딛 3:7 어떻게 구원하셨습니까? 24.11.3
사람들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꼭 사랑한다고 해서 결혼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녀 사이에는 결국 사랑해서 결혼하기까지 할 때, 그 조건은 그 사람이 사랑할만한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혼할 때는 조건을 봅니다. 키를 보고, 외모를 보고, 직장을 보고, 경제력을 보고, 또 가문을 보기도 합니다. 그렇게 결혼을 했을지라도, 그 조건들이 망가지기 시작하면 이제는 이혼도 하게 됩니다. 속았다느니, 배신했다느니 하면서.. 결혼관계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인간관계에서 사회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사람이니까, 사람은 연약하고 또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사랑할만한 자격이 없기 때문에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러분이 사랑할만한 그런 자격이 있었기 때문에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또 자비를 베푸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여러분의 죗값으로 내어주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조건보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셨는데, 그 때에 여러분에게는 사랑받을만한 아무런 자격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사람들이 사랑받을만한 자격이 없다고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여러분도 또한 그럴 때가 있었지만, 그런 자격없는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자비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러니 자꾸 조건같은 것을 보시면 안 됩니다. 그냥 사랑하는 것이지, 그냥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딛 3:3,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이런 자격 없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통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나타내면서 살아야 합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처럼 여전히 자격없는 그런 존재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구원받은 신앙인들은 이제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힘을 주셨습니다. 성령의 공급하시는 능력입니다.
딛 3:1–2, 1 너는 그들로 하여금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며 2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첫째. 중생의 씻음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불교에서도 중생(衆生)은 ‘무리들’(많은 사람들, 부처의 구제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에서 중생(重生)이란 ‘영적으로 다시 태어남’, ‘거듭남’)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딛 3:4–5, 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하나님이 여러분을 구원하실 때에, 여러분의 ‘의로운 행위’ 때문에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잘 나서, 기도나 선행을 많이 해서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으로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모든 신앙인들은 다 거듭났습니다. 새로 태어났습니다. ‘중생’(팔릭게네시아)은 ‘새롭게 됨, 갱신, 중생, 거듭남’. 특히 영혼이나 지구가 완전히 재창조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씻음’(로우트론)은 ‘목욕, 씻음’, 어떤 것을 씻는 행위입니다. 한 마디로 사람같지 않게 살던 여러분을 십자가의 피로 완전히 새로 태어나도록 씻어냈습니다. 이제는 전혀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깨끗하게 다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이게 구원입니다.
막연히 천국가는 것이 구원이 아니라, 구원은 ‘중생의 씻음’, 곧 거듭나는 것입니다. 다시 영적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구원받을 자격 없던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오직 자비와 사랑으로 여러분을 구원하셨는데, 그 구원이 바로 중생의 씻음, 다시 나는 것입니다. 거듭나는 것입니다.
둘째.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구원은 전적으로 성령의 사역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만물의 운행과 인간의 구원을 주관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우리의 죗값을 다 지불하셨습니다. 성령으로 모든 인간의 구원사역을 감당하십니다. 성령님은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이십니다. 여러분을 부르시고, 여러분을 감동시키십니다. 성령님의 불이 내리면, 영적 능력을 갖게 됩니다. 육신을 위하여 살 던 구원받지 못한 사람도 성령이 임하시면 성령이 인도하시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게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육신을 위하여, 욕망과 탐욕을 위하여 살지만, 구원받은 성도들은 더 이상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성령을 위하여 살게 됩니다. 성령으로 새롭게 된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욕망과 탐욕을 위하여 살던 구원받지 못하 저주받은 인생이 이제는 성령을 위하여 살게 됩니다. 성령으로 새롭게 됩니다. 그런데 이 성령을 믿는 우리에게 풍성하게 부어주십니다. 성령달라고 애걸복걸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믿는 신앙인들에게 풍성하게 주셔서, 그 성령으로 새롭게 살도록 하십니다. 이게 구원입니다.
딛 3:5–6,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6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성령의 새롭게 하심’(아나카이노시스)는 ‘새롭게 함, 갱신’, 어떤 것을 새롭고 종종 개선된 방식으로 어떤 것을 재 정립하는 행위입니다. 재생, 회심, 새롭게 하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3절에, 어리석고 순종하지도 않고 속고 정욕과 행락에 빠지고 악독과 투기를 임삼과 가증스럽게 피차간에 미워하던 자들이 완전히 새롭게 되었습니다. 성령으로 새롭게 되는 것이 구원입니다.
셋째, 상속자가 되도록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여러분을 구원하실 때에,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정체성의 완전한 변화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된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딛 3:6–7, 6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7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렇게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은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할 수 없던 자들이 선한 일을 하게 된 것이 구원입니다.
딛 3:8, 이 말이 미쁘도다 원하건대 너는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이 말이 미쁘도다’(피스토스), 충성된, 진실한, 신실한, 책임을 져야 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조심해서 선한 일을 힘쓰게 되는 것’, 이것은 믿을만한 말입니다. 또 선한 일을 하는 것은 아름답고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는 일입니다.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하나님의 상속자들이 된 신앙인들은 선한 일을 힘쓰고, 사람들을 유익케 하는, 도움이 되는 일을 합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구원입니까? 막연히 천국 가는 것이 구원이 아니라, 선한 일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남들에게 피해만 입히고, 속이며, 악독한 말과 투기만 일삼던 저주받은 인생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선한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게 구원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절대로 선한 일을 할 수도 없고, 남을 유익케 하는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선한 일은 구원받아야만 가능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