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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내가 옛날 과거에 급제하던 해에 동년(同年)들과 통제사(通濟寺)에 놀러 갔었다. 그때 나와 4~5인은 일부러 뒤떨어져서 말 안장을 나란히하고 천천히 가면서 시를 창화(唱和)하였다. 맨 먼저 지은 사람의 시운(詩韻)을 가지고 각기 사운시(四韻詩)를 지었다. 이 시는 이미 노상에서 입으로 부른 것이라 붓으로 쓸 만한 것이 있지도 않거니와, 또한 시인의 상어(常語)로 생각하여 아예 기억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뒤에 두 번이나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사람이 전하기를,
“이 시가 중국에 흘러 들어가서 사대부들에게 크게 칭송받는 바가 되었다.”
하고, 그 사람은,
나귀 그림자 속에 푸른 산이 저물고 / 蹇驢影裡碧山暮
외기러기 울음 속에 단풍지는 가을일러라 / 斷雁聲中紅樹秋
는 한 시구만을 외면서,
“이 시구가 더욱 사랑을 받는다.”
하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또한 믿지 않았다. 그 뒤에 또 한 사람이,
외로운 학은 어디 가고 하늘은 아득한고 / 獨鶴何歸天杳杳
다니는 사람 끊이지 않는데 길은 길구나 / 行人不盡路悠悠
라는 한 시구 만을 기억하고,
“첫구와 끝구는 다 알지 못한다.”
하였다. 내가 비록 총명하지는 못하나 또한 매우 노둔한 사람은 아닌데,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 그때 갑작스레 짓고 조금도 유의하지 않아 우연히 잊어서일까. 전번 구양백호(歐陽伯虎)가 나를 찾아왔을 때 좌석에 있던 어떤 손이 이 시에 언급하고 이내 묻기를,
“상국(相國)의 이 시가 대국에 전파되었다 하는데 진실입니까?”
하니, 구양백호는 선뜻 대답하기를,
“전파되었을 뿐만 아니라, 모두 화족(畫簇)을 만들어서 봅니다.”
하자, 그 손은 약간 의심하였다. 그러자 구양백호는,
“그렇게 의심하신다면, 내가 명년에 환국하여 그림과 시의 전본(全本)을 싸가지고 와서 보여주겠습니다.”
하였다. 아, 과연 이 말과 같다면, 이는 실로 분에 넘치는 말이니 감당할 바 아니로다. 전에 부친 절구를 차운하여 구양백호에게 주었는데, 그 시는 이러하다.
부끄럽도다! 구구한 이 한 수의 시는 / 慚愧區區一首詩
한 번 보아줌도 족한데 또 그림까지 그렸나 / 一觀猶足又圖爲
중국이 이처럼 외국을 차별하지 않음을 누가 알았으랴/誰知中國曾无外
명공께서 혹 속이는 것은 아닌지 / 無乃明公或有欺
나는 아홉 살부터 글 읽을 줄 알아, 지금까지 손에 책을 놓지 않았다. 시서육경(詩書六經)ㆍ제자백가(諸子百家)ㆍ사필(史筆)의 글로부터 유경벽전(幽經僻典)ㆍ범서(梵書)ㆍ도가(道家)의 설에 이르기까지 비록 그 깊은 뜻은 궁구하지 못했지만, 그를 섭렵하여 좋은 글귀를 따서 글 짓는 자료로 삼지 않는 것이 없다.
또 복희(伏羲) 이후 삼대(三代)ㆍ양한(兩漢)ㆍ진(秦)ㆍ진(晉)ㆍ수(隋)ㆍ당(唐)ㆍ오대(五代) 사이의, 군신의 득실이며 방국의 치란이며 그리고 충신의사(忠臣義士)ㆍ간웅 대도(奸雄大盜)의 성패ㆍ선악의 자취를 비록 하나도 빠짐없이 모조리 기억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들을 간추려 기송(記誦)하여 적시에 응용할 준비를 하지 아니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혹시 지필을 가지고 풍월을 읊게 되면, 아무리 백운(百韻)에 이르는 장편(長篇)ㆍ거제(巨題)라 할지라도 마구 내려 써서 붓이 멈추지 않는다. 비록 금수(錦繡)와 주옥(珠玉) 같은 시편은 이루지 못하나 시인의 체재는 잃지 않는다. 자신을 돌아보건대, 자부함이 이와 같은데 결국 초목과 함께 썩게 되는 것이 애석하다. 한 번 붓을 들고 금문(金門)ㆍ옥당(玉堂)에 앉아서 왕언(王言)을 대신하고 고초(稿草)를 검토하며 비칙(批勅)ㆍ훈령(訓令)ㆍ황모(皇謨)ㆍ제고(帝誥)의 글을 지어 사방에 선포하여 평생의 뜻을 푼 뒤에야 말 것이니, 어찌 구구하게 대수롭지 않은 녹을 구하여 처자를 살릴 꾀를 하는 자의 유이기를 바랐겠는가.
아, 뜻은 크고 재주는 높건만, 부명(賦命)이 궁박(窮薄)하여 나이 30이 되도록 오히려 한 군현(郡縣)의 직임도 얻지 못하였으니, 외롭고 괴로운 온갖 상황을 말로 표현할 수 없으니 내 두뇌를 알 만하다. 이때부터 경치를 만나면 부질없이 시를 읊고 술을 만나면 통쾌하게 마시며 현실을 떠나서 방랑하였다.
때는 바야흐로 봄이라, 바람은 화창하고 날씨는 따스하여 온갖 꽃이 다투어 피니, 이처럼 좋은 때를 그저 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윤학록(尹學錄)과 함께 술을 가지고 구경하면서 수십 편의 시를 지었다. 흥이 무르익었을 때 취기로 인해 졸았는데, 윤학록이 운자를 부르며 나더러 시를 지으라고 권하기에 나는 곧 보운(步韻)으로 다음과 같이 지었다.
[주-D020] 보운(步韻) : 남의 시를 화답하면서 연구(聯句)마다 그 원운(原韻)을 사용하는 시체이다.
귀는 귀머거리 되려 하고 입은 벙어리 되려 하니 / 耳欲爲聾口欲瘖
곤궁한 처지에 더욱 세정을 안다 / 窮途益復世情諳
뜻과 같지 않은 일은 십에 팔구나 되고 / 不如意事有八九
더불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열에 한둘도 없다 / 可與語人無二三
사업은 고기처럼 하기를 기약하고 / 事業皐夔期自比
문장은 반마처럼 하려 하였는데 / 文章班馬擬同參
연래에 신명을 점검하니 / 年來點檢身名上
전현에 미치지 못한 게 바로 나의 부끄러움이네 / 不及前賢是我慙
[주-D021] 고기(皐夔) : 고요(皐陶)와 기(夔). 두 사람은 요순(堯舜) 때의 어진 신하였다.
[주-D022] 반마(班馬) : 반고(班固)와 사마천(司馬遷).
윤학록이 나를 보고 말하기를,
“팔구(八九)로 이삼(二三)을 대하니 평측(平仄)이 고르지 못하오. 공(公)은 평일에 있어서는 문장이 훌륭하여 비록 수백 운(韻)의 율시(律詩)라도 한 번 내려 쓰기를 마치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스쳐가듯 빨리 하나 한 글자도 하자가 없었는데, 지금은 한 작은 율시를 짓되 도리어 염(廉)을 어기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주-D023] 염(廉) : 시에서 자음(字音)의 고저(高低)를 맞추는 법이다.
하기에, 나는 말하기를,
“지금은 꿈속에서 지은 것이므로 가리지 않고 내놓은 때문이오. 팔구는 천만(千萬)으로 고치는 것도 또한 불가할 것이 없소. 대갱(大羹)과 현주(玄酒)가 초장만 못하지 않은 법이라. 대가의 솜씨는 원래 이러한 것인데 공이 어찌 그것을 알겠습니까?”
[주-D024] 대갱(大羹)과……법이라 : 대갱은 양념하지 않은 육즙(肉汁), 현주는 물이니, 곧 법규에는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큰 솜씨에서 나온 것이니, 규격에 맞는 시시한 시보다는 낫다는 뜻이다.
하였는데, 말이 채 끝나기 전에 하품하고 기지개하면서 깨니 바로 한 꿈이었다. 그래서 꿈속에 있었던 일을 윤학록에게 갖추 말하기를,
“꿈속에서 꿈에 지은 것이라고 말하였으니, 이것은 이른바 꿈속의 꿈이구려.”
하고는,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따라서 희롱으로 다음과 같이 한 절구를 지었다.
수향이 문득 취향과 이웃하였으니 / 睡鄕便與醉鄕隣
두 곳에서 돌아오니 다만 한 몸일러라 / 兩地歸來只一身
구십 일 온 봄이 모두 꿈이라 / 九十一春都是夢
꿈속에 도리어 꿈속 사람이 되었네 / 夢中還作夢中人
내가 본래 시를 즐기는 것은 비록 포부(抱負)이기는 하나 병중에는 평일보다 배나 더 좋아하게 되니, 또한 그 까닭을 알지 못하겠다. 매양 흥이 날 때나 물(物)을 접촉했을 때에는 시를 읊지 않는 날이 없다. 그렇지 않으려 하여도 되지 않으니, 이것 또한 병이라고 말할 만하다.
일찍이 시벽편(詩癖篇)을 지어 뜻을 나타냈으니, 대개 스스로 상심한 것이다. 또 매일 한 끼니 식사는 두어 숟갈을 뜨는 데 불과하고 오직 술만 마실 뿐이라 항상 이것으로 걱정하였는데, 백낙천(白樂天)의《후집(後集)》에 실린 노경(老境)에 지은 것을 보았더니 병중에 지은 것이 많고, 술 마시는 것 또한 그러하였다. 그 한 시는 대략 이러하다.
내 또한 조용히 운명을 관찰하니 / 我亦定中觀宿命
평생의 부채는 바로 시가일러라 / 多生債負是歌詩
그렇지 않으면 무엇 때문에 읊는 일에 미친 것이 / 不然何故狂吟詠
병난 뒤엔 병나기 전보다 더하겠는가 / 病後多於未病時
꿈에 얻은 시를 수작한 시는 이러하다.
어둡고 어두운 베이불 밑에 / 昏昏布衾底
병과 취함과 졸음이 서로 어울렸다 / 病醉睡相和
운모산(雲母散)을 먹는 데 대해 지은 시는 이러하다.
늦게 먹은 세 숟갈의 밥을 약이 녹이는구나 / 藥消日晏三匙食
그 나머지의 시도 대략 이런 것들이었다. 나는 이런 시를 보고난 다음에 너그럽게 생각하기를,
“나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옛사람도 그랬다. 이것은 모두 숙부(宿負) 때문이니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백공(白公)은 재직 중 병가를 내기를 1백 일이나 하였다. 나는 모일(某日)에 장차 퇴임을 청원할 터인데, 병가를 계산하면 1백 10일이니, 그것이 우연히 이처럼 서로 같다. 다만 부족한 것은 번소(樊素)와 소만(少蠻)일 뿐이다. 그러나 두 첩(妾)은 또한 공의 나이 68세 때 모두 내침을 당했으니 어찌 이때에 있었겠는가. 아, 재명(才名)과 덕망(德望)은 비록 백공에게 미치지 못한 그 거리가 매우 머나, 노경의 병중에 겪은 일들은 이따금 서로 같은 것이 많았다.”
[주-D025] 번소(樊素)와 소만(少蠻) : 백거이(白居易)의 애첩(愛妾)으로, 번소는 노래를 잘하고 소만은 춤을 잘 추었다 한다.
하고, 따라서 그가 병중에 지은 시 열 다섯 수를 화답하여 다음과 같이 정을 서술한다.
노경에 세사를 잊고 평탄한 땅 밟았으니 / 老境忘懷履垣夷
낙천은 나의 스승이 될 만하이 / 樂天可作我之師
세상에 뛰어난 낙천의 재주에는 미치지 못하나 / 雖然與及才超世
병중에 시를 즐기는 것은 우연히 서로 같구나 / 偶爾相侔病嗜詩
그의 당년 퇴임하던 날짜를 비교해보면 / 較得當年身退日
나의 금년 퇴임하는 때와 같다 / 類余今歲乞骸時
낙구(落句)는 빠졌다.
백운거사(白雲居士)는 선생의 자호이니, 그 이름을 숨기고 그 호를 드러낸 것이다. 그가 이렇게 자호하게 된 취지는 선생의 백운어록(白雲語錄)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집에는 자주 식량이 떨어져서 끼니를 잇지 못하였으나 선생은 스스로 유쾌히 지냈다. 성격이 소탈하여 단속할 줄을 모르고 우주를 좁게 여겼으며, 항상 술을 마시고 취해 있었다. 초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갑게 곧 가서 잔뜩 취해 가지고 돌아왔으니, 아마도 옛적 도연명(陶淵明)의 무리이리라. 거문고를 타고 술을 마시며 이렇게 세월을 보냈다. 이것이 그의 실록(實錄)이다. 거사(居士)는 취중에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읊었다.
천지로 금침을 하고 / 天地爲衾枕
강하로 주지를 삼아 / 江河作酒池
천일 동안 계속 마시어 / 願成千日飮
취해서 태평 시대를 보내리 / 醉過太平時
또 다음과 같이 스스로 찬(贊)을 지었다.
“뜻이 본래 천지 밖에 있으니, 천지도 포용하지 못하리로다. 장차 원기(元氣)의 모체(母體)와 함께 무한한 공터의 세계에 노니리로다.”
[주-D026] 백운거사(白雲居士)는……노니리로다 : 이 글은《이상국집》권21 설서 백운거사전(白雲居士傳)의 글과 중복되는데 백운거사전에는 시가 없다.
내가《서청시화(西淸詩話)》를 상고하니, 다음과 같은 말이 실려 있다.
“왕 문공(王文公 왕안석(王安石))의 시에,
황혼의 풍우에 원림이 어두운데 / 黃昏風雨暝園林
쇠잔한 국화 떨어지니 땅에 황금이 가득하이 / 殘菊飄零滿地金
구양수(歐陽脩)가 이 시를 보고 말하기를 ‘모든 꽃은 다 떨어지나 국화만은 가지 위에 말라붙어 있을 뿐인데, 어찌 「떨어졌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니, 문공(文公)은 크게 성내어 말하기를 ‘이는 초사(楚辭)의「저녁에는 떨어진 가을의 국화 꽃을 먹는다[夕餐秋菊之落英]」라는 말을 알지 못함이니, 구양수의 배우지 못한 과실이다.’ 했다.”
나는 다음과 같이 논한다.
시란 보는 일을 읊는 것이다. 내가 옛날 폭풍이 불고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노란 국화를 보았더니, 역시 떨어진 것이 있었다. 문공이 시에서 이미 ‘황혼의 풍우에 원림이 어둡다.’ 하였으니 ‘보는 일을 읊은 것이다.’고 하여 구양수의 말을 일축했어야 옳았을 것이고, 굳이 초사를 이끌었으면 ‘구공(歐公)은 어찌 이것을 보지 못했는가?’라고만 했어도 또한 족했을 것인데, 도리어 ‘배우지 못했다.’고 지목하였으니, 어찌 그리도 편협하였을까?
구양수가 설사 박학 다문한 지경에 이르지 못한 자라 하더라도 초사가 어찌 유경벽설(幽經僻說)이기에 구양수가 보지 못했겠는가? 나는 개보(介甫 왕안석의 자)를 장자(長者)로 기대할 수 없다.
[주-D027] 나는……장자(長者)로 기대할 수 없다 : 이 글은 《이상국집》후집 권11 잡의(雜議) 왕문공국시의(王文公菊詩議)의 글과 중복된다.
나는 옛날 매성유(梅聖兪 성유는 송(宋)의 시인 매요신(梅堯臣)의 자)의 시를 읽고 마음속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옛날 사람들이 그를 시옹(詩翁)이라고 호칭하게 된 까닭을 알지 못하였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겉으로는 약한 듯하나 속으로는 단단한 힘이 있어 참으로 시 중의 우수한 것이었다. 매성유의 시를 알아본 뒤라야 시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옛사람들이 사령운(謝靈運)의 시에,
못 언덕에 봄풀이 돋아난다 / 池塘春草生
는 것을 용하다고 하나, 나는 좋은 점을 모르겠다. 서응(徐凝 당(唐) 나라 시인)의 폭포시(瀑布詩)에,
한 가닥이 푸른 산 빛을 갈라 놓았다 / 一條界破靑山色
는 것은, 나는 매우 좋은 시구라고 생각되는데, 소동파(蘇東坡)는 악시(惡詩)라고 하였다. 이것으로 보면, 나 같은 자의 시를 알아보는 것은 옛날 사람에 미치지 못함이 매우 멀다. 도잠(陶潛)의 시는 담연히 화평하고 고요하여 마치 청묘(淸廟)의 거문고가 줄이 붉고 구멍이 커서 한 사람이 창(唱)하면 세 사람이 화답하는 것과 같다. 나는 그 체를 본받으려 하나 끝내 비슷하게도 할 수 없으니 더욱 가소롭다.
[주-D028] 옛날…… 더욱 가소롭다 : 이 글은 《이상국집》권21 설서 논시설의 글과 중복된다.
송(宋) 나라 선자(禪子) 조파(祖播)가, 우리나라에 오는 구양백호(歐陽伯虎)의 편을 이용하여 시 한 수를 우리나라 공공상인(空空上人)에게 부치고, 겸하여 까맣게 옻칠한 바리때 다섯 개와 반죽장(斑竹杖) 한 개를 주었으며, 또 암자의 이름을 토각(兎角)이라 지어 손수 그 액자를 써서 부쳤다.
나는 두 조사(祖師)가 천 리 밖에서 서로 뜻이 합한 것을 가상히 여기고 또 구양(歐陽) 군의 시명(詩名)을 듣고 무척 사모하였다. 그래서 두 수의 시로 다음과 같이 화답했다.
이곳과 중화 사이 큰 바다 막혔는데 / 此去中華隔大瀛
두 공은 거울처럼 맑은 마음 통했네 / 兩公相照鏡心淸
공공상인이 벌집만한 집을 막 지으니 / 空師方結蜂窠室
조파 선로(禪老)가 토각이란 이름 멀리서 전했네 / 播老遙傳兎角名
지팡이는 예스러워 반죽의 흔적 남았고 / 杖古尙餘斑竹暈
바리때는 신령스러워 벽련의 줄기가 빼어났네 / 鉢靈應秀碧蓮莖
하루에 이처럼 친절하게 사귀어서 / 誰敎一日親交錫
금모(金毛)가 땅을 진동하는 소리를 함께 짓게 하였는가 / 共作金毛震地聲
멀리 천릿길 바다를 건너 왔는데 / 邈從千里渡滄瀛
시운은 오히려 산수의 맑은 기운 머금었네 / 詩韻猶含山水淸
기쁘다 취옹(醉翁)의 원손이 스스로 구양영숙의 11세 손이라 하였다 / 可喜醉翁流遠派
우리들로 하여금 꽃다운 이름을 실컷 듣게 하는 것 / 尙敎吾輩飽香名
하늘에 닿을 듯 옥수는 천 길이나 높고 / 凌霄玉樹高千丈
세상에 상서로운 금지는 아홉 줄기 빼어났네 / 端世金芝擢九莖
일찍이 훌륭한 명성은 들었으나 상면하기 어려우니 / 早挹英風難覿面
어느 때나 친히 음성을 들을 건가 / 何時親聽咳餘聲
[주-D029] 금모(金毛) : 금모 사자(金毛獅子)의 약칭. 《오등회(五燈會)》에 “오색 구름 속에 문수보살(文殊菩薩)이 금모 사자를 타고 왕래하는 것만을 볼 뿐이다.” 하였다.
[주-D030] 취옹(醉翁) : 송(宋) 나라 문인이자 정치가인 구양수(歐陽脩)의 호.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선사(禪師) 혜문(惠文)은 고성군(固城郡) 사람이다. 나이 30여 세에 비로소 승과(僧科)에 급제하여 여러 승질(僧秩)을 거쳐 대선사(大禪師)에 이르렀다. 그는 일찍이 운문사(雲門寺)에 머물렀었는데 위인이 강직하므로 한때 유명한 사대부들이 많이 그를 따랐다. 시 짓기를 즐겨 산인체(山人體)를 체득하였다. 그가 일찍이 보현사(普賢寺)에 쓴 시는 이러하다.
화롯불 연기 속에 범어를 익히니 / 爐火煙中演梵音
고요한 속에 일광은 비치는데 집은 침침하네 / 寂寥生白室沈沈
길 문 밖에 나 있으매 사람들은 남북으로 오가고 / 路長門外人南北
소나무 바위 가에 늙었는데 달은 고금에 밝구나 / 松老巖邊月古今
빈 절 새벽 바람 목탁소리 요란하고 / 空院曉風饒鐸舌
작은 뜰 가을 이슬 파초 상하누나 / 小庭秋露敗蕉心
내가 와서 고승의 자리에 앉으니 / 我來寄傲高僧榻
하룻밤 청담은 그 값어치 만금이어라 / 一夜淸談直萬金
그윽한 풍치가 담겨 있으며, 함련(頷聯)은 사람들의 전송(傳誦)하는 바가 되었다. 그는 호를 송월화상(松月和尙)이라 하였다.
내가 꿈에 깊은 산에서 올라가 길을 잃어서 어느 골짜기에 이르니, 누대(樓臺)가 매우 특이하게 화려하였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 여기가 어떤 곳이냐고 물으니, 선녀대(仙女臺)라고 대답하였다. 조금 뒤에 미인 6~7명이 문을 열고 나와서 맞이하므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더니, 이내 시를 청하였다. 그래서 나는 곧 다음과 같이,
길 따라 옥대에 들매 푸른 문이 열리더니 / 路入玉臺呀碧戶
아름다운 선녀들 나와서 서로 맞이하네 / 翠蛾仙女出相迎
고 불렀더니, 여러 선녀들은 자못 기뻐하지 않았다. 나는 비록 그 까닭은 몰랐지만 곧,
밝은 눈동자와 흰 이로 웃으며 맞이하니 / 明眸皓齒笑相迎
선녀 또한 세정 있음을 비로소 알겠네 / 始識仙娥亦世情
고 고쳐 지었다. 여러 선녀들이 다음 구를 계속 지으라고 청하기에, 내가 여러 선녀들에게 사양하니, 한 선녀가 다음과 같이 연속시킨다.
세정이 나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 不是世情能到我
재자가 범상한 사람과 다름을 어여뻐해서이다 / 爲憐才子異於常
내가,
“선녀도 운자를 그릇 쓰느냐?”
하니, 박장 대소하였다. 따라서 꿈을 깼다. 나는 추후에 그 시를 연속하여 다음과 같이 지었다.
한 구를 겨우 이루고 놀라 꿈을 깨었으니 / 一句纔成驚破夢
짐짓 빚을 남겨 다시 만날 기회로 삼노라 / 故留餘債擬尋盟
서백사(西伯寺) 주지(住持) 돈유 선사(敦裕禪師)가 시 두 수를 부쳐왔다. 사자(使者)가 문에 이르러 독촉하므로 주필(走筆)로 다음과 같이 화답해 부쳤다.
우로 같은 임금 은혜 성기는 게 아니라 / 不是皇恩雨露疏
연하의 높은 생각 스스로 - 원문 1자 빠짐 - 그윽해서라오 / 煙霞高想自囗幽
임금께서 바삐 부르실 줄 아오니 / 須知紫闥催徵召
푸른 산 사랑해 오래 머물 생각 마오 / 休憐靑山久滯留
세상을 은둔하는 진인은 기꺼이 자취를 감추었는데 / 遁世眞人甘屛跡
시세를 따르는 신진들은 다투어 머리를 내미네 / 趍時新進競昂頭
상왕(象王)이 어느 날에나 오셔서 / 象王何日來騰踏
호서의 비린내를 쓸어버릴는지 / 狐鼠餘腥掃地收
장안의 서신이 성기다 마소 / 莫道長安鯉信疏
세속의 소리가 어떻게 그윽한 수운에 이르겠소 / 俗音那到水雲幽
그대는 암당의 연월에서 편안히 은거하시는데 / 巖堂煙月棲身穩
나는 경연의 풍진에서 녹봉 그리워 머문다오 / 京輦風塵戀祿留
생각건대 그대는 도의 풍치가 골수에 스몄을 터인데 / 道韻想君風入骨
가련하도다 나는 벼슬길에서 머리가 희었다오 / 宦遊憐我雪蒙頭
어느날에나 벼슬 버리고 고상한 그대를 따라 / 掛冠何日攀高躅
육척의 쇠잔한 몸 고이 늙을꼬 / 六尺殘骸老可收
또 별도로 한 수를 다음과 같이 지어서 촉(燭)을 준 데 대해 사례하였다.
해동 고운의 십세손인데 / 東海孤雲十世孫
문장에는 오히려 선조의 유풍이 있구려 / 文章猶有祖風存
최치원(崔致遠)의 10세 손이다. 치원의 자는 고운(孤雲)이다.
두 자루 금촉에 시까지 겸해 주셨으니 / 兩條金燭兼詩貺
시는 족히 마음을 밝히겠고 촉은 어둠을 밝히리 / 詩足淸心燭破昏
선사는 다음과 같이 답서를 보내왔다.
“나는 그 시가 인물되어 전하지 못할까 염려하여 이제 간판에 새겨 벽 위에 걸어서 길이 전하게 했소.”
어느날 밤 꿈에 어떤 사람이 푸른 옥으로 된 조그마한 연적(硯滴)을 나에게 주기에, 두드려보니 소리가 나고 밑은 둥글고 위는 뾰족하였으며, 매우 작은 두 구멍이 있었는데, 다시 보니 구멍이 없어졌다. 꿈에서 깨어 그를 이상히 여겨 시로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꿈속에 옥병을 얻었는데 / 夢中得玉甁
푸른 옥 빛이 땅을 환히 비치네 / 綠瑩光鑑地
두드리니 쟁그랑 소리 나고 / 扣之鏗有聲
단단하고 윤택하니 물 담기 알맞다 / 緻潤宜貯水
여유있게 벼루에 물을 부어서 / 剩將添硯波
시 천 장을 쾌히 지으리라 / 快作詩千紙
조물주는 변화하는 걸 기뻐하고 / 神物喜幻化
천신은 아이의 장난 같은 일을 좋아하는구려 / 天工好兒戲
갑자기 구멍이 틈없이 닫혀져서 / 脗然飜閉口
한 방울 물도 받지 않는군 / 不受一滴沘
신선 돌에 틈이 열려서 / 有如仙石開
그 틈에서 석종유(石鐘乳)가 흐르는 것과 같으니 / 罅縫流靑髓
잠시 뒤엔 다시 굳게 닫혀져서 / 須臾復堅合
사람의 쏜가락도 용납하지 않는다 / 不許人容指
혼돈이 일곱 구멍을 얻더니 / 混沌得七竅
이레 만에 바로 죽었노라 / 七日乃見死
폭풍이 뭇구멍에서 일어서 / 怒風號衆穴
온갖 요란이 이로 좇아 일어났다 / 萬擾從此起
박을 쪼개는 일은 굴곡(屈轂)에게 걱정을 끼쳤고 / 鑽瓠憂屈轂
구슬을 꿰는 일은 부자를 괴롭혔다 / 穿珠厄夫子
모든 물건은 그 온전한 것이 귀하니 / 凡物貴其全
박을 쪼개는 일은 도리어 누가 된다 / 瓠鑿反爲累
형체가 온전함과 정신이 온전함에 관해서는 / 形全與神全
칠원리(漆園吏)에게 물어보라 / 要問漆園吏
[주-D031] 상왕(象王) : 불가(佛家)의 말로 가장 큰 코끼리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주지 돈유를 비유한 것이다. 《법원주림(法苑珠林)》에 “진지(進止)는 상왕(象王) 같고 행보(行步)는 아왕(鵞王) 같다.” 라는 말이 보인다.
[주-D032] 혼돈이……죽었노라 : 혼돈은 원기(元氣)가 아직 나뉘기 전의 모양이다. 이 글귀는 장자가 《장자(莊子)》응제(應帝)에서 무위(無爲)의 정치를 설명하면서 “남해의 임금을 숙(儵), 북해의 임금을 홀(忽), 중앙의 임금을 혼돈이라 한다. 숙과 홀이 혼돈의 땅을 찾으니, 혼돈은 이들을 잘 대접했다. 숙과 홀이 혼돈의 은혜에 보답코자 상의하기를 ‘사람은 일곱 개의 구멍으로 보고, 듣고, 먹고, 숨쉰다. 그런데 혼돈만이 구멍이 없으니, 혼돈에게 그 구멍이나 뚫어주자.’ 하고 두 임금은 날마다 구멍 하나씩을 뚫었는데, 이레째 되는 날 혼돈은 그만 죽어 버렸다.”고 한 데서 인용한 것이니, 즉 자연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주-D033] 박을……끼쳤고 : 이 글귀는 《한비자(韓非子)》외저설좌 상(外儲說左上)에 “제(齊) 나라에 거사(居士) 전중(田仲)이란 자가 있었는데, 송(宋) 나라 사람 굴곡(屈轂)이 그를 찾아 보고 ‘제가 들으니, 선생께서는 남에게 의지해서 생활하지 않으신다 합니다. 지금 제게 박 심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 방법을 쓰면 박이 돌처럼 단단해서 구멍을 뚫을 수가 없습니다.’ 그 방법을 선생에게 드리겠습니다.’ 하자. 전중은 ‘박의 좋은 점은 물건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인데, 단단해서 구멍을 뚫을 수가 없다면 쪼개서 물건을 담을 수가 없구려.’ 하니 굴곡은 ‘그렇습니다. 저는 장차 그 방법을 버리려 합니다.’ 했다.” 한 데서 인용한 것이다.
[주-D034] 구슬을……괴롭혔다 : 이 글귀는 《조정사원(祖庭事苑)》등에 “공자가 진(陳)에서 곤액을 당할 때 구곡주(九曲珠)를 꿰려 했으나 꿸 방법이 없었는데, 어느 여자가 방법을 알려주자, 공자는 개미에 실을 매고 그 실에 꿀을 발라 꿰었다.”는 데서 인용한 것이다.
[주-D035] 형체가……물어보라 : 칠원리는 장자(莊子)를 가리킨다. 장자는 《장자》덕충부(德充符)에서 덕의 충실 여부에 따라 외형이 결정되니, 육체의 건전 여부보다 덕의 내실을 기해야 한다는 사상을 강조한 바 있다.
지주사 최공(知奏事 崔公)의 집에 천엽류(千葉榴) 꽃이 만발하였다. 그것은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한(內翰) 이인로(李仁老)ㆍ내한 김극기(金克己)ㆍ유원(留院) 이담지(李湛之)ㆍ사직(司直) 함순(咸淳)과 나를 특별히 초청하여 문자를 내서 시를 짓게 하였다. 나의 시는 다음과 같다.
백옥 같은 미인 얼굴 처음 술에 취하여 / 玉顔初被酒
붉은 빛이 십분이나 더하듯 / 紅暈十分侵
꽃다운 꽃송이 조물주의 온갖 기교 모였고 / 葩馥鍾天巧
아리따운 그 자태 유객의 마음 끄누나 / 姿嬌挑客尋
훈훈한 향기 맑은 날에 나비를 이끌고 / 爇香晴引蝶
불빛처럼 환한 꽃 밤에 새를 놀라게 하네 / 散火夜驚禽
그처럼 고운 것을 늦게 피도록 하였으니 / 惜艶敎開晩
누가 조물주의 마음을 알겠는가 / 誰知造物心
내가 늦게 출세한 것을 비유한 것이다.
내가 중추(中秋)에 용포(龍浦)에 배를 띄워 낙동강(洛東江)을 지나서 견탄(犬灘)에 정박하였다.
때는 바야흐로 밤은 깊고 달은 밝은데, 급류의 여울은 돌을 치고 푸른 산은 물결에 잠겼으며 물은 매우 맑으니 뛰는 고기와 달리는 게를 굽어 보며 셀 수가 있었다. 그래서 배에 의지하여 길게 휘파람부니 기분이 상쾌하여 쇄연(灑然)히 봉영(蓬瀛 봉래(蓬萊)와 영주(瀛洲))의 생각이 감돌았다. 강가에 용원사(龍源寺)가 있었는데, 그 절 중이 나와 맞이한다. 서로 대하여 약간 이야기를 나누고 따라서 두 수의 시를 이렇게 썼다.
물기운 서늘하여 짧은 적삼 엄습하는데 / 水氣凄凉襲短衫
기나긴 맑은 강 쪽보다 푸르구나 / 淸江一帶碧於藍
버들은 도 연명의 문전에 있던 다섯 그루 버들이요 / 柳餘陶令門前五
산은 우강의 해상에 있는 삼신산(三神山)보다 낫다 / 山勝禺强海上三
하늘과 물이 서로 연했으니 상하 구별 어렵고 / 天水相連迷俯仰
구름과 연기 걷히니 동남을 구별하겠네 / 雲煙始捲辨東南
외로운 배를 잠깐 평평한 모래 언덕에 매니 / 孤舟暫繫平沙崖
때마침 자그마한 암자에서 스님이 나온다 / 時有胡僧出小庵
맑은 새벽에 용포에 배를 띄워 / 淸曉泛龍浦
황혼에 견탄에 정박하노라 / 黃昏泊犬灘
조각 구름은 떨어지는 해를 가리우고 / 點雲欺落日
굳센 돌은 미친 물결을 막는구나 / 狠石捍狂爛
수국이라 가을 날씨 먼저 서늘하고 / 水國秋先冷
선정이라 밤 공기 다시 차갑다 / 船亭夜更寒
강산의 진경이 그림보다 나으니 / 江山眞勝畫
그림 병풍으로 보지 말지어다 / 莫作畫屛看
[주-D036] 버들은……버들이요 : 도연명(陶淵明)의 집 옆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가 있었다 하므로 이렇게 말한다.
[주-D037] 산은……낫다 : 우강(禺强)은 해신(海神)의 이름이며, 삼신산은 바다 가운데 있다 하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흥이 날 때 경솔히 읊은 것이라 또한 격률(格律)에 맞는지 알지 못하겠다.
다음날 배를 띄워 노를 젓지 않고 물의 흐름을 따라서 동으로 내려가 밤에 원흥사(元興寺) 앞에 정박하여 배 속에서 기숙하였다. 때는 바야흐로 밤은 고요하고 사람은 잠들었는데, 오직 들리는 것은 물 가운데서 고기가 팔딱팔딱 뛰는 소리뿐이었다.
나는 팔뚝을 베고 조금 졸았으나 밤 기운이 차가워서 오래 잘 수가 없었다. 어부의 노래소리와 상인의 피리소리는 원근에서 서로 들리고, 하늘은 높고 물은 맑으며 모래 빛에 언덕은 하얗고 달빛에 찬란한 물결은 선각(船閣)을 흔든다. 앞에는 기암 괴석이 있어 마치 범이 걸터앉고 곰이 쭈그리고 앉아 있는 듯하였다. 나는 건(巾)을 잦혀 쓰고 배회하노라 자못 강호(江湖)의 낙을 얻었는데, 하물며 날마다 미인을 끼고 관현(管絃)ㆍ가무(歌舞)로 마음껏 논다면 그 낙을 이루 말할 수 있겠는가? 다음과 같은 두 수의 시를 지었다.
푸른 하늘 아득한 물에 떠 있는데 / 碧天浮遠水
구름에 잠긴 섬 봉래산인 줄 알았네 / 雲島認蓬萊
물결 밑엔 붉은 고기 떠 다니고 / 浪底紅鱗沒
연기 속엔 흰 새 날아오네 / 烟中白鳥來
여울 이름은 곳에 따라 바뀌고 / 灘名隨地換
산 풍경은 배를 따라 달라진다 / 山色逐舟回
강성의 술을 불러와서 / 喚取江城酒
유연히 한 잔을 따르노라 / 悠然酌一盃
밤에 모래톱 푸른 바위 가까이에 정박하고 / 夜泊沙汀近翠巖
배 안에 앉아 시 읊으며 성긴 수염 쓰다듬는다 / 坐吟蓬底撚疏髥
물결은 출렁출렁 선각을 흔들고 / 水光瀲瀲搖船閣
달빛은 휘영청 모자 챙을 비추누나 / 月影微微落帽簷
푸른 물결 밀려오니 우뚝한 언덕 잠기고 / 碧浪漲來孤岸沒
흰 구름 끊어진 곳에 나직한 산봉우리 뽀족하이 / 白雲斷處短峯尖
요란한 관악 소리 차마 못 들어 / 管聲嘲哳難堪聽
쟁(箏) 타는 섬섬옥수 부르노라 / 須喚彈箏玉指纖
이때 한 아전을 시켜서 피리를 불게 하였다.
나는 조칙(朝勅)을 받들어 변산(邊山)에서 벌목(伐木)하는 일을 맡아보았다. 벌목하는 일을 항시 감독하므로 나를 ‘작목사(斫木使)’라고 부른다. 나는 노상에서 장난삼아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호위하는 수레 속에 권세 부리니 그 영화 뽐낼 만한데/權在擁車榮可詑
벼슬 이름 작목사라 하니 부끄럽기 그지없네 / 官呼斫木辱堪知
이것은 나의 하는 일이 지게꾼이나 나무꾼의 일과 같기 때문이다.
처음 변산에 들어가니 겹겹이 산봉우리가 솟았다 엎뎠다 구부렸다 폈다 하였고 옆에 큰 바다가 굽어보이고 바다 가운데 군산도(群山島)ㆍ위도(蝟島)가 있는데, 모두 조석으로 이를 수가 있었다. 해인(海人)들이 말하기를,
“순풍을 만나면 중국에 가는 것도 멀지 않다.”
하였다. 일찍이 주사포(主使浦)를 지날 때 밝은 달이 고개에 떠올라 모래 벌판을 휘영청 비추어서 기분이 상쾌하기에 고삐를 놓고 천천히 가며 앞으로 푸른 바다를 바라보면서 한참 동안 침음(沈吟)하였더니 마부가 이상히 여겼였는데,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지었다.
한 해 봄에 세 번이나 이 강가를 지나니 / 一春三過此江頭
왕사가 어찌 이렇게도 쉬지 못하게 하는고 / 王事何曾怨未休
만리라 장엄한 파도는 백마가 달리는 듯 / 萬里壯濤奔白馬
천년이라 늙은 나무는 푸른 교룡이 누웠는 듯 / 千年老木臥蒼虯
바닷바람은 만촌에서 나는 피리소리 전하고 / 海風吹落蠻村笛
모래에 비친 달빛은 포곡에 뜬 배를 맞이한다 / 沙月來迎浦谷舟
추동을 거느리고 가니 응당 나를 괴이하게 여기리라 / 擁去騶童應怪我
아름다운 경치 만날 적마다 오래 머무네 / 每逢佳景立遲留
나는 당초 시를 지을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갑자기 저절로 지어졌다.
[주-D038] 나는……지어졌다 : 이 글은《이상국집》권23 기(記) 남행월일기(南行月日記)의 글과 중복되는데, 남행월일기에는 ‘권재옹군영가타(權在擁軍榮可詫)’로 되었고 ‘한해 봄……’의 시 이하는 없다.
시(詩)에는 아홉 가지의 불의체(不宜體 마땅하지 않은 체)가 있으니, 이는 내가 깊이 생각해서 자득한 것이다.
한 편 안에 옛사람의 이름을 많이 쓰는 것은 바로 재괴영거체(載鬼盈車體)요, 옛사람의 뜻을 절취하는 것은, 좋은 것을 절취함도 오히려 불가한데 절취한 것도 또한 좋지 못하다면 이것은 바로 졸도이금체(拙盜易擒體)다. 그리고 강운(强韻)을 근거없이 내어 쓰는 것은 바로 만노불승체(挽弩不勝體)요, 그 재주를 요량하지 않고 운자를 정도에 지나치게 내는 것은 바로 음주과량체(飮酒過量體)요, 험한 글자를 쓰기 좋아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혹되기 쉽도록 하는 것은 바로 설갱도맹체(設坑導盲體)요, 말이 순조롭지 못한데 사람이 그것을 쓰도록 힘쓰는 것은 바로 강인종기체(强人從己體)요, 통상 말을 많이 쓰는 것은 바로 촌부회담체(村夫會談體)요, 구가(丘軻 구는 공자 이름이고 가는 맹자 이름이다)같은 것을 쓰기 좋아하는 것은 바로 능범존귀체(凌犯尊貴體)요, 거친 말을 산삭하지 않은 것은 바로 낭유만전체(莨莠滿田體)다. 이 불의체를 능히 면한 뒤에야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다.
대저 시란 뜻으로 주를 삼는 것이니 뜻을 베푸는 것이 가장 어렵고, 말을 꾸미는 것이 그 다음 어렵다. 뜻은 기운으로 주를 삼는 것이니, 기운의 우열로 말미암아 곧 천심(淺深)이 있게 된다. 그러나 기운은 하늘에 근본한 것이니, 배워서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기운이 약한 자는 문장을 수식하는 데 공을 들이고 뜻으로 우선을 삼지 않는다. 대개 문장을 다듬고 문구를 수식하면 그 글은 참으로 화려할 것이나, 속에 함축된 심후한 뜻이 없으면 처음에는 꽤 볼 만하지만, 재차 음미할 때에는 맛이 벌써 다한다. 시를 지을 때에는 먼저 낸 운자가 뜻을 해칠 것 같으면 운자를 고쳐 내는 것이 좋다. 다른 사람의 시를 화답할 경우에 만일 험한 운자가 있거든, 먼저 운자의 안치할 바를 생각한 다음에 뜻을 안배해야 한다.
시구 중에 대(對)를 맞추기가 어려운 것이 있으면, 한참 동안 침음(沈吟)해 보아서 능히 쉽게 얻을 수 없거든 곧 그 시구는 아낌없이 버리는 것이 좋다. 시를 구상할 때에 깊이 생각해 들어가서 헤어나지 못하면 거기에 빠지고, 빠지면 고착되고, 고착하면 미혹되고, 미혹하면 집착되어 통하지 못하게 되니, 오직 이리저리 생각하여 변화 자재하게 해야 원만하게 된다.
혹은 뒷글귀로 앞글귀의 폐단을 구제하기도 하고, 한 글자로 한 글귀의 안전함을 돕기도 하니, 이것은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다.
순전히 청고(淸苦)로 시체(詩體)를 삼으면 산인(山人)의 체격(體格)이요, 순전히 화려한 말로 시편을 장식하면 궁액(宮掖)의 체격이다. 오직 청경(淸警)ㆍ웅호(雄豪)ㆍ연려(姸麗)ㆍ평담(平淡)을 섞어 쓴 다음에야 체격이 갖추어져서, 사람들이 능히 일체(一體)로 이름하지 못한다.
시의 병통을 말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기쁜 일이다. 그의 말이 옳으면 받아들이고 옳지 않으면 나의 뜻대로 할 뿐이다. 어찌 듣기 싫어하기를 마치 임금이 간언을 거절하는 것과 같이 하여, 끝내 자기의 허물을 모르고 넘길 필요가 있겠는가?
무릇 시가 이루어지면 반복 관찰하되, 지은 것으로 보지 말고 다른 사람이나 또는 평생 심히 미워하는 자의 시를 보듯하여, 하자(瑕疵)를 열심히 찾아도 오히려 하자가 없어야만 그 시를 세상에 내놓는다.
무릇 옛사람의 시체를 본받으려는 자는 반드시 먼저 그 시를 습독(習讀)한 뒤에 본받아야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표절도 오히려 어렵다. 도둑에게 비하면, 먼저 부잣집을 엿보아 그 집 문과 담의 위치를 눈익혀 둔 뒤에야 그 집을 잘 들어가 남의 것을 탈취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되 남이 모르게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남의 낭탁(囊橐)을 더듬고 협상(篋箱)을 열 때에 반드시 잡힐 것이다.
나는 젊을 때부터 방랑하여 몸을 단속하지 않고 글 읽는 것이 매우 정하지 못하여, 비록 육경(六經)이나 자사(子史)의 글도 섭렵했을 뿐, 원리를 궁구하는 지경에 이르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제가(諸家)ㆍ장구(章句)의 글임에랴. 이미 그 글을 익숙히 알지 못하는데 그 체를 본받고 그 말을 도둑질하겠는가. 그래서 부득불 새말로 짓게 되는 것이다.
[주-D039] 시에는……새말로 짓게 되는 것이다 : 이 글은《이상국집》권22 잡문 논시중미의략언의 글과 중복되나 순서가 서로 바뀌고 “도둑에게 비하면……" 이하는 서로 다르다.
《서청시화(西淸詩話)》에 이산보(李山甫)가 한사(漢史)를 보고 읊은 시가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주-D040] 《서청시화(西淸詩話)》에……그의 말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 이 글은 《이상국집》후집 권11 잡의 ‘이산보시의(李山甫詩議)’의 글과 중복된다.
왕망이 희롱해 오매 일찍이 반쯤 빠졌더니 / 王莽弄來曾半沒
조공이 가져 가니 문득 깊이 잠겼다 / 曹公將去便平沈
나는 이를 아름다운 시구로 여긴다. 그런데 고영수(高英秀)라는 자가 기롱하기를 ‘파강시(破舡詩)’라 하였다.
나는 생각건대, 무릇 시란 물(物)의 체(體)를 말하기도 하고, 또는 그 체를 말하지 않고 곧장 그 용(用)을 말하는 것도 있다. 산보(山甫)가 뜻을 밝힌 것은, 필시 한(漢) 나라를 배[舡]에 비유하고 곧장 그 용을 말하기를 ‘반쯤 빠졌다’ ‘깊이 잠겼다’고 한 것이리라. 만일 그 당시에 산보가 있어서 말하기를,
“자네가 내 시를 파강시라고 하니, 그렇다. 내가 한 나라를 배에 비유하여 말하였는데, 장하도다, 자네가 능히 알아봄이여!”
라고 하였더라면, 영수(英秀)는 무슨 말로 답변했겠는가. 《시화》에서는 또한 영수를 함부로 지껄이는 경박한 무리로 여겼다면 반드시 그의 말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천하에 여의치 않은 일이 십중 팔구인데 인생이 이 세상에 처할 때 뜻에 맞는 것이 그 얼마인가?”
라고 하였다. 나는 일찍이 위심시(違心詩) 열두 구를 지었는데, 그 시는 이러하다.
인간의 일들은 고르지 못하여 / 人間細事亦參差
걸핏하면 마음과 틀린다 / 動輒違心莫適宜
젊을 땐 집이 가난하여 아내도 업신여기더니 / 盛歲家貧妻尙侮
늘그막엔 녹봉이 두둑하니 기생이 항시 따른다 / 殘年祿厚妓常隨
비 올 때 나가 노는 날이 많고 / 雨霪多是出遊日
갠 날은 모두 내가 한가히 앉아 있을 때라 / 天霽皆吾閑坐時
배 불러 숟가락 놓으니 아름다운 고기를 만나고 / 腹飽輟飡逢美肉
목구멍 아파 술 금하니 좋은 술을 만난다 / 喉瘡忌飮遇深巵
저장된 보배를 헐하게 팔고 나니 값이 오르고 / 儲珍賤售市高價
묵은 병이 막 낫고 나니 이웃에 의원이 있네 / 宿疾方痊隣有醫
세쇄한 일이 잘 아니됨도 이와 같은데 / 碎山不諧猶類此
양주에서 학 타는 일은 더구나 기대하겠나 / 揚州駕鶴況堪期
[주-D041] 양주에서 학 타는 일 : 욕심이 많은 것을 비유한 것인데, 여기서는 뜻대로 되지 않음을 비유한 것이다. 소식(蘇軾)의 녹균헌시(綠筠軒詩)에 “세상에 어찌 양주 학이 있겠는가 [世間那有揚州鶴]” 하였는데, 그 주(注)에 “옛날 어떤 사람들이 모여서 각기 소원을 말하게 되었다. 한 사람은 양주 자사(揚州刺史)가 되기를 원하고, 한 사람은 재물이 많기를 원하고, 한 사람은 학을 타고 하늘에 오르기를 원했는데, 한 사람은 허리에 10만 관의 금을 차고는 학을 타고서 양주 상공을 날기를 원했으니, 곧 앞의 세 사람의 소원을 겸하려 한 것이었다.
대저 만사가 마음과 틀리는 것은 거개 이와 같다. 작게는 일신의 영췌(榮悴)ㆍ고락(苦樂), 크게는 국가의 안위(安危)ㆍ치란(治亂)이 마음과 틀리지 않은 게 없다. 졸시(拙詩)는 비록 작은 것을 들었으나 그 뜻은 실로 큰 것을 비유하는 데 있다. 세상에서 전하는 사쾌시(四快詩)는 이러하다.
큰 가뭄에 좋은 비를 만나는 것이요 / 大旱逢嘉雨
타향에서 친구를 보는 일이로다 / 他鄕見故人
동방에 화촉을 밝히는 밤이요 / 洞房花燭夜
금방에 이름이 걸릴 때일러라 / 金榜掛名辰
그러나 가뭄 끝에 비록 비를 만난다 하더라도 비 뒤에는 또 가물 것이고, 타향에서 친구를 본다 하더라도 방금 또 작별할 것이고, 동방 화촉이 생이별하지 않을 것이라 어찌 보장하며, 금방에 이름 걸리는 것이 우환(憂患)의 시초가 아니라는 것을 어찌 보장하겠는가? 이것이 바로 마음에 틀리는 게 많고 마음에 맞는 게 적은 것이니 탄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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