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지눌2. 굴산사지에서(1)
굴산사지에서 선禪의 의미를 묻다
▶굴산사지 당간지주 . 강건기 전 전북불교대학 학장님과 함께
선禪, 그 단순함의 철학
드디어 첫 여정이 시작되었다. 지눌이 출가했다고 전해지는 굴산사지가 바로 그곳이다. 지금은 비록 사지寺址로만 남아있지만, 한때는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한 곳으로서 선불교의 위용을 떨친 곳이다. 그 흔적을 찾아 편집장님과 함께 스승님을 모시고 강릉으로 향하는 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고속도로가 많이 막힌다. 스키 장비를 실은 자동차들도 종종 보인다. 급할 것 없는 일정이니 여유를 갖자고 스스로 위로해본다. 창밖을 바라보니, 산에는 아직도 많은 눈들이 쌓여있었다. 고속도로의 정체를 뚫고 도착한 동해바다의 바람은 역시 시원함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마음이 뻥 뚫린다는 말로는 어째 표현의 한계가 느껴진다.
경포대에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하고, 바다가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연초록 바다에서 맛있는 바람이 불어와 우리들의 식욕을 돋운다. 그러고 보니 스승님과 식사를 함께 한 것이 언제였던가. 스승님과 함께 여행한다는 즐거운 마음 한 구석에 죄송스런 마음이 자리를 잡는다.
늦은 점심을 마치고 도착한 굴산사지에서의 첫 느낌은 아쉽게도 무척 추웠다는 것이었다. 추위에 약한 체질을 탓해야 할까? 역사적인 현장 앞에서의 첫 소감이 겨우 너무 추웠다니, 내 자신이 한심했다. 그래도 어쩌랴. 이것이 나의 실존인 것을.
국내에 현존하는 최대 규모라고 알려진 굴산사지 당간지주와 함께 비로자나부처님 모습을 하고 있는 석불石佛도 둘러보았다. 운이 좋게도 석불 앞집에 사는 노인 한 분께 석불 이야기며, 굴산사를 처음 연 범일梵日국사(810-889)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강릉 단오제의 주신主神이 범일국사라는 이야기를 할 때는 자부심을 느끼는 듯했다. 연세를 여쭤보니 올해로 80이라고 한다. 너무 건강한 모습에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질 뻔 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진다. 늦기 전에 나머지 유적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아름답게 보존된 범일국사 부도탑과 국사의 탄생설화와 관련 있는 석천石泉, 학바위 등을 둘러보자 어느덧 깜깜해져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내일 다시 답사하기로 하고 낙산사로 몸을 옮겨 1박을 하기로 했다.
낙산사 근처에 숙소를 정하고 바닷가 백사장을 잠시 거닐었다. 동해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에도 아랑곳없이 놀러온 아이들은 불꽃놀이에 한창이다. 그곳에서 저녁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편집장님의 코 고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고 말았다. 갑자기 굴산사를 통해 선불교禪佛敎를 전파했던 범일국사와 그곳에서 출가하여 선禪의 정신을 계승했던 보조국사 지눌, 그리고 드라마 <대장금>이 묘하게 오버랩 되어서 그냥 누워있을 수 없었다. 조용히 엎드려 휴대폰 메모장에 문득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기 시작했다. 다음 날 편집장님 덕분에 원고 모두 마쳤다고 웃으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선禪의 정신을 담은 드라마 <대장금>
명품 사극이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 요소, 즉 재미와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 삶에 소중한 가치나 의미를 담은 철학적 메시지를 재미있고 긴장감 있게 전해준 명품 사극으로 <허준>이나 <대장금>, <뿌리 깊은 나무> 등을 뽑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드라마 <대장금>은 선의 정신과 많이 닮아있다. 범일이 선을 전파하고 지눌이 그 정신을 계승했던 이곳 굴산사지에서 장금이를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싶다.
선禪의 핵심은 글자에서도 드러나듯이 존재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단순하게[單] 보는[示] 데 있다. 불교의 핵심인 깨침[覺]을 설명하는 여러 교학체계들이 복잡하게 전개되면서, 깨침이라는 달을 보지 못하고 그것을 가리키는 손가락[標月之指]에 집착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달마대사는 손가락이 아니라 직접 달을 보라고 강조하면서 단순함의 극치인 선의 정신을 널리 알렸던 것이다. 그 선불교가 구산선문을 통해서 우리나라에 널리 유포되어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알다시피 대장금은 궁중 음식을 소재한 한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에는 음식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이 존재한다. 하나는 드라마 주인공인 장금이와 그의 스승인 한상궁, 정상궁의 시선으로서, 그들은 음식을 단순하게[單]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示]. 다른 하나는 그들의 반대편에 있는 금영이와 최상궁, 그리고 두 여인을 둘러싸고 있는 집단의 시선으로서, 그들은 음식을 복잡하게 바라본다. 즉, 그들에게 음식을 만드는 수라간은 사람의 입과 마음을 즐겁게 하는 곳이 아니라 부와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이를 위해 그들은 음식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장금의 스승 정상궁은 자신이 최고상궁이 되자 이렇게 선언한다.
“내가 최고상궁으로 있는 한, 사람의 입에 들어가는 것은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그 어떤 것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음식을 부와 권력을 위한 수단으로 복잡하게 바라보던 자들에게 가하는 멋지고도 강력한 일침이었다. 오늘날 원산지를 속여 국산이라고 파는 사람들이나 더 많은 이익을 얻고자 사람이 먹으면 해가 되는 제품을 만드는 이들에게 정상궁의 음식철학을 배우라고 권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씁쓸해진다.
장금이는 의녀가 되어서도 정상궁에게서 배운 단순함의 가치를 잃지 않는다. 당시 중전이 던 문정왕후는 자신이 낳은 아들이 왕위를 물려받게 하려고 세자의 약에 독을 타라는 명을 장금에게 내린다. 그러나 그녀는 의술은 사람을 고치고 살리는 것이지 권력을 위해서 사람을 죽이는 수단이 아니라고 간언한다. 명을 듣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말하는 중전 앞에서 장금이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바로 스승의 가르침인 단순함의 철학이었다. 그것은 곧 선禪의 생명력이자 가치이기도 하다.
이런 장금이의 마음을 그녀의 의술 스승도 알았던 것일까? 중종이 장금이를 자신의 주치의로 임명하려고 하자 모든 사람들이 반대한다. 대신들은 물론이고 내의원의 의관들, 심지어 장금이와 동거동락했던 의녀들마저 장금이가 뛰어난 의녀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한 목소리로 반대한다. 한 사람만 빼고 말이다. 바로 장금이의 스승인 의관 신익필이다.
장금이를 임금의 주치의로 임명하는 일에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는데 그녀의 스승만 찬성하자 임금은 그에게 이유를 묻는다. 그때 스승은 이렇게 말한다.
“장금이는 ‘단순하게’ 보기 때문입니다.”
아! 이 대목에서는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전원일기>에서 일용이 역을 담당했던 박은수라는 배우가 장금이 스승 역할을 맡아 연기했는데, 그 배우가 그렇게 멋있게 보인 적은 처음이었다. 그랬다. 장금이는 음식을 만들거나 의술을 행할 때에도 그저 단순하게[單] 그 일만 바라볼[示] 뿐이었다. 다른 어떤 것도 염두에 두지 않고 오로지 그 일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스승은 알아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선禪의 위대한 정신이자 단순함의 철학이다. 이 얼마나 멋지지 않은가!
마음 닦는 불교로의 회복
지눌이 바라본 고려불교의 문제도 드라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눌의 눈에 비친 고려불교의 근본적인 문제는 승려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인 불교를 단순하게 보지 않고 복잡하게 보았다는 데 있었다. 그 구체적인 모습이 어떻게 나타났을까? 불교를 권력을 위한 수단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권력집단과 결탁하여 각종 정변에 휩쓸렸으며, 불교를 부의 축적을 위한 수단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승려들이 고금리 사채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불교를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했기 때문에 당시의 승려들이 부녀자들을 희롱하고 다녔던 것이며, 불교를 기득권 유지의 수단으로 보았기 때문에 토지와 농노를 지나치게 사유화하는 폐단을 낳았던 것이다. 또한 당시 노비 출신으로 출가한 승려는 승적에 오르지도 못했다. 이것은 승가의 평등성을 강조했던 부처님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였다. 이 모두가 불교를 그 어떤 것의 수단으로 복잡하게 바라본 결과였던 것이다.
지눌은 의외로 단순한 인물이었다. 그가 내린 처방은 불교를 단순하게 보라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곧 마음 닦는 불교[修心佛敎]로의 회복이었다. 명예와 이익, 권력이라는 복잡한 것을 모두 버리고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고, 경전을 읽고 예불을 올리며 노동과 운력 등의 일상적인 수행을 하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단순하게 불교를 바라보고 수행하자는 모임이 바로 정혜결사定慧結社였던 것이다. 이 결사운동이 오늘날까지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도 선의 이런 정신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여행하는 내내 장금이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드라마 속의 상황과 지눌 당시의 모습, 그리고 오늘의 우리 모습이 계속 오버랩 되었던 것이다. 장금이라면 아마도 이렇게 외치지 않았을까? 인간의 근원적인 괴로움의 문제를 해결하고 보살행을 실천하는 구조로 되어있는 불교는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그 어떤 것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목숨 걸고 지켜야 할 선禪의 정신이라고 말이다.
동해의 차가운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굴산사지에서 생각해본다. 선불교를 표방하고 있는 오늘의 우리 승가는 과연 부처님의 가르침인 불교를 단순하게 보고 있을까, 아니면 복잡하게 보고 있을까? 바닷바람이 더욱 차갑게 느껴진다.
첫댓글 禪... 단순하게 보라는 말씀 잘 배웠습니다.
강건기 학장님과의 인연... 정혜사 보문유치원 개원식 때 강학장님의 큰자제와 나의 큰 딸이 1기생으로 입원하였고, 그 때의 자상한 부정을 느꼈고, 1988년 불교대학 1기로 입학했을 때 학문적 무게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강학장님과 그런 인연이 있으셨군요.
거사님같은 분들이 불교대학의 든든한 버팀목이십니다.
Calm, Smile~~
좀 이해할것 같아요 감사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