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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진전 뒤편에 꼭꼭 숨어있는 전각이 있습니다. 한 칸짜리 앙증맞은 산신각입니다. 한 사람 들어가기도 옹색할 만큼 조그마하지만 행여 산신이 드나들다 비라도 맞을까 싶었는지 응진전 추녀에 잇댄 복도각도 갖춰져 있습니다. 뒤쪽 ‘山王之位’라 새겨진 산신비도 볼만합니다.
원통전은 선암사 경내에서 가장 개성적인 丁자형 건물입니다. 내부에도 불단이 설치된 중앙 세 면에 벽을 두르고 문을 달아 마치 집 속에 또 하나의 집을 지어놓은 것 같습니다.
숙종 때 호암대사가 중창불사를 위해 장군봉 배바위에서 기도하였으나 효험이 없자 바위 밑으로 투신하였습니다. 이때 코끼리를 탄 여인이 하늘에서 내려와 보자기로 호암대사를 받아 배바위에 다시 올려놓고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 여인이 관세음보살인 것을 뒤늦게 깨달은 호암대사는 친견한 보살의 모습대로 불상을 조성하여 丁자각 형태의 원통전을 짓고 봉안하였다고 합니다.
한편 후사가 없던 정조는 이곳 원통전에서 백일기도를 하여 순조를 얻었습니다. 순조는 즉위 후 보답으로 ‘큰 복의 밭’이라는 의미의 대복전(大福田) 현판을 써주었습니다. 지금도 원통전 안에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선암사에서 독특하게 눈길을 끄는 곳이 뒷간입니다. 오래된 표기법으로 쓴 ‘뒤ᄭᅡᆫ’이란 현판이 애교스럽습니다. 丁자형으로 지어진 건물 안쪽에 앉아 용변을 보면 살창 너머 숲속 경관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살창은 환기구 역할도 합니다. 용변을 보고 승선교쯤 내려와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그 깊이와 크기가 대단한 선암사 뒷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절집 화장실입니다.
선암사를 빠져나와 금전산(金錢山) 기슭에 자리한 금둔사로 향했습니다. 납월매(臘月梅)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납월매는 납월 즉 음력 섣달에 피는 매화라는 뜻입니다. 부처님이 깨달은 섣달 팔일부터 피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일찍 피는 매화입니다. 태고종 종정 지허스님이 1980년대 초 인근 낙안면에서 고사 직전의 매화나무 씨앗을 가져다 심은 홍매입니다.
금둔사 경내에는 보물 제 945호 삼층석탑과 보물 제 946호 석조불비상이 있습니다.
석탑은 이중기단에 3층의 탑신을 올렸습니다. 아래 기단에는 우주와 탱주를, 위층 기단에는 팔부중상을 도드라지게 새겼습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개의 돌로 되어 있습니다. 1층 몸돌의 앞뒷면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비를, 양 옆면에는 특이하게도 불비상을 향하여 다과를 올리는 공양상이 있습니다. 지붕돌 층급받침은 5단씩이고 낙수면은 완만하게 경사지다가 네 귀퉁이에서 힘차게 치켜 올라갔습니다. 9세기경 통일신라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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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모양의 보개와 대좌를 갖춘 석조불비상(石造佛碑非像)은 직사각형의 평평한 돌 한쪽 면에 불상을 조각하여 마치 거대한 비석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민머리 정수리에는 육계가 솟아있고 얼굴은 원만한 형태입니다. 신체는 우아하게 굴곡이 있어 부피감이 느껴지며 단아해 보입니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에는 평행의 옷주름이 형식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가슴 위로 올려진 양 손은 엄지와 검지의 끝을 맞대어 설법하는 모양입니다.
보개는 탑의 지붕돌과 비슷하고 대좌에는 앙련과 복련이 새겨져 있습니다. 9세기 작품으로 봅니다.
해가 뉘엿거립니다. 일상으로 되돌아갈 시간입니다. 하루종일 꽃멀미 나도록 보고 또 본 매화건만 돌아서려니 아쉽습니다. 다시 또 오리라 기약없는 다짐을 하고 김용택 시인의 시 한구절로 서운한 마음 달래봅니다.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 김용택
매화꽃 꽃 이파리들이
하얀 눈송이처럼 푸른 강물에 날리는
섬진강을 보셨는지요
푸른 강물 하얀 모래밭
날선 푸른 댓잎이 사운대는
섬진강가에 서럽게 서 보셨는지요
해 저문 섬진강가에 서서
지는 꽃 피는 꽃을 다 보셨는지요
산에 피어 산이 환하고
강물에 져서 강물이 서러운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사랑도 그렇게 와서
그렇게 지는지
출렁이는 섬진강가에 서서 당신도
매화꽃 꽃잎처럼 물 깊이
울어는 보았는지요
푸른 댓잎에 베인
당신의 사랑을 가져가는
흐르는 섬진강 물에
서럽게 울어는 보았는지요
자료 출처 : 답사여행의 길잡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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