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11일~ 12일, 장성 편백림(축령산) 및 강천산(왕자봉)
‘게으른 산행’의 여러분들을 따라 전라도의 큰 숲과 산을 다녀왔다. 이틀간 날씨는 너무 좋았다. 이미 절정은 지났지만, 점점이 남아있는 단풍들이 화려했다. 남부지방이라 그런지 아직도 잎들이 많이 남아 있어 숲이 풍성해 보였다.
처음 들른 편백림으로 유명한 장성의 숲은 임종국이란 분이 1956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했단다. 당장 먹고 입을 것도 부족했던 그 시절, 어찌 길게 앞을 내다보고 숲을 가꿀 생각을 했는지, 남들을 앞선 깨달음에 저절로 존경심이 우러난다. 숲 속에 난 길을 따라 걸으면서 자연을 음미하고 심신을 다스릴 수 있는 공간이었다. 우리 일행은 대화도 나누고 선배들에게 길섶의 풀이며 나무들에 대해 묻고 배웠다. 잎도 많이 떨어지고 또 시들어 식별과 동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이 또한 색다른 배움의 기회였다.
준비해 온 점심을 먹은 후 예정에 없던 등산이 시작되어 축령산에 올랐다. 입구에 정상까지 600미터라는 표지판이 있었는데, 넘어지면 코도 아니고 무릎에 닿을 거리라는 박선배님의 말에 속아 (거의) 모두 정상에 도전하게 되었다. 당연히 비탈도 있어 힘든 곳도 있었지만 정상에 서니 호남의 산줄기들이 눈 아래에 힘차게 뻗어 있었다. 마침 내려오는 길에 있어 편백림이 있어 의자에 누워 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쳐다보면서 지친 다리며 허리를 쉴 수 있었다.
이렇게 오늘 오가면서 본 나무들은 참빗살나무, 감태나무, 개서어나무, 광나무, 꾸지뽕나무, 노린재나무, 예덕나무, 사방오리 등으로서, 서울 주변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특히 관목인 줄 알았던 참빗살나무, 노린재나무의 큰 나무들을 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저녁은 이영숙 회장님을 비롯한 집행부의 노력으로 금시초문의 꿩고기 샤브샤브를 먹게 되었는데 색다른 별미에 모두 만족해 했다.
첫날 잘 회문산 자연휴양림에 도착해서는 다정큼 나무 모임 시작 10주년을 기념하는 조촐한 자리가 마련되어 그간 고생하신 분들에 대한 간단한 사은품 전달이 있었고, 그밖에 참가한 사람들은 날지니 보냉병을 받는 행운을 누렸다. 이후 김규석 고문님이 희사하신 발렌타인 17년산, 서성규 선생님의 가양주 그 밖의 음료를 박선배님의 사철가 창, 김국회 선생님의 이 좋은 날 노래를 곁들여 음미하면서 모두 게산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였다.
둘째 날에는 금성(金城)을 거쳐 강천산을 올랐다. 맑은 가을 날 점점이 박힌 붉은 단풍나무, 가을이 익어가는 산을 배경으로 굽이굽이 이어진 성벽은 그 자체로 한장의 그림이었다. 이곳을 배경으로 동학군들이 전투를 벌였다고 하나 절박했을 그날의 정황을 상상하기 쉽지 않다. 내색을 못했지만 본인은 실은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느꼈다. 대학에 재직 중 여기에서 벌어진 동학군과 관군의 전투에 대해 수없이 말을 했었지만 여기에 온 것이 정년하고서도 한참 후인 오늘이라니! 풍경이 아름다운만큼 자신에 대한 질책이 아프게 느껴졌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다 지나 간 일! 평탄한 길을 한참 더 걸어 담양호가 저 아래 보이는 북문에 이르러 선생님들이 싸주신 고구마, 계란, 남겨두었던 떡, 귤 하나로 점심을 해결했다.
왕자봉에 이르는 길은 대부분 흙길에다 경사도 급하지 않아 정말 좋았다. 코로나 등으로 뒤숭숭한 세상 시끄러운 서울을 떠나 밝은 햇살 아래 낙엽 덮인 길을 정말 걸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왕자봉에 올라서는 눈앞에 펼쳐진 경치를 즐기면서 사진도 많이 찍었다. 그러나 행운은 여기까지! 왕자봉 바로 밑에서부터 급경사 돌 너덜길이 시작된다. 엄청 가파른 데다 언제 끝이 날지 모르게 길게 길게 이어진다. 한 두 연로하신 여선생님들이 고전하셨지만, 한발 한발 내려놓다 보면 결국 다 내려오게 되더라는 이영숙 회장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면서 조심조심 내려와 드디어 무사히 평탄할 길에 내려서게 되었다. 개천을 따라 강천사 앞을 지나는 길은 이미 지친 다리에는 길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장어구이를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힘든 걸 참고 걸었다.
오늘은 어제만큼 많은 나무들을 보지는 못했지만 선생님들의 지도로 까마귀밥나무, 백화등, 아직도 파란 잎이 달려 있는 감태나무, 까맣고 뾰죽한 쇠물푸레나무의 겨울눈을 관찰할 수 있었다.
게산에서 받아주신 덕분에 여러분들을 만나고 또 가르침을 받으니 그저 행복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이번에는 10주년이라고 여러분들이 찬조를 해 주셔서 호화판이었다. 다시 한번 그간 힘써주신 여러분들과, 김규석·한기전 선생님, 산행을 책임지신 이동국 선생님, 이영숙 회장님과 최우영·채미애 총무님, 그리고 많은 가르침을 베푸신 백종만·서성규 선생님, 그리고 사형(師兄) 김국회 선생님께 다사 한번 감사를 드린다.
첫댓글 그 날의 기분이 생생하게 살아 납니다
다시 그 길을 걷고 식사하는 기분이 듭니다
멋진 글 감사합니다
1박 2일의 여정을 그대로 떠오르게 합니다. 선생님이 함께 하시어 더욱 즐겁고 기쁜 산행이었습니다.
짓궂은 농담에도 항상 소탈하고 맑게 웃어 넘겨주시어, 점점 좀 도가 지나쳐가지 않은지, 내심 반성하고 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1박2일의 게으른산행을 역사와 일정 그리고 관찰 식물까지 맛깔나게 써 주셔서
벌써 추억이 되어버린 그날 들이 눈에 선하게 떠오릅니다
감사합니다
변변치 않은 글을 과찬해주시니 고맙습니다! 풀이며 나무 배우는 것도 보람이지만 오가면서 선생님들과 나누는 대화며 농담, 웃음이 더 재미있습니다. 배선생님도 하시는 말씀이겠지만 괘념치 마옵소서!!!
여정이 생생하게 되살아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권선생님
글을 읽으며 내려가는 동안 다시 산행을 하는듯한 느낌을 받으며
추억의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감사합니다.
사정상 뜻깊은 자리에 함께 할 수 없었지만,
편안하고 노련함이 묻어난 산행기를 읽으니
숲동네에 잘 안착하신 것 같습니다.^*^
계속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