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100만이 넘는 도시에, 2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무등산이 있다. 이토록 가까운 곳에 이토록 높은 산이 넉넉한 품으로 있다는 건 광주
시민에게 엄청난 행운이다.
오늘
모니터링 장소는 처음 가본 곳이다. 뭐든 처음이란 문구에선 원시림같은 풋풋함과 설레임이 있지만, 이번엔 명색이 숲 해설가인 내가 도심의 지척인
이곳을 처음 왔다는 건 챙피한 일이다.
그렇다....
아직도 내게 숲이란 가깝고도 먼 곳이다. 마음으론 가고 싶지만 만사를 제쳐두고 갈 수 있을 만큼 숲과 나의 관계는 아직도 어색한 관계인지도
모른다. 숲은 매혹적으로 다가오고 있지만 나는 숲 아닌 곳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진실로 서고
싶은 곳이 숲 속임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 요즘 나의 아이러니다. 오늘도 여기 오려하니 숲 바깥의 것들이 나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이럴 땐
가장 단순해져야 결론에 도달 할 수 있다.. 가장 솔직하게 자신에게 물었다 ‘넌 어디에 있고 싶으냐?’ 물론 대답은
‘숲’이었다. 이럴 때 보면 세상은 참 공평하다. 절대로 한꺼번에 두개를 가질 수 없다. 하나를 온전히 갖기 위해선 온전히,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지금까지 나의 삶은 하나를 온전히 갖지도 내놓지도 못한 어정쩡한 상태가 아니었을까.. 뭔가를 위해 다가서고 잡으려하는 순간이면 늘 허무의
그림자가 앞을 막고 냉소적인 웃음을 보냈다. 한가지에 완전몰입할 수 없었던 건 나의 게으름 탓도 있겠지만 더 본질적인 건 내 그리움의 대상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 무엇이었다. 그 무엇에 구체적으로 다가온 것이 숲, 숲, 숲.... 일지도 모른다.
11시에
문빈정사에 도착하니 박계순 선생님, 윤은주 사무국장님, 그리고 오늘의 모니터링을 지도해 주실 작은나무 김형은 선생님이 계셨다. 오늘의 코스에
들어서기 전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꽃부터 망초인지, 개망초인지가 헷갈린다. 챙피를 무릎쓰고 물어보니 꽃대를 보고서 개망초라한다. 개망초는
본가지의 꽃대보다 곁가지의 꽃대가 높아 애비도 모르는 놈이라하여 망초꽃 앞에 ‘개’자를 붙인다고 하니 이름과 꽃이 확실히 들어왔다.
예덕나무의 빨간 새순, 기둥을 타고 올라가 환하게 꽃을 피운 마삭줄은 그야말로 꽃기둥을 이루어 진한 향기로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슬레이트
지붕 민가를 끼고 작고좁은 길을 통과하니 숲이 열렸다. 개안을 한 듯 한세상이 열렸다. 나는 갑작스레 펼쳐진 존재의 숲에서 말문이 열린
어린아이처럼 이것저것 두서없이 물어보기에 바빴다. 이런 나에게 김형은 선생님은 나무이름, 꽃이름 하나 말하지 않고도 숲해설은 할 수 있다며
이름알기에만 급급하지 말라고 일침을 놓는다. 고수들이 하는 말이다. 숲이 주는 메시지를 알고 그 느낌을 전달하는 자, 숲 속 어디에서도 숲에
대해 친구를 말하듯 말할 수 있고 느낌을 풀어놓는다는 것이 쉬운 일인가.... 숲 해설가의 길은 멀기만 하다는 생각이다.
수많은
나무와 꽃들을 만났고 골짜기를 흐르는 물소리와 새소리를 귀에 담아보고, 숲향기속에서 5시간을 보냈다. 오늘의 공부를 정리할 겸 제 1수원지 앞에
앉아 숲 바깥을 보노라니 내가 숲 속 존재가 되어 바깥 세상을 보는듯한 느낌, 외경과 내경이 바뀐 듯한 착각에 왜가리의 날아가는 모습이며 여기
오기 전 분주했던 시간조차도 새의 비상처럼 멀어져만 갔다. 잠시 동안의 자리바꿈이었지만 숲 속에서 보고 느꼈던 것들은 숲 해설가인 내게
결코(!) 잊혀지지 않을 시간이었다. 매끈한 몸매의 까만 몸에서 예삐고 깜찍하고 향긋한 꽃을 피워내는 흑인미녀 같은 때죽나무와
함께........!!!
이번
숲학교의 첫번째 모니터링을 마친 나로서는 사뭇 의미가 깊은 시간이었다. 이러한 기회를 마련한 협회에 감사드리며 모니터링을 맡아주신
김형은 선생님은 물론이고 숲에 대한 나의 목마름을 알아주신 박계순 선생님, 사무국장 윤은주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첫댓글 숲과햇살님 너무 반가워요^^ 그날 봤던 마삭줄도 너무 예쁘고.. 그 향기로움이 우리집까지 가득한 걸요^^
박성희선생님은 일찍이 미모와 마음까지 예쁜줄 알았는데 거기에다 이런 글 솜씨에 또 한번 놀랬습니다. 만사에 열성적이고 무언가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달랜트에 저는 많은 것을 느꼈답니다. 역시 배움은 끝이없고 왕도가 없구나하는 생각이.....늘상 알아도 더 알려고하는 생각....저도 한수 배웠습니다. Ha~ha~a
숲과햇살님 반갑습니다. 숲과햇살님과의 만남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고요, 지금 가지고 계시는 열정과희망을 계속 이어가셔서 꼬옥~ 꿈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사진도 제대로 못 찍었지요......^^
박성희선생님이 이젠 숲속을 지키는 나무한그루인걸요..때죽나무 표현 기똥차네요..맛깔스런 글, 후기 잘 읽었습니다. 좋은 날 되셔요!
숲과햇살선생님 글솜씨와 고운 마음씨 그리고 자연에 대한 남다른 시각은 10년도 넘는 오래전 알았었지요. 늘 변함없는 그 마음이 엄마같고 고향같은 분이시지요. 고생하셨습니다. 마삭줄 꽃향기 다 지기 전에 숲에서 숲과 햇살님 보고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