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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의 로맨티시즘...... 그 부연(敷衍) - 김승웅 -
지금 제주도 서귀포에 와서 이 글을 쓴다. 어제 이 시간에 띄웠던 글 “지금도 깨어보면 중학동 술집인걸!” 역시 이곳 서귀포의 호텔에서 일박 후 쓴 글이다.
너 무슨 유명 작가 행세 하냐? 호텔에서만 놀게......하고 자문도 해보지만, 지금 몸담고 있는 재외동포재단의 공식 출장 일정의 하나로, 며칠 전 저희 재단이 주관한 제 6회 한민족 문화 공동체 대회를 성공리에 마치고 그 대회에 참석한 해외 예술인동포 40명을 인솔, 그 분들의 노고를 풀어드리고자 2박 3일 예정으로 이곳 제주도에 관광차 내려 온 것이다.
호텔 객실 창 밖으로 멀리 해안가가 펼쳐 있다. 백사장의 흰 모래가 눈부시고, 오후의 햇살을 즐기는 몇몇 산보객들의 모습도 저 멀리 보인다. 신혼부부들 같다. 아니면 이웃 후꾸오까에서 단체로 놀러온 일본 관광객들인지도 모른다.
뭐라 자기들끼리 크게 손짓하며 떠드는 듯싶은데, 바닷소리에 덥혀 들리지가 않는다. 백사장은 그 몇 배나 더 긴 갯벌로 이어지고, 그 갯벌이 끝나는 곳에서 바다가 시작된다.
바다는, 특히 지금처럼 먼발치로 보이는 한 낮의 바다는 신비롭기 그지없다. 무릇 바다란 가능한 한 멀리 두고 봐야 제대로 보는 바다라 여긴다.
바다에서 섬 쪽으로 이따금 바람이 불어온다. 언뜻 지중해 연안, 마그레브의 한 여름이 떠오른다.
멀리 아프리카 알제리의 해안도시 제밀라 해변의 새벽,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제신(諸神)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던 반항 작가 알베르 까뮈가 보낸 어느 여름 말이다. 까뮈가 중편 에세이 제밀라의 바람에서 묘사한 알제리의 해변은, 밤이면 신들이 거닐고 숲 속의 나무와 나무, 풀과 풀이 대화를 나누는 이상한 해변이다.
까뮈가 젊은 시절 여름을 보내러 자주 찾았던 그곳 제밀라에는, 대부분 모조품이긴 하지만 로마의 유적들이 잘 보존돼 있다. 그가 작품 속에 곧잘 드러내 보인 부조리나 반항적 기질은 그런 허구와 조작에 대한 혐오와 불신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여긴다. 아니면 그런 부조리의 동네 제밀라를 부러 찾았는지도 모르고......
그가 소설 이방인 에서 조립해 낸 주인공 뮈르소 라는 인물은 그러고 보면 그 제밀라 해변의 바람 속에서 신들의 속삼임을 전해 듣고 못되게 변신한 작가 자신일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주인공 뮈르소는 어머니가 죽은 바로 다음 날, 술집 여자를 방안에 불러들여 분탕질을 치고, 해변에 나와서는 아랍인을 권총으로 쏴 죽이고, 방아쇠를 당긴 이유 역시 "해변의 강한 햇볕 때문 이었다"고, 반문명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다음 날 새벽, 나는 습관대로 일찍 잠에서 깼다. 침대 머리의 디지털시계를 본 즉 새벽 4시. 바닷소리가 들려왔다. 침대에 누운 채 바닷소리를 한참 들었다. 바다는 밤새껏 앓고 있는 짐승의 소리를 냈다.
오순이가 저렇게 울었다. 온 몸이 까만 암컷 진돗개였는데, 까마귀 오(烏)자에 순 하라고 순(順)자를 붙여 지은 이름 덕인지 정말 순했다. 허나 식구들한테만 순했을 뿐이다.
1년 사이 도둑고양이를 다섯 마리나 물어 죽였다. 마당 한 구석에 질펀하게 패대기쳐진 그 고양이 사체를 치우느라 나와 아내는 번번이 눈을 부릅뜨고 싸움을 벌여야 했다. 고양이 사체를 비닐 팩에 담아 넣는 일, 또 그걸 대문 밖 쓰레기 하치장에 옮기는 걸 두고 아내와 내가 서로 미뤘기 때문이다.
결국 오순이를 남한테 주기로 결정하고, 평소 개를 좋아하는 양천 구청 배수장(排水場)집 주인한테 맡겼으나 한 달이 채 못 갔다. 보고 싶어 못 견뎠기 때문이다. 나야 아내 몰래 사흘 걸러 배수장을 찾았고, 먼발치로 오순이를 보고 오면 됐지만...... 아내는 달랐다. 점점 말 수가 줄더니 막판에는 실어증 증세까지 보이는 것이다. 안되겠다 싶어 오순이를 다시 데리고 오기로 작정했는데, 문제는 그 배수장 집 주인더러 뭐라 말한단 말인가? 나만 실없는 놈 되는 거 아닌가?
그 고민을 나의 전 직장 동료인 국회 사무처의 사진작가 최석민한테 털어놨더니 "그런 건 나한테 맡기라"며 오토바이를 타고 떠났다. 그리고 배수장 집 주인을 만나 내 아내의 실어증까지 설명한 후 가까스로 오순이를 데리고 올 수 있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돌아 온 오순이는 그러나 네 발바닥 모두가 홀랑 까진 채 피를 철철 흘렸다. 최석민, 이 우라질 놈! 낯선 사람의 오토바이에 끌려 따라오기를 한사코 거부하다 시멘트 포도에 발바닥 네 개가 다 닳아 발가락뼈가 드러날 정도로 저항했기 때문이다. 진돗개는 그 정도로 독종이다.
돌아 온 오순이는 밤새 앓았다. 지금처럼 새벽의 바닷소리를 내며 앓았다. 오순이는 이제 우리 집에 살지 않는다. 발바닥에 생살이 돋고 반년이 지나 또 한 번 사고를 쳤기 때문이다. 대문 틈을 비집고 나가 동네 집 애완견을 물어 죽인 것이다. 물린 개는 두 달 후 죽었고, 그 동안 동네 가축병원에 우리가 문 치료비만 50만원이 넘었다.
결국 길 건너 대우 세탁소 주인의 차에 실려, 그의 장모가 사는 충청도 서산 시골집에 끌려가 살고 있는데, 서울 살 때와는 달리 묶여 살고 있다고 들었다. 풀어 놓으면 되돌아 올 게 뻔한 탓이다.
얼마 지나 세탁소에 들려 오순이 안부를 물은 적이 있는데, 세탁소 주인은 매일 밤 온 동네가 시끄러 원성이 잦다는 장모의 말을 그대로 전하며, "아따, 웬 눔의 개가 그리 청승맞게 운대 유?"라고 입을 삐죽거렸다.
오순이가 울다니......발바닥 까졌을 때 빼고는 운 적이 없는데! 그 후로는 오순이 안부를 묻지 않았다. 그렇게 1년 넘게 오순이 생각을 접고 살았다. 그러다 이번 출장으로 제주도에 내려와 그 첫 새벽, 바다한테서 그 오순이의 울음소리를 들은 것이다.
요즘도 매일 밤 울까? 침대에 누운 채 오순이 울음소리를 계속 들었다. 기껏 짖을 줄만 알던 오순이가 이제 맘 놓고 울기까지 한다...... 아, 제발 바라건 데, 오순아! 매일 밤 울어줘!
오순이 년, 제법 아닌가? 이제 울 줄도 알고, 지 년한테 우는 성대도 갖춰져 있는 걸 만각(晩覺)한 거 아닌가! 처음엔 까진 발바닥의 통증을 통해 울음을 깨쳤지만, 막판엔 옛 주인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까지도 매일 밤 울음으로 표현 할 줄 안다는 것 아닌가?
바다는 그래서 신비로운 것이다. 까뮈가 제밀라의 바람 속에서 듣던 그 신비를 나는 제주 섬의 우는 바다를 통해 듣게 된 것이다.
<‘왕초’ 장기영과의 한 판>을 마무리하고, 오늘부터 글의 무대를 김포(金浦)공항 시절로 옮길까 한다. 김포 공항과는 이번 제주도 출장가면서 한번, 오면서 또 한 번, 이렇게 두 번 만났다.
이곳 제주로도 내려오던 첫 날, 나는 까다로워진 탑승 점검을 받느라 두 손을 번쩍 들고 김포 공항 검색대를 통과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자탄했다. 맞아, 이 김포공항 시절을 하마터면 빼먹을 뻔 했잖니!
그리고 제주도에서 두 밤 자면서, 온 종일 <김포 시대>를 여는 방법만을 구상했다. 거기서 얻은 해답이 바로 새벽 바다한테서 들은 우리 오순이의 울음 이었다.
<중학동 시절>을 대충 마무리함에 있어 내개 결코 빠트릴 수 없는 곳이 바로 김포 국제공항 출입시절이다. 지금은 국내선만 뜨고 내리는 공항이지만, 그 때만 해도 어였한 국제공항이었다.
사츠마와리(察廻) 후 외신부 기자 3년을 마친 내가 다시 사회부로 돌아와 처음으로 부여 받은 정식 출입처가 바로 김포 국제공항이었다.
그 사이 국방부 출입을 1년 남짓 했지만, 내게는 까마득히 높은 부장 대우 급 조장(組長) 뒤를 따라 다니는 조수(助手)로 출입한 만큼, 지금도 어디 가서 국방부 출입기자 했노라고 큰 소리 치지는 못한다.
정식 출입처로 김포 국제공항을 배정 받고서야 나는 본격적인 취재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그 때까지 내 어느 구석에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어느 구석에 쳐 박혀 있는지도 까마득히 몰랐던 저항과 투지를 만각(晩覺)한 것이다!
낙종하면 이를 갈았고, 기어코 덤벼들어 특종도 해 냈다. 기자로서 독이 오른 것이다. 평생 짖기만 했던 우리 오순이가 마침내 울 줄도 아는 성견(成犬)으로 바뀌듯, 나 역시 맨 날 함량 미달 이라는 자학에서 깨어나 "아, 나도 울 수가 있다!" 는 자신감을 발견한 시절이었던 것이다.
그곳, 공항에서 만 3년을 뒹굴었다. 공항 장돌뱅이가 된 것이다. 당시의 김포 공항은 60-70년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소였다. 또 하나, 제가 지금 <김포 시절>에 애착을 갖는 보다 중요한 이유가 뭔지 아시는가? 그 김포 국제공항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라진 <동숭동>에서 소멸의 미학을 만끽했듯, <김포 시절>을 통해 나는 다시 한 번 그 소멸의 아름다움을 노크하고 싶은 것이다.
자, 독자 여러분을 지금부터 30여 년 전의 김포 국제공항으로 안내한다. 그리고 그 첫 이야기를 안개로 시작한다.
항공기의 천적(天敵)은 안개다. 공항 활주로에 안개가 꼈다 하면 모든 항공기의 발이 묶이고 만다. 눈이나, 비, 강풍이나 천둥에도 끄떡없이 이착륙을 감행하는 파이로트들도 일단 안개만 꼈다 하면 맥을 못 쓴다.
맥을 못 쓴다는 표현은 어폐가 있을지 모른다. 안개 속이라도 이착륙을 못할 건 없다. 그것도 자동차처럼 핸들조종이 아니고 자동계기착륙(ILS)에 의한 계기 조종인 탓에 계기만 맞춰놓으면 저절로 뜨고 내리는 것이 항공기의 특징이다.
그런데도 굳이 안개를 마다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시계(視界) 탓이다. 5백m 전방에 안개 때문에 아물거린다고 치자. 다른 항공기나 차량이 눈앞에 불쑥 나타날 경우 급정거나 급회전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불행하게도 항공기에는 갖춰져 있지 않다.
장애물과 맞부닥뜨릴 확률은 몇 만분의 1이다. 그러나 이 몇 만분의 1이라는 확률이 적중됐다고 할 경우 그 피해는 한 두 사람의 피해로 끝나지는 않는다. 점보기 같으면 5백 여 명의 승객이 눈 깜빡 할 사이 생 화장을 치러야 한다. 안개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이런 데서 연유한다.
김포(金浦)공항엔 유별 안개 끼는 날이 많았다. 지형적으로 한강을 끼고 발달한 평야지대여서 그런지 바다와 연한 일본의 하네다나 뉴욕 공항 같은 이점을 갖지 못한다.
공항의 안개는 숱한 애환(哀歡)을 낳는다. 안개 때문에 출국이 지연되어서 도착 날짜를 어겨야 하는 파독(派獨) 간호원, 10년만의 상봉을 못 이루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중동 근로자가족들, 발 묶인 외국 여행객의 숙박을 부담해야 하는 항공사 직원들......
이따금 로맨티시즘도 낳는다. 공항에 발을 들이던 그 해, 초봄의 일이다. 그날따라 예의 안개가 자욱했다. 대한항공 출국 카운터 앞에 웬 흑인 미녀가 서 있다. 날씬한 몸매, 성장한 옷차림으로 미루어 흑인 치고는 수입이 좋은 편에 속하는 듯하다. 두 시간 남짓 카운터를 떠나지 않는 걸 보면 안개가 걷히기만을 바라는 듯하다.
카운터 앞을 지나는 다른 승객이나 항공사 직원들한테 의미 있는 웃음을 보낸다. 그 웃음이 묘하다. 단순이 외국인에게 보내는 의례적인 웃음은 아니다. 아니나 다르랴. 그 웃음에 걸려든 사내가 하나 나타난다.
도준명(都俊明)씨(39)다. 도씨는 서울-홍콩 간을 1주일이 멀다 하고 왕래하는 비즈니스맨으로, 김포공항을 뻔질나게 출입하는 여러 사람 가운데 각별히 신문기자의 시선을 자극하는 인물이다.
호화로운 넥타이, 자주 바뀌는 동반 여인, 훤칠한 용모로 미루어 가히 일급 레이디 킬러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흑인 여자의 웃음에 말려든 게 아니라, 말려든 척 한 것이다. 여자에 관한 한 그 만큼 노련한 사내다.
나는 언젠가 도씨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홍콩에 내린 적이 있다. 일부러 비행기 뒷좌석에 골라 앉은 채 홍콩계 스튜어디스와 노닥거리는 폼을 눈 여겨 관찰한 적이 있다. 도씨는 물론 내가 누군 질 모른다. 내가 그의 인적 사항을 손바닥처럼 꿰고 있음은, 그 때 홍콩 카이탁 공항에 내려 그가 적어내는 입국 카드를 어깨 머로 훔쳐봤기 때문이다.
도씨의 수작이 시작된다. 유창한 영어다. "발이 묶이셨군요. 아가씨!" "예스"
두 남녀는 흡사 10년을 알고 지낸 것 이상으로 자연스런 대화를 나눈다. 둘은 벌써 2층 카페테리아로 옮겨 커피를 마시기로 약속을 한 것 같다.
안개 낀 날은 기사거리가 없다. 손님이 내리고 뜨지 않는데 무슨 기사가 있을 손가. 굳이 있다면 "오늘 김포 공항은 짙은 안개로 오사카 행 KAL○○2편 등 10 여건의 여객기가 발이 묶였다" 는 1단 기사가 고작일 뿐이다. 그것도 전화로 부르는 기사인 만큼 실리지 않는 기사가 되기 십중팔구.
두 남녀의 뒤를 따라 나 역시 카페테리아로 들어선다. 식당 내부를 한 바퀴 돌고 난 뒤 짐짓 마땅한 자리가 없는 척 머뭇거리다가 남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도씨는 는 내 쪽으로 등을 보이고 앉아있다. 취재(?) 하기가 편하다.
"내 이름은 도(都)요. 홍콩에 사무실을 내고 있지" "전 다이앤, LA에서 TV광고에 출연하는 광고모델이고요" 다이앤이 예쁜 입술을 만지며 (그러고 보니 말할 때 입술을 만지는 버릇이 있었다) 신상 소개를 했다.
비누 광고의 모델이라! 피부는 검지만 먼발치로 봐도 무척 보드라워 보인다. 휴가를 얻어 동남아 관광을 한 후 오늘밤 로스엔젤리스 행 대한항공을 타려다 발이 묶인 것이다.
두 사람은 긴 말을 나누지 않았다. 사내가 커피 값을 치른 후 여자와 함께 식당을 나선다. 택시 정류장 쪽으로 걷는 걸 보면 공항을 벗어나려는 게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 다 짐을 들고 있지 않다. 짐 보관소에 기탁시킨 후 안개가 걷히면 다시 출국 수속을 밟으려는 게 빤하다. 택시를 탄 남녀가 공항 밖으로 사라진다.
흥, 너희들이 가면 어딜 가. 부처님 손바닥이지...... 나는 10분 후 공항 근처 호텔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거기 호텔이죠? 여기 공항 항공산데, 거기 흑인 여자 손님과 한국 남자 안 들었어요? 방금 들어섰다고요? 아니, 됐어, 바꿔줄 필요 없어요. 거기 계시면 됐어요" 찰칵!
안개는 아직껏 가실 줄 모른다. 여행에 지친 사람들에게 안개는 무척 고마운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안개 때문에 인연을 맺고 안개가 걷히는 순간, 그 인연도 끝나는 공항의 생리. 김포엔 그런 로맨티시즘이 있다.
06년 10월 1일자 글방 저장함 <김승웅>
명상음악 - 남은세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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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실존에 대해 뭘 좀 알겠다고 꺄뮤의 시지프스 신화, 이방인 을 읽고
정신세계가 혼란 스러웠던 생각이 새삼 납니다.
사춘기였으니 당연했고요.....
무릇 바다란 가능한 멀리두고 봐야 제대로 보는 바다라 여긴다.
바다에서 섬쪽으로 이따금 바람이불어온다.
언뜻 지중해 연안 마그레브의 한여름이 떠오른다.
역시 글 잘쓰시네요.
참 아름다운 글을 읽게 해주신 해바라기 님에게
감사하단 말씀 드리고요.
(ps: 공항얘기 읽고 앞의 좋은 글 맛이 조금은 반감이 됬습다.)
1969년, 나는 한국일보가 지척에 있는 견지동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어디선가 발자국끼리 만났겠다 싶으니 글맛이 새롭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