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화 무진당 조정육 새로 생긴 미용실에 갔다. 신장개업 기념으로 한 달 동안 50% 세일한다는 플래카드를 보고 뒤도 안돌아보고 바로 들어갔다. 미용실은 규모가 크지는 않았으나 이런 시골 동네에 어울리지 않게 무척 세련되고 고급스러웠다. 원장인 듯한 내 또래의 여인이 역시 이런 시골 동네에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 도회지풍의 여직원을 거느리고 있었다. “어떻게 잘라 드릴까요?” 자리에 앉자마자 원장이 물었다. “원장님 마음대로 한 번 잘라보세요. 대신 짧고 단정하게.” 그렇게 말을 하자 잠시 아리까리한 표정을 짓던 원장이 결심한 듯 머리에 스프레이로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미용실 분위기가 어째 압구정동 같네요. 여기 오시기 전에 어디서 하셨어요? 강남?”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던가. 아니 바위도 움직인다고 했다. 가위질하는 사람 기분 좋게 해야 가위질이 부드러울 것 같아 한마디 했다. 또 이럴 때 아니면 나와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과 얘기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일부러 말을 시켰다. 그런데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원장의 얼굴표정이 복잡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말도 마세요. 사연이 복잡해요. 예전에 압구정동에서 하다가 돈 좀 벌었죠. 그런데 경쟁도 너무 치열하고 임대료도 비싸서 어디 변두리로 옮겨볼까 해서 찾아간 곳이 안양이었어요. 마침 적당한 자리가 나서 최고로 멋지게 인테리어를 하고 최신식 기계도 들여 놓고 개업을 했어요.” 얘기를 하면서도 연신 가위질을 멈추지 않는 그녀는 역시 프로였다. “그래서요? 그 동네 명소가 됐겠네요?” “아이고, 저도 그럴 줄 알았죠.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손님이 전혀 안오는 거예요. 건너편 허름한 미용실에는 손님이 북적거리는데 우리 가게는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를 않아요.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똑같은 돈인데 왜 우리 집같이 삐까번쩍한 곳을 놔두고 저런 후진 데를 갈까. 알 수가 없더라구요. 그렇게 한 달이나 지났나... 어느 날 어떤 아줌마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신발을 벗고 들어오더라구요, 세상에! 그 때야 알았죠, 왜 손님이 없었는지를. 우리 미용실이 그 동네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 고급스러워서 비쌀 거라고 지레짐작하고 아예 들어오지를 않았던 거예요. 결국 석달 만에 압구정동에서 번 돈 다 까먹고 깨끗이 털고 나왔어요.” 그렇다. 그녀는 조화를 몰랐던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조화로움이다. 조화로움은 자신이 놓여있는 장소에서 곁에 있는 다른 존재와 잘 어울리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다른 존재에게 편안하게 곁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다. 내 색깔만을 너무 강요하지 않으면서 나와 색깔이 전혀 다른 곁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칫하면 그게 개성이 없어 보이고 자신이 별 볼 일 없는 존재처럼 느껴져 튀어보려고 할 수도 있지만 조화롭다고 해서 개성이 죽는 것은 아니다. 그 조화로움을 반천수가 그린 두 편의 그림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반천수는 <안탕산화>와 <석류>에서 그림과 제시(題詩)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하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안탕산화>에 적힌 제시의 한자는 마치 그림 속의 잎사귀를 닮았다. 진하고 연한 서로 다른 꽃들처럼 한자도 농담이 틀리다. 큰 꽃 작은 꽃처럼 글자 크기도 다르다. 아무렇게나 뻗어있는 잎사귀처럼 한자의 필획도 삐뚜룸하게 그어져 있다. |
반천수, <안탕산화>
반천수, <석류>
그런데 <석류>는 어떠한가. 알갱이를 가득 물고 있는 탐스런 석류처럼 글자 또한 굵고 탐스럽다. 마치 알갱이를 모아서 만든 글자같다. 사람들이 석류 그림을 좋아하는 것은 자식을 많이 낳기를 바래서이다. 당신은 알갱이가 알알이 박힌 석류가 쩍 벌어졌을 때의 그득함을 느껴본 적 있는가. 그래서 석류는 알갱이가 중요하지 나무가 중요하지 않다. 그림 천재 반천수가 굳이 나무를 생략하고 석류만을 크게 부각시켜 그린 의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석류알갱이를 닮은 글자 나무에 큼지막한 석류가 열렸다. 글자에 굴곡을 두고 배치한 것은 글자를 마치 나무처럼 배치하기 위해서이다. 한자의 뜻은 몰라도 좋다. 한자를 그냥 그림으로 이해해도 좋다. 어차피 글자와 그림은 한 어버이의 자식이 아닌가. 그걸 옛사람들은 ‘서화동원론(書畵同原論)’이라고 했다. 글자와 그림이 원류가 같다는 뜻이다.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도이다. 구도는 그림 속에 등장하는 각각의 물상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의 문제이다. 구도에는 그림의 주요 소재뿐만 아니라 제시와 낙관까지 포함되어 있다. 또한 우리가 빈 공간으로만 알고 있는 여백까지도 구도에서는 꼭 필요한 주인공들이다. 나리꽃과 백합꽃은 각자의 정체성은 잃지 않으면서 서로의 아름다움을 죽이지 않고 잘 어울린다. 조화롭다. 그래서 아름답다. 조화로운 꽃이 아름답듯 조화로운 사람도 아름답다. 음과 양이 조화로울 때 생명이 탄생하고 물과 바람이 조화를 이룰 때 세상은 평온하다.
조화를 이루지 못해 큰 교훈을 얻은 원장의 얘기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런데 얘기가 길어지는 동안 내 머리카락이 점점 짧아지더니 급기야는 양쪽 귀가 훤히 드러날 지경이 되고 말았다. 이런...부조화라니! (2006년 6월 27일)
|
|
첫댓글 무진당 보살님의 아름다운 생활속 이야기와 그림 그리고 윤거사님의 수고에 이 란이 더욱 빛이 날듯 합니다 다들 큰 성원 부탁드립니다 ()()()
자리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_()_
새로운 란을 할애 해 주신 스님께 감사 드리며 저희들이 아름답고 깊은 눈을 가지게 해 주실 무진당 보살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림을 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자주 뵙겠습니다.
생활속의 이야기와 안목을 넓혀줄 그림까지....우리님들 함께 감상해요...^^ 관세음보살^^
고맙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우리 모두 함께 행복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원효사에서 우리 모두 함께 조화를...나무아미타불
재밌습니다()()()
양쪽이 짝짝이 된 머리카락이 자라고 있습니다. ^^*
정말 행복한 시간이 된것 같습니다...감사합니다...()()()...
행복하셨다니 저도 행복합니다. 아미타불
답글에 함께 동참하신 님들께....합장예 올립니다....^^ 관세음보살^^
촌 구석에 처박힌 눈이가 호강을 혔네요 감사합니다.......()
좋은 그림 많이 보여드리겠습니다. ^^*
늘 글을 읽다보면 내생활의 한모습같아서 너무 좋습니다. 무진당님의 글을 이곳에서도 읽을수있게되었네요^^ 감사합니다 아미타불_()_
묘정님을 이곳에서도 뵐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
무진당님의 글을 금강카페에서 읽으면서 눈을 떼지를 못했는데요......넘좋고 행복했답니다.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_()_()_()_
원효사에서 새로 시작할 수 있어서 저도 감사드립니다. 화이팅!
고맙습니다 . 있는그대로의 ... 자세한 설명을 ... 마치 곁에서 안내 받으면서 감상하는 것 같았네요^^* 크게보면 모두가 조화로움일테죠 우주전체가 조화로움에 있으니깐요*^^* 오늘은 선생님덕분에 조화로움을 한번 더 생각해 보았습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다시 한 번 조화로움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아미타불
조화로움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고갑니다 감사합니다_()_
우리 함께 공부를! 아미타불
무진당 선생님 글이 너무 좋습니다...
감사히 가져가서 많은 이들과 지혜를 나누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