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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 : 《시와사람》 편집위원회
어머니의 단층집 外 4편
주 영 국
연립 한 칸을 얻어 이사하던 날
어머니는 토끼장 같다며
몇 번이나 옷소매를 들었다 놓으셨다
형이 월남에서 돌아오던 해
사과상자로 층층이 집을 지어
토끼를 키우고 있었는데,
형은 몸 어디가 자꾸만 가렵다고 했다
가끔은 맑은 날, 깨꽃처럼 충혈 된 눈으로
남국行 비행운을 가리키며
이국의 방언을 중얼거리기도 했다
`열병에는 토끼간이 좋다더라'
어머니는 토끼장을 기웃거리며 내 눈치를 살피셨다
토끼장이 텅 비자
형은 간, 쓸개 다 잃은 토끼들을 따라
자신이 흙 한 삽 올리지 못한
낮선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때부터 맑은 날 많았는데도
남국으로 가는 비행운 보이지 않았다
뜻을 알아들을 것도 같은
낮선 방언은 어머니가 대신했다
`나는 단층집이 더 좋더라'
문패도 없는 형의 집을 손질하다
어머니, 花妬姸*에 날아온 꽃잎 하나
다칠세라 서둘러 치마로 받으셨다.
*화투연(花妬姸) : 봄에 꽃 피는 것을 시샘하여 아양을 피운다는 뜻의 꽃샘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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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
가위질 몇 번에 귀 나간 쪽거울을 보며
이발을 마친 아버지가 휘파람 불었다
가르마 넘기던 아버지는 이발사였다
가위 하나만 있으면 팔도를
주유(酒遊)하며 살아갈 자신이 있다고 했다
나는 또 주전자를 들고 양조장으로 가야했다
그 날은 저녁상에서 아버지를 마주하지 못했다
‘오늘은 현금 내일은 외상’
숙제를 하다 말고 남원집 앞을 서성거렸다
아버지는 지전 한 장 없이도 술에 취하는 법을 알고 있었기에
오늘이 외상이라며 거꾸로 읽었을 것이었다
기다려도 아버지는 나오지 않고
비 내리는 호남선이 분내에 섞여 흘러나왔다
흔들려도 넘어지지만 말라던 아버지는 끝내
호남선이 끝나는 어디쯤에서 넘어졌다
넘어진 자리에 푸른 머리 돋았으나
더 이상 쪽거울 찾지 않았다
가르마 넘기며 휘파람 불지 않았다
가업을 잇지 못한 아들이 직계의 인연으로
서툴게 머리를 깎고 있다
외상 술 아직 끊지 못했는지
이발을 마친 아버지의 푸른 머리 위로
飮福의 술 몇 잔이 천천히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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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이불 한 채
대주아파트 옆 외진 공터에
분홍색 봄 이불 한 채 버려져 있다
누군가의 마지막 몸을 추억하며
입동의 바람 앞에 웅크리고 있다
객지의 어느 비행장에서 일을 할 때
아내와 나는 숟가락 두 개로 살림을 시작했다
연탄보일러 숨구멍을 줄이며
석유난로에 밥을 끓이면서도, 우리는 좋았다
봄 이불 한 채를 사며 자꾸만 값을 조른
아내는 베개 하나를 덤으로 얻었지만,
흥정에 나서지도 못한 나는 애먼 돌부리나
툭툭 걷어차며 용문의 먼 산을 바라보았다
아내는 봄 이불 솜처럼 부풀어 올라
새처럼 조잘거리며 자꾸만 말을 걸어왔다
활주로를 이륙한 비행기는 새처럼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다
우리도 언젠가는 새처럼 날 수 있다며
아내는 때를 기다리자고 했다.
봄날의 꿈을 꾸기 위해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분홍색 이불을 덮고 잠에 들었다
새재를 넘어온 바람이 창문을 흔들어도
비행기 소리에도 일어나지 않았다
유랑지의 쓸쓸함도 욱신거리는 뼈아픔도
봄 이불 속에서 자근자근 잦아들었다
신혼의 단잠을 재워주던 봄 이불 한 채.
낡은 솔기의 실밥을 뜯으며, 숨죽은
솜을 부풀리며 아내가 느릿느릿 말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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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푸른 손
문을 열자,
미역을 헹구던 아내가 손을 내민다
아내의 손은 차고 푸르다
푸른 옷의 수인번호 0167
영치금을 넣어주던 아내는 떨며,
파도에 목을 매지만 말라고 했다
아이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들로 나가자
방에는 물이 차올랐다
헹구다 만 미역줄기가 엉키며
지나온 시간을 물었을 때야
아내는 내밀었던 손을 거두며
천천히 미역의 머리를 풀었다
손끝에서 방생의 잔물결이 일었다
우리는 바다의 바닥에서 만나
서로의 줄기를 더듬은 적이 있다
그 날도 방에는 물이 차오르고
물의 중심을 밀어 올리며
줄기의 틈 사이로 미역 새 순이 돋아났다
호루라기를 불며 후투티를 쫓아가던
아이들이 돌아와 문을 열자,
미역으로 흔들리던 아내가 손을 내 민다
아내의 손이 푸르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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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길을 묻다
사막에 달이 뜬다, 혜초의 경을 따라
서역으로 천축국전 져 나르는
쌍봉낙타 물혹의 능선을 타고
마른 빵처럼 달이 부풀어 오른다
생의 팔 할이 바람이라고 믿지 않아도
등압선 길을 따라 사막에는 모래바람 불고
서 있는 것들은 모두 풍장을 당해
횡으로 스러진지 오래,
물수제비 뜰 조약돌 하나 보이지 않는다
눈을 비비며 길을 묻는 나에게 낙타는
막히면 돌아가라 한다, 흘려보낸 시간이나
새김질하며 어디로든 돌아, 가라고 한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말은 이제
바람 없는 곳에나 쓰일 말이다
빈집의 물소리를 피해 이역의 길 밖으로
떠밀려온 사람들과 생의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리며,
마른 담배 나눠 피우고 있을 때,
달빛 아래 푸른 도마뱀이 이게 시간을 번
너희들의 죄 값이라며 제 꼬리를 잘라주고 갔다
내게도 쌍봉의 물혹 돋으려는지
자꾸만 등이 가려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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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사람》 신인상 당선자 인터뷰
가장 절실한 것과의 만남을 위해
주영국|전남 신안 출생/공주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졸업/〈전태일문학상〉
〈오월문학상〉 수상.
·주 소 : 광주시 광산구 송정동 명지아파트 202동 605호
·전 화 : 017-673-8144
·이메일 : joopoem@hanmail.net
시와사람 : 《시와사람》의 새로운 식구가 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시와사람》은 그 동안 신인을 아껴서 맞이하였습니다. 좋은 신인을 맞는 우리의 기쁨도 큽니다.
주영국 : 예, 옛날에는 지금보다는 책을 가까이 하는 분위기였잖습니까. 그래서 저도 자연스럽게 책을 보다보니 글쓰기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한 동기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글을 쓰는 시간에는 나와 세계를 자유롭게 바라볼 수 있어서 글쓰기를 해 왔습니다. 한 마디로 어쩌다 보니 시인이 된 것이지요.
시와사람 : 외람된 질문입니다만, 선생님은 왜 시를 씁니까? 다시 말해 오늘날 자본문명사회에서 시쓰기는 특히 돈도 안 되고, 권력도 안 되는데 말입니다. 오히려 시를 쓴다고 하면, 참으로 부질없고 할일없는 사람 취급 받는 시대라고 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주영국 : 그렇지요. 빵부스러기도 안 되고, 벼슬도 안 되는 것이 시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시를 씁니다. 물질적으로는 아무것도 주지 않지만, 그러나 시는 저를 뒤돌아보게 하고 흐트러진 마음을 바로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하루 종일 직장에서 아귀다툼하듯 살다가 집에 돌아오면 허탈하고 존재감을 잃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모두가 잠든 밤 홀로 깨어 세계에 대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색을 하다보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존재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 시쓰기는 제게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실존의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쓰기를 통해 거칠어진 제 심성을 정화시키기도 하고, 나 아닌 누군가에 대한 연민을 가져보기도 합니다.
시와사람 : 선생님의 시쓰기는 자본주의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보다는 가장 인간적인 가치추구에 더 관심이 많으시다는 말씀이로군요. 물질적인 가치보다는 그보다 더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자본문명사회에서 시인이라는 존재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시를 들여다보면 가족사적인 일상과 상처, 그리고 사랑을 더 많이 노래하는 것 같습니다. 왜 선생님의 시에는 가족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까?
주영국 : 제가 특별하게 가족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제게 가장 절실한 이야기, 또는 가장 잘 아는 이야기를 쓰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가족 이야기를 쓰다보면 제 마음이 저립니다. 그리고 뜨거워집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형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제 마음을 애잔하게 합니다. 그것이 그리움이 되기도 하고 고통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러는 시간에는 제 마음이 가장 맑고 순수해지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시와사람 : 그렇군요. 퍼셔가 서정시를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이라고 했듯이 선생님께서도 우리가 잃어버린 `근원'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므로 선생님의 시는 자본문명에 왜곡된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는 하나의 처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시는 선생님이 말했듯이 선생님이 가장 잘 아는 직장과 관련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은 것 같은데 그 부분은 왜 그렇지요?
주영국 : 예, 제 의식 속에서 저와 피를 나눈 혈육의 이야기만이 저의 진정한 삶이라는 생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하루의 절반을 보내는 직장은 제 자유의지대로 사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오직 기술에 의해 기계의 부품처럼 제 역할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와사람 : 이를테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도구화되어있는 인간 존재의 슬픔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군요. 그것은 선생님 뿐만 아니라 현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운명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그것이 상처이거나 고통이어도 뜨거운 인간애가 흐르는 가족에 대한 측은지심 때문에 시를 쓰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일군의 젊은 시인들이 보여주는 시, 즉 타자와 세계가 없는, 그래서 혼자만의 감정에 빠져 이방인의 낯선 언어 같은 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들의 시는 상당히 낯설고 소통하기 어려운데 선생님의 시는 전통적인 서정시의 계보를 잇고 있어 극단적으로 말하면 조금은 익숙하고 소통에 아무런 불편이 없어 보이는데요.
주영국 : 이 세상에 필요없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젊은 시인들 이를테면 이른바 `미래파' 시인들의 시를 읽다보면 기발한 상상력에 놀라기도 합니다. 혼자만의 독백처럼 중얼거리는 시인들의 시가 보여주는 개성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런 시인들의 작품을 저도 재미있게 읽곤 합니다. 특히 그들의 시가 `새롭다'는 측면에서 부러움을 갖습니다. 상대적으로 저의 시는 아직 형식적인 측면에서 그 새로움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해 애를 먹고 있습니다. 앞으로 제가 극복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구요. 그러나 저는 동일성을 추구하는 서정시의 본령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시의 개념은 효용적인 측면에서 모순되고 왜곡된 세상과 지칠줄 모르는 인간의 욕망에 대해 제 나름대로의 메시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물론 부단히 노력을 해서 오늘 우리 시대에 쓸모있는, 그리고 개성있고 참신한 시를 쓰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을 참입니다.
시와사람 : 시를 향한 선생님의 뜨거운 사랑과 의지를 읽을 수 있어 마음이 든든합니다. 다시금 새로운 출발을 하는 선생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좋은 시 쓰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제27회 《시와사람》 신인상 심사평
현실극복의 따스함이 돋보이는 언어
최종심에 오른 작품 중에서 주영국의 「어머니의 단층집」 외 4편을 새로운 시인 출현의 증표로 삼는다.
주영국의 작품은 자신의 일상적 체험을 진정성 있는 언어로 형상화시키는데 시인으로서의 능력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고 판단된다.
「어머니의 단층집」은 “토끼장”과 “단층집”의 의미를 가족사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시각과 이를 언어로 얽어내는 힘이 돋보였다.
「벌초」는 아버지의 무덤을 벌초하며 “가위 하나만 있으면 팔도를/酒遊하며 살아갈 자신이 있다고” 한 아버지의 삶을 연민으로 바라보는 화자의 따스한 마음을 잘 형상화시킨 것이 돋보인다.
역시 가족사의 일상을 그린 「봄 이불 한 채」에서도 누군가 버린 이불과 화자의 이불에 관한 기억을 잘 버무려 서정의 감동을 일으키는 능력이 오늘 우리 서정시의 새로운 길을 안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특히 일상의 작은 체험을 통해 소박한 꿈을 키울 수 있게 하는 데에서 서정시의 힘을 느끼게 해 준다.
「아내의 푸른 손」은 가족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그 날도 방에는 물이 차오르고/물의 중심을 밀어올리며/줄기의 틈 사이로 미역 새순이 돋아났다”고 개성있고 힘있는 목소리가 앞으로 이 시인이 새로운 화법으로 시를 쓸 수 있는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사막에서 길을 묻다」는 세상을 `사막'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불모성을 지닌 세상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적절한 비유와 내밀한 사색의 무게가 충분히 느껴져 안심이 됐다.
주영국의 시는 어딘가 낯익은 목소리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러나 자본주의적 삶에 왜곡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문학적 대응방식을 개성있게 보여주고 있다는 측면에서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심사 : 《시와사람》 편집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