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라이프 인문학독서클럽, 두 번째 시간
김훈 장편소설 『하얼빈』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에서 31세의 조선 청년 안중근이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키고 총리만 네 번 역임한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했다. 김훈의 소설 <하얼빈>은 이 사건의 과정을 따라가면서, 민족 영웅이 아닌 평범한 청년 안중근이 인간적 고뇌와 갈등을 겪으며 자신의 운명에 맞서나가는 과정을 간결하고도 단단한 문체로 그려냈다.
소설의 전반부는 황해도 신천에서 출발해 하얼빈에 이르러 이토를 살해하는(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의 행로와, 시모노세키를 출발해 하얼빈에 도착하는 이토의 행로를 교직한다. 그리고 안중근이 재판을 받고 사형당하는 과정을 그린 후반부로 이어진다.
세 자녀의 아버지이자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안중근은 동학농민혁명 이후 시시각각으로 조선인들을 조여오는 일본 제국의 압제에 부딪히면서 고뇌에 빠진다. 자신이 일본에 맞선다면 가족의 안위를 보장받기 힘들고, 무엇보다 사람을 죽이는 일은 큰 죄악이라는 천주교의 가르침을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안중근은 을사보호조약으로 일본의 침탈이 국권을 뒤흔드는 상황에 이르자 항일무장투쟁에 나서게 되고, 이토 히로부미의 하얼빈 방문 소식을 전해 듣고 그를 암살함으로써 조선을 탈취하려는 그의 힘과 죄악을 제거하려 한다.
암살 이후 세계 각국의 이목이 집중되자 일본은 안중근의 정치적 동기를 무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드러내 보이고 문명한 절차에 따라 사형을 집행한다는 방침을 세운다. 그러나 안중근은 이토가 조선의 인민을 파리 죽이듯이 죽인 자이므로 영웅이 아닌 범죄자이며, 조선과 동양의 모든 나라가 독립하는 ‘동양평화’를 이루기 위해 이토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동양평화는 이토 역시 주장하는 것이었으나, 이토의 동양평화는 제국주의 일본의 지배를 통해 이루어져야 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안중근은 자신이 살인을 금하는 천주교 교리를 어겼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신앙에는 국경이 없다고 신부님은 말했지만 사람의 땅 위에는 국경이 있다"고 말하며 자신의 암살을 변호했다. 재판정에서도 "그대가 믿는 천주교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큰 죄악이다”라고 재판장이 지적하자" 남의 나라를 탈취하고 사람을 죽이는 일은 큰 죄악이다. 나는 그 죄악을 제거했다”고 자신의 입장을 강변했다.
불과 30대 초반의 나이에, 그것도 한 집안의 가장이자 독실한 종교인이었던 안중근 의사가 어떻게 제국주의 일본의 명망 있는 정치가를 암살할 수 있었을까? <하얼빈>은 그 해답을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담담하면서도 심도 있게 보여주고 있다.
/ 박동봉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