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질곡의 역사
滿 空 高 舜 澤
1. 탐라국(기원전 57년- 1402년)복속 및 소멸
2. 몽골의 제주 지배(1273- 1374년, 101년간)
3, 이조시대 탐관오리의 횡포
4. 2차 대전말기 대규모 일본군 주둔
5. 4.3 사건 및 한국전쟁
【4.3 사건 발생.】
【한국전쟁 발발】
6. 외지자본 대거유입에 따른 불만 증대
7. 중앙정부 및 외지인에 대한 불신 증대
1. 중앙정부에 의한 탐라국 복속 및 소멸
▣496년 백제에 복속된 이후, 660년 신라에,
그리고 938년 고려 등 삼국에 연이어 복속 된 이후
▣1402년(태종 2년) 조선에 완전 병합 됨으로서
▣기원전 2337(단군 보다 4년 전)년에 건국이 된 탐라국은
개국이후 3,00여년을 이어오다 완전하게 소멸이 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음
2. 몽골의 제주 지배(1273- 1374년, 101년간)
【삼별초군 제주항쟁 및 패망】
▣전남 진도에서 여, 몽연합군에 패퇴한
삼별초군(대장 김통정)은 1270년
진도 주민 등 1만 여명(?)과 함께 제주도로 이동된 이후
▣1273년 여몽연합군(선박 160척, 1만 2천 여명)에 의해
삼별초의 난이 진압
▣이 때 제주도민들은
삼별초를 외세(몽골) 및 중앙정부의 각종 수탈을 막아주는
해방군으로 인식하고 삼별초에 많은 협조함으로서
상당한 인적, 물적 피해 불가피
【100년간 몽골의 직접지배】⇨ 엄청난 피해, 半 몽골화
▣1273년- 1374년간 몽골 직접 지배
▣고려, 삼별초군 정벌에 적극 협조한 원나라(몽골)에
사실상 제주 지배권 이양
▣몽골은 이 기간 중
탐라 다루가치(지방 행정관)를 직접 파견,
제주를 직할지로 통치하면서
기간 중 목호(목장 관리인) 700- 1400여명 상시 상주
▣기간 중 탐라는
몽골의 현지주민에 대한 몽골화와 함께
몽고의 일본공략을 위한 전략기지로 이용되면서
엄청난 수탈이 자행되었음
(말 공급, 선박 건조용 한라산거목 채취 등)
☆제주에서 제일 쌍욕은 “이 몽고놈의 자식” 또는
“이 몽고놈의 x으로 생긴 놈” 등임
▣또한 원나라(몽골) 멸망(1368년) 후
제주 목호 소탕과정에서 주민의 엄청난 피해 불가피
◉元나라 멸망 후 明나라는
고려조정을 통해 제주의 목호들에게 말 2천필을 요구.
◉이에 대해 제주의 목호들은 말 400필 이상은 못 내겠다며
明나라의 요구를 사실상 거부하자
◉고려 정권에서는 明나라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무력으로 이들 목호(목호의 난)들을 소탕
★최영 장군은 1374년
전함 314척에 군사 2만 5,600명을 동원하여
한림 명월포구 중심으로 상륙하여
새별오름 전투에서 몽골 목호를 완전 소탕
◉100년 동안의 몽골 지배로
사실상 半 몽골화가 되어버린 제주도민 들도
이 전투 과정에서 엄청난 피해를 당했을 뿐 아니라
◉전투가 끝난 이후에도
고려 정부에서는 몽골군에 부역한 주민을 색출하여
처단을 하는 등으로 2차 피해를 당하였음
☆일부에서는 이 때 2차 피해를 당한 상황을
4, 3사건당시 양민의 피해와 비교를 하기도 함
▣몽골의 탐라 지배 과정에서 제주는 사실상 半 몽골화(?)
⊙제주마, 돌하루방, 제주어⇨ 제주 문화의 몽골화
◉몽골반점, “몽고놈의 자식”⇨ 제주인의 半 몽골화
◉원당사, 법화사(몽골 왕실의 원찰) 등 다양한 유산 잔존
★과거사 각종 사료에 수록된 “제주 목 姓氏”내용
趙· 李· 石· 肖· 姜· 鄭· 宋· 周· 秦씨의 본관은 元이며,
梁· 安· 姜· 對씨의 본관은 운남이다.
운남을 본관으로 하는 4개 姓氏는 元나라가 망한 뒤
明나라가 유배 보낸 元의 후손들이라 전해지고 있음
3. 이조시대 탐관오리의 횡포
▣이조 500년간 제주목사 290여 명 중
대부분이 탐관오리의 역할.
◉매관매직 등으로 평균 부임기간 1년 반 내외.
재임기간 중 착취 급급
☆선정 목사 20여명에 불과
◉이재수의 난 등 각종민란 빈번, 배비장전
▣유배 1번지, 이조시대 500여명 유배
◉대역죄인, 대중죄인이 다수.
◉이중 추사 김정희, 우암 송시열 등 저명학자,
제주인의 의식개혁(교육열 함양 등)에 큰 공헌
4. 2차 대전의 일본 군 최종 방어기지
▣2차 대전 종반에 미군은
제주를 통해 일본 본토 상륙을 계획
(최종적으로 미군은 오끼나와로 상륙)
☆미군의 제주공습에 대비하여
제주도민에 대해 제주를 떠나라는 소개령도 발동.
다수의 주민 강제적으로 육지부로 소개
▣종전직전 일본군 제 58군 소속 6만 6천 여명 주둔.
각종 방어진지 구축, 제주도 전역 요새화
◉주요 오름(사라봉, 별도봉, 채오름 등)마다
각종 벙커 구축.
◉대정읍 소재 가마오름 지하에 1개 연대 지휘부 진지 구축
◉모슬포 송악산, 성산 일출봉 등에
해안 진지 구축. 가미가제 자살 특공대 주둔
◉각종 진지 구축에 제주도민 강제 동원
5. 행방직후 및 한국전쟁을 전후한 혼란기
▣4.3사건 발생.
◉정부 수립이전인 48년 4월3일 남로당에 의해
5.10 총선거 정부 반대 봉기
◉정부군의 무자비한 진압 등에 따라,
48-53년간 2만 여명의 주민 사망
(당시 제주 인구 20만 여명의 10%)
◉세계적으로 보기드문 비극이 이 땅에서 발생-
외지인에 대한 극도의 경계의식 증대
▣한국전쟁 기간 중
◉제1훈련소 주둔(대정읍 모슬포지역)과 함께
피난민 대거 유입, 구걸, 절도 행각 등으로
◉제주지역의 민심은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피폐
6. 외지 자본 대거유입에 따른 재산상 손실초래
▣관광개발 등 목적으로 토지 저가 매입 및 수용
☆중문관광단지 개발(정부 주도)등 다수
▣개발이후 급등한 토지 가격으로 상대적 반발의식 표출
▣최근 강정해군기지 건설관련 일부계층 반발 유발
7. 외지인에 대한 경계 심화
▣외지인에 대한 불친절의 습관화
외지인에 대해 “육지 것” 등 비하
외지인이 궁금한 사항을 문의하면
퉁명스럽게 “모르쿠다(모르겠다)” 등 불친절하게 응대
▣16대 국회의원 선거(2003년) 이후
거의 20년 가까이 도내 3개 선거구에서 당선된
국회의원 12명 전원이 진보정당 출신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