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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한삼서1장1~15절
제목 : 사랑의 섬김
저자와 저작연대, 저작장소
요한 이서와 마찬가지로 저자가 누구라고 직접 밝히지는 않고 있으나 내용으로 보아 사도요한의 편지임을 알려 줍니다.
특히 참으로 사랑하는, 진리안에서 등의 표현은,
사도 요한의 상투적인 용어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작 연대는 요한 일서, 이서와 비슷한 A.D 85-95년 경에 기록된 것으로 보입니다.
저작 동기와 목적
가이오와 더메드리오의 순회전도자들에 대한 환대의 소식과,
디오드레베의 요한의 권위에 대한 대적의 소식을 듣고,
가이오에 대한 칭찬과 디오드레베에 대한 책망을 하려고 쓴 편지입니다.
디오드레베는 요한의 권위를 대적하여 요한이 보낸 순회 전도자들을 거부하였고, 또한 그들을 대접하는 자를 교회에서 추방하기 까지 하였습니다.
요한삼서는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게 쓴 편지입니다.
요한은 자비량으로 순회하며 복음을 전했던 순회 사역자들을 가이오가 사랑으로 환대하고 후원해주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칭찬합니다.
권력욕에 눈이 먼 디오드레베는 순회 사역자들에 대한 후원을 거부하고,
요한을 배척했습니다.
요한은 악의 본보기로 디오드레베를 선의 본보기로, 데메드리오를 언급하면서,
가이오에게,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고 권면합니다.
1. 인사(1절)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장로인 나는" 사도요한을 말합니다.
저자인 요한은 수신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으며,
친근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장로"라는 칭호를 사용 한 것을 볼 때 자신이 나이가 많은 연장자요 권위가 있음을 보이는 것입니다.
수신자는 “가이오”입닏다.
가이오는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입니다.
장로의 사랑을 입은 자입니다.
2. 기도와 격려(2~4절)
1) 영혼이 잘됨 같이 (2절)
“[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영혼이 잘됨 같이 란” 말은 가이오의 영혼과 주님과의 관계가 잘 정비되어 있음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영생의 상황으로서 주님 중심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원리(주님 중심)로 가이오의 다른 모든 일도 잘되기를 사도는 기도합니다.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잘된다는 말의 헬라 원어는 좋은 길이 열림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외부적인 평판이나 번영과 같은 세상일의 형통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신자의 외부적인 모든 일들(육신에 관한 일들)도,
주님 중심하여 진전되는 것이 잘되는 것입니다.
그 잘된다는 것이 재앙을 당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욥은 말하기를, 주신 자도 하나님이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1:21)라고 하였습니다.
현대에 일부 전도인 들이 기복사상으로써,
이 귀절의 범사에 잘되고 란 말씀을 많이 강조합니다.
그들은 이 말씀이 우선 물질적 복 또는 현세적 형통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므로 신자들의 부자됨, 권세잡음, 장수함 등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물질적 부요를 반드시 신자의 구할 복이라고 가르치시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눅12:15)고 하시면서 도리어 영적 뷰요를 강조하셨습니다.
*눅12:21“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본문은 조용기 목사의 삼박자 구원으로 더 잘알려져 있습니다.
즉, 영혼의 삶이 제대로 살아갈 때,
범사의 하는 일들도 잘되며,
건강의 축복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영혼의 삶(영혼이 잘 되는 것)이 우선이라는 면은 분명하나,
그것을 통해 축복이 오는 축복의 조건이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본문은 영혼이 형통하는 것처럼,
하는 일이나 건강도 형통하기를 기원하는 기도문이요,
축사인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는 약속이나 확언이 아니라,
간구하는 요청의 축복기도인 것입니다.
2)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심히 기뻐하노라(3~4절)
“[3]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본절은 윗절에 있는 사도의 기도의 이유를 보여줍니다.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 하되,
곧, 형제들이 사도 요한에게 와서 가이오의 생활의 진상에 대하여 말하기를,
“진리 안에서 행한다”하니 심히 기쁘다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서 행한다 는 말은 복음을 받은 자가 그 복음의 요구대로 사랑을 행함을 가리킵니다. 요이 1:4-5 참조.
요이1:4~5 “[4]너의 자녀들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5]부녀여, 내가 이제는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전도자는 그의 지도를 받은 자들이 신앙적으로 성장하며,
진리대로 행할 때에 기쁨을 얻습니다. 그 이유는,
(1) 그들의 영적 성장이 그의 수고에 대한 유쾌한 보답인 까닭이며,
(2) 또한 내세에 이르러 그들이 그의 면류관이요 상급이기 때문입니다(고후1:14;빌4:1)
3. 선교를 위한 협력(5~8절)
1)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다(5절)
“[5]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신실한 일이니 란 말은 신실하게 한다 라고 개역할 수 있습니다.
곧, 가이오는 물질로써 전도 여행자들을 돕는 일에 있어서 착실하다는 말씀입니다.
2)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6절)
“[6]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너의 사랑을 증거하였느니라 기독신자들은 물질로써 남들을 도와야 합니다.
그런데 그 돕는 방법에 있어서 사랑이 동기가 아니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사랑으로 행치 않는 경우는,
(1) 마지못하여 하는 경우,
(2) 명예를 위하여 하는 경우,
(3) 자기 개인의 어떤 이득을 위하여 하는 경우 등입니다.
가이오는 전도여행자들을 물질로 도와주되, 사랑으로 접대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의 사랑을 받은 그 전도여행자들이 교회 앞에서 그를 칭찬합니다.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역자들이니 만큼, 그들을 귀히 여겨 물질로써 대접하여 전송함이 옳다는 말씀입니다.
3)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7절)
“[7]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위에 말한 전도자들은 생활비를 받지 않고 이방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생활비를 도와주는 성도들이 있어야 됩니다.
4)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8절)
“[8] 그러므로 우리가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물질로써 전도자를 돕는 자들( 우리 )은 그 전도자의 복음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 됩니다.
함께 수고하는 자 란 말은 동사자들 이라고 함이 바른 번역입니다.
물질로써 전도자들를 돕는 것이 역시 전도의 수고에 동참하는 귀한 일이라는 것은 바울도 말하였습니다(빌1:7;4:14,18).
4. 악한 디오드레베(9~10절)
1)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드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 들이지 아니함(9절)
“[9]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두어 자를 교회에게 썼다 함은, 사도가 어떤 전도여행자들을 잘 접대하라는 의미로 그들에게 소개장을 써 주었다는 의미입니다.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 곧, 교회의 지도자들 가운데, 머리가 되고자 하는 사람 디오드레베 란 말입니다.
높아지려는 야망이 있는 자는 언제나 남을 위해 봉사하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디오드레베란 사람도 사도의 소개장을 가지고 간 전도자를 접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를 접대하지 아니하니 란 말은 사도의 소개장을 가지고 간 전도자들을 접대하지 않은 것을 의미합니다.
2)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10절)
“[10]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남을 헐뜯음은 비열한 야심가(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의 상습입니다.
그는 그것으로써도 만족하지 못하고( 유위부족하여),
사도의 소개장을 가지고 간 전도자들을 저 자신도 접대하지 않을뿐더러,
남들로 하여금 그런 전도자들을 대법하지 못하도록 금한 것입니다.
5. 선한 것을 본받으라(11~12절)
“[11]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12]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
1)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11절)
“[11]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선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께 속하는 방법이라기보다, 하나님께 속한 결과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생활은 필연적으로 선한 행실을 산출합니다.
신본주의 선악관은 사도 요한의 신학 사상인 동시에, 역시 바울의 것입니다.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곧, 영적으로 하나님을 본 적이 없다 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하나님을 확시히 알게 된 체험이 없다는 것입니다.
2)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12절)
“[12]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
데메드리오 라는 사람이 여기서 모범인 인물로 천거됩니다.
그는, (1) 공중에게서 선한 자라는 증거를 받았으니,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원만한 덕망의 인물이며,
(2) 복음 진리의 판단 아래서도 선한 자로 합격하였으니,
꾸밈 없이 진실하게 선을 힘쓴 인물이고,
(3) 우리(사도들)도 인정하는 선한 자니,
가장 신임할 모범 성도이다 라고 소개합니다.
6. 끝인사(13~15절)
1) 대면하여 말하리라(13~14절)
“[13] 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14] 속히 보기를 바라노니 또한 우리가 대면하여 말하리라”
요한 이서에서도 같은 인사를 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대면하기를 원하는 것은 만남이 기쁨을 주기 때문입니다.
시16:3절“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실한 성도는 신앙과 질적으로 같은 신앙의 소유자를 중심으로 즐거워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서로 만나 대면하기를 늘 원합니다.
2) 평강이 네게 있을 지어다(15절)
[15]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여러 친구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너는 친구들의 이름을 들어 문안하라”
평강 은 영적 평강을 말하는바, 그것은 신자에게 늘 필요합니다.
신자에게 그것이 없으면, 그는 환난과 질고가 많은 이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영적 평강은 신앙하며 회개하는 진실한 신자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여러 친구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너는 친구들의 이름을 들어 문안하라.
사도들은 성도들 사이의 문안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하늘나라 일에 관심이 깊은 신자일수록 땅위의 인사를 무시하지 않아야 됩니다. 신자의 생활은 초자연 관계에서 뿐 아니라, 자연 관계에서도 충실해야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사랑으로 격려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1,2절).
가이오를 향한 따뜻한 인사와 기도의 내용은 요한의 깊은 사랑과 하나님에 대한 순전한 믿음을 알게 해줍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과 범사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전인이 하나님의 섭리와 통치 안에서 살아가길 바라는 아버지의 심정과도 같은 것입니다.
요한이 가이오에게 품은 아버지의 마음처럼,
내가 격려하고 사랑하며 기도해주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2) 진리 안에서 행한 섬김이 기쁨의 열매를 맺습니다( 3,4절).
가이오는 칭찬이나 보상을 바라고 순회 사역자들을 환대하고 후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환대와 후원을 받은 이들이 가이오의 따듯한 섬김과 신실한 마음을 요한에게 증언했고, 이로 인해 가이오는 요한과 많은 이들로부터 큰 칭찬과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귀한 사역에 동참하게 되는 복을 누렸습니다.
진리 안에서 행할 때 섬기는 자나, 섬김을 받은 자나, 섬김의 소식을 들은 자나 모두 함께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가장 크게 기뻐하십니다.
지금 내가 교회에서 섬기는 일은 무엇이며, 어떤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까?
혹 섬긴 후에 기쁨과 감사한 마음보다는 내 섬김을 잘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서운함과 억울한 마음이 더 크지는 않습니까?
3) 섬김이 곧 동역입니다( 5-8절).
가이오의 신실한 섬김은 순회 사역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가이오의 섬김이 형식적인 것이 아니었기에 그들은 그것을 사랑이었다고 증언합니다(6절). 순회 사역자들과 가이오의 모습은 그래서 닮아 보입니다.
보상과 대가 없이 곳곳을 방문하며 복음을 전한 사역자들의 귀한 헌신과 진리와 사랑 안에서 자기 것을 나누어 형제를 영접한 가이오의 행동은 오늘 우리가 교회 안에서 어떤 동역을 이루어가야 하는지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같이 순수하고 자발적인 헌신을 통해 확장되어갑니다.
개인적으로 또는 교회에서 후원하는 기관과 선교사님들이 계십니까?
4) 으뜸 되기보다 섬기고 대접하기를 좋아해야 합니다(9,10절).
예수님은 자리다툼을 하는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가복음 10장 44절).
디오드레베는 장로(사도 요한)와 형제들의 방문을 완력으로 막아낼 만큼 교회 안의 힘 있는 인사였지만, 가진 힘을 주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가 스스로 높아져서 교회 위에 군림하며 교회를 좌지우지했지만,
그로 인해 교회는 분쟁과 다툼으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예수님의 몸된 교회는 결단코 이와 같은 지도자를 원하지 않습니다.
교회 지도자의 자리는 겸손히 섬기는 자리이며 나뉜 것을 하나 되게 하는 자리입니다.
진정한 권위는 자리나 지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성품과 모범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과 존경은 강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지도자들이 그런 지도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5) 악한 일은 거부하고 선한 일은 계속해야 합니다(11절).
요한은 가이오에게 디오드레베의 반대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순회 사역자들을 환대하고 후원하라고 격려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선한 일을 하기 위해 악한 일을 거부하고 악한 자들과 싸워야 합니다.
6) 지금 있는 곳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실함과 성실함을 인정받아야 합니다(12절). 교만한 디오드레베와는 대조적으로,
데메드리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평을 받았습니다.
진리 안에서 선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는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어떤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습니까?
사람들의 평가에 지나치게 연연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의 평가를 아예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진리(하나님의 말씀)를 기준으로 우리의 삶을 점검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공동체-사랑으로 격려하며 기도하고,
기쁨으로 후원하는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형제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선한 일에 앞장서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열방-‘예수 영화’와 ‘복음 동영상’ 관련 애플리케이션이 출시되었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선교 제한 지역에서도 선교가 활발히 전개되도록 몰디브에서는 성경을 인쇄할 수도 판매할 수도 없으며,
성경이 발각되면 투옥된다.
몰디브에 성경이 배포될 길을 열어주셔서 신자들이 영적으로 자라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