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에 없는 미국 대학 입시 준비를 잠시 해보니 미국 대학은 자기소개서와 추천서를 매우 중요하게 보더라. 생각해보면 그게 다 거짓말을 용납하지 않는 미국의 사회적 합의를 기초로 한 것이다. 지하철 표 구매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고 자유롭게 타게 하지만, 이를 틈타 무임승차하다가 한번 걸리면 수백배 벌금을 물리는 것과 같다. 세계 최고 권력자인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에 대한 탄핵 사유는 ‘부적절한 관계’가 아니라 거짓말이었다.
사실 자소서, 추천서라는 것이 종이 쪼가리일 뿐이고 그 진실성을 따로 확인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서류를 신뢰하여 핵심적인 입시 자료로 반영하는 것은 온갖 술수가 판치는 우리 현실에 비춰보면 대책 없이 순진하게 느껴지는 일이다. 온갖 스펙을 교사에게 뇌물주고 조작하여 명문대에 합격시킨 학부모 사건까지 보니 우리나라에서 자소서, 입학사정관 등 미국식 제도를 시행하는 것은 평범한 두뇌의 자녀를 위해 돈으로 스펙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계층의 음모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미국 대학들은 추천서 중에서도 자기 학교 동문들의 추천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건 그만큼 누구를 추천할 때는 자기 이름을 걸고 보증할 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만 실제 알고 있는 것을 근거로 쓰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안면 받혀서’ 써 주기 마련이다. 추천할 만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연, 학연, 혈연, 누구 부탁 등으로 그놈의 ‘정’ 때문에, 아니 ‘야박한 놈’ 소리 듣기 싫어서 어쩔 수 없이 써주는 것이다.
유학서류 중 추천서를 일반적으로 어떻게 준비하는지 알아보니 주로 자기가 자기 자랑을 담뿍 담은 추천서를 쓴 후, 추천해 주실 분을 찾아가서 사인만 받아 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추천자를 찾을 때 자기를 잘 아는 분이 아니라, 높은 자리에 있는 유명한 분 위주로 찾아가 부탁을 하는데 그런 분이 지원자에 대해 잘 알 리 없다. 그저 이런 저런 인맥을 타고 ‘자천서’를 들고 가 사인 하나 받아다 내는 거다. 또 높은 분들이라 하여 영어에 능숙하라는 법은 없으니 바쁘신 분에게 영어 추천서를 직접 써 달라고 부탁드리는 것 자체가 결례인 분위기인 듯하다.
이런 실태를 알고 나니 의문이 들었다. 윤리적인 문제 이전에, 실리적인 측면에서도 본인에게 손해 아닌가. 아니 미국 명문대학이라면 오랜 인재 선발 경험이 있을텐데 지원자와 특별한 연결 고리, 함께 보낸 시기와 인연도 불분명한 추천자가 부모 이상으로 속속들이 지원자 장점만 번드르르하게 늘어 놓은 추천서를 써 주었다는 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까? 상식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추천서는 신뢰도 제로로 취급할 것 같다.
나 같으면 그런 추천서는 바로 쓰레기통에 집어 놓고 지원자를 상큼하게 탈락시키겠다. 이게 다 결과에 대한 집착과 불안 때문에 뻔히 보이는 걸 놓치는 어리석음이다. 남들은 다 대단한 분들로부터 엄청 세세한 칭찬 가득한 추천서를 받아 낼 것만 같고, 거기서 조금이라도 밀리면 떨어질 것 같고. 장고 끝에 악수 둔다고 오만 경우의 수 생각하다가 자기 무덤을 파는 것. 우리나라 교육, 입시제도는 ‘만인은 만인에 대한 이리’라는 홉스적인 공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 공포에 엄청나게 많은 업계 종사자가 기생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바꾸기도 어려운 지경이고.
여하튼 이런 생각 때문에 나는 추천서를 부탁할 때 몇 가지 기준을 세웠다. 1. 나를 어떤 한 시기, 어떤 한 측면이라도 겪어서 알고 있는 분, 2. 직접 영어로 추천서를 써 주실 수 있는 분, 3.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분(미국 대학은 자기 동문의 추천서를 가장 높이 평가한다고 하므로).
뭐라고 쓰셨는지는 전혀 모른다. 추천자분들이 알아서 쓰셔서 직접 하버드로 보냈으므로. 워낙 바쁜 분들이라 길게 쓰시진 않았을 거고 한 장 정도 본인이 아는 측면만 쓰셨을 거라 생각한다. 이렇게 부탁드린 이유는 만약 내가 학생 선발 담당자라면 추천자의 지위 고하, 추천서의 분량 따위보다 추천 내용의 신뢰성, 구체성을 중요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