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글
이제 해파랑길 걷기를 시작한다.
언제부턴가 현대인들은 건강을 위하여 걷기 시작했고
각 지자체는 자기 마을의 숲길이나 강변길
그리고 둘레길을 만들어 사람들이 걷기 쉽도록 했다.
최근에는 맨발로 걷는 황톳길도 크게 유행인듯 하다.
해파랑길은 동해의 상징인 일출을 의미 하는 "해"와
동해의 푸른바다를 상징하는 "파랑" 그리고 일렁이는 파도
그 둘의 단어을 합친 ~ 와 함께라는 " ~랑"을 붙혀 만든
아름다운 합성어로 " 떠오르는 해와 푸른바다의 파도를 바라보며 걷는 길"이니
얼마나 아름다운 길이겠는가?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걷는것은 아니다.
결국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즐겁게 걸을 것이고
자기 나름의 의미를 부여할 것이며
더 많이 걷고 싶은 사람들은 자기 동내를 벗어나
가 보지 않은 길을 걸을 것이며 해외의 원정길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걷기 싫어하는 사람은 자기 동내 앞산도 가지 않을 것이기에
사소한 차이가 천양지차로 다를 수 있다.
나는 "코리아 둘레길"을 걷고 싶었다.
나의 60대 중반 이후 나의 인생 목표이다.
그러나 이제는 목표라고 해서 꼭 완주해야 한다는 강박은 없다.
반드시 완주하고 기록을 해야 하는 요구 없으니
그저 편하게 걷다가, 쉬다가, 놀다가, 이야기 하고,사색하며 걸으려 한다.
코리아 둘레길은 부산시 오륙도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750km의 해파랑길과
오륙도에서 남해안을 따라 전남 해남의 땅끝마을까지 1,470km의 남파랑길,
그리고 땅끝마을에서 인천 강화도까지 서쪽 해안가 1,800km의 서해랑길,
그리고 한반도 허리를 종단하는 DMZ 평화의 길을 포함하면 장장 4,500km의 길이다.
이렇게 머나 먼 길을 꼭 완주하겠다는 장담은 감히 못하겠다.
그러나 한사람의 60대 이후 인생 목표로서 근사 하지 않은가?
한 10년후에도 어딘가을 걷고 있을 것이고 한반도 둘레길을 어쩌면 완주를 했을 지도 모을 일이다.
그래서 걸었던 이야기를 또 하나의 책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
"코리아 둘레길 완주" 참으로 근사한 말이다.
도보 여행가 황안나씨는 65때 여성의 몸으로
2004년 어느날 해남 땅끝 마을에서
고성 통일 전망대까지 2천리길을 고작 23일만에 홀로 국토종단을 하셨다.
그녀는 오롯이 홀로 야트막한 산과 들길 그리고 마을길과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걸었을 것이다.
어떤 날은 비도 맞고 어떤 날은 잠 잘곳을 찾아 헤메이기도 했을 것이며
숫하게 굶기도 하고 걸었을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인심좋은 사람을 만나 따뜻한 밥과 차를 얻어 먹기도 하고
때로는 잠자리을 내어 주는 좋은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을 것이다.
그녀는 가녀린 여인이 아닌 철의 여인이다.
그리고 2006년과 2013년에는
코리아 둘레길도 두번이나 완주를 했다고 하니 참으로 놀랄일이다.
(책 "내 나이가 어때서" 참고)
나는 그분처럼 홀로 연일 이어 걸으며 완주 할 자신은 없다
그러나 한달에 한 두번 그곳으로 가서 이어 걸으며
때로는 땀나게 걷고, 때로는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며 걷고
때로는 콧노래도 부르며 걷고,가끔은 맛집이나 허름한 노포에 들러 탁주도 한잔하면서
동행하는 아내와 이야기 하며 걸을 것이다.
걷다보면 지금까지 살아 온 나의 인생이 생각이 날 것이고
회환과 반성과 과거를 정리하는 시간도 될 것이다.
그리고 내 인생 흔적을 조금은 남겨야 하니 두서 없는 글도 써 보겠다.
이 글들이 훗날 나의 추억이 되고,
반성도 되고, 이야기가 되고,
나의 아이들과 누군가에게 그림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1월 17일에 걷고 2주만에 기억을 더듬어 글을 쓰는데
그날의 감성도 희미해져서 기억하고 쓰기가 어렵다.
앞으로는 감성이 사라지기 전에 초안이라도 빨리 써 두어야 겠다.
- 걸었던 날 : 2023년 11월 17일 (금)
- 걸었던 길 : 해파랑길 1코스 (오륙도-광안리-해운대-송정해수육장)
- 걸었던 거리 : 23km (약 41,000보, 7시간) - (시간은 식사와 휴식시간을 포함하여 기록함).
- 글을 쓴 날 : 2023년 11월 29일.
광주에서 출발하여 8시에 부산 오륙도 주차장에 도착했다. 출발전에 스마트 폰에 "두루누비"라는 앱을 다운 받았고 스탬프 여권도 샀다.
아침 9시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서 트레킹을 시작했다.오늘 바람은 다소 찬듯 한데 날씨가 맑아 멀리 해운대 고층 건물들이 잘 보인다.한무리의 산악회 단체 일행이 소란스럽게 출발하고 나도 스탬프여권에 도장을 찍고 출발했다.첫 코스는 부산시에서 이름을 붙인 "갈멧길 700리길"과 같은 방향으로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해운대까지 걷는 코스이다.
이기대 바위 절벽길을 따라 걷는데 주변 경치가 이쁘다. 이기대 바위는 파도에 해식되어 절벽을 이루었고 깍아 지른 절벽 위에 큰 바위돌이 3층이나 올려져 있기도 하고 밀려 온 파도는 절벽에 부딧쳐 하얀 포말을 만들어 내는데 시원하고 멋진 모습이다. "이기대" 와 "동생말"을 지나 광안리 해수욕장까지 대략 2시간 넘게 걸었다. 그리고 광안리 해변에 도착하여 광안리 해변 화단 경계석에서 쉬어 가기로 하고 담아 온 커피를 마시고 과일도 깍아 먹으며 잠시 쉬었다.
휴가철이 아니지만 광안리 해변은 제법 젊은 여행객들이 보였다. 수년전 내가 본 광안리는 낮으막한 건물이 많았고 해변 분위기가 대체로 편안했으나 지금은 온통 유리와 대리석 그리고 각진 고층 건물로 바뀐듯 하여 도시가 차가웠고 씁씁했다. 휴식후에 수영만 방파제을 돌아 영화의 거리를 걸으면서 영화인으로 살고 있는 작은 아이을 생각했고 동백섬 숲길 옆 누리마루 APEC하우스를 둘러 봤다.이곳은 노무현 대통령님이 2005년 11월 21개국 정상들과 APEC 정상회의를 한 장소이고 마침 개방이 되어 둘러 볼 수 있었는데 그분의 음성이 오래도록 귓가에 맴 돌았다. 그리고 조선호텔 로비를 관통하여 해운대 백사장으로 내려가 신발를 벗고 해변을 따라 쭉 걸었다. 해변에서는 뜨거워진 발가락를 식히고 피부로 바다를 느끼고자 바지를 걷고 바닷물에 담구고 걸었다.
해운대 백사장은 한국의 대표적인 해수욕장이다. 나는 2009년 개봉한 영화 "해운대"의 이미지가 크게 남아 있어 해운대의 마천루를 보면 나는 괜히 불안스런 마음이 든다.영화 "해운대"가 개봉한 이후에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마치 영화처럼 지진과 해일 그리고 쓰나미가 덥친 재난이었다.나는 가끔 해안가 빌딩들이 큰 태풍에 피해가 있다는 뉴스를 접할 때면 영화의 재난 장면 같기도 하여 괜히 불안하다. 그리고 해운대 관광 안내소를 찾아 QR를 찍고 식당에 들어가니 오후 1시이다. 처음 계획보다 조금 늦었는데 나의 왼발 엄지 발가락 피부가 까여서 따갑고 걷기가 아주 불편했다. 트레킹 첫날부터 낭패다. 나는 후천적 무지외반증으로 엄지 발가락 관절이 밖으로 많이 튀어 나와 있고 특히 왼발이 더 심하다. 그래서 당일 산행을 할 때는 참고 걸을 수 있으나 2~3일 연속 걸으려면 상당한 고통을 감수 해야 했다. 2015년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을 가기전에 무지외반증 수술를 하려고 정형외과에 가서 진찰과 수술여부를 의논 한적도 있다. 이번 해파랑길 쯤은 가볍게 생각했으나 신고 온 등산화가 발에 맞지 않았서 사고가 났다.그러나 어떻하랴 계속 걸어야지, 식당에서 얻은 밴드를 상처에 붙이고 2시부터 다시 걷기 시작했다.
오늘 시간상으로는 조금은 더 걸을 수 있으나 발가락 때문에 송정해변에서 마무리 하기로 했다 .송정해변은 한적해서 더 머물며 사색하고 쉬고 싶은 조용한 해변일 듯 했다. 오늘 더 걷고 싶은 아쉬움은 내일로 미루고 오륙도로 가서 승용차를 가지고 미리 예약한 송정 플레르호텔로 들어와 짐을 풀었다. 내일은 더 멀리 걸어 볼 생각이고 발가락 걱정은 잊고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