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도 설교
표어: 하나님을 알자 힘써 알자!
하나님에 대한 지식
조직신학
서 론(序論)
계시(啓示)
마태복음 11:27(p.18)
저는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음.
그래서 그런지 이런저런 여러 가지 의문들을 끊임없이 생각해 내곤 했었음.
죄로 인하여 죄인으로 타락한 인류에 대해서 의문이 들어 많은 생각을 하였음.
그러나 그 의문은 좀처럼 풀리지 않고 저의 뇌리에서 살아지지를 않고 자리를 잡았음.
그러던 중, 성인이 된 후 어느 날 인가 성경을 읽던 중에 이 말씀을 읽게 되었음.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 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5-17)”한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서신 에서의 말씀임.
바로 이 말씀을 근거해서 성경에서 그 의문을 알았음. 오늘은 기독교 믿음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조직신학”에서 가르치는 조직신학 서론 편으로 계시(啓示)에 관한 진의를 알아봄.
종교에 대한 진의를 알아본 지난 시간에 이어서
오늘은 그 기원이 되는 계시에 대하여 알아보지 않을 수 없게 됨.
만일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지 않으셨다면 종교는 없었을 것임.
또 하나님이 자신을 스스로 알리지 않으셨다면,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어떠한 지식도 가질 수 없으며,
인간 그대로 버려두신다면 하나님을 찾을 길이 없을 것임.
하나님은 불가해(不可解)한 존재이심. 하나님께서는 감추어져 있는 심연(深淵) 속에 계시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을 완전히 아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가지기 위하여 는 인간이 하나님과 동등하거나 보다 더한 우위의 신격이어야 하기에 그러함.
한편 인간은 자기의 개인적 욕구에 합당한 한도 내에서는, 하나님을 알 수 있기는 함. 그러나 이 지식마저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즐겨 계시(자연계시)하시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점임. 다만 하나님의 영(靈)만이, 하나님의 깊은 곳을 찾아낼 수가 있는 것임(고전 1:10). 이렇게 종교의 개념은 자연스럽게 우리를 계시의 개념으로 인도하여 줌.
기독교의 기원은 하나님(神)의 자기 계시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임.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 주시는 한도 내에서만 그를 알 수 있을 뿐임. (마 11:27)
성경에 의하면, 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음폐(陰蔽)하셨던 자신의 베일을 벗으시고, 자신을 드러내셨다는 것을 뜻함. 다른 말로하면, 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 인간에게 자신에 관한 지식을 전달하여, 이것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며,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아 주셨다는 것임.
1. 계시의 의미
계시(啓示)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깔라"임. 그 뜻은 "관찰의 장애가 되는 가리 운 것을 제거함"을 표현하는 말임(창 35:7). 그리고,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의 "아포카룹시스" 역시 "감추인 것을 드러내 보인다.", "베일을 벗기다."라는 의미임. 그러므로 계시는"하나님이 자신을 사람에게 나타내 보이는 일"임.
즉, 하나님은 계시를 통하여 자신의 영광, 능력, 속성, 성품, 의지, 목적 등을 사람들에게 나타내시는 것임.
이 계시는 자연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로 구별할 수 있음.
물론 무신론자들과 불가지론자들은 계시를 믿지 않고, 범신론자들은 그들의 사상체계 속에 계시를 허용하지 않으나, 가끔 계시에 대하여 언급하기는 함.
또한 자연신론자들은 자연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는 인정하나, 성경에 나타난 특별계시의 필연성과 실재성, 심지어는 특별계시의 가능성까지도 부인함. 그러나 우리는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를 다 믿고 있음.
2. 일반계시
이 “일반계시”라고 함은
하나님이 피조물과 역사와 인간의 양심을 통해서 자신을 증거 하시는 일을 말함(자연계시).
하나님의 일반계시는 시간상으로 특별계시보다 앞섬.
일반계시는 인간에게 구술적 전달 형식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연 사건과, 자연 세력과, 자연법칙을 통하여 오는 것임.
성경은 일반계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언급하고 있음. (시 19:1, 롬 1:19-20, 2:14-15).
“시 19: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롬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즉 자연은 하나님이 대소 문자로 쓰신 한 권의 방대한 계시록(서적)이라고 말할 수 있음. 그러니까 우주 만물은 하나님의 지혜, 선, 능력 등을 보여 준다는 뜻에서 그러함.
그러나 인류의 타락 이후에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글씨(메시지/계시)를 인간은 죄 때문에 알 수 없고, 읽을 수 없게 되었음. 그래서 특별계시가 절대로 필요한 것임.
펠라기우스파와 합리주의자들과 자연신론자들은 일반계시만으로도 현재 인간의 요구에 적합한 것으로 여기는 데 반하여, 로마 천주교(카토릭 교회)와 프로테스탄트(개혁교회)는 일반계시만으로는 전혀 충분하지 못하다고 간주함.
이 일반계시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 세계에 남아있는 죄의 암영(暗影)에 의해 희미하게 되고 말았음.
따라서 일반계시는 하나님에 관한 충분한 지식과 영적인 일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전달하여 주지 못하므로 인간의 구원과 영원한 미래 즉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는 확고한 기초를 제공하여 주지 못하는 것임.
결국 일반계시로서는 죄인들의 영적인 요구를 완전히 만족시킬 수 없는 것임. 그러므로 일반계시는 하나님의 선과 지혜와 능력에 관한 다소의 지식을 전달하여 는 주겠지만, 그리스도가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못한다는 그런 문제점이 있음.
⑴ 일반계시의 불충분성
① 죄는 일반계시와 이 계시에 대한 인간의 감수성(感受性)을 모두 변화시켰다.
② 일반계시는 하나님과 영적 사물에 관한 확실한 지식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다.
③ 일반계시는 대체로 종교를 위한 충분한 기초도 주지 못한다.
④ 일반계시는 기독교의 기초로서는 불충분하다.
⑵ 일반계시의 가치
그러나 일반계시가 전혀 무가치하다는 것은 아님.
일반계시는 아직도 이교(異敎)의 진정한 확립 요소를 설명해 주는 데 있어서, 이 계시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은 그들 자신이 하나님의 후손임을 깨닫고 (행 17:28),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었고(행 17:27),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보고(롬 1:19-20),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하게 되었다는 것임 (롬 2:14). 또한 그들은 죄와 무지의 암흑 속에서 생활하며 하나님의 진리를 곡해하지만, 말씀의 조명(요 1:9)과 성령의 일반적 작용(창 6:3)에는 참여하는 것이라는 것임.
또한, 하나님의 일반계시는 그의 특별계시의 배경을 형성해 주므로, 특별계시는 일반계시 없이 완전히 이해될 수 없다는 것임. 과학과 역사는 성경 기록에 대해 빛을 던져주는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임.
3. 특별계시
자연과 역사 속에 나타난 일반계시와 함께, 우리는 지금 성경에서 구체화 된 특별계시를 받아들이게 됨. 성경은 탁월한 특별계시의 책으로 이 계시에서 말씀과 사실은 마치 서로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는 것과 같은 모습임. 그리하여, “말씀은, 사실을 해석하고, 사실은 말씀에게 본질을 제공하여 준다.” 그런 말씀임.
여기서 이 특별 개시는,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와 성경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시는 일임(초자연계시).
그리고 이 특별계시는 분명히 진보적임. 속죄의 위대한 진리가 처음에는 희미하게 나타나고 점진적으로 분명해지고 마침내 신약에 와서 이 진리의 충족함과 아름다움이 현저해짐.
이 같은 특별계시의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음.
즉, 현현(顯現 : 하나님의 나타나심), 예언, 이적이 있음.
여기서, 하나님의“현현은(顯現)”은 = 하나님께서 자신의 존재 하심을 불과 연기 구름 속(출 33:9, 시 99:7)과 그룹 사이( 시 80:1)나, 폭풍우 가운데(욥 38:1), 그리고 세미한 음성으로 보여 주신 것임.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이야말로, 하나님의 나타나심의 최고 절정이었음을 말씀드림.
(요일 1:14, 골 1: 19, 2:9)
그리고 하나님의“예언”은 = 하나님께서 그의 사상과 의지를 직접 음성으로 전달해 주신 것임.
그 수단은 꿈이나 환상, 제비뽑기 그리고 우림과 둠밈 이었음 (민 12:5~7).
그리고, “이적”은 하나님의 특별 권능을 나타내며 그의 임재하심이 상징이라는 것을 말씀드림. 즉, 이적은 예언의 말씀을 확정하는 방편임(막 16:20, 행 14:3).
최대의 이적은 역시 예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탄생하신 사건으로 성육신하신 일임(사 7:14, 마 1:23).
여기서 특별계시의 특징은 뭐니 뭐니해도 그것이 구원의 계시라는 점임. 곧 죄인과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그리고 실현 방법을 보여 주는 것이라는 점임.
끝으로 특별계시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범죄 한 사람들이 신체와 영혼은 물론, 지, 정, 의 전인격을 죄의 세력에서 구출하여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로 하시려는데 있다 하겠음.
결 론
이상 알아본 바와 같이 하나님의“계시”란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는 것으로, 자신의 영광과 능력, 그리고 속성과 성품, 의지와 뜻 및 목적 등을 나타내신 것임.
물론 이와 같은 교리는 성경 이외에 그 어떤 다른 사료(史料) 예서는 배울 수 없고 오직 신앙에 의해서만 받아들일 수 있다 하겠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범죄하고 타락한 인간이 구원에 이르는 신지식(神智識)으로 하나님을 알고, 믿어 구원에 이르는 은혜에 참여하기를 원하시고 축복하신다는 점임.
할랠루야~!
생각해 보기
1.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2. 특별계시의 목적. (요 3:16, 2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