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언제나 내게 많았다.
또한 하느님께로 갈 수 있는 기회도 많았다. 언제나 그둘 사이에서 저울질을 해대다 이번엔 밤기차로까지 떠나야하는 갈급함이 내게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고 오직 이끄심에 겁없이 나선 길이었다.
새벽 7시30분 도착, 그리고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온 그 밤까지 나는 오직 이끄심에 온전히 나를 내어 맡겼다. 함께 하신 분들도 나도 피곤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저마다에게 내려주신 성령의 충만한 사랑에 빠져 얼굴들이 해바라기처럼 활짝 펴졌다.
세나클!
처음에 이 단어를 접했을때 나는 왠지 세련되면서도 단단하고 재빠를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강의 내내 반복되는 세나클세나클 발음 되어지는 소리들은 온통 나를 사로잡았다. 다락방! 이천년전 주님 수난 전 성체성사를 이루신 그 방, 부활하셔 찾아오신 방, 오순절 성령께서 임하신 방. 그 세나클은 여전히 우리를 초대하고 있었다.
하느님의 거처와 나의 거처는 어떠한지 돌아보는 1,2강 강의. 사랑과 자비와 기도의 세나클 강의, 그리고 마지막 6강 7강의 회복과 사도의 세나클.
강의는 마치 한편의 드라마나 파노라마처럼 거침없이 이어졌으며 성령에 의지해 온전히 강의하시는 김태광아우구스티노 신부님의 열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첫강의, 물론 늦게 도착한 내게는 두번째 강의였지만 ' 나의 거처' 강의는 복음말씀이신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통해 이어져갔다. 우리 실존의 나약함을 보게 하고 매일을 일과처럼 목을 빼고 아들을 기다리던 아버지. 그리고 그제서야 아버지와 맞닿은 심장을 통해 실존적 존재의 근원을 깨닫고 통곡하는 작은 아들. 진정한 회개란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며 죄많은 자신을 고백하고 근원의 나를 알게 되는 것이라 느꼈다. 그래서 창세기 3장 9절의 원복음 '너 어디 있느냐' 는 물으심에 대한 묵상이 오랫동안 머리를 맴돌았다.
이어지는 강의들은 오직 성경에 바탕을 둔 깊은 묵상에서 나오지 않고서는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다 생각했다. 성령께서 임하셔 행하지 않고서는 또한 신부님의 절규에 가까운 호소는 강의 내내 쏟아져내리는 눈물에 대해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내 옆자리, 앞자리에서 졸기도 하시고 강의가 어렵다 불만도 나왔지만 강의는 내내 높은 톤의 호소였다.
예제키엘서 36장 25절에서 26절의 말씀
"너희에게 정결한 물을 뿌려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너희의 모든 부정과 모든 우상에게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너희에게 새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영을 넣어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된 마음을 넣어주겠다"
이것이 전체 강의의 가장 큰 말씀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사랑!
체험없이는 누구도 하느님의 사랑을 말할 수 없다 하신다. 그 이유는 우린 모두 원죄에 물들어 하느님이 머물수 없게 되었고 (창세기6장 3절) 안다고 해도 고작 인간의 사랑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사랑을 부어주셔야 그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고통을 통해서야 느낄 수 있으며 우리가 부르짖어야 받을 수 있는 은총이라 설명하셨다. 그러나 희망적인 것은 자비와 사랑의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를 통해 약속하신 것처럼 새영을 우리에게 부어주시고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묵시록의 예언처럼 새땅과 새하늘을 '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완결형 어투인 '보았습니다' 라고 말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신부님은 강의 내내 우리는 모두 이천년전 그 세나클에 모여 성모님과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하셨다. 3년간이나 예수님을 따라 다녔지만, 하물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지만 여전히 나약한 믿음의 토마스나 지금이 주님께서 이스라엘에 다시 나라를 일으키실때 (사도행전 1장6절)냐 묻는 어리석은 제자들은 성모님과 함께 기도했고 성령을 받았으며 그리하여 진정한 사도로 변화했다.
예제키엘서 37장 5절 말씀처럼 우리는 이제 하느님의 숨을 다시 받아 다시 살아날 것이고 에페소서 4장 22절의 말씀처럼 옛인간을 벗어버리고 영과 마음이 새로워져 진리의 의로움과 거룩함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한다 말씀해주셨다.
숨이 막혀왔다. 그 뜨거움에 온전히 거룩한 하느님의 거처가 되게 해달라 기도가 절로 일어났다. 우리가 이제 새영의 은총을 받아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그 크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는것...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 있다...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 (묵시21,1-5)
하느님의 더없는 자비하심과 성령의 충만하심에 찬미와 감사를 올립니다.
첫댓글 아멘
세미나의 열정이 느껴지네요!
정말 감동의 도가니
성령의 도가니였네요
여기 인천에도 6월부터 시작하네요 저도 참석하려고 합니다 기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