따라서 그
러한 관습이 군주가 많은 재정을 보유하려 했던 목적 중의 하나였다(8:14, 15).
(2) 그 딸을 그에게 주고 - 성경에는 '메랍'과 '미갈'이라는 두 딸만이 사울의 딸로서
언급되고 있다(14:49). 그러나 사울에게는 이들 외에도 또다른 딸들이 있었을 것이 분
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서에 이 두명 만이 언급된 까닭은, 이 둘만이 다윗과 특
별한 관계를 가지기 때문이다. 즉 맏딸 '멜랍'(Merab)은 결국 다른 남자와 혼인을 하
지만 처음에는 다윗에게 주기로 약속됐던 처지였고(18:17-19), 또한 둘째딸 '미갈'
(Michal)은 결국 다윗에게 주어졌던 것이다(18:20-27). 어쨋든 왕의 사위가 된다는 것
은 매우 매력적이며, 의미 심장한 일이었다. 특히 이미 기름 부음을 받아 차기의 왕으
로 확정된(16:13) 다윗에게는 그 일이 왕좌로 나아가는 자신의 길을 보다 평탄게 할
수 있을 것이었다.
(3) 그 아비의 집을...자유하게 하시리라 - 사울의 이 약속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즉 (1) 왕과 백성 사이의 중간 계급 혹은 귀족 계급
으로 올려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견해(Lemche, Ewald), (2) 세금 납부를 면제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견해(Fay), (3) 부역을 면제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견해(Smith) 등
이다. 그러나 첫번째 견해는 그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는 중간 계급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Mccarter), 그리고 두번째의 견해는 '자유하게 하시리라'
(* , 하파쉬)는 단어가 성경 용례상 세금의 면제를 전혀 뜻하지 않는다는 점에
서(출 21:2;신 15:12;렘 34:10) 타당치 않다. 반면에 세번째의 견해는 '자유케 하시리
라'라는 단어가 대체적으로 육체적 억압에서의 해방을 의미하며, 또한 우가릿 문서에
용감한 행동을 한 사람이 왕에 의하여 노예의 신분에서 자유인이 되었다는 평행 구절
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Klein) 타당성이 있다. 한편 여기 '아비의 집'은 가문(家
門) 전체를 가리킨다.
=====17:26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하는 - 이 말은 다윗의 의분(義憤)이 단순히 개인적이거나 또
는 골리앗을 죽이려한 다윗의 의도가 자신의 영달이나공명심 때문이 아니라, 오직 골
리앗으로부터 당한 민족적 치욕 및 신성 모독을 제거하려는 것임을 보여 준다. 한편
여기서 '치욕'(* , 헤르파)은 골리앗이 이스라엘에게 준 '모욕'(10절)과 동일
한 어근의 말이다.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 이것은 다윗이 이미 약속된것 (25절)보다 더 큰 상급을
사울에게 약속받으려 했음을 가리키지 않는다. 다만 다윗은 그때 이 말을 함으로써 골
리앗을 죽이는 일의 당위성.시급성을 시사하려고 했었던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1)
본절의 후반부 '이 할례 없는...모욕 하겠느냐'라는 말과 (2) 이후 딸을 주겠다는 사
울의 제안을 다윗이 사양했다는 언급(18:18) 등을 통해 분명해진다.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 - 이 말은 블레셋 사람들이 대체로 포경 수술을 안했다는
사실 자체 보다는, 그들이 이스라엘과는 달리 하나님과의 거룩한 언약 관계하에 있지
않은 이방 민족이라는 사실에 강조점이 있다<14:6 주석 참조>. 그러므로 다윗의 이 말
에는 자신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자부심과 하나님께서 자신과 반드시 함께 하실
것이라는(16:18) 확신이 담겨 있었다.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 - 이같은 문구는 이방인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
는 행동에 관한 언급이 다뤄지는 문맥중에 종종 나타난다(Klein, 수 3:10;왕하 19:4).
그리고 여기 '사시는 하나님'(* , 엘로힘 하임)은 말할 나위없이
블레셋이 섬기던 다곤(Dagon, 5:2 주석 참조) 우상의 무기력함과 무가치함을 경멸하는
말투임이 분명하다(렘 10:6-10). 이같은 다곤 우상의 무기력성은 다곤의 이름을 빙자
한 골리앗의 다윗에 대한 저주가 아무런 효험을 나타내지 못했다는 결과적 사실로써
증명되고 말았다<43절>. 뿐만 아니라 다곤 우상의 무기력함은 과거에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 완전한 항복을 함으로써 백일하에 폭로되지 않았던가(5:3, 4)! 한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의분으로 훨훨 타올랐던 소년 다윗의 이 말은 당시 사울 통치하의 무기력
하고 침체된 이스라엘 군대의 무감각성을 일깨워 주는 각성제가 되었을 것이다.
=====17:27
본절은 골리앗을 이기는 자에게는 세 가지 상급(25절)이 주어질 것이라는 소문이
결코 근거없는 유언 비어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17:28
엘리압이...노를 발하여 - 다윗의 맏형 엘레압의 이 분노는 다윗의 거룩한 분노와
는 뚜렷히 대조되는 것으로, 곧 자신의 편협한 소견에서 비롯된 세속적 분노이다. 어
쩌면 엘리압의 이같은 분노는 자신을 제쳐놓고 동생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사
실로 인한 질투 및 시기심이 근본 원인이었을지도 모른다.
네가 어찌하여...내려왔느냐 - 이것은 베들레헴이 해발 690m 높이의 고지에 위치한
성읍이었다는 사실을 앎으로써 이해될 수 있다(15:12;16:2).
몇 양을 뉘게 맡겼느냐 - 엘리압의 이 말은 (1) 양을 지키는 본연의 임무에 태만했
다는 것, (2) 쓸데 없는 일에 공연히 참견했다는 것 등을 지적한, 다윗에 대한 부당한
(20절) 책망이다(Lange).
나는 네 교만과...완악함을 아노니 - 여기서 '교만'은 목동의 주제를 벗어난 이기
적 욕심(25절)을 지적한 말이고, '완악'은 피흘리는 전쟁을 보고 즐기고자 하는 사악
한 심성을 지적한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교만'과 '완악'은 모두 하나님께 대한 불순
종을 지적코자 할때 성경에서 종종 사용되는 단어들이다(신 17:12;18:22;렘 7:24). 그
러므로 결국 형 엘리압은 이같은 단어를 다윗에게 적용함으로써, 다윗의 거룩한 열정
과 의분을 한낱 이기적인 교만과 사악함으로 격하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로 볼 때 실
로 교만하고 완악한 심성은 엘리압 자신의 부당한 비난 속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17:29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 이 말은 자신이 책망받을 일을 전혀 하지 않았음을 시사
하는 말이다(Fay).
어찌 이유가 없으리이까 - 이것은 문자적으로는 '그것은 한 마디의 말에 불과하지
않은가?'란 뜻이다. 곧 이것은 다윗 자신이 골리앗과 싸울 의사를 밝히는 말 이외에는
기타 아무런 교만하고 완악한 말도 하지 않았음을 기라킨다. 이처럼 여기서 다윗은 자
긴이 그곳에 간 일차적 목적(17, 18절)을 제쳐두고, 골리앗을 쳐죽이는 일을 자신이
그곳에 간 목적으로 형에게 제시한다. 그때 다윗이 이같이 한 까닭은, 골리앗으로 인
해 빚어진 이스라엘의 위급한 상황을 목격하면서 강렬한 신적(神的) 소명을 느꼈고,
바로 이같은 신적인 소명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버지를 통해자신을 그곳
으로 가게끔 하셨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17:30
전과 같이 말하매 - 이것은 문자적으로 '이 말(* , 다바르)을 따라 말하매'란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다다르)은 골리앗에 대한 자신의 도전 의사를 가리킨다
(26, 29절).
백성이 전과 같이 대답하니라. - 이것은 골리앗을 물리치는 자에게 세 가지 상급이
약속 되었다는 사실을 말한다(25, 27절).
=====17:31
사울에게 고하였으므로 - 문자적으로는 '사울의 면전(面前)에 고하였으므로'란 뜻
이다.그런데 여기서'-의 면전'이라는 말은 특정한 인물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내는 특
수한 표현이다(Thenius). 따라서 여기서 이같은 표현법을 사용한 까닭은, 다윗이 사울
앞에 나아간 것은 그에게는 매우 영광스러우며 또한 의미 심장한 일이었음을 암시하려
는 의도 때문인 듯하다.
사울이 다윗을 부른지라 - 여기서 '부른지라'(* , 라카흐)는 '취하다', '맞다
들이다'란 의미이다. 결국 이 단어는 골리앗으로 인해 궁지에 몰린 사울에게 있어 다
윗이라는 인물의 출현이 얼마나 반가운 일이었는지를 잘 시사해준다.
=====17:32
그를 인하여 - 여기서 '그'는 '저 블레셋 사람'(골리앗)을 가리킨다. 그런데 다윗
이 골리앗이라는 이름의 사용을 기피한 까닭은, 그때 다윗이 이스라엘의 군대와 이스
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모욕하고 있던 골리앗을 증오.경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Klein).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 여기서 '사람'(* , 아담)은 정관사가 없으므로
'한 사람'으로 번역해야 타당하다. 따라서 본 어구는 '한 사람도 낙담하지 말 것이라'
로 번역해야 좋다. 그런데 70인역은 '사람' 대신에 '나의 주'(* , 아도니)로
번역하여 읽고 있다. 그러나 그처럼 원문을 고쳐읽을 근거는 전혀 없다(Fay). 아무튼
일개 시골 목동에 불과했던 다윗이 한 나라의 통치자용 군대 총지휘관인 사울에게 오
히려 이같은 위로의 말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것이다.
주의 종이 가서...싸우리이다 - 다윗의 이 말은 엘리압이 비난했던 것처럼(28절)
결코 쓸데없는 만용이나 교만이 아니었다. 오직 소년 다윗은 할례받지 못한 이방 족속
블레셋 사람의 그 모멸스런 치용과 경멸로부터 여호와의 군대인 이스라엘의 명예를 되
찾고, 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영광을 회복해야 하겠다는 거룩한 열정에불
타 믿음과 확신으로 결연한 의지를 천명한 것이었다.
=====17:33
너는 소년이요 - 사울의 이 말은 다윗이 나이가 어린 관계로 실제 전투 경험이 전
혀없었던 사실을 가리킨다(12-14절).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 - 여기서 '어려서'(* , 나아르)는 앞의 '소년'과 동이
랗다 단어이다. 결국 이 말은 골리앗이 다윗의 나이만큼 밖에 안되었을 때부터 이미
전투 경험을 쌓아온 백전의 노장임을 뜻한다. 한편 '용사'는 문자적으로 '전쟁의 남
자'(a man of war)란 뜻이다.
=====17:34,35
여기서 다윗은 자신에게 '전투 경험'은 없지만 '전투 능력'은 충분히 있음을 사울
에게 강력히 호소한다<16:18>.
사자나 곰 - '사자'(* , 아리)는 오늘날과는 달리 다윗 당시만 해도 소아시아
전역을 포함하여 헬라와 인도까지에도 서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자는 대개 풀이 많
은 초원 지대나 삼림 지대에서 주로 서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지대에서 양떼를
방목하는 목자들에게는 항상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그리고 여기의 곰'(* , 도브)
은 연한 갈색을 띤 '시리아 곰'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잡식성으로서 보통 때는 사람이
나 가축을 안건드리지만, 동면이 끝날 시기인 늦겨울이나 이른 봄에는 먹을 것이 없으
므로, 자신들의 서식지인 고산 지대를 내려와서 새풀을 뜯고 있는 어린 양들을 거침없
이 잡아먹는다고 한다. 따라서 여기 언급된 '사자와 곰'은 양떼를 돌보고 지킬 책임이
있는 목동에게는 가장 경계해야 할 맹수의 대표격인데, 본문의 언급은 이러한 맹수들
이 동시에 내려와 양떼를 해쳤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때는 사자가, 그리고 어떤 때
는 곰이 내려와 양떼를 해하려고 한 사실을 종합적으로 묶어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 아마도 곰과의 사투(死鬪)를 묘사하는 말인
것 같다. 왜냐하면 실제 곰은 적을 일거에 강타하여 쓰러뜨리기 위하여 뒷다리로 의지
하고 일어서서 앞 다리를 치켜 내리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곰의 취약 부분은 머리 부
분으로서 그곳을 정확히 지팡이로 강타하면 제압할 수 있다고 한다(Pliny). 아마 다윗
도 목자의 지팡이로써 곰과 싸워 이긴 듯하다(R. Payne Smith). 사실 고대 문헌을 살
펴보면, 이처럼 지팡이로 곰이나 사자와 싸워 이긴 기록이 나타난다(Rosenmuller,
Thevenot). 한편, 고대 히브리인들은 그 덩치와 외모의 험상궈음 때문에 사자 보다도
곰을 더 무서워하고 공포스러워 했다고 한다(Fay). 따라서 다윗도 여기서 곰과의 싸움
을 일례로 이야기한 것 같다.
수염을 잡고 - 사자나 곰은 '수염'이 없다는 점에서, 여기의 '수염'은 '턱'(chin)
을 가리킴이 분명하다(R. Payne Smith). 이같이 추정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 '수염'에
해당되는 '자칸'(* )dms '수염'이란 의미 이외에도 '턱'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
이다(Bochart). 한편 이러한 관점에서 갈대아역(the Chaldee)은 '아래 턱'으로, 그리
고 70인역(LXX)은 '목구멍'으로 각기 번역하고 있다.
=====17:36
사자와 곰도 쳤은즉...모욕한...블레셋 사람이리이까 - 여기서 다윗은 가축을 해하
려하여 자신이 쳐죽였던 맹수와, 그때 이스라엘을 해하여 하고 있는 골리앗을 암시적
으로 동일시한다(Klein). 이같은 동일 묘사를 통해서 다윗은 골리앗에 대한 자신의 승
리가 확실함을 사울에게 강력히 시사하였던 것이다.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 - 26절 주석 참조.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 - 26절 주석 참조. 한편, 특별히 여기서 이 호칭을 골리
앗의 명수와 같은 야만성을 강조하려는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17:37
여호와께서...건져내셨은즉...건져 내시리이다 - 골리앗에 대한 다윗의 도전 의사
는 결코 일시적 흥분이나, 충동으로 인한 만용이 아니었다. 즉 그때 다윗은 (1) 과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자신의 양떼를 해하려고 한 사자와 곰을 물리친 경험에 근거하고
(2)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고 여호와를 능멸하고 있는 사자와 곰 같은
골리앗을 직시하면서 (3)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자신과 함께
하사 그 할례받지 못한 블레셋 사람을 거꾸러드릴 것이라는 미래적 확신에 불타올랐기
때문에, 이스라엘 생사가 걸린 이 골리앗과의 결투에 결연히 자원할 수 있었던 것이
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 이번 골리앗과의 일대일 결투는 전체 전쟁의 승패
를 판가름 짓는 중요한 대결투였고(9절), 나아가 이 전쟁의 승패 여부에 따라 이스라
엘이 블레셋의 압제와 위협으로부터 자유하느냐 아니면 또다시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소국으로 전락하고 마느냐 하는 역사적 기로의 한판 승부였다. 따라서 사울은 40일 동
안이나 골리앗의 온갖 모욕과 조롱을 감수하면서도 선뜻 도전자를 내보내지 못하고 전
전긍긍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때 다윗의 자원(32절)은 일면 반가운 일이었으나,
일면 무시할 수 밖에 없는 에피소드적 사건이었다(33절). 그러나 거룩한 열정과 확고
한 신앙에 근거한 다윗의 놀리적인 설득에 결국 사울은 크게 감동을 받고, 마침내 골
리앗과의 결투를 허락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 여기서 '계시기를 원하노라'
(* , 이흐예)란 말은 미래형이라는 점에서, 차라리 '계실 것이다'로 번역함이
더 좋다. 따라서 이것은 결국 사울이 다윗의 승리를 강력히 염원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확신까지도 했음을 뜻한다. 이것은 다윗의 말(34-37절)이 그만큼 믿음과 용기
와 확신으로 가득차 있었음을 시사한다.
=====17:38
이에 사울이...입히매 - 이러한 시도는 사울의 신앙과 경험(34-37절)을 완전히 이
해치 못했음을 시사해 준다(Klein). 즉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만을 의지하여 골리앗
과 싸우려는 다윗에게 인간적인 전투 장비 등은 전혀 무가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울
은 골리앗의 중무장을 의식하고(4-7절) 다윗에게도 그와 같은 무장을 시키려 했던 것
이다.
군복을...입히고 - 여기서 '군복'(* , 마드)은 찢어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4:12), 갑옷을 입기 전에 이븐 겉옷 종류를 가리킴이 분명하다(Smith, Keil).
=====17:39
익숙치 못하므로 - 여기의 '익숙하다'(* , 나사)는 '시험하다', '시도하다'.
'입증하다'라 의미이다(창 22:1;출 15:25;신 6:16;삿 3:1). 결국 위 문구는 다윗이 사
울의 군장을 자신의 몸에 착용한 채 전투를 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시험해봤으나, 불
가능 했었음을 가리킨다.
시험적으로 - 여기의 이 말은, 그 의미가 본절의 내용 중에 스며들어 있는것은 사
실이지만, 엄밀히 말해서 히브리 원문에는 없다.
걸어보다가 - 이 말은 오히려앞에 나왔던 '익숙치 못한지라'의 앞에 두고 '걸어 보
기를 시험하다가'로 번역함이 좋다.
익숙치 못하니...가지 못하겠나이다 - 결국 이같은 현상은 당시 사울과 다윗이 체
격에 있어 그 차이가 현저하였기 때문에 나타났을 것이다(9:2;10:23).
=====17:40
막대기(* , 마켈) - 보통 버드나무 가지의 껍질을 벗겨 만든 것으로, 한쪽 끝
을 굽어지게 하여 손잡이가 되도록한 지팡이(staff)를 가리킨다. 이 지팡이는 목자가
산을 오르거나, 걸으면서 나뭇가지와 잎을 칠 때, 그리고 웅덩이에 빠진 양을 구출할
때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창 32:10;출 2:11;민 22:27). 한편, 그러나 또 다른
종류의 막대기(rod) '맛테'(* )는 구부러지지 않고 곧게 뻗은 모양의 지팡이를
가리킨다(출 4:2;7:9).
시내에서 - 여기의 '시내'(* , 나할)는 '골짜기'. '하수', '강' 등의 의미로
서 브레셋과 이스라엘이 진을 치고 있던 엘라 골짜기를 가리킨다(2절). 이곳은 우기
(雨期)인 가을부터 봄까지는 물이 흐르지만, 건기(乾期)인 여름에는 강 바닥이 말라붙
어 버린다.
매끄러운 돌 - 이 돌은 물이 말라붙은 골짜기의 시내(Wadi) 바닥에서 주은 단단하
고 매끄러운 차돌을 가리킨다.
물매(* , 켈라) - 이것은 주로 양가죽으로 만들어졌는데, 던질 돌을 넣을 수
있도록 가운데 부분이 넓게 엮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 물매의 한쪽 끝에는 끈이 달려
져 있어 엄지에 연결하여 물매를 돌려 던질 수 있도록 하였다. 당시 이러한 물매는 막
대기와 더불어 목자들의 필수 도구였는데, 곧 목자들은 물매로써 (1) 옆길로 새는 양
떼를 멀리서도 통제하고 (2) 양을 노략하려는 야수들을 쫓아내었다. 뿐만 아니라 물매
는 조직된 군대에 의해서도 사용된 듯하다. 즉 우선 베냐민 사람들은 성경에서 물매
사용의 명수들로 언급되며(25:29;삿 20:16;대상 12:2;대하 26:4), 심지어 최근에 발견
된 앗수르왕 산헤립의 궁궐 벽에는 구리로 된 투구를 쓰고 쇠사슬로 만든 갑옷을 입은
물매꾼이 그려져 있을 정도이다.
다윗과 골리앗 - 이스라엘군과 불레셋군은 엘라 골짜기를 경계로 서로 대치한다.
아비의 심부름으로 베들레헴으로부터 전장(戰場)에 도착한 다윗은 선봉장 거인 골리앗
의 신성 모독에 의분을 느끼고, 그와 결투할 것을 결심한다. 결국 다윗은 하나님의 도
우심으로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리게 되고, 이에 사기가 충천한 이스라엘군은 블레셋군
을 에그론과 가드까지 추격하여 물리친다.
=====17:41
블레셋 사람...방패 든 자가 앞섰더라 - 본절은 무장을 안하다시피한 다윗과는 대
조적으로, 그러한 다윗과 싸울 골리앗의 완벽한 무장 상태를 의도적으로 보여주고 있
다<4-7절>.
=====17:42,43
여기서는 골리앗이 다윗의 연소 혹은 왜소함, 그리고 허술한 무장으로 인하여 그를
조롱하고 그에게 독석(毒舌)을 퍼붓는 장면이 언급된다.
다윗을 보고 - 여기서 '보다'(* , 라아)란 말은 '자세히 들여다보다', '관찰
하다'란 의미이다(레 13:3;왕하 7:13;대하 12:17;욥 28:24).
젊고(* , 나아르) - 흔히 '소년'이란 말로 번역되는 단어로(16:18), 곧 나이
의 연소함을 가리킨다<33절>.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 이 말은 외형적 아름다움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12절), 한편으로는 나이 어린 사람의 외형적 특징을 묘사한 말이기도 한다.
개로 여기고 - 문자적으로는 '내가 개냐?'(Am I a dog?)란 뜻이다. 한편 '개'는 중
근동에서 가장 싫어하고 금기로 여기는 대표적 동물이다(왕상 21:23;왕하 9:36).
신들의 이름으로...저주하고 - 여기서 '신들'은 히브리 본문에는 단수로 표기되어
있다. 따라서 문자적으로는 다만 '신'이란 의미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골리앗은 분명
히 다신주의자(多神主義者)였을 것이라는 추정적 사실과 충돌이 될 수 밖에 없다. 이
에 따라 이 모순을 해결할 두가지 방법이 제안되어 왔다. 즉 그 방법은 (1) 단수 '신'
을 사본상의 오류로 보고, 복수인 '신들'로 이해해야 된다는 것 (LXX, KJV), (2) 단수
'신'을 정확한 것으로 보고, 다만 '신'을 다윗의 신 곧 여호와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
(Keil) 등이다. 그러나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이 믿는 수호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상대방을 경멸하는 일이 고대 용사들에게는 보편적이었다는 사실(Lange)에 근거하여
볼 때, 위의 두 가지 견해 중 첫번째의 견해가 더 타당한 듯하다(R. Payne Smith). 또
한 이같은 추축은 45, 46절에서 다윗이 자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상대방 골리
앗을 경멸했다는 점에서, 보다 신빙성을 띠게 된다. 한편 한글 개역 성경의 '이름으
로'는 히브리 본문에는 없는 것으로서, 번역자의 의역으로 삽입한 것이다.
=====17:44
네 고기를...들짐승들에게 주리라 - 고대의 전사(戰士)들이 결투를 벌이기 전 이처
럼 저주와 위협의 독설(毒舌)을 상대방에게 퍼붓는 것은 스스로 사기를 앙양시키고,
기선을 장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흔히 사용되었다. 고대 서사시인 호머(Homer)의 작품
속에도 이러한 장면이 잘 묘사되어 있다. 한편, 이러한 위협은 실제 고대 중근동에서
(1) 패배당한 상대 장수의 옷을 벗기는 등 신체에 모욕적 행동을 가하며, (2) 또한 시
체를 장사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 둠으로써 새나 들짐승의 밥이 되도록 하는 등, 보
편적인 관습으로 행해지고 있었다(Klein, 31:8-13).
=====17:45
여기서 다윗은 군대의 무기 보다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여 싸우겠다고 선언
함으로써, 자신이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성전(聖戰)을 수행하는 자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칼과 창과 단창 - 블레셋 군대의 선봉장인 거인 골리앗이 소유하고 있던 막강한 무
기들로서(4-7절), 곧 이것은 하나님을 댜거하는 세상의 무력(武力)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만군의 여호와(* ,.예호와 체바오트) - 이말은 하나님께서 당신
의 원수들을 징치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당신의 군대로 삼고, 친히 그 지휘자가 되신
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밀이다<1:3>.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 이 말은 앞에 언급된 '만군의 여호와'가 갖는 의미를 설
명해주는 말이다. 그러므로 여기 나타난 다윗의 말을 통해 볼 때, 다윗은 자신과 골리
앗과의 싸움을 단순히 개인과 개인 또는 국가와 국가간의 사움만으로 보지 않고, 골리
앗이 숭배하는 블레셋 족속의 신들과 자신이 믿고 의뢰하는 이스라엘의 신, 곧 여호와
하나님 간의 싸움으로 인식한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방의 헛된 목석(木石)의 신
들은 살아계신 하나님 여호와의 능력 앞에 여지없이 거꾸러지리라는 신앙과 확신으로
담대히 나아갔던 것이다.
=====17:46
내 손에 붙이시리니 - 이 말은 주로 성전(the Holy War)을 수행함에 있어, 하나님
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완전한 승리를 주시고자 할 때(수 6:2;8:1, 7) 사용되는 말이다
<14:10 주석>.
온 땅으로...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 다윗의 이 말은 성전(聖戰)의 일차적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준다(수 2:9-11). 즉 성전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 준다(수 2:9-11). 즉 성전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살아계셔셔 역사를 당신의 기쁘
신 뜻대로 섭리.운행해 나가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널리 증거하는 데 있음을 다윗은 올
바로 인식한 것이다(고전 10:31). 그러므로 여기서 다윗은 골리앗과의 싸움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계약 백성으로 만천하에 널리 드러나게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17:47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알게 하리라 - 만일 블레셋의 거
인 골리앗과 맞사울 장수로 이스라엘에서도 최대한 비슷한 조건의 용사를 고르고 골라
내보내어 혹시 이겼다면, 그 싸움의 모든 영광은 그 승리한 용사에게로 돌아갔을 것이
다. 그러나 골리앗의 조건과는 모든 면에서 너무나도 현격한 대조를 보이는 다윗이
'창 칼 없이' 막대기와 물매만으로 승리한다면, 그것은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승
리여요, 오직 그 이름만이 영광받을 것이었다. 따라서 소년 다윗은 이러한 점까지 내
다보면서, 진정 골리앗의 창칼이 썩은 지푸라기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을 이스라엘의
거인 하나님과 함께 나아갔던 것이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 이 말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전쟁의 하나
님'으로서, 곧 (1) 모든 전쟁의 승패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에 따라 좌우되
며(대하 20:15;시 127:1;144:1) (2) 또한 그러한 모든 전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당
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 나가신다는 뜻이다.
=====17:48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 여기의 '일어나'(* , 쿰)는 문자적 의미의 일어남 보
다는 차라리 어떤 결정적 행동에 선행되는 의지적 결단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블레셋 사람에게로...빨리 달리며 - 이러한 다윗의 적극적인 전투 자세는 오직 여
호와의 능력만을 힘입어 싸우려 했던 다윗의 신앙과 용기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아울
러 이는 다윗이 골리앗과는 달리 극히 가벼운 무장, 즉 막대기와 물매 만을 지니고 있
었던 사실을 암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40:, 43절).
항오를 향하여 - 본 문구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블레셋의 진영과 가까운 지점
에서 벌어졌음을 암시해 준다. 아마도 골리앗은 중무장(4-7절)으로 인해 행보가 둔했
던 반면, 다윗은 평상시 목동의 복장과 소도구 그대로였기 때문에 블래셋 군대의 대열
쪽으로많이 전진해갔던 것 같다. 한편 '항오'는 '군대의 대열(隘列)'을 의미한다<23
절>.
=====17:49
돌을...물매로 던져 - 여기서 '물매'는 불레셋 사람들이 예기치 못할 정도의 비밀
병기는 결코 아니었다. 그 이유는 (1) 물매는 이미 고대 중근동에 널리 알려져 있던
병기였으며<40절>, (2) 또한 골리앗은 다윗이 물매를 휴대한 채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
을 목격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골리앗은 자신의 거대한 몸집이나 거의 빈큼없
는 무장 상태로 보아 그까짓 물매로 인해 어떤 타격을 입으리라고는 상상치 못했을 것
이다. 즉 그는 자신의 무력을 과신했던 것이다.
이마를 치매 돌이 그 이마에 박히니 - 이같은 결과는 일차적으로 (1) 그당시에는
중세기의 기사(騎士)들이 착용했던 것과 같은 안면 보호대(面甲)가 개발되지 않았으
며, (2) 골리앗 앞에 있던 방패드는 자가 골리앗의 큰 키로 인하여 그의 안면을 방어
하지 못했으며, (3) 그리고 다윗의 뛰어난 물매 솜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궁극
적으로 이 전과(戰果)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인하여 거두어질 수 있었음<45-47절>이
분명하다(Galling). 그러므로 실로 이것은 "40일 동안이나 그 교만한 블레셋 사람(골
리앗)의 온갖 모욕과 조롱을 당하셨던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가 다윗의 물맷돌 속에 응
축되어 골리앗의 이마에 박힌 것이다". 한편 '이마에 박히니'라는 말은 (1) 골리앗에
대한 다윗의 승리가 결코 다윗 자신의 물매 솜씨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사실과 (2) 골
리앗이 단 하나의 물맷돌로 인하여 죽기까지 했던 이유를 시사해 준다.
땅에 엎드러지니라 - 외형적 자세로만 볼 때 이것은 상대에 대한 절대적 존경심을
표할 때에 취하는 자세이다. 일찍이 여호와의 법궤 앞에서 블레셋의 다곤(Dagon) 신상
이 이처럼 엎드러졌었다<5:3>. 그러므로 결국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모멸하던
자를 강제로라도 굴복시켜 그로부터 합당한 영광을 받으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윗의 물맷돌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종종 주위의 흔하고
평범한 물체들을 사용하신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어떤 물체나 대상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의 사용에 합당하도록 하나님께 헌신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혹시 우리는
우리 주변에, 또는 우리 자신 속에 하나님께서 들어 사용하실 만한 그 무엇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진정 원하시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것, 그리고 그 무엇이
라도 당신의 목적을 위한 당신의 도구로 들어 사용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다.
=====17:50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 여호와께서는 창.칼 등 무기의 도움없이 당신의 백성
을 구원하시는 전능하신 분이라는 다윗의 확신과 신앙(47절)이 실제적으로 입증되었음
을 실증적으로 보여 준다. 한편, 이처럼 다윗의 물맷돌이 대적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
을 쳐서 거구러뜨린 것은 다니엘서 2:34, 35에 나타난바 '뜨인 돌이 큰 신상(神像)을
부숴뜨리고, 이어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다'라는 말을 연
상케 한다. 이런 의미에서 골리앗을 스러뜨린 다윗의 물맷돌 사건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단의 세력을 징치하고 전멸시킬 것이라는 심판 사건의 전조(前兆)에 다름 아니었다.
=====17:51
다윗이...블레셋 사람을 밟고 - 밟는 행위는 완전한 승리.정복의 의미를 갖는다(수
10:24;롬 16:20). 따라서 블레셋 사람 골리앗에 대한 다윗의 이같은 행동은 (1) 다윗
을 통한 블레셋 민족 정복(삼하 8:1), (2) 그리스도를 통한 사단 세력 멸절(룸 16:20;
계 20:10) 등의 의미를 이중적으로 예표한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칼을...빼어 내어...그를 죽이고 - 전쟁 관례상 자신의 무기를 사용치 않고
상대국 장수로부터 칼을 빼앗아 그 장수를 죽이는 일을 강대국과 그 장수에 대해 수치
심을 안겨 주려는 것이었다(Klein, 삼하 23:20, 21). 한편 여기의 '칼'은 골리앗이 소
지했던 창과는 달리 그다지 크지 않았던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이같은 추정은 (1) 소
년 다윗이 능히 사용할 수 있었다는 사실, (2) 제사장 아히멜렉이 그 칼을 다윗에게
적당한 것으로 생각했었다는 사실(21:9) 등으로 충분히 뒷받침 된다. 아무튼 자신의
칼과 창만을 믿고 큰소리쳤던(43, 44절) 골리앗이, 결국 자신의 그 칼로 자신의 목을
베임당한 이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악인은 결국 자신이 파놓은 구덩이에 그 자신이 빠
지고 만다는 진리를 보여 준다(시 7:15;9:15).
그 머리를 베니 - 고대의 전투에서 적국의 적장을 죽이고, 그 승리의 증거로서 그
머리를 베어 왕에게 바치는일(57절)은 하나의 관례였다.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 - 블레셋 군대는 골리앗의 승리를 확신하고
이스라엘 군에 대한 총공격 태세를 갖추었을 것이다. 그러나 골리앗의 패배라는 어이
없는 결과에 그만 전의(戰意)를 완전 상실하고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결과적으
로 이것은 골리앗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당초에 약속했던 것, 곧 양쪽의 대표 중 진
쪽의 군대는 이긴 쪽의 군대에게 완전한 항복의 예(禮)를 갖추어야 한다는 선언(9절)
을 스스로 파기한 행동이기도 했다.
=====17:52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이...쫓아 - 여기서 본서 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같이
분리 언급한 까닭은 다음과 같다. 즉 (1) 본 전투가 있었던 당시와 본서가 기록된 당
시의 유다지파와 타지파가 상호 대립하고 있었다는 사실(11:8;15:4), (2) 본 전투에서
의 승리가 유다지파 사람 다윗의 결정적 역할에 따른 결과였다는 사실,(3) 본 전투가
유다 지파의 당에서 벌어졌었다는 사실(1절) 등의 정치.군사적 배경을 암시하려는 의
도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여기서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이 함께 블레셋
군대를 추격했다고 언급함으로써, 이방원수를 격퇴함에 있어서는 온 이스라엘 민족이
한 마음이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Klein).
가이와 에그론 성문까지 이르렀고 - 이것은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대해 완전한 승리
를 거두었음을 강력히 시사해 준다<7:14>. 그런데 한편 여기서 '가이'(* )에 대
한 해석으로 다음 두 가지가 있다. 즉 이를 (1)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 명사 '골짜기'
(3절)로 보고, '성문'처럼 '에그론'에속한 한 지점일 것이라는 해석(Targum,
Vulgate), (2) 필사자의 실수에 따른 오기(誤記)로 보고, 골리앗의 고향인 '가드'
(* )를 가리킬 것이라는 해석(Keil, Klein, LXX) 등이다. 그런데 첫째, 블레셋이
'가드'와 '에그론'까지 엎드러졌다는 언급과(52b절) 둘째, 블레셋에 대한 이스라엘의
완전한 승리를 시사하는 구절 속에 '가드'와 '에그론'이 나란히 언급됐다는 점(7:14)
등에서 (2) 의 견해가 더욱 타당성이 있다.
사아라임 가는 길 - 이것은 '엘라 계곡'을 가리킨다<3절>. 한편 '사아라임'
(Saaraim)은 여호수아 15:36의 언급을 통해서 볼때, 소고 및 아세가<1절>와 인접한 한
지점에 위치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현재의 '텔 케플 자카리야'(Tell Kefr Zakariya)
지역으로 추정된다(Keil).
가드와 에그론 - 블레셋의 주요 도시 국가들. 수 13:3 주석 참조.
=====17:53
진을 노략하였고 - 고대 중근동에서 승전국이 패전국으로부터 전리품을 획득하는일
은 극히 일반적인 관례였다. 그러나 여기 언급된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 행위는 본서
저자의 눈에 부정적으로 비쳐졌음이 분명하다. 그 같이 볼 수 있는 까닭은 저자가 여
기서 합법적인 탈취를 뜻하는 '솰랄'(* )이라는 단어를 사용치 아니하고(민
31:31;신 2:35;수 8:2;11:14;삼하 3:22;대상 20:2), 부정적 의미의 탈취를 뜻하는 '솨
사스'(* )를 사용했기 때문이다(삿 2:14;시 89:41;사 13:16;렘 30:16). 그렇다면
저자가 여기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노략 행위를 부정적으로 본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
닭은, (1) 그 물건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경멸했던 블레셋 족속의 소유물이었으므로,
필연 하나님께 바쳐진 저주받은 것들이었음이 분명하며(15:3 주석 참조;수 6:18-21),
(2) 따라서 그 물건들은 반드시 영적 지도자의 조언에 따라 처분되어야 했음에도 불구
하고 백성들이 임의로 취했다는 사실 때문이었을 것이다(Klein, 민 31:21-24;수
6:18).
=====17:54
블레셋 사람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 가고 - 이같은 언급은 여기의 '예루살렘'
이 그당시 여전히 여부스 족속(the Jebusites)의 수중에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과 상충
된다(삼하 5:6-9). 바로 이같은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시도로서 다음과 같은 해석이 제
시되었다. 즉 그것은 (1) 당시 예루살렘이 여부스 족속에 의해 부분적으로 장악되긴
하였으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곳에 이미 살고 있었기 때문에(수 15:63;삿 1:21), 다
윗은 그때 블레셋과의 싸움 직후 골리앗의 머리를 가까운 그곳으로 가져갔다는 해석
(Keil, Lange), (2) 그 당시에는 예루살렘이 여부스 족속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 있었
기 때문에 싸움 직후에는 골리앗의 머리를 다른 곳에 임시 보관하였다가, 마치 임시
장사 되었던 사울의 시체가 후일 그 아비의 매장지에 완전히 안장되었듯이(삼하
21:12-14), 여부스 족속으로부터 예루살렘을 탈환한 후 그곳으로 옮겼다고 보는 해석
(Willis) 등이다. 그런데 다윗 당시 예루살렘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일부 거주 하기는
하였으나, 그 도시는 여부스 족속의 강력한 지배 아래 있었고 또한 다윗과 같은 특별
한 인물들의 출입은 엄격히 통제되었다는 점에서 두번째의 견해가 타당성이 있다. 따
라서 다윗이 골리앗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갔다는 여기의 언급은 후대에 본서를
기록한 저자의 결과론적 진술임이 부명하다(R. Payne Smith). 본서 저자는 이같이 의
도적으로, 후일에 이스라엘의 수도가 된 '예루살렘'으로 적장의 머리를 가져갔다고 함
으로써, 적국 블레셋에 대한 다윗 혹은 이스라엘의 완전한 승리를 강조하려고 했던 것
이다.
갑주는 자기 장막에 두니라 - 여기서 '갑주'(켈리, * )는 문자적으로는 '기계
' 혹은 '물건'이란 의미이다. 그러나 다른 문맥에서처럼 여기서도 '무기'(weapons,
NIV)란 의미로 보아야 할 듯하다(14:1, 12;20:4;21:8). 그리고 여기서 '자기 장막'은
혹자들(Hertzberg, Abravanl)의 주장처럼 '여호와의 장막'을 가리킨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다윗의 베들레헴 집을 가리키는데(Keil, Smith), 그 근거는 여기서 '장막
'(tent)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오헬'(* )은 '거주지'를 가리키는 고대 어휘로서
(Fay), 그 용례가 성경 다른 곳에서도 종종 나타나기 때문이다(4:10;13:2:삼하
18:17;19:8;20:1). 한편 이러한 사실은 후일 골리앗의 칼이 높(Nob)에 있던 여호와의
성막에 보관되었다는 본서 21:8, 9의 언급과 모순되지 아니한다. 왜냐하면 후일 다윗
이 블레셋 거인으로부터 자신을 건져내 승리케 하신 여호와의 영광과 명예를 기리기
위해 놉에 있던 여호와의 성막에 그 칼을 기념물로 바쳤을 것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가
능한 추측이기 때문이다(J. P. Lange, Commentary on the Holy Scripture;Kil &
Delitzsh, Commentry on the O. T. Vol. - . pp. 184-185).
=====17:55
군장 아브넬 - 사울의 숙부 넬의 아들로서 사울과는 사촌 형제지간이다(삼상
14:50, 51). 사울의 군장(軍長)이자 사울 가의 능력있는 무사로서, 사울을 보필하다가
사울 사후 다윗 가에 대항하기 위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옹립, 사실상 실
권을 장악한다. 그러나 사울 왕의 첩 이스바와의 통간 사건으로 이스보셋으로부터 질
책을 당하자 격노하여 다위 가로 귀순하려고 한다. 그러나 귀순의 과정에서 다윗의 군
장 요압의 계교에 걸려 살해당하고만다. 다윗은 이 소식을 듣고 매우 격분했으며 슬퍼
했다. 다윗은 후일 아들 솔로몬에게 아브넬의 원수를 갚을 것을 유언하였다(삼하
3:6-39;왕상 2:5, 6). 한편 아브넬은 적어도 아들 하나 이상은 가졌던 것 같다(대상
27:21).
이 소년이 뉘 아들이냐 - 이같은 사울의 질문은, 이미 다윗은 사울을 위해 궁중 악
사로서 일한 경력이 있었다는 점에서 볼 때(16:21-25) 우리에게 큰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따라 주석가들은 다음과 같은 견해들을 제시해 왔다. 즉 (1) 정신 질환을 앓고
있던 사울이, 당시 자신과 잠시 함께 있다가 헤어진지 오래되어 많이 변해있었을 다윗
을 실제로 알아보지 못하여 이같은 질문을 했을 것이라는 견해(Klein, Lange, Smith),
(2) 사울은 그때 개인적으로는 다윗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골리앗과의 결투를
계기로 그처럼 용감 무쌍한 다윗의 가문(家門)이 어떠한 혈통과 신분적 위치를 차지하
고 있었늦지에 대하여 알고 싶어서 이같은 질문을 했을 것이라는 견해(Keil) 등이 있
다. 그런데 여기서 사울은 첫째, 골리앗과 싸우도록 하기 위하여 이미 다윗과 대면을
했었고(31-40절) 둘째, 불과 몇 년 전에 자신의 옆에서 자신의 고통을 덜어 주었던 은
인(恩人)을 완전히 잊어 버렸다고는 상상할 수 없다는 사실 등으로 미루어 볼때 두번
째의 견해가 더 타당한 듯하다<서론, 7. 사무엘서에 대한 고등 비평 비판>.
=====17:56
청년(* , 엘렘) - 그당시 다윗에게 적용되었던 '소년'(* , 나아르)이라
는 단어(35, 58절)대신 사용된 이 단어는 다윗의 연소함을 특별히 강조한다(Klein,
20:21, 22).
=====17:57
블레셋 사람의 머리가 그 손에 있는채 - 고대의 전투에서 패배한 적장(敵將)의 머
리는 승리의 기념물로서, 또는 전사(戰士)의 업적으로서 흔히 베어졌고, 그리고 그것
은 존경과 충성에 대한 표시로서 왕에게 바쳐지는 관례가 있었다.
=====17:58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 -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 대해서는 16:1 주석을 참조
하라. 한편, 그러나 이같은 다윗의 대답만으로는 다윗 가문의 사회적 지위가 분명히
밝혀질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이 문구 뒤에 다윗 가문의 혈통이나 사회적 신분 등에
관한 사울과 다윗의 긴 대화가 분명 있었는데, 여기에는 생략되어 있는 것으로 추측해
야만 할 것이다(Keil). 그리고 18:1의 첫 문구는 그러한 추측을 충분히 가능케 한다.
사울과의 불편한 관계를 청산하고자 그의 사위가 되기로 작정했는지 모른다(Smith).
만기가 되지 못하여서 - 폐백금으로 사울이 다윗에게 양피 일백을 요구한 기한이
이르기 전에 다윗이 일어나 그 일을 수행하였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27절의
내용과 연결된다.
사무엘상 제 18장
=====18:1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 이는 본장이 17장의 마지막 부분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강력히 시사해 준다. 아울러 다윗의 가문.혈통.신분 등에 대해 오랫
동안 다윗과 사울간에 많은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짐작케 한다.
요나단...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 사울과 다윗이 대화를 나눌때 요나단도 거기에
함께 있었음이 분명하다. 한편 여기의 '마음'(* . 네페쉬)은 하나님이나 왕을 향
한 순수하고 전인격적인 사랑과 충성의 정신을 가리킨다(Achnoyd). 그리고 이같은 정
신은 요나단이나 다윗에게 공통적으로 있었다(14:6;17:32-36, 45-47). 바로 이같은 정
신적 공통점 때문데 다윗과 요나단은 특별한 우정을 맺을 수 있었고, 또한 그 우정을
변치 않고 오래도록 나눌 수 있었다. 한편 '연락하다'(* , 카솨르)란 말은 '매
다'(tie), '묶다'(bind), '짜다'(knit) 등의 의미로서, 곧 영원히 변하지 않는 마음의
띠로 단단히 동여 매는 것, 또는 결코 끊어지지 않는 정신적 쇠사슬로 굳게 묶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이다(창 38:28;신 6:8;잠 3:3). 그런데 여기서 이 단어는 수동형으로 사
용되어, 이같은 일이 극히 자연스럽게 이뤄졌음을 시사하고 있다.
요나단이...생명같이 사랑하니라 - 여기서 '생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페쉬'
(* )는 '영혼'(soul)으로도 번역될 수 있는 말로서, 곧 이것은 다윗에 대해 요나
단이 품었던 정신적이고도 고상한 우정의 성격을 나타내주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20:17).
=====18:2
그 날에...머무르게 하고 - 이 말은 골리앗과의 전투를 다윗이 승리로 이끈후, 사
울은 자신의 등용 정책에 따라(14:52) 다윗을 자신의 궁중에 영속토록 거주하게끔 하
였다는 말이다. 아울러 이는 다윗이 전처럼 일개 궁중 악사로서가 아니라(16:23), 정
치적 비중을 소유한 한 신하로서 왕 사울과 가까이 있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아비의 집으로...허락지 아니하였고 - 이는 사울이 다윗으로 하여금 고향 아비의
집으로 문안 인사차 방문하는 것조차 금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이는 다윗이 전처럼
(17:15) 아비의 집에서 양떼를 돌보는 것과 같은 집안 일을 하기 위하야 돌아가는 것
은 사울이 허락치 아니했다는 말이다.
=====18:3
요나단은...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 이것은 상호간의 우정.신뢰.사랑을 계속 유
지하자는 엄숙한 약속으로서, 아마도 이러한 신뢰.우정이 자신들의 당대 뿐 아니라 후
손들의 대(代)에 이르기까지 영속적으로 지속되기를 바라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20:14-16;23:18). 결국 다윗과 요나단은 혈연 관계 보다도 더 진한 의형제를 맺은 것
으로 볼 수 있는데, 그들이 이렇게까지 자신들의 우정을 높이 승화 할 수 있었던 근본
적인 동기는 무엇보다도 상호 변치않는 여호와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20:42). 그
리고 결국 이러한 언약은 요나단 편에서나(19:4, 5;20:17-29), 다윗 편에서나(삼하
1:17-27;9:1-7;21:7)죽을 때까지 신실하게 이행되었다.
=====18:4
겉옷을...다윗에게 주었고 - 요나단의 이같은 행위는 언약을 확증하고 그 표징을
남기기 위한 행위였다. 한편 여기서 '겉옷'(* , 메일)은 상류층 인사들이 입었
던 외투(robe)로서, 이는 곧 요나단 자신이 사울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공적으로 능히
과시할 수 있는 외적 표시였다. 따라서 당시 합법적으로 인정받던 사울 왕의 후계자
요나단으로부터 다윗이 그같은 의복을 언약의 징표로 인계받았다는 사실은 대단히 의
미심장한 사건이라 볼 수 있다.
그 군복...칼...활...띠도 그리하였더라 - 이처럼 자신의 의복을 벗어 준다던지,
또는 자신의 무기를 상대방에게 선물로 주는 것 등의 행위는 고대에 있어서 용사들간
에 상호 우정이나 혈맹 관계를 다지고 돈독히 하기 위한 목적으로 흔히 행해졌던 풍습
이었다(Keil, Philippson). 한편, 여기서 다윗이 요나단으로부터 의복과 함께 이같은
무기를 넘겨받은 것은 (1) 당대의 정치적 실력자 사울에게서 무기를 일시 넘겨받은 것
(17:38), (2) 당대의 군사적 영웅 골리앗으로부터 무기를 탈취한 사건(17:54) 등과 함
게 다윗이 미구(未久)에 근동 지역을 장악할 정이.군사적 영웅으로 부상하게 될 것을
능히 암시적으로 보여주는 일들임이 분명하다.
=====18:5
다윗이...가서 - 여기의 '가서'(* , 야차)는 보통 군사적 출동을 뜻한다. 따
라서 이것은 다윗이 국경 너머까지 원정(遠征)갔었음을 가리킨다(*:20;삼하 2:13;왕상
20:39).
지혜롭게 행하매(* , 사칼) - 이것은 '깨닫다', '형통하다', '신중하다' 등의
의미가 복합적으로 담겨져 있는 단어이다(신 32:29;수 1:8;왕하 18:7). 따라서 본 문
맥상 이 단어는, 다윗이 하나님의 지시대로 행함으로써 만사가 형통하는 결과를 얻었
음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군대의 장을 삼았더니 - 문자적으로는 '전쟁의 사람들 위에 세웠다'(set him over
the men of war)란 뜻으로, 곧 '여러 군사들의 지휘관으로 삼았다'라는 의미이다. 따
라서 여기의 '군대의 장'은 아브넬의 계급인 '군장'(軍長)과는 전혀 다르다(17:55).
즉 13절에서야 다윗은 사울에 의해 천부장으로 세워진다는 점에서, 여기의 '군대의
장'은 백부장(白夫長)임이 분명하다. 아무튼 본절은 다윗의 빠른 승진을 시사해 주는
구절이다.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 문자적으로 '모든 백성들의 눈에 선했다'(창 1:12,
31). 이같은 언급은 결국 다윗이 미래의 왕으로서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 차츰 닦여져
가고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더라 - 이것은 백성들의 경우와 더불어 다윗의 명성이
궁궐 안팎에서 점차 높아져가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아울러 이것은 다윗이 정치적 경
쟁심. 질투 등을 초월하여 칭송을 받았다는 점에서, 다윗의 인격.처신이 대단히 훌륭
했음을 암시해 준다.
=====18:6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 여기서 '블레셋 사람;은 정관사와 더
불어 단수로 표기되어 있다는 점에서 '골리앗'(Goliath)을 가리킨다(17:10, 16, 23,
26, 37, 41-43, 48, 51, 57). 따라서 본 전투는 엘라 골짜기의 전투를 가리키는데, 그
전쟁은 골리앗을 죽인 후에도 나머지 블레셋 군대를 쳐부수는데 상당한 기일이 소요된
대전투였던 것 같다. 그러나 이 전투의 특징은 역시 다윗과 골리앗과의 일대일 결투
장면으로 요약될 수 있기 때문에 이처럼 묘사된 것같다. 그러므로 본 구절은 바로 그
러한 긴 엘라 골짜기의 전투가 최종 마무리 되고, 마침내 이스라엘 군대가 사울과 다
윗을 앞세우고 왕성(王城)으로 개선하는 때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여인들이...노래하며 춤추며 - 고대 근동 사회에서 여인들의 이러한 가무(歌舞) 행
위는 절기나 승전(勝戰) 등의 사유로 매우 기쁠 때 축제적인 분위기 가운데서 행해졌
었다(출 15:20;삿 11:34).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 '소고'(* , 토프)는 영어 성경들에서는 보통 '탬버린
'(tambourine)으로 번역되어 있으며, 성경에서는 항상 즐거움 및 기쁨과 관련하여 언
급된다(출 15:20;삼하 6:5;사 5:12). 그리고 '경쇠'(* , 솰로쉬)는 '삼중' 또는
'세개'란 뜻으로서, 보통 '트라이앵글'(triangle) 또는 삼현(三鉉) 악기
(three-stringed instrument)로 이해된다. 다무튼 소고와 경쇠는 춤이 수반되는 야외
행사에 알맞는 축제용 악기들이다(R. Payne Smith).
환영하는데 - 엄밀히 말하여 히브리 원문에는 '환영하는데'라는 의미의 말은 없다.
따라서 틀림없이 여기의 '환영하는데'란 말은 원문에 원래 나와있는 '만나기위하여'
(* , 리크라트)라는 단어와, 그리고 '소고'와 '경쇠' 사이에 나타나 있으나
번역 중 생략된 '기쁨으로'(* , 메시므하)라는 단어가 합성 의역(意譯)된 결
과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본문의 분명한 이해를 위하여 위의 두 단어를 분리시켜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는 '소고'와 '경쇠'처럼 마치 악기의 하나같이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같은 관점에서 혹자는 그 단어를 '기쁜 소리로'라고 주석하기
도 한다(Stoebe).
=====18:7
뛰놀며 창화하여 - 원문상으로는 이 두 단어의 순서가 바뀌어 있다. 한편 여기의
'뛰놀다'(* , 사하크)는 (1) 사람들 앞에서 재주를 부리다(삿 16:25), (2) 악기
연주에 맞추어 춤을 추다(삼하 6:5, 21), (3) 어린이들이 집단으로 장난을 치며 놀다
(슷 8:5) 등의 의미로 성경에서 번역되고 있다 따라서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기쁨에
겨워 음악에 맞춰 천진난만하게 춤추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창화하
다'(* , 아나)란 말은 문자적으로는 단순히 '대답하다'란 의미이다. 그러나 여기
처럼 음악적 용어로 사용될 때에는 서로 주고 받는 형식, 즉 교차적으로 노래하는 교
창(交唱)을 가리킨다(21:11;29:5).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 여기서 '천천'이나 '만만'은 원문
상으로는 다만 '천'(* , 엘레프)과 '만'(* , 레바바)이지만, 우리말의 운
율을 맞추기 위해 이같이 번역되었다. 원문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사울은 그의 천
을, 그리고 다윗은 그의 만을 죽였도다!"(Saul has slain his thousands, and David
his ten thousands). 물론 고대 우가릿 문서나 중근동의 문서들을 통해 볼 때 '천'이
나'만'은 모두 '많음'을 상징하는 보편적 숫자라는 점에서 여기 여인들의 노래가 담고
있는 기본 의미는 '우리의 두 영웅 사울과 다윗은 많고 많은 원수들을 죽이셨도다'란
뜻으로 볼 수 있다(Klein). 그러나 또한편 여인들이 '사울'과 '다윗'을, 그리고 '천
'과 '만'을 분명히 상호 대구(對句)하여 노래했다는 점에서, 이 여인들의 노래 속에는
분명 당시의 인기도 또는 민심(民心)이 반영된 생생한 백성들의 노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이 노래는 민심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로부터 비롯된 것이
며 결국 이러한 백성들의 노래 속에는 하나님께서 사울로 하여금 그의 왕위(王位)를
후임자인 다윗에게 평화적으로 이양하게끔 촉구하는 의미가 들어 있었다. 한편, 이 여
인들의 노래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널리 애송(愛誦)되었기 때문에, 이웃 블
레셋 사람들도 익히 알고 있을 정도였다(21:11;29:5).
=====18:8
사울이 이 말에 불쾌하여 - 본래 사울은 열방과 같은 무사적(武士的) 왕을 요구한
백성들의 세속적 동기에 의해 왕으로 옹립되었다(8:5, 20). 따라서 사울이 왕으로 옹
립되었다(8:5, 20). 따라서 사울이 왕으로서의 권위와 명예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용맹성에 있어 누구보다도 뛰어나야만 했었다. 그런데 골리앗의 출현 이후 그러한
용맹성에 있어 자신보다 다윗이 더 인정받게 되자, 사울은 상대적으로 자신의 가치가
저하되었다는 사실에 그의 가슴은 그만 시기와 질투로 가득차게 되었던 것이다.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밖에 무엇이냐 - 결국에는 "왕의 자리마저 그에게 돌아가겠
구나"(공동 번역)란 뜻이다. 이렇나 사울의 우려와 불안 기저(基底)에는, 아마도 일찍
이 사무엘에 의행 선언되었던 바(13:14;15:28) 자신의 폐위와 후임자의 등장이라는 현
실적 문제인식이 깔려있은 듯하다(R. Payne Smith). 실로 이방의 침입자(골리앗)가 이
스라엘을 위협하는 위기적 상황 가운데서, 왕으로서 사울은 속수 무책인데, 한 목동이
나와서 그 침입자를 제거해 버렸다면, 그것은 곧 왕직(王職)의 이동을 의마하는 징표
가 되는 것이다(O.V. Gerlach).
=====18:9
사울이...주목하였더라 - 여기서 '주묵하다'(* , 아완)란 말은 '눈'(eye)이란
뜻의 '아인'(* )에서 파생된 말로, 곧 '의심에' 찬 눈으로 관찰하다';란 의미이
다(Klein). 즉 이것은 사울이 왕권(王權) 수호 차원에서 다윗을 정치. 군사적으로 경
계하고 배타하였다는 뜻이다.
=====18:10
그 이튿날 - 블레셋과의 승전을 기념하는 공개적이 환영 행사가 벌어진 다음 날을
가리킨다. 그 환영 행사에서 사울은 여인들의 노래(7절)를 통해자신보다 다윗이 더 환
영받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질투와 분노의 불길이 타올랐고(8절), 결국 그 일로
인해 밤새 잠못이루고 설치는 통에 그 마음은 악신(惡神)이 임하기에 좋은 터전이 되
고 말았다.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힘 있게 내리매 - 이 강신(降神) 현상은 차기의 왕으로
예정되어 있던 다윗에 대해 사울이 가지고 있던(9절) 극심한 피해 의식의 결과로 나타
난 현상이었다는 점에서, 사울의 왕위 폐위가 돌이킬 수 없는 결정적 선언임을 보여
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하나님은 그때 이같은 현상을 통해 사울로 하여금
왕권에 대한 미련을 더 이상 갖지 못하게 하시려 한 듯하다. 그리고 여기서 '힘있게
내리다'(* , 찰라흐)란 말은 '앞으로 세게 밀다', '터져나오다', '강력하게 다가
오다'란 의미로서, 곧 돌진해오듯 힘있게 닥쳐오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악신의 적극적인 활동 상태를 시사하는데, 이는 사울에게 최초로 악신이 임했
을 때의 상황보다 더 악화된 상태이다. 결국 악신의 이러한 적극적인 활동은 하나님의
묵인하에서 이루어지는 일로서, 이는 사울의 종말이 가까왔음을 강력히 암시 하는 징
조인 것이다. 한편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에 대해서는 16:14 주석을 참조하라.
집 가운데서 야료하는 고로 - 여기의 '집'(* , 바이트)은 말할 나위없이 사울
자신의 궁전을 가리킨다(삼하16:21;20:3).한편'야료하는 고로'(* ,이트나베)
는 문자적으로는 '예언하다'(prophesy ; KJV, NIV)란 으미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
말이 재귀적 사역형으로 쓰여졌다는 점에서 이교적(異敎的) 성격의 헛소리로 이해함이
타당하다(19:20, 21, 23, 24;왕상 18:29;렘 23:13). 즉 재귀적 사역형의 동사로 표현
된 사울의 이같은 야료(惹鬧) 행위는 황홀경의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탈인격적(脫人格
的) 행위로서,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는 채 마치 미친자처럼 마구 말을 내뱉는 '헛소
리' 또는 '지껄임'(rave, RSV)을 가리킨다.
=====18:11
창을 던졌으나 - 여기의 '던졌으나'(* , 야텔)란 말은 다음과 같은 의미로
해석되어 왔다. 즉 (1) 여기 이 단어를 그 원래 의미인 '던지다'로 보고, '창을 던졌
으니'라고 해야 한다는 견해. (2) 이 단어의 본래 의미를 '뻗다'로 보고, '창을 던졌
으니'라고 해양 한다는 견해 등잉 있다. 그런데 이 견해 중에서 첫째, 다윗이 그 창끝
을 피할 수 있었다는 점. 둘째, 사울이 계속 연거푸 두번 다윗을 향해 창을 사용했다
는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19:10의 경우와는 달리 (2) 견해가 타당성이 있다(Fay,
Keil). 그러나 사울이 다윗을 향해 1차 던진 창을 또 집어 재차 던졌을 가능성도 배제
할 수는 없다. 아무튼 그 때 다윗은 그 용맹과 기지에도 불구하고, 전혀 대항하거나
저항하지 않고 다만 사울의 창을 두번 피했다.
=====18:12
여호와께서...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 이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신이 다윗에게 임했
다는 사실 정도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울의 왕권을 빼앗아 다윗에
게 이미 넘겨주셨다는 사실까지를 의미한다.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 이것은 사울이 다윗을 일개 경쟁 상대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의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하였음을 가리킨다. 이같은 단정은 여기의 '두려워한
지라'(* , 야레)는 말이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신적인 경외를 가리
키는 단어라는 점에서 확실시 될 수 있을 것이다(창 22:12;출 9:20;왕상 18:3). 아무
튼 사울이 다윗을 두려워하게 된 근본 원인은 '하나님이 자신을 떠나 다윗과 함께 하
신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즉 버림받고 거절당한바 된(13:13, 14;15:26) 사울은 하나
님과의 동행으로 만사 형통하는 다윗을 볼 때마다 큰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18:13
떠나게 하고 천부장을 삼으매... 백성앞에 출입하며 - 여기서 '천부장'
(* - , 사르 알레프, '천 명의 우두머리')은 (1) 내정(內政)을 관장하는 중앙
행정 관리(Lange, Smith) (2) 국경을 지키는 국방 관리(Keil, Klein) 등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런데 첫째, 당시 사울은 다윗을 전쟁터로 보내어 그곳에서 죽게 하려는 음모
의 일환으로 그를 천부장에 임명했으며 둘째, 여기서 '출입하며'라는 말은 성경에서
'전투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다하다'란 의미로 흔히 사용되며(Klein;8:20;민 27:17;삼
하 5:24) 섯째, 다음 절(14절)에 '지혜롭게 행하다'라는 단어가 다윗의 군서적 활동
을 다루는 문맥에서 사용됐다는 점<5절> 등으로 미루어 볼 때, 후자의 견해가 훨씬 더
타당성이 있다. 즉 그때 사울은 틀림없이 다윗을 변방의 일선 지휘관으로 보내버림으
로써, 잦은 전투로 인해 거의 목숨이 위태하게 되기를 바랐으며, 아울러 다윗의 정치
적 역량이 중앙의 상류 계층 사람들의 눈에 뜨이지 않게 하려고 했을 것이다.
=====18:14,15
지혜홉게 행하니라 - 5절 주석 참조.
사울이...두려워하였으나 - 여기의 '두려워하였으나'(* , 구르)는 12절의 '두
려워 한지라'보다 더 강한 의미의 공포심을 갖는 것을 가리킨다(Driver). 이는 다윗의
형통과 사울의 두려움이 상호 반비례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하나님
께서 자신을 버리고 다윗과 함께 한다는 인식에서부터 비롯된 사울의 두려움은 악신의
활동으로 말미암아 점차 다윗을 향한 광기적(狂氣的) 증오로 발전된다.
=====18:16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을 사랑하였으니 - 이것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를 초월하여 거국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한편, 이전의 몇몇 경
우처럼(11:8;15:4) 여기서도 '이스라엘'과 '유다'가 구별되어 기록된 것은, 본서가반
드시 왕국 분열 이후 시대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표현이 아니다. 다만 사울
과 다윗의 당대에도 유다 지파와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간에 주도권에 관한 알력이 어
느 정도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해 주는 표현으로 이해 가능하다.
그가...출입함을 인함이었더라 - '출입하다'(* , 요체 와바)란 말은
직역하면 '나가고 들어오다'(go out and come in, KJV)란 뜻인데, 이는 곧 자신이 맡
은 고유한 직무의 수행을 위하여 공적으로 활발히 활동하는상태를 가리키는 성경의 관
용어이다(12:2;29:6;민 27:17;신 31:2;수 14:11;삼하 5:2;왕상 3:7;대하 1:10;렘
37:4;행 1:21). 이런 견지에서 여기의 이 말은 천부장으로서 다윗의 성공적인 군사 역
할 수행을 의미한다(5, 14, 15절).
=====18:17
맏딸 메랍을...주리니 - 일찍이 사울은 골리앗을 이기는 자에게 딸을 주리라고 약
속했었다(17:25). 그런데 그 약속은 즉시 지켜지지 않고 상당히 지연된 것 같은데, 그
이유는 (1) 사울의 변덕스런 성격과 (2) 다윗의 연소한 나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
나 사울은 다윗이 백성들의 신뢰와 사랑을 점차 크게 받게되고, 그의 나이도 점차 성
숙해지자 이제 그 약속을 더이상 지연시킬 명분이 없었다. 때마침 사울은 자신의 약속
도 지킬겸 다윗을 제거시킬 음흉한 계획을 가지고 자신의 약속 이행을 수행코자 한 것
이다.
너는 나를 위하여 - 이 말은 딸과 결혼하려는 자는 그 딸의 아버지에게 그에 합당
한 예물을 제공해야 했던 고대 중근동의 결혼 풍습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창
29:15-20, 25-27). 따라서 사울 왕은 그러한 결혼 예물 대신 전쟁터에서 이스라엘의
적들과 용맹히 싸워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사울 왕의 이러한 요구는 부당한 것이
었다. 왜냐하면 사울은 이미 결혼 예물대신 골리앗을 이기는 것 자체로 자신의 딸을
주겠다고 공언한 바 있기 때문이다(17:25). 그러므로 사울은 아무런 또다른 조건이나
요구없이 자신의 약속을 이행해야만 할 의무가 있었고, 반면 다윗은 당연히 사울 왕의
사위가 되는 명예를 누릴 권리가 있었다(F.R. Fay).
용맹을 내어...싸우라 - 여기의 '용맹을 내어'는 문자적으로 '용사가 되어'란 뜻이
다. 사실 다윗에 대한 사울의 이같은 주문은 그로 말미암아 큰 전과(戰果)를 올리려는
것이라기 보다는 다윗으로 하여금 죽음을 불사하고 싸우도록 함으로써 전장(戰場)에서
죽게끔 하려는 음모에 따른것이었다(13절;삼하 11:14, 23-25).
여호와의 싸움 -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적 심판을 위하여, 하나님의 전적 도우심을
의뢰 하면서, 하나님의 방법에 따라, 하나님의 원수들과 싸우는 거룩한 전쟁을 가리킨
다(25:28;삼하 5:19-23). 그러나 사울이 다윗에게 주문한 여기서의 전쟁은 다윗을 죽
음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려는 사악하고 간교한 음모에 빙자된 전쟁이라는 점에서 결코
'여호와의 전쟁'이 아니었다.
생각하기를 - '마음에 이르기를', '스스로 이르기를' 등과 같은 표현으로, 곧 독백
(獨白)이나 심중(心中) 의지를 나타내는 성경의 관용 어법이다.
블레셋 사람의 손으로...대게 하리라 - 지난번 사울은 악신에 사로잡혀 자신의 손
으로 직접 다윗을 죽이려 시도하기도 했지만(10, 11절), 이제 이성(理性)을 되찾자 다
윗에 대한 시기와 질투심이 간교한 음모로 발전되어 여호와의 싸움을 빙자, 블레셋 사
람의 손을 빌려 다윗을 살해코자 한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이 떠나버린 사울의
마음 속에는 온갖 죄된 생각만이 넘치고 있었다.
=====18:18
내가 누구며...내 아비의 집이 무엇이관대 - 다윗의 순수하고 겸손한 이 고백은 사
울왕의 간교하고 음흉한 제안과는 날카롭게 대조된다. 즉 사울이 자기 딸을 이용하여
교활한 방법으로 다윗을 죽이고자 획책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다윗은 자신과 아
비의 집 신분이 사회.정치적으로 비천하고 무명함을 겸손하고도 정직하게 고백하고 있
다. 다윗의 이러한 고백은 결국 자신이 골리앗과 싸운 이유가 형들이 오해했듯(17:28)
사울 왕이 내건 명예와 부의 보상에 조금도 유혹된 것이 아님을 입증하는 것이다. 실
로 다윗은 이전 자신의 목공의 신분을 사랑했을 뿐, 부마(駙馬)의 신분을 연연하지 않
았던 것이다.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자를 들어 왕의 자리에까지 올리우신다.
=====18:19
딸 메랍을 다윗에게 줄 시기에 - 이것은 기한적인 의미보다는 여건의 성숙을 뜻하
는 표현이다. 즉 당시 다윗은 사울의 표면적 주문대로(17절) 블레셋 족속과 용감히 싸
워 많은 전공(戰功)을 세웠을 것이다.
므홀랏 사람 아드리엘에게...준 바 되었더라 - 이같은 사울의 처사는 메랍이 다윗
을 사랑하지 아니했기 때문(Keil;20절)이라기 보다는 다윗에 대한 사울의 증오심과 그
자신의 변덕스러운 성격에 기인한 것임이 분명하다(Lange). 어쩌면 사울이 므홀랏 사
람 아드리엘로부터 많은 패물을 제공받았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이 결혼의 불합리성은
결국 이 결혼이 불행한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로써 확증되고 말았다(삼하 21:8). 한편
'므홀랏'(Meholath)은 갈릴리 호수 남방 약 37km 지점의 요단 서쪽 강뚝 인근에 위치
한 지역이다(Stoebe). 그리고 '아드리엘'(Adriel)은 아람어로는 '아스리엘'(대상
5:24;27:19;렘 36:26)이며, 그 의미는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시다'란 뜻이다.
=====18:20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매 - 이때는 다윗과 메랍의 결혼이 깨어진 후 어느 정도의 세
월이 지난 다음인 듯하다. 메랍과 다윗의 결혼이 약속됐을 때만해도 사울의 작은 딸
'미갈'은 아직 결혼 적령기에 도달치 못했을 것이다.
사울이 그 일을 좋게 여겨 - 이것은 사울이 다윗을 궁지에 몰아 넣을 수 있는 또
한번의 기회를 포착했음으로 인하여 기뻐했다는 뜻이다(17, 21절)
=====18:21
딸을...주어서...올무가 되게 하고 - 여기서 '올무'(* , 모케쉬)는 '함정에
빠뜨리다', '덫을 놓다'란 뜻의 '야코쉬'(* )에서 파생한 단어로, 곧 짐승을 잡
는 '올가미'(noose)또는 코를 꿰는 '갈고리'(hook)란 뜻이다. 그러므로 이 말 속에는
자신의 딸을 이용하면서 까지 다윗을 올가미로 덧씌우려는 사울의 간악성이 잘 드러나
고 있다.
=====18:22
본절은 작은 딸 미갈을 아내로 주겠다는 사울 왕의 제안(21절)에 대하여 다윗이 크
게 신뢰하지 않았으며, 사울 자신도 다윗이 그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
했음을 보여 준다. 바로 이같은 사정으로 인하여 사울은, 다윗에 대한 자신의 제안이
맏딸 메랍의 경우(19절)와는 달리 반드시 이해될 것임을 다윗에게 확신시킬 필요성을
느꼈고, 이에 따라 자신의 설득(21절)과 병행하여 신하들로 하여금 다윗을 설득케 했
던 것이다. 한편, 여기서 다윗이 사울의 제안을 신뢰하지 않고 탐탁치 않게 여긴 까닭
은 분명 (1) 맏딸 메랍의 경우처럼 미갈과의 결혼도 사울의 변덕스런 마음 때문에 성
취될 가능성이 적다고 보았으며(19절) (2) 왕의 딸을 데려올 때 왕엥게 지불해야 할
막대한 '폐백금'을 지불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23, 25절).
=====18:23
왕의 사위 되는 것을...경한 일로 보느냐 - 이것은 왕의 사위가 되기 위해서는 많
은 경제적 부담이 뒤따름을 가리키는 말이다(25절). 그러므로 결국 다윗의 이 말은,
메랍과의 결혼이 성사되지 못한 주요한 이유를 사울 왕의 변덕, 사회적 신분의 차이
등과 더불어 무엇보다도 왕의 사위가 되기에 합당한 막대한 폐백금 지불 능력의 부재
(不在)로 인식했음을 암시해 준다.
=====18:25
폐백...양피 일백 - 여기서 '폐백'(* , 모하르)은 '그 아비에게 돈을 주고 아
내를 사다'란 의미를 갖는 동사(마하르)에서 파생된 말이다. 그런데 고대 중근동에서
의 '폐백'은 대개 장인의 요구액 만큼을 사위될 자가 현금.재물로 지불하는 것이 통례
였다(De Vaux;창 34:12;출 22:16, 17).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장인될 자의 요구에
따라 그외 다른 것으로도 대치할 수 있었다. 다라서 '양피 일백'은 금전.재물이 아닌
노력 봉사로써 '폐백'을 대신할 수도 있었던 고대의 풍습과 잘 부합된다(창 29:15-30;
수 15:16;삿 1:12). 그런데 여기 '양피'(陽皮, foreskin)는 남자 생식기의 포피(包皮)
를 말하는 것으로서(창 17:11-14), 이는 반드시 사람을 죽여야만 얻을 수 있었다(27
절).
다윗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게 하리라 - 사울의 요구대로 다윗이 블레셋 사람의
양피를 벧 경우, 그 행위는 곧 블레셋 족속을 할롑받지 못한 족속이라고 모욕하는 의
미가 강하다. 따라서 다윗이 그 일을 행하게 되면 그는 블레셋 족속의 민족적 분노를
사게 될 것임며, 끝내는 군사적 보복을 당하게 될 것이었다. 더욱이 양피를 베는 행위
는 대외적인 명분이 서는 공식 전쟁이 아니라 사적(私的)인 목적을 위해서 수행되는
전투이므로 그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는 생명을 건 모험을 감행해야만 했다. 결국 사울
의 이 같은 제안을 자신의 정적(政敵) 다윗을 블레셋 사람의 손을 빌려 죽이기 위한
주도 면밀한 계책이었다.
=====18:26
왕의 사위 되는 것을 좋게 여기므로 - 다윗이 사울의 음흉한 계책을 전혀 의심치
않은 채, 단지 사울의 제안을 성실히 수행하기로 결정했다는 뜻이다. 아마도 다윗은
사울과의 불편한 관계를 청산하고자 그의 사위가 되기로 작정했는지 모른다(Smith).
만기가 되지 못하여서 - 폐백금으로 사울이 다윗에게 양피 일백을 요구한 기한이
이르기 전에 다윗이 일어나 그 일을 수행하였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27절의
내용과 연결된다.
=====18:27
그 종자(* , 아나솨우) - 이 단어는 여기서 복수로 표기되어 있다는 점에
서, 당시 천부장의 지위에 올라있던(13절) 다윗의 휘하 병력들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Klein, Lange).
딸 미갈을 다윗에게...주었더라 - 이같은 사울의 행위는, 후에 그가 미갈을 다른
사람에게 또 다시 주었다는 사실에서 볼 때(25:44), 마지 못해 취해졌던 것임이 분명
하다. 즉 블레셋 사람의 손에 다윗이 죽기를 바란 자신의 계책과는 달리, 오히려 다윗
이 자신의 요구에 갑절이나 부응하는 용맹을 떨침으로써, 공개적인 왕의 약속상 어쩔
수 없이 딸 미갈을 다윗에게 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18:28,29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 - 이것은 다윗이 차기의 왕으로서 하나님에 의해 지
명되었음을 확실히 보여주는 객관적 표시였다(12절).
딸 미갈도...사랑하므로 더욱 더욱 두려워하여 - 칠십인역(LXX)은 '딸 미갈'을 '온
이스라엘'로 읽는다. 그러나 이것은 확실한 근거없이 히브리 원문을 변화시킨 것에 불
과하다(Bunsen). 한편 여기서 미갈이 다윗을 사랑한 일 때문에 사울이 다윗을 더욱 두
려워한 까닭은 당므과 같다. 즉 (1) 미갈은 다윗을 사랑하는 까닭에 사울의 계략으로
부터 그를 보호할 것이 분명하며(Smith) (2) 다윗이 자신의 딸로부터도 사랑을 받을만
큼 흡인력있는 인물임이 명명백백히 밝혀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의 '더욱 더
욱 두려워하여'란 말은 12절의 '두려워한지라' 또는 15절의 '두려워하였으니'보다 한
층 심각한 공포심을 가리킨다.
평생에...대적이 되나라 - 이같은 언급은 사울이 죽을 때까지 계속 다윗을 죽이려
했었던 이후의 역사적 사실로써 능히 증명된다.
=====18:30
블레셋...방백들이 나오면 - 여기서 '블레셋...방백'은 이들이 지위했던 블레셋 군
사들을 포함한다. 한편 여기의 '방백'(* , 사르)은 '귀족'이란 의미가 있기도 하나
(출 2:14;사 23:8), 여기서는 천부장 등의 군대 지휘관으로 봄이 타당하다(창 21:22;
욥 39:25). 그리고 '나오면'(* , 야차)은 군사적 행동의 개시를 표현하는 단어이
다(5절;삼하 2:13;왕상 20:39).
더 지혜롭게 행하매 - 이것은 형통하는 결과를 낳을 수 밖에 없게끔 바르게 행동하
는 것을 가리킨다. 이처럼 다윗이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지혜롭게 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사 그를 도와주셨기 때문이다. 5절 주석 참조.
그 이름이 심히 귀중히 되니라 - '이름'은 고대인들에게 한 사람의 인격 전체로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귀중히 되니라'(* , 야카르)란 말은 '영광을 받다', '존
경을 받다'란 뜻이다. 결국 본절은 사울의 책략으로 다윗을 위험한 전장에 내보낼 때
마다 오히려 다윗이 그 전쟁을 통해 혁혁한 무훈을 세움으로써, 용장(勇將)과 지장(智
將)으로서 다윗의 명성이 이스라엘 뿐 아니라 주변의 적대국들에게조차 알려지고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는 어떠한 역경을 만난
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전화위복의 역사가 일어난다.
한편, 그러나 이처럼 다윗이 전공(戰功)을 통해 백성들로부터 사랑과 신앙을 한몸에
받으면 받을수록 사울은 더욱 더 두려움, 질투, 증오심에 사로잡혀 자윗을 죽이는데
혈안이 되었다. 이로써 다윗에 대한 사울의 계속되는 살해 음모와 다윗의 정처없는 도
피 생활의 역사가 이후 전개된다.
사무엘상 제 19장
=====19:1
다윗을 죽이라 말하였더니 - 원문상 차라리 '다윗을 죽이는 것에 관해서 말하였더
니'로 번역해야 한다(Klein, Smith, Lange, Keil). 결국 이것은 (1) 다윗에 대하여 살
의(殺意)를 품는 단계(18:8, 9), (2) 살해하기 위하여 음모를 꾸미는 단계(18:17, 25)
를 지난 마지막 단계로서, 곧 이제는 공개적인 궁중 회의를 통해 다윗 살해 계획을 구
체적으로 논의하기에 이르렀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사울이 다윗을 끝까지 죽이려 했던
까닭은 자신의 왕권 수호 뿐 아니라, 자신의 후손에게 그 왕권을 세습시키려 한 세속
적 아집과 욕심 때문이었다.
요나단이 다윗을 심히 기뻐하므로 - 여기서 '기뻐하다'(* , 하페츠)란 말의
기본 개념은 '마음이 기울다'란 의미로서, 요나단의 마음은 이미 다윗에게로 향했음을
의미한다. 실로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했다(18:1). 특히 다윗의 영광은
자신의 영광을 가리우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요나단은 그러한 이기적인 욕심을 떠나
변함없이 다윗을 사항했다. 이러한 요나단의 자기 부인(自己否認)과 자기 희생의 정신
은 후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고 말한 세례 요한의
예수께 대한 사랑과 희생의 정신과 유사하다.
=====19:2
아침에...숨어 있으라 - 사울이 다윗을 죽이기로 꾀한 이상 그 모든 일은 신속히
진행될 것이 확실하였으므로, 요나단은 급히 다윗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되도록 아침
일찍부터 몸을 피신하여 사태의 추이를 예의 주시하라고 요청했다.
은밀한 곳 - 문자적으로는 '그 은밀한 곳'. 결국 여기의 '그'라는 정관사는 다윗도
이 장소를 잘 알고 있었음을 암시해 준다.
=====19:3
너 있는 들 - 이곳은 2절의 '은밀한 곳'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아마 이곳은 사울이
아침마다 습관적으로 산책을 즐기던 궁정(宮廷) 근처의 들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
나단이 다윗을 이곳에 숨어있게 한 까닭은 다윗으로 하여금 사울 부자(父子)간의 대화
를 엿듣도록 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단지 요나단은 다윗에 대한 부친의 살해 음모에
관해 어떤 정보를 입수했을 경우, 신속히 그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다윗이 거기에 효
과적으로 대응토록 하려는 목적에 다른 것이었다(Keil).
무엇을 보거든 - 차라리 '무엇을 알거든'으로 번역함이 좋다(7절). 즉 이때 요나단
은 자신의 간곡한 중재(仲裁)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울 왕이 다윗을 반드시 죽일 작정
인지, 또는 그렇게 할 경우 사울이 언제 어떻게 다윗을 죽이려고 시도할 것인지 등에
대하여 알아내려고 했을 것이다.
=====19:4,5
여기서 요나단은 다윗을 살해하려는 음모에 관한 정보를 알아내기에 앞서 다윗을
죽이는 일의 부당성을 부친 사울 왕에게 간곡히 설파한다. 다윗을 위한 요나단의 변호
는 다음 두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1) 지금까지 다윗이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이스라엘과 사울 왕을 위해 충성.헌신한 사실 (2) 그러므로 만일 다윗을 죽일 경우 그
것은 무죄한 피를 흘리는 경우가 되고, 또한 그것은 여호와께 큰 범죄가 된다는 사실
이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진실을 밝히는 요나단의 변호는 큰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
다.
포장하여(* , 토브) - 문자적으로는 '선하게(좋게, 기쁘게) 말하다'(speak
well of~ ; NIV, RSV)란 뜻이다.
왕께 행한 일은...선함이니이다 - 여기의 '왕께 행한 일'은 원문상 복수라는 점에
서, 다윗이 왕을 위해 지금까지 충성되이 실행했던 모든 선한 일들을 가리킨다.
그가...블레셋 사람을 죽였고...왕이...기뻐하셨거늘 - 여기서 '블레셋 사람'은 단
수로 사용되어 '그 블레셋 사람'이란 뜻인데 곧 '골리앗'을 가리킨다(17:10, 42). 그
러므로 여기서 요나단은 이스라엘이 그 블레셋 거인의 위협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다
윗이 생명을 걸고 이스라엘과 왕의 명예 회복을 위해 단신으로 싸웠고, 결국 승리했을
때 사울 왕이 사심없이 기뻐했던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때만해도 사
울 왕은 다윗에 대해 어떤 시기나 질투심 없이 그를 사랑했었다. 요나단은 바로 이 점
을 지적함으로써 사울 왕의 양심의 심금을 울리고자 한 것이다. 한편 사울 왕이 다윗
을 미워하기 시작한 때는 여인들의 노래(18:7) 사건 이후부터였다.
무고히...무죄한 피를 흘려 - '무조지한 피'를 흘리는 일은 모세 율법에서 철저하
게 금지되고 있다(신 19:10;21:8;27:25). 그러나 후일 바로 이같은 범죄를 저질렀던
므낫세 왕은 하나님의 특별한 진노의 대상이 되었었다(왕하 21:16;24:4).
=====19:6
본절은 다윗을 위한 요나단의 간곡한 설득이 실효를 거뒀음을 말하고 있다. 즉 살
아 계신 하나님의 권위를 힘입어 정직하게 진실을 호소한 요나단의 간곡한 변호는 사
울 왕의 마음을 감동시켰던 것이다.
맹세하되...죽임을 당치 아니하리라 - 혹자의 주장처러 여기 사울 왕의 이 맹세는
요나단을 일시 속이기 위한 거짓 맹세로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적어도 악신의 영향
을 받기 전까지는(9절) 사울 왕이 다윗을 곁에 두고도 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
므로 우리는 요나단의 간곡한 변호에 사울 왕이 감동을 받아, 일시동안 사울과 다윗간
에 화해가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울 왕의 이 맹세는 오래지 않아 또
변하고 말았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이 떠나버린 사울 왕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헛맹세
를 하는 등 변덕과 광기의 불행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다.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 직역하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시는 것처럼'(As the Lord
lives, RSV)이란 뜻으로(Klein), 곧 '여호와의 삶을 두고서(결고서)' 맹세한다는 뜻이
다.
=====19:7
사울 앞에 여전히 있으니라 - 이 말은 다윗이 예전처럼 천부장으로서, 그리고 한편
으로는 사울을 위해 수금을 타는 궁중 악사로서 계속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음을 가리
킨다.
=====19:8
전쟁이 다시 있으므로 다윗이...크게 도륙하매 - 엘라 골짜기 전투(17:1-54) 이후
에도 이스라엘과 블레셋 간에는 국지전(局地戰)이 빈번히 발생했다(18:30). 다윗은 그
때마다 숙적 블레셋을 당당히 격퇴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천부장으로서의(18:3) 본분을
충실히, 그리고 성공적으로 감당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다윗의 성공과 형통은 또다시
사울 왕의 시기와 질투심을 불러 일으키게 되었다. 따라서 사울 왕은 자신의 맹세(6
절)를 스스로 깨뜨리고 다시금 다윗을 죽이기 위해 광분하였다.
=====19:9
여인들의 창화(唱和) 사건(18:7) 이후 시도된 사울의 다윗 살해 기도는 18:11,17,
21;19:1 등에 이어 또다시 재현되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첫번의 경우(18:10, 11)와
비슷한 상황 가운데서 발생하였는데, 즉 악신(惡神)의 영향으로 사울 자신이 직접 창
으로 다윗을 살해하고자 시도한 경우이다. 이처럼 사울이 또다시 악신의 영향을 받은
주된 이유는 다윗의 형통과 성공이었다(8절). 즉 자신은 하나님께 버림당했다는 심한
콤플렉스, 다윗이 자신의 왕좌를 노리고 있다는 강박 관념, 백성들의 마음이 온통 다
윗에게로 기울어지고 있다는 피해의식 등등이 시기와 질투심으로 불타올라 걷잡을 수
없는 광기적 형태로 분출되었던 것이다. 또한 이러한 자에 대해 하나님께서 악신이 활
동하도록 내버려 두었기 때문에, 사울은 악신의 노예가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 - 16:14 주석 참조.
=====19:10
사울이 단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으려 하였으나 - 여기 사울의 이같은 행동은 18:11
에서와는 달리 실제 창을 던지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즉 18:11에서
의 사울의 행동은 창을 쥐고 두어번 휘두른 경우이지만, 여기서는 다윗을 겨냥하고 창
을 날린 것이다.
그는...피하고 - 무예가 뛰어난 사울의 투창이 이처럼 빗나가게 된 것은 일차적으
로는 사울이 악신의 영향으로 정신이 혼미해 있었기 때문이며, 궁극적으로는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창은 벽에 박힌지라 - 이것은 사울이 실제 다윗을 향해 창을 던졌다는 사실을 명백
히 보여준다.
=====19:11
아침에...죽이게 하려 한지라 - 사울이 다윗을 그 밤에 죽이지 아니하고 다음 날
아침에 죽이려 한 까닭은, 아마도 섣부른 야간 행동은 오히려 다윗의 야음(夜陰) 도주
를 도와 줄 우려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생명을 구하지 아니하면...죽임을 당하리라 - 다윗에 대하여 사울이 적개심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던 미갈은 (1) 사울의 사자들이 집 주위에 매복하고 있
는 것을 목격했든지 (2) 오빠 요나단으로부터 어떤 정보를 입수했든지 (3) 궁전에 들
어갔다가 사울과 다윗 사이에 일어났던 사건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었거나 혹은 어떤
정보를 입수했다든지 함으로써 사울의 음모를 알아챘을 것이다(R. Payne Smith). 특히
두번째의 추측은 이전의 경우(19:2, 3)와 비교해 볼 때 상당한 타당성을 지닌 추측이
다.
=====19:12
미갈이 다윗을 창에서 달아 내리우매 - 사울의 사자들이 문을 지키고 있어기 때문
에, 미갈은 창문으로 다윗을 도피시키고 있다. 이처럼 생명을 노리는 자들의 손을 피
해 창문으로 도피한 유사한 경우가 여호수아 당시의 여리고 정탐군(수 2:15), 초대 교
회 당시의 사도 바울(행 9:25;고후 11:33) 등의 경우에서도 나타난다. 한편, 이때 다
윗이 자신의 절박한 상황을 토로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원을 간구한 내용이 시편 59
편이다. 즉 시 59편에서 다윗을 '환난날에 피난처'(시 59:16)되신 하나님께 자신의 애
매한 고난을 가탄원하며(시 59:3, 4) 구원을 호소하였던 것이다(시 59:1, 2, 4-13).
다윗의 도피 생활-1 - 다윗은 처음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사울의 음모를 듣고, 창
문을 통해 도망쳐, '라마'(Ramah)의 사무엘에게로 피신했다. 이어 다시 '기브아'
(Gibeah)로 돌아와 사랑하는 친구 요나단과 뜨거운 작별 인사를 나눈 후 '놉'(Nob)으
로 도피했다. 놉에서 다윗은 그곳 제사장으로부터 음식과 무기를 제공받고 계속 도망
쳐 다니다가 결국 블레셋 땅의 '가드'(Gath)로 도망쳤다. 그런데 다윗이 블레셋 족속
드로부터 의심을 당하자, 그는 급히 그곳을 빠져나와 '아둘람'(Adullam) 근처의 동굴
로 피신했다. 그리고 다윗은 그곳에서 많은 동지들을 규합했다(19:12-22:1).
=====19:13
우상을...침상에 뉘고 - 여기서 '우상'은 곧 '드라빔'(* , 테라핌)을 가
리키는데, 단어 형태는 복수지만 단수의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드라빔'(teraphim)은
'편안히 살다'란 뜻의 '타라프'(* )에서 파생된 말로, 구복(求福)과 점술(占術),
그리고 신탁(神託) 행위와 관련된(겔 21:21;슥 10:2) 가정 수호신(守護神)이다(삿
18:17, 24). 즉 아람과 갈대 족속들로부터 도입된 이 우상은 고대 중근동 지역에서 가
정에 행운을 가져다 주는 가정의 수호신으로 널리 인정되었다. 그리고 이 우상은 인간
의 형상을 닮은 반신상(半身像)으로서 보통 나무나 은 등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크기
는 약대 인장 밑에 숨길 정도의 작은 크기로부터(창 31:34) 사람의 키와 맞먹을 정도
의 큰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최근 발견된 누지(Nuzi) 서판에 의하면, 어떤 가정
내에서 이것을 소유한 자는 그 가정 전체에 대한 지배권 및 그 가정의 재산을 가장 많
이 차지할 수 있는 권리를 소유한 것으로 인정되었다(창 31:19, 30-35). 바로 이같은
점에서, 라헬이 그랬듯이(창 31:19) 미갈도 이 우상을 자신의 아버지 사울에게서 훔쳤
을 가능성이 있다(Klein). 한편 이것은 한 가정을 단위로 해서 모셔졌던 우상이라는
점에서 그 크기는 전반적으로 다른 우상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작았다. 그러나 여기
서 '침상에 뉘고'라는 말은 미갈이 소유하고 있던 이 '드라빔'이 사울의 신하들로 하
여금 다윗이 누워있는 줄로 믿게할만큼 큰 규모의 드라빔이었음을 시사해 준다. 아무
튼 이 드라빔은 많은 종교 지도자 및 선지자들의 우상 척결 정책에도 불구하고 족장
시대로부터 포로 시대전까지 이스라엘 사회내에 면면히 존재하고 있었다(창 31:19;삿
17:5;18:14;삼상 19:13;겔 21:21;호 3:4;슥 10:2).
염소털로 엮은 것을 그 머리에 씌우고 - 여기서 '염소털로 엮은 것'은 보통 (1) 두
터운 누비 이불(Stoebe, 왕하 8:15), (2) 베개(Hertzberg), (3) 가발(Mccarter)등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엮은 것'(* , 케비르)이라는 단어의 용례상 (1)의 견해
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따라서 여기의 '그 머리에 씌우고'는 '그 머리 부분에 놓고;
로 번역함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여기서 '씌우고'로 번역된 '사마'(* )라는 단어
는 원래 '위치 시키다', '놓다'란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70인역(LXX)은 이
를 '염소의 간'(* , 헤파르 톤 아이곤)으로 번역했는데, 그
이유는 마치 사람이 숨쉬듯이 위장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미갈의 의도
는 멀리서 보았을 때 마치 사람의 머리털 처럼 보이려고 했기 때문에, 70인역의 번역
은 설득력이 없다.
의복으로...덮었더니 - 여기서 '의복'은 헐겁게 입는 통상복을 가리킨다(Smith).
이 통상복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흔히 이불 대용으로 사용되었다.
=====19:14
그가 병들었느니라 - 우상으로 마치 사람의 모습처럼 만든 미갈은 아침이 되어 사
울의 군사들이 다윗을 체포하기 위해 들이닥치자 이처럼 둘러댐으로써 다윗으로 하여
금 멀리 도망갈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벌게해 준다.
=====19:15
사울이...다윗을 보라 하며 - 이것은 사울이 보낸 최초의 군사들이 미갈의 계략에
완전히 넘어간 채, 사울에게 돌아가서 다윗이 병들어 누웠다고 보고했었음을 암시해
준다. 한편 여기의 '보라'는 다윗이 병들어 있는지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라는 명령이
다.
침상 채...가져 오라...죽이리라 - 어떠한 경우일지라도 반드시 다윗을 죽이고야
말겠다는 뜻으로, 폭군 사울의 잔인성이 드러나고 있는 구절이다.
=====19:16,17
미갈은 다윗을 보호하기 위해 '그가 병들었느니라'(14절)고 첫번째의 거짓말을 한
이후, 사울의 확인 명령으로(15절) 그 사실이 거짓으로 발각되자(16절) 이제 여기서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에게는 다만 방조죄(放調罪) 밖에 없다고 두
번째로 거짓말을 한다.
어찌하여...너를 죽이게 하겠느냐 하더이다 - 이 말은 곧 다윗의 협박에 의해 마지
못해 그의 도피를 방조하고, 또한 거짓말(14절)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미갈의 자기
변호이다.
=====19:18
다윗이...라마로 가서 - 여기서 '라마'(Ramah)는 다윗의 출발지인 '기브아'(10:26)
에서 북쪽으로 약 3.2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선지자 사무엘의 고향이자 그의 활동 중
심지였다(1:1;7:17).
사무엘에게로 나아가서 - 다윗이 이처럼 사무엘에게로 도망간 이유는 (1) 우선 사
울의 살해 음모로부터 자신의 신변 안전을 도모하며 (2) 앞으로 자신이 취해야 될 처
신에 대해 선지자의 자문을 얻기 위함이었을 것이다(Keil). 그때 다윗은 사울이 적어
도 사무엘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존중하여, 거기가지 자신을 죽이러 사람을 보내지 않
을 것으로 생각한 듯하다. 한편 이처럼 다윗이 자신의 도피처로 사무엘의 고향 라마를
쉽사리 택한 것은 이전부터 사무엘과 다윗 사이에 개인적인 교제가 이루어져 왔음을
시사한다(F. R. Fay).
사울이...행한 일을 다 고하였고 - 아마도 이것은 (1) 이스라엘 왕인 사울이 정신
적으로 지극히 비정상적인 상태에 있으며 (2) 그 결과 다윗 자신은 생명의 위협을 받
는 긴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등의 내용이었을 것이다. 이때 사무엘은 사울에 관한
다윗의 보고를 듣고 크게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사울이 하나님
께 버림받은 바 된 상태인 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13:13, 14;15:26, 35).
다윗과 사무엘이 나욧으로 가서 - 사무엘보다 다윗을 앞서 언급하는 본 어구는 다
윗이 이미 역사의 주역이 되었음을 시사해 준다. 한편 여기서'나욧'(* )은 '거
처', '거주지', '초원지대' 등의 의미를 가지는 아카디아어 '나움'에서 온 단어로서,
마치 오늘날의 기숙사와 같은 숙소 시설을 가리킨다(Smith, Keil, Fay). 이같은 추정
은 이 단어가 항상 특정 지명과 함께 언급된다는 사실로써 보다 분명해 진다. 즉 '나
욧'은 사무엘이 자신의 주변에 모여드는 제자들을 수용키 위해 세운 기숙 시설을 가리
키는 특수한 명칭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나욧'은 단순한 기숙 시설 이상의
'교육의 집' 또는 '선지 학교'란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그리고
'나욧'이 '초원 지대'를 뜻하는 어근에서 파생된 단어라는 사실은 이 교육을 위한 기
숙사가 목자들이 거주하는 초원 지대에 위치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Klein,
삼하 7:9;렘 33:12). 아울러 '나욧'이 복수로 표기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것이 어려
동(棟)으로 구성된 교육용 숙소 시설이었음을 암시해 준다(Keil).
=====19:19
혹이...고하여 가로되 - 다윗이 처 미갈의 도움으로 기부아 집을 도망쳐 나온 아
후, 아마도 사울은 군사들에게 그의 도피처를 탐색 하라고 명령했을 것이며, 어쩌면
많은 현상금까지 내걸었는 지도 모른다. 아무튼 다윗의 도피처는 발견되었고, 그 사실
은 즉각 사울에게 보고되었다.
=====19:20
선지자 무리의 예언하는 것 - 여기서 '선지자 무리'는 당대의 대선지자였던 사무엘
의 영적 지도를 받기 위하여 그의 주변에 모여들어 훈련을 받던 젊은 생도들이었다
(10:5). 그리고 '예언하는 것'(* , 니브임)은 '예언하다'(* , 나바)의
단순 수동형이라는 점에서, 긍정적 의미의 신령한 상태 즉 성령에 감화 감동되어 (1)
여호와의 영광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 것(10:5) (2) 또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입에
담아주신 신령한 계시를 말하는 것을 가리킨다(Wilson). 따라서 이들 선지자 무리는
이때 자의식을 상실한 채 무아지경 곧 황홀경(ecstasy)의 상태에 들어간 것이 아니었
다. 이때 이들은 분명한 자의식(自意識)을 소유한 채 경건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신령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R. P Smith).
사무엘이 그들의 수령으로 선 것 - 이것은 사무엘이 그때 그 선지자 무리의 지도자
적 위치에 있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왕상 4;7;왕하 2:5). 그리고 '나욧'에서 그 선지
자들의 무리를 직접 지도.감독하고있었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와같은 상황
은 확실히 본서 10장의 상황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즉 그대는 사무엘이 그 선지자 무
리를 일일이 지도하지 않았으나, 여기서는 사무엘이 그들을 직접 지도하는 역할을 담
당하는 있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의 변화는 당시 사무엘이 선지자직을 제외한 모든 일
에서 해방되어, 그들을 지도하는데 전념할 수 있게 된 때문일 것이다.
볼 때에...사자들에게 임하매 - 이같은 현상은 '볼 때에'라는 말을 통해서 어느 정
도 규명될 수 있을 것이다. 즉 그때 사울의 사자들은 선지자 무리가 엮어낸 독특한 분
위기를 '본' 후, 즉 접한 후 그 분위기에 휩쓸려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볼
때에'(* 야르, 원형은 '라아')가 3인칭 단수로 표기된 것은 매우 흥미롭
다. 그것은 아마 본 저자가 사울의 사자들 전체를 하나로 취급했기 때문일 것이다
(Keil). 즉 본 저자는 이같이 표기함으로써 사울의 사자들 모두가 마치 한사람처럼 선
지자들이 예언하던 독특한 분위기에 휩쓸려 들어갔음을 강조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신이...임하매...예언을 한지라 - 다윗을 잡으러 간 사울의 사자들은 사
무엘과 선지자 무리의 신련한 예언의 노래에 휩쓸려 들어가고, 또한 그때 위로부터 하
나님의 영이 강권적으로 임하므로, 그들 역시 자제할 수 없는 예언의 상태에 사로잡힌
것이다. 특히 여기서 '예언'(* , 나비)이란 하나님의 계시(啓示)를 받아 미래
의 일을 선언하는 것과 같은 선지자적 예언이 아니라, 영감받은 신령한 노래를 부르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사울의 사자들은 강권적인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묵시적(黙示
的) 황홀경 상태에 들어가 자신들도 모르는 중에 영감 깊은 신령한 노래를 하였다고
볼 수 있다(Fay, Smith). 결국 라마 나욧의 다윗은 더이상 피할곳도 없는 절대 절명의
위기 속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해 구원받았다고 볼 수 있다.
=====19:21
다른 사자들을 보내었더니...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 본절은 사울이 보낸 세 그룹
의 사자들이 모두 '하나님의 신'에 의해 사로잡히는 바람에 다윗을 체포하려 했던 사
울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음을 말해준다. 그러자 마침내 사울이 다윗을 체포하기 위
해 직접 나섰다(22절).
=====19:22
세구에 있는 큰 우물 - 여기서 '세구'(Sechu)는 '전망대'란 의미이다. 이곳은 기브
아와 라마 사이에 위치한 지역으로서, 라마 북쪽 4.8km 지점의 오늘날 '슈웨이케
'(Suweikeh)로 추정된다(Conder). 한편 '큰 우물'은 문자적으로 '그 큰 우물'이란 뜻
인데, 여기에 정관사로 '그'가 붙어 있다는 사실은 이 우물이 그 근처에서는 매우 유
명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그리고 혹자는 이것을 '저수지'나 '물탱크'로
이해하기도 한다(Smith). 한편 칠십인역(LXX)에는 '세구에 있는 큰 우물' 대신 '산 위
에 있는 타작 마당'으로 되어 있다. 이럴 경우 우리는 히브리 본문(Masoretic Text)에
그 독법(讀法)의 우선권을 두어야 할 것이다.
라마 나욧 - '라마의 선지 학교'란 뜻이다. 18절 주석 참조.
=====19:23
하나님의 신이...임하시니...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예언을 하였으며 - 사울의
체험은 그가 보낸 세 그룹의 사자들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20, 21절).
즉 여기의 '이르기가지'는 사울이 자신이 보낸 사자들과는 달리 선지자 무리의 신령한
분위기를 접하기도 전에 이미 '세구'(Sechu)로부터 예언을 시작하여 '라마 나욧'에 이
르기까지 계속 예언 행위를 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결국 사울은
자신의 사자들과는 달리 보다 강권적인 성령의 역사로, 그리고 보다 지속적으로 황홀
경의 상태 속에 사로잡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당시 성령의 역사는 보다 강퍅한
사울의 심령 상태를 완전히 주장하시어, 그로 하여금 다윗을 체포하겠다는 의지를 스
스로 포기 하게끔 만든것이다. 즉 성령의 뜨거운 역사가 사울 왕의 강퍅한 심령을 녹
=====19:24
그가 또 - '그는 심지어'란 뜻으로, 이는 사울에게 임한 기이한 현상으로 말미암은
저자 자신의 놀라움을 표현하는 말이다(Klein).
그 옷을 벗고 - 옷을 벗는다는 것은 성경 용례상 수치스러운 행동 중의 대표적 경
우로 취급된다(창 3:7, 10, 11;삼하 10:4, 5;미 1:11). 그러므로 사울이 이같은 행동
을 한 까닭은 (1) 근본적으로는 사울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수치를 드러낼 정도로
성령의 역사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며 (2) 또한 실제적으로는 사울이 황홀경의 영적 심
리 상태로 발생하는 체열(體熱)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Abarbanel, Fay). 그러나
여기서 사울이 벗은 것은 겉옷(* , 베게드) 뿐이었지 속옷은 아니었다(사
20:2-4;미 1:8).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 칠십인역은, 사무엘이 사울과 길갈에서 헤어진 후 죽
을 때 까지 사울을 만나지 아니했다는 본서의 언급(15:35)과 조화시키기 위해 여기
'사무엘 앞에서'를 '그들 앞에서'로 고쳤다. 그러나 여기의 '사무엘 앞에서'는 15:35
의 언급과 모순되지 않는다. 그 가닭은, 여기 사무엘과 사울의 만남은 사울이 거의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사무엘을 거저 보았을 뿐, 15:35절의 언급처럼 상호 교제를 나
눈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종일 종야에 벌거벗은 몸으로 누웠었더라 - 여기서 '종일 종야'는 그때 다윗이 사
울을 피해 도망갈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한편
'벌거벗은 채'란 의미인데, 이것은 사울이 속옷까지 완전 벗었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
다. 다만 겉옷을 벗어 사울이 왕으로서 체통을 잃을 만한 부끄러운 상태에 있음을 강
조하는 말이다. 그리고 '누었더라'(* , 나팔)는 '엎드러지다'란 의미로서, 결국
이것은 대단히 오래도록 지속된 예언 상태로 인해 그때 사울이 자신의 몸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기운이 빠진 상태에 있었음을 가리킨다. 한편, 그러나 사울이 이같은 영
적 상태에 계속적으로 빠져 있었다고는 볼 수 없다. 아마 한동안 하나님의 신의 영향
으로 말미암아 황홀경의 상태에서 손짓 발짓을 섞어 노래를 하는 등의 행위를 한 후,
그로 인한 피곤감으로 깊은 잠에 빠져버렸을 것이다(R. Payne Smith).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 이 말은 본래 어떤 사람이 본래의 그의 모습과는 완
전히 다른 행동을 할 때 적용되는 말이다. 10:11 주석 참조.
사무엘상 제 20장
=====20:1
다윗이 라마 나욧에서 도망하여 - 당시 다윗은 자신을 잡으러 라마 나욧까지 온 사
울의 사자들 및 사울이 하나님의 신의 불가항력적 임재로 말미암아 황홀경의 심리 상
태에 빠져 있을 때(19:20-24), 그 때를 호기(好機)로 삼아 그곳에서 도망할 수 있었다
(Smith, Keil).
와서 - 이것은 다윗이 당시 사무엘의 선지학교가 있던 라마 나욧(19:18)에서부터
이스라엘의 수도로서 궁성(宮城)이 있던 기브아로 돌아온 것을 가리킨다. 다윗이 그
때 사울로부터의 위협이 상존해 있는데도 기브아로 돌아온 까닭은 다음과 같다. 즉
(1) 친구 요나단에게 사울이 자신을 계속적으로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리며, (2) 그
럼으로써 요나단의 도움을 요청하고, 향후의 신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함이었다(4절).
죄악...죄가 무엇이관대 - 다윗의 이 질문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역설적 질문
으로서, 곧 자신은 사울에게 죽임을 당할만한 아무런 죄악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뜻이
다. 한편, 여기의 '죄악'(* , 아온)과 '죄'(* , 핫타트)는 거의 동
일한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들인데, 다윗은 이같은 동의어의 반복을 통하여 자신의 결
백과 무죄를 강력히 호소한다.
내 생명을 찾느뇨 - '내 목숨을 노리는가'란 뜻이다(공동 번역). 특별히 여기서
'찾다'(* , 바카쉬)란 불을 켜고 샅샅이 수색하는 행위를 가리킨다(출 4:19).
=====20:2
부친이...알게 아니하고는 행함이 없나니 - 이 말은 (1) 왕과 왕세자로서 사울과
요나단이 특별히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며, (2) 아울러 당시 요나단은
사울의 모든 정책 결정에 깊이 참여할 만큼 중요한 직위에 올라 있었음을 암시해 준
다. 한편, 그런데 요나단의 이같은 말은, 그가 이때 사울이 다윗을 몇 차례 죽이려
했던 것을 다만 일시적 광기(狂氣)의 결과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사해 준
다(Keil). 따라서 요나단은 자신의 힘으로 다윗을 그러한 부친의 광기적 살인 시도로
부터 충분히 보호해 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다윗을 안심시키려 했던 것이다.
=====20:3
내가 네게 은혜받은 줄을 - 문자적으로는 '내가 너의 눈에서 은혜를 발견한 줄을'
이란 뜻이다. 결국 이것은 왕자 요나단이 목동 다윗을 깊이 사랑하고, 서로 깊은 우
정을 나누고 있었던 사실을 가리킨다(18:1; 19:1).
요나단이 슬퍼할까 두려운즉 - 이것은, 사울이 다윗을 살해하려고 음모를 꾸몄을
경우 반드시 자신에게 알릴 것이라는 요나단의 호언 장담(2절)에 대한 다윗의 반론이
다. 즉 사울은, 만일 자신이 다윗을 죽이려는 것을 요나단이 알면 다윗과 두터운 우
정 관계에 있는 요나단이 (1) 다윗이 살해되는 것을 매우 슬퍼할 것이며, (2) 따라서
틀림없이 다윗에게 그 음모를 누설할 것을 예측하고, 그러한 사실만은 요나단에게 전
혀 알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로 이를 알게 하지 아니하리라 - 즉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는 자신의 음모를 아
들 요나단에게 알릴 경우 그에 관한 비밀이 누설될 것이 틀림없고, 그래서 결국 자신
의 계획이 실패할 것이므로 다윗을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해도 결코 그에 관해
서는 요나단에게 말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 뿐 - 이 말은 요나단에게도 알려지지 않을 사울의 음
모에 의해, 다윗 자신의 생명이 마치 사망의 문턱에 도달한 듯한 매우 긴박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비유적으로 강조하는 말이다. 즉 생명의 위협을 시시각각 피부로 절감하
고 있다는 뜻이다.
=====20:4
네 마음의 소원...이루리라 - 본절은 요나단(2절)이 다윗의 논리(3절)에 설득되었
음을 암시해 준다. 결국 다윗은 자신이 처해있는 긴박한 상황을 논리적으로 설명함으
로써, 이처럼 친구 요나단으로부터 헌신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
=====20:5
월삭(* , 호데쉬) - 매월 첫날을 가리킨다. 이때는 상번제 외에 속죄제를
드려 지난 한달 동안 지은 죄를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받고 새 마음을 다지는 등의 종교
적 행사와 아울러 민간 축제가 거행되었다(민 10:10; 28:11-1; 스 3:5; 느 10:33; 느
10:33; 사 1:13). 레위기 서론의 '히브리 절기와 축제'를 참조하라.
내가 마당히 왕을 모시고...식사를 하여야 - 월삭(月朔) 때의 식사는 아마도 가족
이나 친척 단위로 함께 모여 공동 식사를 했던 것 같다(Smith, Fay). 따라서 다윗도
사울의 사위였으므로(18:27). 마땅히 사울의 식탁에 참석하여야 할 자격과 의무가 있
었다.
제 삼 일 저녁까지...숨게 하고 - 다윗이 요나단에게 이같이 요청한 까닭은 관례상
월삭 잔치는 이틀 동안 계속되었으므로(27, 34절). 이에 따라 '제 삼일'에야 요나단
이 자신에게 사울의 반응(30, 31, 33절)을 알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들에 - 문자
적으로는 '그 들에'이다. 이처럼 여기에 정관사 '그'가 붙었다는 사실은 여기의 '들'
이 다윗이 이미 먼저 번에 숨었던 궁전 근처의 '들'이었음을 시사해 준다(19:2, 3).
=====20:6,7
여기서 다윗은, 왕의 식탁에 불참한 후 요나단을 통해 사울에게 전달될 변명에 대
해 나타날 사울의 반응을 통하여, 사울이 자신을 향해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는지를 알
고자 한다.
온 가족을 위하여 - 여기의 '가족'(* , 미쉬파하)은 (1) 이새가 속한
유다 지파(Smith), (2) 이새의 가족(Klein) 등으로 주장된다. 그러나 첫째, 왕정(王
政) 하에서 한 지파 전체가 왕의 허락없이 모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둘째, '베들레
헴'은 유다 지파 전체가 모이기에는 너무 협소하며 셋째, '매년제'(每年祭)는 소가족
단위로 드려진 제사(1:3)였다는 점에서 (2)의 견해가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거기서 - 이는 베들레헴을 가리킨다. 이처럼 하나님께 대한 제사가 지역적으로 드
려진 가닭은 실로의 중앙 성소가 파괴된 후(4:10) 새로운 중앙 성소가 아직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황 하에서는 제단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소가
족 단위로 각종 제사가 드려질 수 있었다(Keil, Gerlach).
매년제를 드릴때가 됨이니이다 '매년제'(a yearly sacrifice)는 가족 단위로 매년
1차씩 드려지던 제사를 가리킨다(1:3 주석 참조). 그러나 모세 율법에서는 매년 3대
절기(유월절, 맥추절, 수장절)를 맞이하여 세 차례씩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도록 명령
한다(출 23:14-17; 34:24). 따라서 매년 1차씩만 드리는 여기의 '매년제'는 일종의
편의주의적 편법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여기의 '드릴 때'는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출 23:14-16). 즉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세 절기 중 자신
들에게 편한대로 한 절기를 택하여 '매년제'를 드렸던 것같다. 아무튼 이처럼 이 제
사는 율법에서 엄중히 명령되는 만큼, 다윗에게는 사울 왕이 베푼 월삭 잔치에 불참할
만한 충분한 명분이 될 수 있었다. 더욱이 그때 베들레헴에서 이 매년 제사가 그의
가족에 의해 드려진 것도 사실이었을 것이다.
좋다 하면...노하면 - 요나단을 통해 전달될 다윗의 처사(6절)에 대하여 만일 사울
의 반응이 긍정적으로 나타날 경우 그것은 그가 다윗을 기뻐한다는 증거요, 만일 부정
적으로 나타난다면 그것은 사울이 다윗을 여전히 증오한다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다
윗은 그러한 방법을 통하여 사울의 마음을 알기를 원했는데, 이는 사울이 하나님의 신
을 접한 이후(19:23, 24)처음 그의 의향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다윗은 향후 자신에 대
한 사울의 의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
=====20:8
그런즉 - 7절의 내용과 연결시켜 주는 상관 접속사이다. 따라서 본 접속사에 뒤따
르는 내용은 7절의 내용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네 종에게 인자히 행하라 - 이 말은, 다윗이 베들레헴에 매년제를 드리러 갔다는
요나단의 보고에 대하여 사울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경우를 가상해서 요나단에게 도
움을 요청하는 말이다. 사실 사울이 죽이려 할 경우 다윗은 요나단의 도움을 받아 도
망칠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여기의 '인자히'(* , 헤세드)는 원래
명사로서 언약적 관계에 따라 베풀어지는 특별한 사랑 및 은총을 가리킨다.
네가...너와 맹약케 하였음이니라 - 다윗이 요나단에게 담대히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던 근거는 요나단의 주관하에 맺어진 신실한 언약 때문이었다(18:3, 4). 다윗이
이처럼 단순한 우정이 아닌 언약 관계를 근거로 해서 도움을 호소한 까닭은 (1) 단순
한 우정 관계는 부자(父子)관계보다 우선될 수 없으며 (2) 여호와 앞에서 그 이름으로
맺은 언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통념이었기 때문이
다.
내게 죄악이 있거든...친히 나를 죽이라 - 이 말은 다윗이 자신의 무죄와 결백을
강조하는 말이다. 즉 다윗은 이같은 말을 함으로써, 요나단이 부친 사울의 뜻과는 달
리 자신을 돕는 일이 하등에 거리낌 없는 옳은 행위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20:9
이 일이 결코 네게 있지 아니하리라 - 이 말은 문자적으로 '그것이 네게로부터 멀
리 있다'란 의미를 갖는 감탄문이다. 즉 이것은 (1) 다윗에게 결코 죄가 없다는 의미
(Lange, Klein), (2) 다윗에게 결코 불행한 일이 닥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Smith)등
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원문상 본 문구 다음에 나오는 문구가 '왜냐하면'의 의미를
갖는 '키'(* )로 시작된다는 점에서 후자의 견해가 타당한 듯하다. 즉 요나단은
자신의 손으로 다윗을 죽인다든지, 또는 다윗을 사울에게로 데리고 간다든지 하는 불
행한 일이 결코 다윗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Keil).
=====20:10
네 부친이 혹 엄하게...대답하면 - 여기의 '대답하면'은 요나단이 다윗의 행동에
대해 변명하고, 또한 다윗에 관한 사울의 음모를 알아내려고 사울에게 질문했을 경우
사울이 요나단에게 보일 전반적인 반응을 가리킨다. 따라서 '엄하게...대답하면'은
다윗의 행동(6절)에 대해 사울이 격노하고, 아울러 사울이 자신의 음모가 다윗의 귀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협박을 하거나, 방해하는 것을 가리킨다.
누가 그것을 내게 고하겠느냐 - 이것은 사울로부터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에 관한
정보를 요나단이 입수했다고 해도, 사울의 방해.협박 때문에 요나단이 자신에게 그 사
실을 알리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20:11
본절에서 요나단과 다윗은 아무도 모르는 둘만의 신호를 만들기 위해 들로 나갔다.
들 - 문자적으로는 '그 들'이다. 이것은 말할 나위없이 사울 궁전 근처의 들판을
가리킨다(5절; 19:3)
=====20:12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 이러한 신(神) 명칭은 서원이나 맹세를 할 때 주로 사
용되는 하나님의 칭호로서, 여기서 요나단은 자신의 맹세의 신실성을 확증키 위해 바
로 이같은 하나님의 명칭을 사용한다. 한편 이러한 하나님의 명칭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과 맺은 언약을 신실히 이행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할 때 언급된다
(2:30; 25:32, 34; 삼하 7:27; 왕상 1:30, 48).
증거하시거니와 - 이것은 원문에는 없는 말이나, 의미를 강화키 위한 번역자의 적
절한 삽입구이다.
내일이나 모레 - 월삭(月朔) 잔치가 벌어지는 이틀 동안을 가리킨다 <5절>.
내 부친을 살펴서 - 이것은 다윗이 매년제에 참석하러 베들레헴에 갔다는 얘기를
사울에게 하고, 또 그 얘기를 들은 사울의 반응을 살피는 것을 가리킨다(6, 7절).
보내어 - 이것은 요나단이 직접 전달하지 아니하고, 사자를 보내겠다는 뜻이다.
이처럼 다윗에 대한 부친 사울의 의향이 선하게 나타날 경우 요나단이 사자를 보내겠
다고 한 까닭은, 그러한 경우에는 분명 사울의 마음이 누그러진 상태일것이므로 사자
를 보내도 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20:13
너를 보내어 평안히 가게 - 이것은 사울의 동향에 관한 적절한 정보를 다윗에게 제
공하여 사울로부터 무사히 피신토록 협조함을 뜻한다.
여호와께서...벌을...내리시기를 원하노라 - 이같은 맹세적 표현은 원래 고대 중근
동 지역에서 동물을 죽이는 상징적 행위와 함께 이루어졌었다 <3:17>. 즉 맹세를 파
기할 경우 그 동물의 죽음과 같은 신세가 될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만큼 맹세
에는 책임과 의무가 뒤따른다는 의식이었다. 한편 맹세를 지키지 않을 경우 여호와께
벌을 받을 것이라는 요나단의 이 맹세적 표현은 '여호와'를 증인으로 세웠던 12절의
맹세와 잘 부합된다.
여호와께서 내 부친과 함께 하신 것 같이 - 여기서 '하신'(* , 하야)이 완
료형이라는 점에서,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과거에는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계셨지만 지
금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16:14>.
너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니 - 여기서 '하시기를 원하노니'(* , 예히)가
미완료 시제 즉 미래형이라는 점에서, 여기 이 문구는 지금부터 앞으로 계속 하나님께
서 다윗과 함께 하실 것을 소원.확신하는 말이다 <1:13; 17:37; 18:12>. 이것은 결국
요나단이, 이스라엘의 왕권(王權)이 자신의 아버지 사울에게서 다윗에게로 넘어갔다는
사실을 이미 깨닫고 있었음을 뜻한다(14, 15절; 23:17).
=====20:14
본절에서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간청은, 고대 중근동에는 축출된 왕조의 가족들이
새로운 왕에 의해 몰살되는 풍습이 있었다는 사실을 배경으로 한다(Fay, Smith; 삼하
19:28; 왕상 15:29; 16:11).
나는 사는 날 동안에...나로 죽지 않게 - 이 말은 요나단이 다윗의 등극이 자신의
생전에 있을 것으로 예측했음을 시사해 준다. 그러나 실상 요나단은 길보아 전투에서
자신의 부친 사울과 함께 전사함으로써, 생전에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31:2-6).
여호와의 인자를 내게 베풀어서 - '여호와의 인자'(* , 헤세드
예호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약 백성들에게 베푸시는 신실한 계약적 사랑을
가리킨다 (8절). 여기서 요나단은 이 말을 함으로써, 자신과 다윗 사이에 맺어진 언
약 관계를 다윗으로 하여금 깊이 상기시키려 한다. 한편, 이처럼 요나단이 현재 다윗
을 돕는 자이면서도 오히려 겸손히 다윗에게 '인자'를 요청하면서 그를 축원하고 있는
것은, 그가 왕자로서 명예욕과 권세욕에 초연했음을 보여 준다. 더 나아가 다윗에 대
한 요나단의 전적 협조와, 그리고 장차 인자 베풀것을 요청한 것은 사울 대신 다윗을
들어 쓰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요나단이 전적 순종하였다는 사실을 시사
해 주는 바, 실로 요나단은 탁월한 신앙 인격을 가진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20:15
다윗의 대적들 - 이것은 (1) 사울의 가문(Lange), (2) 사울의 가문을 포함한 모든
대적(Klein) 등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첫째, 요나단 자신이 자신의 아버지 집
만을 멸망받을 자로 직접 지명할 리가 없다는 사실, 둘째, '대적'(* , 오예
브)이라는 단어가 복수라는 사실, 셋째, '대적'이라는 단어가 사울이외의 대상에게도
다윗에 의해 적용된다는 사실(25:26, 29, 39; 삼하 3:18)등으로 미루어 볼 때 (2)의
견해가 타당한 듯하다. 그러나 여기서 요나단이 다윗의 여러 대적들 중 자신의 아버
지 사울의 멸망에 대하여 주된 관심을 갖고 있었을 것은 매우 당연하다. 왜냐하면 사
울의 멸망은 그의 아들인 자신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너는 네 인자를 내집에서...끊어 버리지 말라 - 이것은 장차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
이 되고 사울의 가문은 멸망될 때에, 요나단 자신의 직계 후손만은 멸망되지 않도록
특별한 배려를 원한다는 뜻이다. 사실 요나단의 이같은 간청은 후일 다윗에 의해 받
아들여져, 후에 요나단의 후손으로 다윗으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삼하 9:6, 7).
=====20:16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 이것은 요나단이 다윗에 대하여 충성 서약을
한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자기 아비의 집과 다윗의 집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할 당시 상황에서, 요나단은 (1) 다윗을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차기의 왕으로 확신했
으며(13, 14절; 23:17). (2) 그 사실을 아는 이상 자신의 후손들을 헛되이 죽게 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같이 언약했음이 분명하다. 한편 여러 학자들은 이
부분을 15절의 하반부와 연결된 것으로 보고, '요나단의 이름이 다윗의 집으로부터 귿
어지지 않도록 하라'(let not the name of Jonathan be cut off from the house of
David, RSV)로 번역해야 된다고 주장한다(Hertzberg, Klein). 그들이 이같이 번역하
는 까닭은 (1) 여기서 '언약 하기를'로 번역된 '카라트'(* )라는 단어는 뒤에
'베리트'(* , '언약')라는 단어가 뒤따르지 않을 경우 '언약을 하다'란 의
미로 번역하기 곤란하므로(Davidson, Keil) 이에 따라 15절에서의 용례처럼 '끊어버리
다'로 번역해야 되기 때문이며, (2) 그리고 칠십인역(LXX)은 '요나단'이 아닌 '요나단
의 이름'으로 번역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바로 이같은 이유로 여기서 그들은 맛
소라 사본에 의존한 전통적 번역 방식보다 칠십인역을 좇는 번역 방식을 채택하고 있
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 앞 절의 해석 방법에 근거할 때 이 문
구 역시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적들의 손으로부터 그것을 요구하실 것이다'(Let the
Lord even require it at the hand of David's enemies, KJV)로 번역함이 타당하다.
결국 이것은 다윗이 요나단 자신과의 언약을 이행치 않을 경우, 다윗은 여호와께로부
터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뜻으로(창 31:39; 삼하 4:11). 요나단은 그 신적인 저주가
다윗의 대적들을 통해서 내려질 것이라고 말한다. 즉 대적들을 토벌하려다가 오히려
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뜻이다.
=====20:17
본절은 요나단이 자기 자손들에 대한 약속 이행을 다윗으로 하여금 맹세토록 강요
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두 사람간의 기본적인 언약 관계(18:3)를 보다
견고하게 하려는 의도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요나단이...다시 맹세케 하였으니 - 이는 요나단이 먼저 다윗을 도와줄 것을 맹세
한 뒤, 이어 다윗이 후일 요나단의 후손들을 배려해 줄 것을 맹세하였음을 뜻한다.
그 맹세의 내용은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만일 -을 지키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에
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란 말로 구성되었을 것이다(13절). 아무튼
이러한 맹세는 맹세한 쌍방 중 어느 한편이라도 그 맹약을 어긴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친히 심판하실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자기 생명...같이...사랑함이었더라 - 18:1 주석 참조.
=====20:18,19
월삭 - 5절 주석 참조. 한편, 19절의 내용은 사본상의 문제 때문에 몇 군데가 수
정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사흘을 있다가 - 이것은 원문대로 '제 3일에'로 번역되어야 한다. 즉 이틀 동안
계속되는 월삭 잔치가 끝나는 다음 날을 가리킨다.
빨리 내려가서 - 여기의 '내려가서'(* , 테레드)는 본 문맥의 흐름상 적절
치 못하다. 왜냐하면 여기의 언급처럼 만일 다윗이 빨리 내려가야 '숨었던 곳'에 도
달한다면, 다윗이 사흘 동안 숨을 곳은 자신이 원래 숨어있겠다고 요나단에게 약속한
지점(5절)과 다르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의 '내려가서'는 사본상
의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혹자는 칠십인역(LXX)을 좇아서 '테레드'
를 '파카드'(* , '찾다', '묻다'란 뜻)의 단순 수동형인 '티파케드'
(* )로 고쳐야 된다고 주장한다(6절). 만일 이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우리
말 번역의 '내려가서'는 '찾아지리니'란 의미로 바뀌어야 할것이다. 그리고 이런 맥
락에서 '빨리'(* , 메오드)는 '무척', '대단히'로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그 일이 있던 날에 숨었던 곳 - 여기서 '그 일'은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 왕
의 음모 때문에 요나단의 도움을 받아 숨었던 사건을 가리킨다(19:1-3). 따라서 여기
'숨었던 곳'은 사울 궁전 근처의 은밀한 들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이르러 - 이것은 다윗이 요나단과의 담화가 끝나는 즉시 '은밀한 들판'으로 가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우리말 개역 성경의 번역은 마치 사흘째의 그리고 가라는 말
처럼 오인케 한다.
에셀 바위 곁 - '에셀'(* , Ezel)은 '가다', '출발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
사 '아잘'에서 파생되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여기의 '에셀 바위'는 방향 표시를
위하여 세워진 바위를 가리키는 듯하다(Smith).
=====20:20
내가...살 셋을 그 곁에 쏘고 - 여기서 요나단이 활 쏘는 것으로 신호(sign)를 삼
으려 한 것은 돌발적인 상황으로 인하여 자신이 직접 다윗에게 결과를 알려 줄 수 없
게 될 경우를 대비키 위함인 듯하다. 한편 여기서 요나단이 화살을 셋씩이나 쏜 것
은, 다윗으로 하여금 자신을 향해 쏘는 사람이 요나단임을 알게 하려는 의도에서였다.
=====20:21
아이(* , 나아르) - 여기 '아이'는 그 용례로 볼 때 '요나단의 병기 든
자'를 가라킴이 분명하다(14:1).
살을 찾으라 - 이같은 일은 전쟁 물자가 매우 부족했던 그 당시의 상황에서 볼 때,
병기 든 자에게 매우 당연한 일로 여겨졌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요나단은 병기 든
자가 이 일을 자연스럽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이용하여 다윗에게 정보를 제공할 기회를
만들었던 것이다.
네가 평안 무사할 것이요 - 직역하면 '네게 평안이 있을 것이요'(peace shall be
to you)란 뜻이다. 구체적으로는 사울이 다윗에 대하여 살의(殺意)를 품지 않고 있음
을 말하는 것이다.
=====20:22
네 길을 가라 - 곧 지체말고 도주하라는 뜻인데, 이것은 사울이 다윗에 대하여 살
의를 품었을 경우를 대비해 예상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20:23
본절에서 요나단은 자신과 다윗 사이에 맺어진 언약의 불변성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재천명한다.
너와 내가 말한 일 - 이는 단지 둘 사이에 묵계(黙契)된 암호(20-22절) 뿐만 아니
라, 요나단과 다윗이 새롭게 다지고 맺은 우정의 맹약(12-17절)도 포함한다. 즉 그
맹약에 살아 계신 여호와께서 증인과 판결자로서 영원히 지켜보고 계실 것이라는 의미
이다.
=====20:25
왕은...벽 곁 자기 자리에 앉았고 - 사울이 이같이 벽 곁 자리에 좌정한 것은 (1)
그 위치가 자신의 몸을 가장 잘 보호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자리이며(Hertzberg),
(2) 고대 중근동에서 출입구 반대편의 그곳은 가장 상좌(上座)로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Fay, Smith, Keil).
요나단은 섰고 - 여기의 '섰고'(* , 야캄; 원형은 '쿰', * )는 요
나단이 그때 식탁을 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볼 때 매우 부자연스러운 자세이다. 따
라서 이같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 다음과 같은 견해가 제시되었다. 즉 (1) 여기의 '야
캄'을 사본상의 오류로 보고 '코프'(* )와 '멤'(* )사이에 '달렛'(* )을 삽입시
켜 '에카뎀'(* )으로 수정하여 '맞은편에 위치하다'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
(LXX, Klein, Ewald, Bunsen, Thenius), (2) 여기 '쿰'의 의미를 '오다'란 말로 이해
하여 '요나단이 왔다'란 뜻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De Wette, Maurer), (3) 사본을
정확한 것으로 보되, 다만 '(요나단이) 자신의 위치를 잡다'란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고 하는 견해(Mastin)등이 제시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첫째, 여기의 '섰고'(쿰)라는
동사가 단순히 서있는 동작만을 의미하지 않으며(16:12; 창 43:13) 둘째, 히브리 본문
을 최우선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일반 해석론에서 볼 때 (3)의 견해를 존중하는 입장에
서, 곧 처음 요나단이 사울의 곁에 자리 잡았다가, 아브넬이 들어옴으로써 자기 자리
에서 일어나 양보했다는 뜻이거나, 아니면 군대 장관이요 숙부인(14:51) 아브넬이 들
어오자 경의를 표하기 위해 단순히 잠깐 일어나는 자세를 취했다가 다시 앉은 행위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the Vulgate, Keil, Fay).
아브넬...다윗 - 결국 월삭 어전 잔치의 참석자는 왕 사울, 왕자 요나단, 군장 아
브넬, 천부장 다윗 등 4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사울 왕을 중심
으로 부자(父子) 관계, 사촌 형제 관계, 사위 관계 등 혈연으로 얽혀있었다는 점에서
가족 잔치의 성격도 띠고 있었다. 아무튼 이들 4인은 당시 이스라엘 왕정 제도의 핵
심 수뇌부인데, 고대 초창기 왕정의 성격상 이러한 혈연 중심의 통치는 당시 보편적이
었다(Leon Wood).
=====20:26
부정한가보다 - 모세 율법의 정결 의식법상 시체를 만지거나(레 7:20, 21;
15:16-18), 혹은 잠을 자다가 몽설(夢泄)을 하는(신 23:10) 등의 사유로 인하여 의식
적(儀式的) 부정의 상태에 이르는 것을 가리킨다. 모세 율법은 이같은 상태에 이른
자가 제사, 축제 등의 성별된 종교 의식에 참여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
=====20:27
이새의 아들 - 성경 용례상 이 말은 다윗의 대적들에 의해서 주로 부벙적 의미로
사용된다는 점에서(30, 31; 22:7, 8; 25:10; 삼하 20:1). 당시 다윗에 대한 사울의
심경을 보여 주는 말이다(Klein).
어찌하여...오늘 식사에 나오지 아니하느뇨 - 사울의 이 말은 여러 사유 등으로 인
하여 부정하게 된 자는, 그 당일에는 부정하지만 그 다음 날에는 깨끗케 된다는 율법
규정을 염두에 두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레 15:1-27). 바로 이같은 율법 규정을 아는
사울은, 다윗의 첫날 식사 불참은 그가 부정하게 됐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보고 용납
할 수 있었으나(26절). 그 다음 날에도 불참한 것은 첫날의 불참과는 달리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 이유를 묻고 있는 것이다.
=====20:28,29
다윗의 행방을 묻는 사울의 질문에 요나단은, 사울이 다윗에 대하여 어떠한 마음
자세를 갖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하여 이틀 전 다윗과 이미 약조한대로(6절) 다윗의
불참 사유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실은 당시 다윗은 베들레헴으로 내려갔던 것이 아
니라, 에셀 바위가 있는 들에 숨어 있었다(19, 24절).
나의 형(* , 아히) - 70인역(LXX)은 '형제들'로 이해하나, 히브리 원문은
단수이다. 아마도 다윗의 맏형으로서 가족의 제사를 주관하는 형을 가리키는 듯하다
(Keil, Fay).
=====20:30
사울이 요나단에게 노를 발하고 - 이것은 요나단이 다윗으로 하여금 베들레헴으로
가도록 허락했다는 것에 대한 분노를 가리킨다. 이같은 반응은 결국 사울이 월삭 잔
치를 기회로 다윗을 사로잡고자 한 자신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음을 보여 주는 증표
였다.
패역 부도의 계집의 소생아 - 여기서 '패역'(* , 나아와트)은 '구부러지
다'(* , 아와)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극도로 사악한 마음의 상태를 가리킨다
(잠 12:8). 그리고 '부도'(* , 마르두트)는 '반역하다', '거역하다'
(* , 마라드)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반항적이고 배타적인 마음의 상태를 가리
킨다(창 14:4; 수 22:16; 왕하 18:20). 또한 여기의 '계집'은 사울 자신의 아내 곧
요나단의 생모(生母) '아히노암'(14:50)을 가리킨다. 그러나 자신의 아내 아히노암에
대한 사울의 이같은 언급은 그녀가 그같은 행위와 어떤 관련이 있다는 뜻은 절대로 아
니다. 다만 사울은 요나단의 어머니를 나쁜 여자로 몰아버림으로써, 즉 요나단을 처
음 출생부터 잘못된 인물로 선언함으로써 그 아들 요나단의 '패역 부도'(悖逆不道)함
을 강조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원문을 따라 직역하면 "너 사악하고 반역적인(계
집의) 아들아!"(you son of a perverse and rebellious woman!; NIV, RSV)란 뜻인데,
이처럼 어머니까지 들먹여 욕하는 이런 행위는 특히 고대 중근동 지역에서는 극도의
증오와 분노를 나타내는 가장 격렬한 감정의 표시였다. 결국 이러한 사울의 행동은
다윗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로 말미암아 이제는 자신의 아들마저 아들로 인정치 않을
정도로 비정상적인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처럼 인간이 지니는
악한 감정은 결국 자신의 인격마저 파탄시키고 만다.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 - 여기서 '택하다'(* , 바하르)란 말은 사랑
과 신의(信義)로써 사랑하는 행위를 가리키는데, 곧 요나단이 다윗과 친구가 되어 그
편을 들어 행동하는 상태를 말한다. 한편 여기 '이새의 아들'에 대한 해석은 27절 주
석을 참조하라.
네 수치 - 사울의 왕권이 다윗에게 넘어갈 경우 마땅히 사울의 왕권을 이양받을 권
한이 있던 왕자 요나단이 당할 여러가지 부끄러움을 가리킨다.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 - 이 말은 다윗에게 사울의 왕권이 넘어감으로써 심한 부
끄러움을 당하게 될 요나단으로 인하여 요나단의 어미가 그를 낳은 일 자체를 부끄러
워 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사울의 이러한 말은 이기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독
선이고 아집이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다윗을 성실히 도와준 요나단
은 오히려 그의 그러한 선행 때문에 가문의 수치를 벗고 다윗으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
게 되었다(31:9-13; 삼하 4:12; 9:1-13).
=====20:31
너와 네 나라가...서지 못하리라 - 사울 자신의 왕권이 다윗으로 인하여 요나단에
게 양위(讓位)되지 못할 것을 염려하는 말이다. 일찍이 사울은 여호와의 선지자 사무
엘로부터 그 왕위(王位)가 단절될 것이라는 선언을 들은바 있었고(13:13, 14), 이제
사울은 다윗이 하나님에 의해 차기의 왕으로 세워진 자라는 사실을 익히 알면서도
(18:12; 23:17) 이같은 말을 서슴없이 내뱉음으로써, 자기 스스로가 하나님의 신을 소
유치 않은 비합법적인 왕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16:14).
그는 죽어야 할 자니라 - 문자적으로는 '그는 사망의 자식이니라'이다. 반드시 다
윗을 죽이고야 말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으로, 이는 곧 다윗을 차기 이스라엘 왕으
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주권에 정면 도전하는 선전 포고를 볼 수 있다. 이처
럼 사울의 악한 감정은 이제 그를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대항하는 자로까지 발전
시키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하는자의 결국은 멸망 뿐이다(31:4, 5; 나
1:2).
=====20:32
요나단이...가로되...무엇을 행하였나이까 - 부친 사울 왕의 격심한 분노에도 불구
하고 요나단은 변치않는 신의(信義)로써 친구 다윗을 위해 변호함으로써 부친의 마음
을 바로 잡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19:4-7). 그러나 당시 사울은 이미 감정의 노예
가 되어 있었다.
=====20:33
단창을 던져 치려 한지라 - 여기의 '던져'는 '창을 뻗다'란 의미로 이해함이 타당
하다(18:11). 그리고 '치려'(* , 나카)는 죽이거나 혹은 치명상을 입힐 목적
으로 무기를 휘두르는 등의 과격한 행동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창 37:21; 출 2:12; 신
13:15; 삼하 1:15). 그런데 이같은 행동은 사울이 악신에 사로잡을 때 나타났다는 점
에서 볼 때(18:11; 19:10). 이때도 사울은 극력한 분노와 증오심으로 인하여 마치 악
신에 사로잡힌 바 된 상태와 다름이 없었던 것 같다.
=====20:34
심히 노하여 - 이같은 요나단의 분노는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 한 사실 때문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아버지가 하나님에 의하여 차기의 왕으로 특별히 선택된 다윗을 죽이
려 한다는 분명한 사실 때문이었다. 따라서 여기 요나단의 노(怒)는 불의를 참지 못
하여 일어난 의분(義憤)으로서 사울의 불의한 분노(30절)와는 뚜렷이 대조된다. 즉
요나단의 분노는 사랑과 신의로부터 나온 것이지만, 사울의 분노는 증오와 시기로부터
나온 것이다.
달의 제 이 일에는 먹지 아니하였으니 - 이것은 월삭 잔치 둘째날의 음식(27절)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뜻한다.
부친이 다윗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 이는 매년제를 드리러 고향 베들레헴으로 갔다
는 다윗을 부친 사울이 정당한 이유없이 반역자로 몰아, 반드시 '죽일 자'(31, 33절)
로 간주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20:35
아침에 - 다윗과 요나단이 만나기로 약속한 제 3일(5, 19절) 곧 이틀 동안의 월삭
잔치가 끝난 그 다음날 아침을 가리킨다.
작은 아이(* , 나아르) - 차라리 '소년'으로 번역함이 자연스럽다(22절;
14:1)
=====20:36
살을 그의 위로 지나치게 쏘니라 - 요나단은 아이가 달려간 거리보다 더 멀리 활을
쏘았다. 이것은 요나단이 병기 든 소년에게 '살이 네 앞편에 있다'(22절)라고 말할
구실을 마련키 위한 의도적 행동이다. 즉 요나단은 다윗과 사전에 약속하기를, 만일
자신이 소년에게 '살이 네 앞에 있다'라고 말할 경우 사울이 그에 대하여 살의(殺意)
를 품고 있다는 뜻으로 알고 도망쳐야 될 것이라고 하였기 때문이었다(22절).
=====20:37
살이 네 앞편에 있지 아니하냐 - 아마도 요나단은 근처 어딘가에 숨어있을 다윗도
족히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이 말을 외쳤을 것인데, 이것은 다윗에게 도망쳐야 될
필요성을 고지(告知)하는 암호(sign)였다.
=====20:38,39
지체 말고 빨리 달음질하라 - 요나단이 이처럼 소년을 독촉한 이유는 소년으로 하
여금 숲 속에 숨어 있는 다윗을 발견할 여지나 기회를 갖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에 따
른 것이었다(Keil, Fay). 그리고 이 의도대로 소년은 살을 주워오기에 바빠 다른 눈
치는 전혀 채지 못했다(39절).
살을 주워 가지고 - 히브리 본문에는 여기 '살'(* , 헤치)이 단수로 표기되었
지만, 난외주(keri)에는 복수 '살들'(* , 힛침)로 표기되어 있다. 그 이유
는 이미 요나단이 다윗과 약속할 때 '살 셋'을 쏘기로 했기 때문이다(20절). 아마도
요나단은 화살 셋을 연이어 쏜 것 같다(Bunsen).
=====20:40
병기를...가지고 성으로 가라 - 여기서 '병기'는 활과 화살, 그리고 화살통을 가리
킨다. 그리고 '성'은 베냐민 기브아의 사울의 궁성(宮城)을 가리킨다. 한편 요나단
의 이 명령은 말할 나위없이 소년을 돌려보낸 후 다윗과 은밀한 작별의 시간을 갖기
위함이었다. 사실 주인의 마음에 따라 이같은 종류의 명령을 받아 하인만 홀로 집으
로 돌아가는 경우는 당시 매우 보편적이었다는 점에서(Pritchard, Hertzberg), 그 소
년은 별다른 생각 없이 홀로 성으로 돌아갔을 것이 분명하다.
=====20:41
바위 남편에서 일어나서 - 문자적으로는 '남편쪽으로부터'이다. 따라서 히브리 원
문에는 '바위'라는 말이 없지만, 요나단이 '에셀 바위 곁에' 숨어 있으라고 지시한 19
절의 말을 고려하여 '바위'라는 말을 첨가한 것 같다. 아무튼 여기의 '바위 남편'은
궁전쪽, 즉 요나단과 그의 병기 든 자가 있던 곳의 반대편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여기 '일어나서'는 몸을 웅크려 숨어있던 자세에서 일어나는 것을 뜻한다.
땅에 엎드려 세 번 절한 후에 - 요나단을 향한 다윗의 이 행동은 요나단이 다윗 자
신에게 크나큰 호의를 베풀어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였을 것이다(Hertzberg). 즉 땅
에 엎드려 얼굴을 숙이는 자세는 일반적으로 왕이나 왕자에게 경의와 예우를 갖추어
하는 절을 의미한다(삼하 9:6; 14:33). 그러나 여기 다윗의 절은 그러한 형식적인 경
의나 예우의 표시가 아니라, 풍전등화의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에 대한 감사의 표
시였다. 이런 의미에서 요세푸스(Josephus)는 이 언급에 대하여 '다윗은 요나단을 존
경하여 그를 자신의 생명의 주라고 불렀다'라고 의역하였다.
피차 입맞추고 - '입맞춤'은 보통 '만남의 기쁨'이나 '이별의 슬픔'을 표하기 위해
포옹과 더불어 이루어졌는데, 대체로 이마나 볼이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따라서
여기서도 슬픈 이별의 순간을 맞이하여 생명같이 사랑하는 친구의 앞날을 서로 걱정해
주면서 우정과 사랑의 입맞춤을 하고 있는 것이다(창 29:11; 33:4; 45:15; 출 4:27;
18:7; 룻 1:9, 14; 왕상 19:20; 행 20:37).
같이 울되 다윗이 더욱 심하더니 - 이것은 (1) 깊은 사랑과 우정의 교제를 나누던
친구가 비극적 현실 앞에서 기약없이 서로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 (2) 그 중 한 친구
는 목숨의 보존을 위해 향후 정처없이 방랑해야 하는 비참한 신세가 됐다는 사실 때문
이었을 것이다. 더욱이 다윗은 전혀 자신의 뜻과는 달리 반역자로 몰려 왕과 국가에
충성할 기회를 갖기는 커녕 친구와 가정과 별리하고, 왕과 원수가 되어 정처없이 도피
의 길을 떠나야 된다는 그 어이없는 현실에 그동안 참았던 설움이 복받쳐 올라와 길고
깊은 울음으로 터져나왔으리라!
=====20:42
본절에서는 (1)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평안(샬롬)의 기원, (2) 이미 맺어졌던 두사
람 간의 언약의 재확인에 대해 언급된다.
평안히 가라(* , 레크 레솰롬) - 요나단의 사랑과 우정이 함축된
마지막 작별 인사이다. 다윗과 요나단은 마음놓고 길게 작별을 나눌 시간조차 없었
다. 다윗의 목숨을 노리는 사울과 그 측근들의 눈초리가 사방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
다. 따라서 요나단은 순간의 격정이 지난 뒤 '평안히 가라'(Go in peace!)란 말로 다
윗을 기약없이 떠나 보내고 있는 것이다. 진정 요나단의 작별 인사처럼 깊은 사랑과
우정이 깃든 평안(솰롬)에의 기원이야말로 인간과 인간 사이에 나눌 수 있는 가장 아
름다운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다윗은...떠나고 요나단은...들어오니라 - 마침내 다윗은 친구와 가족을 등지고 사
울의 추적을 피해 사울의 죽는 날까지(31:6) 온갖 고난이 뒤따르는 정처없는 도피 생
활에 접어들게 되었다(21-31장). 한편 다윗과 요나단은 요나단이 길보아 전투에서 부
친 사울과 함께 전사하기 전, 십 황무지 수풀 속에서 잠시 상면한 일(23:16-18)을 제
외하고는 다시 서로 만나지 못했다. 후일 다윗의 궁가(弓歌) 속에는 요나단의 죽음을
서러워하는 다윗의 애도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삼하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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