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양의 우리의 문
배낭여행을 하던 한 젊은이가 지방을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한 떼의 양을 치고 있는 목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이 목자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밤이 되자, 목자는 젊은이에게 양을 보호해 주는 양의 우리를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사면이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오직 들어가고 나갈 수 있는 작은 구멍이 하나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젊은이는 목자에게 물었습니다.
“양들이 이 속에 있으면 안전한가요?”
“물론이죠.”
“하지만 통로만 있을 뿐 그것을 막을 문이 없지 않습니까?”
“네, 제가 바로 그 통로의 문입니다. 양들이 있는 우리 안에는 불빛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저 열려진 통로에 누워 있습니다. 내 몸을 넘어가지 않으면 한 마리의 양도 밖으로 나갈 수 없고, 내 몸을 넘어가지 않으면 어떤 이리나 늑대라도 우리 안으로 기어들어갈 수가 없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야기 속의 목자와 같이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켜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고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어려움에서 건져주시고 평안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구하십시오.
* 기도: 주님! 주님의 보호하심 아래 거하게 하소서.
* 묵상: 항상 곁에서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두 개의 문
그 수용소에는 출입구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사람들이 사라져가는 '하늘 가는 길'이었고
하나는 나치 친위대들이 사용하는 정식 출입구였다. 하루를 그렇게 보내고 나면 밤이 오곤 했다. 내가 의지할 건 내게 계속 말을 거는 방법뿐이었다. 나는 반드시 살아야 한다. 내가 사랑한 사람들을 위해 살아야 한다.
- 마르틴 그레이의《살아야 한다 나는 살아야 한다》중에서 -
* 문은 두 개가 있으나 어느 쪽도 갈 수 없는 절망의 문! 사방이 막혀 내가 갈 길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로지 죽음만이 기다리는 그 절망의 문 앞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합니다. 목숨 걸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반드시 제3의 문이 열립니다. 죽음의 문도, 절망의 문도 아닌 희망의 문!
/고도원의 아침편지
▣ 천국문 앞에서
사람들이 천국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천국문 앞에서 세상을 살아온 자기의 증표를 보여서 문이 열리면 들어가고 열리지 않으면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부자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는 많은 돈을 보이면서 말했습니다.“자, 보십시오. 나는 이것으로 세상에서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다음은 금배지를 보이면서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나는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어서 사람들을 평안하게 살도록 하였습니다.”그러나 천국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목청 좋은 소리로 말했습니다.“제 목소리를 들어보십시오. 저는 이 목소리로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씀으로 증거하여 구원을 받도록 하였습니다.” 하고 자랑하였습니다. 그래도 천국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때 초췌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 나서서 말했습니다.“저는 자랑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열심히 일한 이 손밖에 없습니다.”그리고 그는 거칠어진 손을 보였습니다. 그는 가난하지만 착실하게 살아온 농부였습니다. 그러자 천국문이 열렸습니다.
ⓒ 조동천 목사 미국생활 설교 예화집<우리동네 가나안 이야기> 중에서
▣ 준비하고 문을 열라
내가 자주 찾는 커피숍은 아침 6시에 문을 연다. 고객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일찍 문을 여는 상점 주인이라면 반드시 기억할 게 있다. 이른 아침부터 손님이 찾아왔는데 직원들이 분주히 자기 할 일만 하느라 손님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면 그것처럼 화나는 일도 없다. 커피도, 금전등록기의 거스름돈도 준비되지 않았고 지각한 직원들이 허겁지겁 뛰어 들어오는 모습을 손님에게 보일 바에는, 차라리 문 여는 시간을 늦추는 게 낫다. 충분히 준비가 되었을 때 문을 열어야 한다.
- 제리 윌슨의《새로운 고객은 끊이지 않는다》중에서 -
*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비 없이 문을 여는 집이 너무 많습니다. 눈앞의 작은 욕심 때문에, 조급함 때문에...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설익은 밥으로 잔치를 벌일 수는 없지 않아요? 자기 '인생의 문'도 준비하지 않은 채로 너무 일찍 열게 되면 오히려 큰 낭패를 보기 쉽습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 하늘문 열기
평양과학기술대학이 지난달 16일 100만㎡ 대지에 연면적 8만㎡ 규모로 준공됐다. 토머스 선교사의 순교 정신을 기리는 기념교회가 있었던 곳이다. 하나님의 뜻에 김진경 총장의 비전이 쓰임 받았다. 간첩 혐의로 42일간 억류되기도 했지만 뜻을 굽히지 않고 오늘에 이르렀다. 목회자와 교회 성도들의 협력도 있었다.
평양과기대에 거는 기대가 있다. 위로는 하늘문을 열며 민족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는 샘물이 될 줄 믿는다. 또 한반도의 미래를 아름답게 하고 세계 평화에도 기여하리라 믿는다. 성령에 감동된 운영위원과 교수진이 구성되길 기도하자. 믿음과 사랑, 그리고 헌신으로 지펴진 모닥불이 큰 불로 살아나게 하자. 성경의 진리를 실천해 헐벗고 있는 동족의 영육을 돕자. 복음으로 통일되는 그날을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의 손을 모은다.
“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에 터를 놓으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견고히 세우셨고 그의 지식으로 깊은 바다를 갈라지게 하셨으며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셨느니라”(잠 3:19∼20)
권태진 목사 (군포제일교회) <국민일보 /겨자씨>
▣ 열린문으로 들어가기
헬렌켈러가 한 말입니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하나의 문이 열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도 자주 오래도록 닫혀진 문을 쳐다보며 후회 속에서 아쉬워합니다. 우리 앞에 또 하나의 문이 열려져 있는 것을 알지 못한채. 기회를 놓친 것 같아 아쉽고 안타깝습니까? 현재 상황을 벗어날 문이 보이지 않습니까? 또 다른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 기도: 주님! 때마다 나아갈 기회를 분별하여 기회를 얻는 삶을 살게 하소서.
* 묵상: 기회가 왔을 때 붙잡기 위해 꾸준히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윌리엄 문
수재’로 불린 한 영국 대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명석한 두뇌로 주위로부터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청년은 자신의 지혜를 자랑하며 가끔 사람들을 속였습니다. 철저한 무신론자인 그는 “신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사고를 당해 두 눈을 잃고 말았습니다. 청년은 절망 속에서 울부짖었습니다. “하늘이여! 제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중에 문득 실명하기 전 거리에서 만났던 맹인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결심했습니다. “저 사람들을 위한 일이 무엇일까?” 청년은 그때부터 맹인들을 위한 점자를 연구하기 시작해 ‘문 타이프’를 개발했습니다. 이 사람이 점자성경을 편찬한 윌리엄 문(William Moon)입니다. 한순간의 시련과 고통은 삶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인생의 용광로가 됩니다. 그리고 시련을 통하여 우리는 눈을 열어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됩니다. 시련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는 성숙한 성도가 되십시오.
* 기도: 주님, 시련을 성숙의 기회로 삼게 하옵소서.
* 묵상: 시련을 극복하고 귀한 인생을 살았던 사람들을 생각해 봅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마음의 문
다른 사람에게는 결코 열어주지 않는 문을 당신에게만 열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 말로... 당신의 진정한 친구입니다.
- 생 텍쥐페리의《어린 왕자》중에서 -
* 서로 믿음이라는 열쇠가 없으면 마음의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나는 가만히 있으면서 상대의 문만 열리기를 바래서도 안됩니다. 함께 열어야 진정으로 열린 것이며, 다시는 닫히는 일이 없도록 문단속을 잘해야 합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 미래를 여는 문
'천개의 찬란한 태양'은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미국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가 2007년 쓴 책으로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와 뉴욕타임스 24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를 휩쓸었다.
이 책은 비극적인 역사를 피할 길 없이 그대로 받아야 했던 아프가니스탄의 운명을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통해 그리고 있다. 주인공 마리암과 라일라 두 여인은 길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 있다. 집 밖에서는 연일 포탄이 터지고 집안에서는 남편이 언제 매질할지 모르지만 서로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폐허의 땅에서 두 여인이 처절한 아픔을 희망으로 바꾸어 간다는 게 이야기의 핵심이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은 누군가의 희망에서 시작된다. 희망은 미래를 여는 문이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하셨다(마 5:13∼14). 우리가 세상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는 명령이기도 하다.
/조영진 목사(본교회)
▣ 세상의 문
대강절이다. 한해 중 밤이 가장 긴 때다. 밤이 가장 긴 동지(冬至)를 지난 뒤 우리는 성탄을 맞는다. 어둠이 가장 깊은 때를 지나야 성탄을 맞는다는 것은 강림의 의미를 더욱 빛나게 한다.
독일의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는 어둠의 때를 살았던 사람이다. 나치정권 때 그는 히틀러 암살 음모혐의로 투옥됐다. 1943년 말경 한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독방생활은 강림절에 대해 많은 것을 되새기게 해줍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또 희망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합니다. 굳게 닫힌 문은 오직 바깥에서만 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문은 밖에서만 열 수 있다는 본회퍼 목사의 말은 우리의 선택을 분명히 일깨워 준다. 우리는 어둠 속에 갇힌 수많은 이들을 위해 문을 열어야 한다. 본회퍼 목사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세상 사람들에게 ‘문을 열라’는 하나님의 희망을 이야기했다.
/신경하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 천국문을 여는 열쇠
유대인의 탈무드에 보면 이런 가르침이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에게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자리보다는 조금 낮은 자리를 잡아라. 남으로부터 내려가라는 말을 듣는 것보다 올라가라는 말을 듣는 편이 훨씬 낫지 않은가. 신은 자기 스스로 높은 자리에 앉은 자를 낮은 곳으로 떨어뜨리시고 스스로 겸손한 자를 반드시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신다.” 겸손은 인생에 있어서 소중한 요소입니다. 자신을 살피고 낮추는 사람은 실수가 적고, 예절바른 사람이 되고 칭찬을 받습니다. ‘좁은 문’의 작가 앙드레 지드는 “겸손은 천국의 문을 열고 교만은 지옥의 문을 연다.”고 했습니다.
여운학 / 사랑의편지 발행인
▣ 세 황금문
데이란 사람이 쓴 <세 황금문>이란 글을 보면, 언어생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충고의 말이 나오고 있다. "말하기 전에 세 황금문을 지나게 하라. 다 좁은 문 들이다. 첫째 문은 '그것은 참말이냐?' 그리고 둘째 문은 '그것은 필요한 말이냐?' 네 마음속에서 참된 대답을 하라. 마지막이고도 가장 좁은 문은 '그것은 친절한 말이냐?' 그 세 문을 지나왔거든 그 말의 결과가 어찌 될 것인가 염려 말고 크게 외쳐라." 옛날 우리네 선조들은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을 말까 하노라" 하면서 입을 다물어버리는 것을 현명한 것으로 알아왔다. 반드시 말 을 하여야 할 경우에는 "일언전십사(一言前十思)", 즉 "한마디의 말을 하기 전 에 열 번 생각하라"고 충고하였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귀는 둘씩 이나 주시면서 입은 하나만 만들어주신 것은 들은 것의 반만 말하라는 뜻이라 고 해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입을 다무는 것이 입을 여는 것보다 좋으며 침묵이 과연 금인가? 성경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강조해주고 있다. 첫째는,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라는 것이다(에베소서 4:25). 덕을 세우는 데 소용 이 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는 것이다(에베 소서 4:29). 입은 조심해서 사용하지 않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잘 사용하여 이 웃에게 큰 덕을 세워야 할 귀한 은총의 수단이다.
/무엇이 삶을 아름답게 하는가 / 김득중
▣ 열려 있는 문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형벌을 면제받으며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복귀되어진다.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성령님을 보내시어 인쳐주신다. 하나님의 해방령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온 세계에 선포되었다. 그 사면장은 이미 만민에게 발부되었다. 믿음으로 받기만 하면 된다. 해리 호디디는 이름난 탈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미국에 있는 어떠한 유치장에서도 탈출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사실 간 곳마다 탈출에 성공했다. 그런데 한번은 그가 탈출을 하지 못하고 경찰서의 유치장에 감금되었다. 다들 구경하고 있었다. 그는 허리띠에 가지고 다니던 가늘고 단단한 철사를 꺼내어 열쇠 구멍에 넣어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는 여러 번 시도하다가 너무 지쳐서 문에 기대어 쓰러졌다. 그러자 문이 열렸다. 그 문은 잠겨 있지 않았던 것이다. 잠그지 않은 문을 어떻게 열쇠로 열 수가 있겠는가? 예수님께서 죄악에 갇혀 있는 영혼들에게 문을 열어놓으셨다. 예수님께 믿음으로 나오기만 하면 된다. 그 문은 아무도 닫지 못하며 아직도 열려 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라. 그리하여 참 제자가 되고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때까지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거하라.
세월의 흔적 / 조효훈
▣ 9년 동안 잠그지 않은 문
설교자 위버가 스코틀랜드에서 청중을 향해 열정적으로 설교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여인이 그 설교를 듣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여인은 위버를 향해 말했다.
“저는 어머니와 함께 살다가 9년전 가출했습니다. 오늘 비로소 새로운 생명을 찾았습니다. 이제 고향의 어머니에게 달려가 저의 회심을 고백하겠습니다”
여인은 9년 만에 고향을 찾았다. 이미 밤은 깊었다. 여인이 대문을 두드렸으나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대문을 가볍게 밀자 문이 열렸다. 어머니의 방문도 열려 있었다. 어머니는 대문과 방문을 모두 열어놓은 채 누워 있었다. 여인이 어머니를 불렀다. 그러자 어머니는 딸을 끌어안으며 울먹였다.
“네가 집을 나간 그날부터 9년동안 한 번도 문을 잠그지 않았단다. 그리고 네가 밤에 돌아와도 쉽게 집에 들어오도록 밤마다 불을 밝혀 놓았단다”
어머니의 사랑은 빗장을 잠그는 법이 없다. 어머니의 사랑은 자녀를 위해 항상 열려 있다.
/임한창
▣ 문(門) 에 대한 묵상
문이 있다. 문이 열리지 않는다. 열려야 할 때 열리고, 닫고자 할 때 닫혀야 문인 것을. 그런데, 이 문은 이상하다. 겉모양은 분명히 문인데, 도대체 열리지 않는다. 이상하다. 문이 열리지 않는다. 아무리 밀어도 열리지 않는다. 당겨야 열리는 문이었다. 그 문을 열기 위해서는 뒤로 한 발짝 물러서야만 한다. 아무리 급해도 뒤로 물러나야 한다. 그래야 열고 들어갈 수 있다. 문을 밀어서 여는 것과 당겨서 여는 것은 사뭇 다르다. 밀어도 열리는 문을 자기 쪽으로 당겨서 여는 것은 상대방을 위한 배려인 동시에 물러섬이다. 많은 사람들은 바로 그 한 걸음 때문에 문을 열지 못한다. 한 발짝이면 될 것을 절대로 물러나려 하지 않는다. 멀고 험한 길을 걸어서 문 앞까지 온 사람들 중에는 도무지 뒤로 물러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많다. 앞으로 전진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고집 때문이다. 그 고집을 인생을 통해서 배웠다고 생각하는 독선 때문이다. 밀어붙이는 것이 편하긴 하다. 누가 부러 문을 당겨서 열고 싶을까?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습관을 엄마 뱃속에서부터 배운 사람이 있을까?
바로 그 한 걸음을 물러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그래서 열고 싶지만 열 수 없는 답답함이, 그래서 타인을 향해 스스로를 활짝 열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내게도 있다.
- 오충영
▣ 닫힌 문과 열린 문
여러 해 전에 나는 콜로라도 주의 에스츠 공원에서 열린 A 선교 단체의 집회에 강사로 초청받았다. 거기서 한 사람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수년 전, A 선교 단체에서 제게 우간다 사역을 제안했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우간다에 가는 일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내는 ‘만약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여신 문이라면, 저는 갈 준비가 되어 있답니다’라고 대답했죠.”
그래서 그들은 케냐의 나이로비로 날아갔다. 그는 그곳의 한 호텔에 가족을 투숙시킨 다음, 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혼자 우간다로 갔다. “제가 한 마을에 들어갔을 때 여러 명의 청년들이 기관총 같은 것을 공중에 마구 쏘아대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모든 것이 불안한 상황이었습니다.”
밤을 보내기 위해 한 호텔을 찾았을 때, 그는 전혀 모르는 사람과 방을 사용해야 할 상황이었다. ‘주님, 저는 두렵습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나라, 완전히 낯선 문화 속에 제가 있습니다. 저 침대에서 누가 자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제발 주님이 이 일에 함께하시는 것을 보여 주십시오.’
그가 막 기도를 마쳤을 때, 문이 열리더니 한 아프리카인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당신 지금 내 방에서 무엇을 하고 있소? 우리 나라에는 무슨 일로 왔소?” “저는 A 선교 단체에서 일합니다.” “아, A 선교 단체!” 그 아프리카인은 함박 웃음을 지으며 그를 끌어안고 춤을 추었다. “저는 지난 2년 동안 하나님이 A 선교 단체에서 누군가를 보내 주시도록 기도해 왔습니다.” 그 아프리카인은 그에게 거처를 구해주고, 문화와 언어를 가르쳐 주며, 선교하는 일에 동참했다. 하나님이 문을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문을 닫으면 열 사람이 없다.
- 하나님의 뜻에 담긴 신비, 그 아름다움 / 찰스 스윈돌
▣ 길
인간의 생활에는 제각기 걸어야 할 길이 있습니다. 스승은 사도를 걸어야 하고, 가정 주부는 부도를 걸어야 하고 신사에게는 신사도가 있고 상업을 하는 사람은 상도가 있고 예술가에게는 예도가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가 가야할 길을 바로 걸어야 합니다. 현대문명의 척도는 그 나라의 길을 보아서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로마문명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에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중국이 오늘날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중국인들이 길을 내는 대신에 성벽을 많이 쌓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오늘날의 미국이 고도로 발달된 현대문명을 이룩한 나라가 되기까지는 미국인들이 고속도로와 철도를 많이 건설했기 때문에 그처럼 발달된 나라가 되었다고 합니다.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고속도로 시대가 열렸습니다. 우리나라도 세계 랭킹 제9위의 고속도로 국가입니다. 경부고속도로는 전 세계에서 최소공비, 최단시일에 시공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이 뚫리고 11년동안 보수비가 건설비를 웃돌았다고 합니다.
▣ 가야할 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어린이 동화에는 체셔 캣이라는 말재주가 좋고 꾀가 많은 고양이가 등장한다.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에서 빠져나가는 길을 찾다 갈림길에서 체셔 캣을 만난다. “어떤 길로 가야하나?” 체셔 캣은 앨리스에게 되묻는다. “어디에 가는데?” 앨리스는 “모른다”고 대답한다. 체셔 캣은 웃으면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 아무 데도 갈 수 없어”라고 대답한다.
인간은 자신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아야 한다. 인간에게는 온 길이 있고 갈 길이 있다. 그 길은 하나님이 정하시는 길이다. 그 길은 철새의 항로보다 더 정확하다. 그 길을 알아야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 우리의 길을 가게 하는 것은 우리를 단련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다. 욥은 고난의 길에서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 23:10)고 고백한다.
/이성희 목사
▣ 옆집 가는 방법
많은 사람은 자기가 어느 정도는 착해져야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사실상 가장 쉬운 일이다. 옆집에 가는 길이 두 가지 있는데 한 가지는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 옆집까지 가는 길이고 또 하나는 그냥 바로 가는 방법이다. 하나님을 만나려고 전 세계를 다니며 온갖 수고를 다 하는 사람도 있다. 자기 부족, 자기 잘못, 자기 악습, 자기 죄의식을 다 버리고 자기를 완전히 극복할 때까지 처절한 자기 훈련에 들어간다.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것이다. 영적 변화는 자기 성취가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그냥 받는 것이다. 한 발짝만 내디디면 된다.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서 그냥 “네”라고 한 마디만 하면 거기가 바로 옆집이다.
하나님은 지금 가장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다만 사람들이 너무 먼 길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 바른 길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12월, 연합군의 독일의 숨통을 끊고자 6개월의 준비 끝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가운데 토막작전'(The Battle of Bulge)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이 작전은 독일군의 엉뚱한 책략에 의해 지연되고 말았습니다. 미군으로 위장한 독일군이 몇 대의 지프에 나눠 타고 연합군 지역에 침투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심한 폭우가 내리는 밤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연합군이 세워 놓은 방향표시판들을 아무렇게나 바꾸어 놓았습니다. 잘못된 방향 설정은 결국 연합군에게 큰 혼란을 가져 왔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인간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던 베드로는 결국 예수님으로부터 질책을 받기에 이릅니다. 신앙의 표지판이 잘못되었을 때 베드로는 하나님의 길을 찾지 못하고 인간의 길로 들어섰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믿는 자로서 가야할 길을 바르게 분별하지 못한다면 우리도 동일한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항상 기도와 말씀 위에 믿음의 표지판을 꽂아 놓고 바른 길을 가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성경: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마16:23)
* 기도: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 우리가 늘 신앙의 표지판을 점검하게 하소서.
▣ 하늘의 길과 땅의 길
나그네 두 사람이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야 할 길은 멀고도 아득했습니다. 목적지까지 가려면 높은 산과 바다와 골짜기도 넘어야 했습니다.
한 나그네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갈 길은 아직도 멉니다. 그러나 하늘을 바라보면서 가노라면 목적지에 닿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자 다른 나그네가 말했습니다. “길이란 땅에 있습니다. 땅을 보면서 걸어가야 합니다. 하늘을 본다고 길이 보입니까?” 한 나그네가 대답했습니다. “하늘을 보면 가야 할 방향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하늘을 보고 가렵니다.” 그러자 다른 나그네가 대답합니다. “땅을 보아야 길을 찾을 수 있지요. 나는 땅을 보면서 가겠습니다.” 이렇게 두 나그네는 서로 자기 의견만 고집하다가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하였습니다.
한 나그네는 부지런히 하늘을 보며 걸었습니다. 하늘의 해와 달이 길을 비추어 주었고, 별들이 반짝이며 가는 길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때로는 눈비가 올 것을 알려 주기도 하고, 바람이 부는 방향도 알려 주었습니다. 나그네는 하늘의 안내를 따라 열심히 길을 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반면 다른 나그네는 땅만 보며 걸었습니다. 길이 없는 숲속을 헤매고 골짜기를 건너 열심히 걸었지만 캄캄한 어둠뿐이었습니다. 몇 날을 걸어도 산도 하나 넘지 못한 채 오던 길만 뱅뱅 돌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 영혼의 샘터 / 김요한
▣ 우리는 어떤 길로 가야하나
신문 1면에 나란히 실린 13살 난 두 소녀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한 소년은 그 지방의 철자 맞추기 대회에서 우승해 전국 결승전에 출전한다는 기사였고, 또 한 소년은 살인죄로 체포되어 변호사들과 형사상 기소에 대해 걱정해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두 소년은 놀랍게도 쌍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두 소년의 삶이 너무나도 판이하게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소년은 부모의 자랑거리가 되었고, 또 다른 소년은 결국 살인자로 부모의 근심거리가 되었습니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나 같은 환경이 부여되었지만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왜일까요? 그들은 죄에 대해 다른 태도를 가짐으로써 서로 다른 선택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벨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희생을 드렸고, 가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마음을 고치고 순종하면 그를 용납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반항하여 아벨을 죽였습니다. 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우리는 어느 길로 가야 합니까? 아벨의 순종의 길입니까? 아니면 가인의 죄악의 길입니까?
▣ 나도 몰라요
두 사람이 지나간다.
세 사람이 따라간다.
네 사람이 그 뒤를 따라간다.
처음 두 사람이 말을 한다.
"왜 따라 오고 있지"
세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말을 한다.
"왜 보고 무슨 말을 하지"
"너 알아"
"몰라"
그 때 꼬마가 말을 한다
"나도 몰라요"
자기가 가는 길이 어떤 길인지도 모르고 가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 당신은 지금 가고 있는 길을 알고 계십니까 "
▣ 길을 잘 모를 때
운전을 하다보면 때론 전혀 모르는 낯선 길을 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길을 갈 때 대개의 사람들은 팻말이나 사람에게 물어 보고 가기보다 그냥 무턱대고 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십중팔구는 낯선 길로 완전히 빠지거나 막다른 골목길에 부딪히게 됩니다.
인생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젊은 사람일수록 선배들의 말을 잘 안 듣게 됩니다. 물론 옳은 선배가 많이 없는 탓도 있지만 사람의 속성상 자신이 항상 자신의 주인으로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에덴동산에서 유혹했던 마귀의 가장 확실한 인간 파괴 계략이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항해하는 배는 항상 등대를 기준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영을 마음에 모셔 그분을 인생의 등대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 이래로 수많은 사람들을 인도해서 축복과 평화 그리고 사랑과 성공의 항구에 안착시켰습니다. 지혜의 근본은 자신을 겸손히 낮추고 하나님을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 옛적 길 곧 선한 길로 행하라
성경: 렘6:16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
이스라엘 민족이 범한 죄는 무엇입니까? 첫째는 생명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을 버린 죄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생명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을 버리고 도리어 스스로 터진 웅덩이 즉, 우상 숭배를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둘째는 공의를 구하지도,진리를 행하지도 아니한 죄입니다. 예루살렘 성중에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를 따라 행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심판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민족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과연 생수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만을 바라며 그분의 공의와 진리대로 살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옛 길, 선한 길로 지금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박정근 목사(대조동순복음교회)
▣ 구원의 길
미국에서는 매해 미식축구를 하다가 20여 명이 사망하고 30여 만 명이 부상을 당한다는 충격적인 보고가 발표되었습니다. 게다가 희생자의 40%는 15- 19세의 청소년들입니다. 미식축구는 워낙 격렬한 몸싸움을 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튼튼한 헬멧과 여러 가지 부상 방지용 장비를 갖추고 경기에 임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장비가 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이 상대 선수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줄 때도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방비 도구란 이렇게 하찮은 것입니다. 율법이니 도덕이니 하는 으리으리한 장비도 인간을 죄에서 건져낼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고행을 하고, 선한 의지를 갖고 있어도 죄에서 자유하지 못합니다. 죄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독생자 예수를 통한 구원의 길뿐입니다. 때로는 세상의 방법이 그럴 듯해 보이지만 외형만 그럴 뿐 실상을 아무것도 아닙니다. 죄는 잠시 덮어두거나 임시 방편으로 처리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죄 앞에서 인간은 생명이냐 사망이냐의 중요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생명을 원한다면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8)
* 기도: 세상의 어느 것도 죄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소서
▣ 영생에 이르는 길
미국 오레건주 포틀랜드에서 목회하던 한 목사님은 어느 날 아침 그 지역 병원으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죽어가는 펠릭스 리치라는 환자가 목사님 한 분과 상담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가능한 한 빨리 가겠다고 약속하고 급히 차를 몰아 그의 병실에 도착하였습니다.
리치는 “목사님! 제 삼촌도 목사님이었는데 하나님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전 듣지 않았답니다. 제 아내가 늘 저를 교회에 데려가려 했지만 전 가지 않았어요. 이제 저는 창조주를 만나러 가야 하는데 제 일생은 죄로 가득합니다. 아! 어떻게 하죠?” 하고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회개와 용서에 대한 성경 구절을 인용하면서 누구든지 진실하게 자기의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말해 주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 시간 리치는 회개하고 자기의 일생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다음날 그리고 그 다음날도 목사님은 문병을 갔는데 놀랍게도 리치의 몸은 회복되고 있었습니다.
불과 몇 주 후에 그는 퇴원을 하고 주일에 목사님의 교회에 나타났습니다. 그 후로 8년 동안 매주일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같은 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그는 창조주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 인생의 길
이슬람교를 믿던 터키 사람이 성경을 읽다가 예수를 영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만 교사에게 들켜서 심문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심문하는 교사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일전에 내가 어디를 가다 길을 잃었는데 옆을 보니 산 사람과 죽은 사람 두 명이 있었습니다. 내가 길을 물어본다면 어떤 사람에게 물어 봐야 되겠습니까?"
"그야 물론 산 사람에게 물어야지."
"그런 줄 알면서 왜 당신은 죽은 사람에게 길을 물어 보라고 하십니까?"
당신들이 믿으라고 하는 마호메트는 죽은 사람이요, 내가 믿으려고 애쓰는 예수는 산 예수입니다. 어찌 죽은 마호메트를 의지하겠습니까? 길 되신 예수를 따라야 할 것이 뻔한 노릇인데 참된 인도자를 찾아가는 나를 왜 괴롭히십니까?
그러자 교사는 그에게 신앙의 자유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히 되며 또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되느니라"(잠24:3,4)
▣ 오직 한 길
길에는 보통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사람, 차, 배, 항공기가 다니는 길이다. 육지에는 도로, 바다에는 해로, 하늘에는 항로가 있다. 둘째는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걸어야 할 길이다. 세 번째는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한 방법과 수단이다. 그런데 죄인이 의인 되고 저주가 축복 되고 지옥이 천국 되는 길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리스도가 지신 십자가는 땅과 하늘을 잇는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
미국에는 샌프란시스코시와 마린반도를 연결하는 금문교가 있다. 이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건너는 데 3일이 걸렸지만 이제는 10분도 안 걸린다. 공학도 조지프 스트라우스의 설계와 지휘로 완공된 이 다리의 혜택을 받은 사람이 많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의 십자가로 연결해 놓은 구원의 길은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받는 길이 없다. 오직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
/최낙중 목사(해오름교회)
▣ 좁은 문으로 가는 지름길
나에게 오는 길은 쉽지 않을 거야. 많은 사람들이 넓은 길로 가려고 하지만 나에게 오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이 아닌 좁은 길로 와야 한단다. 하지만 너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끝이 아니란 걸 기억해. 너희가 살고 있는 곳의 끝에서는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영원한 삶이 있단다. 그곳에 들어가는 문은 아주 좁은 문이지. 하지만 너의 삶 가운데 내가 있다면
그 문을 들어오는 건 결코 어려운 게 아니란다.
-김동신의 ‘나는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싶습니다’ 중에서-
흔히 좁은길을 고난의 길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걷는 좁은길이라 해도 그 길을 기쁘게 걷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좁은길을 걷지만 그들의 모습이 모두 다른 것은
주님이 함께 가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주님과 함께 걸어가십시오. 비록 길은 험하고 좁아도 그 가운데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새벽종소리
▣ 제일 좋은 길
이 세상에는 수많은 길이 있습니다. 인생들은 저마다의 길을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길을 선택해야 참 만족을 누릴 수 있을까요? 사랑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자동차는 휘발유가 있어 움직이듯 사람은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길을 걸으려면 사랑이 지닌 속성들을 하나하나 우리 속에 이루어 가야 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투기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본을 보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주님의 사랑을 이루어가야 할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지으시고 인간을 가장 귀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이 일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으며 당신이 이루어야 할 귀중한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무엇을 위해 사십니까? 기쁨과 즐거움을 찾아 사십니까? 돈이나 명예를 얻기 위해서 입니까? 아니면 성공하여 권력을 얻는 것입니까? 건강하고 장수하는 것입니까?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얻었다 하여도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모두 다 버려 두고 빈손으로 가는 것입니다. 인생은 헛되고 또 헛된 것입니다. 언제 떠나십니까?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는 시기는 오직 하나님만 아십니다. 언젠가는 부모, 형제, 처, 자식과 그 아끼던 모든 것을 다 버려 두고 떠나야만 합니다. 중요한 것은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을 때 사망을 이기고 영생을 얻습니다. 어디로 가십니까?
어느 길로 가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고 목적지가 달라집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 어디론가 가야 합니다. 그 길은 사망의 길과 생명의 길, 지옥의 길과 천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 두 갈래 길에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과 풍성한 복된 삶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 선한 길잡이를 만나는 행운
눈 덮인 알프스 산맥을 등반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길을 안내하는 길잡이입니다. 다른 장비나 기구가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다 할지라도 길잡이가 없으면 큰 낭패를 보게 되고 심지어 생명까지 잃을 수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산맥을 등정하는 데도 길잡이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암벽에 부딪쳤을 때에, 험한 길을 만났거나 길을 잃었을 때, 위기상황이 발생한 그 곳의 지리를 잘 알아서 올바르게 대처할 줄 아는 좋은 길잡이를 만난다는 것은 정말 행운입니다. 시련이 닥쳤을 때, 인생의 진로를 정하지 못해 방황할 때는 이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좀더 좋은 길잡이를 만났더라면 훨씬 고생을 덜 했을 텐데, 좀더 일찍 바르게 사는 방법을 제대로 가르쳐주는 스승을 만났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삶을 살았을 텐데.' 하는 생각 말입니다. 좋은 길잡이를 제대로 만난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인생의 길잡이가 있는지요?
< 조승희 / 목사>
▣ 길을 잘못 알려주면
미국 동부에 혹심한 눈보라가 몰아쳤다. 기차는 제 속도를 내지 못한 채 거북처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승객 중 갓난아기를 안은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내릴 역을 지나치지 않으려고 잔뜩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때 한 신사가 여인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내릴 역을 가르쳐 드리지요" 기차는 눈보라를 뚫고 서서히 달렸다. 기차가 어느 역에 멈추어서자 신사가 여인에게 말했다. "이곳에서 내리십시오" 여인은 신사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리고 갓난아기를 안고 기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다음 정거장에서 신사는 머리를 감싸안으며 울부짖었다. 여인이 내려야 할 역은 바로 이곳이었다. 신사는 기차가 잠시 멈춘 줄도 모르고 여인에게 길을 잘못 가르쳐준 것이었다. 이튼날 여인이 내린 철길 옆에는 '아기를 안은 여인'의 모습을 한 눈덩이가 발견됐다. 여인은 철길에서 아기를 안은 채 얼어죽은 것이다. 사람에게 길을 잘못 알려주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비극적인가. 하물며 영혼을 잘못 인도한다면 어찌되겠는가?
▣ 주님께 가까이 가는 길
서 아프리카에 크리스천들이 살고 있는 한 작은 마을 사람들에게는 기도하는 밀실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 마을 크리스천들은 오두막 뒤 숲속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늘 기도하곤 했다. 그래서 모든 오두막 뒤에는 숲속으로 들어가는 길이 생기게 되었다. 기도하러 들어가고 나가는 발걸음으로 인하여 생긴 거룩한 발자취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열대 지방에서는 식목이 빨리 자라므로 이 길을 조금만 사용하지 않으면 잡초가 곧 무성해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른 크리스천들이 지나다가 그 길에 잡초가 무성한 것을 보면 근심스런 표정으로 "형제여, 그길에 뭐가 많이 생겼군요."라고 한다는 것이다. 마치 이 길이 그의 신앙의 척도로 판단하게까지 되었다. 기도는 크리스천들의 신앙 생활의 호흡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호흡이 원할하지 못하다고 하는 것은 신앙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증거다. 건강이 좋지 않을 때 빨리 고침을 받아야지 오래 가면 갈수록 합병증이 병발한다. 마찬가지로 신앙의 건강이 좋지 않을 때 속히 고침을 받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신앙의 건강이 한 모퉁이로부터 계속 무너져가는 것이다. 마치 기도하러 들어가는 길에 잡초가 무성하듯 우리의 신앙의 길에 마귀가 뿌린 잡초가 무성하게 자랄 것이다
▣ 두 갈래 길
어디로 가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당신은 어디서 왔습니까?
창조주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지으시고 인간을 가장 귀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이 일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으며 당신이 이루어야 할 귀중한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무엇을 위해 사십니까? 기쁨과 즐거움을 찾아 사십니까? 돈이나 명예를 얻기 위해서 입니까? 아니면 성공하여 권력을 얻는 것입니까? 건강하고 장수하는 것입니까?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얻었다 하여도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모두 다 버려 두고 빈손으로 가는 것입니다. 인생은 헛되고 또 헛된 것입니다. 언제 떠나십니까?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는 시기는 오직 하나님만 아십니다. 언젠가는 부모, 형제, 처, 자식과 그 아끼던 모든 것을 다 버려 두고 떠나야 만 합니다. 중요한 것은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을 때 사망을 이기고 영생을 얻습니다. 어디로 가십니까? 어느 길로 가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고 목적지가 달라집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 어디론가 가야 합니다. 그 길은 사망의 길과 생명의 길, 지옥의 길과 천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 두 갈래 길에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과 풍성한 복된 삶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육체의 풍랑을 만나 고통중에 신음하는 이들이여
인생의 풍랑을 만나 절망의 늪을 헤메이는 이들이여
영혼의 풍랑을 만나 참평안과 자유를 모르는 이들이여
십자가의 사랑으로 당신을 구원하신 예수 이름을 믿고 지금 부르십시오.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 지더라"(눅8:24)
예수 믿고 지금 구원받으십시오.
▣ 순례자의 길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그의 책 <기독교강요>에서 기독교인의 삶을 두 가지로 요약했습니다. 첫째는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삶을 버리는 것입니다. 욕심도, 질투도, 시기도, 절망도 다 버리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순례하는 삶입니다. 내 삶이 어떠하든지 신자는 하늘나라를 향해 순례의 길을 가는 순례자라는 말입니다. 당신은 지금 어떠하든지 신자는 하늘나라를 향해 순례의 길을 가는 순례자라는 말입니다. 당신은 지금 어떠한 삶의 자세로, 어떠한 길을 걷고 있습니까? 현실의 어려움에 고민하며, 갈 길을 잃고 방황하지는 않으시는지요. 욕심을 버리고 순례자의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봄이 어떨런지요.
/류 중 현 (지하철사랑의편지)
▣ 지름길은 없다
한 희랍의 수학자가 "기하학에 지름길은 없다."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 말은 노력하지 않고 어떻게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나 하고 궁리하는 젊은 학도들에게 주는 경고입니다. 우리들도 알고 있듯이 그런 방법은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성경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우리들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이 길은 지름길이 아닙니다.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길입니다.
▣ 길 없는 길을 가는 사람
영국의 선교사이자 탐험가인 리빙스턴이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리빙스턴의 친구 몇몇이 아프리카에서 고생하는 친구를 위해 그를 도울 사람 몇 명을 보내겠다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편지 끝에는 '…음, 그러니까 그곳까지 가는 길을 알려주게'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리빙스턴은 이런 답장을 보냈습니다. '이곳까지 오는 길이 있어야만 오겠다는 사람들이라면 나는 사양하겠네. 나는 길이 없어도 오겠다는 사람을 원해!' 길이 없어도 가겠다는 사람, 그만큼 패기 있고 진실한 사람을 원한다는 뜻이겠지요. 혹 우리는 지금 너무 쉬운 길을 찾아 기웃거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미래가 보장된 안전한 길만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진우 목사
▣ 처음 길을 내는 사람
우거진 숲 속에서 처음 길을 내며 가는 사람은 먼저 마음속으로 길을 구상한다. 꿈을 꾸는 것이다. 우리네 삶은 유년 시절 꾸어본 그 꿈을 현실로 드러내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 김종록의《장영실은 하늘을 보았다(1)》중에서 -
* 숲 속 오솔길도 한 사람의 발걸음에서 시작됩니다. 달나라에 가고 명왕성에 이르는 저 먼 하늘길도 한 사람의 어린애 같은 천진무구한 꿈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여러 사람이 그 뒤를 따르면 길이 없던 우거진 숲 속에도 길이 생깁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 함께 가는 길
미국 댈러스에 있는 세미한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할 때 일이다. 호텔에서 교회까지 가는 길이 차량으로 막혀 있었다. 그런데 1차로에는 차량이 거의 없었다. 가끔씩 지나가는 차는 고속으로 달렸다. 카풀라인(carpool line)으로 두 사람 이상 탄 차량만 갈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은 그 길로 들어섰다. 혼자 탄 차들이 한 시간 걸릴 거리를 20분 만에 달렸다. 미국은 승용차가 곧 발이다. 대부분 혼자 차를 타고 출퇴근하고 업무를 본다. 그러나 혼자 탄 차량은 교통체증 속에서 더디 움직일 수밖에 없다.
영적 세계도 마찬가지다. 혼자 하는 기도보다 두 사람이 합심하여 구한 기도에 신속한 응답이 있고, 모든 교인이 합심하여 드리는 기도에 기적이 일어난다. 전도는 혼자보다 둘이 짝지어 하는 게 좋다. 그리스도인은 같은 마음, 같은 생각, 같은 뜻으로 함께해야 한다. 함께 가는 길에 주님이 동행한다. 신앙생활은 주님과 함께 가는 길이다.
/최낙중 목사<해오름교회> <국민일보/겨자씨>
▣ 축복의 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은 복 받기를 원합니다. 복은 인생의 행복을 말하며 삶의 즐거움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이런 복의 비결을 영적인 면과 육적인 면으로 구분하여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서의 8복은 영적인 복이며, 우리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때 받는 축복의 내용입니다. 즉 심령이 가난한 자가 소유하는 천국은 누구의 소유를 따질 수 없는 것으로 영적인 부유를 의미합니다. 애통하는 자가 위로를 받고,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마음의 기쁨과 평안을 얻게 되고, 긍휼히 여김을 받는 자는 귀함을 받게 되며,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보게 되며, 화평케 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며, 의에 주리고 굶주린 자가 천국에 거하게 된다는 말씀들은 영적인 고통에서 벗어나 마음의 안식을 갖는 영적인 비결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다섯 가지 복을 잠언 3장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법과 명령을 지키면 장수의 복을 누리게 되며, 진리를 떠나지 않고 이를 항상 마음 판에 새기면 부귀의 복을 얻게 되며, 마음을 다해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 아니하면 형통의 복을 주신다 하십니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악을 떠나면 건강의 복을 주시며, 모든 것의 첫 열매로 하나님을 공경하면 재물의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우연히 어쩌다 오는 행운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마음을 깨끗이 하고 정성을 다해 여호와를 섬길 때 우리는 영적인 여덟 가지 복과 육적인 다섯 가지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성경말씀을 잘못 이해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복(福)에 대한 개념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을 동양의 샤머니즘적인 복과 동일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단순히 복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동양에서 말하는 복은 다분히 인간중심적이며 현세적입니다. 오직 인간의 희망과 기대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현재의 생활과 직접 손으로 잡을 수 있는 필요한 것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부귀영화, 많은 자손, 장수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도 복의 개념을 오해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만사 형통한다든지, 헌금을 많이 해야 복을 받는다든지, 또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든 일에 이겨야 하고 고통이나 어려운 일은 주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경에서 복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단어는 "마카리오스"라는 말인데 이 단어에는 크게 네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존재나 성품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습니다. 둘째, 하나님께 바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셋째, 다른 사람의 생애 속에 기여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넷째, 사막의 오아시스에 비유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복은 받는 것보다 드리고 기여하는데 있으며, 그 복의 원천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축복받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첫째, 근면, 성실해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게으른 사람은 아무 것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사모하는 은혜도 부지런해야 받을 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가만히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구하고 찾고 두드릴 때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으려면 두드리고 찾고 구하는 애씀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잠깐 기도하고는 응답이 없다고 실망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죄를 통회 자복하고 몸부림치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우리가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근면한 생활태도를 가져야 됩니다. 부지런하지 않고 잔재주를 부려서 성공하려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부(富)란 자연에 노동을 가할 때 얻어집니다. 자연자원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으로 부가 이룩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부지런해야 성공하는 것입니다. 혹시 어떤 사람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기도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실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공중에 날아다니면서 먹을 것을 찾아 부지런히 이곳 저곳을 살피는 새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도 부지런히 뛰면서 일할 때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잠10:4),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를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을 얻느니라"(잠13:4)
둘째, 정직해야 합니다. 정직은 도덕의 기초이고 양심의 바탕입니다. 정직을 떠난 진리도 신앙도 허구요 위선입니다. 거짓은 짧고 정직은 영원합니다. 정직한 인생은 영원한 명예와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여호와의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여호와께서 네 열조에게 맹세하사 네 대적을 몰수히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하신 아름다운 땅에 들어가서 얻으리니.."(신6:18-19)
셋째, 겸손해야 합니다. 성경에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이며(잠15:33, 잠18:12), 재물과 영예를 얻고(잠22:4, 잠29:23), 겸손한 자가 먹고 배부르게 되고(시22:26),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신다(시149:4)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넷째, 이웃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긍휼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병들고, 굶주리고, 헐벗고 외롭고 갇힌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돕기에 힘씁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는 자에게 천국의 영원한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마5:7, 잠14:2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시128:1)
/한태완 목사 지음, 요나출판사, "기쁨의 샘" 중에서
▣ 아름다운 벽돌 길을 만든 소년
미국과 전 세계에 있는 YMCA 건물을 수없이 지어준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의 일화입니다. 13세의 소년 존은 필라델피아의 한 벽돌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비가 내려 마을의 도로는 진창길이 되어있었습니다. 비가 조금만 내려도 그 길은 걷기가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옷자락을 움켜쥐고 힘겹게 걸으면서 불평만 할 뿐 길을 고칠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존은 그 길을 벽돌로 포장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다음날부터 얼마 안 되는 자신의 임금에서 날마다 일부를 떼어 벽돌 한 장을 샀고 길에 깔기 시작했습니다. 그 넓고 긴 길을 혼자서 완성하려면 2년은 넘게 걸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 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존은 그날도 벽돌 한 장을 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을의 어느 사람이 우연히 그것을 보았고, 존이 날마다 벽돌을 한 장씩 깔아온 이야기도 듣게 되었습니다. 이 소문은 곧 마을 전체로 퍼졌습니다. 존의 이야기를 듣고 반성한 마을 사람들은 길을 포장하기로 하고 힘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길은 아름다운 벽돌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일이 생길 때,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불평, 불만을 터트릴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제는 어려움을 솔선수범해서 해결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 기도: 주님! 어려움을 타파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 묵상: 지금 있는 어려움들을 적고 해결방법을 생각하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구원으로 인도하는 - 찬송가 521장 -
1. 구원으로 인도하는 그 문은 참 좁으며
생명으로 인도하는 그 길은 참 험하니
우리 몸에 매여 있는 그 더러운 죄짐을
하나 없이 벗어놓고 힘써서 들어 갑시다
2. 이 세상의 많은 사람 큰문으로 들어가
넓은 길로 갈지라도 멸망길로 끝나니
세상 헛된 부귀영화 모두 내어 버리고
주의 말씀 순종하여 그 생명길로 갑시다
3. 구원의 문 열렸으니 주의 공로 힘입어
주저말고 들어가서 생명길로 갑시다
구원의 문 닫힌 후엔 들어가고 싶으나
한 번 닫힌 구원의문 또 열리지 않으리
(후렴)
구원으로 인도하는 그 좁은문 들어가
영생으로 인도하는 그 생명길로 갑시다
▣ 문에 관한 성경 말씀
0 (욥기 31:9) 만일 내 마음이 여인에게 유혹되어 이웃의 문을 엿보아 문에서 숨어 기다렸다면
0 (시편 118:20)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
0 (잠언 8:34)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0 (아가 5:2)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 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0 (마태복음 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0 (마태복음 25:10)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0 (누가복음 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0 (요한복음 10: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0 (요한복음 10:2)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0 (요한복음 10: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0 (요한복음 18:16)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는지라 대제사장을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오니
0 (사도행전 16: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0 (요한계시록 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0 (요한계시록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0 (요한계시록 4: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 길에 관한 성경 말씀
0 네 형제의 소나 양이 길 잃은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그것들을 끌어다가 네 형제에게 돌릴 것이요(신22:1)
0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 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시1: 1- 6)
0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 앞에 있나니 그가 그 모든 길을 평탄케 하시느니라(잠5:21)
0 나는 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평한 길 가운데로 다니나니(잠8:20)
0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잠10:9)
0 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잠12:28)
0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16:9)
0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잠16:25)
0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6: 16)
0 너희 열조를 본받지 말라 옛적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외쳐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실을 떠나서 돌아오라 하셨다 하나 그들이 듣지 않고 내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스1:4)
0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3,14)
0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 13:24)
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0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 6- 8)
▣ 길에 관한 금언
0 우리는 우리가 가는 길을 모르지만 하나님은 자신이 가는 길을 아신다.( J.I. 패커)
0 하나님의 길과 마귀의 길은 시작부터 다르게 명백하게 구분되어 있다.
0 헛된길로 가는 빠른경주자 보다 올바른 길로 가는 절름발이에게 기회는 더 많다.(에드워드 영)
0 학생이 배우는 길은 학교로 가야하고, 어부의 고기잡이 길은 바다로 가야하고, 인간의 구원길은 십자가의 길로 가야 한다.(주기철 목사)
0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 그것만이 오직 하나님과 인류에게 동시에 봉사하는 길이다.
0 자신의 길을 잃은 사람들을 만나거든 관대하게 대하라. 길 잃은 영혼에게서 나오는 것은 무지와 자만, 노여움과 질투, 욕망뿐이니 그들이 제 길로 갈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라.(인디안 격언)
/한태완 목사 주제별 예화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