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잘 정리하는 것으로 하고....일단 잊어버리기 전애 대충 써 본다
지준경님의 사회로 시작. 약력 소개.
프로필 사진보다 후덕해진 그러나 칼날 같은 지적인 눈빛이 엿보이는 작가님 등장
충청도의 유머가 좋다는 작가. 충청도인의 그러한 자세와 태도를 본받고 싶다고 함
보령의 이문구작가를 롤모델로 했다 함. 사람을 그렇게 입체적으로 아름답게 묘사하는 작가가 없었다고 함
(이문구작가도 지역에서 레드컴플렉스로 온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면에서 정지아작가와 비슷하다는 생각)
초년시절 누구나 그렇듯이 내가 사는 동네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읽을거리가 없어서 새농민을 읽었고, 정치에 관심이 많은 오빠들이 들여논 신동아와 그 밑에 숨겨진 선데이서울을 읽었다.(새농민, 선데이서울은 나도 봤다.ㅎㅎ)
초등4년에 아버지가 빠르티잔임을 알았다. 반공글짓기 대회에 항상 입상을 했던 나. 감당 못하는 고통을 느꼈다.(김시습이 떠올랐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살고 싶었다. 어른들이 공부 잘 하는 나를 보고 눈이 촉촉해 지면서 '너 공부 잘한다메...' 나중에 알았다. 아버지의 딸이었기 때문에,,,안타까워서... 그러한 동정, 불쌍이 여기는 것이 견디기 어려웠다.
아버지가 감옥에 가 있는 동안 어머니는 10마지기 농사를 지으시고 광주교도소 면회와 딸아이를 가르켰다. 딸은 서울로 가자고 졸랐다. 50세 넘은 여인이 이 말을 듣기에는 어려웠다. 공부하고 싶어서 서울 가자고 설득했고 성공했다. 어머니는 공부하고 싶어서 사회주의를 선택했지, 이데올로기로서 받아들이지 않았을 듯. 굉장한 공부쟁이. 초등때 숙제를 엄마가 해주었다. 시도 대신 써 주어 구례는 물론 호남예술제에도 나가 장원을 받았다. 서울로 가는 길에 곡성역이 보였다. 아~ 드디어 내가 모르는 타 지역으로 내가 가는구나. 역의 이름을 다 외웠다.
이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몸이 안 좋았다. 주에 2번씩 내려갔다. 당시 서울에서 5시간 걸림. 2년이면 되겠지 생각하고 귀향 결정. 중대 수업은 이틀에 몰기로 함. 안성에서 8시간 서울에서 10시간씩 이틀에 수업. 2-3년 하니 몸이 축이 났다. 3,4년 후 중대 정리하고 현재 12년채 구례 생활. 어미니는 98세. 건강하심.(따님을 39세에 낳았다는)
구례 생활
CITY GIRL의 특징- 사람간에 거리를 둔다. 시골 '어이~ 없는가'. 어이에 문고리 잡고 있는가에 문을 열고 방에 들어 온다. 하나로마트에서 아버지 친구분 초면에 만남. 식사. '어이 그거주소'.. 아버지가 좋아하는 전어회무침. 그러나 딸은 좋아하지 않는 것. 물어보지 않는다. 못 먹는데... 먹어보면 먹을 수 있당께...구례에 살다보면 이쁜 모자 하이힐 못 신는다. 그래서 안 신게 된다. 채중이 10 KG 넘어 섰다.
CITY GIRL의 특징- 하나를 받으면 하나를 준다. 주변 지인들이 뭔가를 갖다 준다. 떡집엄니. 그렇게 갖다 주는 사람이 본인에게는 갖다 주지 않는다. 화장품이 없길래 이런 거 선물한다. 짱아치를 한 통 준다. 생체 좋아하는 나로서는 별로.. 나중 또 주길래 있다 하니.. 오는 사람 나눠줄 수 도 있지 했다. 이후 여기 저기 나눠준다. 건너 건너,... 아버지 은사님의 아들이 장례식에 못 왔다. 항암치료 때문에. 전화해서 뭐 필요한 것이 있는가.. 해서 사과를 말했더니 14년째 사과를 두 달에 한번씩 보내준다. 평생 모으신 우표를 보내주었고, 쑥덕을 보내려 했더니 나 위 씩 다 짤라부렀은껭 먹을 필요 없어 부려..했다. 엄마 아빠에 대한 주변의 관심이 마치 우표책 책장에 꽂아 놓은 듯. 이리 놓아도 저리 놓아도 쭉~ 삐져 나온 것 같은 관심. 무척 부담이었고 끊었으면 싶었다.
나는 까다로운 사람, 취향이 분명했고, 속물 싫어했다. 똑똑한 사람 좋아했고, 우는 거 싫어했다. 애교~오우 노, 그러나 구례에 내려오서 사람이 변했다. 언니들의 사랑을 듬뿍받고 살이 찌었고 유해졌다. 구례 사람들에게 사랑이라는 세례를 받았다. 그래서 소설을 쓸 수 있었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것으로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혹시나 나로 인해 곤란을 받을까봐 그랬다. 친구가 되는 때 까지의 시간이 길었다. 그래서 내 친구들은 10,20년된 친구들이다. 얼굴에 경계의식이 쓰여 있었다. 그래서.. 엄마가 사람 만들려고 아팠나 보다 딸이 구례에 내려오게 했으니. 했다.
장례를 누군가의 도움으로 잘 치뤘다. 부고는 누가, 진단서는 누가, 화장터도 누가 잘 주선했다. 요즘 세상에 쉽지 않게 오지랍이 넓은 주변분들이 다 알아서...(나를 그렇게 봐 준 사람들..다 아버지의 덕)
사람은 누구나 쓸데가 있다.(만고의 진리)
고양이 4마리: 우울함, 어린 것 키우면 사라질 것, 정선생 닥치고 키워..제자들의 말
그냥이 저냥이(인생 뭐 있어 그냥 저냥 살다가 가는거지), 구례에서 사랑을 받았으니 열심히 살아야지.. 이후 두마리 이름은 영원히 갈 것 같은 기업. 분투의 화신 구글과 애플로 함. 그냥이가 영리하고 까탈스러움. 나는 이 애를 좋아 함. 저냥이는 멍충이. 그냥 밀고 들어와 노트북에 앉음. 미워하는 캐릭터. 그런데 접촉이 가장 많은 고양이. 나중에 마음이 움직이더라.(교류의 중요성. 남북한이 미워도 그럼에도 꾸준히 접촉을 하다 보면 미운정 고운정 다 들지 않을까?)
소설의 내용: 아버지와 어머니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거의 사실에 기반. 다른 캐릭터는 실제 인물에 어느 정도 모티브가 있지만 실제는 아님. 작은 아버지가 당신의 아버지의 죽음을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실제 구례에는 그러한 사실이 있었다. 이런 것에서 모티브를 따 옴. 파혼한 이야기도 다 허구. 장편 2권. 빨치산과 관련. 단편은 4-50편. 3편 정도만 빨치산 관련. 나머지는 아님.
어느는 단 3일간의 장례식장을 묘사한 것이 소설가는 천재라 한다. 그러나 아니다. 12년간 구례에서 살면서 만난 사람들을 관찰한 결과다. 실제보다 조금 더 아름답게 묘사는 했다.(! 그래 실제 격하고 고통스런 일과 관계가 왜 없었겠는가..묻어 간 거지)
시작하기가 어려웠지 소설은 쉽게 썼다. 사실에 얽매이면 잘 못 쓴다. 아버지가 죽었다. 우스꽝스럽게 표현. 전봇대에 머릴르 박고. 가벼워져야 읽는다. 처음엔 이데올로기 문제를 다루려 했다. 결국 소설은 사람들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그렸다.(맞다. 결국 관계다. 관계) 빨치산들은 거의 다 죽었다. 이 분들이 다 돌아가시면 달라지지 않을까?( 태극기 부대도 10년 지나면 자연 소멸될 것이다. 그런데 진짜 그럴까? 올해 4.3항쟁 기념식에 서북청년단 마크를 가슴에 단 남자가 집회 방해를 위해 들어선 사진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ㅜㅜ)
왜 이 책이 25만부 이상 팔렸을까? 류시민 작가의 소개로 만오천부가 구매 요청. 50,60대 독자들의 옛날 회상과. 20,30대 열린 마음?
모든 시간이 사라지지만 잊혀지지는 않는다( 또 하나의 진리)
제 나이에도 뜹니다. 희망을 잃지 마시기를
# 50년 전쟁 후 15년 정도 지나 작가 출생. 80년대 민주화 운동 시기 후 14년정도 지난 2000년대 생 출생.
생각보다 과거 역사가 먼데 있지 않다. 사회와 문화에 끈끈하게 묻어 있는 과거의 문제들이 우리를 그야말로 끈끈하게 잡고 있는데 우리는 정말 모른다. 알려 하지 않는 이상 모른다.
# 후일담: 작가분의 말씀이 길었다. 30분 정도면 좋을 듯. 1시간 20분을 듣느라 약간 녹초가 된 기분. 낮에 일하고 밤에 와서 이야기를 듣는데 집중력이 오래 가지 못하고 방전된 듯하다. 청중들의 질문 시간이 많았으면. 질문하다 보면 또 여기서 가지치기가 나갈 것이고 그러면 청중- 관심 유발 이야기가 더 나왔을 수도.
저자도 함께 하는 뒷풀이가 있었으면. 여타 문학회 강연이나 관 초청 강연 행사가 된 느낌. 책 안 읽고 온 청중들에게 당신의 썰~만 풀고 획~ 가버리는 그런 느낌이 들어 좀 그랬다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핫한 분 모시느라 운영위 분들 정말 고생 많았고, 작가님도 청중의 집중력을 흐트러지지 않게 맥락있게 말씀을 전개해 줘서 너무 고마웠다는. 진행에도 고생이 많았고요. 나름 개인적으로 풍성해지는 독후감의 연장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