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정봉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200여 개 계단 오르면 펼쳐지는 한강 풍경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은 한강을 바라보는 관악산 자락에 자리 잡은 명당이다. 공작이 아름다운 날개를 쭉 펴고 있는 모습이자 장군이 군사를 거느리고 있는 형세라 한다. 관악산 줄기에서 한강 쪽으로 은근히 뻗어오다 볼록 솟은 공작봉에 현충원이 터를 펼쳤다. 공작봉은 서달산 혹은 달마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언덕 정도 높이지만 산은 산이고, 봉우리는 봉우리다. 그래서 코스 초반 오르막은 조금 가파른 편이다. 쉬엄쉬엄 걷는 게 좋다. 걷기가 익숙지 않다면 약간 숨이 찰 수도 있으나 등산보다는 걷기 가벼운 편. 그래도 힘이 남는 초반에 조금 고생해두면 중반 이후는 내리막이니 발걸음이 가볍다.
지하철 4·9호선 동작역 3번 출구에서 시작한다. 역사를 나와 육교에 올라 반대편으로 건너면 왼쪽 계단이 3번 출구, 오른쪽 계단이 4번 출구다. 육교를 다 내려와 길을 따라 30m만 가면 오른쪽 편에 나무계단이 나온다. 자, 이제 오르막 시작이다.
계단이 꽤 많다. 200개는 될 성싶다. 하지만 중간중간 쉬어갈 수 있는 벤치가 있다. 힘에 부치면 잠시 앉아 기력을 회복하면서 올라가면 된다. 오를수록 한강변이 내려다보이고, 반포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르는 데 들이는 힘과 펼쳐지는 경치의 수준은 비례하기 마련이다.
계단을 다 오르면 흙길이 시작된다. 현충원 담벼락을 따라 걷는 언덕배기 오솔길이다. 오르막, 내리막이 이어지고 종종 벤치, 체력단련기구 등이 등장한다. 걷다 보면 아랫마을로 내려가는 샛길도 꽤 자주 보인다. 샛길은 이수교차로, 사당동, 흑석동으로 이어진다. 이 길은 인근 동네 주민들에게는 예전부터 잘 알려진 산책로다.
현충원 둘레길은 전형적인 숲길이었지만 태풍 곤파스 때문에 나무가 쓰러져 그늘이 사라졌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경관이 트였다. 여름에 걷기 좋았던 이 길은 올해만큼은 겨울철 따뜻한 햇볕을 받고 동네 풍경을 보며 걷기 좋게 바뀌었다. 하지만 현충원 담장에 걸쳐진 나무들이 그대로 방치돼 있는 점은 걸린다.
걷다 보면 현충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출입문이 3개 나온다. 2005~2006년에 시민들이 드나들기 쉽도록 뒤쪽 담장을 텄다. 걷는 방향에 따라 사당동, 상도동, 흑석동 방면 출입문과 순서대로 마주친다. 첫 번째 사당동 방면 문을 지나친 뒤 두 번째 상도동 방면 출입문으로 들어간다. 나무 울타리로 된 길을 지나면 은색 철문이 나온다.
이 문으로 들어가 현충원 안쪽을 걷는다. ‘성역의 분위기를 저해하는 복장을 삼가 달라’는 표지판이 있다. 선글라스나 슬리퍼 차림으로 걷는 건 곤란하다는 말이다. 이제부터 길 자체는 편안하다. 오르락내리락하던 숲길이 아니라 느긋하게 걸을 수 있다.
왼쪽으로 난 길을 천천히 내려가다 보면 염불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현충원 안에 있는 절인 호국지장사다. 산에 있어 호젓한 느낌을 자아내는 자그마한 사찰이다. 670년 창건했다. 당시 이름은 화장사(華藏寺)였다고 한다. 1984년 국립묘지에 안장된 호국영령의 안위를 기원한다는 의미에서 호국지장사로 개칭했다. 이곳에서는 신라 말 고려 초 양식으로 지은 서울 유형문화재인 ‘약사불 철상’이 있다. 돌계단 아래 315년 묵은 느티나무도 볼거리다. 절 입구 오른쪽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현충원 안쪽 도로는 대개 아스팔트이고, 차가 다니는 길이지만 차량통행이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