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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아는 한 일본의 지진학자들은 선진국 일본사회 두뇌구룹 중에서도 최정상에 속하는 인재들(앞 글 참조)이며, 이들이 속한 일본지진학회는 다른 나라 여느 지구과학 분야 학회와는 현격하게 다른 권위와 위상이 갖추어진 모임이다. 최근 (2011년 10월 15일) 시즈오카시에서 열린 이 학회 특별 심포지움에서 지도급 지진학자들이 “일본 지진학 최대의 참패”라는 이례적인 구호를 내걸고 열띤 자아비판을 쏟아내어 이목을 끈 바 있다. 그 원인은 바로 일본사회에 궤멸적인 타격을 가한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지진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였던 데 있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경에 일본 태평양 연안 동쪽 약 180km 지점 해역의 지각의 깊이 24km 지점을 진원으로 하는 규모 (M) 9.0 이라는 세계 지진 관측사상 4번째이자 일본 관측사상 최대의 거대지진이 발생하였다. 이 지진으로 도호쿠 지방과 간토 지방의 대부분은 물론 멀리 홋카이도와 일본 중부 산간 지방에서도 강한 진동이 관측되어 큰 혼란이 일어났는데 특히 일본의 수도 도쿄 도심의 첨단 시가지인 오다이바에서도
지진은 지구 내부에서 올라오는 열을 발산시키는 맨틀대류로 움직이는 지구 표면을 구성하는 유라시아판, 태평양판, 북아메리카판, 호주-인도판 등 10 여개의 거대한 판(플레이트)의 운동에 의해 발생하며, 특히 판과 판이 부딪히는 경계에서 큰 지진이 발생한다. 판은 맨틀의 대류운동에 따라 여러 방향으로 움직이는데 같은 판이라 할지라도 균등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지형 및 지역적인 암석 성질의 영향으로 판의 일부가 움직임이 방해를 받아 멈추게 된다. 그러면 멈추게 된 판은 용수철과 같이 탄성응력이 축적되다가 마침내 고착된 부분이 깨지면서 한꺼번에 움직이면서 지진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러한 판에서 고착이 일어난 부분을 고착역(아스페리티)이라고 부른다. 이 고착역의 고착 강도는 지역에 따라 크게 달라서 고착이 강하게 발생하는 판 지역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고 고착이 약한 지역의 판에서는 큰 지진 없이 매끄럽게 판이 움직이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번 도호쿠지진으로 이러한 통념은 무너지게 됨). 지진은 주로 판의 경계부위에 규칙적으로 자주 일어나고 있으며, 우리나라가 위치한 판내부 지역은 지진 발생빈도가 훨씬 적고 매우 불규칙적이다.
지진의 크기를 정하는 척도인 규모(M)는 고착역의 파괴에 따른 판의 탄성운동에 따라 급격하게 움직인 판의 크기와 거리에 따라 결정된다. 특히 해양판이 육지판과 부딪히는 해구지역에는 한꺼번에 움직여 큰 지진을 일으키는 거대 단층면이 존재하는데 지진 관측역사상 최대규모 9.5의 칠레지진은 길이 800km, 폭 200km, 즉 총면적 약 16만 km2에 이르는 단층면이 20m 움직인 결과이며, 규모 9.0의 도호쿠 지진은 길이 500km, 폭 200km의 약 10만 km2의 지역이 최대 20m 움직인 것이다. 도호쿠 지진 이전의 일본 태평양 연안지역 지진 규모는 최대 8.0 정도(2003년 발생)로 1만 km2 정도의 단층면이 3 - 4m 움직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일본의 육상지역 지진 규모는 1995년 코베지진의 최대 7.3으로 단층 규모는 길이 50km, 폭 10km로 해양지진에 비해 매우 작다. 규모 1의 에너지 차이는 약 32배로 만일 규모 8의 지진이 육상지역, 특히 대도시 주변에서 발생한다면 극심한 피해정도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일본의 지진학자들은 근대지진 관측이 도입된 이후 100년 정도의 자료를 바탕으로 도호쿠 지방 앞바다 해구에서 발생하는 지진은 8.0이 최대일 것으로 오판하였다. 즉 2011년의 지진은 평소 3 단층의 고착역 권역으로 나뉘던 곳에서 발생하였는데, 최북단의 규모 8.0의 지진이 발생하는 단층의 지역 이외의 남쪽지역 고착역은 고착이 매우 약하여 큰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었다. 북쪽 단층 권역에서 발생한 2003년 최대지진의 지진해일은 2-3 m 수준이었다. 그런데, 2011년의 지진은 3 단층 권역의 고착역이 한꺼번에 움직여 가정치 8.0을 훌쩍 뛰어넘게 되었는데, 단층 권역의 범위는 도호쿠지방에서 수도권인 간토지방에 이르는 길이 500km에 달하였다. 이번 지진으로 고착이 약한 곳에서는 큰 지진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판단은 성급한 것이었으며, 결과적으로 막대한 피해지진을 예측 못하여 지진학에 대한 신뢰를 크게 실추시킨 것에 반성하는 일본 지진학자들의 보고회가 잇달았다. 뿐만 아니라 향후 3개가 아니라 더욱 많은 수의 단층 고착역이 결합되어 거대지진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일본 해역에서 규모 10.0 수준의 지진이 일어나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는 연구 보고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지진학에 대한 신뢰의 실추와 학자들의 반성에도 불구하고, 최근 일본 정부는 지진에 대한 연구를 북돋우기 위한 막대한 예산 투입을 결정하였다. 가장 두드러지는 대목이 대규모의 해저지진 관측망 정비인데, 여기서 잠시 그동안 추진되어 온 일본의 관측망 정비 내력에 대하여 살펴 보기로 한다.
1995년 1월 17일 새벽 5시 46분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의 근교인 코베시에 규모 7.3의 도시 직하형 지진이 발생하여 다수의 현대식 건물과 고가도로 등 구조물이 붕괴되었고 6434명의 인명피해와 약 150억원 규모의 피해를 당하였다. 일본은 코베지진을 경험한 후 지진 감시를 위하여 기존의 800여 지점에 설치된 지진관측망을 5400여 지점으로 획기적으로 증설하였다. 이 중에는 광대역 지진계 71지점, 깊이 100m 이상 3500m에 이르는 시추공형 지진계 696지점 등 최첨단 지진계 관측망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그 결과, 섬나라라는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지진계 관측망 간격이 20㎞에 불과한 세계 최고 수준의 고밀도 관측망이 완성되었다 (우리나라는 1999년에 56km 간격, 현재 일본 수준에 육박하고 있음). 이러한 시추공 관측망 자료를 토대로 일본 지진학계는 판이 매끄럽게 움직이면서 발생하는 긴 주기의 지진파를 발견하여 세계 최초로 ‘Slow earthquake'의 존재를 입증하는 등 세계를 선도하는 과학적 성과를 축적하고
한편 판의 내부는 큰 지진이 뜸하지만 한 번 발생하면 피해가 매우 커서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1556년 중국의 샨시성 지진은 판내부 지진이며, 비교적 최근인 2008년 5월12일에 발생하여 9만명 가까운 인명 피해가 난 규모 7.9의 중국 쓰촨지진도 이에 속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1978년에 규모 5.0의 홍성지진이 발생하여 건물에 균열이 가고 유리창이 파손되는 등 당시 금액으로 3억여원의 피해가 난 바 있다. 더우기 16-18세기의 한반도에는 홍성지진보다 큰 규모의 지진발생기록이 20차례에 육박하고 있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지진학적으로 지구상에는 지진 안전지대가 없음을 명심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홍성지진 발생을 계기로 6개소의 지진계를 개설한 이후 계속 증설해 2012년 현재 170 여지점에 지진계가 설치됐는데, 각각 10여대의 광대역 지진계와 시추공 지진계가 포함돼 있으며, 1 대의 울릉도 해저 지진계가 운영되고 있다. 일본 수준은 아니더라도 효과적인 지진 감시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측 지점 증설이 필요한데, 특히 시추공 지진계의 증설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본다. 일본이 시추공 지진계를 전국적으로 설치하자마자 첨단의 연구 성과를 올렸듯이 우리나라에서도 그와 같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현재 국내 시추공 지진계가 100m에 못 미치는 얕은 수준으로 좀더 깊은 곳에 설치하는 것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해저 지진계의 경우 한국 해역에는 쓰나미를 일으킬 만한 판경계가 전무해 증설이 그리 급한 사안은 아닐 것으로 본다.
마지막으로, 일본과 미국 등 지진 연구의 선진국은 지진의 관측뿐만 아니라 지진 본연의 기초적인 연구가 매우 활발하다. 이러한 연구는 대학 부설 혹은 국립 연구기관에 수많은 전문인력이 모여서 공동 연구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한국은 얼마 안 되는 지진 전문가들이 각기 대학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 모여 있는 경우에도 기상청이나 지질자원연구원 등 출연 연구원의 기관에 얹혀서 소속 기관의 주요 업무에 매달리느라 지진에 관한 기초연구가 매우 부실한 형편이다. 기초 연구를 바탕으로 지진에 대한 새로운 관측 기법이 개발되고 일본과 같은 지진발생 메커니즘 규명 및 내진 설계 대책 등 효과적인 방재연구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국내 대학이나 연구소에 전문가들이 모여서 지진의 기초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전문 연구기관이 세워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