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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생각했다. 이 책의 저자 오준호씨는 안산에서 살며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작가다.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으로 활동하면서 150일간의 재판을 기록했다.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 했다면 저자도 '구조적 부정의'를 말했다. 구조적 부정의! 150일 동안의 발로 뛰며 정리한 1차 자료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느낀 바를 정리한 에필로그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드래그 카피가 아니라 직접 타자로 글을 옮겨 본다. 사실은 우리가 아는 바요. 진실은 우리 안에 있다. 대한민국 시민으로 산다는 거 저자는 바로 그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음을 글을 옮기며 깨닫게 된다.
우리는 밤하늘 반짝이는 별이 되었습니다.
"친구와 손잡고 나가기로 하고 잠수했다가 그만 손을 놓쳤습니다. 손을 놓은 그 순간과 친구들의 비명 소리가 떠올라 가위에 눌립니다. 배에서 찍은 사진을 보며 손에 땀이 나고 숨이 막혀 옵니다. 밥을 먹다가도 친구 생각이 납니다. 친구의 말투,생김새,좋아하던 음식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80년,90년 뒤에야 그들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니 살날이 원망스럽습니다."
선원들에 대한 검사 구형만을 남기고 공판 절차가 마무리된 10월 21일, 법정에서 안산 단원고 2학년 최순아 학생의 편지가 낭독됐다. 자그마한 편지지에 꾹꾹 눌러쓴 그의 이야기를 대신 읽은 장동원 새월호 생존 학생 학부모 대표도 여러 번 목이 잠겼다. 이날 3시간 30분간 실종된 교사의 아내,생존한 화물 기사,생존 학생의 아버지,희생 교사의 아버지,희생 학생의 부모와 형제,희생 승객의 아들등 열 다섯명의 피해자가 증언석에서 미리 준비한 글을 읽거나 가슴 말을 쏟아 냈다.
실종된 단원고 체육 교사 고창석씨의 아내 민동심싸는 "주검을 찾는 게 인생의 목표이고 유가족이 되는 게 소원이 되었다. 뼛조각이라도 찾아 아빠의 마지막 가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 주고 싶다"며 흐느꼈다. 생존 화물 기사 전병삼씨는 자신들만 배에서 나와 유가족들에게 죄송하다고 울먹이며,"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왜 했는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단원고에 다니던 언니를 잃어버린 중학생 동생도 증언대에 앉았다. 언니와 친구처럼 고민을 나누고 화장품이나 옷도 같이 썼다며, 4월 16일 이후 가족들이 이야기도 하지 않고 웃지도 않는다고 했다. "엄마랑 아빠는 하나 남은 나마저 잃을까 봐 늘 어딨는지 확인한다. 그런 엄마 아빠 걱정이 앞선다."며 수학여행을 떠난 언니가 왜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다고 했다.
고 박수현 학생의 아버지 박종대씨는 A4용지 네 장 분량의 글을 차분히 읽었다.그는 침몰 중인 배에서 승객이 퇴선하지 않는다면 모두 죽는다는 것은 당연하며 그렇게 두었다는 것 자체가 명백한 살인 행위이므로 "미필적 고의 여부등은 논할 가치가 없다."고 주장했다. 고 박성호 학생의 누나 박보나씨는 듬직했던 동생이 재만 남은 것이 믿어지지 않으며, 지금 엄마는 고혈압,아빠는 불면증,중학생인 막내 동생은 위장병에 시달리 정도로 힘들다고 말했다. 박씨는 "평생 분노와 고통 속에 살고 싶지 않다."며 정의로운 처벌이 선원들에게 내려지길 바랐다. 고 이승민 학생의 어머니 이은숙씨는 선원들을 향해 "학생 300명이 타고 있었던 사실을 정말 몰랐느냐?"고 물으며 오열했다. 이씨는 증언 뒤 다리에 힘이 풀려 잠시 쓰러졌다. 많은 학생들을 구출한 화물 기사 김동수씨는 4월 16일 이후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데도 세월호 참사와 연관 없는 질환이라며 약값 지원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김씨는 "선장이 살인자면 해경도 살인자고 나도 살인자다. 국가가 아무것도 해 준 게 없다."며 정부의 부실한 구조와 사후 지원을 비판했다.
공판기일마다 광주법정에 출근하디시피 한 고 제세호학생의 아버지 제삼열씨도 나섰다. 그는 사고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진도 어민,실종자 수색에 투입된 잠수사등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계절이 두 번 바뀌는 동안 정말 열심히 뛰어다녔습니다. 팽목항으로 동거차도로 인천으로 서울로 광주법원으로 신발 두 켤레의 밑창이 구멍나도록 쫓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항시 가가이 가면 저 멀리 멀어졌습니다."
피해자 진술이 매듭지어지자 재판장이 말했다.
" 마지막으로 단원고 2학년 8반 학생들의 동영상을 시청하겠습니다. 원래는 동영상을 본 후 마지막에 재판장이 재판을 마친다는 인사를 드리고 다음 재판 안내를 해야 하는데, 재판 준비 때문에 지난 주에 재판부원들과 함께 동영상을 미리 보았을 때 너무 슬퍼서 동영상을 본 다음에 인사 말씀을 드릴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서 피해자와 가족들에 대한 인사를 미리 드리겠습니다."
재판장이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몸과 마음을 다친 모든 이들의 희복을 바라는 말을 마치자 2학년 8반 학부모들이 만든 영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린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밤하늘 반짝이는 별이 되었습니다.' 가수 임형주의 헌정 곡 '천개의 바람이 되어'를 배경으로 학생들의 얼굴이 하나씩 지나가자 법정은 통곡에 잠겼다. 법정 겨우이도, 기자들도,재판장도 눈물을 닦았다. 나도 울었다. 피고인들이 고개를 숙였다. 영상이 끝나고 모두 퇴정햇는데도 가족들은 한참 일어나지 못했다. 그 장면이 내게 정지 영상처럼 생생히 남았다.
제삼열씨는 2013년 태안 청소년 해병대 캠프에서 고등학생이 다섯 명이 익사한 사고를 텔레비젼으로 아들과 보며 깜짝 놀랐다고 한다. 당시 1학년 반장이던 아들도 일주일 전에 간부 수련회를 다녀왔던 까닭이다. '설마 내 아이한테만은 이런 불행이 닥치지 않겠지.'라고 제삼열씨는 생각했다고 한다. 세월호 사고를 바라보는 다수 시민들의 마음도 혹시 그와 비슷한 게 아닐까.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운이 없었던 거라고. 설마 나와 내 가족에게 저런 일이 생기겠어.....
1931년 미국 트래블러스 보험사 직원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는 직업상 연구한 산업재해 사례들을 토대로 이른바 '하인리히 법칙'을 내놓았다. 산업재해 중상자가 1명 발생했다면, 그 전에 이미 경상자가 29명 발생했고,부상을 당할 뻔한 잠재적 부상자의 수는 300명에 이른다는 내용이다. 1:29:300의 하인리히 법칙은 하나의 대형사고가 일어나기까지 반드시 그보다 작은 규모의 사고들이 '징후'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세월호 사고가 일어나기까지 가까이는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태안 해병대 캠프 사고,멀리는 대구 지하철 참사등 결코 작지 않은 사고들이 징후적 메시지를 우리에게 보냈다. 하지만 우리는 잠시 슬퍼하고, 국화꽃을 바치고,몇몇 책임자에게 분노하다 그들이 처벌받는 것을 보며 잊어버리길 반복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인지 근본적으로 반성하지도 공동 행동에 나서지도 않았다. 그 결과가 새월호 참사이다.
분명한 것은, 세월호 참사 역시 다음에 닥칠 그 무엇의 '징후'란 점이다. 이 징후가 던지는 메시지를 외면한다면,다음 번 재난 앞에서는 외면이든 반성이든 할 기회가 더는 없을지도 모른다. '나와 내 가족만은'하는 바람은 사치에 불과할 수 도 있다.
세월호 재판의 의의와 한계
진실은 산 속 불타는 떨기나무처럼 언젠가 자기를 찾아온 사람에게만 완전한 모습을 드러내는 그 무엇이 아니다. 진실은 오히려 대화,논쟁,입증,반박의 과정 속에서만 그 실마리를(어쩌면 끝까지 실마리만을)찾을 수 있다. 비록 한계가 있다 해도 재판에 제기된 무수한 증거와 그에 대한 공방,증언과 그에 대한 질문은 진실의 실마리를 찾아낼 소중한 기회이다.
그런 의미에서 새월호 재판(선원재판,청해진해운 관계자 재판)은 이 사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진실' 그 자체는 아니더라도 진실로 향하는 발판을 제공해 주었다. 생존자,해경,어민,해운사및하역업체 관계자,조선공학 분야를 포함한 다양한 전문가의 증언은 사고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게끔 해 주었다. 증인 각자의 이해관계와 불완전한 기억 탓에 증언을 모두 신뢰할 수는 없었지만 한 증언의 빈틈을 다른 증언으로 맞추며 종합해 가는 과정에서 사고를 재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재판이 가진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세월호 재판의 한계를 크게 세가지로 본다. 이 한계는 비단 세월호 재판이어서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한계를 인식해야 재판을 넘어 무엇을 할 것인지 모색할 수 있다.
첫째는,진실 규명을 형사 재판을 통해 해 내려고 하는 데서 생겨난다. 이처럼 거대하고 복잡한 참사일수록 그 한계는 명확해진다. 앞서 언급한 미국의 9.11테러,호주 빅토리아 주 산불 사고처럼 사회에 큰 물질적,정신적 피해를 준 사건이나 사고에 대해 민관조사 기구가 충분한 시간과 예산을 보장받아 활동한 사례가 선진국에는 있다. 조사 과정에서 수 많은 증거와 증언들이 수집되었으며 정부 고위 관료들까지 청문회에 소환하여 시민들의 의혹을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세월호 재판에서는 주로 검찰의 요청으로 여러 전문가들이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연구 보고서를 제출하고 직접 증언했다. 검찰이 요청한 보고서라고 무작정 그 진실성을 부인해선 안되겠지만, 검찰의 공소 사실 입증이 연구의 주된 목적이라는 점은 검찰이 쳐 놓은 테두리 안에서 진실 규명 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6개월이라는 형사소송법상의 제약된 시간,검찰 측 연구보고서를 검증하고 반박하는 다른 연구를 의뢰할 여력이 피고인 대부분에게 없다는 조건,시민들이 사고의 자료와 증거에 접근할 길이 차단되어 있다는 점등은 폭넓고 심층적으로 진실을 파악하는데 한계 요인이 되었다.
심지어 합동수사본부 전문가 자문단 허용범 단장도 짧은 기간 조사를 마쳐야 했던 고충을 법정에서 토로할 정도였다.
"미국은 NTSB,영국은 MAIB 그런 데서는 사고 원인을 규명할 때 사회적으로 궁금증도 많지만 조급증을 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사하는 사람들이 심적 프레스를 전혀 느끼지 않고 6개월이고 1년이고 완벽하게 나올 때가지 합니다. 원인규명을 정확히 하기 위해 자료 수집을 차분히 다 합니다. 우리나라는 비행기 사고도 그렇고 선박 사고도 그렇고 위에 있는 사람들이 궁금하니까 빨리 해 내라고 하는데 그런 차원에서 말씀드린 것입니다."(청해진해운 재판 10차,증인 신문,2014.09.19)
그러므로 세월호 재판에서 '확정된'사실 관계는 최선의 경우에도 높은 확률적 가능성을 가질 뿐 다른 가능성이 절대로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런 상황은 피고인에게 그들의 죄에 해당하는 벌을 주어야 한다는 법치주의 원칙에 비추어서도 그러하지만, 이런 사고의 재발을 막고자 시민적 과제를 분명히 하는 작업에도 비판적 신중함을 요구한다.(그런 의미에서 세월호 특별법에 의해 설치된 '4.16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민관의 전문적인 역량을 결집해서 재판에서 밝힌 내용을 토대로 그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둘째는 법적 책임을 묻는 일은 이 사고를 둘러싼 정치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에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형사 재판은 현행법의 위법 행위만을 따진다.검사는 애초에 위법성을 입증할 수 있는 행위만을 기소하고 재판부는 검사의 기소가 적법한지 여부를 판단할 뿐이다. 하지만 세월호에서 벌어진 과실이 사고가 되고,사고가 참사가 된 과정에는 그날 현장에 있었던 몇 사람의 의도나 능력을 초월하는 힘이 작용했다.
예컨대 출동한 해경에 실질적으로 유용한 장비도 훈련된 상황 판단 능력도 부족했던 데는 국가가 구나구조 업무를 꾸준히 영리 기업에 위탁해 온 배경이 작용했다. 운항 관리실 직원이 해운사의 과적을 막지 못한 데는 해운업의 자율 규제를 용인하는 쪽으로 법 제도의 흐름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해운사와 하역업체의 갑을 관계,해운사와 선원들의 주종관계가 세월호를 안전에 취약한 지경으로 만들었는데, 이 역시 현행법 어디에도 위배되지 않을 뿐더러 심지어 지난 이십 년간 대한민국의 모든 정부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명분으로 조장해 온 바이다. 위법하지는 않지만 사고가 일어날 전반적 조건을 숙성시켜 온 이 모든 행위들은 세월호 재판에서 관심조차 받지 못했다. 이런 바탕 위에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 및 여당은 새월호 참사를 '교토사고'로 규정하고 서둘러 자신들을 소수 범죄자들에 대한 공정하 처벌자로 이미지 메이킹 했다. 그들은 책임의 범위를 선원과 악덕기업으로 축소하면서 자신들은 발을 뺐다.
이런 상황을 이해하는데 우리는 타계한 미국 정치철학자 아이리스 영이 <정치적 책임에 관하여>에서 보여 준 탁견을 빌려봄직하다. 아이리스 영은 한나 아렌트의 입장을 발전시켜 '법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을 구분한다. 법적 책임은 어떤 행위를 하거나 하지 않음으로써 결과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사람에게 제한적으로 물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세월호 사고처럼 거대하고 복잡한 사고는 한 두가지 원인에 의해 발생하지 않는다. 특히 권력자는 상대적으로 먼 거리에서 합법적이고 지속적으로 권력을 행사하여 이번처럼 무고한 시민이 다수 희생되는 구조적 부정의에 영향을 미치는데,결과에 직접 개입한 것은 아니기에 법적 책임을 묻기 힘들다.
이 지점에서 아이리스 영은 이들에게 '정치적 책임'이 있음을 강조한다. 그들은 권력을 가졌기에 부정의를 바로잡을 충분한 기회와 자원이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고, 또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여러 이익과 특혜를 누렸기 때문이다. 아이리스 영은 "책임을 져야 할 결과에 기여한 이들이 법적 책임이 없다고 하여 정치적 책임마저 면제되는 건 아니다"라고 말한다.
물론 이 사고에 법적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이 그 사실을 은폐하고 조작하고 있다면 반드시 밝혀냐 처벌해야 한다. 하지만 그 결과가 현행법의 한계로 우리가 기대한 만큼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체념하거나 냉소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이 사고가 일어나기까지 긴 구조적 맥락을 추적해 누가 어떻게 이득을 누리고 지위를 강화했는지, 누가 자신의 책임을 방기하고 직무를 태만히 했는지 밝히고, 우리의 말로,직접 행동으로,그리고 투료로 그들이 자신의 정치적 책임을 인정하게 만들어야 한다.
셋째는 세월호 재판에서 이 사고는 정상 국가에서 잠시 일탈한 사례로 규정된다는 점이다. 이는 참사 이후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통찰을 얻기 힘들게 한다. 검사는 6월10일 첫 공판에서 공소 사실을 낭독하며 "이 사고로 무너진 국가에 대한 신뢰를 되찾고자"재판에 임하겠다고 했다. 선원들과 관계자들이 부족하나마 처벌 받은 지금, 국가에 대한 신뢰는 회복되었는가? 그런데 세월호 사고는 과연 국가의 정상적인 상태로부터 일탈한 사고인가? 어쩌면 이 사고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세월호 사고를 낳은 것은 우리가 '정상적인 상태'라고 여긴 바로 그 국가,사회시스템이란 사실이다.
조금 우회해서 설명하자면, 이는 내가 세간의 의혹처럼 이 참사를 어떤 음모나 기획으로 볼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상식을 초월하는 이 사고에는 당연히 상식을 초월하는 어떤 거대한 '일격'이 있었을 것 같지만 나는 재판 과정을 통해 참사의 배경에 있는 것은 촘촘하게 결합된 비겁하고 이기적이며 무책임하고 무능한 행동들이란 사실을 알았다. 애초 낡은 배가 도입되도록 이명박 정부가 선령 규제를 완화한 것도 문제이지만, 청해진해운이 무리한 증개축을 하지 않았다면 이 배는 지금처럼 위험한 배가 되지 않았다. 무리한 증개축에 한국선급이 제동을 걸었더라면,적어도 증개축 이후 한국선급이 승인한 화물 적재 기준을 따라 화물을 실었다면, 위험한 출항을 거부할 수 있도록 선원들에게 발언권이 있었거나 그들에게 용기가 좀 더 있었더라면,운항 관리자가 규정대로 출항을 규제했더라면,조타수가 대각도 조타를 했더라도 복원성이 그 정도로 악화된 상태가 아니었다면(평형수가 좀 더 채워지고 화물이 단단히 고박되었다면),배는 쓰러지지 않았다.
설령 배가 쓰러졌다 해도 선원들이 평소 안전 교육을 제대로 받아 비상사태에 현명히 대처했더라면, 비상시 선내 방송 매뉴얼이 갖춰져 있었다면, 진도VTS가 퇴선 결정의 책임을 세월호에 맡길 게 아니라 과감하게 지시했더라면, 구조 세력들이 유기적으로 소통하며 협력하는 훈련이 되어 있었다면,출동한 123정 해경이 더 적극적이고 판단력이 뛰어났더라면.... 이 많은 '였다면'이 결합되지 않았으면 사고는 일어니지 않았거나 적어도 참사가 되지는 않았다.
요컨대, 이렇게 무수한 요인의 동시다발적 진행을 '소수의 일탈'로 볼 수 없다. 진실은, 우리 사회가 이런 행동들을 묵인햇거나 심하면 대세로 보아 부추겼으며 그 위에서 성장과 발전을 이룩했다는 데 있다. 지붕이 무너진 것은 마지막에 떨어진 눈송이 때문만은 아니다.
같은 이유로 나느 이 사고를 '신자유주의 규제 완화'의 담론으로 단순화하는 것에도 한계를 느낀다. 국가의 책임 방기는 사고의 중요한 배경이지만 단지 규제가 없어서 이 모든 일이 이러난 것은 아니다. 있는 규제조차 관행,부패,관력관계,개개인의 크고 작은 이익 앞에 무력화되었다.
아이리스 영이 통찰했듯이, 평범한 개인들도 자신의 행동으로 구조적 부정의에 기여할 수 있다. '대세에 따라야지 나만 다르게 행동 할 수 있겠어?'라고 여기거나 또는 '내 이익이나 신경 쓰고 남의 일에 상관 말자.'는 마음으로 한 행위들은 이런 사회 시스템을 강화하고 지속시키며,그렇게 강화된 사회 시스템은 다시 각자에게 압력을 가한다. 청해진 해운의 간부가 "회사에 이익을 많이 남기는 게 좋은일인 줄 알았다."고 법정에서 고백한 것이나, 선원들이 "회사에 말해도 소용없으니까 입을 다물었고 틈나면 회사를 옮기려고 했다."고 진술한 것, 또 목포에서 어느 운항 관리실 직원이 출항 전 점검을 엄격히 하자 도리어 승객과 승무원들이 "너희 때문에 배가 지연된다"며 항의하는 해프닝이 벌어진 후 점검이 다시 형식화된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저러한 기업간부,직원,승객의 못브이 과연 우리와 전혀 다른 모습인가? 이 사고가 아니었다면 그들은 여전히 유능한 간부, 현명한 직원,실용적인 시민으로 여겨지지 않았을까? 우리는 이미 전부터 세월호에 탄 학생들에게 자기 일이 아닌 일에 "가만히 있으라"고 가르쳐 오지 않았던가?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일탈을 처벌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쉬는게 아니라 이 복잡한 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우리 모두가 공유한 책임을 진심으로 성찰하는 일이다. 허위로 점철된 정상 상태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가장 약자가 희생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부정의를 바꾸어야만 한다.근본적으로 이 사회를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는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 아이리스 영은 말한다. "우리가 속한 제도가 부정의나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보거나 혹은 그런 범죄가 저질러지고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다른 이들과 연대해 그 제더ㅗ에 반대해야 할 정치적 책임을 지닌다."
무력감을 느낀다면 민주주의가 아니다.
평화학자 더글러스 러미스는 "무력감을 느끼게 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를 접하는 순간부터 우리가 느낀 것은 뼈저린 무력감,바로 그것이었다.
학생들을 포함한 수백 명을 태운 배가 가라앉는 장면을 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발만 동동 굴렀을 때, '전원구조'속보와 그것이 오보라는 또 다른 속보에 휘둘렸을 때, 해경과 해군과 특공대와 수십대인지 수백대인지 모를 최첨단 배와 비행기가 투입되었다는데도 단 한 명도 구해 내지 못했을 때,국민이 뽑은 집권자와 국민의 세금으로 봉급을 받는 관료들이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발뺌했을 때,그러면서 사고 현장에서 인증샷을 찍으며 희생자 가족과 국민을 조롱했을 때, 350만명이나 되는 '진실규명 특별법' 청원 서명을 들고 국회로 갔음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엇을 때,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우리 주변의 안전이 개선되기는 커녕 크고 작은 사고가 꼬리를 물고 터지는 것을 볼 때, 차라리 이민을 가고 싶다고 생각할 때...
'민'이 주인이라는 민주주의가 껍데가만 남았음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가 이 무력감을 극복하는 것이 더 이상 이런 무력감을 느끼게 만드는 상황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 참된 민주주의를 세우는 일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세금 내고,자기 일만 신경 스고, 자기와 가족에만 관심을 두는 시민으로 남는다면 이런 무력감은 주기적으로 반복되리란 점이다. 구조적 부정의는 몇명 악당의 음모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관행,처세,개인적 실리,집단의 이익이라는 이유로 거기 동참한 수 많은 사람들에 의해 그 일이 타인의 희생을 요구할지 모른다는 사실에 애써 눈감거나 아예 따져 보지 않는 다수에 의해 파국으로 향하는 길이 닦인다. 보수주의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는 "악이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건 오로지 선한 자들의 무관심이다."라고 했다.
이 참사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이들의 책임을 묻고 그 경중에 따라 처벌하는 것과 별개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강한 민주주의'를 만들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를 미연에 막을 수 있었던 조치는 수도 없이 많지만, 내가 정말 안타까워하는 것을 든다면 세가지다.
첫째,청해진 해운에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회사가 과적을 할 때 선원들이 "이렇게 위험한 배를 우리는 몰 수 없다."라고 항의할 힘이 있었다면,배의 복원성을 위협하는 화물이 들어올 때 막을 수 있는 '작업 중지권'이 선원들에게 있었다면, 안전 교육을 제대로 하라고 회사에 요구할 발언권이 있었다면,회사가 직원들의 이의 제기를 그렇게 간단히 묵살할 수 없었다면 그래도 세월호가 이처럼 브레이크 떼고 질주했을까.
둘째, 현행법에 '기업살인법'이나 기업 책임으로 일어난 사고에 대한 '징벌적 손해 배상 제도'가 있었다면.삼풍백화점 붕괴,태안 기름 유출 사고등 대형 사고가 날 때마다 도입이 논의되었지만 매번 기업들의 반발과 로비로 좌절되었다. 그 때 시민들이 똘똘 뭉쳐 통과시켰다면,그래서 '안전을 소홀히 했다간 기업이 망할 수 있다.'는 생각을 경영자와 임직원들의 뇌리에 각인시켰다면.
세째, 청소년들에게 투표권이 있었다면. 청소년들이 유권자 집단으서 자신들의 안전과 복리에 관련한 정책 수립에 참여하고 국회와 정부에 압력을 가 할 수 있었다면, 지금은 수학여행처럼 큰 이권이 걸린 사업에 정작 청소년들은 아무런 발언권이 없고 불안한 교통수단과 부실한 프로그램에 끌려 다니며 누군가의 호주머니를 채워주는 '머릿수'일 뿐이다. 수백만 청소년이 투표권을 가져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기업이 이익보다 시민의 생명.안전.인권을 중시하는 민주주의,노동자와 약자의 발언권을 보장하는 민주주의,고립된 자기 계발보다 동료 시민에 대한 연대를 추구하는 민주주의,그리하여 국가가 시민을 두려워하는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강한 민주주의이며 도덕적으로 성숙한 사회이고 이 슬픈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길이다.
우리, 두 번 다시 무력해지지 말자.
2015년 2월
세월호 희생자 합동 분향소를 다시 다녀와 씀.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는 방법론적 원칙: 오컴의 면도날
단순한 설명이 가능할 때는 복잡한 가정을 해서는 안 된다. 즉, 여러 가설이 경쟁을 할 때는 가장 단순한 설명을 하는 가설을 채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세월호 사건의 경우, '고의 침몰,국정원 개입,핵물질 수송,잠수함 충돌,지그재그운항'등의 의혹이 다양하게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의 경우는 평범하고 이기적이며 부주의한 사람들의 과실이 누적되어 사고가 터졌다는 설명이 보다 단순한 설명이다. 진실이 반드시 그러하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선 여기서 출발하여 사태를 설명해 보고,그래도 안 될 때 다른 가설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15쪽)
세월호 사건의 핵심: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사후 재발 방지 대책 수립
산 사람의 숙제: 희생자들이 왜 그런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는지 밝히고 잘못이 있는 사람들에게 응분의 책임을 지우며,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우리의 생각과 문화와 사회 전반을 바꾸는 것이다.(13쪽)
이 책은 세월호 재판의 접정 기록이며, 법정 기록을 바탕으로 세월호 사고를 재구성한 결과물이다. 나의 재구성은 증언과 증거를 토대로 받아들일 만한 사실을 바탕에 둔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검찰과 증인의 주장,그리고 판결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은 솔직하게 물음표로 남겨 두었다.(16쪽)
재판부가 보는 세월호 사고의 원인
1.세월호는 증개축으로 복원성이 약해진 선박이다.
2. 해운사가 화물 최대 적재량 기준을 어기고 과적하여 복원성을 더 악화시켰으며
3. 화물을 제대로 고막하지 않은 상태로 출항했고
4.이런 세월호를 주의하여 운항해야 할 당직 항해사와 조타수가 4월 16일 전남 진도군 병풍도 앞바다에서 우현으로 대각도 조타를 하는 운항 과실을 범하여 8시 48분경부터 배가 우현으로 급선회하며 언심력으로 좌현으로 기울었으며,
5.과적된 채 부실하게 고박된 화물이 좌현으로 쏠리면서 복원력이 상실되어 배가 30도 이상 전도되었다.10시17분경 전복되고 10시30분경 완전히 침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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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금 이 시각 뉴스에서 단원고학생 아버지가 자살했다는 내용이 나오네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