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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벳푸 여행기
2018.5.23.~5.25(3일)
소산/문 재학
2018년 5월 23일(수)맑음
경남 임우회(퇴직공무원 모임)의 모처럼 해외 여행길이다.
무더위를 식히는 비가 밤새 내리드니 오전에 청명한 날씨로 바뀌었다.
살랑거리는 훈풍 속에 싱그러운 오월의 푸르름을 거느리고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
12시 정각에 인원을 점검하고 14시 20분 부산항공 146편으로 후쿠오카로 향했다.
일행들과 담소하는 사이 40여분만인 15시 경에 후쿠오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까다로운 입국절차(얼굴사진과 양손 검지의 지문채취)를 거처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랐다.
후쿠오카는 규수의 관문이자 규수 최대의 도시로 1889년 상업 항구도시 하카다 와 통합하여 면적은 340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약 160만 명으로 일본의 7번째 도시이다. 도시는 비교적 조용하고 아담해 보였다.
버스는 하카다 최대 복합쇼핑몰(170여개의 점포가 입주)에 도착하여 자유 관광을 하였다.
일행들은 대부분 지하 일층에 있는 약방에 들려 붙이는 코인파스(500원 동전크기의 파스) 모두들 사는데 동이 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5곳 계산대에서 쉴 틈이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대부분 한국사람 같았다. 필자도 어머니의 사전 부탁이 있어 몇 개를 샀다.
외기 온도가 몇도 인지는 몰라도 관광하기에는 최적의 날씨였다.
17시에 버스에 올라 40여분을 달려 연안여객선 터미널 부근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반주를 곁들인 식사라 모두들 상기된 얼굴들로 기분이 좋아 보였다.
여객선터미널 외형은 갈매기 날개형상을 하고 있었다.
중대형 여객선 2대가 정박하여 항구의 정취를 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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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려앉으면서 거리에 가로등이 하나둘씩 불을 밝히고 건물마다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녁 풍경이 상당히 낭만적이었다.
이어 버스는 아름다운 저녁노을이 후쿠오카를 물들이는 해안가 고가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시내는 대체적으로 어두웠다.
가이드 이야기로는 철저한 에너지 정책 때문이라고 했다.
19시가 조금 지나 아메이즈 호텔 420호실에 짐을 풀었다.
역시 일본답게 모든 시설이 깨끗했다. 그러나 방 규모 등 모든 것이 작았다.
2018년 5월 24일(목) 맑음
아침 8시에 호텔을 나와 규수 북부 쪽 모지(門司)로 향했다.
규슈(九州)는 일본의 3번째 큰 섬으로 7개의 현(후쿠오카현, 사가현, 나가사키현, 구마모토현, 오이타현, 미야자키현, 가고시마현)이 있다.
면적은 36,753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1,300만 명으로 면적과 인구가 일본 전체의 1/10을 차지한다고 했다.
모지(門司)까지는 1시간 예정이다.
8시 19분 모지로 가는 톨게이트를 통과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왕복 4차선 도로변은 욱어진 수목들이 5월의 부드러운 햇살아래 풍성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곳곳에 죽림(竹林)이 상당히 많이 보였다.
탐스러운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수세(樹勢)를 자랑하고 있었다.
지금은 삼나무와 편백나무 등 고급수종이 수요가 적어 방치상태로 키우고 있지만 오랫동안 일본사람의 사랑을 받아온 향기로운 나무였다.
일본전체 산림의 41%가 인공조림인데 그 대부분이 삼나무와 편백나무 고급수종이다
한국도 일부 남부 지역에는 자라고 있지만 북쪽으로는 추위에 약해 심을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잘 조성된 울창한 숲들이 계속해서 나타났다.
도로에는 경차가 유럽 일부 나라처럼 상당히 많이 다니는데 600cc 미만 차는 주차증명이 필요치 않아 많이 구입한다는데 검소한 일본인들에게는 당연 한 것 같았다. 경차도 전체 차량의 40%를 차지한다고 했다.
8시 56분 고속도로를 벗어나 모지에 도착했다.
모지 항은 메이지 시대(明治時代)에 열린 항구로, 큐슈지방에서 캔 석탄을 수출하기 위해 이용된 항구이다.
이곳은 규슈의 북단이고 혼슈와 맞닿는 곳이다.
모지 항구는 면적 73,67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98천명이다.
바닷물이 너무 깨끗하여 바다 밑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였다.
항구에는 고층건물이 몇 동 이외는 전형적인 일본식 건축물 등으로 이루어져있었다.
한산한 항구도시에는 대형 여객선 등 선박들이 보이고, 바다(간몬 해협 : 関門海峡) 건너편에는 시모노세끼(下関) 도시가 손짓을 하고 있었다.
모지와 시모노세끼 도시를 잇는 대형 간몬 현수교는 1973년도에 준공한 다리로 길이 712m, 폭 25m, 높이 61m로 멀리서도 그 규모기 시선을 압도할 정도였다.
그리고 간몬 터널은 1944년에 복선으로 개통된 세계 최초의 해저터널 이라했다. 터널 길이는 3600m 그중 해저부분은 1140m이다.
2층으로 구성된 해저터널은 위층은 차가 다니고 아래층은 보행자 전용도로라 했다. 한번 둘러보지 못해 아쉬웠다.
조그마한 다리를 지나 있는 벽돌로 세워진 깨끗한 건물은 구 모지 세관(旧門司税関)이다. 그 앞에는 해적선 같은 낡은 배가 정박해 있었다.
그리고 해적선 (?) 바로 뒤편에 있는 약간 검은 색의 고풍스런 아담한 3층 목조건물을 찾았다.
1921년에 준공한 이 목조건물은 옛날 미쓰이 재벌(三井財閥)의 사교클럽으로 사용했는데 미쓰이 물산의 접객 숙박시설이다.
이곳이 1922년 아인슈타인 부부가 방문했을 때 머물다 간 집으로 유명하다.
내부관람은 입장료를 받기도 했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아 외관만 영상으로 담고 주차장으로 돌아와 9시 46분 사무라이 무사 마을로 향했다.
400년 전 애도시대 때의 무사마을이 잘 보존되어 있다고 했다.
도로변의 수목들이 연노랑. 연분홍 등으로 고운 물감을 들인 것같이 아름다운 풍광을 이루고 있어 시선이 즐거웠다.
울창한 숲이 있는 골짜기마다 작은 저수지가 있어 한층 풍요로운 풍광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으로 농업용수나 생활용수로 사용하는 일본인들이 부러웠다.
용수가 부족한 우리나라도 이런 시설을 적극적으로 많이 설치하였으면 좋겠다.
곳곳에 일본 전통가옥의 마을이 숲속에 포근히 잠겨있는 광경이 참으로 아늑하고 보기 좋았다.
어디를 가나 계곡물은 이끼가 끼지 않고 맑은 물이 흐르도록 관리를 잘 하고 있었다.
평야를 지날 때는 산재된 주택들 사이로 경지정리가 소규모로 그림같이 조성되어 있고 일부지역은 모내기가 끝나가고 있었다.
완숙된 수확직전의 밀밭은 밝은 태양아래 눈부신 황금빛으로 결실을 알리고 있었다.
10시 40분부터는 끊임없이 터널이 계속되는 산악지대가 나왔다.
역시 산골짜기마다 저수지와 잘 정리된 경작지들이 있고 때로는 농가들도 보였다.
산에는 우리가 부러워하는 몽실몽실한 자태의 삼나무와 짙은 녹색의 윤기를 흘리는 아름다운 편백나무가 곳곳에서 樹勢를 자랑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독일다음으로 林木蓄積이 많은 일본답게 나무들이 울창했다.
버스는 4차선 고속도의 제한속도 70km를 유지하며 조용히 달리고 있었다.
11시 11분 고속도로를 벗어나 원형 길을 돌아 톨게이트를 통과했다.
그리고 11시 31분에 무사마을 주차장에 도착했다.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주차된 차량과 관광객이 많지 않았다.
이곳의 오이타 현의 작은 마을 키츠기는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에서 막부를 연 때로 부터 1867년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정권을 천황에게 돌려줄 때까지의 시기인 에도시대는 쇼군(將軍)이 권력을 장악, 전국을 통일 지배하던 때 무사들이 살았던 마을이다
마을 형태는 도로를 중심으로 양측으로 높은 언덕의 긴 계단을 오르면 남북의 높은 언덕 건물에서 무사가 살고 있고 그 아래 도로변에는 상인이 살고 있었다.
이런 독특한 형태의 마을을 샌드위치 형 죠카마치 라고 불렀다
언덕 위 길게 나있는 일본 고유의 정취가 풍기는 골목길 따라 욱어진 나무들 사이로 무사의 집들이 늘어서 있었고 그 중 몇 개소가 개방되어 있었다.
입장료 200앤(환화로 2000원) 받는 곳도 있었다.
무료 개방하는 무사 집에는 옛날 무사들의 생활용품 등을 전시해 두고 기모노 차림의 젊은 아가씨들이 곳곳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집안 깊숙한 곳에서는 지역의 토산품도 팔고 있었다.
몇 곳의 잘 정돈된 정원 등을 둘러보고 다시 언덕을 내려가 차들이 다니는 도로를 횡단하여 맞은 편 언덕을 올라가니 작은 주차장 옆으로 두꺼운 갈대지붕의 옛집들이 고풍스런 풍광을 풍기고 있었다.
여기저기 무사마을의 필요장면을 부지런히 동영상으로 담으면서 둘러보고 주차장으로 복귀하여 인근 식당에서 중식을 한 후 12시 55분 유황재배지 유노하나(湯の花)로 향했다.
13시 16분 고속도로를 벗어나 13시 30분 벳푸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산골짜기 중간 지점에 있는 명반온천(明礬溫泉) 유황재배지에 도착했다.
관광객이 많이 찾아들고 있었다.
다양한 상품 매장들을 지나자 약간 흐린 물 뜨거운 온천수로 손을 씻도록 해두었다. 모두들 뜨거운 물로 손을 씻어 보았다.
유노하나는 벳푸 온천중에서도 널리 알려진 명반온천이다.
300여 년 전 에도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적인 채취방법에 의해 생산되는 순수 온천 유황성분이다.
땅속에서 솟아나는 유황기가 많은 온천가스를 삼각형 초가집에서 2∼3개월간(1일 1mm 자람)에 걸쳐 지푸라기에 결정체로 만든 후 그것을 가루로 만든 것으로 이 가루를 물에 넣으면 온천수와 같은 효능을 볼 수 있다.
초가집은 실내의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보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유노하나를 뜨거운 물에 넣으면 벳푸 온천물과 똑같이 된다고 하며 유노하나의 채취가 2006년에 일본의 무형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 제품은 약용효과가 뛰어난 천연의 입욕제로서, 각종 피부병과 기저귀 발진, 무좀, 근육통, 신경통에 효과가 있다고 했다.
주요 성분으로는 산화칼슘, 산화나트륨, 산화마그네슘, 산화철, 산화알류미늄, 산화망간, 등이 함유되어 있다.
삼각형 초가집(시설)을 둘러보는데, 생산된 유황은 손을 대지 못하도록 한글 경고판이 곳곳에 있었다.
13시 50분 5분 거리에 있는 지옥온천으로 출발했다.
오이타 현은 면적이 6,339 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120만 명이다.
그리고 벳푸시는 인구 13만 명의 작은 도시이다.
벳푸는 일본 최대의 온천수 용출량(1일 13만 6천키로)을 자랑하는 곳으로 2800여개의 온천수가 있다.
그리고 용출량 70%를 바다로 흘려보낸다고 했다.
13시 55분 가마도 지옥온천 주차장에 도착했다.
벳푸 지옥온천은 화산활동으로 인해서 약 1천 2백 년 전부터 뜨거운 증기와 흙탕물이 지하 300m에서 분출된다고 했다.
지하에서 분출되고 있는 모습들이 우리가 상상하는 지옥을 연상하게 해서 지옥온천이라고 불리는데 총 9개의 지옥온천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그 중 하나인 오늘 관람하는 가마도 지옥온천은 필자가 20여 년(1996년) 전에 다녀갔는데 주차장 일부를 제외 하고는 별로 변한 것이 없어 보였다.
입장권을 받아 들어가다가 이색적인 꽃이 있어 영상으로 담고 도깨비 상이 있는 곳을 지나 1초메부터 ~6초메까지의 지옥의 다양한 모습을 즐길 수 있었다.
제일 먼저 온천수를 마시면 10년 젊어진다는 80도의 온천수를 맛보고, 점토가 녹아 부글거리는 열니지옥(熱泥地獄)에서 한국말을 잘하는 사람이 담뱃불로 수증기를 불러일으키며 익살스런 말을 하는데 폭소 속에서 그 광경을 영상으로 담았다.
그리고 인접한 곳의 바위 사이에서 102도의 물이 쏟아지는 곳에서 예의 담뱃불 입김으로 수증기를 대량 발생시키는 쇼도 부지런히 동영상으로 담았다.
또 그 옆에 있는 땅속에 포함된 철이 녹아내린 적갈색 75도의 온천(깊이 2m)수에도 담뱃불 입김으로 수증기를 발생시키는 묘기를 부렸다.
다음은 인접한 곳에 위치한 시원한 그늘아래 있는 족욕탕에 발을 담가 피로를 풀었다.
이곳 온천물로 삶은 계란이 맛이 있다는데 필자는 맛을 보지 못했다.
14시 40분 유후인(由布院) 마을로 향했다.
울창한 숲길을 지나자 오이타 현 중부에 있는 유후인 마을 뒤편에 해발 1584m의 아름다운 유후다케(由布岳)산이 나타났다.
유후인 마을은 이 산의 남서쪽 산자락에 터 잡은 인구 3만 명 정도의 작은 마을이다.
산 정상 부분에는 흙인지 바위인지 붉은 땅이 노출되어 이색적인 풍광을 더하고 있었다.
주위는 수목이 울어져 裸地가 없는 곳에서 유후산 봉우리의 자태가 아름다웠다.
이곳은 주민들의 90%가 관광업에 종사할 정도로 해마다 5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 든다고 했다.
미술관과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많이 있고 특히 고로케와 벌꿀 아이스크림이 인기가 높다.
날씨가 비지땀이 날 정도로 무더운데도 관광객들이 밀려들고 있었다.
즐비한 가게들을 지나 상점 내 비단잉어들의 群舞가 있는 곳에서 잠시 머물다 숲속 길을 걸어서 긴린호(金鱗湖)를 찾았다.
호수에는 커다란 붕어와 잉어들이 유영을 하고 호수주변(넓이 100m * 70m, 수심 2m)으로는 일본의 전통가옥들이 호수 수면에 아름다운 수채화를 그리고 있었다.
호수 바닥에서 온천과 냉천이 같이 솟아나 안개의 원천이 된다는 호수이다.
석양이 비친 湖水面을 뛰어오르는 붕어의 비늘이 금색으로 보인다고 해서 긴린호(금빛 비늘호수)로 불리었다. 호수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하늘을 찌를 듯한 수백 년 수령의 아름드리 삼나무 편백나무 등을 동영상으로 담아 보았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17시 40분 아사쿠라시(朝倉市)로 출발했다.
산악지대 꼬부랑길과 기나긴 터널을 지났다.
멀리 산 능선에는 늬엇늬엇 넘어가는 석양을 안고 가는데 한편에서는 풍력발전기가 긴팔을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도중에 편의점에 들였다.
다양한 물건들을 비교적 저렴하게 팔고 있었다.
18시 5분 하라즈루(原鶴)그랜드스카이 호텔에 도착 512호실에 투숙했다.
福岡縣朝倉市杷木久喜宮에 위치한 조용한 시골마을의 10층 호텔이었다.
호텔에서 저녁식사 후.
20시부터 실시하는 예상치 못한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호텔 5층 눈앞에서 현란한 색상의 거대하고도 다양한 형태로 얼굴위로 그 빛이 쏟아지는데 정말 장관이었다.
호텔 안팎에서 이구통성으로 탄성의 소리가 저절로 터졌다.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불꽃쇼를 처음에는 하찮게 생각했는데 아주 가까이에서 보아 그러한지 필자가 지금까지 보아온 것 중에 최고로 멋진 쇼였다.
한 시간이나 진행되는 동안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동영상으로 담아내느라 바빴다.
정말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는 즐거운 저녁시간이었다.
2018년 5월 25일(금) 맑음
9시에 호텔을 나와 후쿠오카에 있는 태재부 천만궁(太宰府 天滿宮)으로 향했다. 1시간 소요 예정이다.
9시 17분 왕복 4차선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후쿠오카까지는 54km이다.
고속도로변 산록지 경작지에는 복숭아와 포도 등의 소규모 과수원이 樹勢를 자랑하며 자라고 있는데 한국 농촌과 다르지 않았다.
평야지대에 들어서자 황금빛 밀밭이 많이 보이고 그사이로 산재된 주택들이 있었다.
9시 38분 후쿠오카(현) 행 진입도로 중앙분리대에는 油桃花가 고운 꽃망울들을 터트리고 있었다.
이윽고 학문의 신을 모시고 있는 (太宰府 天滿宮) 가는 2차선 좁은 길에 들어섰다.
태재부 시청을 지나 얼마 안가서 주차장에 도착하니 대형버스들로 초만원이었다.
우리일행은 버스에서 내려 뜨거운 햇살아래 땀을 흘리며 상가가 즐비한 길을 따라 10여분을 걸었다.
도중에 하늘天 형상의 도리이(鳥居)를 지났는데 신의 메신저라는 이 도리이가 있는 곳은 신사이고, 없는 곳은 寺刹이라 했다.
태재부 천만궁 입구에 도착했다. 관광객이 너무 많아 지칠 정도였다.
천만궁으로 들어가는 곡각지점에 있는 커다란 황소상은 히로히토 천왕이 하사한 것으로 태재부 천만궁을 대표하는 마스코트라 했다.
이 황소 뿔과 머리를 만지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속설 때문에 지나는 사람마다 만지다 보니 황소머리는 황금빛으로 반들거렸다.
이어 천만궁 입구서부터 연못 좌우로 수백 년 수령을 자랑하는 거목들이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3개의 반원형 붉은 다리는 과거. 현재. 미래를 상징 한다고 했다.
따라서 미래의 다리에서는 뒤를 돌아보지 말고 가야 한다고 했다.
대체적으로 일본사람들은 미신을 많이 믿는 것 같았다.
곳곳에 석탑들도 많이 보였다.
밀려드는 관광객들과 함께 신사로 들어가기 직전 물이 있는 곳에서 입과 손을 씻었다.
태재부천만궁은 학문의 신인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眞 845~903)를 모신 신사로 901년 우대신이라는 관직에서 갑자기 태재부(다자이후) 관리로 좌천된 스가와라노 미치자네가 2년 후 사망하여 시신을 옮기던 중 우마차가 갑자기 꼼짝을 안하므로 이곳에 시신을 매장했단다.
태재 905년에 그의 묘위에 세워진 것이 천만궁 신사이다.
그가 죽는 날 매화가지가 교토에서 큐슈로 날아와 하루밤새 6천 그루의 꽃을 피웠다는 전설이 있다. 현재 본전 앞에 비매(飛梅)라는 이름의 매화나무 한 그루가 보호수로 있다.
이곳의 매화는 해마다 다른 지역보다 먼저 꽃봉오리를 터트린다고 했다.
현재의 본전은 1591년에 건축한 것으로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있다.
넓은 경내에는 매화, 녹나무, 꽃창포 등 계절마다 아름다운 꽃이 피고 수백 년 거목들이 경내를 뒤덮고 있었다.
본전 가까이 접근 못하도록 목책을 해두어 멀리서 굳게 닫힌 문만 바라보았다.
가이드 이야기로는 신의 영역은 일반인들이 볼 수 없도록 했다는데,
이십년 전 필자가 왔을 때는 본전 내부를 마음대로 관람 할 수 있었다.
신전 내부 중앙에 태양처럼 둥근 대형 거울이 아름다운 조형물 좌대위에 놓여 있었다.
눈부신 거울을 보면 경건한 마음으로 두 손을 모으게 하는 신비로움이 감돌았던 것 같았다.
시험합격이나 사업번창 등을 기원하는 신사이지만 그 당시는 시험합격을 기원하는 수많은 학생들의 부적을 엄청나게 많이 달아 놓았던 것 같았다.
지금도 밀려드는 방문객들 중 50%는 단체로 오는 교복 차림의 학생들이다.
본전 바로 뒤에 있는 1500년 수령을 자랑하는 녹나무를 둘러보고 영상으로 담았다.
그리고 후원에는 수많은 매화나무의 탐스런 열매가 시선을 끌고 있었다.
관람을 끝내고 주차장로 나왔다.
버스가 너무 많아 우리가 타고 온 버스를 찾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11시 10분 버스는 면세점으로 향했다.
후쿠오카 국제공항 옆 고가도로를 지나 11시 36분에 면세점에 도착 일본에서 생산된 각종 제품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가까이에 있는 식당에서 유 초밥과 우동으로 중식을 하고 13시 15분 후쿠오카 공항으로 이동했다.
16시 10분 부산항공 145편으로 김해공항으로 향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후쿠오카 시는 지형 따라 다소 산재되어 있고 또 무질서해 보였다.
도시 주변의 산은 울창한 숲으로 덮여있고 외곽지대 들판은 수확직전의 밀밭이 많이 보였다.
산을 허물고 조성한 골퍼장도 곳곳에 보이고, 만수위(滿水位)로 빤짝이는 대형저수지도 보였다. 무척 포근하고 삶이 풍요로워 보였다.
16시 20분경 해안선이 아름다운 후쿠오카 바다 상공을 날고 있었다.
17시 10분 김해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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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 디테일 하십니다.
저도 후쿠오카, 나가사키, 구마모토 다녀온 기억이 올라오네요.
잘 읽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고운 댓글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좋은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