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살 초롱이 이야기
• 이름 : 초롱이(12살)
• 종족 : 아비시니안, 이집트 파라오가 키웠다는 냥이 로얄패밀리 후손
• 특기 : 귀여운 하얀 수염 레이다를 이용해 날씨를 기가 막히게 알아맞춤
• 좌우명 : 힘든 일 닥쳐도 ‘중.꺽.마.’
안녕하세요. 새해 나이 12살, 고양이 인생 후반기를 살아가는 초롱이에요. 터프하지만 다정한 인간 가족과 함께 사는 이야기 들려드릴게요.
#고양이 기상청_ 아침 습관
일어나자마자 부엌 창으로 가서 수염 레이다를 살랑살랑 움직이며 그날의 날씨를 체크해요. 햇볕 온도, 바람 속 습도,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우산을 챙겨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말해주는 경지에 이르렀지요.
그런데 왜 인간 가족은 내 말을 안 들을까요? ^^;
#당신이 잠든 사이에_ 나는…
어느 여름밤, 사랑하는 가족의 단잠을 방해하는 괴생명체를 발견했어요. 그건 바로 앵~앵 ‘모기’
이쁜 누나의 피를 훔쳐 가고, 직장 다니는 엄마의 잠을 설치게 만드는 적을 체포하기로 마음먹었어요. 몸 크기의 3배까지 뛰어오르는 저의 점프 실력으로 밤을 꼴딱 새워가며 모기를 잡아요. 한 마리, 두 마리, 열 마리…. 힘들어도 ‘중.꺽.마.’의 아이콘인 저는 도중에 포기하지 않아요.
아침에 일어난 가족들은 수북한(?) 모기 시체 부근에서 지쳐 널브러진 저를 발견하곤 애처롭게 쳐다봐요.
잠은 언제 자냐고요? 발가락 하나 까딱 움직일 힘이 없어서 낮 동안 죽은 듯이 곯아떨어져요. 이건 덤인데 낮에 힘 남을 때 ‘파리’도 잘 잡아요.^^
#인생 최대 위기_ 초롱이 추락 사건
아파트 4층. 엄마는 이불 먼지를 툭툭 털고 있었고, 저는 베란다 난간에서 여유롭게 아침 산책 중이었어요.
어느 순간 갑자기 눈앞이 캄캄…. 눈을 떠보니 1층 화단이었고, 놀란 심장은 터져나갈 듯 쿵쾅 쿵쾅~. 온몸의 뼈가 부서지는 듯 아팠어요. 평소 대담했던 엄마는 혼이 나간 사람처럼 저를 찾고 있었어요.
이후 14일 동안 몸져누웠고, 엄마는 온갖 좋다는 민간요법을 다해 병간호를 해주었어요. 귀한 황태국으로 몸보신도 해주었어요. 겉으론 무심한 척, 터프해 보였던 엄마의 마음 속은 사실 꽃잎처럼 여리고, 부드럽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회복 후 한 달 정도는 베란다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어요.
얼마 후 베란다에서 추락했어요. 누가?저요~. 타고난 호기심을 막지 못하고 또…. 이번에는 가벼운 몸살하고 빠르게 나았지요. 역시 뭐든지 경험이 중요해요.^^
#존재 그 자체로 사랑받아 본 적 있나요?
인간은 일을 잘하거나, 공부를 잘하거나, 뭘 잘해야 사랑을 받잖아요. 저는 숨 쉬고 밥 먹고 잠만 자도 인간 가족의 넘치는 사랑을 받아요. 엄마의 팔베개(감히 아빠도 못 해본걸^^)를 하고 잠들 때, 누나의 등에 솜털 앞발을 살포시 기대어 쉴 때 마음속에 사랑이 스며들어요.
여러분도 사랑이 가득한 새해 보내세요!
/ 수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