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올레-다케오코스(2)
전망대에서 3층 건물이 있는 고개를 넘어 도로를 따라 걷는다.
A코스 합류지점을 지나자 다케오를 상징하는 미후네야마(御船山)의 두 봉우리가 가슴에 안겨온다.
미후네야마 뒤편으로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산줄기들이 첩첩하다.
미후네야마 아래에는 15만평에 달하는 미후네야마 라쿠엔(樂園)이 있다.
1852년 다케오번의 28대 번주인 나베시마 시게요시가 별장을 짓기 위해 3년 동안 조성한 곳으로
15만평 대지에 벚꽃, 철쭉, 등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심어져 있어 봄에는 꽃이 화려하게 피고,
가을이면 단풍이 아름답게 물드는 곳이다.
다시 숲길로 들어서니 하늘을 가린 울창한 숲이 숭엄하다.
아름드리 삼나무들은 하늘높이 솟아 위엄을 과시한다.
숲속에 설치된 작은 나무다리가 친근함을 과시한다.
숲길을 벗어나면 민가나 도로가 나오고, 다시 숲길로 들어서곤 하는 길이 반복된다.
오후 5시가 넘은 시간이라 천진난만한 초등학생들이 하교를 하면서 인사를 한다.
길은 다케오시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작은 언덕들을 넘나들면서 이어진다.
작은 신사를 지나니 시라이와운동공원이 나온다.
시라이와운동공원은 축구장, 야구장 등 여러 운동을 할 수 있는 운동장과 체육시설을 갖추고 있어
주말이며 다케오시민들이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을 바라보며 걷는 느낌이 포근하다.
시라이와운동공원에서 도로를 따라 내려오는데 송곳처럼 솟아있는 미후네야마가 더욱 가까워졌다.
길가의 은행나무 가로수는 어느덧 노랗게 물들어 가을정취를 듬뿍 풍겨준다.
천변길을 따라 걸을 때는 코스모스가 미소를 지어준다.
다케오시 문화회관에 들어서자 넓고 푸른 잔디밭과 잔디밭 뒤로 우뚝 서 있는 미후네야마가 인상적이다.
다케오시 문화회관은 옛 영주의 정원으로 흙담과 문 등 고풍스러운 일본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다케오시 문화회관 잔디밭 가운데로 난 길을 지나 작은 언덕을 넘으니 도로 건너에서 다케오시립도서관이 다가온다.
시립도서관에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하락치 않는다. 시의 재정을 축내는 골칫덩이였던 다케오시립도서관이
변신을 한 것은 다케오시가 츠타야 서점을 만든 마스다 무네아키에게 도서관 경영을 맡기면서부터다.
마스다 무네아키는 도서관 내에 책과 잡지, 문구 등을 판매하는 서점과 스타벅스를 입점시키고,
층고를 높였을 뿐만 아니라 내부에는 채광이 가득 들도록 개방형으로 설계해 실내에 있어도 실외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1층의 책꽂이는 막힌 느낌이 들지 않도록 유선형으로 굽이치게 배치했다.
이런 모습으로 2013년 재개관한 다케오시립도서관은 매년 1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명소가 되었다.
우리는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미후네야마 자락의 다케오신사로 향한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 높다란 축대를 돌아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가니 다케오신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일본에는 수많은 신을 모신 신사가 있지만 다케오신사는 다른 신사에 비하여 규모도 크고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신사 마당 한쪽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염원을 담은 하얀 종이쪽지를 매달아놓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신사를 벗어나 녹나무를 만나러간다. 다케오신사에서 녹나무 방향으로 나오는 문에는 어신목(御神木)이라 쓰여 있다.
3천년 된 녹나무 신목에게 가는 길은 하늘높이 솟은 대나무와 편백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룬다.
곧게 솟은 대나무와 편백나무가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게 해주고,
우리의 발걸음은 무언가 신비한 기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나는 거대한 나무를 보면 높이나 둘레를 가늠해보는 습관이 있는데, 이 나무 앞에서는 높이나 둘레를 헤아려보는 것이 무례할 듯싶다.
3천년이란 세월동안 비바람에 견디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흘러온 역사의 수레바퀴를 지켜보았던 나무 아닌가?
식물과 동물이 나고 죽는 모습을 수없이 봐왔을 이 녹나무는 생로병사를 초탈한 신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가 서기 2017년이니 이 녹나무가 태어난 것은 기원전 1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니
이 나무가 살아온 궤적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
이런 신목 앞에 서 있는 인간의 모습은 드넓은 사막 위의 모래 한 알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나무줄기 가운데는 텅 비어 있으되 가지는 여전히 무성하다. 녹나무 밑둥치의 빈 공간은 이미 사원이나 다름없다.
나무 안에 천신(天神)이 모셔져 있고, 나무 아래에는 천신에게로 올라가는 계단까지 마련돼 있다.
나무에는 새끼를 감아 신목임을 표시하고 있다. 거목을 이룬 녹나무에는 이끼도 끼어 있고,
넝쿨식물도 휘감고 풀도 자라고 있지만, 녹나무는 개의치 않는다.
신목의 숭엄한 기운은 부처상이나 예수상과 같은 경외감을 갖게 한다.
다테오신사 입구로 되돌아 나와 다케오시 문화회관 뒤편에서 다시 숲길로 접어든다.
문화회관 옆 둔덕에 있는 3천년 된 츠카사키 큰 녹나무를 만나기 위해서다.
녹나무 앞에 서자 다시 한 번 입이 쩍 벌어진다. 다케오신사 뒤편 녹나무는 주변에 펜스를 설치해 사람들이
들어갈 수가 없는데, 이곳 녹나무는 거대한 나무줄기를 만지기도 하고 줄기 가운데 비어있는 밑둥치를 들락거릴 수도 있다.
그래서 이곳 녹나무는 숭엄하되 친근하다.
다케오신사 녹나무가 범접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근엄하다면 이곳 녹나무는 기대고 싶고 품에 안기고 싶다.
츠카사키 큰 녹나무는 줄기 가운데 윗부분은 이미 없어져 버리고 양쪽으로 뻗은 가지만이 살아있을 뿐이다.
사진을 찍으려고 녹나무 밑에 다섯 명이 듬성듬성 서도 줄기의 절반도 가리지 못한다.
녹나무는 수천 년을 살아오면서도 억지로 자신을 드러내거나 뽐내지 않는다.
하지만 기껏 100년도 세상을 살지 못하는 인간은 마치 수천 년을 살 것처럼 오만을 부린다.
득도한 녹나무는 오만한 인간까지도 말없이 품어준다.
두 녹나무를 만나고 나오는데, 법당에서 부처님을 참배하고 나오는 것 같다. 다시 시내 골목길을 지나 다케오시청 앞까지 걷는다.
종착점인 다케오온천 로몬(樓門)까지는 2km 남짓 남았는데, 해질 시간이 가까워 오늘 걷기는 여기에서 마치기로 한다.
내일 일정을 위해 사세보까지 열차를 타고 이동을 해야 하기도 하고.
다케오온천역으로 향하면서도 다케오온천가와 사쿠라야마공원, 다케오온천 로몬을 들리지 못해 못내 아쉽다.
다케오온천은 1300년 전 험한 돌산기슭에서 뿜어져 나온 이후로 지금까지도 무색·투명하고 부드러운 촉감을 가진 온천수를 쏟아낸다.
온천을 감싸고 있는 사쿠라야마공원은 봄에는 벚꽃,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답다.
공원 곳곳에서는 88기의 지장보살상이 흐뭇한 미소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다케오온천 로몬은 일본은행 등을 설계한 일본 건축가 타츠노 킨고씨가 1915년에 완성한 다케오시의 심볼 같은 건축물이다.
다케오온천역에서 열차를 타고 사세보로 향하는데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도시 다케오가
가장 일본다운 모습으로 배웅을 한다.
다케오온천에서 하루를 묵지 못한 아쉬움과 함께 다케오시의 정경이 서서히 멀어져간다.
(2017. 10. 5)
*여행쪽지
-규슈올레 다케오코스는 사가현 다케오시내와 주변을 따라 걸으며 일본의 전통과 산속의 고요한 소도시 정취를 맛볼 수 있는 길이다.
-코스 : 다케오온천역→키묘지절→이케노우치호수→다케오시문화회관→다케오신사 녹나무→다케오시청 앞→다케오온천 관광안애소→다케오온천 로몬까지 A코스 기준 14.5km 거리에 5시간 정도 걸린다. B코스는 13km 거리에 4시간 30분 소요.
-난이도 : 보통
-교통 : 후쿠오카공항과 후쿠오카 하카타역에서 출발하는 JR전철을 이용하여 다케오온천역에서 내리면 된다. 후쿠오카공항에서 1시간 20분, 하카타역에서 1시간 10분 소요.
-숙소 : 다케오시에는 호텔과 료칸이 많다.
첫댓글 와운선생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즐겁게 봅니다.
나이 들어가면 함께 여행하고, 함께 생각을 나누는 삶이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