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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본 금강경 해설
(와즈라체디카 나머 트리샤티카 프라즌냐파라미타)
----- 최 봉 수
2. 수부티 존자의 질문
그런데 수부티가 바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수부티 존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어깨에 상의를 걸치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부처님이 계신 곳을 향해 합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 놀라운 일입니다. 선서시여, 지극히 놀라운 일입니다. 여래 응공 정등각자께서 이와 같은 지극한 보살핌을 보살 마하살들에게 베푸시는 일이 그러합니다. 부처님, 놀라운 일입니다. [선서시여, 놀라운 일입니다.] 여래 응공 정등각자께서 이와 같은 지극한 사명을 보살 마하살들에게 부촉하시는 일이 그러합니다.”
“부처님, 양가의 아들딸로서 보살승으로 나아가 서 있는 자는 어떻게 서야하며, 어떻게 나아가야 하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
이와 같이 말했을 때 부처님은 수부티 존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수부티야, 네가 말한 대로이다. 수부티야, 여래는 지극한 보살핌을 보살 마하살들에게 베풀고 있으며, 여래는 지극한 사명을 보살 마하살들에게 부촉하고 있다. 그러므로 수부티야, 잘 듣고 지극하게 생각하라. 보살승으로 나아가 서 있는 자가 어떻게 서야 하며, 어떻게 나아가야 하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를 설하겠다.”
“예, 부처님.”이라고 하며 수부티 존자는 부처님께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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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스크리트 금강경 역해
----- 현진스님
2
게다가 바로 그때, 장로인 수보리가 바로 그 회합에 참석하여 함께 앉아 있게 되었다.
바로 그때 장로인 수보리가 자리로부터 일어서 겉옷을 한쪽 어깨에만 걸친 채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서 복덕 갖춘 분이 계신 그곳을 향해 합장을 올리며 복덕 갖춘 분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복덕 갖춘 분이시여! 가장 경이롭습니다. 잘가 닿은 분이시여! 바로 그만큼 응당 공양 올려야 되며 바르고 동등하게 깨달으신 분인 그처럼 오신분에 의해 위대한 존재 상태인 깨달을 존재상태자들은 최상의 제접으로 호념되고 있습니다. 경이롭습니다. 복덕 갖춘 분이시여! 바로 그만큼 응당 공양 올려야 되며 바르고 동등하게 깨달으신 분인 그처럼 오신분에 의해 위대한 존재 상태인 깨달을 존재상태자들은 최상의 힘실어 줌으로 힘이 실렸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복덕 갖춘 분이시여! 깨달은 존재상태자의 수레로 함께 나아가는 귀족자제에 의해서나 귀족여식에 의해서 마음이 어떻게 머물려져야 하며 어떻게 접근되어져야 하며 어떻게 장악되어져야 합니까?
그렇게 말해졌을 때 복덕 갖춘 분께서 장로인 수보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훌륭하구나, 수보리여! 그렇구나. 그것은 수보리여! 참으로 그렇게 네가 말한 그대로이다. 여래에 의해 위대한 존재 상태인 깨달을 존재상태자들은 최상의 은총으로 둘려져 감싸여 있다. 여래에 의해 위대한 존재 상태인 깨달을 존재상태자들은 최상의 실어줌으로 실렸다. 그러니 확실히 잘 들어라, 수보리여! 그리고 생각에 잘 새겨라! 깨달은 존재상태자의 수레로 함께 나아가는 이에 의해 마음은 이렇게 머물러져야 하고 이렇게 접근되어져야 하며 이렇게 장악되어야 한다(라고) 내가 그대를 위해 말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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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말 금강반야바라밀경
2. 수보리의 청법[善現起請分]
그 때 장로이신 수보리가 대중 가운데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가 드러나도록 가사를 수하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며 부처님께 사뢰었다.
거룩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여래 · 아라한 · 정등각께서는 보살 마하살들을 위없는 지혜와 자비로 잘 보살펴 주시고 거두어 주십니다. 여래 · 아라한 · 정득각께서는 보살 마하살들에게 위없는 지혜를 부여하여 보살도(菩薩道)가 끊임없이 행해지도록 잘 당부하고 계십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이 위없이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의 마음을 내었다면[發阿耨多羅三藐三菩心] 마땅히 어떻게 뜻을 세워야 하며, 어떻게 수행해야 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수보리여. 그대가 말한 바와 같이 여래 · 아라한 · 정등각은 보살 마하살들을 위없는 지혜와 자비로 잘 보살펴주고 거두어 주며, 위없는 지혜를 부여하여 보살도가 끊임없이 행해지도록 잘 당부하느니라.
수보리여, 참으로 잘 듣고 마음에 잘 새겨야 하느니라. 선남자 선여인이 위없이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의 마음을 내었으면 어떻게 뜻을 세워야 하며, 어떻게 수행해야 하고,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를 설할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기꺼이 듣겠나이다.
수보리는 세존께 아뢰고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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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스님 금강경 옮겨 쓰기
2.
때가 되자 대중 가운데 있던 수보리 장로가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옷차림으로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며 공경하는 마음으로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드무신 분,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모든 보살들을 잘 감싸 주시며 모든 보살들에게 잘 부촉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위없는 바른 깨달음에 마음을 낸 선남자 선여인은 반드시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잘 물었다. 수보리야, 내가 말한 대로이다. 여래께서는 모든 보살들을 잘 감싸 주시며 모든 보살들에게 잘 부촉하신다. 그러니 수보리야, 이제 자세히 들을지어다. 너희를 위하여 이야기하리라. 위없는 바른 깨달음에 마음을 낸 선남자 선여인은 반드시 이와 같이 살아야 하며, 이와 같이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세존이시여, 그렇게 해 주십시오. 즐거운 마음으로 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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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으로 읽는 금강경
----- 송찬우
때에 장로인 수보리가 대중 가운데 있다가 그 즉시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에 가사를 걸치고 우측 무릎을 땅에 끓고 합장하곤 공경하는 마음으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모든 보살들을 훌륭하게 보호 염려하시며, 모든 보살들에게 훌륭하게 부촉하시는군요.”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리라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어떻게 그 마음에 깨달음ㅁ으로써 안주해야만 하며, 어떤 방법으로 그 수행 과정에서 일어나는 번뇌의 마음을 항복받아야만 할런지요.”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수보리야, 네가 말했던 것처럼 여래께서는 모든 보살들을 잘 호념하고 모든 보살들에게 잘 부촉하시느니라. 너는 지금 자세히 듣거라. 너를 위해서 설명해 주리라.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리라고 발심을 하면 이와 같이 안주하고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받으면 되느니라.”
“예,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듣기를 원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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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욱 박사의 금강경 강화
이때 장로 수보리가 대중 가운데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꿇고, 합장하고 공경하며 부처님께 사뢰되,
“드물게 계신 세존님, 여래가 모든 보살을 잘 보호하고 생각하십니까? 모든 보살을 잘 부촉하십니까? 세존님, 착한 남자나 착한 여인이 아누다라삼먁삼보리를 내려면, 응당 어떻게 머물며, 마음을 어떻게 가지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 받으리까?”
부처님이 말씀하시되,
“착하고 착하다, 수보리야. 네 말한 바와 같아서, 여래는 모든 보살을 두호하여 생각하며, 모든 보살을 잘 부촉하시느니라. 너는 이제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너를 위해서 얘기할 것이다. 착한 남자나 착한 여인이 아누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려면 응당 이렇게 머물 것이며,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받을 것이나라.”
“참 그렇습니다, 세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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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농의 금강경 강의
이때 장로 수보리가 대중 가운데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 공경하며 부처님께 사뢰어 말했다.
“희유합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모든 보살을 잘 호념해 주시고 모든 보살을 잘 부촉해 주시나이다.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면 응당 어떻게 그 마음을 머무르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수보리여! 지금 그대가 말한 것처럼, 여래는 모든 보살을 잘 보호하고 모든 보살을 잘 부촉해 준다. 그대는 지금 내가 설하는 법문을 분명하고 자세하게 잘 듣도록 하라. 마땅히 너를 위해 설하리라.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막삼보리심을 발하면 응당 이와 같이 머물며,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한다.
“예, 세존이시여 즐거이 듣기를 원합니다.”
[금강경 이모저모]
제2장 선현기청분품입니다.
금강경 제2품은 탁발을 다녀 와 발을 씻는 등 범부와 다를 것 하나 없어 보이는 부처님께서 자리에 앉아 전면에 주의집중을 하던 시간에 수보리 존자의 ‘질문’으로 금강경은 그 막을 열어 져칩니다. 우리네 범부와 다를 것 하나 없어 보이는 부처님의 모습속에서 수보리 존자는 우리 범부와 다른 무엇인가를 간파하고 곧 희유하다라고 그 처음을 시작하며 곧이어 호념하는 것과 부촉하는 것을 언급합니다. 부처님과 수보리 존자의 질문과 답으로 이루어진 금강경은 우리에게 한가지 깊게 생각할 꺼리를 제공합니다. 바로 ‘질문’입니다. 선가에서는 의심만 제대로 잡아도 도는 저절로 튼다라고 하는데 내 영혼을 바칠 정도의 궁금함, 내지는 간절함이 우리에게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수보리 존자는 그런 간절함과 의심을 담아 부처님께 질문을 올립니다. 양가의 아들딸로서 보살승에 나아가 서 있는 자는 어떻게 서야하며, 어떻게 나아가야 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하고 질문을 하는데 이 부분에서 범본과 구마라집 스님의 한역본에서 약간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쉬 간과하지 말고 깊이 잘 사유하여 볼 필요성이 있어 보입니다. 개인의 열반에 중점을 두던 작은 탈것을 타던 수행자들이 육바라밀이라는 넓고 큰 탈것으로 옮겨 타서 그 중심을 잡고 똑바로 수행해 나아가기 위해 그 마음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을 구마라집 스님은 어떻게 안주하고 머물러야 합니까라고 묻는 반면, 범본에서는 stand의 개념인 서다라고 해석을 합니다. 서양의 관록있는 유명한 인도학자인 막스뮬러와 에드워드 콘즈는 이 부분을 ‘behave’와 ‘stand’로 해석을 합니다.
초기불교 아함이 고의 바다인 생사에서 열반으로의 벗어남의 종교라고 한다면, 반야부는 열반에서 피안으로의 나아감의 종교이고, 법화, 화엄, 정토가 피안에서 대비심을 일으켜 다시 차안으로의 회향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종교임을 감안할 때 제 생각은 스텐드의 서다라는 쪽으로 해석을 하고 의미를 두는 것이 더 나아 보입니다. 물론 구마라집 스님은 남의 나라 말을 번역하는 과정을 고슬고슬 잘 된 밥을 자근자근 씹어서 남을 주는 경우와 같이 맛이 없을뿐더러 구역질까지 난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요. 그 고충을 십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구마라집 스님의 주(住)의 해석을 보살승에 마음을 가진 자들이 그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처음 가진 그 뜻을 어떻게 해야 잘 보존하고 머무를 수 있을까요 라고 해석해서 받아 들이는 지혜를 가져 봄은 어떨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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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다향 사유]
금강경은 부처님과 해공제일이라는 수보리존자와의 질문과 답으로 이루어진 경전입니다. 여기에서 질문의 내용도 소중하지만 질문을 한다는 그 자체에 큰 의미를 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묘한 인생에 대해서, 광활한 우주에 대해서, 난해한 삶에 대해서, 두려운 죽음에 대해서 우리는 다 알고 있는가? 어렸을적 쉼 없이 재잘대며 해대던 질문이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면서 다 어디로 갔는가. 사회화라는 이름으로 질문의 센서를 봉쇄 당하고 질문거리가 있어도 질문을 안하는 것이 철드는 것이고, 체면을 차리는 것인냥 그렇게 사회회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궁금함을 일으키고 그것의 실마리를 잡고 그것을 따라 들어갈 때 안으로든 밖으로든 닫혔던 문은 열리는 것이라고 사유하여 봅니다.
금강경의 범어 이름은 와즈라체디카 나머 트리샤티카 프라즌냐파라마타입니다. 여기서 ‘와즈라’라는 것이 금강으로 해석이 되는데 벼락을 의미합니다. 산이 70%를 차지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기단이 작게 형성이 되기 때문에 벼락이 쳐도 단발성으로 그치기 쉬운 반면 인도에서는 초원이 드넓게 펼쳐져 있기 때문에 음의 기단과 양의 기단이 부딪혀 한번 터지기 시작을 하면 짜짜짜짜짜~악 하고 연발성으로 터진다고 합니다. 금강경을 이야기하는 여러 사람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백성욱 박사의 경우 일어나는 모든 경계의 상을 부처님께 바치라고 합니다. 내가 했다는 상, 불쾌한 감정, 즐거운 느낌 이 모든 것을 부처님께 바치는 방법으로 금강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상을 지우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방하착'에 해당이 된다고 봅니다. 내려 놓든, 올려 놓든 결국 내 안에 머물지 않고 그냥 흘러가게 하는 것입니다.
문득 내가 죽을 때 가져 갈 수 있는 것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했던 경험과 그 경험으로 인해 생간 기억이라는 소산물 밖에는 없지 않나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여기 이 자리에 온 이유도 경험을 해 보기 위해서 온 것이지, 무언가를 소유하고 집착하러 온 것이 아닐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그렇게 안달복달 할 것도 많이 줄어들게 되는 듯 합니다. 그리고 받치든, 내려놓든 그 방법은 번뇌를 제거함에 있어서는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인 듯 합니다. 결국 금강경에서 말하는 번뇌의 제거 방법이 내 경험을 통해서 사실이구나라는 것을 느끼고 그것을 몸소 체험해 실생활에 적용해 번뇌라는 것이 하나하나 제거되는 과정을 보고 체험을 통해 지혜가 쌓여 갈 때 이 금강경이 더 가슴에 와 닿게 되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