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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
(로마서 1장 1-16절)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장 1절) 『예수 그리스도의 종(둘로스) 바울(파울오스)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유앙겔리온)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파울로스의 의미는 작은 자이다. 사도인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작은 자로 살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둘로스라는 종 (노예)와 어울리는 단어다. 바울에게 파불로스라는 이름 외에 사울이라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사울은 히브리식 이름이고고 바울은 헬라너어로 된 이름이다.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서 태어나면서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던 바울은 출생신고에 필요한 파울로스 라는 헬라식 이름과 집에서 사울이라는 유대식 이름을 가진 것이다. 유앙겔리온은 전쟁에서의 승리의 기쁨과 관련된 용어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유앙겔리온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의 기쁜 소식에 사용한 것이 이 때문이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복음을 위해 구별되었다고 말했다. 종은 주인의 소유이며 주인이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성도는 사탄의 종이 되었다가 예수님의 핏값으로 구속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란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사도가 되고 기독교인이 된 것을 부르심을 받고 구분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1장 2-4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사륵스)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게모메누 에크 스페르마토스 다위드) 성결의 영(프뉴마 하기오쉐네스)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엑스 아나스테오스 네크론) 능력(두미나스)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복음이 무엇인지를 얘기하는데 그는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에게 성령세례를 주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성령세례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성도는 구원의 기쁨으로 충만해진다. 하지만 그것이 없다면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하더라도 기쁨이 없는 것이다.
크리스토 라는 말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의미다. 히브리어 메시아는 헬라어 그리스도인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 그리고 기름부음을 주는 자 동시에 두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기름을 부은 이유는 사람들에게 성령의 기름을 붓는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세례가 주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 때문이다. 사도행전 1장 4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라고 하신 것은 성령세례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토 휘오스 데우)이다.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님의 자녀(호 테크노 데우)와는 다른 개념이다. 자녀는 아버지의 돌봄을 받아야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일을 대신하여 할 수 있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도에게 성령세례를 부으주신 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역을 감당하려면, 신적 능력이 있어야 하고, 성령(프뉴마 하기오쉐네스)을 따라야 하고, 죽은 자들의 부활의 근원(엑스 아나스테오스 네크론)이 되어야 한다.
『게모메누 에크 스페르마토스 다위드』는 다윗의 씨로부터 존재하신다는 의미다. 혈통의 씨와 다른 것이다. 혈통이 후손의 의미라면 씨는 시작의 의미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신 분이라기 보다는 다윗과 같은 믿음의 씨로 존재하는 분 이심을 나타낸다. 사륵스는 하나님과의 믿음의 관계를 갖게하는 인간의 종교심을 의미한다.
(1장 5-7절) 『그로(후) 말미암아(디) 우리가 은혜(카린)와 사도의 직분(아포스톨렌)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휘페르 투 오노마이스)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에이스 휘파코엔 피스테오스 엔 파신 토이스 에드네신)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클레토이)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하기오이스)로 부르심을 받은(클레토이스)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카리스)와 평강(에이레네)이 있기를 원하노라』
디는 통하여 라는 의미다. 디 후는 그리스도를 통하여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도직을 받으려면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그 분을 통해서 살아가야만 한다. 카린과 아포스톨렌은 앞에 관사가 없다. 은혜로 주신 사도직이라는 의미다. 주님이 십자가로 구원하시고 성령세례를 주신 목적은 성도를 보내심을 받은 자(사도직)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이다. 휘페르 투 오노마이스는 그 분의 이름을 위하여 라는 말로 사도의 직무에 해당된다. 『에이스 휘파코엔 피스테오스 엔 파신 토이스 에드네신』은 이방인 중에서 믿음의 순종 속으로 들어가도록 이라는 의미다. 클레토이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 주님이 사도로 부르신 자 만이 사도가 된다. 바울은 사도인가 라는 문제가 대두되었는데, 이방인의 사도직을 수행한지 14년 만에 예루살렘 교회로 가서 사도직을 인정받게 된다. 하기오이스는 하나님께로 구별되어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성결해진 자를 의미한다. 구별된다는 의미는 위로부터 태어나 변화된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구별된 자가 부르심을 받는 것이다. 즉 거듭난 성도가 사도직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그 분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삶을 사는 자가 된다. 에이레네는 유대인들의 인사법인 히브리어 샬롬의 헬라어 번역이다. 그리고 헬라 사람들의 인사법인 카이로(기쁨)을 카리스로 바꾸었다. 은혜는 기쁨이라는 것이다.
(1장 8절) 『먼저(프로톤 멘)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프로톤은 첫째로 멘은 참으로 라는 의미다. 이 말들은 본문의 중요성을 나타낸다. 디아는 통하여 라는 의미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이다. 바울 자신이 믿는 믿음과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믿음이 동일한 믿음이라는 것과 그 믿음이 로마를 통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다.
(1장 9-10절) 『내가 그의 아들의(투 휘우) 복음 안에서(토 유앙겔리온) 내(무 엔) 심령으로(엔 토 프뉴마티) 섬기는(라트류오)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프로슈케)에 쉬지 않고(호스 아디알레잎토스) 너희를 말하며(므네이안)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휘몬)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포이우마이)』
여기서 호 라트류오 엔 토 프뉴마티 무 엔 토 유앙겔리온 투 휘우는 내가 섬기는, 나의 성령 안에서, 나의 복음 안에서 라는 의미다. 이 말은 관계대명사 호와 하나님을 연결한다. 즉 바울은 라트류오 엔 토 프뉴마티 무 엔 토 유앙겔리온 투 휘우를 통하여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말을 하는 것이다.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엔 토 프뉴마티(성령 안에서)이고, 엔 토 유앙겔리온 토 휘우 아우투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가 되는 것이다. 프로슈케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하는 기도이다. 바울이 기도할 때마다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을 언급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호스 아디알레잎토스는 심지어 쉬지 않고 라는 의미다. 호스 아디알렢토스 므네이안 휘몬 포이우마이는 심지어 쉬지 않고 너희의 언급을 만들고 있다 라는 의미다. 포이우마이는 중간태로서 이것은 바울이 기도할 때마다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을 언급하는 것이 자신을 위한 것임을 보여준다. 바울은 단순히 로마교회를 위한 기도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프로슈케의 기도로 인해 하나님과 더 친밀한 관계가 생긴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즉 프로슈케 기도는 기도 대상과 자신에게 다 유익한 기도가 되는 것이다.
(1장 11-13절)『내가 너희(휘마스) 보기를(이데인) 간절히 원하는(에피포도)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엔 휘민) 너희와 나의(에무) 믿음으로(테스 엔 알레로이스 피스테오스) 말미암아(디아) 피차(휘몬 테) 안위함(쉼파라클레데나이)을 얻으려 함이라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에피포도 가르 이덴인 휘마스는 왜냐하면 나는 너희를 보기를 심히 사모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로마 교회에 반드시 가야하는 이유에 대해서 어떤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기 위함이라고 했다. 은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안수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그 은사를 나누어주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이 제사장의 믿음을 갖는데 있어서 이 은사가 필요한 것으로 생각했다.『투토 데 에스틴 쉼파라클레데나이 엔 휘민 디아 테스 엔 알렐로이스 피스테오스 휘몬 테 카이 에무』로서다시 번역해보면, 『이것은 너희와 나의 둘 다의 서로 안에 있는 그 믿음을 통하여 너희들 안에서 권면되어지려는 것이다』 라는 것이다.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은사(예언의 은사)를 주려고 하는 이유는 첫째, 너희 안에서 함께 권면되어지기 위함이다. 보혜사는 파라클레토스인데, 쉼(함께) 파라클레오(옆에서 권면하다)는 옆에서 권면하는 분이다.
두번째는 서로 안에 있는 그 믿음을 통하여 라는 것이다. 그 믿음은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은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부활하는 믿음을 의미한다. 십자가의 죽음이 없는 부활은 불가능한 것이다. 성도가 성령세례를 받기 위한 조건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되어 죽는 그 믿음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성도간에 이 믿음을 통하여 은사를 전해줄 수 잇는 것이다.
바울이 말하는 열매는 복음의 열매이다. 복음의 열매는 내가 믿는 그런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될 때 복음의 열매가 맺히게 된다. 그리스도의 믿음을 소유한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실현할 수 잇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고 그곳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1장 14-16절)『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오페일레테스 에이미)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후토스 토 카트 에메)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유앙겔리사스다이) 원하노라(프로뒤몬)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에파이스퀴노마이) 아니하노니(우 가르)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오페일레테스 에이미는 나는 빚진 자이다 라는 의미다. 헬라인(지혜있는 자)이나 야만인(어리섞은 자), 즉 배운 자나 배우지 못한 자나 모두에게 빚진 자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학문적 배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보여준다.
후토스 토 카트 에메는 이와 같이 나를 따라서 라는 의미다. 프로뒤몬은 열정(강렬한 의지)이 있다 라는 의미다. 그 열정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에게 복음을 전하는 열정이다. 제대로 된 복음을 스스로 인식하는 것이다. 유앙겔리사스다이는 아오리스트 시제, 중간태를 사용하고 있는데, 동사의 행동을 받는 대상이 자기 자신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에게 복음을 전하는 열정을 의미한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오늘날 전하는 복음과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그 분을 영접하고 그 분 또한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가 서로 대화하며, 성도가 호 로고스의 음성을 듣고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우 가르 에파이스퀴노마이(중수디포테)는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라는 의미다. 복음 전도자로서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