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신화시대 (2)
▣기록에 따르면, 아득한 옛날 세 신인은
황량한 들판에서 사냥을 하여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살았는데,
하루는 자줏빛 흙으로 봉하여 진 나무함이 동쪽 바닷가에 떠밀려와
이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돌함이 들어 있었다.
돌함을 열었더니 푸른 옷을 입은 세 처녀와 송아지· 망아지와
오곡 씨앗이 들어 있었다. 이 세 여인은 벽랑국의 공주들로,
세 신인은 나이에 따라 세 공주를 맞아 혼인지에서
목욕하고 혼례식을 올렸다고 전해진다.
☆고려사지 등에 따르면 高 ·梁 · 夫 삼성(三姓)의 시조가
벽랑국에서 온 세 명의 공주를 각각 아내로 맞이해
탐라국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벽랑국은 현재 전라남도 완도군에 위치했던 나라이다.
탐라에 농경과 가축, 직조, 의상, 국가조직을 전했다.
신라 후기 경덕왕 때 불렸던 탐진현 남쪽 섬의 하나인
벽랑도(현재 소랑도)였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조 후기까지의 각종 자료에는
벽랑도가 강진현의 섬으로 기록되어 있다.
☆탐라국 설화에 벽랑국은 제주의 동쪽에 위치하며
섬의 정상에 서면 제주도가 보이고
섬의 둘레가 4리(2㎞ 내외) 에 달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토대로 현지답사를 벌인 결과
완도군 금일읍 소랑도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나왔다.
신화이니 정확하진 않겠지만 소랑도일 가능성도 있다고 보여 진다
☆이 벽랑국의 실체를 놓고 학계에선
아라비아· 일본· 한반도 등 여러 설이 분분하다
일설에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전남 해안의 벽랑도(현 소랑도)가
벽랑국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신화이니 실체를 밝히는것은 어렵겠다. 추정만할 뿐이다
☆성산읍 출신 항해학자 채바다는
벽랑국이 완도지방의 고대 소국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는 완도 인근의 지명과 전설과 지리적인 근접성 등을 들어
완도가 벽랑국 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벽랑이라는 지명이 나오는 문헌을 보면
고려사지리지(벽랑도: 탐진현 1454년),
동국여지승람(벽랑도: 강진현 1486년),
신증동국여지승람(벽랑도: 강진현 1530년),
동여도(벽랑도: 강진현 1861년),
대동여지도(벽랑도: 강진현 1864년)에 벽랑도의 기록이 보인다.
강진현에 속하는 도서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완도, 고금, 약산, 신지, 청산 등이었으므로
지금의 완도군 관할지역이다. 이는 고대 국가인 벽랑국이
완도에 존재했음을 시사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모흥혈의 세 개의 지혈은
주위가 수백 년 된 고목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모든 나뭇가지들이 혈을 향하여 경배(敬拜)하듯이
신비한 자태를 취하고 있다.
또한 아무리 비가 많이 오거나 눈이 내려도 일년 내내
고이거나 쌓이는 일이 없는 성혈로서
이곳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하고 있다.
▣나무함이 발견된 곳은 온평리 바닷가 ‘쾌성개’라 하며,
이것이 떠오른 곳을 ‘황루알’이라 하고
세 처녀가 바닷가에서 처음 디뎠다는 발자국이
바위 위에 지금도 남아 있다.
☆'쾌성개'(황루알) 해안⇨ 궤짝을 열자 벽랑국의 세 공주가 나타났고
이에 너무 기뻐 소리를 질렀다고 해서 '쾌성개'
또한 세 공주가 도착할 무렵에는 석양이 바닷물에 비쳐서
황금빛 노을이 출렁거려 마치, 황금빛 노을에 물들었다는 뜻말.,
황루(노). '알.'은 제주 방언으로 '아래'하는 뜻.
▣혼인지는 제주시 삼성혈에서 솟아난 高· 梁· 夫
(梁은 원래 良으로 기록되었으며, 그 순서가 良, 高, 夫로 적힌 문헌도 많음.)
세 신인이 동쪽나라에서 온 세 공주를 맞아들여 혼례를 올렸다는 못이다.
▣탐라국은 약 12세기까지 독립 상태를 유지했으며,
그 이후에도 조선 초에 완전히 본국에 편입될 때까지
'탐라'라는 이름은 계속해서 사용되었다.
▣탐라국의 주민인 제주 원주민, 즉 탐라인은
탐라국이 있던 당시 육지의 한민족계와 유사한 혈통이었다.
물론 현대의 중국인이나 일본인 같이 갭이 큰 이민족이었다는 것은 아니다.
애초부터 한반도에 공존한 고대 국가인 고구려, 백제, 신라 등도
서로 말은 통하며 동시에 스스로를 삼한인이라 지칭 하는 등
어느 정도 공통의식은 있었으나 서로 같은 나라 사람이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고구려인, 백제인이 있듯이 탐라인이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삼한(三韓)⇨ 삼국 시대 이전 한반도 중부 및 남부에 자리 잡고 있던
마한(馬韓), 변한(弁韓), 진한(辰韓)을 통칭하는 말로,
이후 마한의 백제국(伯濟國)이 백제로, 변한의 구야국(狗邪國)이 가야로,
진한의 사로국(斯盧國)이 신라가 되었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말하자면 본토의 사람들과는 고구려-백제의 관계와 비슷한 수준의
형제 뻘인 관계 정도. 그리고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본토와는 차별되는 문화가 발전해 왔고, 언어적으로도 차이가 난다.
▣그러니까 한국계 혈통이긴 하지만 한국인은 아닌 탐라인 이라는 것.
오키나와의 류큐인도 일본인과 형제 뻘인 민족이지만
야마토 민족은 아니며 일본 본토에 크게 동질성을 느끼지 않는데,
이와 비슷하다
(게다가 오키나와는 가까운 일본령인 큐슈 섬과 한참 떨어져 있다).
차이점은 복속의 역사가 더 긴 탐라국 쪽이 더 본토에 동화 되었다는 정도.
오키나와는 현재도 일본 본토랑 이질적이다.
▣원대부터 명초까지는 탐라국에
중국 윈난성과 몽골의 문화가 유입되었으나,
본토에서의 중앙 집권 통치가 굳건해진 조선 왕조부터
한반도 본토와 같은 목, 군, 현 단위 행정구역이 설치되며
관리를 받으면서 한반도 본토와 일체화되어 갔다.