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광 동시의 세계
- 동시집 『하느님, 참 힘드시겠다』를 중심으로
평범한 이야기를 비범하게 나타내는 능력, 신출귀몰의 재미
남진원
김진광 시인은 내 친구라기보다는 형님뻘에 가까운 사람이다. 학교는 내가 강릉교육대학을 먼저 나왔지만 나보다 나이는 두세 살 많은 분이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김진광 형을 그냥 ‘김진광’이라 칭하기로 한다. 문학 평설에 관한 글이기 때문이다.
김진광이 시집을 냈다. 동시집 『하느님, 참 힘드시겠다』라는 책이다. 내가 이 동시집속의 동시를 읽고 너무 놀랐기 때문에 그 소감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내 곁에 김진광 시인이 있다는 게 존경스럽고 자랑스럽다는 것이다. 동시집의 동시들을 읽고 너무 반갑고 좋아서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김진광이 많은 동시집과 시집, 평론집을 냈지만 이번의 동시집은 단연코 특출하다. 이 동시집으로 그는 40여년의 문단 활동에서 가장 대단하고 큰 결실을 얻은 것이다. 한마디로 부럽다. 나는 글을 씁네 하면서 일찍이 교직도 그만 두었는데 그는 교직에서 고등학교 교장까지 하고 정년퇴직을 하였다. 김진광은 교단에서도 교직자로 성공한 삶이고 문학가로서의 성공도 했다고 보여진다.
언젠가 내가 옥천동 우거에 살 때 김진광이 한 번 찾아들었다. 그때 우연히 그의 사주를 본 적이 있었다. 몇 번 만나기 힘든 좋은 운세를 기지고 있었다. 나는 그가 교직에서 교육장까지는 하고 나올 줄 았았다. 그러나 고등학교 교장까지 했으니 성공한 셈이다. 그리고 문학적으로 보면 문인들과의 교류도 활발하고 문학 작품까지 이렇게 좋은 작품을 쓰니 그저 경탄할 뿐이다.
또 어느 날 그가 월간문학에 ‘엄마의 탑’이라는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 작품이 기가 막히게 잘 쓴 글이어서 늘 이야기하고 다녔는데, 오늘 이 동시집에도 실려있다.
그는 두루 활달한 시풍을 열고 있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좀처럼 성공적으로 형상화하기 힘든 작업인데 아주 거뜬이 그 일을 해냈다. 또한 자연의 사물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깊이 있는 작품으로 완성도를 높였다. 어린이를 소재로 한 동심의 표출 또한 함부로 흉내내지 못할 기량과 에너지를 소유한 시인이 되었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도 한편 부끄럽고 김진광이 부러워죽겠다. 솔직히 삼척의 화전초등학교에서 처음으로 그를 만났을 때엔 시를 쓰는 시인으로의 길을 갈 수 있을까 하는 궁금함이 들었다. 그런데 천천히, 끈질기게 노력하는 그의 열정과 시어에 대한 조합의 치밀함과 주제에 대한 선별 능력이 누구보다도 뛰어났음을 나는 그때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처음 김진광을 만났을 때에는 문학동지로 보다는 든든한 형 같은 믿음을 주는 사람이었다. 첫 발령을 받고 내가 간 화전초등학교는 당시 탄광촌이었다. 술먹고 행패를 부리는 건달들이 자주 학교에 나타나 소란을 떨곤 하였다. 나는 그때마다 겁에 질려 있었는데 그런 나를 안심시킨 사람이 김진광이다. 어느 날 건달이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것을 본 김진광은 현관에 나가 신발끈을 묶고 있었다. 내가 왜 그러냐고 하니까 건달들을 혼내주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니 진짜 사나이 대장부를 만난 느낌이었다. 그런 그가 문학을 한다니, 말이 뙤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김진광은 그야말로 철저히 열심히 함께 문학공부를 하였던 것이다.
어느 날은 내게 서울에 갔다가 전봉건선생을 만났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멀리 현대시학 책에서나 만나던 그 분을 김진광이 당당하게 만났다고 하는 것이다. 삐거덕 거리는 2층 계단에 올라가니 안경을 쓴 노인이 고개를 삐딱하게 하고 자신을 맞이하더라는 이야기이다. 그 후 김진광은 현대시학에 시 추천을 받은 추천 시인 작가가 되었다. 나무 계단을 올라가는 소리가 낡아서 삐걱삐걱 소리가 났다고 하였다. 나는 그 모습을 상상해 보니 참으로 멋진 곳이었구나 하며 나름 즐거운 상상에 빠지기도 하였다. 김진광은 이렇게 사람에 대해 거리낌 없이 만나는 것은 그의 인생에서 큰 장점이 되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이번에 낸 동시집은 내게 공포스러울 정도로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아니, 이렇게 글을 잘 쓰다니….’ 10여년 전에 권영상이 내게 자신의 동시집을 보냈을 때 경악하며 읽었던 그 느낌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감동과 놀라움을 받았던 것이다.
여기에 그의 좋은 시들을 모두 나열하며 설명을 하기엔 지면이 너무 부족하여 두 세 편의 작품 감상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나무의 귀
새들이 나무를 좋아하는 것은
새들의 수다를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는
수많은 나무의 귀가 있기 때문이지
같은 말 하고 또 해도 언제나
숲속 나무는 처음 듣는 것처럼
귀를 팔랑거리며 재미있게 잘 들어주지
어찌 친구인 새들의 말을 모르겠니
가을이면 이야기로 가득 찬 무거운 귀를 내려놓고
봄이 올 때쯤 연둣빛 새 귀를 가지에 매달지
새들이 나무를 좋아하는 것은
파라솔과 나무의자가 놓여있기 때문이지
여기 앉아서 맘껏 이야기해
내 다 들어줄게, 하는 나무의 마음 때문이지
동시 ‘나무의 귀’ 전문이다. 나무와 새의 이야기를 한 편의 재미난 동화처럼 엮어나갔다. 동심과 자연, 그리고 동식물에 대한 본질적인 사랑이 없으면 쓰기 어려운 명작이다.
이번에는 사람에 대한 동시를 보자.
엄마의 탑
탑을
쌓는다
1층탑
2층탑
3층탑
……
머리 위로
높다랗게 올라가는 탑
바쁜 시장 사람들에게
직접 배달하는
따뜻한
밥그릇 탑
우리 삼 남매를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쌓고 내리는 …
고달픈 노동이지만 따뜻한 밥그릇을 시장 사람들에게 배달하는 어머니의 삶이 거기에 있다. 자식을 키우려는 거룩한 뜻이 밥그릇 속에 담겨있다. 우리 모두의 어머니 마음이 담겨있다. 어찌 감동 없이 읽을 수 있겠는가.
시의 소재가 자연의 동식물에서부터 사람들과의 관계로 이어진다.
더 나아가 진정성 있는 동심의 표현에 대한 작품도 한 편 보자. 내용이 순수무구하고 자연스러워 동시속에 홀딱 빠져들게 한다.
별 닦기
하늘의 별들이
예전처럼
반짝이지 않아요
바다에 쓰레기 섬을 만들 듯
지구의 사람들이 별나라까지
올라가 더럽혔나 봐요
누가
별에 닿을 수 있는
긴 막대 유리창 닦기를
하나 만들어주세요
내가 한 번 닦아 볼래요.
동시 ‘별 닦기’는 그 어떤 설명이 필요 없는 동시이다. 읽으면 그냥 마음속에 들어와 안기는 예쁜 동시이다. 또한 지구환경의 중요성을 그려낸 가작(佳作)이다. ‘동심이란 어떤 것일까?’ 하고 늘 나름대로 생각을 해 왔다. 바로 이 작품과 같이 ‘하늘의 별을 긴 막대걸레로 닦고 싶은 마음’이 동심이 아니겠는가.
김진광 동시집 『하느님, 참 힘드시겠다』에 나온 수많은 동시들을 일일이 열거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아니 오히려 잘 된 일일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시 작품을 내가 글로 많이 어지럽혀놓을 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반갑고 놀라운 마음에 김진광의 동시집을 읽고 몇 자 적었다. 후일 시간이 나면 시인과 작품에 대한 본격 연구를 해 볼 작정이다. 김진광의 동시는 원숙한 단계에 들어섰기에 신출귀몰한 재미가 난다. 어찌하면 나도 저렇게 평범한 이야기를 비범하게 드러내 놓을 수 있을까!
아무튼 한국아동문학 문단에 김진광이란 우뚝한 원로 시인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큰 박수를 보내며 깊은 존경을 드리는 바이다.
- 2019년 9월 7일 토요일 방터골에서 적다.
*강원아동문학 카페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