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기법(인물 설정 방법)
- <구멍난 충만>을 중심으로 -
조수응
류종호 교수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인물 설정 방법은 '해설적 방법'과 '극적 방법'으로 나뉜다.
해설적 방법은 작가가 인물의 속성을 열거하고 그 인물의 장.단점에 대해서 꾸밈없이 서술해가므로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따. 그러나 지나치게 기계적이고 단순하여 독자의 상상적 참여를 방해하는 단점도 있다.
반면에 극적 방법(간접적 방법)은 연극에서 인물들이 관객에게 보여주듯이 말과 행동으로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는 함축적인 방법이다. 작가의 개임을 줄이고 직접 독자에게 보여줌으로 독자가 인물을 바르게 파악할 수 있는 기회의 폭을 넓히게 된다. 그러나 직접적인 설명이 생략되기 때문에 비경제적이라는 단점도 있다. 또 작품의 주제가 숨겨져 있는만큼 음미를 요하며, 독자와 작가의 지적 협동이 그만큼 요구된다.
이 두 기법이 이지혼의 <구멍난 충만>에서는 어떻게 선용되었는지 분석해 보고자 한다.
⊙ <구멍난 충만>의 요약
주인공인 40대 초반의 아지매는 대량실업사태에 내몰린 남편이 먹이를 구하기 위해 무작정 둥지를 떠나자, 보금자리에 남겨진 새끼들을 위해서 저 역시 부일농장 김 사장댁 도우미(가정부)로 일자리를 얻게 된다.
"부동산으로 돈벼락을 맞았다는 말도 있고....... 그 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주인의 입맛에 맞는 요리지요. 사장님의 최대 관심은 정력이고, 사모님은 미용이거든요."
운전기사의 귀뜀에 드러나 있뜻 졸장부 가정임을 알 수 있다.
김 사장네는, 정력에 좋다는 용봉탕, 개소주 등을 또래인 정 사장, 조 사장 내외와 나누어 먹고 웃옷을 훌훌 벗어던진 채, 줄곧 아리송한 말을 떠벌이며, 종일토록 수표가 오가는 화투판을 벌이는 모습에서 읽히듯, 정부 요직의 최 국장, 신문사 김 부장, 경찰서장 등을 구워삶아서 투자, 사냥 등 온갖 비리를 저지리는 천민자본주의 대표적인 부패 집단의 일원이다.
아지매가 부일농장에 들어간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이야기는 절정에 달한다.
남자들 세 사람은 골프도 치고 먹거리도 맛볼 겸 떠났떤 동남아 여행에서 돌아온다. 그 새 거짓말하고 바람피우던 사모님들도 아무 일 없었따는 듯 일상은 변함이 없다. 정력에 좋다고 식인종처럼 사람의 태반까지 요리해 먹던 어느 날, 잉어 쓸개를 과다 복용한 정 사장이 응급실에 실려 가는 사건이 벌어졌따.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가방을 꾸리려 자기 방에 들어온 아지매는 새들의 둥지나 많은 동물들의 보금자리는 대개 등그런 형태인데 왜 사람방만 사각형인지, 심지어 저승 방인 관棺까지 사각형인지, 숨 막혀 하다가 '최음제 건강식품 파문'이라는 신문의 머리기사를 읽었다.
그때, "아까 여기서 무슨 탕 먹으려다 말았따며 당장 가져오라."했다는 기사의 전갈에 태반탕 냄비 위에 '사장님 내외분께서 한번 읽어보시라는 뜻으로 기사가 눈에 얼른 띄도록 잘 접어 식탁 한가운데 올려 두'고 더는 이 집에 있을 수 없어 '서둘러 가방과 보따리를 들고 밖으로 나오'는데 현관 앞에서 관리인과 박기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 약은 돼야지 접붙일 때 쓰는 약이어."
"그렇다면 약은 제대로 잘 썼구만요."
그들도 신문을 보았는지 알 듯 말 듯한 소리가 들렸다.
⊙ <구멍난 충만>의 분석
'사람은 무엇을 먹고 사느냐에 따라 건강을 짐작할 수가 있고, 무엇을 읽고 사느냐에 따라 정신을 가늠할 수가 있다고 합니다. 육체와 정신이 다 같이 소중하고 건강한 육체가 건강한 정신이란 말도 있지만, 사람들은 우선 먹는 일에 턱없이 집착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에서 보듯 제시부분(exposition)부터 편집자적 논평이 가해지고 있다. 이어지는 설명도 '제가 부일농장 김 사장 댁의 도우미라는 일자리를 얻게 된 것은 갑작스러운 남편의 실직 때문이었습니다.'여서 주인공의 처지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움을 충분히 짐작케 해준다. '입에 반창고를 붙인다는 건 말조심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 정도야 이미 각오하고 있는 터여서 저는 고개만 끄덕였씁니다.' 역시 졸장부의 생활 형태나 집안 분위기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고 있다. '그녀가 주방 벽에 달라붙은 빨간 버튼을 누르자 2층에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가늘게 들려오더군요. 가정부가 2층엘 함부로 올라오면 안 된다는 그런 식의 규칙이 몇 가지 더 있다는 사실을 저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도 그녀가 이 집에서 어떻게 처신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선명하게 노출시키고 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대화의 장면은 살아 있는 자라 목을 칼로 쳐서 그 피를 먹는다는 등 비교적 빠른 속도로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자라 목을 차마 못 잘라 절절매는 아지매의 모습을 통해 장면을 생생하게 하는 집약적 방법을 쓰고 있다. 그러나 곧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어 거리를 헤매는 남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라는 심정을 직접 토로하는 편집자적 논평을 가하고있다. 이 밖에도 '응정실 벽에 걸린 크고 네모난 텔리비전에서는 음식 맛이 좋은 집을 소개하는 리포터들의 과장된 맛 자랑이 한창이었습니다. 이어서 항시 손님들이 들끓어 앉을 자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먹어야겠다는 손님들이 줄을 서 있는 식당들이 화면 그득히 떠올랐어요.'라든지, '그들은 자정이 가까워서야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남자들은 응접실에서.......' 또 '이제 짐작을 하셨겠지만, 제가 그 집에서 겪었떤 50일 동안의 생활은 첫날과 거의 다름이 없었습니다.'와 같은 중요한 편집자적 논평이나 요약의 예가 앞부분에 많거니와, 사소한 경우까지 합친다면 그 건수와 양은 더 불어난다. 그나마 뒷부분으로 갈수록 대화는 많아지지만, 가령 "그럼 신문사는 해결된 셈이고, 경찰은 으째야겄나?"와 "그 쪽은 조 사장이 해결해야지. 서장이 같은 향우회 회원이잖아?" 같이 대화 내용 역시 편집자적 논평이 가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약은 돼야지 접붙일 때 쓰는 약이어." "그렇다면 약은 제대로 잘 썼구만요."라는 대화로 소설을 끝마침으로써 극적 제시를 한 듯하였으나, '그들도 신문을 보았는지 알 듯 말 듯한 소리가 들렸다'는 해설을 앞에 붙임으로써 독자가 숨겨진 주제를 음미할 여지를 끝내 줄이고 말았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아무리 편집자절 논평이 많고 감상적 심정 토로가 있다할지라도, 다시 말해 작가와 작중인물의 거리가 거의 없다시피 해도 <구멍난 충만>은 소설로서 골격을 갖추는 데 아무런 흠이 안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깐 극적 제시 없이도 얼마든지 소설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말이 성립된다. 그래서 <구멍난 충만>은, 우리가 흔히 고전소설에 많이 보아온 해설적 방법보다 극적제시가 소설의 기법상 위에 있다는 통념을 깬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이제 극적 제시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따고 해서 그 기법이 졸렬하다든가, 혹은 작품성이 낮다는 식의 공식은 폐기해야 할 것 같다. 예컨대 최진실은 키가 작아도 1급 배우였고, 정종철이는 못생긴 덕에 1급 코미디언이 된 것 아닌가. 모든 소재에 적용할 수 있는 이상적 기법이란 추상 속에서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제재와 주제에 따라 거기에 알맞은 방법이 있을 터이다. 수영장에서 비키니를 입은 아가씨가 수건으로 앞을 가리고 다니면 더 단정해 보이기는커녕 어색해 보이기만 한 예를 상기해 봐도 알 일이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구멍난 충만>에서처럼 극적 제시 없이도 얼마든지 소설의 골격을 갖출 수 있고 그 작품성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극적 제시 방법이 작품의 효과에 강렬성을 부여하고 있으며, 그 방법을 써야 주제 암시가 잘되어, 독자를 상상의 세계로 이끎으로써 여운과 여정을 오래 남게 하는 데 적합한 것임을 믿어왔다. 그런데 이지흔의 경우는 외려 편집자적 논평이나 요약이, 인상적인 지문으로 서술되어 '기능적' 구실을 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기능적(functional)이란, 그것이 부가적 장식이나 샛길로 떨어지지 않고 전체적 효과를 위해 공헌하고 있다는 뜻이다(이선영<문학비평의 방법과 실제>삼지원, 2003 pp145-149에서 인용함). 이는 교실에서의 태도는 정숙이 '기능적'구실을 하는 이치와 같다할 것이다. 또 무더위 느낌을 온도는 낮아도 습도 때문에 더 더울 수 있는 체감 온도는 무시한채, 꼭 온도계의 눈금으로만 고집할 수 없음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