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글
2024년 11월 해파랑길 마지막 코스를 걷고나서
코리아 둘레길 걷기를 3개월 정도 쉬었다가
이제 남파랑길 첫발을 내딛는다.
이렇게 진행하는 우리의 계획이 무모할수도 있어
걱정을 하는 사람도 있고,
집념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은 사람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들이 있는데
나는 산행을 좋아했고 부부는 걷기를 좋아해서 둘레길 걷기를 선택한것 뿐이다.
다만 코리아 둘레길을 선택했던것은
운동도 하면서, 여행도 하고, 건강 힐링를 하며
인생 여행을 만들어 가고자 함이엇다.
- 걸었던 날 : 2025년 2월 9일(일)
- 걸었던 길 : 남파랑길 1코스 (오륙도-UN평화공원-우암동소막마을-수정산가족공원-부산역)
- 걸었던 거리 :19km (약 38,000보, 5시간30분)
- 글을 쓴 날 : 2025년 2월 13일.
새벽 6시 광주에서 출발하여 오전9시30분 부산 오륙도 출발지점에 섰다.최근 경남지역을 제외한 한반도 모든지역에 3~4일째 눈이 내린 날씨였고 이곳 아침 날씨도 영하 4도로 제법 쌀쌀하다. 털모자를 쓰고 장갑를 꼈다.
남파랑길 부산시 구간 5개코스중 첫코스는 오륙도에서 UN묘지를 지나 부산시내 여러곳들을 지나면서 부산역까지 걷는 길이다.이 구간은 해안가에서 시내로 들어가 구도심을 경유하고 한국전쟁당시 생겨난 근대마을 깊숙한곳을 보며 걷고, 증산공원과 수정산 자락를 걷고 한국 제2의 도시다운 화려한 고층 건물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부산시을 볼수 있는 구간이다.
오랫만에 부산 앞바다의 해풍을 맞으며 걷는데 바다의 넓은 시야가 시원하고 바다 냄새가 정답다.오륙도 스카이워크 전망대에는 벌써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트레킹을 시작하려는 사람들과 여러 중국 관광객 일행도 있었다.스카이워크 아래에는 포말를 일으켰다 사그라드는 오륙도 바위섬이 연락선을 기다리는 등대처럼 존재하고 있다.
오륙도 주차장옆에는 규모가 3,000세대인 대형아파트 단지가 있다. 대부분 바다뷰를 하고 있어 멋져 보이고 휴양지 리조트처럼 보이지만 모를 일이다.시내와 떨어져 있어 조용하겠지만 시장이나 병원, 그리고 지하철이나, 교통 각종 편의시설들과 무관한곳이여서 보통사람들의 삶에선 불편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사실 이곳은 좌측으로 이기대의 절경이 있고, 정면에는 부산의 상징 오륙도가 있어 시민들의 쉼터나 휴양시설, 또는 관광객을 위한 시설이었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카이워크 투명유리에 서 보고~
오륙도에서 시내로 향하는 버스 노선 차도를 따라 걷다가 용호동 천주교묘역를 지나고 6.25참전용사 기념공원을 경유하여
UN기념묘역에 도착한다.비문앞에서 잠시 참배를 하고 묘역을 가로질러 걸었다.
UN묘역은 6,25 참전 해외 16개국 참전 용사의 전사자 묘역이다.엄숙한 분위기의 이 평화 묘역은 1951년 1월 유엔 사령부에서 조성하였으며 1955년 11월 우리 국회는 본 토지를 유엔에 영구히 기증하고 관리도 유엔에서 하고 있다가 2007년 10월 근대문화재로 등록되었다고 한다.그리고 한때 1만여기가 넘는 유해가 있었으나 일부 유해는 조국으로 돌아가시고 지금은 2,300여기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는 묘역이다.잊지 말아야 할 슬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인터넷글참조)
1,909년 이후 일본은 부산 우암동에 소 우역 검역소를 짓고 일본과 만주에 소를 수출하였는데 한해에 12,000마리씩 수출하였었다.당시 검역을 위한 소 막사 19동을 지엇는데 해방후에 실향민들이 소막사를 집으로 개조하여 살았던 주택이 바로 우암동 소막마을 주택이다.그리고 소막마을 주택은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하였다는 설명이다.(현판글 참고)
내가 기억하기로 당시 한국의 한우는 쟁기질를 잘하는 일소로 인기가 많아서 수출까지 했던것 같다.
이번 부산시내 코스는 트레킹로 표시 안내가 많이 부실해서 자주 앱을 켜서 확인하고 걸었다.앱을 켜고 따라가기하면 쉽지만 핸드폰 밧데리가 빨리 소모되기에 껐다가 켜기를 반복했다.문현 곱창골목을 지나며 골목안쪽으로 더 들어갔다.인근 고가도로와 고층건물 사이 낮은 옛건물 골목에 곱창요리식당이 즐비하다.마침 일요일이여서 대부분 휴무중이였고 영화 "친구"의 촬영지였던 칠성식당도 그 모습 그대로인듯 하다.걸으며 구경하고 이른 점심시간이여서 그냥 지나친다.
좌천동굴을 만난다. 일제 강점기에 반공호로 이용하기 위해 판 동굴인데 한때 민방위 교육장으로도 쓰여졌고 이색주점으로도 쓰였고, 지금은 개방하여 교육의 현장으로 보존하고 있으나 일요 휴무일이여서 내부는 볼수 없었다.
일제 강점기에 3.1운동과 만세운동 부산의 발상지였던 좌천동 부산진교회와 부산일신여학교 기념관을 지나 가파른 언덕을 올라 안용복 기념관앞에서 경사형 엘리베이터를 만난다.엘리베이터는 2단, 2기로 설치되어 있으며 주민은 언제나 편리하게 이용하고 증산공원에 쉽게 오를수 있는 시설이었다.부산은 급경사 산동내가 많아 이런 시설이 꼭 필요할듯 했고 다른 도시에서 보기 힘든 엘리베이터를 경험했다.
증산공원 아래 오래된 아파트 뒷모습이고 실제 주민이 살고 있다.
초량동 산비탈 마을을 내려가며 바라본 모습
증산공원에서 수정산 가족체육공원까지는 산 정상과 산길을 이용한 등산로여서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초량동을 내려갔다.
초량동 경사형 엘리베이터는 증축 공사중이여서 급경사 168계단을 조심히 걸어 내려갔다.그리고 어떤 건물 옥상에 유치환시인의 행복 우체통 설치되어 있었고 우체통에 쓰인 짧은 시어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
행복
' 사랑하는것은 사랑을
받는이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이여, 그러면 안녕'
초량동 168계단 엘베는 공사중
초량동 이야기 길 안내벽 앞에 서서
초량동 계단을 내려와 고층건물이 즐비한 부산역앞에 도착하여 오늘 첫날 걷기를 마친다.이번 출정은 3개월정도 쉬었다가 시작한 첫날이었으며 증산공원을 오르고 수정산자락 계단을 걸을땐 허벅지가 뻐근했다.첫날은 언제나 그랬다.그래도 잘 걷고 이바구 를 들어준 아내가 감사하고 고맙다. 그리고 곧장 숙소로 가서 대충 씻고 부산에 살고 있는 고향친구 미석을 만나러 나갔고 동백역 근처 보쌈집에 들어가 소주를 마셨다.오랬만에 그 친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 개인정량에서 한병을 더 마셨다.호남출신인 그는 영남지역에서도 잘 살았다.그러나 나름 외로움이 있었을까? 아니면 늘 긴장하고 살았을까? 그래서 가슴속 이야기들을 토해 냈을까? 그는 11열한번째 시집 출간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공직을 퇴임하고도 기업체 CEO로 수년째 근무중이고, 고향 초등학교 동창회장이기도 한 그는 체구는 작지만 열정이 많은 거인이다.친구야 늘 건강하고 재미있게 살자! 라고 이야기하고 헤어졌다.
2025년 2월 13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