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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는 초, 중, 고등학생들에게 모스크바에 있는 무신론 박물관을 견학시킨다.
한 안내인이 한 떼의 학생들에게 종교의 해악을 증명하도록 고안된 전시품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학생들은 어떻게 해서 인간이 동물로 진화했나를 설명하는 그림들, 끔찍한 종교 재판 장면 등등을 구경했다.
그리고 나서 안내인이 오래된 십자가를 보여주었다. "학생들, 옛날엔 사람들이 무식했어요.
그래서 그들은 예수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었어요.
사람들은 그가 사람들을 죄에서 구해주려고 하늘로부터 왔다고 생각했어요.
어리석게도 사람들은 그가 모든 사람들의 죄를 담당하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고 믿었어요.
우리 조상들은 아주 무식했던 거죠.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죄를 용서함 받고 예수가 부활했던 것처럼 자기들도 후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해서 영원히 아름다운 삶을 누리게 되리라고 가르쳤답니다."
열두 살 된 소녀가 울기 시작했다. "선생님 동무, 제가 잘못한 일들 때문에 늘 마음이 괴로웠어요. 우리 어머니는 저 때문에 우시곤 했구요. 전 아버지를 속이고, 학교에선 부정 행위를 했어요.
전 어떻게 하면 이 죄를 다 벗어날 수 있을까 적정하고 있었어요.
전 죽는 게 무서워요. 전 장례식을 볼 때마다 '언젠간 나도 저렇게 관 속에 눕게 되고 모든 게 다 끝장 날거야'라고 생각하곤 했어요.
그러나 전 살고 싶어요." 소녀는 말을 계속했다. "저는 우리 조상들의 어리석은 믿음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똑똑해서 죄에 짓눌려 살고, 천국을 놓치는 것보단 어리석더라도 죄를 용서받고 부활하는 게 더 좋아요. 전, 선생님 동무가 제게 가르쳐주신 것에 대해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갖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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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의 행적을 살펴보면 죽은 자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이 인간에게는 거의 불가능함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어떤 사람이 죽은지 사흘만에 살아났다는 것은 비록 예수님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 것입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예수의 부활은 우주를 진동시키는 엄청난 사건이었지만 그 일이 너무나 신비스럽게 진행되었고 또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사람들의 신분이 비천했기 때문에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영원히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다”
실제로 예수님의 부활은 몇 가지 점에서 신비스럽습니다. 부활을 목격한 시점이 사람의 인기척이 드문 새벽이라는 점과 부활의 현장인 무덤에는 입구를 막고 있던 돌이 옮겨진 채 세마포만 놓여있었다는 점, 그리고 부활의 증인들이 다름아닌 여자들이었다는 점입니다. 그 당시 여자들은 재판석에서 증인으로 설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여자는 한동안 일곱 귀신이 들린 적도 있었고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창녀였을지도 모르는 죄인입니다.
따라서 성경에 나와있는 증인들의 성분을 비롯하여 몇 가지 사실들만 미루어보아도 예수님의 부활은 더욱 믿기 힘든 사실이 되고 맙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이 성경을 보면 얼마든지 믿지 않을 이유와 근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예수를 믿겠다고 결심한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는 충분한 이유와 근거를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의 여하에 따라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사실 여부가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믿든지 안 믿든지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이 우리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음을 필요로 합니다. 놀랍게도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부활의 주님을 찬양하는 영광스러운 백성이 되었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생각할 때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살아나신 예수를 직접 목격한 사람만 해도 수백명에 이른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제자들의 달라진 모습이었습니다. 며칠동안 방문을 걸어잠그고 비겁하게 틀어박혀 있던 제자들이 갑자기 방문을 박차고 나와서 예수가 살아나셨다고 외쳤던 것입니다.
또 다른 증거로는 대제사장들은 물론이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자고 소리치던 폭도들마저도 침묵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이라면 이를 주장하는 자들에 대해 얼마든지 반론을 펴면서 핍박과 투옥을 감행해야 했지 않습니까? 그러나 진실 앞에서는 침묵 외에 다른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성경의 외적 증거가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에게는 더 큰 증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내적 증거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도록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마음의 눈을 열어 주십니다. 이러한 외적 및 내적 증거로 인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살아나셔서 생명의 주, 만왕의 왕,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손에 쥐신, 가장 존귀하신 분이 되셨다는 사실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 요한이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는 이미 90세를 넘긴 고령이었으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승천을 목격한지가 벌써 60여년이 되었습니다. 그의 유배지이자 생의 마지막 정착지는 밧모섬이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기도하던 중 환상 가운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60여년전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밧모섬의 요한을 찾아오신 주님은 너무나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워서 감히 눈 뜨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요한은 그분 앞에 죽은 사람처럼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가까이 오셔서 그의 몸에 손을 얹으시고 어루만지시며 말씀하셨습니다.“두려워 말라.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내가 전에는 죽었었노라.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계1:17∼18). 예수님은 영원히 살아계셔서 사망을 지옥에 던져놓고 다시는 나오지 못하도록 문을 완전히 잠그고 그 열쇠를 손에 쥔 분이시라는 의미입니다. 요한은 부활하신 주님에게서 이러한 권세와 영광을 보았던 것입니다. 실로 그분은 죄가 이 세상에 가져다준 허무와 죽음을 정복하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를 믿으면 허무가 사라지고 죽음의 불안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 주변엔 예수님의 부활을 알지 못해서 허무에 끌려다니고 죽음의 공포 아래 떨고 있는 수많은 이웃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외쳤던 제자들이나 초라한 여인들처럼 이 복음을 그들에게 전합시다. 이것만이 이 나라를 살릴 수 있고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소망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이 메시지를 전하는 부활의 증인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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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한 젊은 변호사 프랭크 모리슨이라고 하는 사람이 죽은 자의 부활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반박하는 글을 쓰기 위하여 세밀한 조사와 연구 끝에 놀랄만한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그는 연구를 종합하여 책을 썼는데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실을 송두리째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그 책이 "Who moved the stone" "누가 돌을 옮겼나?"라는 유명한 책이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실을 이론적으로 따져 본다고 하여도 그것은 확실한 사실인 것이다. 예수 부활이 사실 무근이라면 십자가에 죽인 바리새인들이 큰 증거를(세워) 선전했을 것이다.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 4:16)
부활신앙은 우리들에게 새로워지는 기대감에 찬 생활을 할 수 있게 합니다.사람들의 삶에 있어서 그들을 무력하게 하는 것 중의 하나는 낡음의 문제입니다.험난한 세파에 치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낡음의 관념에 시달리는 이들입니다.부활신앙은 우리에게 새로움을 창조해가는 힘을 줍니다.다른 교리와는 달리 부활신앙은 지하수처럼 우리 인격의 저변을 흐르면서 우리에게 새 힘을 주는 생기의 근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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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수상 네루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인도의 종교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땅을 개간하고 집을 짓고 늪지를 메우고 댐을 건설하도록 자극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교회가 칭송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세계 도처에서 인간의 짐을 덜어 주려고 노력해 왔다. 교회가 인간을 자극하고 이끌었던 힘의 근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었다."
* 참조: 마28:1-8, 요20:1-10
"하나님이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계 21:3)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부활이 아름답고 영광스럽기 때문입니다.성경은 예수님의 능력으로 우리가 부활을 입으면 “하나님이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3∼4)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부활을 희망하고 바라보면서 이 땅에서 참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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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을 지낸 부시가 부통령 시절에 소련 부레즈네프 수상의 장례식에 미국 대표로 참석했다. 장례식은 공산당의 관례대로 진행되었다. 모든 것은 죽음을 상징하는 검정 색이나 붉은 색으로 덮여 있었다.
장례식의 말미에는 고인을 위한 마지막 경의를 표하는 순서가 있었고 이때 고인의 부인이 앞으로 나왔다.
그녀는 품에 간직했던 백합 한송이를 꺼내어 관 위에 놓았다.
백합은 전통적으로 러시아 정교회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하는 꽃이었다.
그리고 미망인은 남편의 시신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순간 식장은 정적에 휩싸였다. 여인은 기도를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일어선 그녀는 성호를 그었다.
이 순간, 여기 저기서 미망인을 따라 성호를 긋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은 충격이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았던 조지 부시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얼어붙은 소련 땅에 기독교 신앙은 완전히 죽어 버린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순간 부활 신앙이 부활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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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리머박사가 한 회교인 관리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사람에게 드러내 보이신 것을 믿습니다.” 그러자 그 회교도 관리는 대답하였다. “우리도 그 사실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한 책 곧 성경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신 것을 믿습니다.
” 회교 관리도 지지않고 대답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한 책 곧 코란을 통해 스스로
를 드러내 보이셨다고 믿습니다.”
또 리머 박사가 말하였다.“우리는 하나님께서 한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셨음을 믿습니다.” 그러자 그 회교관리 역시 대답하였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한 사람 곧. 예언자 모하메드를 통하여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신 것을 믿습니다.”
리머 박사는 다시 한번 강조해 말하였다.“우리는 예수께서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죽으신 것을 믿습니다.” 그러자 회교 관리 역시 또 대꾸하였다. “우리는 모하메드가 그의 백성을 위하여 죽은 것을 믿습니다.”
리머 박사는 또 말하였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죽은자들로 부터 스스로 부활하셨기 때문에 모든 그분의 말씀은 실제로 증거할 수 있었다고 믿습니다.” 그러자 회교 관리는 말하였다. “우리는 죽은 이후의 예언자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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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안에서 사는 것이라. " (갈라디아서 2 : 20)
1973년 부활절 아침. 이디 아민대통령의 독재에 시달리던 아프리카 우간다의 한 교회. 셈판기목사는 7천여명의 신자들에게 부활절 설교를 했다. "부활의 주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산다.
정의의 편에서 끝까지 싸우자."
설교를 마치고 목양실로 돌아온 셈판기목사에게 5명의 괴한이 침입했다.
그들은 목사에게 총을 겨투었다. 그 때 셈판기목사가 말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날이오.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소.
다만 당신들을 위해 2분 동안만 기도하게 해주시오." 셈판기목사는 5명의 괴한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저들은 자신이 범하고 있는 죄를 알지 못하나이다.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십옵소서."
한참 기도를 하고 눈을 떠보니 괴한들의 표정이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
그리고 괴한의 우두머리가 총을 거두며 말했다. "목사님,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기도가 괴한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모든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다.
죽음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이 죽음에 대해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죽음의 공포로부터의 극복이고 해방이다. 목사의 삶은 육신에 대해 죽은 자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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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 때의 일이다. 로잘린부인은 전쟁터에 나간 남편이 전사했다는 소문을 듣고 절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그 틈을 이용해 재산을 가로챈 후 로잘린을 마을에서 내쫓았다.
그녀는 이곳 저곳을 전전하다 어느 조그마한 마을에 안착했다. 마침 부활절을 맞아 마을 어린이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다.
"얘들아, 너희들의 나무를 하나씩 정하렴. 그리고 나무 밑에 둥지를 만들어 놓아라.
그러면 둥지에 예쁜 알이 들어있을 것이다."
로잘린은 둥지에 형형색색의 그림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글이 적힌 달걀을 놓아두었다.
어린이들은 신기한 표정으로 색달걀을 받았다.
그런데 한 소년이 달걀을 들고 친척집을 가던 중 길가에 쓰러진 부상병을 만났다. 소년은 부상병에게 달걀을 주었는데 부상병은 그곳에 적힌 글씨와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것은 내 아내 로잘린의 그림인데. 그리고 이것은 가훈이 아닌가"
그때부터 부활절 달걀은 '사랑'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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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초기 가난하고 완고한 시집에서 마음고생을 크게 했던 어느 크리스천 미술인의 고백이다. 이분은 쥐꼬리만한 남편의 교수월급으로 시동생들의 학비를 보태며 살림해야 하는 등 어려운 생활을 했는데 나중에는 견디다 못해 출석하는 교회 목회자를 찾아가 상담했다. 그날 목회자는 "순교가 따로 있겠습니까.
시집에서 순교하겠다고 생각하고 생활하세요. 시집에서 관에 누워 나오겠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죽으면 부활이 있습니다."라고 말했고 이 분은 큰 힘을 얻고 모든 어려움을 이겼다.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요 11:24)
예수님의 부활이 제자들과 오늘날 우리의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희망과 비전을 줍니다.비전이 없는 백성은 멸망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세계의 많은 종교인들 가운데 가장 희망이 크고 비전이 확실한 종교인은 기독교인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미래관과 세계관은 희망과 비전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 희망과 비전 즉, 그리스도인의 창의적이며 의욕적인 삶과 보다 나은 미래로 지향하는 동력은 예수님의 부활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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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 미카엘 패러디의 임종이 가까워 오자, 어느 신문 기자가 물었다.
"당신의 영혼이 장차 어떻게 되리라고 추측하십니까?"
그러자 패러디가 작으나 힘있는 음성으로,
"나는 추측에 살지 않고 확신에서 삽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그는 이어서,
"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해서 죽었다고 아멘하면 내 죄가 죽었다고, 하늘나라 호적에 표시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둘째 사망을 면제받는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해서 부활하셨다고 아멘하면 내 생명은 천국 생명책에 등록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첫 부활에 참예 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입니다."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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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의 유해를 국내에 안치하는 것을 꺼림직하게 여긴 후루시쵸프가 드골에게 청해서 나폴레옹의 묘가 있는 앙바리드를 사용하게 해달라고 했으나, 드골은 앙바리드는 영웅을 모시는 묘지라고 하며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워싱톤에 알아보았지만 앨링톤 묘지도 스탈린만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또한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도 영국의 영웅 이외에는 사절하겠다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이번에는 이스라엘에 부탁을 해보았는데, 뜻밖에도 학살자의 유해를 인수하겠다고 회신을 보내왔다
. 다만 회신 끝에 이러한 추신이 있었다.
"믿을 만한 국제 통계에 의하면, 성스러운 이스라엘에서 사자(死者)의 부활은 그 확률이 세계 최고임을 알아주기 바람."
고민 끝에 후루시쵸프는 스탈린의 유해를 그냥 소련 땅에 묻어 두기로 하였다 한다.
금언: 우리 주님은 부활의 약속을 책들 속에서만 쓰신 것이 아니라 봄날의 잎사귀들마다 에도 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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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챤 센츄리 지의 편집장 마티 목사가 젊어서 주일학교 교사를 했을 때, 3학년 반을 맡았는데 그 반에 학습지진아인 스티븐이 있었다. 부활주일을 앞두고 아이들은 숙제를 가지고 왔다.
"새로운 생명을 상자 속에 하나씩 넣어가지고 오라"는 숙제였다. 아이들이 상자를 열기 시작했다.
한 아이의 상자에는 꽃이 있었다. 다른 아이의 상자 속에서는 나비가 나왔다. 그 다음 아이는 파란 나뭇 잎을 꺼냈다. 스티븐의 차례가 되었다. 스티븐도 자기의 상자를 열었다. 그러나 그 속은 비어 있었던 것이다.
마틴 선생님은 당황했다.
지능이 모자라는 스티븐에게 남들과 같은 숙제를 냄으로써 망신을 당하게 하는 실수를 범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입을 다물고 스티븐의 빈 상자를 바라보고 있을 때 스티븐은 싱글벙글 웃으며 이렇게 설명하였던 것이다. "선생님,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었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이 상자는 예수님의 무덤입니다. 예수님은 이 상자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마틴씨는 스티븐을 껴안고 "맞았다. 네 숙제물이 가장 좋다"고 외쳤다. 마틴 목사는 그때를 회상하며 "정말 놀랬다. 학습지진아가 그런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부활이 빈곳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모든 크리스천이 깨달아야 할 진리다"라고 종교지에 자기의 감격을 썼던 것이다.
새 옷을 입기 위하여는 먼저 낡은 옷을 벗어야 하는 것이다. 나의 옛 것을 비우는 회개와 겸손이 부활에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죽어야 부활한다. 나의 허물과 죄와 못된 버릇과 욕심과 교만을 다 십자가에 못박아 나의 옛 사람이 먼저 죽어야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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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을 앞두고 주일학교 선생님이 자기 반 아이들에게 플라스틱으로 만든 속이 빈 달걀을 하나씩 나눠줬다.그리고
부활주일 교회에 나올 때 빈 달걀 속에 무엇이든 생명있는 것을 한가지씩 넣어오도록 했다.
부활주일 아침 아이들은 저마다 그 속에 한가지씩을 넣어가지고 왔다.선생님은 차례대로 달걀을 열어보았다.그 속엔
꽃잎,나뭇잎,곤충 등 생명있는 것들이 들어있었다.그런데 한 아이의 달걀 속은 비어 있었다.그것을 본 아이들은 깔깔
거리며 웃었고 선생님은 “괜찮다.몸이 많이 아팠던 모양이구나”라며 위로해 주셨다.
그때 그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선생님,저는 생명을 준비했어요.예수님 무덤은 비어 있잖아요.빈 무덤에 뭘 다시
넣겠어요?” 10개월 뒤 그 소년은 지병으로 죽었고 그의 장례식날 그의 관 위에는 꽃 대신 빈 플라스틱 달걀이 놓여 있었다.
예수의 빈 무덤은 웅변한다.아무 것도 생명은 가둘 수 없노라고.그리고 빈 무덤이야말로 죽음을 이긴 승리의 깃발이라고.빈 무덤에서 들려오는 환희의 개선가 때문에 우리 모두는 오늘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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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찌라." (데살로니가전서 5 : 5-6)
갓난아기는 보지 못한다고 사람들은 주장합니다. 분만할 때 쓰이는 휘황찬란한 조명으로 미루어, 이것은 능히 일반적인 상식으로 통하고 있음을 알 수있습니다. 사람들은 램프와 투명조명을 갓난아기에게 비추어 댑니다.
물론 그럴 수밖에. 못 본다고 믿으니 사정 볼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조명은 분만을 담당하는 의사들에게는 분명히 편리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기에게는 어떠할까요?
아기의 머리가 겨우 엄마의 질강을 빠져 나오려 할 때, 동체는 아직도 모체안에 있는데, 아기가 눈을 뜨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간 이내 감습니다 갑자기, 그리고 꼬옥, 그리고는 그 자그마한 얼굴이 형언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모습을 하며 귀에 익은 울음을 터드립니다. 만일 본다는 일이 광선을 파악하는 일이라면 아기는 분명히 봅니다.
마치 식물이나 꽃이 빛을 그리워하듯 아기도 본능적으로 빛을 사랑하고 그리워합니다. 만일 임신 6개월의 여성이 맨몸으로 태양광선을 쏘인다면 뱃속의 아기는 그것을 황금빛 아지랭이로 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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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뉴욕에 살던 한 코미디언이 죽기 전에 이런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죽으면 내 시체를 해부실습용 대상으로 기증하겠소. 특별히 하버드 대학으로 보내주길 바라오. 이것이 부모님의 소원을 들어드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오. 부모님의 평생 소원은 내가 하버드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었는데, 내가 하버드에 들어가는 방법은 이 길밖에 없소."
이 사람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죽음은 역시 고통스럽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음은 웃을 수 없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죽음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나 자신에게 죽음이 닥치면 죽음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쉽게 말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많은 종교와 철학과 사상들은 죽음을 미화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살 예찬론까지 등장하기도 합니다. 죽음에 관한 미화는 죽음에서 도피하고 싶은 인간 본능의 한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죽음은 필연적이며 산 자와 죽은 자를 분리시키기 때문에 아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죽음을 미화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C. S. 루이스는 "예수님의 최대 업적은 그분이 부활의 메시지를 선포하신 것이고 그 메시지로 다시 사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지금의 삶이 당신을 좌절과 어두움과 절망에 몰아넣더라도 주께서는 부활과 생명으로 다가오십니다. 주께서는 무덤 저 건너편의 놀라운 소망을 약속하실 뿐만 아니라, 동일한 부활의 능력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삶을 치유하시며 나를 새롭게 하기 원하십니다.
문제는 이것을 믿지 못하는 우리의 불신앙입니다. 죽음의 극복은 불로초를 먹고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부활을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기독교의 특성은 영혼의 불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활에 있습니다.
기독교는 부활로 인해 모든 종교나 사상을 뛰어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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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남침례교 신학대학의 학장으로 계셨던 엘리스 풀러 박사가 한 무리의 사람들을 이끌고 성지 순례한 적이 있습니다.
토요일날 사람들이 박사에게 말하기를 풀러 박사님, 일요일 아침에는 갈보리로 가게 될텐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바로 그 지점에서 박사님이 우리에게 설교를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고 하였습니다.
박사는 설교를 해야 할 책임감 때문에 그날 밤을 꼬박 뜬눈으로 새웠다고 합니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곰곰히 생각했지만 도무지 합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곳에서 설교를 할 자격이 도저히 없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박사는 잠도 자지 않고 마태복음의 십자가 고난의 기사를 그대로 암송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사람들은 갈보리로 걸어갔습니다. 어느 누구도 입을 꼭 다물고 있었고 모든 것이 죽음처럼 고요했습니다.
그가 이야기할 시간이 되자 풀러 박사는 얼굴을 하늘 쪽으로 돌리고는 십자가의 고난을 묘사한 성경 말씀을 그대로 낭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흐느끼는 소기가 들렸습니다.
낭송을 마친 박사는 저곳이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위해 돌아가셨던 곳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아이작 왓트의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할 때에, 죽으신 구주 밖에는 자랑을 말게 합소서. 머리와 수족 보오니 큰 자비 나타나셨네. 온 세상 만물 가져도 주 은혜 못다 갚겠네.
사람들이 갈보리에서 발길을 돌렸을 때 그들의 마음엔 만약 목숨이 천 개가 있다면 그의 보혈로서 그들의 구원을 사실 예수님을 위해 천 개의 목숨이라도 다 드리기 원하였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마음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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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10월 10일은 싱가포르에서 일본군들에게 억류되었던 포로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그 날 감방 안에 라디오를 감추고 있었음이 발각되었고, 일본군들은 그 라디오를 찾아내려고 포로들을 심문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관련되었을 것으로 추정된 포로 들을 전에 YMCA회관으로 사용되었던 켐페타이 헌병사령부로 데리고 갔다.
그곳은 공포의 고문 장소였다. 약 35명 가량이 소환되었고 계속 불려 나가 며칠 사이에 50명 전원이 불려 나갔다. 그들 중 절반 가량이 고문으로 죽었다. 그들 중 살아남은 생존자가 그 곳의 경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YMCA 건물 안 무서운 감방에 갇혀 있었던 그 긴 기간 동안에도 눈에 보이는 위로와 힘의 근원이 있었다. 나는 감방을 밝혀 주는 조그만 창문을 통해 보이는 감리교회의 첨탑과 그 꼭대기에 있는 십자가를 볼 수 있었다.
나는 그 십자가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과 나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당하셨던 분을 생각했다. 그 십자가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온갖 잘못된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바르고 진실 되게 서 있었다.
나도 바로 서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대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견디어 내리라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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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한 주일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여덟 살짜리 소년, 톰은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지체부자유 어린이였습니다. 부활 주일을 앞두고 주일학교 선생님은 속이 비어 있는 계란을 나누어 주며 그 속에 무엇이든지 생명이 있는 것을 넣어 오도록 숙제를 냈습니다.
드디어 부활절 아침,
아이들은 차례로 계란을 열어 보았습니다. 어떤 어린이는 꽃, 어떤 어린이는 곤충... 또 어떤 어린이는 비어 있지 않은가! 그걸 본 아이들은 깔깔대며 웃었지만, 몸이 성치 않은 톰을 동정해서 선생님은 “괜찮아 톰! 많아 아팠나 보구나.”하고 위로했습니다.
그러자 톰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생명을 준비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무덤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그 무덤이 비어 있질 않았습니까?”
톰은 그 후 10개월 만에 죽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하게 압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날, 톰의 무덤도 텅텅 비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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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증인
영화 쉰들러 리스트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에 의해 만들어 진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 영화를 만들게 한 사람은 유대인 페이지라고 합니다. 그는 87세로 사망하였습니다. 그는 폴란드에서 교사를 하였는데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나치에 잡혀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의 도움을 받아 그가 운영하는 무기공장에서 일한 1,200명의 대열에 끼게 되어 히틀러의 광기에서 아내와 함께 살아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죽음의 위기에서 자신을 살려준 오스카 쉰들러를 잊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쉰들러의 도움으로 죽음에서 살아나는 체험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전하기 위해 40년을 노력했답니다. 전쟁이 끝난 뒤 페이지는 미국으로 건너와 영화의 도시 할리우드 번화가 비버리힐즈에서 가죽상점을 운영하면서 선이 닿는 대로 작가들에게 쉰들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소설화하기를 권했으나 번번이 실패하였다고 합니다.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답니다. 40 여년을 죽음에서 자신을 건져준 쉰들러의 아름다운 미담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부심했습니다. 결국 1980년 서류가방을 사러 그의 가게를 찾은 호주 작가 토마스 케넬리를 만났습니다. 그는 그에게 간곡한 부탁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소설‘쉰들러 리스트’가 82년 출간되었습니다. 이것으로 그는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페이지는 흥행 제일의 유명 영화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쉰들러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 아카데미상을 탈 것이라며 매주 전화통에 매달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필버그는 영화‘쉰들러 리스트’를 만들었고 98년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작품상 등 7개 부문을 휩쓸게 되었습니다. 페이지는 쉰들러를 통하여 생명을 구원받고 그 후 자신이 경험한 것을 전하기 위해 일평생 산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일평생 그 부활을 증거하기 위해 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자 다 자기 직업으로 돌아갔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완전히 변화되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그들도 처음에는 믿지 않았습니다. 오늘 현대인들과 마찬가지였습니다. 현대인들은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믿지 않습니다. 그것은 당연합니다.
현대인은 비평의 원리, 유추의 원리, 상관의 원리에 의해 사고가 지배되고 있습니다. 과거의 경험은 결코 현재의 경험에 의해 검증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일어 날 수 없는 것은 과거에도 일어 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부활이 없는데 어떻게 과거에 부활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원인없는 결과란 존재할 수 없다고 합니다. 지금도 어떤 원인이 주어지면 계속적으로 부활이 일어나야 그것을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고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부활에 대하여 가설을 만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기절을 했다가 장사를 한 후 정신이 되돌아와서 살아났다는 기절설, 제자들이 시체를 도적질했다는 도난설, 제자들이 너무 그리워하다가 환상을 보았다는 환상설, 바벨론 신화나 동방신화에 나오는 부활설을 예수에게 적용했다는 신화설 등입니다. 그러나 과연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했다는 것이 사기이고 환상이고 착각이고 꾸며낸 이야기이고 신화일까요? 기절하였다가 다시 일어났겠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성경의 진리이면서 역사적 사실입니다. 빌라도도 빌라도 보고서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대하여 상세하게 기록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묘지는 공동 묘지가 아니라 개인 묘지이기 때문에 여인들이 무덤을 잘 못 찾아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더욱이 제자들이 시체들 도둑질하여 옮겨놓고 거짓으로 부활했다는 소문을 퍼뜨릴 리가 없습니다. 잡히시던 현장에서 도망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환상을 보았거나 거짓이다면 그들은 결국 순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진리를 위해 순교하는 사람은 있을 수 있지만 누가 거짓을 위해 순교하겠습니까? 그것도 한 두 사람이 아니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다 갖가지 방법으로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더욱 확실한 증거는 예수님 가족의 변화입니다. 예수님의 가족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았습니다(요7:5). 미쳤다고 했습니다(막3:21) 그러나 그들은 부활을 목격하고 변했습니다(행1:14) 예수를 메시아로 믿고 기도하였습니다. 옥스포드 대학의 역사학 교수였던 토마스 애놀드는 말하기를 "나는 여러 해 동안 과거의 역사를 연구하고, 그 사실을 조사하고, 이에 대하여 기록한 문헌과 유물을 고증하여 그 사실 여부를 조사하여 오는 중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는 표징, 곧 그리스도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보다 더 분명하고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을 인류사에서 나는 보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로슈 멕도르씨는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지금까지 사람들을 속여 오던 일 중에서 악랄하고 비도덕적이고 비양심적인 위선 중에 최대의 위선이라"고 했습니다.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이라면 인류 역사상 가장 기적적인 사건일 것이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세상은 이성으로 설명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 이성, 비논리가 아니라 초이성, 초논리도 있습니다. 신앙인들은 부활의 증인들입니다. 부활의 증인들은 열정을 가지면 쉰들러 리스트 같은 위대한 신앙의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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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에릭슨 타다(Joni Eareckson Tada)라는 신체 건강하고 귀여운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 자매는 승마와 수영을 즐기며 지극히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967년 7월 30일 큰 불행이 그 자매를 덮쳤습니다. 그 당시 열일곱 살이었던 그 자매는 체사피크만(Chesapeake Bay)에서 다이빙을 하게 되었는데, 그곳은 수심이 너무도 얕았던 것입니다. 그것을 전혀 모르고 힘차게 다이빙을 한 그 자매는 그만 바위에 머리가 부딪치면서 목뼈가 부러졌습니다. 그로 인하여 어깨 뼈 이하의 신체를 전혀 쓸 수 없는 심각한 장애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밥도 먹여주어야 하고 몸도 누군가가 씻겨주어야 하며 대소변도 누군가가 치워주어야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갈 수 있는 비참한 인생이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그 자매는 하루아침에 침대 위에 누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중증 신체마비 환자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십대의 어린 나이에 그러한 충격을 받았으니, 그 마음은 온갖 고통과 아픔과 절망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매는 너무도 괴롭고 힘들어서 죽으려고 여러 번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과 친구들의 사랑과 믿음의 열정에 힘입어 그 자매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훗날 그 자매는 입으로 붓대를 물고 그림을 그리는 법을 배워 유명한 화가가 되었으며, 방송을 통해 전 세계의 장애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인물이자, 32권의 책을 쓴 세계적인 저술가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1979년에는 그 자매의 스토리를 담은 조니(Joni)라는 영화가 만들어져서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 상영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그 자매의 어두운 삶에 광명의 기적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 자매가 어떻게 그러한 시련과 절망을 이길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 자매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부활의 신앙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부활하여 천국에 가면 건강한 두 발로 춤을 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그라진 손과 비틀어진 무릎과 움직일 수 없는 모든 근육들이 새롭게 변화되어 휠체어에서 일어나 아름답고 정상적인 몸으로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그 자매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신앙이 그 자매를 놀라운 축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큰 위로와 희망을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자매는 무엇보다도 죽음과 고통과 장애를 이기는 부활의 신앙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인생의 큰 위기를 극복하고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하는 복음전도자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부활의 신앙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모진 세상의 고통과 환란과 신체적인 장애까지도 능히 극복할 수 있는 기적의 삶입니다.
부활의 신앙 앞에 어둠의 권세는 패배를 당합니다.
부활의 신앙 앞에 절망은 희망으로 바뀝니다.
부활의 신앙 앞에 무덤과 사망은 깨지고 영생의 복이 열려집니다.
부활의 신앙으로 살아갈 때 기쁘고 신바람 나는 영성을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망의 법에 매여 있는 어리석은 존재들이 아니라, 부활의 신앙으로 하늘로부터 오는 기적을 소망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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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억년 전에 지각 변동으로 생긴 해수면보다 400여m 낮은 소금바다(鹽海) 사해(死海). 최근 이 죽은 바다가 또 죽는다는 불길한 소식이 들려온다. 사해 주변 국가들이 요르단 강 상류에 댐을 건설해 공업용수, 농업용수, 생활용수로 사용하는 바람에 사해로 유입되는 물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수년전부터 1년에 1m 정도씩 수위가 낮아져 앞으로 50년이 지나면 완전히 말라버릴 것이라고 한다. 사해에 완전 사망이 선고되는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과 요르단, 팔레스타인이 홍해의 물을 끌어들이는 200㎞ 운하를 만들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요르단과 이스라엘간 맺은 평화협정의 결과물이다. 평화는 회복과 생명을 동반한다. 인간이 자연과 평화를 파괴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결국 인간을 통해서 파괴된 생명과 평화를 회복시키신다. 여기에 인류의 희망이 있다.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겔 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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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시대 때 기독교인들은 10번에 걸쳐 큰 박해를 받았습니다. 첫 번째 박해를 한 황제는 네로 황제였습니다. 그는 기독교인들을 불태워 황제의 정원을 밝혔다고 할 정도로 잔인하게 신앙인을 처형하였습니다. 이 때 베드로 사도와 바울 사도가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네로에 이어 두 번째 기독교인들을 잔인하게 박해한 황제는 90년부터 96년까지 핍박을 한 도미티안 황제입니다. 그는 정권 말기에 통치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자신을 "주와 신"(Dominus et Deus)으로 숭배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의로운 신앙인은 황제 숭배를 반대하였고 황제 숭배를 하지 않는 신앙인을 잔인하게 처형하였습니다. 이 때 로마의 클레멘트가 순교하였고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었습니다. 요한은 복음을 전하다가 소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고 합니다. 로마인들은 콜롯세움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피흘리며 쓰러지는 잔인한 장면을 즐기기 위해 모였습니다. 팡파레가 울리자 관중들이 조용해지면서 도미티안 황제가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군중들은 환호를 보냈고 도미티안 황제는 손을 들어 답례하고 자기 자리에 앉습니다. 잔인한 격투기가 벌어지고 경기가 끝난 다음에는 감금되었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양의 가죽을 뒤집어 쓴 채로 경기장에 밀려 나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한데 뭉쳐 찬송하고 기도합니다. 그것도 잠시일 뿐 곧이어 쇠문이 열리면서 여러 마리의 굶주린 사자들이 뛰쳐나와 사냥감을 발견하고 공격합니다. 밤에는 화형식이 이루어졌습니다.
경기장 안에 횃불을 밝혀 놓고 곳곳에 십자가를 세워 놓고 그 아래 장작을 쌓아 놓았습니다. 형리들은 그리스도인들 수십 명을 십자가에 묶은 뒤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질렀습니다. 로마인들은 조롱합니다. "너희들이 세상의 빛이냐? 더 빛나게 해주랴?" 그 죽음의 공포 앞에서 그리스도인은 황제 숭배를 거부하고 집을 빼앗기고 가족과 이별하고 유리하다가 붙들려 이렇게 화형을 당하고 죽어 갔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 11:25-26)”라는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서로 격려하며 말했습니다.“두려워 맙시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천국이 있습니다. 마지막 날 부활이 있습니다.”
죽음의 종말인 부활을 믿는다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믿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일어나지 않은 일을 어떻게 과거에 일어났다고 믿겠느냐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기적이나 예수님의 부활이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제자들의 신앙 고백이거나 신화라는 것입니다. 합리주의자들은 그리스도는 부활에 대하여 기절설, 빈무덤설, 도난설, 환상설, 신화설 등을 말합니다. 그러나 과연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했다는 것이 사기이고 환상이고 꾸며낸 이야기이고 신화일까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성경의 진리이면서 역사적 사실입니다.
역사 속에 일어난 단회적 사건은 과학으로 입증되는 분야가 아닙니다. 믿음의 분야입니다. 지금 공룡이 살고 있지 않다고 공룡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역사적 사실로 믿고 있습니다. 기록과 흔적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도 역시 역사 속에 일어난 단회적 사건이기 때문에 기록을 진실로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수많은 증거들이 있습니다. 빌라도도 빌라도 보고서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대하여 상세하게 기록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형을 당할 때 모두 도망갔던 제자들입니다. 그 제자들 중 1명을 제외하고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다가 모두 순교하였는데 한결 같이 거짓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버렸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을 믿고 증거하다가 화형을 당하고 십자가에 달리고 짐승에게 찢겨 죽었습니다. 거짓을 위해 그렇게 죽었겠습니까? 부활하신 후, 40일간 무려 11번 나타나셨고 갈릴리 지정된 산 위에서는 500여 형제에게 일시에 나타나셨습니다. 확실한 증거는 부활을 목격한 예수님의 가족의 변화입니다. 예수님의 가족과 친척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요7:5) 미쳤다고 했습니다.(막3:21) 그러나 그들은 부활을 목격하고 그들의 삶은 변하였습니다(행1:14).
옥스포드 대학의 역사학 교수였던 토마스 애놀드는 말하기를 "나는 여러 해 동안 과거의 역사를 연구하고, 그 사실을 조사하고, 이에 대하여 기록한 문헌과 유물을 고증하여 그 사실 여부를 조사하여 오는 중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는 표징, 곧 그리스도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보다 더 분명하고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을 인류사에서 나는 보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주님께서는 인류 그 누구도 정복하지 못하는 죽음을 정복하고 부활하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살지 못하였고,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 믿음도 헛것, 금생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가장 불쌍한 사람(고전15:16-19)"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새로운 시작 죽음의 종말, 부활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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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소프라노 마리안 앤더슨이 96세로 별세하였다. 그는 1939년 부활주일 때 워싱턴 의회 강당에서 음악회를 가지려 했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대신 링컨공원에서 개최한 무료독창회에는 7만5000명이 운집했다. 앤더슨은 말했다. “차별과 고통은 처음엔 좌절을 주지만 나중엔 나를 강하게 합니다. 오늘 예수는 부활하셨습니다. 앉아있지 말고 일어나 주님을 위하여 일하십시오”
그는 민권운동가로 많은 일을 했다. 그 기본정신은 기독교의 부활신앙이었다. 즉 죽음을 극복하며 사는 믿음을 말한다.
미국 플로리다의 한 장의사는 요즘 4000달러만 내면 죽은 뒤에 하늘에 올려보내 준다는 광고를 하고 있다. 화장해서 그 뼛가루를 로켓에 태워 우주로 쏘아올리면 2300년동안 지구 궤도를 돌 것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땅을 절약하고 오염을 방지하는 아이디어라지만 잃은 자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슬픔을 더할 것 같다.
“죽음을 생각지 말라. 조간 신문의 조사(obituary)를 읽지 말고 아침식사나 배불리 먹어두라.
나는 배고픈 채 천국으로 여행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던 코미디언 조지 번스는 부인 그레이시가 죽자 그 무덤을 한달에 한번씩 찾았다.
기독교를 ‘바위를 굴리는 종교(Stone-rolling religion)’라고 말한다. 예수를 가두었던 무덤의 바위 이 굴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그 종교의 출발점을 예수의 부활에 두는 이유는 죽음의 문제가 극복된 사건으로 믿기 때문이다. 예수의 부활을 인간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믿게 하는 증거가 되었다고 믿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흔히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죽음을 격파했다. 죽음을 피하는 방법이 아니라 죽음을 통과하여 다시 사는 영원한 생명의 첫 열매가 되셨다. 예수께서 다시 사셨으므로 우리도 다시 산다.
미국에서는 연간 5100만명이 안정제를 쓰고 있고 2800만명이 진정제를 사용하며 1700만명이 각종 자극제를 쓰고 있다. 속으로 울고 있는 사람과 불안하고 참기 어려운 압력 및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통계다. 인간의 고뇌도 죽음을 바라보고 죽음에 눌린 자들의 숙명적인 불행이라고 볼 수 있다.
죽음의 포로가 된 인간을 그 질곡에서 해방시킨 것이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이다. 천사들은 무덤을 찾아간 막달라 마리아에게 “울지 말라 예수는 여기 계시지 않다”고 선언하였다. 죽음이 생명을 가두어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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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리머 박사가 이집트에서 어떤 회교도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회교도는 정부 고위 관리였고, 매우 세련되고 교양이 있는 신사였다. 리머 박사가 그 신사에게 말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 가지 방법으로 자신을 나타내신 것을 믿습니다.” 그러자 이 회교도 신사는 “우리도 똑같은 것을 믿습니다”라고 대꾸했다. 리머 박사가 말하기를,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창조를 통하여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 것을 믿습니다”라고 하자, 그 회교도는 “우리도 역시 그것을 믿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또 리머 박사가 말하기를,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 것을 믿습니다”라고 하자, 회교도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코란을 통하여 자신을 드러낸 것을 믿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번에 또 리머 박사가 말하기를,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을 믿습니다”라고 하자, 회교도 관리는 “우리도 하나님께서 모하메드를 보내신 것을 믿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다시 리머 박사가 말하기를, “우리는 예수님께서 죄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죽으신 것을 믿습니다”라고 하자, 회교도 관리는 “우리도 모하메드가 백성들을 위해 죽은 것을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박사가 “우리는 예수님이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심으로써 자신의 말씀을 증거하셨음을 믿습니다”라고 하자, 이때 회교도 관리는 슬픈 얼굴로 “우리는 죽은 이후의 우리 선지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무덤을 넘어서신 유일한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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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삶과 죽음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의 삶과 죽음을 완성으로 이끄는 역사적 사건이 없었다면 그것은 한 마디로 무의미할 뿐입니다.
그 역사적 사건이란 바로 부활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결국 인생의 목적도 의미도 없는 셈입니다.
언젠가 키에르케고르는 그와 같은 생각을 부드럽고 편편한 돌에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편편한 돌을 연못의 수면 위로 던지게 되면 춤을 추듯 물 위를 미끄러져 나아가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멈추더니 물 속으로 쑥 가라앉아 버리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 수면이 잔잔해집니다. 마치 이것은 사후의 소망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극작가인 사무엘 베케트는 '호흡'이라는 희곡을 쓴 적이 있습니다. 막이 오르면 쓰레기가 잔뜩 어질러져 있는 무대가 등장합니다.
배경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아기의 첫 울음 소리로 시작한 연극은 한 노인의 임종의 헐떡거림으로 끝이 납니다.
그리고 막이 내려옵니다. 여기서 베케트가 말하고자 한 요지는 인생은 허무하고, 존재는 덧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고(벧전 1:3, 4). 이것은 한 마디로 소망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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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고난을 당하고 있을 때 그 예수님의 고난 속에서 부활이라는 생명을 잉태시키고 계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 운행의 법칙이다.
우리는 그 고난 앞에서 무릎을 꿇고 쓰러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고난에 함께하시고 이 고난을 부활의 길로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때 인간은, 역사는 성장하게 되어 있다.
아브라함 마슬로우는, “그 사람이 얼마나 위대하느냐는 그가 얼마나 많은 고난을 이겨 왔느냐와 비례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 없이 위대한 사람을 생각하기 어렵다.
우리가 겪는 고난 속에는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는 부활의 진리가 숨어 있다.
그래서 신앙인은 자기 자신에게, 가정에, 교회에, 민족에게 어떤 시련이 와도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하나의 깨어진 꿈은 모든 꿈의 마지막이 아니다. 하나의 부서진 희망은 모든 희망의 마지막이 아니다.
폭풍우와 비바람 저 너머로 별들은 빛나고 있으니 그대의 성곽이 무너져 버릴지라도 다시 성곽 짓기를 계획하라.
수많은 꿈들이 재난에 무너져내리며 고통과 상한 마음이 세월의 물결 속에서 그대를 넘어뜨릴지라도 그래도 신앙에 매어달리라.
그리고 그대의 흐르는 눈물 속에서 새로운 교훈을 배우기를 힘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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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뉴욕에 살던 한 코미디언이 죽기 전에 이런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죽으면 내 시체를 해부실습용 대상으로 기증하겠소. 특별히 하버드 대학으로 보내주길 바라오.
이것이 부모님의 소원을 들어드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오. 부모님의 평생 소원은 내가 하버드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었는데, 내가 하버드에 들어가는 방법은 이 길밖에 없소." 이 사람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죽음은 역시 고통스럽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음은 웃을 수 없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죽음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나 자신에게 죽음이 닥치면 죽음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쉽게 말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많은 종교와 철학과 사상들은 죽음을 미화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살 예찬론까지 등장하기도 합니다. 죽음에 관한 미화는 죽음에서 도피하고 싶은 인간 본능의 한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죽음은 필연적이며 산 자와 죽은 자를 분리시키기 때문에 아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죽음을 미화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C. S. 루이스는 "예수님의 최대 업적은 그분이 부활의 메시지를 선포하신 것이고 그 메시지로 다시 사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지금의 삶이 당신을 좌절과 어두움과 절망에 몰아넣더라도 주께서는 부활과 생명으로 다가오십니다.
주께서는 무덤 저 건너편의 놀라운 소망을 약속하실 뿐만 아니라, 동일한 부활의 능력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삶을 치유하시며 나를 새롭게 하기 원하십니다. 문제는 이것을 믿지 못하는 우리의 불신앙입니다. 죽음의 극복은 불로초를 먹고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부활을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기독교의 특성은 영혼의 불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활에 있습니다. 기독교는 부활로 인해 모든 종교나 사상을 뛰어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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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바티칸 궁정에는 유명한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피에타 (Picta)라는 조각품이 있다. 그 작품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시체를 성모 마리아가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그런데 여러 해 전에 이탈리아의 어떤 정신병자가 그 조각을 파손시켰기 때문에, 또 다시 많은 경비를 들여서 보수하였고 지금은 유리상자 속에 넣어 보관하고 있다. 그 조각품은 미켈란젤로가 죽기 이틀 전까지조각했다는 걸작품이다. 이를 보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오는데, 가톨릭교회 신자들은 그 앞에 꿇어 앉아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만약 그 작품의 모습처럼 예수님게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일생이 끝났다면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라 할 수 없다.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슬픔의 종교요 무덤으로 끝나야만 하는 종교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사흘만에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시므로 기독교가 생명의 종교,구원의 종교임을 증명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부활에 대한 기사로 가득차 있다. 부활의 진리를 기독교의 중심되는 내용이며,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계시며 능력으로 역사하고 있다.
람세이(A.M.Ramsay) 교수는 말하기를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에게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 복음은 결론이 없는 복음일 뿐아니라 전혀 복음이 될 수 없다"고 했다.
또한 옥스포드 대학의 역사학 교수였던 토마스 아놀드 (Thomas Anold) 말하기를 "나는 여러 해 동안 과거의 역사를 연구하고 그 사실을 조사하고 이에 대하여 기록한 문헌과 유물을 고증하여 그 사실 여부를 조사하여 오는 중이다.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표징, 곧 그리스도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보다 더 분명하고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을 인류 역사에서 나는 보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한때 영국의 무신론자였던 리틀스톤(Girbert West)는 자기들이 무신론을 주장하는데 두 가지 장애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하나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이요, 다른 하나는 사도 바울의 변화였다. 그들은 이 두 가지 사실을 변정하기 위해서 연구하기 시작했다.
얼마 동안 연구한 뒤에 두 사람이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우리도 더 이상 이에 대한 반증을 할 수가 없네. 우리는 이 연구를 통해서 오히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아니라, 우리들이 죄인임을 잊고 살았음을 깨닫게 되었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그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영접할 수 밖에 없네"라고 고백하였다는 것이다.
부활사실을 부인하기 위하여 연구하던 무신론자들이 오히려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신앙을고백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처럼 부활을 부정하는 세력은 다 망했으나 부활의 진리를 증거하는 교회는 언제나 살아 역사하고 있다. 왜냐하면 교회는 부활하신 주님의 몸된 교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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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의 창시자인 장 칼뱅은 생전에 남긴 업적도 대단했지만 세상을 떠날 때도 큰 영적 교훈을 남기고 갔다.
칼뱅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장로교회를 창립하자 그의 영향을 받은 존 낙스는 스코틀랜드로 건너가서 장로교회를 세웠고 다른 많은 지도자들도 유럽 각지로 흩어져 개혁교회들을 세웠다.
칼뱅이 죽을 때 남겼던 유언은 지금도 유명한 일화로 전해지고 있다.
바로 “내 무덤에 묘비를 세우지 말고 내 무덤의 흔적이 없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의 유지를 따라 지금도 제네바에 가면 장 칼뱅의 무덤에는 이름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단지 그를 추모하는 많은 사람들이 너무 아쉬운 나머지 무덤 위에 ‘J.C’라고 이름 약자만 새겨놓았다.
그래서 칼뱅의 유언을 음미하는 사람들은 그의 무덤가에서 더 큰 은혜를 받는다고 한다.
장차 부활의 새 아침이 올 것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 크리스천들도 칼뱅처럼 아름다운 영적 유산을 이 땅 위에 남기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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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계관시인 테니슨은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를 아름다운 언어로 찬양한 시인이었다.
어느 날 그는 시골길을 가다가 행복한 얼굴로 열심히 일하는 중년 부인을 보았다.“오늘 아침에 좋은 소식이 있나 보죠?” 테니슨이 묻자 부인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선생님,저는 한 가지 소식밖에 모른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를 위해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는 소식입니다.”
테니슨도 말했다.“부인,그것은 오래된 소식이자 새로운 소식이며 정말 좋은 소식이군요”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다면 그리고 그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그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넉넉히 기뻐해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당신의 삶속에 진정 부활의 기쁨이 있는가?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 새”(마태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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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야채코너보다 재래시장의 채소 난전이 더 자연스럽다. 다듬어져 하얀 살을 내보이는 정돈된 야채에 비해 재래시장에 펼쳐진 봄나물이 더 다정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엉클어져 자유롭고 편안함이 봄기운을 느끼게 하기 때문일 게다. 봄나물에서 지난 겨울 부산하게 맨몸으로 땅을 뚫고 올라온 흔적이 보이는 듯하여 애착이 간다. 거친 흙을 뚫고 올라온 연한 줄기들은 예수의 부활을 닮은 것 같아 행복하다.
나물의 새순들이 땅속에서 딱딱한 흙을 뚫고 나오는 것을 지레 포기했다면 생의 향기는 기대할 수 없고 땅속에서 썩고 말았을 것이다. 봄나물은 생명이 있어 엷은 향이 우러나온다. 된장을 풀어 끓인 달래와 냉이국은 저장된 음식의 입맛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 좋다.
예수의 부활은 절망이 희망의 향기로, 죽음은 부활의 향기로 다가왔다. 성경에서 부활의 메시지는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하였다. 이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리는 메시지인가.부활이 있기에 내일이 있고 부활이 있어서 살맛이 난다. 봄나물이 봄의 향기를 전하듯 부활의 소식은 삶의 향기를 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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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기쁨으로 얼굴이 빛나는 꽃장수 할머니가 있었다.늘 그것을 궁금해하던 한 단골손님이 어느 날 할머니에게 물었다.
손님: 할머니는 걱정 근심이 전혀 없으신가봐요.
할머니: 천만에요.사람에게 걱정 근심이 없을 수가 있나요.내게도 역경과 고통이 있답니다.
손님: 그런데 어떻게 그리도 매일 기쁘게 사실 수가 있어요?
할머니: ‘3일의 비밀’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이랍니다.
손님: ‘3일의 비밀’이라니요?
할머니: ‘3일의 비밀’이란 걱정거리가 생길 때마다 하나님께 기회를 드리고 3일을 기다리는 것인데,이는 무덤에서 3일만에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때론 숫자대로 3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주님의 부활 원리는 늘 동일하답니다.그래서 나에게는 어떤 암흑 같은 고난일지라도 광명의 열매로 끝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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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한 교회학교에 나오는 여덟 살 짜리 소년 톰이 있었습니다.
그는 병이 많아 몸이 늘 아프고 힘이 들어서 늘 휠체어에 실려 교회에 나오는 소년이었습니다.
부활주일을 앞두고 톰의 교회학교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속이 비어 있는 플라스틱 계란을 주며 그 속에 무엇이든 생명이 있는 것을 넣어 오라고 했습니다.
부활절 아침, 아이들이 차례로 계란을 열어 보았다. 꽃이나 나뭇 잎, 곤충 등 아이들은 생명이 있는 여러 가지를 준비해 왔습니다.
톰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톰의 계란은 비어 있었습니다.
그걸 본 몇몇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웃었지만 앓고 있는 톰을 동정해서 교사는 부드럽게 "준비하지 못했어도 괜찮아. 톰이 많이 아팠나 보구나."라고 위로하였습니다.
하지만 톰은 선생님께 이렇게 대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저는 생명을 준비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무덤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살아났기 때문에 그 무덤이 비어 있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생명이 있는 살아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잖아요."
이 소년은 10개월 뒤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의 장례식 날, 그의 관에는 꽃 대신 빈 플라스틱 계란이 놓여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누우셨던 무덤을 비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부활절을 맞이하여 부활의 소망을 가득 품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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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에 올라가 도시를 내려다보면 교회가 참으로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밤에는 도심을 밝히고 있는 십자가의 빨간 불빛들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가 많은 것은 복 받은 일입니다. 하나님이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사랑하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교회가 늘어가는 만큼 사회가 변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변화되기보다는 오히려 온갖 죄악이 번창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신자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고 있는 현실이 슬프기만 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교회가 제 몫을 감당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제몫을 감당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기복적인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 한 것입니다. 복을 구하는 신앙이 아주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여도 그것이 부활의 신앙 보다 우선 되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기복은 이기적인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타인을 위한다거나 배려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소유에 강한 집착을 갖게 합니다. 소유에 대한 강한 집착을 버리지 않고서는 빛과 소금의 직분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기복적인 신앙이 아닌 부활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부활의 신앙은 함께 죽는 신앙입니다.
혼자 죽어서는 백 번을 죽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지 않고서는 새로운 존재가 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습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사람은 있어도 죄인을 위하여 죽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인을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참으로 힘든 일을 하신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고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힘든 일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힘이 없어서 생명을 빼앗긴 죽음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생명을 버린 죽음입니다. 그러나 죽음은 예수님을 가두어 놓지를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다시 사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다시 사셨습니다. 다시 사심으로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증거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신앙은 예수님과 함께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는 신앙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는다는 것은 죄에 대해서 죽고, 세상에 대해서 죽고, 육에 대해서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부활의 신앙을 가진 이들은 이해를 초월하여 타인의 유익을 위해 고난의 짐을 함께 지는 생활을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신앙은 함께 죽는 신앙입니다.
내가 죽으면 교회가 살고 내가 죽으면 사회가 변합니다. 폴 틸리 는 말하기를 "새로운 것은 낡은 것으로부터, 낡은 것들 중의 최선의 것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낡은 것의 죽음으로부터 만들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옛 사람이 죽지 않고는 새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참으로 살기 위해서는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신앙은 함께 사는 신앙입니다.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다시 사신 것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영원히 살리기 위해서 다시 사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다시 삽니다. 예수님이 다시 사신 것처럼 다시 삽니다.
그 어떤 세력도 예수님과 함께 죽은 자들을 죽음 가운데 가두어 두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다시 살리시고 영원히 살수 있는 생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활의 신앙은 죽이는 신앙이 아니라 살리는 신앙입니다. 부활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생명을 사랑합니다. 모든 생명을 귀히 여깁니다. 그 생명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환경을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성경에는 죽었다가 다시 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가리켜 부활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살림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가 하면 그들은 다시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시 죽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영원한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이들은 예수님 과 함께 살고 영원히 삽니다. 다시는 죽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산 사람들은 다른 생명들을 살리는 사람을 살아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삶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파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들어야 할 이들이 우리 주위에 많습니다.
부활의 신앙은 책임지는 신앙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보내신 자를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세상 끝날 까지 지키시고 보호 하셨다가 세상 끝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 예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부활 신앙을 가진 이들은 고난과 어려움이 있다고 포기하거나 갈라서지 않습니다. 포기하거나 갈라서는 것은 부활의 신앙의 열매가 아닙니다. 고난과 어려움이 있어도 끝까지 함께 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부활의 신앙입니다. 자신의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부활의 신앙을 가진 자들의 생활이 아닙니다. 부활의 신앙을 가진 이들은 말씀을 믿고 말씀을 따라 행합니다. 끝까지 책임을 지는 생활을 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어 맡은 일의 책임을 다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맡은 일을 끝까지 책임지는 지도자들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 지도자들이 없기에 백성들의 삶이 고달픈 것입니다. 부활의 신앙을 가진 이들은 자신의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고 자신이 바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결코 소홀히 하는 법이 없습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예수님의 기도가 자신의 기도가 되게 하고 삶이 되게 합니다.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은 예수님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보고 판단하고 행합니다. 자신의 몫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몫까지도 돌아보는 생활을 합니다. 부활의 신앙만이 이 시대의 어두운 터널을 뚫고 나갈 방법입니다.
기복적인 신앙이 아닌 부활의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될 때 희망이 있습니다. 교회와 사회를 새롭게 변화시키기를 원하면 기복적인 신앙의 주위를 맴도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 주위를 떠나지 못하고 맴돌고 있는 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바라시는 것은 빛과 소금의 직분을 다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부활의 신앙은 함께 죽는 신앙입니다. 함께 사는 신앙입니다. 함께 사는 신앙이며 살리는 신앙입니다. 모든 생명을 귀히 여기는 신앙입니다. 생명들이 함께 살아가는 쾌적한 환경을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신앙입니다. 부활의 신앙은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신앙입니다. 끝까지 함께 하는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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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7년 이전까지 외과수술은 환자들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이 공포에서 해방시켜준 사람이 스코틀랜드 출신의 산부인과 의사인 J Y 심프슨이다. 그는 최초의 흡입 전신마취제인 클로로포름을 개발해 외과수술의 신기원을 이뤘다.
1840년 29세의 젊은 나이로 에든버러대학 산과학 교수로 임명된 심프슨은 클로로 포름의 발견 이외에도 산과겸자(産科鉗子)를 고안하는 등 최고의 산부인과 의사로서 수많은 연구 성과를 이룩했다.
이러한 공로로 1866년 스코틀랜드 의사로서는 처음으로 경의 칭호와 옥스퍼드대학의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1869년 에딘버러시의 명예시민이 됐다.
심프슨의 생애 말년에 제자들이 물었다.“선생님 생애에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엇입니까?
”그때 심프슨은 뜻밖에도 “내 생에 최고 최대의 발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불쌍한 죄인인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이다”고 대답하였다.
그를 값지게 한 것은 연구 업적이 아니라 그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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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당시, 로마는 크리스천들에 대한 핍박이 극에 달했습니다. 그들은 크리스천들을 백성이나 농락하며, 유혹하는 범죄 집단으로 생각했고, 무서운 방법으로 크리스천들을 죽였습니다.
부활 주일이 가까올 무렵, 한 어머니와 그녀의 어린 아들이 크리스천 지하 모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의 가슴에 벌벌 떨며 울었습니다. 원형 경기장 안에서 사자에게 찢겨 죽는 벌이 내려졌습니다.
그들은 경기장에 덩그런히 놓여졌고, 잠시 뒤에 사자굴의 문이 열렸습니다. 굶주린 사자들은 으르렁 거리면서 달여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아들은 무섭게 달려드는 사자를 보고서 어머니의 품에 꼭 안기면서 울부짖었습니다. “엄마! 무서워요.” 어머니는 아들의 몸을 꼭 안아주면서 조용히 말했습니다.
“얘야! 부활하신 우리 주님을 이제 만나볼 시간이란다. 눈을 꼭 감고 조금만 참아라 그러면 눈앞이 밝아올 거야...”
부활이 없다면 이들의 죽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1번과 2번은 낮은 울타리 2003. 4월호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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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부활절 무렵, 영국의 한 마을에 목사가 새로 부임을 해 왔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새로운 목사의 설교에 관심을 기울이며 하나 둘 교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드디어 목사의 설교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바닷가 마을에 어머니를 여윈 소년과 그 소년을 목숨보다 사랑하는 아버지가 있었어요. 어느 날, 소년은 소년의 친구와 바닷가에 놀러갔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높은 파도와 강한 바람에 둘이 타고 있던 배는 금세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소년의 아버지는 등대지기였습니다. 등대에서 바라보다가 아들이 탄 배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가까운 곳에 매어둔 보트에 몸을 싣고 아들이 있는 쪽으로 힘껏 노를 저었습니다. 아들에게로 갔지만 아버지는 절망하고 말았습니다. 그 사이 아들이 탔던 배는 뒤집혀 파도에 휩쓸려 가버렸고, 자기가 탄 보트에는 한 명 밖에 더 태울 수가 없었습니다. 둘을 모두 태운다면 배가 뒤집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미 아들의 친구는 포기한 얼굴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가 이내 손을 거두었습니다. 아들은 놀란 얼굴로 아버지를 바라보았습니다. “미안하다...너는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지만 ... 네 친구는 아직 주님을 안 믿잖니...” 아들은 아버지를 한참 바라보더니 이내 미소를 띄었습니다.
“그래요 아빠.. 천국에서 다시 만나요.”
아버지는 배에 아들의 친구를 태우고 쏟아지는 눈물을 감추지 못한 채 있는 힘껏 육지까지 노를 저어 왔습니다.]
목사의 설교는 끝이 났고, 그의 눈은 촉촉이 젖어 있었습니다. 찬송가가 시작되는데 교회 뒤쪽에 앉은 동네 불량배 몇 명이 자기들끼리 소곤거렸습니다. “뭐야, 저런 이야기. 다 지어낸 거잖아.” “누가 믿어.” 그때 그들의 뒤에 앉아서 그윽한 눈으로 설교를 듣던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나직히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네, 젊은이들. 내가 그 아버지이고, 저기 서 있는 목사가 바로 내가 구한 아들의 친구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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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계관시인 테니슨은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를 아름다운 언어로 찬양한 시인이었다.
어느 날 그는 시골길을 가다가 행복한 얼굴로 열심히 일하는 중년 부인을 보았다.
"오늘 아침에 좋은 소식이 있나 보죠?" 테니슨이 묻자 부인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선생님 저는 한가지 소식밖에 모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를 위해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는 소식입니다." 테니슨도 말했다.
"부인, 그것은 오래된 소식이자 새로운 소식이며 정말 좋은 소식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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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위대한 설교가 스퍼젼 목사가 하루는 새장 속의 새를 괴롭히는 불량소년을 보았다. "새를 어떻게 할래?" 스퍼전이 묻자 소년은 "괴롭히다가 죽일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스퍼전은 2파운드를 주고 그 새를 사서 멀리 날려 보냈다. 이틀 후 부활주일. 스퍼전은 이렇게 설교했다. "마귀는 인간을 괴롭히다가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내주는 엄청난 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이 사건이 예수님의 십자가요 부활의 역사입니다."
"안식일이 지나매....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막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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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을 보냈다. 교회마다 사순절과 부활절 행사를 치르느라 분주했을 것이다. 그런데 매년 아쉬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부활절을 보내자마자 부활의 의미를 잊어버리고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마치 국경일에 기념식을 치르고 이듬해까지 새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신화가 아니다. 픽션도, 판타지도 아니고, 역사적 사실(hi storical fact)이다. 우리는 그것을 믿는다. 그러나 과거의 역사라고 해서 단순히 추억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부활은 추억(remembrance)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reality)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나’와 함께 계신다. 부활신앙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믿는 데서 더 나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임재 속에 살아가는 것이다. 장차 ‘내 육체’도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을 믿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매일 매 순간 부활의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 이게 ‘진짜’(real) 부활신앙이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처럼(눅 24:13∼24), 갈릴리 바다에서 헛그물질하던 제자들처럼(요 21:1∼4) 부활의 추억에 갇혀 있으면 안 된다. 세상 끝 날까지 함께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마 28:20)과 함께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사실은 매주일이 부활절이고, 매일이 부활절이다. 부활의 능력으로 그 어떤 절망도 이기고 승리하는 부활신앙의 용사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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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 54년에 17세의 나이로 즉위한 네로황제는 자칭 예술가라고 여기면서 자아도취에 빠졌지만, 정서적인 불안감이 심한 인물이었다. 약 10년 후인 A.D. 64년 경에 로마시의 1/3이 타버린 방화사건 이후에, 네로황제는 그 방화의 책임을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물었다. 방화의 주범은 네로황제가 아니라, 바로 초대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억지로 우겼던 것이다. 그로인해 네로황제는 초대 그리스도인들을 무섭게 핍박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는 원형경기장 안에 초대 그리스도인들을 모아놓고 여러 날을 굶긴 사자들을 풀어놓기도 했다. 사자들이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달려가 물고 찢으며 먹는 것을 보고 즐기기 위해서였다. 참으로 포악하기 이를 데 없는 악한 황제가 네로였던 것이다. 지옥에서 제일 고통스러운 곳에 떨어져 신음과 몸부림으로 죗값을 치루고 있어야 마땅할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악랄하게 살해한 네로황제는 A.D. 68년 그 자신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1896년 폴란드 작가 헨리크 시엔키에비치의 작품이었던 소설‘쿼바디스 ’는 55년 후에 같은 제목을 가진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그 당시의 상황이 더욱 생생하게 그려지면서 실감이 난다.
그리스도인들이 사자 밥이 되기 직전이었다. 그들은 아름다운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꽤 감동적이다. 비록 악한 황제의 핍박으로 사자 밥이 될 몸이었지만, 그들은 부활의 신앙으로 믿음을 지켰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에 입성하게 될 거라는 확신을 갖고, 그들은 끔직한 죽음조차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하나 때문에, 사자 밥이 되었던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얼마나 억울하고 마음이 아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들은 최후의 순간에 그들을 영접하려고 온 하늘의 천사들을 보았을 지도 모른다.
그리스도인들을 사자 밥으로 만든 그날 밤에, 네로황제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죽었는지 확인을 하고 싶었다. 그는 횃불을 들고 죽은 그리스도인들의 시신을 보기 위해서 원형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가, 그만 충격을 받게 된다. 죽은 그리스도인들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담겨져 있었던 까닭이다. 그걸 바라보면서 네로황제는‘어떻게 사람이 죽음 앞에서, 그것도 사자 밥이 되어 죽어가면서도 밝게 웃을 수 있는 걸까? 이 사람들이 믿는 기독교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죽음조차도 초월할 수 있단 말인가?’하고 겁먹은 얼굴로 뇌까리다가 정신을 잃고 맥없이 쓰러진다.
그게 바로 죽음을 이기는 부활의 파워이다. 온전한 부활의 신앙만 있다면, 사자 밥이 되어도, 교수형을 당해도, 부글부글 끓는 쇳물 속에 던져진다고 해도, 그 상황을 능히 신앙으로 극복하고 이길 수 있다. 왜냐하면 죽음으로 모든 게 끝나는 인생이 아니라, 영생으로 이어지는 부활이 있음을 확실히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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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매년 3만 명이 넘게 총기 사고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하루 평균 81명이 총으로 희생되고 있는 것입니다.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로라도 덴버의 고등학교에서 두 학생이 총기를 난사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 때 무고한 13명의 학생과 교사가 사망하였습니다. 사건을 저지른 이들은 히틀러의 생일을 맞아, 이런 광기 어린 학살을 감행했다고 합니다. 해리스와 클리볼드는 학생들을 캠퍼스의 한군데에 모아놓고, 한 사람씩 총구를 갖다 대며 이렇게 물었답니다. “너는 하나님을 믿느냐?” 믿는다고 고백하면 죽이고 안 믿는다고 하면 살려 주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가 서 있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살기 위해서 “믿지 않는다.”라고 대답했답니다. 믿음이 좋은 캐시 버낼이란 학생 차례가 되었답니다. 그는 죽음의 총구 앞에서도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그래,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신다. 그리고 너희도 역시 하나님의 길을 따라야만 한다.” 이 말을 들은 해리스와 클리볼드는 “네가 믿는 하나님의 곁으로 가라” 하며 총을 쏘았고, 결국 캐시 버낼은 그 자리에서 죽었답니다.
그 후 살아 난 학생들은 캐시 버낼의 순교 앞에서 자신들의 비겁함을 한없이 부끄러워했답니다. 학생들 사이에서 자신들도 캐시 버낼과 같은 담대한 증인으로 서야 되겠다는 신앙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급기야 미국 전역의 각 학교에서는 ‘우리도 캐시 버낼의 길을 따르자’라는 운동이 벌어지게 되었고, 캐시 버낼의 순교적 결단을 기념하는 국기 게양대 앞 기도회는 인산인해를 이루게 되었다고 합니다. 부활을 믿는 신앙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 담대할 수 있습니다.
"닥터 홀의 조선회상"라는 책이 있습니다. 조선에서 선교 개척자로 일생을 바친 의사 부부였던 부모 아래 태어나, 훗날 다시 의사인 아내와 함께 한국에 의료 선교사로 와서 16년의 세월을 보낸 닥터 셔우드 홀의 자서전입니다. 그분은 98세까지 사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열정을 가지고 봉사했는데 그분의 열정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로 결핵 요양소가 세워졌고 1932년 남대문을 그린 우리나라 최초의 크리스마스실이 발행되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제임즈 홀은 조선에 의료 선교사로 와서 환자를 치료하다 전염병에 걸려 젊은 나이에 남매 둘을 남겨 놓고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그의 어머니 로제타 홀은 남편 뿐 아니라 딸도 어린 나이에 조선에서 잃었습니다. 의사인 그녀는 남편을 먼저 천국에 보낸 후 미국으로 갔습니다. 미국에 있으면서 절망하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평양에 병원을 세우기 위해 모금 활동을 하고, 조선의 시각 장애인을 돕기 위해 점자 공부를 하였습니다. 김 에스더를 유학시켜 한국인 최초로 의학박사가 되게 하였습니다. 다시 조선에 돌아왔지만 6개월 만에 세 살 된 딸 에스더를 천국에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간 남편의 이름을 붙여 "홀 기념 병원"을 세웠고, 어린 딸을 생각하며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어린이들을 위해 '에디스 마거리트 어린이 병동'을 세웠습니다. 그 뿐 아니라 지금은 이대 부속병원이 된 '동대문 부인 병원'을 세워 무지한 부인들을 치료했고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인 "경성 여자의학 전문학교"를 세워 의사들을 배출시켰습니다. 시각 청각 장애인을 공부시켰습니다.
자신들을 환영한 것이 아니라 핍박하고 죽이려는 사람들이 많은 조선 땅인데 어떻게 연약한 여인의 몸으로 남편과 딸을 잃고 외아들을 기르면 조선 땅에서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 몸도 건강하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어릴 때 척추 이상이 있어 몇 번의 수술을 받았고 선교사로 파송될 때도 완치되지 않았으며 의학교에 다닐 때도 목에 결핵성 종양이 있어 수술을 받은 분이었습니다. 닥터 홀에게 청혼을 받았을 때도 결혼 후에 남편에게 미칠 영향 때문에 청혼을 거절할 정도로 건강치 못하신 분이었습니다. 무슨 힘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아들인 닥터 셔우드는 우연히 어머니의 일기 속에서 이런 글을 발견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아들을 보내셨을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 때문이었다...나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은 나를 보내셨고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것같이 나는 저들을 사랑합니다. 어째서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시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정말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압니다. 그토록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를 위해 고통을 당하라고 예수님을 보내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이 조선 사람들도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만나는 사람마다 잡고 '이 좋은 소식'을 말하고 싶은 열망에 불타게 되었다.] 십자가의 사랑과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신앙이 그녀를 죽음을 초월한 사랑을 실천하게 했습니다. 부활을 믿는 신앙인에게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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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도 열심히 다녔고, 꿈을 위해 열심히도 살았는데, 그런데 저에게 왜 이러시는 거죠?”
10여 년 전 녹내장 판정으로 실명이란 아픔을 당한 OOO씨가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했던 질문입니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영문과를 졸업한 그녀는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며 변리사 시험을 준비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녹내장으로 점차 시력을 잃어가게 되었고 그녀의 모든 것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암흑 속에 갇혀 외롭게 살아갔습니다. 육신의 빛을 잃은 그녀는 어느 날 ‘믿는 사람이라고 고난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고난 중에도 기뻐하고 평안할 수 있는 것이 차이점이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김 씨는 육신의 빛은 잃었지만 영혼의 빛을 찾은 날이라고 말했습니다. 새로운 인생과 함께 다시 삶으로 돌아온 김 씨는 즉시 점자를 배우기 시작했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임용고시에 합격해 인천의 한 중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음에도 프로젝터를 이용해 영문법 강의를 하고, 칠판에 적어가며 강의를 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본 아이들도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이 정말 사실이라는 것을 선생님의 열정과 모습을 통해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난 사람은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김상화 씨가 끝이라고 생각했던 실명은 사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어떠한 일이라도 그분의 섭리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항상 평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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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역사적 사실인가?
자연과학과 역사 비평의 합리적 사고를 추구하는 현대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역사 속에 실제적으로 일어난 유일한 사건으로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초대 교회의 신앙의 산물로서 인간의 창작에 의해 채색된 신화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에른스트 트뢸치(Ernst Troeltsch)는 역사의 진정성 여부는 세 가지에 의해 진위가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첫째는 개연성의 원리입니다. 역사 비평적 연구는 자연과학적 분석과 달리 판단의 진정성 여부를 실험을 통해 증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역사적 사건의 반복 불가능성은 단지 개연적 판단만을 허용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유비의 원리입니다. 역사적 방법론은 사건을 유비의 원리에 따라 판단하는데 사건은 기존 경험과의 불일치가 주장되지 않는 한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합니다.
셋째는 상관의 원리입니다. 과거에 발생했던 사건이 오늘날과 상호 관련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을 볼 때 예수님의 부활은 사실적 진리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역사적 신빙성을 주장한다는 것은 허구에 대한 열정적인 자기 신념의 표현으로 밖에는 비쳐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과학적 사고의 기초가 되는 비평의 원리, 유추의 원리, 상관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과학 문명이 발달되지 않은 당시 제자들의 신앙 고백적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에 의하여 신화적으로 꾸며졌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부활에 대한 의심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죽음의 역사성, 둘째, 부활 기사의 신빙성, 셋째는 빈무덤의 역사성, 넷째는 부활 후 출현의 역사성입니다. 결국 부활은 역사 속에서 일어난 실제적이고 유일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가설을 만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일시 기절했을 뿐이며 장사를 한 후 정신이 되돌아와서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여인들이 어두운 새벽길에 잘못 찾아서 빈 무덤을 보고 주님이 부활한 것으로 오해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 옮겨 놓고는 부활했다고 거짓을 퍼트렸다는 것입니다. 부활이 없었는데 돌아가신 후 죄송한 뉘우침에 부활을 말하신 것을 굳게 믿고 심히 피곤하여 머릿속에 그리다가 마침내 환상을 보고서 이것을 실제인양 퍼트렸다는 것입니다. 바벨론 신화, 동방신화에 나오는 부활설을 예수님께 적용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했다는 것이 사기이고, 환상이고, 꾸며낸 이야기이고, 신화일까요? 기절하였다가 다시 일어났겠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은 성경의 증언이면서 역사적 사실입니다. 빌라도도 ‘빌라도 보고서’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대하여 상세하게 기록하였습니다. 초기의 역사가인 요세푸스는 “그는 메시아였다. 우리 유대인들 중의 지도층 사람들이 그를 고소했기 때문에 빌라도는 그를 정죄하여 십자가의 처형을 받도록 했다.”라고 기록했고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도 “이 이름의 창설자인 그리스도는 티베리우스의 통치 기간 중에 총독 빌라도에 의해 처형되었다.”라고 기록함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 역사적 사실인 것을 확실하게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여인들이 무덤을 잘못 찾아가서 빈무덤을 보고 착각했겠습니까? 예수님의 묘지는 공동묘지가 아니라 개인 묘지이기에 찾기에 쉬웠습니다. 여인들이 무덤의 위치를 미리 확인하여 두었습니다.(눅23:55). 제자들이 시체를 도둑질하여 옮겨놓고 거짓으로 부활했다는 소문을 퍼뜨렸겠습니까? 그럴만한 이유가 없습니다. 잡히시던 현장에서 도망하고 주님을 부인하던 제자들입니다. 또 막달라 마리아가 주님 부활을 전했을 때, 믿지 않으려고 확인까지 하려던 제자들입니다.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제자들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순교하였는데 한결같이 거짓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버렸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너무 그리다가 그만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고 헛소리 한 것입니까? 여러 사람이 일시에 환상을 보고 실제적 사건으로 오인했다고 생각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후, 40일간 무려 11번 나타나셨고 갈릴리 지정된 산 위에서는 500여 형제에게 일시에 나타나셨습니다.
확실한 증거는 부활을 목격한 예수님의 가족의 변화입니다. 예수님의 가족과 친척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요7:5) 미쳤다고 했습니다.(막3:21) 그러나 그들은 부활을 목격하고 그들의 삶은 변하였습니다(행1:14) 희생제사, 율법, 안식일을 기반으로 하는 유대 사회가 변했습니다. 1500여 년 동안 이어온 안식일이 예수님이 부활한 날로 예배가 바뀌었습니다. 부활을 설교한 초대교회가 급격히 확장되었습니다. 역사는 사실적 역사와 기록된 역사가 있습니다. 사실적 역사는 증인에 의해 진위를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많은 부활의 증인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진실성을 입증했습니다. 옥스포드 대학의 역사학 교수였던 토마스 애놀드는 말하기를 "나는 여러 해 동안 과거의 역사를 연구하고, 그 사실을 조사하고, 이에 대하여 기록한 문헌과 유물을 고증하여 그 사실 여부를 조사하여 오는 중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는 표징, 곧 그리스도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보다 더 분명하고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을 인류사에서 나는 보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죽음도, 부활 기사도, 빈무덤도, 부활 후 출현도 역사적 사실입니다. 성경은 언젠가 우리도 부활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날에는 확실하게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살지 못하였고,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 믿음도 헛것, 금생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고전15: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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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씨 영하 196도의 액체질소가 든 금속제 탱크 안에 들어가 있는 냉동인간들이 있다. 그들의 숫자를 세계적으로 따져보면 223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도 약 2000명이 넘는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냉동탱크에 들어가는 사람은 먼저 피를 전부 빼고 부동액과 같은 특수한 액체를 채운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 백 년 동안 냉동상태로 보관을 해두었다가, 적당한 시기가 되면 그 냉동인간을 해동시켜 살려낼 수 있다고 한다. 현재의 과학이나 의학으론 치료가 불가능한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배려라고도 볼 수 있다. 그 냉동탱크 안에는, 1964년에 출판한 ‘냉동인간’이라는 책에서 '인체냉동보존술Cryonics'의 개념을 제시했었던 로버트 에틴거와 디즈니 월드를 세운 월트 디즈니 같은 세계적인 유명 인사나 갑부들이 누워있는데, 과연 그 냉동인간들을 정상적인 인간으로 해동시켜 살려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물이 얼면 9%정도 부피가 늘어나는데, 그렇게 되면 사람의 몸 안의 수분이 얼음덩이가 되면서 자연적으로 부피가 늘어나 세포전체가 파괴될 수 있는 위험이 뒤따를지도 모른다. 그 외에도 다양하고 위험한 난제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한 것들을 어떻게 잘 풀어내고, 제대로 아무런 이상 없이 해동을 해서 냉동인간을 정상적으로 부활시키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일단 냉동은 시켰지만, 나중에 해동시켜 살려내는 일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아무래도 지금은 어렵겠지만, 미래의 과학과 의학의 힘으론 그것도 가능하리라고 본다. 하지만 한 사람당 20만 달러를 지불해야 한다니, 막노동을 해서 겨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은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냉동탱크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이미 영생의 나라가 예약되어 있으니, 굳이 냉동인간이 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천국에서 완전하고 건강하며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되어, 영생의 삶을 살게 될 선택받은 복된 존재들이 된 것을 감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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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보물이 있다. 성만이에게 아내는 가장 귀한 보물이다. 그의 아내는 장애인 봉사자로 왔다가 성만이를 만났다. 그의 아내 미애는 소외된 자를 위해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학생 때부터 장애 시설인 성애원에 가서 봉사하였다. 처음에는 단순한 봉사자로 서로 도왔지만 만나면 만날수록 성만이 미애는 정이 들었다. 미애는 성만이의 인생을 품고 싶었다. 그것이 자신이 믿는 예수를 따라가는 길이라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삶을 따라가는 삶을 살기보다는 예수를 상품화하여 마케팅 하는 시대에 반항하고 싶었다. 아버지는 교회의 장로였다.
그러나 사업과 교회 생활은 별개였다. 신앙과 삶이 많이 달랐다. 미애는 성만이와의 결혼을 결심하고 아버지 어머니에게 간청하였다. “아빠, 엄마, 나 감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아니어요. 단순한 동정심 때문에 성만씨와 결혼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어요. 제발 결혼 허락해 주세요.” 미애는 완강하게 반대하는 부모를 설득하였다. “야, 생각해 봐라. 결혼은 낭만이 아니야. 동정도 아니고. 현실이야. 긴 인생의 과정이라고. 아무리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어느 정도 맞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 미애의 아버지는 딸을 설득하려고 애를 썼다. “아니, 너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너는 명문대학을 나왔어. 사지 멀쩡한 아이가 아니 그런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너 정신 나간 것 아니야. 그 애가 돈이 있냐? 학벌이 있냐? 그렇다고 몸이 멀쩡하냐?” 미애의 어머니는 더 적극적으로 결혼을 반대하였다. “아버지 어머니는 교회에서 말할 때와 실제와는 너무나 달라요.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 하셨다면서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주었다면서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한 평생 헌신하겠다는 것이 무엇이 잘 못되었어요.” “그래도 안돼. 사랑이라는 것이 그런 감정적인 것이 아니야, 사랑과 동정은 구분해야 하는 거야. 너는 그 애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야. 단지 동정하고 있을 뿐이야. 너 그 사람하고 결혼하려면 집을 나가, 너와 나는 이제 끝이야” 아버지는 등을 돌리며 말했다.
미애는 교회에서 기도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성자 같은데 실제 문제에서는 늘 이런 식인 아버지가 싫었다. 사업을 하면서 매일 밤이면 거래처 사람들과 만나 술을 먹고 들어오는 아버지의 모습을 미애는 어릴 때부터 보았다. 교회 장로로 봉사하지만 결코 아버지의 삶이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좇는 삶이라고 인정할 수 없었다. 천국과 지옥을 믿으며 실제 부활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있는지 의심하였다. 장로가 되어서 벌써 교회를 여섯 번 옮겼다. 이사를 하여 옮기는 것만은 아니었다. 처음 장로 안수를 받을 때는 작은 교회에서 받았는데 목사의 설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동네의 큰 교회로 옮겼다. 미애는 아버지가 작은 교회에 대한 부담을 회피하고 사업상 많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교회를 옮겼다고 생각했다. 가는 교회마다 5년을 넘기지 못하고 갖가지 이유를 부쳐 교회를 옮겼다. 미애는 아버지와 같이 신앙생활하고 싶지 않았다. 십자가를 지고 어렵고 힘든 곳에서 섬기면서 살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와 함께 교회를 다니지 않고 장애인 교회에 다녔다.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예수의 삶을 따르고 싶었다. 그는 집을 나와 성만이와 장애인 교회에서 결혼을 하였다. 주례도 하객도 없는 결혼이었다. “김성만은 최미애를 아내로 맞이하여 병들 때나 건강할 때나 가난할 때나 부할 때나 항상 변함없이 사랑하겠습니까?” 미애는 성만이의 옆구리를 찌르며 대답하라고 했다. “예” “최미애는 김성만을 남편으로 맞이하여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사랑하겠습니까?” 자신이 질문하고 자신이 “예”라고 크게 대답하였다. “이 두사람의 결혼이 원만히 이루어진 것을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서 엄숙히 선포합니다.” 그 후 그들은 5년 동안 숨어살았다. 부모님 보란듯이 잘 살자고 다짐하였다.
그러나 미애는 아버지의 집요한 추적에 의해 잡혀 끌려갔다. 1년 동안 집에 강금되어 나오지 못했다. 언니를 끔찍이 좋아했던 동생의 도움으로 집을 탈출하여 성만이를 만나려고 약속장소에 나아갔다. 건널목에 성만이가 서 있었다. 1년만의 만남이었다. 성만이를 빨리 만나기 위해 건널목을 뛰어 가다 그만 교통사고를 당하였다. 병원 응급실에 갔지만 미애는 깨어나지 못했다. 성만은 미애의 부모에게 연락을 했다. “이게 왠 일이야, 사업부도로 어려운데 이게 무슨 또 날벼락이야, 다 자네 때문이야. 자네가 우리 가정에 끼어 들면서부터 이렇게 엉망이 되었어.” 성만을 보자 쫓아내었다. “이미 미애는 제 아내입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제가 뭐 그리 미웁니까? 손가락 하나 장애인이라고 그렇게 싫습니까?” 성만은 미애 곁을 떠나지 않았다. 1년이 지나자 부모 형제도 찾아오지 않았다. 미애는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 있었다. “여보, 일어나야 해. 우리 이렇게 끝나서는 안 돼, 당신이 사랑했던 예수님이 반드시 당신을 일으켜 주실 것이야. 이렇게 20년을 있는다 해도 나는 당신을 결코 떠나지 않을거야. 의사가 당신을 살리지 못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당신을 반드시 살려 주실거야. 하나님께 기도하고 또 기도할거야.” 식물 인간으로 7년이 되었다. 미애를 처음 만났던 장애인 교회에 가서 부활절 예배들 드리고 병실에 들어갔다. 미애가 눈을 뜨고 있었다. “여기 어디야. 나 왜 여기에 왔어?” 부활의 기적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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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의 부활
눈물조차 품을 수 없는 크나큰 슬픔도 세상엔 있다. 나에게 남편의 죽음은 기념비가 되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있었다. 나는 남편을 사랑하여 결혼한 것은 아니었다. 어릴 때 가난한 집에서 자랐기 때문에 가난의 한을 풀기 위해 결혼했다. 남편도 내가 남편을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 아니라 남편의 재산이 탐이 나서 결혼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백혈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남편이 나의 마음을 알고 있는 사실 조차 몰랐을 것이다. 어느 날 예고 없이 찾아온 백혈병, 죽음을 앞에 놓고 있으니 이제 돈도 그리 크게 보이지 않았다. 오직 골수 기증자만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설령 골수 기증을 받는다해도 살아날 확률은 그리 크지 않다. 돈 많은 남편 덕에 형제들은 많이 도와 주었는데 형제 중 한 사람도 나를 위해 골수를 기증한다는 사람이 없었다. 아는 친구들은 타락한 과거의 나의 모습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 잘 되었다고 속으로 쾌재를 부를지도 모른다. “그 애 당연히 제 죄 값 치르는 거야.” 누가 골수를 기증한다고 나서더라도 나와 조직형이 맞는 것은 복권 당첨되는 것만큼 어렵다. 비혈연 관계에서는 25,000명 중에 1명이 조직형(HLA Type)이 맞는 기증자란다.
운좋게 나와 일치하는 조직형을 가진 기증자를 만났다 할지라도 기증의사를 번복하면 잠시나마 가졌던 희망도, 삶의 의욕도 모두다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런데 기증자가 나타났다고 한다. 그 때 그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를 아는 사람같으면 결코 골수를 기증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나를 모르고 내가 돈 많은 회장의 사모라고 하니까 돈을 탐내 기증했을 것이다. 그래도 무슨 문제가 있는가? 나는 골수만 받으면 된다.’ 누군가 돈을 노리고 기증했을 것이라고 의심을 하고 골수를 받았다. 의사도 누가 기증자인지 밝히기를 원치 않는다고 기증자를 알려 주지 않았다. 나도 그가 누구인지 일부러 알고 싶지 않았다. 아무런 조건도 없었다. 남편은 교회의 장로로서 자수성가하여 큰 기업을 일으킨 존경받는 회장이다. 나는 교회에 나가지도 않았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위선자로 생각했던 사람이다. 남편은 나에게 교회에 갈 것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결혼한 후 처음에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남편 체면을 챙겨주어야 할 것 같아 남편을 따라 교회에 나갔다. 내가 교회에 나간다고 해서 예수님를 믿는 것은 아니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했다고 사람들은 말하는데 나는 그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교회는 남편을 위해 나가 주었고 남편이 출근한 후에는 옛날 같이 놀던 친구들을 만나 술집도 가고 멋진 젊은 남자들을 만나 춤도 추었다. 어차피 남편은 돈 때문에 결혼했으니 돈만 얻으면 되고 인생을 즐기는 것은 돈만있으면 다른 사람과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런데 병을 앓고 나니 모든 것이 허무했고 후회뿐이었다.
남편은 내 병을 고치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는 것 같다. 새벽이면 새벽기도회에 나가 나를 위해 기도했다. 남편의 헌신적인 노력과 기도 때문인지 나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정상적으로 건강이 회복된 것이다. 그런데 나는 건강을 얻었는데 남편이 쓰러진 것이다. 그렇게 건강했던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져 의식을 잃어버리고 3년 동안 누워 있다 세상을 떠난 것이다. 남편은 이런 일이 있을 줄 미리 알기라도 한 듯 나에게 유서를 남겨 놓았다.
“ 여보, 당신 때문에 몹시 마음이 괴로울 때가 있었오. 젊은 남자들과 어울린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정말 가슴이 아팠오. 그러나 나는 당신을 버릴 수 없었오. 영인이 엄마가 나를 살렸지만 나는 영인이 엄마를 살리지 못하고 하늘나라에 보내었지만 당신에게만은 내 작은 골수를 주어 살리게 한 하나님께 감사한다오. 영인이 엄마도 아마 하늘나라에서 기뻐할 거요. 내가 당신에게 골수를 주어 새생명을 얻은 것같이 만약 나에게 불행한 일이 벌어지면 나의 장기를 다 다른 사람들에게 주길 바라오. 이미 나는 장기 기증 서약을 했오. 육신은 어차피 땅에 묻히면 썩어질 것이요. 내가 죽고 나면 어느 앞 못 보는 사람이 내 눈을 통해 이 아름다운 세상을 보았으면 좋겠오. 밤새워 고통하는 이가 내 신장을 통해 편한 잠을 자고, 온 가족이 눈물로 살아가는 이들이 내 간을 통해 눈물이 거두어 졌으면 좋겠오. 내 지체가 의학도들의 손에서 들려 사람을 살리는데 더욱 보탬이 되고 마지막 남은 피 한방울까지도 남기지 않고 부족한 사람에게 주어 희미하게 꺼져 가는 등불에 기름이 되었으면 좋겠오. 그래서 내 장기를 받은 사람들이 그래도 세상은 살아볼 만한 곳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살고, 내 죽음을 보는 사람들이 나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복되고 행복한 죽음이라 말하고 빙그레 웃음 지어 주면 좋겠오. 여보, 그동안 당신으로 인해 마음 아픈 것도 많았지만 나와 함께 살아 주어 고마웠오. 나는 하나님 나라 천국에 간다오. 너무 슬퍼하지 마오. 그 나라에서 만납시다. 너무 돈에 대하여 욕심내지 마소. 너무 인생 찰나적인 것으로 즐기려고 하지 마소. 그것이 당신을 진정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은 아니라오. 당신 살만큼은 유산으로 남겨 놓았오. 너무 억울해 하지 마소. 내 유산은 내가 살아서 하지 못한 일들을 할 것이오. 내 유산이 하는 것을 드러내지 마소. 뿌리는 들어내면 결국 죽는 것이요. 뿌리는 땅속에 있을 때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이요...” 나는 모든 것을 다 주고 떠난 남편이 믿는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남편이 믿고 있는 부활이 진실이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부활절을 맞이하여 교회에서 하는 장기기증서약에 나도 기쁨으로 동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