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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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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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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자 : 성공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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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 언 장
유언자 : 성공경 (390405~1898837)
주소 부산시 남구 수영로 209.대연동 일동지에닌 101동 408호.
유언 사항
나는 다음과 같이 유언 한다.
#.부산광역시 남구 수영로 209.대연동 일동지에닌 101동 408호.(32평)
장남 성준호 (명의자)에게 증여하며 중증장애자이므로 차후
아파트 기거가 불가능 할시는 (요양시설 기거등) 매각하여
오직 성준호 에게만 사용처분 되도록 하고. 차후 성준호 사망시는
'성공경 수목장' 수목나무 밑에 동일하게 수목장으로 하기 바란다.
1.부광역산시 남구 대연동1760-1. 1호 (1.60 m2) 점포 . 2남 성기욱.
2.경상남도.창녕군.성산면 냉천리 산 103-1호(면적 10.500.00m2. 2남 성기욱.
2.전라남도.장흥군.대덕읍 옹암리 118-7 (면적 :3.892m2) 딸 성숙희.
각각 증여한다.
#.본인 사망시 장례.
나의 사망시 장례식을 하지 말것이며. 사망 즉시 화장하여 미리 만들어 둔 창녕 성산면
냉천리 선산 선영(아버지 어머니 묘) 밑 수목장 "천주목"에 수목장 법으로 작은 표지석
비석에 "성공경 가족의 묘" 라 표기하고 가족 이름을 표기 할 수 있는 여백을 남겨주기를
바라며 나 뿐만 아니라 앞으로. 사후 나의 아내와 혈족들은 누구나 여기를 원하면
허용하며 우리가족 모두가 함께하기를 진심으로 갈망합니다.
상기 유증은 나의 사망으로 인하여 효력이 발생한다.
작성일 서기 2021 년 10 월 15 일.
유언자 석란 성공경. 인
#.나의 뿌리 이야기.
할아버지. 성규영 님.
1961년 나의 대학 2학년 겨울방하때 하늘 나라로 가셨다.5일장 장례식 으로 상문객 음식상에
얼음 때문에 곤혹을 치럼.술을 좋아하셨고 낙천적 성품으로 늘 태평하신 성격이셨다.
기억되는 일들이 너무너무 많이있다.
할머니 . 김성녀 님.
1971년 준호가 태어 난 해 하늘 나라로 가셨다.김녕김씨 나의 진 와갓집 인연과 함께 수많은
사연들이 많았으며 할머니의 재능은 근동 마을은 물론 주변에 명성이 날 정도로 대단하셨다.
특히.작은 의술(소화기 부분) 음식(술 담기 .단술등 제수음식 광정 엿 유과 등 명절음)등.
성품이 활달하시고 깔끔하시어 많은 인기가 있었다.
아버지. 성원술 님.
어머니. 윤기숙 님.
* .맥산과 맥산공원 ^^
대지면에 있는 모산 마을 맥산공원을 소개한다. 대지면은 동쪽으로는
고암면, 창녕읍, 서편으로는 유어면, 북쪽으로는 대합면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넓은 들이 비옥하여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곳으로 소문이 난 곳이라 한다.
모산리는 대지면의 중앙부로 면사무소와 우체국, 치안센터, 농협지점이 있는 마을이다.
이지역의 지명 유래에는 보리와 잉어가 등장하는데 보리알과 같이 생긴 바위들이 많아서 모산,
맥산이라는 지명을 가지고 있으며 마을 뒷산이 잉어와 같이 생겼다고 하여 부리산, 어두산으로
불리우고 있다고 한다.
**맥산공원의 표지석은 개인이 증정했다고 하는데
받침돌에 2006년11월 5일 성정영“증” 이라고 새겨져 있다.
맥산공원이 있는 모산마을은 대지면의 면사무소 소재지로 보리미의 행정 리 명이다.
그리고 창녕 성씨의 세거지이다.
모산마을은 보리미, 보리뫼, 부리뫼라고도 불리는데 한자로는 모산 외에 맥산으로 쓰기도 한다.
마을 뒤에 부리산 또는 맥산이라 불리는 산이 있는데 여기는 창녕 성씨의 시조묘가 있고 맥산재
(성씨대종재)가 있다.대대로 이어져 온 창녕 성씨 문중의 이야기를 간직한 공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
*.나의 집 ! 삶의 보금자리 !
1.신혼 집 으로 살았던 나의 집.
서울 영등포구 양남동 '이은관 씨집 단칸 방 셋방살이'
지금까지 생생 기억속의 꿈같은 일들이 나무너무 감동으로 뜨오르는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이을정도이다.
지금 생각들을 하니 참 소설같고 영화같다고나 할까...
성준호. 준호가 이때 여기서 태어났다.양남시장 근처 200 m 이내 00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태원 후 몇일이 지나도 황갈색 소변을 하기에 병원에 방문 문의 하였드니 신생아 때는 그의 대부분이 황달
소변을 한다고 하면서 계속되면 병원치료를 받아야 한다기에 나는 나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나아지지를 않아서 영등포 주변 큰 병원 을 찾아가 보았지만 치료 할 수 없다고 했다.
마침 그 당시 밀양 장모님께서 오셔서 그 상황을 보시고 귀한 생명을 그대로 두어서 않된다고 하시며
서울 시청부근 큰 병원 '수아병원'에 이원하면 치료가능하다고 하여 체중미달로 허약하니 인터베이큐에서
치료해야 한다고 하여 1 개월 여일 치료받아 황달은 치했되었으나 그 후유증으로 뇌성마비 증상이 발생
정상적 성장에 지장을 가져오게 된 결과를 발생시켰다.
불행스럽고 안타깝기 그지없으며 가슴아픈, 나의 삶에 비극이 이때부터 시작된 사연이다.
다 운명이라 생각해야지만 ... 나의 고통은 나만이 겪어야 하는 아픔속에서 살아왔고 그리고, 살아간다.
2021년 ! 준호 나이 52 살 준호는 지금까지 아버지와 어머니 하고만, 일생을 그의'집'에서만 살아가고 있다.
준호를 위해 나의 나름으로는 온 전국을 다니며 노력해 보았다고는 하지만 ... 준호에게 참으로 미안하다.
부족함이 너무도 많았다고 자책한다.
그 처음의 집이 그리고, 지금의 이 집 ... 아마도 이제 나의 삶에 마지막 집이 아닐까를 생각하니 더 더욱
회한의 감회가 새로와 진다.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찌를 ...
2.나의 집 ! 롯데캐슬 자이안트 101동 3501호 !
평당 185만원에 분양을 받아 2003년 입주하였다.
부산 민락동 수영강 river side 와 민락동 수변고원 옆이라 천혜의 자연 경관이 멋지게 어우러져 일약 명성있는 명품 아파트로 알려졌다.
그 시절 입주당시는 전망 조망권이란 말조차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서울에서 유래되어 부산에서도 크게 전망 조망권이 좋은 아파트로 부각되 시작했다.그 대표적 아파트 가운데 우리 아파트였다 당시 서울보다 더 많고 높은 해운대 마린시티 빌딩 숲이 조성되기 전이 였어니까 ...
나의 지인들이 다들 좋은 아파트에 산다고 말들 하였었고 나 또한 참 좋은 기분으로 아름다운
삶의 보금자리 터로 행복하였었다.
그리고, 어느 날 아들 준호 앞으로 된 이 아파트 때문에 준호의 중증장애자 (1급)혜택을 받지 못한다하여 보건복지부 산하 시 구청 주민센타를 방문하여 알아보니 아파트를 매각하여야 한다기에 매각할려고 하니 준호모의 단호한 반대로 수차례 의견충돌로 불상사 사건을 발생하기도 하면서 좌절한 상태속에 오랜시일을 지나왔다.
그런데 2019년 추석 전 후때쯤 언제부터인가는 역으로 준호모가 아파트를 팔자고 하면서 여기는 시장 다니기도 불편하고 하니 시세가 좋을때 팔아서 대연동 딸가게 근처로 이사하자면서 팔자고 부동산에 내놓고 대연동 살 아파트 나온 것 보러가자고 하길래 나는 안 간다고했다.
그 당시 아파트 내 3 개의 부동산 업자들이 있었고, 2019년 10 월 달인가 11 월 달인가 당 아파트에 사는 분이 세탁소 미장원 옆에 새로운 '00 부동산'을 개업하였다. 집입구라 몇차례 방문 상담하였다.그부동산 소장 (여성분)의 말 우리 아파트 가격시세가 주변 아파트 보다 시세가 낮은 이유를 아시느냐고 하면서 ^^ 그 주원인이 우리 아파트 3 부동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 그 사람들 장난때문이라고.지금 한창 아파트 값이 전국에서 다 상승하니 잘 생각하여 좀더 기다렸다 팔면 좋을 것이라 하였다.
그 소리를 나는 진작부터 알고있엇다. 3203호 전영배(아주 친한동네친구)서울로 이사가면서 가격 때문에 못팔고 3 여년 후 결국 손해보고 처분 주변 부동산 장난 때문이라면서 내려올때마다 열내면서 하던 말 때문에 나는 알고 있었다.
지난지난 추석날 때인가 이런 상황속에 우리가족 (9명) 모두 모인데서 집때문에 또 우리내외 큰 싸움이 일어났고 그 후 몇개월
지나면서 나의 의지와는 별 상관없이 12월 어느날 아파트를 매각하였다.
명의도 지금처럼 변함없이 그대로 다만 좋은 시세로 이사간다는 이유만으로 ~~
반대하면 또 분란투성이 나는 아픈 분란 싸움이 싫어서 모두를 포기하고 따르기로 했다.
계약하던 날 롯데 부동산사무실에는 매각 매수인 가족 우리 딸 내외 등,법조법인 변호사 관계 사람들로 가득하였다.
서명 난에 서명하면서 나 한마디 여러사람 앞에서 큰 소리로 '시세보다 2억0천 만원가량 손해보고 팔았다고'
후일 "무엇 때문에" 왜 그때 그런 말을 하였는지는 ... 무심결에 하였을 찌가 ...
당시 나는 참 어처구니였다. 남구 대연동 문현동지역은 나의 인생 절반
이상을 보낸 보금자리 터이다.
좋은 것들도 많았지만 아픈 기억들이 너무 많아 상처의 '트라우마'같은 것 때문인지 왜 하필 거기로 하고^^대연동 못골시장 내가 죽을 번 한곳 ! 생업 때문에 가슴 아픈 그 나날들의 일상^^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여러가지 이유로 정말 가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 무작정 안 간다고 한것 같았다. 그래도 지금은 결국 이리로 이사해서 우리 딸 가게 바로 옆에서 살고있으니 마음 든든하고 좋게 생각되고 잘했구나로 생각하며 온통 마음비우고 편안하게 살아가자고 살고있습니다.
인생무상이라 하였든가...
이 세상 다들 올때는 순서데로 왔지만 갈때는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는데 ... 이 세상 조금 살다가면서 왜 이리 번거럽고 복잡하고 어렵는지 ...
나의 남은 여생 얼마나 되는지 ... 조용히 순박하게 살다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