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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꾜일대의 일정을 끝내고 오늘은 신간센을 타고 동북부지방에 있는 야마가타(山形)현으로 이동하는 날이다. 이 지역에서의 일정은 두 가지 중요한 일정이 있는데 첫째는 Home Stay이고 둘째는 總合高等學校(우리의 종합고등학교)의 방문이다.
<일 본 국 철 전 국 노 선 도> 신간센은 220km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는데 체감속도는 빠르다는 것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정숙하고 소음이 적었다. 2시간 30여분을 달린 후에 야마가타시에 도착하였다. 역에는 야마가타 교육청 학사과 직원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들은 이 지역의 명물인 소바(메밀국수)를 전통 일본식 정원이 있는 음식점에서 점심으로 제공하며 우리를 위한 환영식을 간단히 치루었다. 격식을 좋아하는 일본인의 모습을 또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야마가타는 일본 동북부 중추 도시로서 자연경관이 뛰어난 지역으로 산, 강, 바다 등 변화가 다양한 자연환경 속에서 126만 여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고, 농업(사쿠란보, 사과, 포도, 쇠고기, 메밀, 술, 와인) 에 기반을 두고 스키장, 온천, 전통문화를 접목시킨 관광지로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오후에는 야마데라(山寺)와 뱌쇼기념관을 둘러보았다. 야마데라는 860년 자각대사에 의해 세워진 천태종 사찰로 일본 동북지방을 대표하는 영험한 장소로 사람들에게 신앙의 대상지라고 한다. 기이한 암석들을 따라 1100개의 계단을 오르는 도중에 석불과 納經堂, 開山堂 등 이 있으며 五大堂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일품이었다. <야마데라석상> 야마데라를 안내하신 분은 74세의 할머니셨는데 40여년 동안 이 절의 안내를 맞고 있으시다고 했다. 얄미우리 만큼 철두철미한 일본인의 직업정신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다음으로 우리는 우리나라 시조와 같은 하이쿠 시인 마츠오 바쇼기념관을 관람하고 녹차를 마시며 Home Stay를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야마가타의 호텔 연회장에서 Home Stay 가정과의 대면식 및 환영식이 저녁식사를 곁들여 진행되었다. 일어교사 세분과 영어교사 두분을 제외한 교사들은 언어문제로 고민을 하였으나 다행이도 나의 호스트도 고교 영어교사인지라 우리는 테이블에 앉자마자 쉴새없이 웃고, 얘기했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오누이처럼----. 외무성 직원과 통역원들이 부러워 할 정도로 우리는 언어의 장벽을 잊고 마구 얘기했다. 식사 후 호텔을 떠나 가쭈꼬(54세: 2남1녀의 어머니)의 집으로 갔다. 전통적인 일본식 2층집으로 집과 정원이 아주 넓었다. KAZUKO의 남편은 아마가타 방송국의 PD로 서예에 조예가 깊고 영어에 능통하여 내가 생활하는 데에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KAZUKO는 여러 가지로 계획을 세워 많은 곳과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여 주었고 한국인 교포도 초청하여 한국식 김치도 맛보게 해주는 배려를 해 주었고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보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교육 등 거의 모든 면을 주제로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진정 그네들이 생각하는 한국, 한국인의 실체를 이해할 수 있었고 그들 또한 올바른 한국인의 대 일본관을 이해할 수 있어서 유익했을 것이다. 교육에 관해서 주고받은 내용을 얘기해 보자면 1) 교사들에 대한 능력급제가 동경도에는 이미 시행중에 있으며 향후 일본 전국에 걸쳐 시행될 것이다. (일본은 교육자체제가 잘 되어 있음) 2)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선택을 당하고 있으니 강박관념이 크게 작용한다 3) 한국에서는 이미 시행중인 영어교사들의 원어민 영어연수나 TOFEL, TOEIC TEST를 내년부터 일본 문부성에서 실시한다고 한다 4) 점수밖에 모르는 교사들이 너무 많다. 5) 교장선생님들 대부분이 권위가 심하고 고과성적을 공개하라고 하면 다음해에 불이익을 당한다 6) 교사 개인용 컴퓨터도 사주지 않으면서 컴퓨터를 수업에 적극 활용하라고 한다 등 우리도 세겨 볼 것이 있는 것 같다. 이 들 부부는 나를 만나기 위해 남편과 같이 6개월 정도 배웠다는 한국어 실력을 가끔 과시하기도 했다. 나도 일본어를 공부하기로 약속했다. 또 잊혀지지 않는 것은 KAZUKO 집 정원에 '무궁화' 나무가 두 그루 있다는 것이다. 후에 일행들과 만나 민박에 관한 얘기를 들어보니 대부분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서 관광만 하고, 술만 마시고, 잠만 잤다고 하는 데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얘기하고 깨달은 것 같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 중 이름을 대라니까 이승만과 박정희를 알고 있다고 했다. 이승만은 독트린으로, 박정희는 쿠테타를 일으킨 사람으로---. 역대 대통령과 한국의 근대사를 설명하니 사회선생님이 구체적으로 물어서 이 부분의 토의에 시간이 많이 흘러 갔다 KAZUKO 집에서의 마지막 밤은 송별 파티로 깊어 갔다. 1박2일 간의 짧은 기간 동안 만난 많은 각 분야의 사람들이 초청되고 또 우리는 얘기를 나누며 서로의 장기를 뽐내며 두 나라 사이의 민간 우의를 다져 갔다. 가슴 뭉클한 밤이었다. 물론 선물도 주고 받았다. 친절에 감사드리며 한국방문을 권유했다. 5월29일(월) 7시 50분 야마가타 현청에서 헤어져 있던 단원들을 만났다. 대부분의 단원들이 민박을 떠날 때와는 달리 유쾌한 표정이었으며, 중류 일본인들의 생활상을 가까이에서 체험할 수 있었기에 나름대로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는 평가를 내렸다. 오전 시간은 야마가타 현립 메이신간(明新館) 고등학교를 방문하였다. 앞서 방문했던 학교들과는 달리 야마가타 지방의 특성에 맞추어 농업 교육 과정이 개설되어 있었다. 지방 특산물인 체리를 가공하는 실습 시간을 참관하였는데 실습복을 착용한 20여명의 학생들이 이론 교사와 실기 교사의 지시에 따라 열심히 수업에 임하고 있었다. 즉 이론과 실습을 동시에 하고 있는 것이었다. 다음으로는 컴퓨터 수업을 참관하였다. 인터넷 활용 수업이었는데 검색 엔진인 야후 저팬(YAHOO JAPAN)을 이용하여 자신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찾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컴퓨터 수업을 참관하면서 느낀 것은, 교사나 학생 모두 정보 활용 능력의 측면에서만은 우리가 일본보다 약간 앞서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이것은 여러 단원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학생들에게 이메일(e-mail)을 가지고 있는가를 물으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없다고 하였다. 나머지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1세기는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 중의 하나가 정보화 능력이라는 점을 놓고 볼 때, 우리도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방심하지 말고 우리도 정보 활용 능력을 제고시키기 위해 공교육의 차원에서 좀더 체계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수업 참관 후에는 간담회를 가졌는데 시간이 짧은데다가 우리가 일방적으로 묻고 일본 교사들이 대답하는 형식이라 일본의 교육이 안고 있는 현안과 문제점, 지향하는 바 등에 대해 입체적으로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이 학교 역시 시설과 교육여건은 우리들을 놀라게 했다. 한 학년은 보통과 6학급, 농업계열 2학급(원예공학과, 식품과학과), 상업계열 1학급(정보경영과)으로 총360명 정원으로 160여 교과목이 개설되어 있었다. 시골 학교 특성상 넓은 운동장과 각종 체육시설들은 정말로 부러웠고, 특히 이 학교는 특기·적성활동이 활발하였고, 학생들에게 스포츠, 각종 탐험활동, 국내외 여행 등을 많이 시키는 것 같았고 PTA활동이 활발하여 회보를 14호째 발행하고 있었다(1995년 개교) 특별히 부러운 것은 희망자에 한하여 방학중에 외국어 교사의 인솔로 해외여행을 체험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점심 식사를 끝으로 야마가타에서의 일정을 모두 끝내고 이제는 교토(京都)로 이동해야 한다. 야마가타 공항에서 일본 국내 항공인 JAS582편으로 오사카(大阪)에 있는 간사이(關西)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간사이 공항은 현재 공사 중인 우리 나라의 영종도 공항처럼 바다를 매립하여 만든 공항이었는데 하늘에서 내려다본 오사카는 아름다운 항구였다. 오사카에서 교토까지는 고속도로로 이동하였는데 도로가 복잡하여 1시간 30분이나 걸렸다. 일본 요리인 가이새키(京懷石)가 저녁식사로 제공되었는데 먹기에 아까울 정도로 예쁘게 차려져서 나왔다.(일본식 풀코스요리) '일본 요리는 눈으로 먹어야 한다'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양도 적으면서 음식의 조화로운 색깔 등 시각적인 것을 중요시하는 듯 했다. 저녁 식사 후 우리는 교토역 근처에 있는 신미야코 호텔에 여장을 풀고 자유시간에 들어갔다.
5월30일(화) 오늘부터는 우리나라의 경주지역과 같은 성격의 교토(京都)·나라(奈良) 지역을 시찰하는 일정으로 잡혀있다. 교토(京都)는 도쿄에서 서남쪽으로 513km 떨어진 곳으로 1000년 이상(794∼1868) 이 나라의 수도였으며 동시에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에도시대(江湖時代)가 끝나고 메이지천황(明治天皇)이 수도를 도꾜로 정할 때까지 계속 천황과 황실이 살던 곳으로 도시전체가 문화유산으로 가득 차 있어서 부럽기만 하였다. 수세기에 걸쳐 잘 보존되어 온 많은 절과 신사 그리고 일본식 정원, 바둑판처럼 잘 정돈된 교토거리에는 2개의 장엄한 고궁을 비롯해 1650개의 절과 약400개에 달하는 신사가 있다. 이런 문화유산을 배경으로 매달 여러 번의 화려한 마쯔리(祝祭)가 펼쳐진다고 한다.
<호오류사에서 방일연수단 모두 찰깍> 나라는 710년의 헤조교(平城京)에 천도한 뒤 70여 년간 일본의 정치·문화 의 중심지였고 그 결과 격식 있는 사찰, 불상, 신사, 고궁 등 수많은 유적지들과 연중 끊이지 않은 고풍이 가득 담긴 행사들로 유명한 도시이다. 오전엔 호오류사(法隆寺)와 나라지역을 오후에는 도다이사(東大寺)와 나라지역을 시찰하였는데 상상을 초월한 사찰의 규모와 보존 상태에 부러움을 느꼈다. 우리 나라의 문화재가 대부분 전란-특히 임진왜란-으로 찬탈 당하거나 훼손되어져 우리나라에 없거나 유실되었는데 한국을 침략했던 이들의 문화재는 외침을 받지 않아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또 한번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꼈다. 안내원의 설명에 의하면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역사 유적지인 이 곳은 폭격하지 않았다고 한다. 호오류사는 아스카시대(6C중엽∼8C초)의 건축물로 백제의 영향을 크게 받은 절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절이다. (금당벽화) 또 팔작지붕의 말아 올려진 추녀가 우리 나라의 고대 사찰이나 궁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추녀의 형태였다. 이 들의 자연환경 보호 노력은 대단하여 모든 차는 아무리 덥거나 추워도 차의 시동을 걸어둔 채 대기할 수 없도록 법제화 되어 있어서 차만 타면 한동안은 더위에 시달려야 했다.수학여행(遠足)온 학생들에 관한 예기를 해보면, 교토·나라지역 어디를 가더라도 수학여행단을 만날 수 있었는데, 우리의 수학여행단과는 확실히 달랐다. 차량 한 대마다 1명씩의 안내원이 있어서 이 들은 차량내에서의 안내는 물론이고 가는 곳 구석구석마다 학생들을 모아 놓고 충분한 설명을 해 주었다. 또한 수학여행 노트를 만들어서 가는 곳마다 기록을 할 수 있도록 해 실질적인 수학여행이 되도록 하였으며, 그 들의 질서의식은 익히 아는 바 그대로였다. 우리의 수학여행과 비교해 보니 얼굴이 붉어졌다. 나라 중심부 호텔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도다이사(東大寺)를 관람하였다. 도다이사는 글자 그대로 동쪽에 있는 큰 절이란 뜻인데 대부처의 높이는 16.2m, 무게 452t으로 일본 최대급인데 이 부처를 모신 본당 역시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건물인데 이 것들은 모두 8C 중엽에 건조되었으나 화재로 여러번 손상되었고 현재의 본당은 1709년에 재건된 것이란다. 이 절에는 대단한 가치의 미술, 공예, 기록, 생활 각 방면에 걸친 다양한 보물을 저장한 보물저장소인 쇼소원(正倉院)이 있어서 1년에 한 번(10월하순∼11월중순) 일반에게 공개된다고 한다. 이 도다이사의 큰 특징은 방목해서 기르는 꽃사슴이 수백마리나 된다는 점이다. 안내자의 설명에 의하면 이 절에 방목하여둔 사슴들은 자연상태에서 자기들끼리 번식과 먹이를 해결할 뿐 관광객이 던져주는 먹이 외에는 사람이 주는 먹이는 없다고 하였다. 이 사슴들은 도다이사 매표소 입구부터 관광객 사이를 자유로이 배회하고 먹이도 얻어 먹고 사진 배경도 되어주고 하는 모습, 학생들도 전혀 사슴들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 모습에서 일본의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우리 아이들을 여기에 데려다 놓으면 사슴들은 어떻게 될까? 교토로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였다. 교토 중심부 일본식 식당에서 교요리(京料理)라 불리는 교토식 일본요리(풀코스)를 먹고 자유시간을 가졌다. 교토의 밤은 도꼬에 못지않게 화려하였다. 특히 교토역사 주변을 싸고 있는 대형 건축물들은 규모면에서 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면에서도 충분히 관광객들의 발길을 멈춰 세웠다. 5월31일(수)
<이조성(二條城)> 오늘은 교토에 있는 금각사(金閣寺), 이조성(二條城), 청수사(淸水寺) 등을 둘러보는 날이다. 관광을 하는 하루종일 비가 내려 어려움이 많았다. 긴카
꾸지(金閣寺)는 처음에는 아시카가쇼군(足利將軍)의 산장으로 지어졌다가 사후 절로 된 것으로 건물 전체가 금박으로 빛나는 2층 누각과 아름답게 가꾸어진 일본식 정원이 일품인 절이다. 가요미즈데라(淸水寺)는 1633년 당시 도쿠가 장군에 의해 건립된 절로 계곡 위에 서 있는데 139개의 거대한 나무기둥이 본당을 지탱하고 있었는데 이 기둥의 높이가 무려 15m나 된단다. 이 절에는 짝사랑하는 연인이나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연인들이 와서 소원을 빌면 사랑이 이루어지는 데 특히 영험이 있다는 신사가 있어서 해마다 많은 청춘 남녀들이 쁹는다고 한다. 이조성(二條城)은 도쿠가와 시대에 도쿄에 상주하던 쇼군(將軍)이 천황을 배알하러 교오토에 왔을 때 머물렀던 성으로 당시 실질적인 정치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사람이 머물렀던 장소답게 그 규모가 궁궐이나 다름없었다. 보존 상태도 거의 온전했으며, 특이했던 점은 내부까지도 일반인 및 학생들에게 공개하여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우 리는 전통 기모노 전시 및 생산공장으로 향했다. 점심 식사를 위해 1층에 있는 식당으로 안내된 우리는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의 비빔밥을 일본식으로 변화시켜 그것도 한국인 앞에 내어놓는 것이 아닌가? 주방장을 불러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으니 한국에 여행을 갔을 때 하도 맛이 있어서 한국을 몇 번 방문하여 배워서 메뉴로 내어놓고 있다고 했다. 그들의 이이도코토리(좋은 것은 기꺼이 취한다) 정신을 여기서도 느낄 수가 있었다. 식사 후 우리는 다양한 일본의 기모노를 감상하고 그 제작과정을 관람하였다. 기모노 한 벌이 비싼 것은 3천만원이나 한다고 한다. 우리에게 기모노 염색과정을 체험하는 과정이 있었는데 좋은 체험이었다. 만든 본인의 작품은 전문가의 처리를 거쳐 본인에게 주어졌다. 염색체험을 끝내고 우리는 중심가 쇼핑에 나섰다. 환율의 차이를 실감하며 국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녁엔 만찬을 겸한 연수단 자체 평가를 실시하였다. 조별로 연수기간 중 보고 느꼈던 점들을 발표하고 토론도 하면서 스스로를 점검해 보았다. 대부분의 단원들의 발표내용은 우리가 일본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내용들은 획일적 찬양이나 무조건적 비판이 되어서는 안되며 우리나라 교육여건과 냉정한 역사적 통찰력, 민족적 정서를 고려하여 양국의 이해와 협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소프트웨어로 활용하자는 견해였다. 호텔에 돌아와 일본측에서 요구하는 보고서와 교육부에서 요구하는 설문지를 작성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6월1일(목) 이제 한국으로 떠나야 하는 날이다. 한국을 떠나올 때처럼 일본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묘한 만감이 교차하였다. 간사이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버스 속에서 우리는 일본측 안내원과 담소도 하면서 서로서로 연락을 하자고 약속도 하고
부산에 한번 놀러오라고도 하였다. 짐을 부치고 공항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후 우리를 위해 10일 동안 그림자처럼 동숙하며 수고해 주신 교포 권혜경씨, 모리시다상, 구보야마상과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그리고 출국 수속, 멀리 우리들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한없이 손을 흔들어 대던 권혜경씨의 모습에서 민족의 동질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3시32분 간사이 공항을 출발한 KE726편은 5시10분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긴 여정의 끝이었다. 입국수속과 짐을 찾고 간단한 해단식을 한 후 서둘러 부산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 동안 우리 연수를 위해 애써 주신 송영현 담장님과 국제교육진흥원 관계자 여러분들, 일한문화기금의 이와모토씨를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들 및 권혜경, 모리시타씨에게 감사를 드리며 특히 HOMESTAY를 통해서 일본인의 생활상을 접하게 해준 아마가타의 KAZUKO 선생님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