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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가 돌아왔다>를 읽고
I. 방 동규어른의 일대기
35년 생. 황해도 개성에서 태어났다. 거부인 할아버지 밑에서 유복하게 어린 시절을 보냈다.
48년 14살때 서울로 이사와 경신중고로 전학왔다.
49년 15살에 전학련 패거리와 맞짱을 붙어 퇴학을 받았다.
50년 16세에 보성중고로 전학이 결정되었으나,교정을 구경하러 간 날, 유도부원가 붙는 바람에 곧 바로 퇴학을 받았다.
51년 17살때 부산과 순천을 오고 가면서 돼지고기 장사를 해서 큰 돈을 벌었다.
52년 18세때 경신중고에 재입학했다. 상급생 구타사건과 교직원 사칭으로 퇴학을 당하고 인천 송도고로 전학했다.
53년 19세에 첫 사랑을 겪었다.
54년 20세에 송도중고를 졸업하고 역도 특기생으로 홍익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이때 평생의 인연 백기완을 만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55년 21세에 전쟁미망인에게 집을 팔아 돈을 건넸다. 온 가족은 닭장에서 생활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장충동 독종을 만나다.
56년 22세에 어머니가 생계를 위해 부산으로 내려갔다. 본인은 노동판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다가 휴학 후 동생들 데리고 어머니가 있는 부산으로 내려갔다. 범어사에 들어가 3년간 고시공부를 했다. 이 사이 응시는 한 번도 안 했다.
59년 25세에 군대를 갔다. 수류탄 사건, 소대장 구타사건을 일으켰다. 꾀병을 부려 61년 제대했다.쌍팔년 군대란 1955년을 단기 4288년 이여서 그렇게 불렀다. 도저히 군대라 할 수 없는 개판인 모습을 말한다.(167쪽)
63년 30세에 생계를 위해 독일 광부로 3년 생활한다. 이 때 어머니가 사위가 쏜 총에 식물인간이 된다.
67년 33세에 파리로 건너가 접시닦이등의 생활을 하고 접시들과 어울리며 낭인생활을 한다. 서양식 풍류를 익힌다.
70년 36세에 귀국한다. 7년간의 유럽생활이다. 이 때 선우휘를 만나고 세번째 연인을 만났다.
71년 37세에 충무로 고급 양장점 '살롱드방'을 개업했다. 1년 동안 잠시 반짝 정말 잘 나가는 디자이너로 살았다.
72년 38세에 공동생산, 공동분배의 농촌이상향을 꿈꾸며 구룡포로 내려가 머슴생활을 했다.
73년 39세에 철원에 100만평의 땅을 얻고 '노느메기밭'을 시작했다. 평생의 배필 이 신자를 만나 결혼했다. 농촌공동체는 77년 철폐령이 내릴때까지 지속되었다.
74년 40세에 간첩혐의로 서대문 형무소에서 6개월 복역했다.
77년 43세에 양토사업을 했으나 전염병이 돌아 망했다. 현대그룹에 입사하여 2년 간 근무하였다.
79년 45세에 중동 아랍에미레이트에 인프라 공사를 지휘하는 파견근무를 2년 간 했다.
82년 48세에 안양에서 자장면집을 운영했다.
85년 52세에 김태홍의 피신을 도왔다는 이유로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이근안에게 모진 고문을 당했다. 이후 사당동에서 신발가게,만두향을 대리운영했다. 송추에서 보신탕집을 개업하기도 했다.
91년 58세에 서해화성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충청도 홍성에서 근무했다. 홍성공장장 시절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94년 61세에 칭타오 공장에 발령이 나 3년여 중국 생활을 했다. 이때 월급 사장으로 집 한 채를 날렸다.
01년 68세에 국내 최고령 핼스클럽 트레이너가 되어 활동했다. 3년간 활동했다.
05년 대한민국 공무원으로 특채가 되어 경북궁 관람안내 지도원이 되었다.
II. 배추이즘
이 책을 지은 조우석작가는 방동규어른을 그리스인 조르바로 비유했다. 니체가 선언했듯 신을 폐위시키고 남긴 빈 공간을 인간은 무엇으로 채우려 했을까? 카잔차키스는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할 새로운 인간 형은 피가 끓는 진짜배기 인간'이어야 한다고 했다. 작가는 이를 이렇게 부연 설명한다.'은총을 구걸하고 사랑을 동냥하는 밸 없고 배짱 없는 나약한 먹물형 인간은 이제 더는 안 된다. 새로운 인간은 자기 의지와 액션을 통해 삶을 완성시켜야 하는 장쾌한 야생마이어야 하며, 대지에 탯줄을 대고 있는 씩씩한 사나이어야 한다.그것이 바로 인류의 새로운 희망이라는 것이다.'(2권 260쪽)
작가의 시선도 '조르비즘'에 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땅의 조르비즘으로 박동규어른을 포착해 냈을 것이다. 그는 조르비즘에 머물지 않고 '배추이즘'을 주장했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젊은 친구들에게 한번쯤 이 사람의 삶을 들여다 보고 롤모델로 삼아보라고 권고한다. '시라소니 이후 최고 주먹,독일 광부,파리 낭인,왕년의 명동 고급 양잠정 사장,긴급조치 위반 수배자,말지 사건의 숨은 인물, 대륙의 술꾼으로 불리는 김태선과 함께 하는 백홍열 학교의 일급 장학생, 주변에 유명짜한 인물로 채워지는 인맥, 그리고 조선의 3대 구라 중 하나, 儒生류의 먹물쟁이를 비웃는 낭만 주먹'(262쪽)은 젊은 그들에게 '신나고 재미나는 그 무엇'을 선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방동규어른의 유전자에는 분명 악동기질과 개성상인의 기질이 섞여 있다. 거기에 세상이 줄 쳐 놓은 관습과 경계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주의가 있다. 분명 의리와 정의감도 있었다. 주먹이어도 삶에 대한 지독한 정신력을 보이거나 나 정신적으로 고매한 삶을 산 사람들을 존경했다. 그는 비굴함을 싫어했다. 비록 상대라도 당당하게 끝까지 지조있게 구는 사람을 좋아했다.남의 일인데도 불의라 생각하면 내 일처럼 나섰다. 낭만 주먹의 기질이 있던 것이다.
III. 어른의 일대기 해석
유년시절
어른의 유년시절은 남 부럽지 않은 집안 경제로 유복하게 지냈으나 개구쟁이로 지냈음이 분명하다.
10대
48년도 14살 서울로 이주하면서 10대의 파란만장함을 겪게 된다. 질풍노도의 시기. 눈빛만 부딪쳐도 불꽃이 튀었던 시절. 천하의 싸움꾼으로 유명짜 해지기 시작한다. 학도호국단 단장의 애궂은 벌칙에 분노하여 상급생을 집단 구타한 사건,자장면 먹고 교직원 사칭한 죄,길거리 싸움 야사, 경찰서 안에서의 힘 대결,자장면집에서 자장면 많이 먹기등등이 그것이다. 그는 전학련과의 싸움으로, 유도부원과의 싸움으로 학교에서 퇴학을 당한다.
전쟁이 나고 순천에서 뻥튀기 장사를 하고 돼지고기 장사를 해서 큰 돈을 벌었다. 그러나 수복후 아버지는 공부를 다시 하라했다. 그때 그의 옻차림은 '베 잠방이에 헐렁한 고무신이나 게다를 신고'다녔다. 인근의 정신여고 학생이 그를 보고 꼭 배추장사 차림이라고 언급한데서 방배추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126쪽) 그의 졸업식도 개성 선배들의 싸움 걸이로 끝났다. 그는 당신의 주먹을 낭만 주먹이라 했고 70년대 이후의 연장을 사용하는 조폭 주먹과는 다름을 확실히 했다.그는 '나에게 주먹,그리고 싸움은 세상살이의 한 기술에 불과했다.50년대 주먹들이 정치적으로 우파라면 나는 차라리 좌파에 가깝고,이후 무리를 이루며 활동한 조폭에 비하면 나는 철저히 나홀로 주먹이었다.'고 언급한다.(137쪽) 이후 그는 창경원에서의 권투선수와의 싸움,천하장사 씨름군과의 싸움,가짜 배추와의 싸움,군인깡패들과의 싸움을 이어간다.19세에는 첫사랑 여인의 부모를 모시고 오기 위해 켈로부대에 들어가려 했고, 창경원에서의 케로부대 소대장과의 싸움도 있었다.그녀와는 대학입학 후 돌아가신 아버지를 이어 생계를 꾸려야 하는 의무감으로 그녀를 잘 챙기지 못할 거라는 부담감에 멀리하게 되었다.
20대
51년 21살에 집을 팔아 전쟁 미망인에게 다 갖다 주는 일을 했다. 당시 그는 마음이 가리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 한다. 그녀가 돈이 필요했고 불쌍해 보여 도와주고 싶었단다. 그렇게 해야만 자신의 맘이 편할 것 같아 그리 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그의 20대인 50년대 중반과 60년대 초반은 최악이었다 한다. 범어사 사찰생활 3년, 군대 생활이 바로 그것이었다. 절에서의 3년은 공부체질이 아니고 저작거리 체질임을 확인했다. 군대에서는 교대 근무를 해 주지 않는 고참을 혼내 주기 위한 수류탄 위협사건, 나이롱 휴가병과 관련한 항의로 비롯된 소대장 구타와 지뢰밭 사건이 있었다.무단탈영도 1년 2개월했다.꾀병을 앓고 천신만고 끝에 제대했다.
그에게 세 번의 사랑이 있었다. 19세 때 자신을 켈로부대에 들어가게 했던 송악 여인,20세때 집값을 갖다 받친 여인,그리고 독일과 프랑스에서 귀국한 후 살롱드방을 하던 시절의 친구의 여동생이 있었다. 특히 마지막은 약혼식까지 했었다. 그에게는 농촌공동체 운동에 대한 열망이 있었고 결혼이 곧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것이기에 그렇다면 자신의 소망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파혼을 했다.
30대
군대를 다녀온 후 이것저것 해봐도 신통치 않고, 둘째사위에 의한 총기사고로 어머니가 식물인간이 되면서 돈을 벌기 위해,한국의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혐오로 독일 광부로 떠난다. 역사의 현장에 온 몸으로 투신하는 장면이다.노동 현장의 경험을 통해 그는 '평생 노동자로 살아야 하는 바닥인생들과 잠시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노동하는 사람들의 의식구조가 다를 수 밖에 없음'을 깨닫는다.(2권 29쪽) 거기서도 그는 기브스를 한 채 한 싸움에서도 승리를 거둔다. 독일 남편의 이상한 아내 사랑도 경험한다.그는 3년 후 프랑스로 간다. 인생 어디를 가나 비슷하고 별거 아니라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삶의 원칙이 있다. '인생의 굽이 굽이 마다 마음 가는대로 사는 것,자유롭게 내 의지를 펼치는 것,그것이 바로 최상의 삶이다.'(2권 41쪽) 프랑스에서 스페인 조폭과 겨룬 적이 있고, 은밀한 범죄 제안을 받기도 했다. 그에게는 행동의 원칙이 있다. '정말 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없느냐. 내 가슴이 원하느냐,그렇지 않느냐..'(2권 57쪽) 이후 집시 생활을 한 후 한국으로 들어 온다.
인생의 최고 전성기: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귀국후 양장점을 잠시하고 난 후 노느메기밭 생활을 한다. 72~77년에 걸친 이 생활은 50년대 중반 유달영박사의 <새 역사를 위하여>를 읽으며 감명을 받은 세대의 실천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실천은 긴급조치 1,2호 위반으로 끝난다. 38~44세 사이의 나이 때인 그의 삶이 의미에 있어 최고의 전성기라고 본다.
이후의 삶
이후 어른의 40대 중후반과 50대 나이에는 스스로 평가하기를 이렇다 할 성공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술회한다. 중년은 초라했고 거듭되는 실패 속에 (삶의)진실을 조금식 깨쳐가던 과정이었다고 한다.(2권150쪽) 그가 기고한 글 중에 '성공 난무시대의 대실패남'이었다. '가진 것 없고 특별한 기술도 없는 보통의 중년남자'였고, '자기 사업에도 자신이 없던'시절이었단다. 다만 허가받은 건달로 민중문학 진영의 아지트인 창작과 비평사를 70년대 이후 계속 드나든 것 밖에 없단다. 중국집 운영시에는 프로레슬러와 헤드록 싸움을 했다.나라시 택시에서 만난 동네불량배도 한 방에 보냈다. 그 나이에도 낭만 주먹은 계속된 것이다.
# 책 속에 인용 글 몇 가지
문학판 이야기중 보령 출신 김성도에 대한 언급이 있다. "..그의 소설이 보여주는 여린 문체와 꼭 닮은 그의 사람됨을 사랑한다. 깁성동은 아마도 자기에게는 없는 내가 지닌 억센 사내다움 따위에 매료됐던 것일 게다."(2권 182쪽)
글 막판에 어른의 세 가지 구라가 나온다. 물론 구라의 어원도 나온다. 모파상의 단편 소설 <비계 덩어리>,고려시대 일연이 쓴 삼구유사에 나오는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야기,고리키의 소설 <어머니>가 그것이다. (2권 203쪽)
2005년 현재,어른은 헬스트레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지금도 운동을 하고 있다. 왜 일까? 답은 여기에 있다. "지금도 나는 유생형 인간, 즉 먹물 타입의 인간들을 살짝 경멸하지. 예외 없이 바늘 뼈에 두부살인 그들은 기회주의자들이기 십상인데, 내 생각에 그건 몸뚱이의 뒷받침이 없기 때문이야."(2권 229쪽)
IV. 퀴즈
1.배추어르신은 인생에 있어 세 번의 패배를 했다고 한다. 그 중에 해당되지 않는 것은?
(1권 22쪽)
1) 장충동 독종 2) 고문 기술자 이 근안 3) 기백있던 백 기완 4) 황 석영의 구라
2. 배추어르신이 20세 때 집 판 돈을 한 여인에게 다 갖다 받치고 백기완에게 정말로 사내
대장부같은 일을 했다고 칭찬을 듣는다. 그리고 요새 사람들이 너무 내 가정 내 식구만을
챙기려 든다고 하면서 한탄을 하는데, 이러한 소시민들을 지칭하는 말이 아닌 것은?
(1권 223쪽)
1) 납새 2) 졸망새 3) 짭새
3. 30대 중반 프랑스에서 귀국 후 살롱드방이라는 잘나가는 양장점을 할 때 어른은 약혼을 한
다. 그리고 파혼을 한다. 이유는 농촌공동체를 건설하겠다는 자신의 꿈을 위해 그 녀가 동
의해주지 않을 것이고 한다 해도 고생만 시킬 것 같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랑하기 때문
에 헤어진다'는 그의 사랑학에서 얻은 교훈이 아닌 것은?(1권 229쪽)
1) 사랑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2) 인연이란 오묘한 것이라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3) 사랑은 반응이고 상대방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
4) 바람이 불고 공기가 바뀌어도 사랑은 그 자리에서 피고 진다는 것
4. 백홍렬 풍류학교에 방동규,김태선이 있었다. 그들이 술판이 끝날 때 "자,헤어지는 마당에
한잔 더 막자구!"하면서 마신 건배주를 무엇이라 칭하는가?(1권 273쪽)
1) 그야말로 그냥 건배주 2) 아니지 끝판주
3) 아닐껄? 아쉬워서 아쉬운 주? 4) 모르겠다. 뜽금없는 마상주
5. '노느메기밭'활동은 그의 인생의 최고의 걸작품이다.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이 말은
먹을 것과 수확농산물의 공동분배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2권 95쪽):(가중치 최고의 주관식 문제~! ㅎ)
6. '노느메기밭'시절 긴급조치1,2호 위반혐의로 서대문형무소에 복역하고 있을 때, 망할 자식,
개자식,빌어먹을 자식을 뜻하는 말로 간수등을 지칭하는 은어는?(2권 112쪽)
7. 아버지 배추가 딸들에게 내건 배우자 허락 조건중 아닌 것은?(125쪽)
1) 청첩장 보내지 말 것 2) 자신과의 팔씨름에서 이길 것
3) 부조금 받지 말 것 4) 학벌 안 따질 것
8. 어른에게는 20대 초입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백기완이었다. 중년에 들어서 인생과 사
업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누구인가?(2권 136쪽) 주관식인데 재미없을까 봐 객관식으로
한다. 잘 보셔~들.
1) 선우 휘 2) 선우 양 3)선우 군 4) 선우 옥녀
9. 문단에서 알아 주는 조선의 3대 구라가 아닌 분은?(2권 174쪽)
1) 백 기완 2) 원 진호 3) 방 배추 4) 황 석영
(# 출제자 조언: 틀리면 사랑해 줄꼬야~잉!)
10. 어른의 세 가지 구라가 있다. 이 곳에 속하지 않는 것은?
1) 모파상의 단편 소설 <비계 덩어리> \
2) 고려시대 일연이 쓴 삼구유사에 나오는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야기
3) 고리키의 소설 <어머니> 4) 김추자의 님은 먼 곳에 (2권 203쪽)
(힌트: 영화 <님은 먼 곳에>에서 나는 수애의 그 노래를 지금 듣고 있다~~ 슬프고 사랑스
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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