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철학과 생명사상 과정이 드디어 첫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초록온배움터의 철학적 바탕을 만들고 우리가 꿈꾸어야 할 세상을 그리는 작업이 이제 시작된 것이라 여깁니다.
처음이라는 설렘에 다들 살짝 긴장들 하셨는지 모두 진지한 표정으로 공간초록에 모였습니다. 청강생까지 포함해 모두 16분이 오셔서 성황리에 시작되었습니다.
교수님이 오시고 바로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강의 내용을 아래에 간략히 요약해 보았습니다.
< 간단한 강의 요약 >
로렌츠란 사람은 현대문명이 범한 8가지 죄약을 1974년에 발표하면서 첫번째로 꼽은 것이 인구과잉이었습니다. 두번째가 자연 생태계의 황폐화였고 경쟁의 심화나 감정의 냉각화, 유전적 퇴화 등의 문제를 적시하며 마지막으로 핵무기를 들었습니다. 서양에서는 70년대부터 자연생태계의 황폐화를 우려했던 점에 비해 우리는 최근에서야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칼 세이건은 <에덴의 용>에서 지구의 역사를 150억년으로 보고 이를 1년의 달력으로 만들어 비유를 해보았다고 합니다. 1월1일이 천지창조의 날이라 한다면 9월 중순경에 생명이 첫 탄생을 했다더군요. 인류의 출현이 12월 31일 오후 1시쯤 되고 20세기 문명은 자정을 넘기기 10초전 쯤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현대문명이 일천한 역사를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10초 전의 일이 지금 전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다니 인간이 더 겸허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Ecology란 말은 1866년 독일 에러스트 헤켈이라는 사람이 처음 만든 조어라고 합니다. 이 Eco란 말은 '집'이란 뜻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Economy(경제)란 집을 지배하다란 뜻이라고 한다면 Ecology는 집에 대한 학이라 할 수 있는데요, 생태학적 위기란 말은 집이 무너지고 있다란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이 생태학적 위기의 증상은 수없이 많습니다. 가장 반생태적 행위라고 할 수 있는 전쟁과 핵, 물부족, 공기의 오염, 산림의 파괴로 인한 대기의 오염과 산성비, 온난화, 음식의 저질화, 육식과 유전자 변형식물로 인한 땅의 죽음, 에너지 자원의 고갈, 과소비와 음식물 쓰레기(한국에서 음식물 쓰레기 처리비용만 20조라고 합니다.) 그리고 속도에의 중독, 사막의 가속화, 늪지와 갯벌의 파괴로 인한 수많은 종의 멸종 등 모든 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희망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먼저 사회구조를 변화시켜야겠습니다. 성장 중심에서 생태 중심의 사회로 바뀌어야 겠습니다. 자본주의는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는 악질적 자본주의사회 속에 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인류 역사의 끝으로 보고 더이상의 새로운 형태는 없다고 역사의 종말을 고하는 학자도 있습니다만, 또 어떤 학자는 자본주의는 이제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자본의 종말을 고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무엇이 맞겠습니까. 자본주의 문제와 생태적 문제를 같이보고 자본주의사회구조의 변화를 요구하는 생태주의자를 사회생태론자 혹은 레드-그린, 쇼셜에콜로지(social ecology)라고도 합니다.
이런 사회의 변화에 앞서 우리 인간 자신도 변해야할 것입니다. 문화적 혁명을 통해 개인적 습관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습관의 변화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쓰레기 덜버리기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많습니다.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윤리만으로 풀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변화를 간과할 수 없습니다. 인간 자신의 변화는 무엇보다 생태중심적 사고로 전환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생태중심적 사고란 유기체적 세계관 혹은 전일적 세계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기체론적 세계관이란 모든 생명을 관계의 망으로 보는 것을 말합니다. 다양성과 공생, 무엇보다 영성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틱낫한 스님은 이 한장의 종이에서 구름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구름이 있어야 비를 내리고 비가 내려야 나무가 자라고 그 나무에서 이 종이가 만들어 진다고 했습니다. 또 이 종이 한장에서 햇볕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햇볕이 없으면 결코 숲은 성장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눈 앞에 있는 이 종이 한장을 보며 들판의 밀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목재를 벌목한 노동자의 점심 도시락으로 나온 빵을 볼 수 있어야 하고 그 도시락을 싸준 아내를 볼 수 있어야 하며 그들의 부모님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바라볼 줄 아는 것이 전일적, 유기체적 세계관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함께 존재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모든 사물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영성이라 할 수 있겠는데, 이 영성적 세계관을 강조하는 생태주의자를 심층 생태론자, 그린-그린, 딮 에콜로지( Deep Ecology)라고 합니다.
이런 생각은 러브록의 가이아 이론에서도 찾아볼 수 있고, 장회익 교수의 온생명론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러브록의 가이아 이론은 지구도 하나의 생명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조절기능 즉 항상성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에서 어머니같이 유기적으로 살아있는 존재로 지구를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장회익 교수의 온생명론은 여러 지점에서 들을 만합니다. 생명은 자족성을 갖춰야 한다고 할 때, 개체단위의 생명은 온전한 생명이라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모든 개별적 생명체들은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습니다. 바람 공기, 음식과 에너지를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기에 온전한 생명단위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의 개체적 생명을 낱생명이라 할 때, 이 낱생명을 살리고 살게끔 해주는 다른 생명들을 보생명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족성을 기준으로 볼 때, 생명의 단위는 태양계로 보는 것이 옳다라고 합니다. 즉 태양계 자체가 하나의 생명단위라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장회익 교수는 이를 온생명이라고 부릅니다. 생명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 온생명론의 의의라 할 수 있겠습니다.
또 고민하고 바뀌어야 하는 문제가 욕망과 충족체계라 할 수 있습니다. 욕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불교에서는 욕망을 버리라 합니다만 사실 버리기 힘듭니다. 너무 욕망을 단순화 시키는 것은 아닌가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거짓된 욕망, 왜곡된 욕망은 버려야 할 것입니다. 선한 욕망, 생태적 욕망으로 전환해야 할 것입니다.
에너지 전환도 중요합니다. 편리한 생활은 댓가를 치를 것입니다. 고에너지 사회에서 저에너지 사회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속도에 중독된 이 사회를 경계해야 하며 버림과 비움, 쉼과 느림, 게으름의 의미를 바로 알아야겠습니다.
이것 말고도 교수님께서는 신성과 불성, 영성의 회복과 장일순 선생님의 이야기, 범어사에 계시느 무비스님의 연화실(http://cafe.daum.net/bookyumhwasil/)의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연화실카페주소를 한번 클릭해보시라고 하시더군요. 우리가 가야할 것은 파괴와 죽임이 문명에서 살림과 생명의 문명으로 전환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강의를 마치셨습니다.
<다음 강의 안내>
첫 강의인데 너무 많은 이야기를 두시간 연달아서 수업하셨습니다. 생태철학의 다양한 범위와 넓은 스펙트럼을 한번에 보여주신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실제 동서양을 아우르는 생태철학적 담론을 이야기하시는 분이 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귀한 시간이 되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음 강의는 함양온배움터의 유상균 선생님께서 '과학과 생명 -과학이 자연과 생명을 바라보는 관점과 방향' 이란 주제로 강의를 하십니다. 물리학을 전공하시고 유학까지 다녀오셨는데 함양 녹대의 가치에 동의하시고 초기부터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시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어려운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 과학의 핵심적 원리를 토대를 자연과 생명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강의하는 재밌는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혹 첫 강의에 오시지 않으신 분이라면 두번째 강의는 놓치지 마시길....
이상 생태철학과생명사상 강좌의 조교를 맡은 채상병의 강의 스케치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사진제공 : 정중효
첫댓글 강의를 못들었는데 생생하게 기록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