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권 여울 여고1년생. 17살.
그에게 가족이 있다. 무슨치킨 광고선전처럼, 언니,오빠,삼촌,아빠,할매.무려(?)다섯이다. 그들은 월세 45평에 산다. 하드웨어는 좋다. 그러나 소프트웨어가 그야말로 불량(?)스럽다. 일단 오빠와 언니,그리고 여울이는 엄마가 각각 다르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없다. 가출하여 생사를 모르고, 위자료 두둑히 챙겨 간 여인은 지금은 옷가게 점원으로 궁색하게 살아가고, 한 여인은 존재조차 모르는 비밀 속에 사라져 있다. 이는 다 아빠의 여자편력이 만든 결과다. 그 결과의 부담은 83세 드신 할매의 몫이다. 삼촌은 한 때 잘 나간 화이트칼라였지만 뇌졸중을 맞고 가족과 헤어져 산다. 아빠는 채권추심업의 하청일로 살아 간다. 예전에는 직원도 두고 잘 나갔지만 지금은 어렵다. 언니와 삼촌이 거들어 주지만 이들에게도 용돈을 주지 못 할 정도다. 그저 근근히 밥 먹고 살 지낼 정도다. 그것도 월세를 못 내 보증금에서 빼 먹고 살 지경이다.
이들은 서로 못 죽여 안달이다. 아빠는 아빠대로 밥멕여 주는 데 무슨 불만이 많냐고 하고, 삼촌은 삼촌데로 아빠에게 불만이 많다. 전문대 다니는 오빠는 다발성 경화증으로 젊은 나이에 기저귀를 차고 다닌다. 여울이는 출가를 위해 계획을 짜고 있다. 그러나 정작 가출을 한 사람들은 언니,오빠,삼촌들이다. 나중엔 할매도 양로원에 가기를 원한다. 아빠는 이러한 집안 꼴을 일으키려 무리하게 일을 벌여 구속이 당한다. 결국 여울이 혼자 남는다. 더욱 늙어 버린 할매와 함께. 여울이에게 가족은 무엇일까?
여울이는 쿄스툼플레이 활동을 한다.우울한 현실을 잊을 수 있고 자신의 처지와 다른 존재로 변해 자신감도 갖을 수 있게 했다. 거기에서 만난 세바스찬이라는 남학생을 좋아했지만 채였다. 미하일아줌마도 만나고 부잣집 친구 류은이도 사귀었다. 그들은 각 자 자기 삶의 몫을 가지고 분투하며 살고 있다. 여울이는 피오나공주를 코스프레했다. 세바스찬이 쿄스플레 행사장에서 슈렉으로 변신해 피오나공주에게 키스를 했다. 피오나공주는 못 생기고 뚱뚱한 여인으로 되돌아 와야 했다. 여울이는 이젠 코스플레를 하지 않기로 했다. 이젠 본인이 가장이 됐기 때문이다. 1년 휴학을 하고 알바를 해서 돈을 벌기로 했다. 어떤 마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을까?
" ..가난은 다른 사람들이 놓치지 않는 것들을 놓치게 한다. 나는 그걸 참을 수 없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뭐든지 참고 견뎌야 한다면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불 보듯 뻔한 상황에 끼여 아등바등하느니 다른 길을 가 보고 틈도 엿 보고 싶다. 상황은 언제든 바뀐다. 일 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 학원 갈 돈도 모으고 책도 사서 보고 싶다. 다른 아이들과 같은 방법이 아닌 나만의 방법으로 내 미래를 준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195쪽)
가족은 무엇일까? 식구겠지. 같이 밥 먹는 존재. 천명관의 소설 <고령화 가족>에서 찌질한 가족들을 위해 무던히 심겹살을 굽고 먹였던 엄마가 떠오른다. 식탁에서도 자식들이 아귀다툼을 벌여도 '밥 먹자'다. 아들이 엄마는 이 상황에서 밥이 넘어가냐고 역정을 내지만 엄마는 '국 식는다'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밥을 같이-꼭 물리적으로 식탁에 둘러 앉아 있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먹지 못 하는 가족이 가족일까? 다음은 뭘까? 아마 잘 나갈 때 잘 나가는 것이 가족이 아니라 힘들고 어려울 때 서로 뭉치고 도와 주는 것이 가족일 것이다. 잘 나가면 가족은 각 자의 몫을 살면 된다. 그러나 어려울 때 서로 돕는 것이 가족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가족은 겉으론 툴툴 거려도 속은 깊은 것일 것이다. 찌질한 인생을 살 고 있어도 삶은 살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있으니까. 여러분 가족이 무엇입니까?
책은 읽다 보면 뜻하지 않게 얻는 수확이 있다. 바로 책 속의 책 소개. 쿄스플레 행사장에 나온 미하일 아줌마가 여울이에게 권한 책.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내가 좋아하는 소설 중에 하나다. 글 중에 이 소설의 줄거리를 멋지게 정리한 대목이 있어 옯겨 본다.
' 가난한 세몬이란 구두장이가 외상값을 받으러 길을 가다가 교회 앞에서 벌벌 떠는 벌거숭이 천사 미하일을 발견하게 된다. 미하일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천사로 지상으로 내려가 세 가지 질문의 답을 알아오는 벌을 받는다. 세가지 질문의 첫번째는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두번째는 사람의 마음 속에는 무엇이 있는가,마지막 세번째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미하일은 세몬과 살면서 그 질문의 답을 얻는다.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은 미래를 볼 수 있는 지혜고,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은 사랑이며,사람은 사랑 때문에 산다는 게 그 답이었다. 미하일은 지극히 종교적인 이 세 가지 답을 깨닫고 하늘로 올라간다.'(103쪽)
줄거리 요약이 깔끔하여 누구나 이 부분을 인용해서 이야기 하면 좋을 듯 싶다. 그러나 좋은 점은 그 다음이다. 이 소설을 읽은 여울이가 뒤이어 밝힌 느낀 점.
'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며,인간의 내부에 있는 것은 욕심이며,결국 인간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살아간다. 우리 가족을 생각하면서 얻은 답이다.'(104쪽)
솔직히 나도 이 책을 읽으며 그렇지~! 그렇구나~! 했지 내 처지에서 이 세 가지 질문에 답해 보려고 하지는 않았다. 여울이의 느낀점을 읽고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그리고 당연히 내 처지에 견줘 생각해 볼 건수였는데 왜 그러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에게 이 세가지 질문의 답은 무엇일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미래와 사랑? 생명과 욕심. 질문은 보통명사인 사람에게 묻지만 결국 고유명사인 나에게 던지는 것이겠다. 나의 처지와 환경에 묻는 것이고 앞으로의 삶에 대한 전망을 묻는 것이겠다.
작가는 후기에서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를 이야기 한다. '세상에서 가장 극한 직업은 다섯 시간의 수면 시간만 허락된 우리나라 학생'들이다. '스스로 삶을 포기하려는 청소년들에게 작게나마 힘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한다. 본인도 청소년시기는 '미래에 대한 막연함에 가위 눌리듯 내 자아가 짓눌렸던'때라고 한다. 사실 모든 가족은 불량스럽다. 만족 스런 가족이 어디에 있는가? 100% 완벽이란 없다. 어제 본 영화 <다이애나>에서도 그렇다. 만인의 연인인 다이애나에게 필요한 것은 정작 한 사람의 진정한 사랑이었다. 같이 모여 있으면 있는 대로 서로에게 불만이고 서로 부득이 떨어져 있으면 떨어져 있는대로 'i miss you'다. 그리하여 결국 여울이처럼 힘들어도 주어진 삶을 스스로 개척할 일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가족은 존재하고 재구성될 것이다. 다만 잊지 말 것은 '내가 누구 때문에 사는데~!'란 말은 하지 말 것. 만약 그렇게 산다면 당장 생각을 바꿀 것. 자식을 위해 내가 산다고 하지 말 것.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라고 고백할 것. 엄마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공부한다고 말하지 말 것. 결국 그 것은 엄마가 뭐라 안 해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 명심할 것. 그렇게 따로 또 같이,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사는 것이 가족임을 또 한번 명심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