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산국, 너 어디에 있었니?
[ 신년기획 ] 거칠산국을 찾아서 - 2
우리 지역(동래)의 옛 지명이라던 거칠산군(居漆山郡)은 거칠산국(居漆山國)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어 거칠산의 거칠(居漆)을 ‘거칠다’는 황령산(荒嶺山)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아 곧 거칠산국은 황령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고대의 소국가라 말하고 있다. 과연 이런 의견들이 사실인지에 대해 오랫동안 의문을 품어 왔다.
신라와 거칠산국의 내용은 『삼국사기』 <본기>가 아닌 석탈해왕 때의 <장군 거도(居道)열전>에만 나온다.
‘거칠산국과 그 옆의 우시산국(지금의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양산시 웅상)은 초창기 신라(사로국, 즉 경주시) 바로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국경 지대에 위협이 되었는데, 신라의 장군 거도가 변경의 지방관이 되어 두 나라를 병합할 계획을 짰다. 마침 이 당시 이 지역에는 매년 한 번씩 여러 말들을 들판에 모아놓고 군사들이 말을 타고 달리면서 노는 마숙(馬叔)이라는 정기적 행사가 있었는데, 거도는 이 행사를 치르는 것으로 위장해 군사를 동원했고 우시산국과 거칠산국도 마숙 행사를 자주 보아 왔으므로 신라가 평소 하던 대로라고만 생각해 별다른 대비를 하지 않았다. 이 틈을 타 거도는 두 나라를 기습 공격해 멸하였다.’
위의 <거도열전> 기록에서 우시산국의 위치는 나타나 있지만 거칠산국의 위치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럼 신라가 공격한 거칠산국은 어디에 위치했던 국가인가?
신라 장토지야(張吐之野)에서 나타난 곳은 지금의 정관 월평지역으로 추정된다. 당시 구축했을 것이라 여겨지는 반월성이 아직도 남아 있으며 기장 지역에서 전해 오는 ‘아기장사 전설’에서 아기장사가 신라군을 맞이해 싸운 곳이 바로 정관벌로 나타나 있다.
이같이 거칠산국이 월평지역에 있었던 나라라면 거도장군이 마숙이란 기만전술로 두 나라를 동시에 정복했다는 사실도 맞아떨어지게 된다.
우선 거칠산국과 신라군이 국경을 마주한 탓에 전쟁이 발발할 만한 곳을 살펴보았다. 역사 기록을 따라 양산의 신라군이 거칠산국과 웅상지역의 우시산국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었던 지역은 정관 월평지역이라고 결론지었다. 월평지역이라면 신라군이 능히 정관벌에서의 거칠산국 군대와 그리고 인접한 웅상지역에서의 우시산국 군대와 동시에 전투를 벌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거칠산국의 이름이 남아 있을 곳을 찾아 이 잡듯이 뒤졌다. ‘거칠’이란 말이 ‘강의 이름인지? 아니면 산 이름인지?’하며 정관과 철마지역을 훑다 철마의 ‘구칠리’란 지명에 주목했다. 특히 구칠리 옆 갈치재로 불리우는 큰 고개의 옛 이름이 바로 거칠재란 사실도 밝혀냈다.
이렇게 볼 때 거칠산국은 철마 구칠리를 중심으로 인근 정관 월평지역으로 발전한 소국가로 추측해 볼 수 있다.
/ 예성탁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