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성서 비유 말씀 2
바리사이와 세리
예루살렘으로 가는 유다 땅 어느 마을에 바리사이와 세리가 살고 있었다. 그 마을 한쪽 끝에는 바리사이가 사는 하얀 이층집이 우뚝 서 있었고, 반대편 끝자락에는 세리가 사는 초라하고 나지막한 집이 좁다란 정원에 둘러싸인 채 호두나무의 넓은 잎사귀에 가려져 있었다. 바리사이는 부유하고 학식이 풍부하며, 특히 명석한 두뇌로 율법에 통달하고 무엇보다 계율을 지키는 데 철저한 사람이었다. 반면, 세리는 한 번도 율법에 대해 배운 적이 없어 무지한 촌사람으로 여겨지는 인물로서, 그가 알고 있는 계율은 몇 가지 되지 않는 데다 그나마 제대로 지키지도 못했다. 세리가 바리사이를 두려워하고 존경한 반면, 바리사이는 세리를 무시하며 행여 세리의 입김이라도 자기 몸에 닿을까 싶어 항상 멀리했다.
첫 수확을 감사하는 축제날이 왔다. 두 사람은 모세의 가르침에 따라 제물을 바치기 위해 성전으로 갔다. 그들은 하느님께 기도하고 감사하며 주님을 찬미했다. 바리사이는 고개를 쳐들고 두 팔을 벌리며 이렇게 기도했다.
“하느님, 당신께서 저를 못된 관리나 부정을 저지르는 인간, 또는 간음하는 자나 이 세리 같은 인간으로 창조하지 않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며 당신께서 주신 소득의 십분의 일을 제물로 바칩니다.”
그러나 세리는 한쪽 구석에 서서 수치심이 가득한 얼굴을 차마 들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그런 다음 두 사람은 성전을 나와 마을로 가는 큰길로 접어들었다. 바리사이는 세리와 멀어지려고 바쁜 걸음을 했고, 세리는 바리사이가 멀리 떨어져 앞서가도록 걸음을 천천히 했다. 그들이 마을 가까이 다다랐을 때, 길가에 앉아 자선을 구하는 나병 환자가 보였다. 바리사이가 다가오는 것을 본 나병 환자는 목소리를 높여, 나병으로 불구가 되어 아무 희망도 없이 끝없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자신의 몹쓸 운명을 한탄하며 통곡했다. 바리사이가 곁을 지나가자, 그는 몸을 돌려 이렇게 간청했다.
“지난 사흘 동안 제 목구멍으로 먹을 것이나 마실 것이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제 몸의 힘이 다 빠져 나가서 기력을 회복할 빵과 목을 축일 음료를 구하러 마을로 내려갈 수도 없고, 육신의 고통을 멎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간청하오니, 착하신 주인이시여, 자비를 베푸시어 제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조금만 주십시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하느님께서 당신의 선행을 축복하시어 당신은 이제로부터 영원히 은총을 받으실 것이며, 당신 집안의 자손들도 대대로 은총을 입을 것입니다!”
그러자 바리사이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구걸하는 나병 환자의 간청에 이렇게 대답했다.
“모세께서는 우리에게 피를 멀리하라 명하셨고, 옮을까 두려우니 나병 환자들을 멀리하라 명하셨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재물을 잃을 것이라 하셨다. 그런데 네가 지금 모세의 가르침을 어기라고 나를 유혹하는구나. 물러나라, 이 비천하고 더러운 인간아. 너의 그 지독한 고통은 네가 살면서 지은 죄와 저지른 잘못과 거룩한 율법을 어긴 데 대한 대가일 뿐이다!”
나병 환자는 학식이 높은 바리사이의 분노를 가라앉히려고 애쓰며 이렇게 말했다.
“제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여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도 도저히 그럴 수가 없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이 저주스러운 병마와 제가 원치 않은 오랜 단식 때문에 그럴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는 그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으므로 빠른 걸음으로 나병 환자가 앉아 있는 곳을 외면한 채 빙 돌아서 가 버렸다.
잠시 후, 이번엔 세리가 나병 환자 쪽으로 다가왔다. 나병 환자는 그가 바리사이와 달리 기도용 숄과 각반을 걸치지 않은 것을 보고 세속의 때로 더러워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무게 없이 경박한 그의 걸음걸이에는 율법을 공부한 사람의 경외심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오랫동안 세탁하지 않은 옷을 입었고, 맨발이었으며, 얼굴에는 무지함이 드러나 보였다. 그래서 나병 환자는 그 세리에게 자신이 처한 고통과 어려움을 털어놓거나 탄식하는 대신 시선을 돌려 버렸다. 밤낮으로 ‘율법을 깊이 생각하는’ 학식 있는 사람도 자기를 경멸하고 가 버렸는데, 옷차림과 걸음걸이로 보아 율법이나 가르침이 전혀 의미 없어 보이며 무지하고 하잘것없어 보이는 이 사람에겐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병 환자가 다시 절망을 느끼며 자포자기하고 있을 때, 세리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세리가 자신을 스쳐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하며, 곧 멀어져 가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발자국 소리는 갑자기 멈춘 채 들리지 않았다.
나병 환자가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자, 세리가 서서 염려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리가 나병 환자에게 말했다.
“친구여, 내가 보기에 당신은 이 자리를 떠날 힘도 없고, 우연히 이 길을 지나가는 나처럼 보잘것없는 사람을 쳐다보기 위해 고개를 들 힘조차도 없어 보이는군요. 내 말이 맞지요?”
그리고는 덧붙였다.
“내가 보기에는 그런 것 같은데 잘못 봤나요?”
그 말을 듣자 나병 환자는 놀라며 재빨리 말했다.
“자비로운 사람이여, 당신 말대로입니다! 지난 사흘 동안 내 목구멍에는 먹을 것도 마실 것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내가 지은 많은 죄에서 비롯된 나병이 갈수록 심해지고 고통 또한 더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좋으신 분이여, 거기 그렇게 서 있지 말고 내게서 멀리 떨어지십시오. 그렇게 해야만 당신은 모세의 율법을 어기지 않을 것이고,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당신의 재물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세리는 나병 환자가 참으로 불쌍하게 여겨져서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는 형제여, 당신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라고 명하셨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해 그분을 사랑한다는 것과 그분의 사랑이 가치 있다는 것을 증거하라고 하셨음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허락한다면, 그리고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당신을 이 튼튼한 팔로 안아서 내 등에 업고 여기서 멀지 않은 우리 동네로 가서 내 집에 모시고 싶군요. 그리고 우리 집 음식이 먹을 만하다면 우리 집 식탁에 당신을 모시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이 말을 듣고 나병 환자는 놀라움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세리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얼른 허리를 굽혀 억센 팔로 마치 갓난아이를 안듯 나병 환자를 안아 등에 업고는 마을에 있는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나병 환자의 상처를 씻어 주고 향유를 발라 준 다음, 빵과 우유와 꿀을 대접했다.
세리의 아내와 아이들은 손님을 모신 것을 기뻐하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도왔다. 그리고 세리가 그랬던 것처럼 온 마음을 다해 그를 돌봐 주었다. 나병 환자는 세리의 가족들에게 깊이 감사하며 음식을 먹었고, 그들에게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와 사랑이 넘치기를 기도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다음, 나병 환자는 폭신폭신한 담요가 깔린 깨끗한 침대에 누웠다. 담요는 아무도 사용한 적 없는 깨끗한 홑청으로 싸여 있었다. 세리의 가족들이 그에게 염소 털로 만든 이불을 덮어 주자, 그는 온갖 고통을 잊고 편안히 잠들 수 있었다.
한편, 세리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앞서 간 바리사이는 세리보다 먼저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에서 그는 다른 집들보다 높이 솟아 있는 데다 새로 하얗게 칠을 해서 멀리서도 눈에 띄는 자기 집을 바라보려고 고개를 들었다. 그가 떨리는 기쁨과 남모르는 만족감을 은근히 느끼며 자랑스럽게 고개를 들어 맑은 하늘을 가로질러 자기 집이 있는 방향으로 눈길을 주는 순간, 그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의 훌륭한 저택이 서 있던 자리에는 흉악한 야수들이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고 남은 뼈의 잔해와도 같은 시꺼먼 골조와 연기가 피어오르는 잿더미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바리사이는 그만 기절하여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웃 사람 하나가 마침 그곳을 지나다가 바리사이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는 가까운 우물로 뛰어가 물동이 하나 가득 차가운 물을 길어다가 그의 얼굴에 쏟아 부었다. 바리사이는 의식을 되찾고 눈을 떴으나, 그가 다시 본 것은 조금 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의 기쁨이고 자존심이자 만족이었던 훌륭한 저택은 화재로 모두 타 버렸다. 남은 것이라곤 검게 그을어 버린 골조와 나뒹구는 돌들과 연기가 피어오르는 잿더미뿐이었다.
바리사이를 불쌍하게 여긴 이웃 사람은 그의 저택에 어쩌다가 불이 났는지 자신이 아는 바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바리사이가 기도하러 예루살렘으로 떠났을 때 집 안에 지펴 놓은 난로가 과열되어 불이 난 것으로 추측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그의 아내와 아이들은 이웃마을에 사는 형네 집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불이 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불은 으레 그렇듯이 빠르게 번져서 집 안의 가구와 옷과 보석, 그리고 수많은 율법서까지 몽땅 태우고 말았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미처 손을 쓸 겨를도 없어서, 결국 기둥과 벽돌 몇 개만 남고 말았다고 이웃 사람은 말했다.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
이 말을 끝낸 이웃 사람은 자신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말도 한마디 못한 채 서 있는 바리사이 곁을 조용히 떠났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바리사이가 얼마나 거만하고 냉정한지, 얼마나 지독한 구두쇠이며 탐욕스러운지, 이웃을 얼마나 노골적으로 경멸하며 거리를 두고 살았는지 잘 알았다.
바리사이는 값나가는 물건 중에 혹시 불에 타지 않은 것이라도 있을까 싶어 잿더미를 마구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의 손과 팔은 뜨거운 재로 인해 화상을 입고 상처가 나서 피까지 흘렀다. 비싼 기도용 숄이 찢어지고 더러워졌으나, 바리사이는 미친 사람처럼 그은 벽돌 더미를 헤집었다. 남아 있는 것을 모두 들춰 보았으나 그가 집 안의 나무 궤와 율법서 사이에, 가구와 하얀색으로 아름답게 칠한 높은 벽의 틈새에 간직했던 금은보화는 어디에도 없었다.
연기 나는 잿더미와 시꺼멓게 그은 기둥과 돌 더미에서 물러 나온 그는 마치 이 땅 아래에서 저 하늘 위에 이르는 온 세상이 전부 무너져 내린 듯 울부짖기 시작했다. 전능하신 하느님을 부르며 그토록 자선을 베풀고, 단식하고, 십일조를 바치고, 거룩한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율법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모든 계명과 가르침을 새롭게 풀이하고 가르치며 살아왔는데도 결국 이렇게 당하고 만 재난에 대해, 그는 항의하고 울분을 토해 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바리사이가 화마의 제물이 된 자기 집을 보고 완전히 정신이 나간 나머지, 잿더미 위에서 전능하신 하느님을 원망하며 끝없이 울부짖고 비명을 지르며 뒹굴고 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마을 사람들에게 퍼졌다. 이 소식을 들은 세리가 달려가 보니, 그는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는 집의 잔해 더미에서 뒹굴고 있었다. 세리는 그에게 다가가 애써 위로하며 도와주고 싶다는 말을 했다. 자신의 집은 바리사이와 그의 가족들에게 언제든지 열려 있으며, 하느님의 헤아릴 수 없는 은총과 자비로 어려움이 지나가고 모든 것이 평화 가운데 제자리를 잡을 때까지 기꺼이 자기 집에 손님으로 모시겠다고 여러 차례 힘주어 말했다.
바리사이는 이 비천하고 무지한 세리 외에는 마을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와서 위로해 주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리하여 자기가 경멸하던 세리의 간곡한 제의를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다는 사실에 극심한 고통과 슬픔을 느꼈다.
결국 바리사이는 세리의 집으로 갔다. 세리는 서둘러 그의 발을 씻어 주고 얼굴과 손을 씻을 물을 크고 작은 대야에 각각 담아 가져다주었으며 깨끗한 수건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공손하게 식탁으로 안내한 다음, 당신의 창조물을 올무에서 구해 주시고 악의에 찬 증오와 편협의 덫에서 건져 주시기 위해 굽어 살피시는 선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내려 주신 음식을 함께 먹기를 권했다. 바리사이는 식탁에 앉았다. 맞은편 자리에는 얼마 전 큰길에서 그에게 빵 한 조각과 물 한 모금을 구걸했다가 거절당한 나병 환자가 앉아 있었다.
나병 환자는 자기로 말미암아 바리사이에게 병이 전염될까 두려워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생각을 읽은 바리사이는 자기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지 말고 계속 앉아 있으라고, 모든 것이 하느님에게서 왔으니 그분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고 그분을 찬미하며 즐거이 감사드리는 것이 모든 사람의 의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을 반 바퀴 돌아서 나병 환자에게 다가가더니 무릎을 꿇고 엎드려 나병 환자의 발에 입 맞추고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의 어깨를 비롯해 야윈 온 몸이 울음으로 격렬하게 떨렸고 아픈 눈에서는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그는 고개를 들고 고통스러운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저를 용서하소서! 저는 참으로 큰 죄를 지었습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저를 용서하시고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저는 죄인입니다!”
<그 왕의 이름은 사랑이었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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