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이집트 답사여행 일정 (9일)
첫날은 카이로에서 아스완까지 이집트 국내 항공으로 날아간 후 아스완에서 아부심벨까지 편도 3시간 거리를 버스로 달려가서 아부심벨 신전의 대신전과 소신전을 답사하고 다시 3시간을 달려 아스완에 되돌아와 크루즈에 승선하였다. (카이로에서 아부심벨까지 직접 가는 항공편도 있지만 중간에 있는 아스완 댐이나 필레 신전등을 돌아보기 위해 불편하지만 차량으로 이동하였다.)

다음날은 나일 크르주를 타고 3일에 걸쳐 아스완에서 콤옴보, 에드푸를 지나 룩소르까지 거대 신전들과 왕가의 계곡,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제전 등을 돌아본 후 크루주에서 내려 이집트 휴양도시 후루가다의 홍해 해변에서 하루 쉬었다.
마지막 일정은 버스를 타고 카이로 교외의 통일 이집트 첫 수도 멤피스와 피라미드가 시작된 사카라를 답사후 카이로에서 1박 하고 다음 날은 카이로 시내의 기자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카이로 박물관 등을 둘러본 후 항공편으로 터키의 이스탄불로 이동하여 비행기를 환승, 밤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까지 날아오는 참으로 숨 가쁘게 바쁘고 벅찬 9일 일정이었다.

<아부심벨 신전. 왼쪽이 람세스 2세와 신왕국 3신을 모신 대신전, 오른쪽이 부인 네페르타리와 미(美)의 여신 하토르를 모신 소신전이다.>
ㅇ 아부심벨(Abu Simbel) 신전
아부심벨 신전은 나일강 상류의 암벽을 깎아 람세스 2세가 세운 신전이다. 평지에 짓던 기존 신전들과 달리 암벽을 깎는 공법이 특징이며 왕과 왕비를 위한 대신전과 소신전 2개가 있다.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다가 1813년 스위스 탐험가 부르크하르트(Burckhardt)가 발견하였으며, 1817년 이탈리아 고고학자 벨조니(Belzoni)가 처음으로 내부에 들어가는 데 성공하였다.

<람세스 2세 석상. 높이 2.7m의 상반신만 남아있다. 1816년 이탈리아 벨조니가 룩소르의 람세스 2세 장제전 라메세움에서 옮겼다고 전해지며 오른쪽 흉부에 뚫린 둥근 구멍은 1799년 이집트를 침략한 나폴레옹 군대가 가져가려했던 흔적이라고 한다. 사진 출처 : 런던 대영박물관(britishmuseum) 홈페이지>
람세스 2세(Ramses II)
람세스 2세(Ramses II, 재위 BC1279~BC1212)는 신왕국 시대의 19왕조 3대 파라오(답사기 1편 이집트 역사 참조)인데 25세에 즉위한 그는 67년을 통치하며 90세를 넘겨 살았는데 이집트 왕국에서 2번째 오래 살았다고하니 더 오래 산 파라오도 있는 듯 하다.
이집트 역사상 첫 외국인 왕조를 세운 힉소스인들 점령기간인 제2중간기를 정리하고 시작된 18왕조부터 19~20왕조의 500년을 신왕국시대(BC1570~BC1070)라고 부르는데 이집트 왕국의 최대 전성기를 이룬 시대이다. 18왕조의 마지막 통치자 호렘헤브는 28년을 집권하였으나 후사가 없어 자신의 동료이자 휘하 장수인 람세스 1세에게 왕위를 물려주니 19왕조의 시작이다.
람세스 1세가 2년 집권 후 아들 세티 1세가 즉위하였으며 세티의 아들이 람세스 2세이다. 람세스 2세는 형이 있었지만 일찍 죽은 관계로 왕위 계승자가 되어 10살 때부터 아버지 세티 1세를 따라 정복전쟁 등에 참가하였으며 제왕 교육을 착실하게 받았다고 한다. 람세스는 히타이트족 정벌 전쟁(카데시 전투)의 승리를 비롯하여 여러 개의 대형 신전을 건축하고 국가번영을 이룬 행정가로 백성들로부터 좋은 평판과 함께 후손들에게 왕의 전형으로 추앙받아 이집트 학자들은 그를 대왕(大王)으로 호칭한다고 한다.
람세스 2세는 왕자 시절에 아버지 세티 1세가 정해준 네페르타리와 혼인하였으며, 아부심벨의 소신전이 그녀를 위한 신전이다. 람세스 2세는 왕자 시절에 두 번째 부인 이스트노프레트를 맞아 후계자가 되는 메르넵타를 낳게 되는데 람세스 2세 재위 24년에 네페르타리가 죽고 나서 이스트노프레트가 왕비가 되었으나 그녀도 얼마 뒤 죽게 된다.
이후 람세스 2세는 정복전쟁을 벌이다가 휴전을 맺은 히타이족의 공주를 아내로 데려오기도 하였으며 자신의 여동생과 딸들을 아내로 맞는 근친혼을 갖게 되는데 그의 공식적인 왕비는 네페르타리, 이스트노프렌트, (이스트노프렌트의 딸) 빈트 아나트, (네페르타리의 딸) 메리타멘을 비롯 딸과 여동생, 히타이족 공주 2명 등 여덟 명이다.
이집트 붐을 일으킨 크리스티앙 자크의 장편소설 '람세스'(전 5권)는 람세스 2세의 일대기를 쓴 작품이며, 영화 '미이라'는 이미 1932년에 만들어진 영화를 리메이크하거나 시리즈로 하여 대박을 친 영화들로 이집트 파라오 이야기로부터 만들어진 소설과 영화의 대표적인 것들이다.
대신전(Great Temple)
이집트 파라오들의 치세는 재위 기간 중 세운 신전의 숫자로 가늠하기도 하는데 람세스 2세는 67년이라는 긴 세월을 즉위하면서 여러 신전을 세웠는데 특히 룩소르(테베)의 카르나크 아몬 신전과 룩소르 신전, 그리고 아부심벨을 세웠다. 카르나크 신전이나 룩소르 신전은 선대 파라오의 위업을 계승하여 추가로 건축하였지만 아부심벨은 자신과 왕비를 위해 만든 신전이며 특히 대신전은 신왕국이 섬기는 3신(神) 라-호라크티, 프타, 아몬-라와 자신을 위해 세웠다.


<대신전 전경. 정면은 높이 32m, 밑변 38m의 사다리꼴이며 입구 좌우로 2개씩, 높이 22m의 람세스 좌상 4개를 세웠다. 일설에는 왼쪽부터 20대, 30대, 40대, 50대의 람세스 모습이라고도 하는데 2번째 석상의 머리와 상체가 부서져 내린 그대로 발아래 뒹굴고 있다.>
절벽을 움푹 깎아 낸 자리에 거대한 석상을 앉혔는데 람세스 2세 석상의 다리 아래 사이에는 아내, 어머니, 딸들로 짐작되는 여성들을 작은 크기로 새겼다. 가운데는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이며 입구 윗쪽에는 네모진 홈을 파서 태양신 라를 새겼으며 사다리꼴 위에는 태양신을 예배하는 22마리 원숭이 무리를 새겼는데 전체적으로 동향(東向)인지라 나일강 너머로 해가 뜨면 원숭이 조각부터 빛을 받기 시작하여 석상과 태양신 조각을 비춘 후에 입구 안쪽으로 빛이 들어간다고 한다.
특히 1년에 2번, 2월 21일(람세스 2세 생일?)과 10월 21일(람세스 2세 즉위일?)에는 60m 안쪽 성소 내부까지 햇빛이 들어오게끔 설계, 시공되었다고 하니 당시의 뛰어난 천문, 기하학, 건축기술에 감탄할 뿐이다. 심지어 아부심벨 사원이 아스완 하이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빠지게 되자 범세계적인 지원을 받아 65m 높이, 200m 뒤로 물리고 높여서 이전시켰는데 현대식 과학으로 정밀 계산하여 옮겼지만 햇빛 들어오는 날자가 2월 22일과 10월 22일로 하루씩 늦춰지고 말았다니 놀랄 일이다.

<대신전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4개의 석상 가운데로 회랑처럼 좌우 벽면이 절개되어있는데 절개면 위쪽에는 나일강의 신 하피(Hapi)가 상, 하이집트를 상징하는 식물 로터스(연꽃)와 파피루스를 하나로 매듭 묶는 이집트 통일 상징 장면(사진 1, 2)을, 아래쪽에는 람세스 2세가 외국 원정에서 승리하여 포로들을 잡아서 줄로 묶어서 끌고 오는 모습(사진 3, 4)을 새겼다.>

<입구에서 들여다본 모습. 가장 큰 공간인 주실(主室)에 8개의 석상 기둥이 서 있고 천장에는 날개를 활짝 편 새 그림이 가득하며, 그 안쪽으로 또 다른 공간 2개를 지나 가장 안쪽에 네 번째 방 성소(聖所)가 있다. 내부 벽면 대부분은 람세스 2세를 그린 벽화가 가득하다.>

<조각기둥 실(Pillared Hall)이라고 부르는 주실(主室) 내부. 오시리스 모습을 한 람세스 2세 석상이 양쪽으로 4개씩 8개 기둥에 새겨져 있으며 천장 그림은 진리와 정의 여신, 태양신 레의 딸 마아트(Maat)가 날개를 펼친 모습인데 죽은 사람의 심장 무게를 저울에 다는 중요한 신으로 알려져 있다.>


<신전 내부의 벽면에는 람세스 2세가 카데시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는 모습과 호루스 등 신들에게 축복을 받는 모습 등 람세스 2세의 치세에 관한 벽화로 가득하다.>


<주실의 오른쪽에 있는 별도의 벽화 방 2개는 모두 벽화 그림으로 채웠는바 람세스 2세의 일대기에 관한 스토리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4개의 공간 외에 대각선으로 날개 모양의 공간이 있는데 그곳도 벽화가 가득하다.>

<주실을 지나면 크고 작은 2개의 벽화실이 연결되며 그 안에 마지막 공간인 성소(聖所)가 있다.>

<성소(聖所)에는 4개의 신상이 앉아있는데 왼쪽부터 프타, 아몬-라, 람세스 2세, 라-호라티크이다. 신왕국이 섬기는 3신(神)과 함께 한 람세스 자신도 신의 반열에 올라간 것이다. 놀라운 것은 1년에 2번 이곳까지 빛이 들어오더라도 왼쪽의 죽음의 신 프타는 비켜나 어둠 속에 머물게 지었다고 한다.>
소신전(Small Temple)
대신전의 왼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소신전이 있다. 대신전과 같은 방식으로 절벽을 파내 6개의 홈을 만들었는데 그 속에 10m의 석상 6개를 세웠으니 왼쪽부터 람세스 2세, 네페르타리, 람세스 2세 2개, 네페르타리 2개 순서이며 소신전의 전면 높이는 12m, 직사각형의 가로는 26m로 대신전보다는 작은 규모이다.

<소신전 전경. 6개의 인물상은 람세스 2세와 부인 네페르타리이다. 역시 발밑에는 자식들을 새겼으며, 람세스 2세는 상이집트를 상징하는 길쭉한 왕관 헤제트(Hedjet)를 썼고, 네페르타리는 하토르의 태양 원반 모습 관을 썼다. 신전 석상에 여자를 새긴 것은 처음이라고 하는데 사랑하는 부인과 미(美)의 여신을 동일시한 듯하다.>


<소신전은 대신전에 비하여는 단순한 구조인데 깊이는 20m쯤으로 6개의 조각상 중앙의 입구를 들어서면 대신전의 주실(主室)보다는 약간 작아 보이는 공간에 6개의 기둥이 있고, 기둥마다 미(美)의 여신 하토르 얼굴 조각을 붙였다. 얼굴 아래로는 아기들 딸랑이처럼 손잡이로 보이는 조각까지 함께 새겨 눈길을 끈다.>


<주실 안쪽으로 다시 작은 방 하나를 지나면 마지막에 역시 성소(聖所)가 있는데 이곳에는 소(牛) 형상의 하토르 여신상이 있었다고 한다.>



<소신전 내부 벽면에도 대신전처럼 파라오나 여왕이 공물을 바치고 축복을 받는 등 신을 섬기는 모습이나 다양한 벽화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네페르타리 왕비와 하토르 여신의 그림이 많아 보였는데 그림 하나하나를 해석하지 못해 아쉬웠다.>
ㅇ 아부심벨 신전을 옮기다.
지금의 아부심벨 신전은 원래 위치에서 뒤로 200m, 높이 65m를 옮겨서 다시 지은 것이다. 즉, 1960년대에 신전 하류에 아스완 하이댐을 건설함에 따라 수위가 60m 이상 높아지면서 아부심벨 신전등 많은 문화유산들이 물에 잠기게 되었는데 이집트는 옮길 기술도, 의지도, 자금도 없었다고 하며 미국을 비롯한 세계가 나서서 국제모금을 하고 각국의 기술자들이 모여 암벽으로 된 아부심벨 신전을 평균 20톤 크기로 조각내어 자르고 옮겨서 인공 절벽을 만들어 거듭난 것이다.
그때의 아부심벨 신전 구하기(?)가 계기가 되어 유엔 산하 UNESCO에서는 인류 전체를 위하여 보존해야 할 문화재들을 등록하고 보호, 관리하기 시작하니 바로 세계유산 등재가 그것이다. 1972년에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 협약이 출범하였으며 우리나라는 1988년에 가입하여 2019년 말 현재 모두 14개의 세계유산을 등재하였다.

<아부심벨 사원 이전공사 모습과 개요. 자료출처 : 내 나라 문화유산 답사회>
[계속]
내 나라 문화유산 답사회 : https://band.us/@4560dap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